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이중생 각하(李重生閣下) / 본문 일부 및 해설 / 오영진
by 송화은율살아 있는 이중생 각하(李重生閣下) / 오영진
때 : 현대 곳 : 서울
등장 인물 :
이중생(李重生)-53세. 사업가.
우씨(禹氏)-54세. 그의 처.
하주(夏珠)-35세. 맏딸.
송달지(송달지)-40세. 사위.
하연(하연)-30세. 막내딸.
하식(하식)-24세. 아들.
이중건(이중건)-63세. 이중생의 형.
최영후(최영후)45세. 이중생의 고문 변호사.
임표운(임표운)-32세. 이중생의 비서.
용석 아범-66세. 머슴.
박씨(박씨)-47세. 이웃 여인.
어멈-40세.
옥순-14세. 하녀.
복순-14세. 하녀.
김 의원-40세. 국회 특별 조사 위원.
시경 경제계원
맹인 1,2
김 주사
변 주사
홍 주사
(앞 부분의 줄거리)
2. 3막 4장으로 된 이 희곡은 동일한 장소를 무대로 하여 전개된다. 무대는 이중생씨의 안사랑채로 온돌방에 연달아 오른쪽에 일본식 다다미방이 조금 보이며 왼쪽은 바깥 사랑이며, 그 뒤로 후원(後園)으로 통하는 울타리 길이 조금 보인다. 8·15 이전에 흔히 볼 수 있었던 주택 구조로 이른바 일본식과 한국식의 절충식이다. 이 방의 배경으로 석등(石燈)과 정자까지 바라보이는 정원, 호화로운 집으로 방안에 놓인 화초분 등 모두가 값나가는 것이지만 격조는 없어 보이는 집이다. 이러한 무대 설정은 사건이 벌어지는 시기가 광복 직후의 사회상과 관련을 맺고 있음을 암시해 준다.
제 1 막
이중생의 집에 손님이 오게 되어 있어 분주하게 준비를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러한 준비 과정에서 이중생의 가족과 그 주변의 인물들에 관련된 사정들이 드러난다. 이중생은 일제 시대에는 친일을 하여 돈을 벌었으며 해방 후에는 목재 회사와 산림 산업을 맞아 거드름을 부리며 살지만 본디 천박하고 보잘것없는 인품의 인물이라는 것, 이중생의 아내 우씨는 남편을 대단한 존재로 알고 부자인 것만 뻐기는 여인으로 집안 하인들에게조차 존경을 받지 못하는 인물이라는 것, 현재 이 집안에는 첫째 딸 하주와 사위인 송달지가 함께 사는데, 본업이 의사인 송달지는 생활력도 없고 착하기만 하여 교양이 없어 보이는 아내 하주에게 핀잔을 받아 가면 처가에 얹혀 지낸다는 것, 이중생의 아들 하식과 머슴의 아들인 용석이 이중생의 친일 행각 때문에 지원병으로 일본 군대에 들어가 그 때가지 소식을 모른다는 것, 둘째 딸 하연은 이중생이 사업상 관계를 맺고 있는 란돌프라는 외국인과 함께 인천 별장에서 지내고 있다는 것 등이 드러난다. 손님 맞이 준비에 한창 분주한 집에 들어온 이중생은 비서 임표운과 함께 장차 일이 잘 풀리면 산림 회사를 불하받아 돈을 많이 버는 것은 물론이고 장차 장관까지도 할 수 있으리라고 장담을 한다. 그러나 일은 불길하게 전개된다. 시경의 형사가 이중생을 체포하러 들이닥치고, 인천에 가 있던 둘째 딸 하연은 인천 별장이 아버지 것이 아니라 관리인을 속여 뺏은 것이 탄로나서 쫓겨났으며, 란돌프란 자는 미국 원조 기관 직원을 사칭한 가짜였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제 2 막 제 1 장은 한 달쯤 지난 뒤다. 이중생은 배임 횡령, 공문서 위조, 탈세 등의 혐의로 체포 수감되었고, 그 형인 이중건은 땅 팔아 산 집이 이중생의 이름으로 되어 있어 이번 사건으로 집을 빼앗겼다며 집 찾아 내라고 이중생의 집에 드러누웠다. 집안 식구들은 걱정을 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고, 둘째 딸 하연은 아버지 일에는 도무지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서 언니 하주와 매사에 충돌하고 자기 나름으로 회사에 취직을 한다. 이중생은 최 변호사의 도움으로 가석방되어 나오고, 이중생과 최 변호사는 이중생이 유서를 남기고 자살하는 것처럼 꾸며 재산을 보호하려는 모의를 한다.
제 2 막 제 2 장
그 다음날 저녁이다. 이중생이 재산 관리인으로 지정하고자 하는 사위 송달지는 천성이 착하기 때문에 고민에 빠진다. 죽지 않은 이중생이 죽은 것처럼 하여 송달지 행세를 하게 되면 자신의 존재는 없는 거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송달지는 망설이지만 이중생은 전재산을 사위 송달지에게, 그리고 형 이중건과 최 변호사에게 상당량의 돈을 주도록 하는 유서를 써 놓고 면도칼로 동맥을 끊어 죽은 것으로 하기로 작정한다. 송달지가 응하지 않자 이중생은 큰딸 하주에게 병원의 도장을 가져 오게 하여 사망 진단서까지 직접 작성하고 5일장으로 부고 인쇄하여 치상(治喪) 준비를 시킨다.
