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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시- 윤동주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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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시

-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411120일 지음,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8)


<핵심 정리>

 

감상의 초점

이 시는 윤동주가 연희 전문학교 졸업을 1개월 앞둔 1941년에 시집의 서문으로 쓴 작품이다. 시집의 서시(序詩)인 만큼 윤동주의 시 세계를 단적으로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시에는 윤동주 문학이 지니는 대표적 주제들인 순결성(1-4), 인간애(5-6), 운명애(7-8)가 나타나 있다.

윤동주는 자신이 어둠’(일제치하)의 중심에 있다고 생각하고, 그 어둠 속에서의 삶을 부끄러워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성찰하였다. 이것이 이 작품의 시작 동기(motif)이다.

윤동주의 시에는 , 하늘, 바람, 등이 자주 나온다. 이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시어들의 상징적 의미 파악이 선행되어야 한다.

* 하늘 : 윤리적 판단의 주재자(主宰者)

* : 희망, 이상의 세계. 순수한 자아의 세계

* 바람 : 식민지 상황에서 오는 시련

* : 암담한 현실. 식민지 상황

성격 : 성찰적, 고백적, 의지적

심상 : 별과 바람의 시각적 심상

경향 : 참여적

어조 : 고백적 어조와 의지적 어조

특징 : 대조적 심상의 부각 (별과 바람)

서술과 묘사에 의한 표현

자연적 소재의 상징화

시상 전개 : 시간의 이동에 따른 전개.(과거현재미래)

구성 : 삶의 부끄러움과 괴로움(1-4)

미래의 삶에 대한 결의(5-8)

현재의 상황적 갈등(9)

제재 : .(이상의 세계, 순수한 양심)

주제 : 부끄러움이 없는 삶의 소망

 

<연구 문제>

1. 이 시에서 시상이 응결된 지배적 심상을 하나 찾아 쓰라.

2. 이 시에는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갈등이 형상화되어 있다. 이것을 상징하는 시어를 각각 찾아 쓰라.

(이상)과 바람(현실)

3. 이 시가 시인의 섬세하고 결백한 심성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고 평가된다면, 어떤 점에서 그러한지를 60자 정도로 설명하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에 아주 작은 시련에도 괴로워하는 심정을 시각적 심상으로 섬세하게 표현했다.

4. 에서 연상되는 맹자(孟子)군자 삼락(君子三樂)’의 하나를 쓰라.

仰不愧於天

 

< 감상의 길잡이 1 >

이 작품은 전 2연으로 되어 있으나 시간의 이동에 따라 과거, 미래, 현재의 3단락으로 구분해서 이해하는 것이 좋다. , 1연의 1-4(과거), 5-8(미래), 2(현재)으로 나눌 수 있다.

 

1연의 1-4행은 지금까지 살아온 생활의 고백이다. 죽을 때까지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살아왔으며, 또 조그마한 시련(‘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며 살아왔다는 것이다.

 

1연의 5-8행은 미래의 삶에 대한 신념을 표명(表明)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적 갈등(‘부끄럼’)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불쌍한 이웃, 동포 더 나아가서는 모든 생명체를 지고(至高)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하겠으며, 맡은 바 사명을 다하겠다는 다짐이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은 영원이나 이상을 추구하는 마음으로, 지극히 높고 순수한 마음을 뜻한다. ‘모든 죽어가는 것이란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이라는 뜻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2연은 현재의 상황을 묘사적 이미지로 형상화한 단락이다. 식민지 상황(‘’)에서 시의 화자가 드높은 이상(‘’)을 실현하는데 현실적 어려움(‘바람’)에 부딪혀 끊임없이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표현하였다.

 

결국 이 작품은 식민지 상황에 처해 있는 젊은 지식인의 고뇌와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표백(表白)한 시다. 그래서 더욱 진솔(眞率)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고백적인 시가 감상에 흐르거나 관념에 빠지기 쉬운데, 이 시는 적절한 시각적 심상을 활용하여 서정시로 승화시키고 있다.

 

< 감상의 길잡이 2 >

이 시는 해방 후 간행된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모두(冒頭)에 놓여 참삶을 추구, 지향하는 윤동주의 모든 것을 대표하는 명시(名詩)이다. 윤동주는 식민지라는 암담한 현실 속에서 지성인으로서 겪어야 했던 정신적 고뇌와 아픔을 섬세한 서정과 투명한 시심(詩心)으로 노래한 시인이다. 그는 고요한 내면의 세계를 응시하려는 순결한 정신의 소유자요, 자신이 걸어야 할 삶의 길에 순응하고자 했던 인간이다. 그를 일제 말기라는 문학적 공백기에 민족적 의지와 양심을 지켜주던 대표적 시인으로 평가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의 시가 시대적 상황의 투시와 양심에서 배태된 부끄러움의 인식 때문이다.

