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서기원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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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보호를 위해서 일부의 글만 교육용으로 올립니다.

그리고 일부 자료는 주로 전집류 부록에 수록되어 있는 작가론 또는

작품론으로 출처가 부정확합니다.


서기원 암사지도

다양한 소재에서 정직한 인식으로

조남현

 

 

 

1

서기원(徐基源)의 단편 소설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현대문학》,1964.8)에서는 이러한 대목을 찾아볼 수 있다.

「혁명하고 나서 살기가 좋아졌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와보니까 속았어요」

 

나는 그녀의 말에 잠시 젓가락을 멈추었다. 과히 오래지 않은 언젠가, 머릿속에서 분명 이와 비슷한 유리의 깨어지는 소리가 또렷이 울린 기억을 되찾아보려고 했던 성싶다.

 

다름아닌 처음 J의 편지를 받은 때였다.

나는 5·16이후 단 한 번도 <군사 혁명>을 긍정적인 입장에서 얘기한 일이 없었으나, 남의 가십을 옮겨주는 것과 같은 J의 어감에서 어이없이도 <군사 혁명>의 영도자들의 얼굴이 무척 가엾게 떠올랐던 것이다. 나는 피식하고 실소했다.

이 대목은 두 가지의 의미를 뿜어낸다. 1960년대 초반에서 1970년대 말에 이르기까지 이렇듯 노골적으로 군사 정권을 부정한 소설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에 서서 보면, 특히 유신 시대에서는 이런 소설을 찾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는 점에 입각해서 보면 1960년대 초반은 그래도 표현의 자유가 조금은 숨쉬고 있었던 것임을 알게 된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작가 서기원이 최소한 1960년대에는 현실이니 사회니 하는 것을 되도록 거짓없이 인식하려 했고 정직하게 서술하려 했던 점이다. 리얼리즘의 최소한의 요건이 <할 말은 한다>는 작가의 정직성에 있는 것이고 보면, 서기원은 5,60년대에는 분명한 리얼리스트였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는 한창 혈기가 넘치는 30대의 몸으로 현실의 실상을 떠내려 했으나, 그것이 이데올로기로 나타났든 단순한 신념으로 드러났든 모종의 편견의 조종을 받아 현실을 재구성하거나 생산하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않았다. 이 점은 상반된 평가를 낳을 수 있다. 1960년대까지의 그의 소설들 중 소박성에 주저앉은 것은 거의 없지만, <편견 없이> 현실을 그려내는 것은 소박성으로 떨어지기 쉬운 것도 사실이다.

 

그는 작가로서의 현실 파악과 현실 모사에 있어서 <정직성>은 늘 견지하였다. 정직한 인식은 깊이를 동반하였고 정직한 서술은 날카로움을 데리고 다녔다. 그와 비슷한 세대의 전후 작가들이 전쟁 체험에 짓눌려 한탄조의 피상적 리얼리즘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머지, 또 전쟁 체험으로부터 달아나버리고 싶은 나머지 장용학이나 최인훈처럼 현실의 광장이나 뒷골목을 누비고 다니기보다는 실험실로 들어가 버린 반면, 서기원은 현실의 공간이나 즉물(卽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성실하게 관찰하고 날카롭게 인식하려 했다.

 

서기원은 1956년 6월 호 《현대문학》에 단편 소설 「안락사론(安樂死論)」으로, 같은 해 11월호 《현대문학》에 단편 소설 「암사지도(暗射地圖)」로 문단에 나왔다. 1956년 이후 1973년에 이르기까지 그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작품을 써내었다. 물론 1957, 1966, 1967년과 같이 한 해에 한 편밖에 발표하지 않은 적도 있었다. 서기원은 1960년과 1964년 그리고 1971년과 1972년에 활발한 창작 활동을 보여주었다. 1960년도에는 서기원이라는 이름을 크게 빛나게 해준 「이 성숙한 밤의 포옹」(《사상계》,1960.10), 제목도 기이한 「사지연습(四肢演習)」(《현대문학》,1960.5)등 7편의 단편 소설들을 써 내었으며, 1964년도에는 「준자유(準自由)」(《문학춘추》, 1964.4), 「남해 기행」(《사상계》,1964.4) 등의 단편 소설들과 동학 운동을 다룬 장편 소설 「혁명」(《신동아》,1964, 9-1965.11)을 발표하였다. 이어 그는 1971년도와 1972년도에 걸쳐 다섯 편의 연작 소설 「마록열전(馬鹿列傳)」을 발표하여 작가로서의 원숙기를 맞게 되었으며 1971년 8월호에서 1973년 3월호 《현대문학》에 「이조 백자 마리아상」을 연재하였다. 서기원은 1971년부터 1973년 사이에 작가로서는 소재의 광범위성과 문제 의식의 심화를 한껏 과시한 셈이 되었다. 그 후 어찌 된 일인지 서기원은 1973년부터 1981년 사이에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다. 근 10년의 공백기를 거친 다음 1982년 여름호부터 1983년 가을호까지 《문예중앙》에 「왕조의 제단」을 연재하게 된다. 1984년 이래 작가로서는 제2의 공백기를 보여 주게 된다.