- 가사(假死) 연극을 실행함
제 3 막
전막(前幕)에서 3, 4일 후 저녁. 같은 장소. 다다미방에는 거꾸로 둘러친 병풍 한끝이 보인다. 향연(香煙)이 피어 오르고 북소리와 함께 맹인들의 독경 소리가 높으락 낮으락 들려 온다. 경은 우리들이 일상 레코드로 들어 오던 저 경쾌하고도 유우머러스한 축원경(祝願經)이다. 바깥 사랑과 후원(後園) 정자에서 이따금 들려오는 웃음 소리가 도무지 초상집답지 않다. 막이 열리면 굴건 제복을 한 상주 송달지가 혼자 온돌방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다. 동리 부인 박씨, 우씨와 함께 안에서 나온다. 박씨는 무엇인지 가득 넣은 이남박을 들었다.
- 무대 해설 및 무대 지시문으로 거짓 초상집의 희화화된 분위기
박 씨
그럼 형님, 집엣 것들 저녁상이나 차려 주군 곧 오리다. 집에서들은 명절날이나 온 줄 알겠군. 호호……. (다다미방을 들여다보고) 그저, 세상 떠난분 하나 불쌍하지. 조곰만 참으셨던들 아드님두 만나실 걸. 그래두 천도(天道)가 무심치 않지. 돌아가신 아버님이라두 한 번 보라구 장례 전으로 들어스게 되니 이게 하느님 인도가 아니구 뭐유? 에그., 저 사위 양반은 얼마나 고단하길래 저렇게 앉은 채 꾸벅 꾸벅 조을구 있을까?
우 씨
그럼 곧 다녀 와요. 난 아우님 없인 못 살어. 내 이 은혜는 꼭 갚을 테니.
박 씨
에그, 형님두. 그런 말 허실 테면 난 아주 발길 안 하겠수. (왼쪽으로 퇴장. 우씨, 방으로 올라가서 송을 깨운다.)
- 우씨와 박씨의 대화
송달지
어? 어…… 경 읽는 소리가 맹랑한데. 슬그머니 졸음이오니.
우 씨
어젯밤도 늘어지게 자구 그렇게도 졸릴까. 정신 채리구 있어. 오늘은 관청 손님이 조사 나온다는데.
송달지
어이, 졸려. 하식이 아직 도착 안했어요?
우 씨
하식이야 하연이가 마중 나갔으니 곧 들어슬테지만, 관청 손님들이 걱정이군그래. 말썽이나 없을는지 온. 정신 채리구 있다가 손님들 오시걸랑 지체 말고 알려요. 술상 준빈 다 됐으니. (오른쪽으로 퇴장. 송, 자기 입은 의복을 둘러보고 하품. 이중건, 김 주사, 변 주사, 홍 주사와 함께 후원해서 나온다. 다들 만취했다.)
- 송달지와 우씨의 대화(송달지에 대한 우씨의 채근 )
이중건
자, 우리들 이리 올라와 마른 안주로 다시 한잔 허지.
김 주사
아, 이젠 전 만취올시다.
변 주사
그만두시죠. 우리두 가 봐야겠수.
이중건
어...... 초상난 집에 왔다 그렇게 승겁게 가는 법이 어디 있어. 여봐라, 게 누구 없느냐!
홍 주사
그 애련하고 품이 있게 경을 읽는 중이 아마 저 도렴골서 온 중이지요?
김 주사
그야, 본래 풍성풍성한 댁이니 어디 하난 소홀한 게 있을려구. 아마 저 맹인이 도림골서 있읍죠?
이중건
글쎄 소리깨나 하는군…… 여, 아범. (아범, 주안상을 들고 나온다.)
용석 아범
불러 계십쇼?
이중건
거 어디 가져 가는 거야?
용석 아범
아까부텀 바깥사랑 손님이 찾으십니다.
이중건
여기도 정갈히 한 상 봐 오게.
홍 주사
아아, 온 그만 두십쇼, 오늘만 날입니까? 인젠 매일같이 와 뵙겠습니다.
- 이중건의 등장
용석아범
영감마님, 도련님이 오늘 돌아오신답니다그려. 저, 우리 용석이놈만 죽었읍죠.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왼쪽으로 퇴장)
이중건
그야, 팔자 소관인 걸, 너무 상심할 게 아냐.
- 하식이 돌아올 것임을 알림
김 주사
저번 백참판댁 상가에두 저 중이 왔었어…….
변 주사
백참판 대감이니 이대감이니 아까운 분들이지. 세상에서는 인색하다거니 모리배라거니 별별 말두 많었구, 실없는 사람의 입술에두 오르내렸지만 진실로 국보적 인물이었어. 하여튼 무슨 일을 했던 간에 이만 재산을 벌어 놓았으니 훌륭하지 뭡니까. 모리배라면 어때? 사기꾼이라면 어때? 공범이면 어떻구 아님 또 어떻단 말요? 우선 벌고 보는 거지.
홍 주사
그야, 자결허시는 것만 봐두 범상한 어른이 아니지. 누가 이 좋은 세상을 두고 한 번 가면 그만인 걸 성큼 헌단 말요. 춘추가 몇이더라…… 송선생?
송달지
쉰……?
홍 주사
갑인, 을묘, 정유니까 쉰넷이겠군.
송달지
쉰셋……
변 주사
일생을 두구 모은 재산을 덤석 이 사위 양반에게 물리구 가신 건 어떻구.
예삿 사람이야 아들이 없으시면 딸에게 물릴 것이구, 마누라에게 줄 게 아니요? 그걸 왼통 사위 양반에게 주셨읍니다그려. 그것두 억만 환 하나 둘은 내리지 않으리다.
