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사이공의 백학(白鶴)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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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토 위의 새로운 풀들은 손을 흔들어 백학을 부릅니다.-사이공의 백학(白鶴) / 신영복

 

지금은 이름도 바뀌어 호치민시가 된 사이공. 오늘은 그 사이공에서 북서쪽으로 멀리 떨어진 길가의 가게에 앉아 있습니다. 가게라고는 하지만 한적한 시골길에 살림집도 딸리지 않은 작은 초가입니다. 간판도 없고 인근에 마을도 없습니다. 키를 넘는 사탕수수밭이 가게를 둘러싸고 있으며 사탕수수밭 뒤로는 눈 닿는 곳까지 푸른 볏논이 펼쳐져 있습니다. 이 한적한 시골길에 누구를 기다리는 가게인지 궁금합니다. 18세의 팡티 홍린이 엄마 대신 손님도 없는 가게를 지키고 있습니다.

 

내가 베트남에 올 때 가장 석연찮은 것이 당신도 이야기하였습니다만 베트남 사람들의 가슴에 전쟁과 함께 응어리져 있을 따이한에 대한 기억이었습니다. 그러나 베트남에 머무는 한 주일 동안 그들의 표정이나 말 속에서는 단 한 번도 그런 응어리를 찾아내지 못하였습니다.

 

다행스럽기도 하고 한편 더욱 난감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의 가슴 속이야 어차리 들여다볼 수 없지만 어쨌든 눈앞에 펼쳐져 있는 드넓은 들판에는 초록의 물결이 출렁이고 있습니다. 인류사가 치른 수많은 전쟁 중에서 가장 많은 포탄과 화학무기를 쏟아 놓았던 벌판입니다. 석기시대로 되돌려 놓았다던 이 벌판에도 어느 덧 세월은 흘러 그 초토의 기억도 사라지고 이제 새로운 풀들이 출렁이고 있습니다.

 

이윽고 그 푸른 들판 길에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들의 자전거 행렬이 미끄러지듯 나타납니다. 녹색의 들판을 배경으로 흰 아오자이를 바람에 날리며 지나가는 모습은 마치 백학이 푸른 들판에 날아드는 듯 평화롭습니다. 새로운 풀들이 들판을 덮고 그 들판에서 태어난 새로운 생명들이 백학처럼 날아가고 있습니다. 나는 이처럼 평화로운 광경을 눈앞에 두고 나의 심정을 어떻게 간추려야 할지 망연해집니다. 내게는 아직도 사이공의 흰옷을 읽고 아픔을 다스리지 못해 하던 당신의 얼굴이 남아 있고, 지금도 증오를 키우고 있는 분단의 세월을 떠날 수 없는 나로서는 백학이 날아가는 베트남의 푸른 들녘은 그 한복판에 앉아 있으면서도 잡을 수 없는 환영처럼 멀기만 합니다.

 

이상한 것은 이때부터 베트남을 떠날 때까지 줄곧 몇 소절의 멜로디를 귀울음처럼 듣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연속극 모래시계의 주제가로 당신에게도 귀에 익은 백학(Crane)의 노래입니다. 결코 음정을 높여 외치는 법 없이 낮고 느린 비소츠키의 목소리에 실려 가슴을 적셔 오던 그 슬픔의 무게로 하여 마냥 아래로 아래오 침하(沈下)하는 심정을 어쩌지 못하였습니다.

 

나는 팡티 홍린이 도움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들을 불렀습니다. 그러나 따라 놓은 콜라 한 잔을 비우지 못하는 못내 수줍고 순박한 농촌의 어린 소녀들이었습니다. 전후에 태어난 그들로서는 내가 처음 보는 외국인이라 아무 말도 건네지 못하였지만 그들의 모습으로부터 내게 건네오는 것은 어떠한 언어보다 진솔한 감명이었습니다. 평화란 무엇이며 평화는 과연 어떤 내용을 갖는 것인가, 하는 절절함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백학이 포성에 떨며 이 곳을 떠나가지 않기를 바라는 불안한 소망이었습니다.

 

내가 이 한적한 시골 가게에 오기 전에 들른 곳은 구치 터널이었습니다. 구치 터널은 호치민 루트와 사이공을 연결하는 전략 지점에 있는 지하 요새입니다. 구치 마을 사람들이 반()프랑스 항쟁의 거점으로 건설하기 시작한 이 땅굴은 전쟁을 치르는 동안 총길이 250km17,000여 명이 그 속에서 생활과 전투를 계속할 수 있는 거대한 지하 요새가 되었습니다. 병원, 학교, 공장 등을 두루 갖추고 있는 세계적 대역사(大役事)가 아닐 수 없습니다. 메콩 삼각주의 잘디잔 점토질 땅은 터널을 뚫어 흙에 바람만 쐬어도 금세 콘크리이트를 방불케 할 정도로 단단하게 굳어버리는 천혜의 토질이었습니다. 안내원을 따라 그 좁고 어두운 터널을 체험했습니다. 이 곳을 청동의 요새’, ‘강철의 땅이라고 부르는 까닭을 알 수 있었습니다. 청동과 강철이라는 수나는 지하 터널의 견고함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호미와 삼태기만으로 이 대역사를 이루어 낸 베트남인들의 의지를 일컫는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한국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강인한 세 민족(Strongest Three)의 하나로 불리는 베트남인들의 일면을 느끼게 됩니다.

 

바람에 날리는 아오자이의 가냘픈 서정도 그렇습니다만 결코 강골이라 할 수 없는 베트남인들의 몸 속 어디에 그러한 강인함이 도사리고 있는지 의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호치민시에 도착한 첫날 나는 참으로 납득할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하였습니다. 탄손냐트 공항으로부터 저녁 9시가 넘어서 도착한 호치민시 시내는 뜻밖에도 마치 아침 출근 시간으로 착각할 정도로 수많은 오토바이와 자전거의 행렬이 도로에 가득히 넘쳐 나고 있었습니다. 나는 무슨 축제일인가를 물었습니다만 이러한 광경은 호치민시의 일상적인 여름밤의 풍경이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주거가 협소하고 날씨도 더워 바깥이 한결 시원한 것이 사실이겠지만 인도나 네팔 그리고 유럽의 모든 나라 사람들이 더운 여름밤을 맞고 있는 방식과 비교해 보면 참으로 판이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길가에 앉아서 부채질로 더위를 쫓지 않고 이처럼 어딘가로 사뭇 달려가고 있는 이 역동성이 바로 베트남의 강인함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중략>

 

베트남은 푸른 들녘에 돌아온 백학과 자전거 위의 호랑이가 공존하는 나라입니다. 그들이 이제 억척 같은 과거를 씻고 다시 어디를 향하여 나아갈 지 알 수 없습니다. 1세기가 넘는 장구한 세월을 식민지 침략과 전쟁의 포연 속에서 살아온 그들이 지금부터 모색하는 길이 어떤 것일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들이 겪어온 혹독한 과거의 역사가 다시 반복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베트남인들 스스로에게는 물론이며 비슷한 과거를 가진 나라에게도 진정 새롭고 평화로운 도정을 보여주기 바랄 뿐입니다.

 

베트남에서는 귀울음처럼 비소츠키의 노래가 계속해서 귀울음으로 들려옵니다.

 

……피비린내 나는 전장에서 돌아오지 못병사들은 저마다 한 마리 백학이 되었구나.백학의 무리와 함께 날이 밝으면 나는 땅 위에 남아 있는 당신들을 모두 불러서 새들을 따라 푸른 안개 속으로 날아가리라…….”

 

신영복의 <더불어 숲2>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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