 

흔히 서기원의 대표작으로는 단편 소설 「암사 지도」「이 성숙한 밤의 포옹」과 중편 연작 소설 「마록 열전·1-5」, 그리고 장편 소설 「이조 백자 마리아상」을 꼽곤 한다. 엄정성과 객관성을 지켜가며 작품들을 읽고 평가할 경우. 이러한 통념이 계속 설들력을 가지리라곤 기대할 수 없다. 또 그렇게 할 필요도 없다. 대표작이 몇 편으로 제한되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서기원의 경우 좀 넓혀보아도 좋을 것이다. 우선은, 비록 미완성의 소설이기는 하지만 1부와 2부로 나뉘어 각각 400장 정도의 분량으로 《사상계》 1961년 4월호와 1962년 4월호에 발표된 바 있는 「전야제(前夜祭)」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다가 단편 소설로는 「조준」(《사상계》,1959.8), 「박명기(薄明記)」(《현대문학》,1961.9), 「환율 변경」(《세대》,1963.9), 「준자유」등을 대표작의 반열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달빛과 기아」(《사상계》,1959.1), 「야화」(《사상계》, 1962.7), 「잉태기」(《현대문학》,1965.4) 등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서기원의 대부분의 한국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대체로 초기작들 가운데서 문제작을 보여주고 있다. 발표 당시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명작으로 대접받아 오고 있는 「암시 지도」나 「이 성숙한 밤의 포옹」은 서기원이 20대에 썼던 단편 소설로, 모두 초기작에 속한다. 한 작가의 대표작이나 문제작이 데뷔작이나 초기작에서 나온다는 것은 부정적인 인상을 주기 쉽다. 작가가 나중에 얼마나 노력을 하지 않았으면 또 얼마나 능력이 없으면 2,30대에 썼던 작품들이 간판 작품이 되는가 하고 의아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위에서 꼽은 작품들에 주목하여 제 값을 줄 경우, 서기원에 대한 부정적 인상은 크게 허물어지고 말 것이다.

 

「암사 지도」「이 성숙한 밤의 포옹」「조준」「박명기」「환율 변경」「준자유」등과 같은 서기원의 문제작들을 보면, 그가 동시대의 어느 작가들보다도 작중 인물의 심리 묘사에 힘쓰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에 반해 그의 후기작들은 대체로 작중 인물의 심리 전개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이며 또 심리 묘사의 힘도 현저하게 떨어져버린 것으로 드러난다. 그렇다고 그의 초기작들이 심리 묘사로만 치닫고 있는 것은 아니다. 현실을 정확하게 또 거짓없이 인식하려는 태도를 바탕으로 삼으면서 의미와 문제가 내재되어 있는 인물이나 사건을 인상깊게 형상화해내고 있다. 이러한 문제작들은 발표되었을 그 당시 독자들에게 하나의 충격으로 다가갔었던 것이다.

 

1950년대와 1960년대 전반이 작가들에게 암암리에 리얼리즘을 지정곡으로 강요하였다면 심리주의는 이미 선배 작가 손창섭과 장용학이 잘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자유곡에 해당된다. 소설가는 적당한 실험 정신이 있어야 함을 서기원은 이들 작가들에게서 잘 배웠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담론에 있어서는 장용학처럼 과도하게 일탈하지도 않았으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는 조금도 뒤지지 않고 문제적 인물들과 극한 상황을 설정할 줄 알았다.

 

 

2

서기원의 소설은 크게 3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956년에서 1962년까지를 제1기로. 1963년에서 1970년까지를 제2기로, 1971년에서 최근까지를 제3기로 정할 수 있을 것이다.

 

제1기의 작품으로는 문단 데뷔작인 「안락사론」「암사 지도」등에서부터 「밀몽화(密蒙花)」(《신태양》,1958.7),「기반(羈絆)」(《현대문학》1958,9), 「음모 가족」(《현대문학》1959,11), 「오늘과 내일」(《사상계》1959,10), 「변신」(《사상계》1960,1), 「사지 연습」「이 성숙한 밤의 포옹」「둔주(遁走)」(《사상계》1960,11), 「박명기」등을 들 수 있다.

 

「안락사론」은 반공 포로 수용소를 배경으로 하여 그 속의 포로들이 서로 반목하다 마침내는 모두 인민군들에게 총살당하고 만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여기서 주인공 김우진은 일부 포로들이 탈출할 계획을 짜고 있는 것을 인민군에게 밀고하지만 결국에는 그로 다른 포로들에 휩쓸려 죽고 만다. 이 소설에서 작가 서기원이 어느 정도 긍정하고 있는 주인공이 독자들에게 참된 의미의 프로타고니스트는 되기 힘든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 소설은 전쟁 통에 각자가 살아남기 위해서 최소한의 인간적인 신의마저 저버리게 되는 극한 상황을 그려 보인 것으로 전쟁 소설의 한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밀몽화」는 사랑하는 젊은 남녀가 성적 충동과 순결을 지키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준 에피소드다. 「기반」도 사랑의 문제를 다루기는 했으나 사랑과 이해 관계의 갈등을 중심 사건으로 설정하였다. 신문 기자인 성순은 옛날에 사랑했던 여인과 현재의 애인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신문 기자로서의 일을 해결하기 위해 현재 애인 상희를 택하게 된다. 성순은 상희가 은행원으로 있는 은행의 부정 대출 사건을 파헤쳐 신문에 보도하려고 하는데 이 부정 사건은 상희의 도움이 없이는 진상 규명이 어려운 것이었다. 이 소설의 제목 <기반>은 성순이 옛 애인에게 집착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아무리 순수하다고 하더라도 남녀의 순수한 사랑은 이해 관계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것임을 암시하기도 한다. 이 소설에서 작가 서기원은 사랑의 문제에다가 정의/부정의 문제를 연결시켰는데, 실제로 서기원의 소설에서 정의/부정의 문제는 사랑의 문제 못지않은 비중으로 다루어졌다. 사회 전체의 차원이든 개인의 차원이든 정의/부정에 대한 작가적 관심은 서기원의 도덕적 상상력을 핵심으로 한 작가 정신을 입증해 줄 뿐만 아니라 소설사적 위상을 끌어올리는 근거가 되고 있다.