김 주사
온, 정신 없는 소릴……. 가옥만 해두 둘이 되고 남지. 이 집 한 채만두 집 지으실 때 구경했지만, 건평이 삼백팔십 평이……넘죠?
송달지
글쎄올시다. 아직 그런 데는…….
이중건
(혼잣말로) 그런 걸 이 눔이 단돈 삼백만 환.
변 주사
암, 그러실테죠. 오죽이나 상심하셔서 그럴 여가가 있겠습니까? 쯧쯧…….
- 이중생을 추켜 세우는 세 주사
홍 주사
그래, 자결하시기까지는 별루 태도엔 이상한 점이 없으셨죠?
김 주사
그야, 여부가 있소. 태연자약허셨겠지.
이중건
(책상 서랍에서 면도칼을 꺼내며) 이 면도칼로 경동맥을 싹뚝 끊어 버렸어.
변 주사
에그, 쯧쯧…….
이중건
그러니 팔팔 솟는 피가 뿜뿌 수도 같을 수밖에……. 여기두 피, 저기두 피, 원통 방 안이 피바다가 됐지. 앉은 데가 다 핏자리야.
홍 주사
이 자리가요……? 으째 으시시허다. 술이 깨는 모양이군, 어거, 으째 듣고 보니 좌불안석인걸…….
김 주사
홍 주사, 인젠 일어서 보지 않으려우? 난 집에 조카놈이 온다구 한걸.
홍 주사
어, 나두 참 깜박 잊었군. 오늘 반상회가 있는 걸.
이중건
왜, 한잔들 더 안하시려우?
김, 홍, 변 주사
네, 다, 다…… 다시 뵙겠슴니다. (왼쪽으로 퇴장)
이중건
어두운데 조심허우.
- 이중생의 자살에 대한 이야기와 주사들의 퇴장
그때 다다미방을 거쳐 나오던 맹인 2인, 자기에게 하는 말인 줄 알고,
맹인 1
우리는 어둡고 밝은 걸 별루 가리질 않습니다.
이중건
그야 그럴 테지. 어서들 들어가서 좀 주무시지. 오늘두 밤새 수고허셔야겠으니...
맹인 2
소경 잠자기루, 그것두 별로 가리질 않습니다. (하고 안으로 들어간다.)
- 맹인들의 해학
이중생, 병풍 위로 목만 내놓고 끼웃끼웃 살피더니 슬그머니 미끄러져 나온다. 수의에 행건 친 차림이 과연 초현실적이다.
이중건
너, 여기가 어디라구 어슬렁어슬렁 기어 나와!
송달지
손님들이 많으신데! 어쩌실려구…….
이중생
형님, 웬 손님들이 사랑에두 방 방이구, 정자에두 있구, 이러시는 거요? 무슨 잔치집인 줄 아십니까? 누구 쌀을 축내시느라구.
이중건
삼춘댁부터 심이춘, 사둔의 팔춘, 집안이란 집안은 콩나물대가리꺼정 다 모였구나.
이중생
관청에선 아무도 안 왔지?
송달지
아직 아무도…….
이중생
예끼, 고약한 놈들! 올 놈들은아니 오고.…… 엥이, 제 아무리 인정이 백짓장 같기루 내가 죽었다는 통지를 받구도 한 놈 얼씬 않는다? 어디 두고 봐라. 엊그제꺼정두 내 앞에서 알쫑거리구 꼬리를 쳤던 놈들이 오늘에 와서는 딱 돌아선다.? 이젠 알아볼 때가 있으렷다. 내가 다시 살아나구 볼 지경이면……. 에익, 괘씸한지고. 하식이두 아직 안 들어오구?
송달지
네, 하연이가 마중 나갔읍니다만.
이중생
하식이에게두 전후사를 잘 타일러 두게. 탈짐이 나지 않게.
- 수의를 거친 이중생의 등장
그 때 전화벨 소리. 이중생, 깜짝 놀라 옆방으로 굴러간다. 송달지 전화를 받는다.
송달지
네 네, 잠깐 기다리세요. 아버지 전화…….
이중생
엑끼……. 죽은 내가 전화를 받는단 말이냐?
송달지
아아 참, (전화를 계속 받으며) 네, 네, 알겠습니다.
이중생
(옆방에서) 누구한테서 온 거야?
송달지
임 선생님허구 최 변호사허구 곧 오신다구요. 국회 특별 조사 위원회의 김 의원 한 분이 같이 오신답니다.
- 김 의원이 온다는 전화 통지
이중생
(다시 나온다) 휘유……. 그 좁은델 드러누워 손가락 발가락 달싹 못허구 있으려니 신경이 칼날같이 되는군그래. 그래, 김 위원 한 사람밖에 안온댔어?
송달지
딴 이얘긴 없는데요.
이중건
(중생에게) 너 어서 들어가거라. 수의 입은 놈과 상복한 놈을 마주 놓고 보기가 으째 으시시허구나.
이중생
어 참, 내 잊었군. 형님, 금방 여기 앉았던 것들이 홍 주사, 변 주사, 김 주사 아니요?
이중건
글쎄, 초면 인사에 기억이 잘 안 된다.
이중생
얼굴 긴 놈이 홍가놈.
이중건
그래서?
이중생
코 아래 기미 있는 놈이 김가놈.
이중건
그래서?
이중생
대머리가 변가놈.
이중건
그래서?
