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사회적 약속으로서의 언어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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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적 약속으로서의 언어

 

  국어의 다양한 규범

  언어 기호는 사회적인 약속, 다시 말해 계약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다. 의사소통이 원만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그 언어 사회가 약속을 통일해야 하고, 언중(言衆)은 이 약속을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에는 언어 기호는 의사소통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게 된다.

 

  안전 운행을 위해 도로 교통법이 있듯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언어에는 규범이 있다. 국어에도 이러한 여러 가지 규범이 있다. 이러한 규범들은 관습적(慣習的)인 규범과 성문화(成文化)한 규범으로 나눌 수 있다.

 

  관습적인 규범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법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사용되어 오는 과정에서 하나의 규범으로 정착된 것이다. 따라서, 이는 연역적인 법이 아니라, 언어 현실에서 귀납된 법이다. 이 귀납된 법은 사람들이 공인함으로써 하나의 관습이 되어 사회적 구속력을 지니게 된다.

 

  관습적인 규범은 크게 문법적 규범과 사회 언어학적 규범으로 나뉜다. 문법적 규범이 언어 기호의 내적인 규범이라면, 사회 언어학적 규범은 인간의 다양한 사회적 상호 작용 속에서 나타나는 언어 사용의 변이와 관련된 규범이다.

 

  그러면 관습적인 규범인 문법적 규범과 사회 언어학적 규범을 살펴보자.

  문법적 규범에는 자음 동화나 모음 동화 같은 음운 규칙, 어순(語順)이나 성분(成分)의 호응(呼應), 용언의 활용과 같은 통사 규칙, 그리고 의미의 중복, 선택 제약 등과 관련된 의미 관계 규칙 등이 있다.

 

㈎ 우리 애기 잘도 잔다.

㈏ 김 선생 아들은 유치원을 다닌다.

㈐ 잘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 주신 스승은 마음의 거울이시다.

㈑ 그는 일주일에 세 번 나무에게 물을 준다.

 

  위의 예문들은 ㈎는 음운 변동이, ㈏는 성분의 호응이, ㈐는 용언의 활용이, ㈑는 선택 제약 관계가 잘못된 것이다.

  사회 언어학적 규범은 언어 사용의 양상이 사회적 요인에 따라 변이하는 것과 관련된 규범이다. 언어 사용 양상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는 화자와 청자의 사회적 관계,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곳, 화자의 태도, 나이, 성별, 지역, 계층의 차이 등이 있다.

 

  다음은 군대라는 특수 사회 집단에서 두 군인이 주고받은 대화이다. 대화자들은 고등 학교 동창이며 서로 잘 아는 사이지만, 한 사람은 장교이며 한 사람은 사병이다.

 

  이들이 병영(兵營) 밖에서 만났을 때에는 서로 반말을 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렇게 동일한 화자와 청자 사이에도 그들이 처해 있는 장면에 따라 언어의 사용 양상이 달라진다. 이처럼 사회 언어학적 규범은 언어 사용의 적절성과 효과성의 면에서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한다.

 

  국어의 성문화한 규범에는 한글 맞춤법, 표준어 규정, 외래어 표기법, 로마자 표기법의 4대 규정이 있다. 󰡐한글 맞춤법󰡑은 철자법을 규정한 것으로, 우리 문자 생활의 기준이다. 󰡐표준어 규정󰡑은 표준어의 사정 기준과 표준 발음법을 제시한 것이다. 󰡐외래어 표기법󰡑은 외국어에서 들어온 말의 표기법을, 󰡐로마자 표기법󰡑은 우리말을 로마자로 표기하는 법을 규정한 것이다.

 

㈎ 난 오늘도 열씸이 숙재를 하였다. 네 시가 돼려고 할 때 숙재를 다 끈마쳐다. 숙재를 빨리 끈내서인지 마음이 갑분햇다. 인제부텀은 숙재를 빨랑 해 노아야겟다.

㈏ 貴重品은 必히 후론트에 保管하여 주십시요.

 

  ㈎는 초등 학교 저학년의 일기장에 보이는 문장이며, ㈏는 호텔 프런트에 걸린 문장이다. 이런 표기상의 규범을 어기는 잘못은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고쳐지지 않는다.