 

「음모 가족」에서는 가족간의 갈등이 나타나고 있다. 전쟁 때문에 공대를 중퇴하고 함석 공장의 일개 직공이 되고 만 김돈식의 부부는, 직장에 다니면서 착실하게 돈을 모은 누이동생 순에게 큰 기대를 거나 순으로부터 외면당하고 만다. 어린 조카가 아파 병원에 가서 위상 주사를 맞고 와도 순이는 모른 체한다. 마침내 돈식 내외가 선산 칠봉산을 팔아 구멍가게를 내려고 하자 늙은 아버지는 반대를 한다. 제목에서 잘 드러나고 있는 바와 같이 「음모 가족」은 서기원으로서는 가족간 갈등을 처음으로 다룬 작품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누이동생 순이나 돈식 내외나 아버지나 모두 이기주의자들이다. 이러한 가족 내 갈등은 각자의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기보다는 전쟁이 가져온 극한 상황에서 그 근인(根因)을 찾아야 한다. 흔히 갈등은 <원인적 갈등>이라고 하거니와 이 소설에서는 갈등의 전개 양상 못지않게 갈등 원인도 규명해 볼 필요가 있다. 서기원은 전쟁 때문에 또 극심한 가난 때문에 사람들이 저마다 약아빠지고 닳아빠지는 모습을 주목하고 있다.

 

「오늘과 내일」은 <전쟁 소설>이다. 이 소설은 유엔군에 소속되어 있는 한국군 병사를 주인공으로 삼은 점이 특이하다. 주인공 박병렬은 충북 어느 마을에 진주하는데 바로 이곳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버지가 은행 지점장이었다가 인민 재판에 회부되어 비명에 간 곳이었다. 그는 자기가 살던 집에 가서 한 노인을 만나게 되고 이 노인이 자기 고향에 보내 달라는 말을 들어주려고 했으나 일행인 김한균은 반대한다. 두 사람은 격렬하게 다투다가 마침내 총질을 하고 여기서 김한균은 죽고 만다. 물론 이 대목은 부자연스럽다. 김한균이 보여 주고 있는 바와 같이 제 목숨만을 중시하는 태도와 박병렬이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경우에 따라서는 자기를 내던질 줄 아는 태도 사이의 갈등은 이 소설의 휴머니즘적 자세를 잘 음각시켜 준다. 「오늘과 내일」은 전후 소설의 주제의 한 갈래라고 할 수 있는 <전쟁 속의 휴머니즘>의 한 예시가 된다.

「변신」에서는 앞서 말한 〈부정〉의 문제가 중심 사건이 되고 있다. 회사 돈을 횡령한 것을 마침 사고로 큰 수술을 받게 된 사람의 수술비에 충당하면서 감격 어린 울음을 터뜨린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회사 돈 횡령, 술자리, 층계 사고, 뇌진탕, 수술, 부정한 돈 찾기, 수술비 충당 등으로 이어지는 사건 설정도 특이하다. <변신>이라는 이 소설의 제목은 주인공이 참회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사지 연숩」은 제목처럼 내용도 이색적이다. 이 작품은 간첩 혐의로 붙잡혀 온 한 사내가 온갖 고문을 받은 끝에 마침내 허위 자백하고 또 그 과정에서 자신의 비밀에 찬 삶의 내용 즉 절도,  성희롱, 실연 등의 사건까지를 고백하는 것을 들려주고 있다.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과연 이 사내가 정말 간첩인지 아닌지를 헤아리기 어렵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고문의 인간 파괴적인 성격이다. 고문은 인간의 진실을 가로막는 최고의 폭력이다. 「둔주」는 옛날에 군대 부하로 있던 사내가 사회로 나와. 현재 한 회사의 촉탁으로 있으면서 자기 앞가림하기에 급급한 옛 상관을 괴롭힌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이 소설은 인간의 신의, 우정, 그리고 그것을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밥>의 문제를 파헤치고 있다.

 

「박명기」는 장님을 화자로 설정한 점에서 특이하다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이 점을 끝까지 의식하여 오류를 범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장님이 화자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은 자연스럽지 못하다. 작중의 <나>는 인민군의 강요로 형을 찌른다. 물론 형은 인민군이 쏜 총에 맞아 죽은 것이기는 하나 <나>는 죄의식에 사로잡히고 만다. 벌을 받은 것인지 <나>는 전쟁에 나가 눈이 멀어버리는 부상을 입게 된다. 그러자 비로소 형을 죽였다는 죄의식에서 벗어 나게 된다 죄의식과 속죄 그리고 구원의 문제를 환기시키기 위함인지 이 소설은 군데군데 찬송가 소리를 배치하고 있다. 찬송가 소리는 위안이요 구원이다. 전쟁에서 돌아와 보니 아버지는 중풍에 걸려 있고 누이 진숙이가 돈 벌고 살림하고 해서 이 집을 꾸려나간다. 누이는 <나>와 아버지 때문에 시집도 못 가고 하루하루 희생적인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또 한 가지 극적인 것은 소경인 <내>가 쉰 밥인지도 모르고 잘못 차려준 밥을 먹고 아버지는 사경을 헤매면서 누이 진숙에게 <내>가 아버지를 죽이려 했다고 말한 것이다. 말하자면 <나>는 갈등과 불신의 한가운데 놓여 있다. 형, 아버지, 진숙은 모두 <나>와 이러저러한 면에서 대립하고 있다. 이 소설에서의 <나>의 집안은 이범선의 단편 「오발탄」을 연상하게 한다.