이중생
다시 오거들랑 아예 술상 내지 마슈. 나 죽기를 기다리던 놈들이야. 홍가놈은 전쟁 전에 오푼변으로 삼만 원 가져가구는 오늘까지 이자 한 푼 안 들여 놨습니다. (달지에게) 자네, 잊지 말구 기억해 둬. 변가놈은 금전판인 종로에 있는 내 가게를 쓰구 집세라군 다달이 오천 환 들여 놓군 시치미를 떼는 놈이구, 변가놈은 어물판 구전 오만 환을 논아먹기루 약속허군 두 달째 얼씬도 않던 놈이라우. 유서에 써넣을 걸 깜박 잊었군. (달지에게) 기억해 두었다가 이후에라도 다시 오거들랑 채근해 받어. 알았어?
송달지
제가……그런걸…….
이중생
그러구 또 한 번 얘기하네만, 유산이니 재산이니 그런 얘길랑 딱 잡아떼구 말 말어. 내가 옆방에서 듣고 있지만서두, 도시 모른 척하구 잠자쿠 있으란 말야. 자넨 그런 것 아랑곳할 리두 없지만 대구허단 큰일 저지를 테니, 알았어?
- 송달지에 대한 이중생의 당부와 협박
이중건
위잇, 누가 나온다.
이중생
익크! (황급히 옆방으로 가다가 책상에 걸려 넘어진다. 옆방으로 가서 병풍 뒤에 숨은다. 맹인 안방에서 나오며 중얼중얼 경문을 외치며 다다미방을 거쳐 사라진다.)
용석 아범
(왼쪽에서 황급히 나오며)관가 손님이 오십니다.
이중건
응, 벌써 와? 아범은 어서 들어가 주안상을 탐탁히 봐 내 오게. 술은 저 뭐라구 했지? 양인들이 먹는 거 그게 상등이라니 그걸 내 오구, 안주도 성벽해서 입맛에 당기는 거루 챙기라구 쥔 마나님 보고 여쭤.
용석 아범
네, 네, 걱정 마세요. 아침부터 채려 놓구 기다리는 걸요. (안으로 들어가자 최 변호사, 임표운, 김 의원 등장. 이중건, 버선발로 마중 나간다)
이중건
공사간 분망허신데 이처럼 오시니 황송합니다.
최 변호사
어서 올라 가십시다. 돌아가신 분두 퍽 영광으로 생각허실 겝니다. 아참, 소개하죠. 이분이 바루 고인의 친형이신 이중건씨, 이 분은 국회 특별 조사 위원회의 김 선생님. 이 분이 상주되시는 송달지씨.
이중건
잘 보시구 잘 처분해 주십시오. 온, 이 일 때문에 늙은 게 잠도 잘 못 잔답니다. (인사를 바꾼다)
김 의원
망극합니다.
송달지
뭐…… 괜찮습니다.
김 의원
영구 모신 데가……?
송달지
저방이올시다.
이중건
그리 급할 게 있습니까? 우리 술이나 한잔 나누시구…… 게 누구 없느냐?
김 의원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소향을 했으면 좋겠는데요.
송달지
네, 이리 들어오시죠.
김 의원
그럼 잠깐……. (2인 옆방으로 들어간다. 우씨 뛰쳐 나오며)
- 김 의원의 방문
우 씨
임 선생이 왔다지, 응. 관가에서 나왔다지? 어서 우리들 얘기를 좀 그럴 듯하게 해요. 과히 억울치나 않게 돼야 할 게 아니요? 영감두 돌아가신 거루 됐구.
최 변호사
쉿.
우 씨
에그 참, 정신두 없어라. 영감일랑 완전히 돌아가셨으니 남은 식구들일랑 어떻게 굶주리지나 않게 돼야 할 게 아니요?
임표운
마님께선 들어가 계십쇼. 최 선생님이 요량해서 잘 처리허실 테이니.
최 변호사
쓸데없는 걱정일랑 덮어 놓십쇼, 헛허. 모두가 수완 나름이조. 천재 일우의 기회를 만만히 놓치겠어요, 헛헛.
우 씨
그럼 꼭 믿습니다. 술일랑 얼마든지 있으니 애들에게 일르슈. 삐루두 있구 영감 자시는 양국 술두 아직 몇 상자 남았다우.
임표운
어서 들어가십쇼, 나오십니다.
우 씨
그럼 최 선생님, 꼭 믿구 있습니다. (우씨 들어가자 송과 김, 다시 나온다.)
- 우씨의 등장과 불안한 마음
최 변호사
이리 앉으시죠. 주안상이 나왔으니 목이나 축이시구.
김 의원
아니올시다. 곧, 실례허겠습니다.
최 변호사
상가에 오셨다 그냥 가시는 법이 어딨습니까?
김 의원
그럼 잔칫집처럼 뛰다니구 놀아야 합니까?
최 변호사
헛, 헛, 그런 게 아니와요. 저, 어서 한잔 드십쇼.
김 의원
(마지 못해 술잔을 든다) 고인의 아들두 광복 전에 학도 지원병 간 이가 있었죠? 아직 소식이 없습니까?
최 변호사
그러니 말씁입니다. 영감두 삼대 독자루 눈에 넣어두 아프지 않을 귀여운 자식인데 십 년 동안이나 화태에서 억류되었다가 오늘이야 돌아온다는 소식이 어제서 왔습죠. 며칠만 더 참으셨던들 이런 변이 없었을지도 모를게 아닙니까?
이중건
죽는 순간까지 '우리 하식이, 우리 하식이' 허문설랑 차마 눈을 못 감더군요.
김 의원
그럼 영감께서는 운명하시는 걸 보셨구먼요?