 

  언어 생활을 원만히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관습적 규범이나 성문화한 규범을 바로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문법 교과서나 어문 규정집을 통해 이들 규범들을 확실히 알아 두어야 한다. 이 때 주의할 것은 이들 규범을 지식으로 아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몸에 배게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이들 규범은 산 지식으로 언어 현장에서 활용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우리 국민 대다수는 󰡐예쁘다󰡑가 표준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방송을 비롯한 많은 언어 현장에서는 󰡐이쁘다󰡑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이는 아는 것과 실제로 활용하는 것이 서로 다른 것임을 보여 주는 예이다. 중요한 것은 언어 기호가 언어 현장에서 규범에 따라 운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언어 규범의 합리성

  만약 언어 규범이 통일되어 있지 않으면 언어 활동에 혼란이 빚어지고, 장애가 따르게 될 것이다. 이것은 남북한의 언어 이질화 문제를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북한의 경우 서술어 󰡐되다󰡑의 보어에 주로 󰡐으로󰡑가 호응한다. 󰡒공동 념원으로 되고 있습니다.󰡓, 󰡒입이 무겁다면 그건 남자의 첫째 가는 장점으로 되지요.󰡓가 그것이다. 남한의 경우 이 때 󰡐되다󰡑의 보어를 󰡐염원이󰡑, 󰡐장점이󰡑와 같이 조사 󰡐이󰡑를 써서 나타낸다. 또, 일부 형용사의 연결형에 󰡐나다󰡑가 이어지는 것은 남한의 경우에는 없다. 󰡒가슴이 짜릿해 났다.󰡓, 󰡒끈끈해 나더니 곧 따끈해진다.󰡓가 그 예이다. 이런 경우, 남한은 󰡐짜릿해졌다.󰡑와 󰡐끈끈해지더니󰡑로 쓴다.

 

  남북한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그 규범이 여러 가지로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북한의 말을 들었을 때 때로는 어색하고, 때로는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남북한의 언어 문제는 언어 규범을 통일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이렇듯 통일된 언어 규범이란 의사소통을 수월하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러한 규범은 아무래도 화자의 언어 생활을 구속하게 마련이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지역 방언이 아닌 표준어를 써야 하는 불편이 따르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제주도 방언으로 대화를 주고받는 장면인데, 텔레비전 방송이나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런 대화를 주고받는다면 아마 시청자들이나 청중들은 그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표준어를 강조하는 것은 화자의 언어 생활을 제한하는 불편이 따른다. 그러나 이것은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마땅히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통일된 규범을 준수하는 것이 꼭 불편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통일된 규범은 서로 간의 갈등이나 혼란을 극복하게 해 주는 생산적인 구실을 한다.

 

규범 준수의 태도의 중요성

  우리의 관용어에 󰡐바른 말 고운 말󰡑이란 것이 있다. 이 말은 언어 생활의 규범처럼 쓰이는 말이다. 󰡐바른 말󰡑은 규범에 맞는 말을, 󰡐고운 말󰡑은 순화된 말을 써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방송 언어나 통신 언어를 보면 비어, 속어, 은어1), 욕설, 방언 등과 같이 순화되지 않은 말들이 함부로 쓰이고 있다. 이러한 순화되지 않은 말은 특히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과 광고, 인터넷 통신 등에 주로 쓰이고 있다.

 

  ㈎ 방송 언어

        ․어, 저 새끼, 세 시 방향으로 튄다! (욕설 사용)

        ․썸머 나잇 찜입니다. (이상한 외국어 사용)

        ․당근 빳다죠. (비속어 사용)

        ․2통 3반 (23세) (은어 사용)

 

  ㈏ 통신 언어

        ․에블바디 방가 (여러분 반가워요.)

        ․넘 잼난 영화 바써여. (너무 재미난 영화 봤어요.)

        ․통장이 있군여.(통신 장애가 있군요.)

        ․20000 쓰겠슴다. (이만 쓰겠습니다.)

        ․허걱, 음냐리 완전 짱이네. (헉, 음…, 이거 진짜 최고네.)

 

  이러한 언어 현실은 언어를 바르고 효과적으로 쓰고자 하는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바른 말 고운 말󰡑을 쓰려는 태도가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말은 그 사회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이기 때문에 우리는 바른 말, 고운 말을 사용하는 태도를 갖추어야 한다.

 

  법이란 본질적으로 실용성을 지닌다. 언어의 규범도 이러한 실용적인 법에 해당한다. 따라서, 우리는 언어의 규범을 익힐 뿐 아니라, 이를 준수하려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 그래야 언어 질서가 확립되고,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며, 나아가 우리 사회가 문화적으로 성숙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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