「달빛과 기아」도 특이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인공 치하의 서울을 배경으로 하여 사랑, 목숨, 이념 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작중의 <나>는 인공 치하에 숨어 살다가 옛 애인이 사는 곳으로 몸을 피한다. 옛 애인은 작중의 <나>로부터 버림받은 사람으로, 동네에서 여맹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작중의 <나>는 그 여자로부터 도움을 받으면서도 계속 이죽거리고 협박까지 한다. 말하자면 <나>는 여자 입장에서  보면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운 얌체 같은 행태를 보인다. 이 소설도 「안락사론」과 마찬가지로 주인공에 대한 작가의 감정과 독자의 반응이 어긋나고 있는 한 예가 되고 있다. 「야화」에서의 주요 인물의 하나인 지온도 독자들에게 공감이나 연민을 사기 어려운 면을 보여준다. 먹을 것이 없어 아기를 집 앞에 묻어 죽여버리고, 그 아기의 시체를 개가 끄집어낸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이 소설은 지온의 현실에 어울리지 않는 자의식을 들려줌으로써 1950년대의 한국인들의 삶과 사회의 보편적인 모습을 보여 주게 된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서기원의 대표작들은 주로 제1기에서 보인다. 「암사지도」「달빛과 기아」「조준」「이 성숙한 밤의 포옹」「야화」「박명기」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작품들은 제1기의 다른 작품들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특질들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는다. 이 소설들은 현실 묘사와 심리 묘사를 적절하게 배합하고 있다. 이 시기의 여타의 작가들에 의한 여타의 작품들과는 달리 객관적이거나 피상적인 리얼리즘에서 벗어나 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서기원이 인물의 내면 세계를 드러내 보이려 애썼다는 점이 작용하였을 것이다. 제1기 소설들은 주로 전쟁, 사랑, 우정, 부정 등의 소재를 다루었다. 특히 사회 부정의 문제에 대한 작가의 각별한 관심은 서기원 문학의 한 특징을 이루게 된다. 서기원이 등단했던 1950년대 후반기만 해도 동시대의 작가들 대부분이 전후의 비참한 삶의 모습을 그려내는 데 급급했던 것에 비한다면 서기원은 여기서 얼른 빠져나간 편이다. 현시로부터 재빨리 거리를 두었다는 것이다. 현실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두었다는 것은 현실을 보다 폭넓게 보았다는 의미가 된다. 그는 드디어 한국 전쟁을 근경이 아닌 원경으로 놓고 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전쟁이 새롭게 만들어버린 현실을 날카롭게 쏘아보았고 다시 그 현실들을 원인적 현실로 놓고 보았다. 서기원은 역사의 부조리인 전쟁이, 부정이 횡행하는 가운데 종래의 가족 제도가 뿌리부터 뒤흔들리는 사회의 부조리로 바뀌어가는 과정을 주목하였다.

 

제2기는 1963년에서 1970년까지로 볼 수 있는데, 이 시기의 주요작으로는 「상속자」(《현대문학》,1963.2) 「환율변경」「준자유」「혁명」「아리랑」(《창작과 비평》,1966.3), 「소문나지 않은 얘기」(《월간중앙》,1970.6) 등이 있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발표 당시의 분위기를 보면 또 동시대의 다른 작가들과 비교해 보면 소재가 대담하고 다양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연가」(《자유문학》,1963.6)는 전쟁 때 인민군 통신 부대에게 집을 빌려주고 인민군 군관을 짝사랑했던 한 여자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고, 「아리랑」은 일보에 파견된 한 정보원을 <나>라는 화자 겸 주인공으로 설정하여 반정부적인 교포, 망명자, 조총련 계통 인사들을 내사하는 과정을 따라가고 있다. 작가 서기원은 이념, 민족, 국가 등의 문제에 대해 확고한 주관을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난다. 「바닷가에서」(《신사조》,1963.11)는 한국군 장교와 미군 장교 사이의 민족적 감정과 갈등을 다루었으며, 「오산(誤算)」(《월간중앙》,1969.4)은 옛날에 임정 요인까지 지냈던 한 독립 운동가와 정의감에 사로잡혀 기행을 저지르는 것을 형사가 미행하면서 감시한다는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사육」(《신동아》,1969.7)은 평소 정의감이 강한 한 비서가 비록 꿈속에서나마 전력이 더러운 회장을 지하실에 가두어놓고 복수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으며, 「공범자들」(《사상계》,1968.8)은 언론 자유의 문제를 파헤치는 데,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은 임신 중절의 문제의 심각성을 일깨워주는 데, 「소문나지 않은 얘기」는 정치 지망생들의 허황한 태도를 그리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제3기는 대략 1971년 이후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 시기의 중심은 당연히 연작 소설 「마록 열전」에서 찾아야 한다. 이외에 역사 소설의 색채를 지닌 「어느 충주 목사」(《월간중앙》,1971.2), 「이인직전」(《월간중앙》,1972.5) 등을 주목할 만하다. 「어느 충주 목사」는 한창 천주교도 박해가 있었을 때, 천주교 신자였고 정약전과 가까웠던 이가환이 배교 행위를 하고 충주 목사로 내려가 오히려 천주교 신자들을 가혹하게 다룬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이인직전」은 한일 합방 직전의 이인직과 이완용, 송병준, 일본인 처, 통감부 외사국장 소송연(小松緣) 등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 이인직 평전이다. 서기원은, 근대 소설의 개척자이기는 하였으나 친일분자였던 이인직을 사실에 의거하여 발가 벗겨 놓고 있다.