이중건
그럼요, 내가 눈을 감겼죠. 경동맥으로 면도칼을 싹둑 잘러 버렸는걸.
최 변호사
헛, 헛…… 취하셨군. 면도칼로 경동맥을 끊었지.
이중건
어, 참…….
최 변호사
그래서 여기가 왼통 피바다가 됐더랍니다. 유설랑 고시란히 책탁 위에 놓여 있었죠. 송 선생…… 유서는 벌써 전에 꾸며 놓으셨죠, 네?
- 이중건의 말 실수
김 의원
유언엔 전재산을 송 선생께 양도하기루 됐다죠?
최 변호사
글쎄, 이 점이 또 고인이 대범하시구 촐중허신 점이죠. 보통 인간 같구 볼 지경이면 제아무리 열 사위 미운 데가 없다구 한들 아들 딸을 한 구들두구 어떻다구 사위에게 전재산을 양도헌답니까? 들어 보십소. 돌아가신 어른의 의견이…… 돈이란 건, 그걸 잘 이용할 줄 알구 나라에 유익되게 쓸 줄 아는 사람이 가져야 하는 법이다. 저 혼자 잘 먹구 흥청거리구 놀라구 돈이 필요한 게 아니라 국가적인 사업을 하자구 귀하기두 하구 필요두 한 것이란 말이죠. 그러니간 돈이란 벌기보담 쓰기가 힘든 물건이라……. 하식군으로 볼 지경이면 살아 돌아온다 해도 아직 입에 젖비린내 나는 삼십살 풋내기야 나라를 위해 적당히 쓸 줄 알 리 없을 터이구, 백씨 영감이야 실례의 말씀이지만 시골 양반이니 세상 물계를 아실 리 없으니 이루 두말할 필요조차 없구 보니, 예라 모르겠다, 그래두 믿을 만한 위인은 문중을 둘러봐두 여기 계신 송 선생밖엔 없으려니…… 그래서 유서두 그렇게 쓰셨죠. 그렇습죠? 고인의 유지가…… 송 선생……?
송달지
네…… 글쎄, 뭐 그렇겠죠.
- 이중생의 거짓 유서 내용(이중생의 자살과 재산 상속에 대한 김 의원의 심문)
이중생, 병풍 위로 머리를 내밀고 극이 진행하는 동안에 후수막까지 나와 귀를 기울인다.
최 변호사
그나 그뿐이겠습니까? 유언에 가로되 "황천은 굽어 살피소서"이랬겄다요. "소생은 죽음으로써 전생의 모든 과오를 청산하나이다. "이랬겄다요. "개과 천선은 고 성현도 용납하시는 바이오니 황천은 이중생을 긍휼히 여기사 용서, 용서하옵소서.……." 이 정신이야말루 과연 결백하다구 하겠습니까요, 숭고하다구 허겠습니까요?
- 이중생의 관심과 유서 내용
<하략>
작자 : 오영진(吳泳鎭)
형식 : 희곡. 희비극. 풍자극
배경 : 광복 직후의 서울
성격 : 세태 풍자적. 시사적. 해학적, 비판적
구성 : 5단 구성(작품 전체는 3막 4장)
표현 : 인물을 희화적으로 풍자. 전통적 해학극의 표현 방식을 부분적으로 차용
주제 :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인물에 대한 풍자와 비판, 바람직한 새 시대에 대한 염원
구성
작품 전체 |
3막 4장 |
||
1막 |
발단 |
잔치 준비를 하는 이중생 집안 |
|
2막 |
상승 |
이중생의 체포·수감과 가석방 후 가사(假死) 연극 실행 |
|
3막 (수록된 지문) |
위기 |
관청에서 조사 나올 것임을 알림 |
발단 |
수의 걸친 이중생의 등장과 김 의원의 방문 예고 |
상승 |
||
재산 보전을 위한 김 의원과의 타협 실패 |
위기 |
||
하강 |
가사 연극의 실패와 최 변호사의 결별 |
하강 |
|
파국 |
이중생의 계략 실패와 자살 |
파국 |
특징 : 위장과 위장의 실패라는 서사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전형적인 희극 형태와는 달리 희극과 비극의 요소가 공존한다. 극적 긴박감과 희극적 분위기를 공존시킴으로써 긴장과 이완의 효과를 높이고 있다. 이 작품은 일제 시대에는 악질적인 친일을 하고, 또 해방 직후에는 혼란기를 틈타서 거부가 된 친일 사업가 이중생이 떳떳하게 행세하는 부조리한 사회상을 가차없이 풍자 비판하고 있는 오영진의 희곡이다. 3막 4장으로 된 이 작품은 영남지방에 퍼져 있는 인물 전설인 방학중의 이야기에서 소재를 가져온 것으로 보이는 데,1949년 5월 '극예술 협의회'에서 초연되었으나 별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957영 극단'신협'이 '인생차압'으로 개명하여 공연하면서 대단한 관심을 끌었다. 친일파 경제 사범인 주인공 이중생의 몰락과 사망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는 이 작품은 당시의 낡고 부패한 기성 질서의 지배로부터 정의롭고 건강한 질서가 지배하는 새 시대로의 전환에 대한 희망을 담고 있는 사회극이다.