 

이 작품의 구조는 2연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시간의 변화에 따라 세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1연은 둘로, 14행과 5~8행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단락은 과거 시제로 지금까지 화자가 살아온 생활의 고백이고, 둘째 단락은 미래 시제로 미래의 삶에 대한 화자의 신념의 표명이다. 셋째 단락인 2연은 현재 시제로 현재의 시적 상황의 제시이다. 결국 이 시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이며, 지금 현재는 어떠하다는 구조에 따라 시상이 전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의 배경은 별과 밤 하늘이다. 별이 빛나는 그 밤 하늘 아래 시적 화자인 가 존재하고 있다. ‘은 암울한 시대 상황이며 자아의 실존적 암흑 의식을 표상하고 있으며, ‘은 외로운 양심의 표상이자 구원(救援)의 지표로 희망과 이상 세계를 상징하고 있다. 이런 배경 속에서 화자는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 없기를희원(希願)하며, 도덕적 결백성과 순결성 때문에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고 있다. ‘과 대조가 되는 바람은 화자가 추구하는 참삶과, 지켜 오고 있는 양심을 흔들리게 하는 현실적 시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시에서는 우주 섭리(攝理)에 따라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에 충실하는 한편, ‘별을 노래하는 마음(이상 세계를 지향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죽어가는 모든 것과 조국과 민족의 고난을 포근히 감싸 안고자 했던 시인의 지극한 휴머니즘의 정신을 엿볼 수 있다. 특히, 마지막의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라는 시행은 그가 처한 암담한 현실 상황을 대변하는 동시에, 바람에 부대낄수록 더욱 밝은 빛을 발하는 별과 같이 자신의 이상도 빛날 것임을 암시하고 있어, 아직 채 완성되지 못한 24세 때(1941.11.20) 쓴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투철한 현실 인식과 뛰어난 자기 인식으로 드러나는 그의 인간적 성숙도를 짐작하게 해 준다. 그러므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28세의 젊은 나이로 후쿠오카 어두운 감옥에서 숨을 거둔 그가 하늘과 양심 앞에 조금도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자 했던 번민과 의지의 결실인 이 시는, 우리 모두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귀중한 교훈을 주는 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8

 

< 감상의 길잡이 3 >

개화이전의 우리 조상들은 성조기를 화기(花旗)라고 불렀던 모양이다. 그 별 모양을 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고구려 벽화의 성좌도(星座圖)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원래 한국의 별은 단추처럼 둥근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이제는 아이들이 먹는 별사탕에서 장군들의 계급장에 이르기까지 그 별표 모양은 우리에게도 아주 친숙해졌지만 그것이 인체(人體)를 도안화한 것이라는 사실은 아직도 생소한 것같다. 펜터그램()은 위로 솟은 머리와 수평으로 올린 두 손, 그리고 양쪽으로 벌린 두 다리의 모습을 표시한 것으로 人體天體()를 동일시하고자 한 인간이 비원을 담고 있다. 그러고 보면 별표 밑에는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칠성 싱앙이나 별 하나 나 하나라고 노래한 우리 민요의 정서와도 통하는 구석이 있다.

윤동주의 ’() 읽기에서 우리가 지금까지 사용해 온 틀은 기독교적 사상이 아니면 일제에 대한 저항시인이었지만, 실제로 그 서시별 헤는 밤에 나타난 것들은 그보다 훨씬 고태형(古態形)을 지닌 별이다. 서시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의 인유(引喩)로부터 시작하고 있는 것만 해도 그렇다. 고전을 들출 것도 없이 그것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무엇을 다짐하거나 자신의 결백성을 주장할 때 곧잘 쓰는 말이다. 그러니까 그 하늘은 특정한 종교성보다는 소박한 민간신앙의 경천(敬天)사상이 깃들어 있다. 그리고 그것은 보다도 하늘-땅으로 대응해 온 신화적 공간의 무대에 가까운 그 하늘인 것이다.

 

그러므로 1-2행의 하늘 다음에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 했다3-4행이 짝을 이룬다. 하늘은 땅, 우러러보다는 굽어보다로 그 공간을 교체하면 잎새에 이는 바람이 출현하게 된다. 그래서 하늘을 우러를 때의 그 무구한 마음(부끄러움이 없기를)이 땅을 향할 때에는 그 잎새에 이는 바람을 보고 괴로워하는 마음으로 변한다.