 

이상에서와 같이 서기원은 5,60년대의 현실에 다각도롤 저근하였을 뿐안 아니라 날카롭게 현실의 저층을 포착해 내고 있다. 이념, 민족 갈등, 사회 정의. 지식 사회, 언론, 임신 중절 등과 같은 현실을 구성하고 있는 크고 작은 여러 요소들을 되도록 두루두루 살펴보려 한 것을 기본적인 태도로 삼았다. 그는 현실의 외연이 어느 정도가 되든 관계없이 일별하려고 하였고 또 현실의 궤적을 일주하려 하였다. 그는 소재 선택에 있어서는 자유를 행사하였고 그 소재를 처리하는 면에서는 과감성을 살려내었다. 서기원의 이러한 태도는 1970년대 이후로 가면 안타깝게도 찾아보기 어렵다.

 

 

3

비록 미완성 작품이기는 하지만 「전야제」는 일독할 가치가 충분하다. 이 작품에는 채지철 소위, 그의 누이동생 채지숙, 김성호 일병, 영규 등의 젊은이들이 등장한다. 이 세 명의 젊은이들은 모두 친구 관계이다. 나중에 채 소위는 전상자가 되었고 김성호 일병은 인민군에게 포로가 되었다가 탈출하였으나 본대로 귀대하지 않고 친구 영규에게로 가 결국 탈주병이 되었고 영규는 폐결핵으로 제 본심과는 관계없이 끝내 군에 나가지를 못한다. 이 소설에는 전투 장면, 전투 중인 군인들의 심리, 군대의 비리, 후방 민간인들의 심리와 모습, 인민군들의 모습 등이 객관적으로 묘사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쟁에 대한 장황한 토론의 장면까지 제시되고 있다. 작품의 군데군데서 혹은 명시적으로 혹은 암시적으로 우정/사랑, 자유/억압, 명분/실리, 정의/불의 등의 충돌이 빚어지고 있다. 이 소설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성호라고 할 수 있는데, 성호가 탈출했음에도 채 소위나 영규는 고발하지 않는다.  성호는 처음부터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이나 사회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고 전쟁 그 자체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기는 했으나 뚜렷한 이념 분자나 성격 담지자로 형상화되지는 못하였다.

 

성호는 한국제 훈장, 정부가 수여하는 훈장을 코웃음쳤다. 군대내의 부채를 저주했다. 또한 전선과 후방이 완전히 절연된 싸우는 나라를 한탄했다. 특히 후방 도시의 퇴폐한 무관심에 격분했다. (《사상계》,1961.4)

 

위의 구절이 잘 일러주고 있는 것처럼 「전야제」에서의 성호는 「이 성숙한 밤의 포옹」에서의 <나>의 후신이라고 할 수 있다.

 

「암사 지도」「이 성숙한 밤의 포옹」「조준」 등은 제1기를 대표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서기원 소설의 표제이기도 하다. 「암사 지도」나 「이 성숙한 밤의 포옹」은 과거의 여러 논자들에 의해 독특하게 제 값을 받을 수 있었거니와 「조준」도 이 두 작품에 못지 않은 작품으로 재평가해야 할 것이다.

 

「암사 지도」는 한 여자를 기묘한 형식으로 공유한  50년대의 두 젊은이들의 내면 세계를 동시대의 어떤 소설보다도 치밀하게 그려낸 점이 매력이다. 두 남자는 전우였었다. 전쟁이 나기 전 김형남은 미대생이었고 박상덕은 법대생이었는데 전쟁을 치른 후 무사하게 제대하였다. 김형남이 박상덕의 집에 얹혀 살게 되면서 김형남은 최윤주를 동정하고 사랑하기 시작했고, 김형남이 극장 간판을 그려 벌어온 돈으로 살림을 꾸려가면서 박상덕은 원래 자기 여자였던 윤주를 슬며시 내준다. 김형남은 윤주를 사랑하였던 반면 박상덕은 이용했던 것이다. 이 소설은, 전쟁을 겪고 난 후 극도의 궁핍과 허무감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가운데 사랑의 충동과 체면과 연민과 우정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전후 우리 젊은이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전후의 젊은이들의 내면은 충동과 이성, 욕망과 윤리의 싸움터가 되고 있다. 작가는 여러 인물을 설정하는 가운데서도 내적 갈등을 가장 심하게 겪고 있는 김형남을 그리는 데 역점을 두었다.