인물
이중생 : 53세, 사업가. 자신의 치부를 위해 반민족 행위도 서슴지 않는 친일 잔재 세력, 기회주의자, 극단적 이기주의자, 배금주의자, 전형적인 탐욕형 인물
우 씨 : 54세, 그의 처. 이중생의 처-남편을 최고로 알고 존경하지만 하인들에게서조차 존경을 못받는 인물
하 주 : 35세, 맏딸. 교양이 없고 탐욕스러운 인물
송달지 : 40세, 사위. 고지식하고 착하지만 현실 감각이 없고 행동이 꿈뜬 지식인, 뒷부분에서 성격의 변화를 보이는 인물
하 연 : 30세, 막내딸. 아버지 일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나름대로 취직을 하는 인물
하 식 : 24세, 아들. 혈육인 아버지를 비판하는 미래지향적 인물. 신시대적 인물, 반공주의자
이중건 : 63세, 그의 형. 상황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고 부적절한 행동으로 웃음을 유발하는(희극적) 인물
최영후 : 45세, 그의 고문변호사.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지식을 팔아 먹는 자, 영악한 기회주의자
김의원 : 40세, 국회특별조사위원. 매우 합리적이며 객관성을 지닌 인물임과 동시에 비타협적이고 의지적인 성격의 소유자이다. 사건 전환과 클라이막스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
임표운 : 32세, 그의 비서
용석 아범 : 66세, 머슴. 자신의 의견을 한 번도 피력하지 못하는 소극적인 인물
박 씨 : 47세, 이웃여인
어 멈 : 40세
옥 순 : 14세, 하녀
복 순 : 15세, 하녀
시경경제계원
봉사1·2, 김주사, 변주사, 홍주사
(앞 부분의 줄거리)
2. 3막 4장으로 된 이 희곡은 동일한 장소를 무대로 하여 전개된다. 무대는 이중생씨의 안사랑채로 온돌방에 연달아 오른쪽에 일본식 다다미방이 조금 보이며 왼쪽은 바깥 사랑이며, 그 뒤로 후원(後園)으로 통하는 울타리 길이 조금 보인다. 8·15 이전에 흔히 볼 수 있었던 주택 구조로 이른바 일본식과 한국식의 절충식이다. 이 방의 배경으로 석등(石燈)과 정자까지 바라보이는 정원, 호화로운 집으로 방안에 놓인 화초분 등 모두가 값나가는 것이지만 격조는 없어 보이는 집이다. 이러한 무대 설정은 사건이 벌어지는 시기가 광복 직후의 사회상과 관련을 맺고 있음을 암시해 준다.
제 1 막
이중생의 집에 손님이 오게 되어 있어 분주하게 준비를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러한 준비 과정에서 이중생의 가족과 그 주변의 인물들에 관련된 사정들이 드러난다. 이중생은 일제 시대에는 친일을 하여 돈을 벌었으며 해방 후에는 목재 회사와 산림 산업을 맞아 거드름을 부리며 살지만 본디 천박하고 보잘것없는 인품의 인물이라는 것, 이중생의 아내 우씨는 남편을 대단한 존재로 알고 부자인 것만 뻐기는 여인으로 집안 하인들에게조차 존경을 받지 못하는 인물이라는 것, 현재 이 집안에는 첫째 딸 하주와 사위인 송달지가 함께 사는데, 본업이 의사인 송달지는 생활력도 없고 착하기만 하여 교양이 없어 보이는 아내 하주에게 핀잔을 받아 가면 처가에 얹혀 지낸다는것, 이중생의 아들 하식과 머슴의 아들인 용석이 이중생의 친일 행각 때문에 지원병으로 일본 군대에 들어가 그 때가지 소식을 모른다는 것, 둘째 딸 하연은 이중생이 사업상 관계를 맺고 있는 란돌프라는 외국인과 함께 인천 별장에서 지내고 있다는 것 등이 드러난다. 손님 맞이 준비에 한창 분주한 집에 들어온 이중생은 비서 임표운과 함께 장차 일이 잘 풀리면 산림 회사를 불하(국가나 공공단체의 재산을 민간에 게 팔아 넘기는 일)받아 돈을 많이 버는 것은 물론이고 장차 장관까지도 할 수 있으리라고 장담을 한다. 그러나 일은 불길하게 전개된다. 시경의 형사가 이중생을 체포하러 들이닥치고, 인천에 가 있던 둘째 딸 하연은 인천 별장이 아버지 것이 아니라 관리인을 속여 뺏은 것이 탄로나서 쫓겨났으며, 란돌프란 자는 미국 원조 기관 직원을 사칭한 가짜였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제 2 막 제 1 장은 한 달쯤 지난 뒤다. 이중생은 배임(공무원이나 회사원 등이 자기 이익을 위해 지위를 악용하여 소속 관청이나 회사에 재산상의 손해를 주는 일) 횡령(국가나 타인의 재물을 불법적으로 차지하여 가지는 것), 공문서 위조, 탈세 등의 혐으로 체포 수감되었고, 그 형인 이중건은 땅 팔아 산 집이 이중생의 이름으로 되어 있어(형제지간에도 의리와 신뢰가 없고 이중생의 탐욕적 성격을 단적으로 드러내 준다.) 이번 사건으로 집을 빼앗겼다며 집 찾아 내라고 이중생의 집에 드러누웠다. 집안 식구들은 걱정을 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고, 둘째 딸 하연은 아버지 일에는 도무지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서 언니 하주와 매사에 충돌하고 자기 나름으로 회사에 취직을 한다. 이중생은 최 변호사의 도움으로 가석방되어 나오고, 이중생과 최 변호사는 이중생이 유서를 남기고 자살하는 것처럼 꾸며{가사(假死)연극} 재산을 보호하려는 모의를 한다.