 

그리고 다시 땅에서 하늘로 공간을 바꾸면 그 잎새는 별이 되고 그 괴로움 역시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반전된다. 이렇게 하늘-땅으로 교체되는 윤동주의 시선과 마음은 마치 정교한 대위법(對位法)으로 구성된 음악처럼 하늘의 별땅의 잎새를 완벽하게 연주해 낸다.

 

그래서 하늘로 응축되고, 잎새모든 죽어가는 것들로 대치되면서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5-6)라는 새로운 하늘-땅의 관계가 나타난다. 그러면서 놀랍게도 괴로워했다사랑해야지로 바뀐다. 잎새모든 죽어가는 것들은 동격인데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감정은 부정에서 긍정으로 역전되어 있는 것이다. 괴로움이 사랑으로 바뀌는 드라마는 지금까지 하늘과 땅, 별과 잎새의 대립항을 이룬 병렬구조를 통사축의 사슬관계로 눈을 돌리게 한다. 즉 지금까지 관계없이 보였던 부끄럼이 없기를 다짐하다」 ②풀잎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다」 ③별을 노래하다」 ④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다가 일련의 계기성(繼起性)을 지닌 사슬구조로 연결되는 것이다.

 

그래서 서시의 공간구조가 하늘, , 바람의 삼원구조로 되어 있듯이 그 시간구조 역시 과거(1-4괴로워했다), 미래(5-8「「사랑해야지」 「걸어가야겠다), 그리고 현재(9스치운다)로 삼등분된다.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7-8)는 직설적인 산문적 표현에도 불구하고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은 바로 서시의 병렬구조와 통사구조를 결정짓는 중요한 매개항으로 공간(하늘-)과 시간(어제-내일)을 통합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길은 공간에 속해 있지만 화살표와 같이 방향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과거에서 미래로 가는 시간성을 표시하기도 한다. 나에게 주어진 길이라고 할 때는 과거의 시간을 나타내지만 걸어가야겠다라고 할 때의 그 길은 사랑해야지와 마찬가지로 의지와 행동을 내포하고 있는 미래의 시간으로 출현한다.

 

그 길은 공간성으로 볼 때에는 땅(잎새)에서 하늘()로 오르는 언덕길 같은 것이 될 것이며, 시간성으로 볼 때에는 과거(괴로움)에서 미래(사랑해야지)로 향하는 그 도상(途上)의 현재가 될 것이다.

 

그래서 서시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로 끝맺고 있다. 일행으로 단독 연()을 이루고 있는 이 시행은 본문으로부터 외롭게 떨어져 나가 앉은 섬처럼 보인다. 앞의 시들이 과거나 미래형으로 되어 있는데 비해서 이 마지막 연()만이 스치운다로 현재형이다. 그냥 현재가 아니라 오늘밤에도라는 의 조사가 의미하듯이 그것은 끝없이 반복하고 있는 오늘인 것이다. 지금 나의 눈앞에 있는 것은 밤과 바람, 그리고 별이다. 공교롭게도 모두가 「ㅂ」음으로 시작되어 있는 이 세가지 단어들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로 얽혀있다.

 

어둠과 빛은 대립된 개념이지만 별빛은 밤의 어둠없이는 빛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동전의 양면처럼 분리할 수 없는 관계로 밀착되어 있다. 그리고 별빛과 결합된 어둠은 부정축에서 긍정축으로 그 의미의 화학변화를 일으키기도 한다.

바람 역시 그렇다. 땅의 잎새와 하늘의 별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서로 접촉할 수가 없지만, 그 단절을 메워주는 것이 바로 그 바람이다. 풀잎에 이는 바람은 저 무한한 높이의 별들을 스치는 바람이기도 한 것이다. 일다스치다라는 한국말이 이렇게도 절묘하게 어울린 예를 우리는 일찍이 보지 못했다. 밤을 통해서 별을 만나듯 바람을 통해서 풀잎은 별과 만난다. 하늘과 땅사이를 매개하고 있는 바람은 과도 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 그것은 소멸의 잎새와 불멸의 별 사이의 바람부는 공간, 그리고 끝없이 되풀이 되는 오늘이라는 그 도상성(途上性)이다. 하지만 괴로워하다노래하다, ‘노래하다사랑하다, 그리고 사랑하다걷다’(실천하다)로 바뀌어가는 행동은 별과의 스침을 통해서 가능해진다. 별은 바람과 밤의 부정적 상황을 긍정적으로 들려주는 낮은음자리표이며 지상적인 언어의 네가를 반전시키는 감도높은 인화지인 것이다.