 

형남의 머리는 혼란하였다. 도시 어찌 되어가는 판국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거야 따지고 보면 그에겐 아무 소득이 없는 생활임에 틀림은 없었다. 그런데도 거기서 벗어날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영 지쳐버린 소달구지처럼 덜그럭덜그럭 굴러가는 것은 그저 윤주에 대한 미련이나 애착 때문이라고만은 할 수 없었다. 스스로의 가슴팍을 파헤쳐보면 물론 윤주에의 애착도 없지 않지만 또한 항시 혐오감을 갖게 하는 상덕에게서도 섣불리 도려내 버릴 수 없는 어떤 집착을 느끼는 것은 웬일인가. 한 마디로 그 기괴한 살림의 얄궂은 매력에 끌려가는 것이라고 할까. 음산한 흡족이란 말이 있을 수 있다면 바로 그 같은 상태로 그날그날을 보내는 것이었다. (《현대문학》, 1956.11)

 

이 젊은이들의 심리 변화를 긴장감을 조성해 가며 쫓아가고 있는  서기원의 솜씨는 50년대 소설에서는 가히 압권이다. 윤주는 두 남자에게 몸은 주지만 두 사람을 다 사랑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윤주는 임신을 하게 되자 두 사람의 엇갈린 대책에도 불구하고 집을 나갈 것을 결심하게 된다. 「암사 지도」는 윤리적 상상력에 의해서만 끌려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서기원은 다른 여러 작품들을 통해서도 잘 암시하고 있거니와, 실제 사회에서는 이제 더 이상 윤리가 능사가 될 수 없음을 깨닫고 있었다. 미라든가 욕망이라든가 본능이라든가 하는 것이 얼마나 힘차게 삶을 이끌어가는 것인가를 서기원은 1950년대 전후 사회를 통해 인식할 줄 알았던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서기원은 1960년대에 <감수성의 혁명>을 높이 내건 김승옥의 예고 지표라고 할 수 있다.

 

「조준」은 이제껏 제대로 평가되지 않은 작품이다. 이 소설은 3년 전의 소설 「암사 지도」의 의식과 형식을 이어받기도 하고 심화시키기도 하였고 부정하기도 하였다. 「암사 지도」에서는 상덕과 형남이가 성격이나 태도 사이에 분명히 차이를 드러내고 있긴 하지만 두 인물을 대조적이거나 대립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또 대체로 상덕이가 가해자로 나타나고 형남이가 피해자고 그려져 있기는 하지만 이도 뚜렷하게 선을 그을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조준」에서 두 친구는 분명히 갈등을 느끼고 있으며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로 나타나고 있다. 물리학을 전공하는 대학 강사인 승배는 농민의 아들로 자수 성가해 가고 있는 경우로, 목재 회사 사장의 아들이자 그 회사 사원인 창하로부터 열등감과 굴욕감을 느끼게 된다. 두 사람은 하숙집 딸 풍희를 놓고 대립한다. 「암사 지도」에서의 여자 공유가 「조준」에서는 삼각 관계로 펼쳐지고 있다. 창하는 행동은 거칠기는 하지만 말주변도 좋고 사교적이다. 방탕한 기질인데다가 낭비벽도 있다. 이에 반해 승배는 전형적인 샌님 스타일이다. 승배는 창하를 경멸하기도 하고 그에게 라이벌 의식을 느끼기도 한다. 이 소설의 끝부분은 그야말로 극적이다. 승배, 창하, 풍희는 함께 사냥하러 갔는데 거기서 승배가 여우를 쏘려고 들어온 것을 피하지 않고 방아쇠를 당겨 창하를 쓰러뜨리는 것으로 끝이 난다. 미필적 고의라고나 할까. 결국 승배는 자신의 무의식 속에다가 남몰래 창하를 향한 복수심을 키우고 있었던 셈이 된다.

 

「조준」에서 창하의 방이 발디딜 틈도 없고 숨쉬기도 어려울 만큼 더러운 것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이러한 묘사는 「이 성숙한 밤의 포옹」에 와서 선구라는 인물의 방의 더러움을 묘사하는 것으로 재현되고 있다. 서기원의 소설에서 더러는 방이라는 모티프는 비교적 자주 나타나는 편이다. 더러운 방은 더러운 현실, 더러운 한국을 상징한다. <상희의 폐가 악화되어 나를 불렀고, 나는 그 편지를 받자, 지체없이 탈영을 단행했을 따름이었다>는 본문이 중심 사건을 설명해 주고 있는 것처럼 이 소설은 한 젊은이가 자기가 원하면서 자유가 넘치는 삶을 찾기 위해 범법을 저지른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작중의 <나>는 탈영을 하고 나서 곧바로 상희를 찾아가지 않고 사창가에 가서 시간을 보낸다. <나>는 여기서 선구라는 비정상적인, 일탈된 인간을 만나게 된다. 선구는 국민 방위군에서 탈출한 경력을 갖고 있으며 창녀인 진숙에게 일 주일에 한 번씩 가며 방에다가는 오줌이 든 맥주병을 늘어놓고 사는 인간이었다. <나>나 선구나 전쟁이 근인이 되어 비정상적인 행동을 보이게 된 것이다. 이 소설에서 <나>는 전쟁중에 강간 살인한 어느 여자에 대한 죄의식과 공포심, 창녀와의 육체적 쾌락, 상희에 대한 연민의 정으로 찬 사랑의 감정, 이 세 가지 인력 사이에서 시달린다. <나>의 의식 속에서 이 세 가지 인력은 혼재의 양상을 띤다. 참전했다가 범법자의 신세로 돌아온 작중의 <나>는 <실상 내가 진정 갈망하고 있는 것은 애정 그리고 육욕과도 아무런 연관이 없는 말하자면 무책임한 자유인지도 모른다>는 구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전후 우리 젊은이들의 정신적 갈증을 대변해 준다. 「암사 지도」「조준」에 이어 「이 성숙한 밤의 포옹」에 오면, 서기원은 실제 현실 속의 인간을 크게 <의식이 있는 인물>과 <행동 성향의 인물>로 나눈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이분법은 다시 윤리/비윤리, 깨끗함/더러움, 부정/정의, 건강/병 등의 이항 대립으로 나누어지기도 하고, 섹스와 죽음을 연결시키기도 하고 범죄와 자의식을 한 줄에 묶어놓기도 한다. <나>가 탈영하고 나와서 만나 후방도 전방과 대비되고 있다. 전방에 나가 싸우다 죽는 사람만 억울하다는 식이다. 이러한 인식은 「이 성숙한 밤의 포옹」보다 몇 달 후에 발표된 「전야제」에서 다시 한 번 나타난다. 서기원의 소설에서 자주 다루어졌던 정의와 불의의 문제는 어쩌면 이렇듯 불평등 심리에서 싹튼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억울하다는 느낌이나 불평등 심리는 사회 불신, 역사 불신 더 나아가서는 인간 불신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처럼 제1기의 대표작들은 제2기에게 정의/불의의 문제를 중심으로 한 윤리적 상상력을 물려주었다. 제2기에 와서 정의/불의의 문제를 다룬 소설로는 「환율 변경」「폴리그라프」「선호」「오산」「사육」「소문나지 않은 얘기」등이 있다. 또 그 연장선 위에서 정치 소설의 가능성을 열어 보인 것으로는 「환율 변경」「아리랑」「공범자들」「소문나지 않은 얘기」 등이 있다. 두 계열의 작품들 중 여러 작품들이 실제로 겹치고 있는 것처럼 정치적 문제와 정의 문제는 따로 떼어놓고 보기는 어렵다. 서기원은 그 당시의 이른바 <가진 자>나 <힘 있는  자>나 <다스리는 자>에 대해 별로 주저하지 않고 따지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했다. 학원 선생이 한 학생의 아버지인 고리 대금업자를 찾아가 정치 지망생을 위해 돈을 빌려 줄 용의가 없느냐고 하다가 거절당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소문나지 않은 얘기」에서는 동시대의 다른 소설에서는 찾기 어려운 정치 토론 장면을 볼 수 있다. 고리 대금업자인 박연은 기본적으로 정치가를 믿으려고 들지 않는다. 학원 선생 김대성이 정치 지망생 이세권을 진정한 혁명주의자라고 하자 박연은 서슴없이 부정적인 언사를 내뱉는다.