제 2 막 제 2 장
그 다음날 저녁이다. 이중생이 재산 관리인으로 지정하고자 하는 사위 송달지는 천성이 착하기 때문에 고민에 빠진다. 죽지 않은 이중생이 죽은 것처럼 하여 송달지 행세를 하게 되면 자신의 존재는 없는 거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송달지가 고민하는 이유) 송달지는 망설이지만 이중생은 전재산을 사위 송달지에게, 그리고 형 이중건과 최 변호사에게 상당량의 돈을 주도록 하는 유서를 써 놓고 면도칼로 동맥을 끊어 죽은 것으로 하기로 작정한다. 송달지가 응하지 않자 (이중생의 거짓 사망 진단서 작성을 거부하자) 이중생은 큰딸 하주에게 병원의 도장을 가져 오게 하여 사망 진단서까지 직접 작성하고 5일장으로 부고 인쇄하여 치상(治喪) 준비를 시킨다.
{여기서 이중생의 계략은 천성이 착하기만 한 사위 송달지는 세상 돌아가는 물정을 모르는 인물로 이중생은 송달지에게 재산을 상속시키고 나서, 법적인 문제가 해결된 후에는 송달지로 행세하며 재산을 자신이 그대로 관리하려는 속셈이다.}
- 가사(假死) 연극을 실행함
제 3 막
전막(前幕)에서 3, 4일 후 저녁. 같은 장소. 다다미방에는 거꾸로 둘러친 병풍 한끝이 보인다.(경황이 없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식견없는 천박한 집안임을 알려 준다.) 향연(香煙)이 피어 오르고 북소리와 함께 맹인들의 독경 소리가 높으락 낮으락 들려 온다. 경은 우리들이 일상 레코드로 들어 오던 저 경쾌하고도 유우머러스한 축원경(祝願經)이다.(초상집같지 않은 분위기로, '거짓 죽음' 자체에 대한 비판적 연출이라고도 볼 수 있다.) 바깥 사랑과 후원(後園) 정자에서 이따금 들려오는 웃음 소리가 도무지 초상집답지 않다. 막이 열리면 굴건 제복(상주가 두건 위에 덧쓰는 전과 제향 때 입는 의복)을 한 상주 송달지가 혼자 온돌방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다.{가사(假死)연극에 별다른 관심이 없다.} 동리 부인 박씨, 우씨와 함께 안에서 나온다. 박씨는 무엇인지 가득 넣은 이남박(쌀 등을 일 때 쓰는 함박)을 들었다.
- 무대 해설 및 무대 지시문으로 거짓 초상집의 희화화된 분위기
살아있는 이중생각하(李重生閣下 )는 오영진 ( 吳泳鎭 )이 지은 쓴 희곡. 1949년 5월 극단 신협 ( 新協 )에 의하여 공연되었다. 3막 4장으로 구성되었으며, 이중생이라는 친일파(親日派) 사업가의 행적을 그린 사회극이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악질적으로 친일을 해오다 광복 직후의 혼란을 틈타 거부가 된 전형적인 친일사업가이다. 그러다가 사기 · 배임 · 횡령 · 공문서위조 및 탈세혐의로 입건이 되자, 재산몰수를 면하기 위하여 그의 고문변호사가 고안해낸 방법인 가사(假死)의 계략으로 일단 위기를 넘긴다.
그러나 임시방편으로 사위에게 넘겨놓은 재산이 몰수 대신에 사회사업용으로 기부되어버려, 그에게는 몰수나 다름없는 결과가 되어버렸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진퇴양난에 빠진 이중생은 결국 자살로써 생을 끝내고 만다.
1949년 당시의 친일파 경제사범을 소재로 하였다는 의미에서 시사성이 짙은 사회풍자극으로 성공한 작품이며, 작가 오영진이 평생토록 지니고 있었던 반일(反日)과 인간의 허욕에 대한 통렬한 고발정신이 담겨 있다.
거기에다 일제에 잡혀갔다 돌아온 아들 하식(夏植)을 통한 공산주의 침략에 대한 경고도 깔려 있어, 반공 · 반일 정신 및 반민족적 행위에 대한 작가의 분노가 노출되기 시작한 작품이다.
그리고 뛰어난 희극작가로서의 오영진이 전작(前作) 〈 맹진사댁경사 孟進士宅慶事 〉 에서는 민담 〈 뱀서방 〉 에서 그 연극적 모티프를 얻어왔듯이, 여기서는 죽음을 가장하는 모티프를 영남지방의 〈 방학중 〉 민담에서 얻어왔다는 지적도 있다.
원래 이 작품은 '맹 진사 댁 경사'로 잘 알려져 있는 작가의 희극적 재능이 뛰어나게 발휘된 작품이다. 3막 4장으로 된 이 작품은 1949년 5월, '극예술 협의회'에서 초연되었으나 별 주목을 끌지 못했고, 1957년 극단 '신협'이 '인생차압'으로 개명하여 공연하면서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
이 작품은 광복과 더불어 마땅히 청산되어야 할 친일 세력이. 광복 후에도 새롭게 밀려드는 외세에 아첨해서, 권력과 부를 누리며 여전히 건재하는 병든 사회상을 가차없이 풍자, 비판하고 있다. 이중생의 몰락과 사망은 낡고 부패한 기성 질서의 지배로부터 정의롭고 건강한 질서가 지배하는 새 시대로의 전환에 대한 희망을 담고 있다. ≪ 참고문헌 ≫ 吳泳鎭 희곡집(同和出版公社, 1976), 韓國現代 희곡史(柳敏榮, 弘盛社, 1982).