 

만약 윤동주의 별을 일제에 대한 저항의 시각으로만 바라보면 어떻게 될 것인가. 잎새는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고통받고 있는 한국민족이 될 것이고, 바람과 그 밤은 일제의 압제(壓制)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별은 광복의 별이다. 그렇게 되면 모든 죽어가는 것들에 대한 사랑은 민족애(民族愛)로 축소되고 만다.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는 말 역시 끝까지 투쟁하겠다는 맹세로 들린다.

 

반대로 기독교적인 시각에서 보면 잎새와 모든 죽어가는 것들은 원죄를 지은 모털(Mortal)로서의 인간이 되고 그 안에는 일제 관헌들까지도 포함된다.

 

그러므로 사랑해야지라는 말은 기독교의 박애(博愛) 정신과 직결되고 그 길 역시 신앙의 길이 된다. 그 결과로 종교와 정치는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별을 만들어 내고 만다. 그 어느 시각으로 보아도 우리가 서시에서 읽는 그 별 이야기와는 분위기가 맞지 않는다. 그러나 인체의 모양이 그대로 빛나는 천체()의 모양과 하나가 되는 펜터그램이 그 도형처럼 작은 잎새들이 하늘의 별자리가 되어 빛나는 신화의 마당에서는 그런 모순들이 모두 사라진다.

 

그리고 그 서시는 정치론이나 종교론이 아니라 고통에서 사랑을, 그리고 어둠에서 빛을 탄생시키는 희한한 시의 마술… 「별을 노래하는 마음의 시론(詩論)이 되는 것이다. <이어녕 교수>

 

< 감상의 길잡이 4 >

이 시는 자신의 전 생애에 걸쳐서 철저하게 양심 앞에 정직하고자 했던 한 젊은이의 내부적 번민과 의지를 보여 준다.

앞의 두 행에서 시인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는 그의 소망을 말한다. 이것은 인생을 오래 살아본 사람의 달관한 말이 아니다. 세상의 갖은 풍상을 다 겪어 본 나이 지긋한 사람이라면 감히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생애를 돌이켜보면서 사람이 부끄럼 없이 산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그리고 자신 역시 얼마나 부끄러운 일을 많이 저질렀는지를 알 터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불완전하며 갖가지 그늘과 어둠을 가지고 있다. 그것들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쉽사리 자신의 순수한 마음을 버리고 세속적 삶에 타협하게 한다. 이 작품의 서두는 바로 이러한 가능성에 대한 단호한 거부의 선언이다. 그것은 젊은이의 순수한 열정과 결백한 신념에서 나온다.

 

그러나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이 산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더욱이 삶 자체가 치욕으로 여겨질 수도 있는 식민지의 상황 아래서 그것은 가능할 수 있는 것인가? 윤동주는 이에 대해 날카로운 반성의 언어로서 답한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 그의 괴로움은 자신이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아오지 못했다는 자책감에서 생겨난다. 부끄러움이란 잘못을 저질러서만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 일을 하지 못하였을 경우에도 올 수 있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자신을 돌이켜보면서 결백한 삶을 추구하는 젊은이에게 있어서 부끄러움이란 그의 양심의 뜨거움에 비례한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때문에 그는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것에서조차 괴로움을 느낀다.

 

그러나, 이 시가 보다 높은 경지를 이루는 것은 여기에 다음의 넉 줄이 이어짐으로써이다. 밤 하늘의 맑은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생명들을 사랑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걷겠다는 담담한 결의는, 자칫 무모한 번민에 그칠 수도 있는 양심적 자각을 성숙한 삶의 의지로 거두어 들인다. 그것은 극히 담담하면서도 의연한 결의와 태도를 느끼게 한다.

 

별도의 연으로 따로 떨어진 마지막 행은 이와 같은 결의를 시적으로 승화시킨 이미지이다. `오늘 밤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고 했을 때, 이 별의 암시적 의미는 어둠과 바람 속에서도 결코 꺼지거나 흐려질 수 없는 외로운 양심에 해당한다. 그것은 윤동주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젊은 이성의 상징이다. 바로 이 한 줄이 덧붙여짐으로써 양심의 결백함에 대한 그의 외로운 의지는 어두운 밤 하늘과 별, 그리고 바람이라는 사물들의 관계를 통해 더욱 또렷해지는 것이다. [해설: 김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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