 

「환율 변경」은 경제부 기자인 김지온이 민주당 정권의 재무부장관, 재무부 외환 관리 국장, 동창인 대학 강사 창렬 등과 당시의 정치, 경제, 사회 등에 대해 나눈 이야기 중 골자를 추려놓은 것이다. 김기자는 민주당 정부의 고환율 정책, 실업률 급증, 국토 건설단 정책 등을 비판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이 소설은 신문 기자나 대학 강사의 입을 통하여 미국 원조 정책의 허위성을 날카롭게 꼬집고 있다. 서기원은 경제학도 출신답게 당시의 경제 정책의 문제점을 깊이 있게 파헤치고 있다. 재무 관료들의 무능, 무책임, 무계획 등을 지적했다. 「환율 변경」은 한 마디로 경제 소설이다. 작가가 경제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하여 동시대의 경제 정책, 경제 사정 등을 이렇듯 예리하게 짚어낸 예를 찾기란 결코 쉽지 않다. 이 소설은 형식면에서는 대화 소설, 토론 소설, 해부 등의 색채를 강하게 띠고 있다.

창렬 : 거야 미국이란 나라가 원체 부피가 엄청난 나라거든, 선의와 악의가 뒤범벅이 돼서 대외 정책면에서도 복잡하게 작용할 수밖에……글세, 악의라고 해서 좀 과하다면 위선이라고 해도 좋지. 하지만 판단은 구체적으로 잡을 수 있는 사실에 충실해야 한단 말이야.

 

지온 : 나는 미국의 원조를 센티멘털하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아. 그러나 자네가 주장하듯, 전자 두뇌처럼 치밀하게 계산된 위선은 아닐 것 같단 말이지.(《세대》,1963.9)

 

이 소설은 소설가도 이제는 특정 방면의 전문 지식을 지녀야만 한다는 점에서 스스로 모범을 보이고 있다. 반미 감정이 섞여 있는 미국 분석도 주목할 만하다. 1963년이면 아직도 미국의 원조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던 때임에도 작가는 미국의 실체를 똑바로 알자는 구호나 외치고 있듯이 냉정하게 현실을 쏘아보고 있다. 삐딱한 자세로만 밀고 가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냥 패배 의식에만 젖어 있는 것도 아니다. 작가는 세상을 읽고 판단하는 데 있어서 보통 사람보다는 앞서가야 한다는 점을 서기원은 「환율 변경」을 통해 실천에 옮기고 있다.

 