등장 인물의 성격
이 작품에서는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부정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제시되어 있다. 그것은 이 작품이 지니고 있는 풍자, 비판적 성격과도 밀접하게 연관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이중생은 친일 행각을 통해서 부를 축적한 사람으로서 광복이 된 현재에도 과거를 반성하거나 위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사업을 획책하는 등 시류에 적극적으로 영합하고 시류에 이용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재물과 욕망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겨, 그것을 획득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일도 서슴지 않는 탐욕스러운 인간형이다. 따라서, 천박한 인품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우둔하고 순박하기 때문에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인물이다. 특히 끝 부부에서 재산이 무료 병원 건립에 쓰이게 되자 수의를 입은 채 뛰어 나와 노발대발하는 장면은 희극적 효과의 압권이다.
이중생의 아내 우씨도 이런 남편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속물 근성의 소유자이며, 두 딸도 아버지의 성품을 그대로 물려받아, 큰딸은 자신의 남편을 단지 경제적 능력만을 기준으로 판단하여 천대하고 있으며, 둘째딸은 사업을 위해 불륜도 서슴지 않는다. 그 외에 위장 자살 사건을 꾸미는 변호사, 운전 기사들도 모두 한통속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그래도 긍정적 인물로 등장하는 것은, 비록 경제적으로는 무능력하지만 성실하고 진실된 송달지, 이중생의 이중적인 행위와 부정직한 재물을 징치(懲治)하기 위해 등장하는 국회 특별 조사 위원, 새로운 시대 의식을 지니고 등장하는 하식, 순박한 용석 아범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인물 설정을 이 작품의 주제와 관련시켜 해석하면, 결국 이 작품은 부정적인 여러 인간 군상을 제시함으로써 당시 시대 상황의 어둡고 부조리한 측면에 대해 폭로하고 풍자하는 효과를 높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의 제목에 대하여
이 작품의 제목은 반어적이며 동시에 아주 강한 풍자성을 띠고 있다. 엄연히 살아 있는 사람을 '살아 있는'이라고 강조하는 것은 조롱의 효과를 노린 것이다. '살아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는 것이 살아 있는 것 자체가 특별하거나 이상한 현상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작품에서 이중생은 추악한 계략을 위해 죽은 체하지만 엄연히 살아 있다. 그래서 '살아 있는' 이중생 각하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비록 살아 있긴 하지만 모든 것, 심지어 자신의 존재마저 상실하고 자식에게까지 외면당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살아 있는' 것은 진정 살아 있는 것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살아 있는'이라는 표현이 반어적이요 풍자적인 의미를 띠게 되는 것이다. 또한 '각하'라는 풍자적인 의미를 띠게 되는 것이다. 또한 '각하'라는 표현도 야유와 조롱의 의미로 쓰이고 있는 단어이다. 이 작품 전체의 내용으로 보아 이중생은 부정적인 인물로 등장한다. 따라서, 이런 인물에게 '각하'라는 호칭을 쓰는 것은 조롱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무대 설정의 상징성
이 작품의 무대 장치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두 가지이다. 일본식과 한국식의 절충식으로 지어진 가옥 구조와 호화롭긴 하지만 격조가 없는 집의 분위기가 그것이다. 물론 이러한 무대 설정은 사건이 진행되는 시기가 광복 직후라는 것을 암시하는 배경적 역할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의 시사성, 세태 풍자적 성격과도 밀접한 관련을 지닌다. 즉 해방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친일파가 온갖 술수를 동원하여 아직도 득세하고 있는 시대 상황을 암시하며, 그러한 상황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 태도가 드러나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이 지닌 시사성
이 작품은 작자가 1949년에 쓴 것으로, 당시의 시대상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다. 우선 1949년 당시의 친일파 경제 사범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또한 일본 군대에 나갔다 돌아온 아들 하식을 공산주의의 침략에 대한 작가의 의식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이 작품의 작가 오영진은 시대 현실이나 세태에 대한 풍자와 비판을 문학 작품 속에 곧잘 형상화하는 작가로서, 이 작품에는 반일 감정, 반공 의식이 잘 드러나 있으며, 특히 이중생으로 대표되는 부정직하고 바람직하지 못한 인간 군상에 대한 통렬한 고발 의식도 함께 표출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시사성이 강한 사회 풍자극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풍자적 해학성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풍자적 성격을 띠고 있으면서도 해학적 표현을 통해 그 풍자의 효과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우선 제목에서 '각하'라는 조롱 섞인 용어를 사용한다든지, '이중생'이라는 이름을 통해 '이중적인 생활'을 연상하도록 설정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 일종의 희화화(戱畵化)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상가(喪家)의 상황을 묘사해 놓은 제 3막의 해설 부분, '소경이 등장하는 부분', 이중건이 국회 특별 조사 위원 앞에서 실수를 한다든지, 이중생이 죽은 것으로 설정되는 상황 등이 모두 이러한 해학의 효과를 높이는 요소들이다.
이중생의 자살이 지니는 의미
살아 있는 이중생 각하의 희극성
송달지의 성격 변화
광복 후의 시대상이 반영된 '살아 있는 이중생 각하'
오영진 희극의 비극적 결말 양상 고찰
오영진 희곡의 풍자성
반민족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
반민족 행위 처벌법(反民族行爲處罰法)
1948년에 반민족 행위자들을 소급 입법에 의하여 처벌할 수 있도록 한 특별법. 일제 강점기에 반민족적인 행위를 한 사람을 처벌하기 위하여 만들었으나,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로 실효를 거두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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