「마록 열전·1」은 조상 대대로 물려온 논밭을 팔아 잡화상을 경영하는 마록이 돈을 좀 벌자 조상을 위대한 인물로 부각시키려 하였고 김사관이라는 자에게 속아 유언비어를 퍼뜨린 죄로 잡혀간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마록은 여기다가 씨받이를 사서 아들을 낳고자 하는 행동까지 보여주었다. 가문 도금하기와 아들 선호 관념은 한국인들의 고질적인 병폐의 하나가 아닌가. 이 작품은 제 능력이나 노력으로 제 인생을 끌고 가지 않는 한국인들을 풍자하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마록은 고유 명사가 아닌 보통 명사로 인식되기 쉽다. 「마록 열전·2」는 사립대 정치과 학생인 마록삼이 전쟁을 만나 이런 일 저런 일을 겪으며 온갖 고생을 하던 중에 초인적인 힘을 지닌 존재로 부각되었다가 추락한다는 이야기로 되어 있다. 능력은 없으면서 소문에 의해 만들어진 인간을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마록이나 마록삼이나 허세로 사는 것은 마찬가지다. 「마록 열전·3」은 청백리 후손인 마준이 청백리로서의 자부심을 지켜나가는 것도 아니고 적극적으로 운동하여 벼술길에 나아가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있다가 나중에 가서는 저항적 지식인에게 벼슬자리를 빼앗기고 만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당시의 세도가가 자기에게 설설 기는 사람에게 벼슬자리를 주지 않고 강직하고 저항적인 선비에게 벼슬자리를 주지 않고 강직하고 저항적인 선비에게 벼술자리를 준다는 것도 아이러니컬하다. 마준은 <청백리 가문>이라는 허명에 묶여 사는 인간이다. 허명에 살기는 마록삼이나 마준이나 같다. 「마록 열전·4」는 어사 마명민이 신문 기자, 지식인, 문인, 교수 등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두말할 것도 없이 해부의 양식에 들며 보고서의 한 형태다. 풍자적 톤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마록 열전·5」는 일본 경찰 앞잡이 마영이 중추원 참의의 아들이며 사회주의자인 젊은이를 살려내는 것으로 결말을 지은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 마영은 어리석고 반민족적인 순사 보조원이기는 하나 속으로는 일말의 민족적 양심을 지키려 한 존재로 그러져 있다. 마록이 위선적인 인간이라면 마영은 위악적인 인간이다. 그리고 마준은 그 중간을 다릴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연작 소설 「마록 열전」은 재미와 의미가 대등한 비율로 배합된, 즉 희극적 터치와 풍자적 의도가 잘 어울린 전통적 기법의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4

주로 1960년대에 집중적으로 왕성하게 창작 활동을 해온 서기원은 넓은 범위에 걸쳐 소재를 구했다. 물론 그가 가장 빈번하게 다룬 소재는 다른 작가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랑의 문제다. 남녀간의 사랑의 이야기를 들려준 것으로는 「밀몽화」「기반」「둔주」「연가」「태어나지 않은 아이들」「기프스」「당내리 풍경」「달빛과 기아」등이 있다. 사랑의 문제 다음으로 많이 다루어진 것은 정의냐 부정이냐 하는 문제다. 정의/부정의 문제를 다룬 것으로는 「기반」「변신」「환율 변경」「선호」「아리랑」「오산」「사육」「소문나지 않은 얘기」 등이 있다. 부정을 고발하고 정의감을 일깨워주고 있는 소설들은 서기원의 특징을 마련해 주는 것이면서 동시에 우리 전후 소설의 표징이 되기도 한다. 갈등은 이드적 차원, 자아적 차원, 초자아적 차원으로 나누어 볼 수 있거니와 서기원의 소설에서 이드적 차원에서 갈등이 생겨나고 전개되는 것을 보여준 소설도 적지 않다. 「음모 가족」「기반」「오늘과 내일」「사지 연습」「박명기」「바닷가에서」「아리랑」 등이 그 좋은 예다. 이외에 「사지 연습」「박명기」「치과 나들이」「야화」 등과 같이 폭력의 행사를 중심 사건으로 내세운 작품도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서기원의 소설은 고문(「사지 연습」,횡령「변신」), 광인(「이유」), 기인(「오산」), 자유(「공범자들」) 등과 같이 다양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서기원의 소설들은 실로 다양하다고 할 수 있는 소설 유형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혁명」「이조 백자 마리아상」「왕조의 제단」등과 같은 역사 소설을 써내었을 뿐만 아니라 연작 소설 「마록 열전」과 같은 인물 소설 또는 풍자 소설을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전쟁 소설로는 「안락사론」「전야제」「달빛과 기아」「오늘과 내일」「연가」「바닷가에서」 등이 있으며 정치 소설로는 「준자유」「환율 변경」「아리랑」「소문나지 않은 얘기」등이 있다. 초기작이면서 서기원의 간판작이기도 한 「암사지도」「조준」「이 성숙한 밤의 포옹」은 심리 소설의 색채가 짚은 편이다.

 

제1기가 심리 소설, 전쟁 소설 등이 이끌어가면서 비정상적인 인물이나 궤도 이탈한 인물이 주류를 이루었다고 한다면 제2기는 사회학적 상상력에 바탕을 둔 정치 소설, 세태 소설, 전쟁 소설 등이 중심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오면 정상을 회복한 인물들이나 평범한 인물들이 많이 나타나게 된다. 제3기는 뚜렷한  정형을 이룬 것으로 보기는 어렵기는 하지만 쇄말주의라든가 일상적 리얼리즘이 주조가 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소시민의 범주에 드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들이 여러 편 나타나고 있다.

 

나라나 사회가 차츰 정상을 회복하고 발전해 나갔던 것처럼 서기원 소설들에서의 인물들도 비정상성, 일탈성, 예외성에서 정상성, 범용성, 상식성으로 변해 간다. 서기원 소설은 반영론을 적당한 선에서 멈추고 대신 윤리적 상상력으로 빠져들어가 버림으로써 건강성이라는 양면과 범용성이라는 음면을 동시에 얻게 된다. 서기원 소설은 범법자, 비윤리적인 존재, 자기 망집에 빠져버린 사람, 환상주의자 등이 퇴장해 버리면서 특유의 색깔과 향취를 잃어버리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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