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 /전문 / 이태준
by 송화은율사냥 / 이태준
심란한 것뿐, 무슨 이렇다할 병이 있어서도 아니요 자기 체질에 저혈(猪血)이 맞으리라는 무슨 근거를 가져서도 아니었다. 손이 바쁘던 때는, 어서 이 잡무에서 헤어나 조용히 쓰고 싶은 것이나 쓰고 읽고 싶은 것이나 읽으리라 염불처럼 외워 왔으나 이제 막상 손을 더 대려야 댈 수가 없게 되고 보니 그것들이 잡무만은 아니었던 듯 와락 그리워지는 그 편집실이요 그 교실들이었다.
사람이 안정한다는 것은 손발이 편안해지는 데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한은 한동안 문을 닫고 손발에 틈을 주어 보았다. 미닫이 가까이 앉아 앙상한 앵두나뭇가지에 산새 내리는 것도 내다보았고 가랑잎 구르는 응달진 마당에 싸락눈 뿌리는 소리도 즐겨 보려 하였다. 그러나 하나도 마음에 안정을 가져오지 않을 뿐 아니라 점점 신경을 날카롭게 메마르게 해주는 것만 같았다. 이번 사냥은 이런 신경을 좀 눅여 보려는 한갓 산책에 불과한 것이었다.
한은 즐거웠다. 오래간만에 학생 때 친구 윤을 만나는 것도 반가웠다. 편지 한 장으로 구정을 생각하여 모든 것을 주선해 놓고 부르는 그의 우정이 감사하였다. 오래간만에 촌길을 걸을 것, 험준한 산마루를 달려 볼 것, 신에게서 받은 자세대로 힘차게 가지를 뻗은 정정한 나무들을 쳐다볼 수 있을 것, 나는 꿩을 떨구고, 닫는 노루와 멧도야지를 고꾸라트릴 것, 허연 눈 위에 온천처럼 용솟음쳐 흐를 피, 통나무 화톳불에 가죽째 구워 뜯을 짐승의 다리, 생각만 하여도 통쾌한 야성적인 정열이 끓어올랐다. 아무리 문화에 길들었어도 사람의 마음 한구석에는 야성에의 향수가 늘 대기하고 있는 듯하였다.
*
월정리(月井里)에서 차를 내리니 윤은 약속대로 두 포수와 함께 폼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윤은 한의 손을 잡고,
"그냥 만나선 어디 알겠나?"
하며 의심스럽게 쳐다보았다. 한 역시 한참 마주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열다섯 해란 세월이 인생에겐 이렇게 긴 걸세그려!"
대합실에 나와 포수들과 지면을 하고 담배를 한 대씩 피워 물고 찻길을 건너 서북편으로, 촌길로는 꽤 넓은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늙은 포수는 꿩철 따위는 아예 재지도 않는다고 하였고 젊은 포수만이, 우선 저녁 찬거리라도 장만해야 한다고 탄자를 재더니 길섶으로만 꼬리를 휘저으며 달아나는 개의 뒤를 따랐다. 전에는 황무지였으나 수리조합 덕에 개간되어 한 십 리 들어가 혹은 뫼초리 한 마리 일지 않는 탄탄대로였다. 여기를 걷는 동안, 한은 윤에게서 대서업자로서 본 인생관이라고 할까 세계관이라 할까 단편적이나마 솔직하긴 한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들었다. 결국, 민중이란 어리석은 것이란 것, 이 어리석은 무리들에게 도의를 베푸는 손은 너무 먼 데 있는데 그렇지 않은 손들은 그들의 주위에 너무 가까이 너무 많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 그들은 행복하기가 쉽지 못하다는 것이다. 학창을 처음 나와서는 그들을 위해 의분도 느꼈었으나 자기 하나의 의분쯤은 이른바 홍로점설(紅爐點雪)에 불과하였고, 그런 모리배들만의 촌읍 사회에 끼어 일이 년 생계를 세우는 동안 어느 틈엔지 현실에 영리해졌다는 것이요, 그 덕에 오늘에 이르런 사무실 문을 닫고 이렇게 삼사 일씩 나와 놀아도 집에선 조석 걱정은 않게끔 되었노라 실토하였다. 그리고 읍 사람들은 너무 겉약고 촌사람들은 너무 무지몽매하다는 것을 몇 번이나 한탄하였다.
차츰 엷게 눈이 깔린 산기슭이 가까워졌다. 동네를 하나 지나서부터는 논 대신 밭들이 나오며 길도 촌맛이 나기 시작했다. 꼬리가 점점 긴장해지던 도무란 놈이 그루만 남은 콩밭으로 뛰어들었다. 사람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개는 코를 땅에 묻히고 썰썰 맴을 돌면서 내음을 해나간다. 젊은 포수는 총을 바로 잡고 바짝 따라 선다. 일행은 길 위에 서서들 바라보았다. 불과 오륙십 보 안에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밭고랑에서 푸드득 하더니 수엽랑 같은 장끼 한 마리가 뜬다. 날개도 제대로 펴기 전에 총부리에서 흰 연기가 찍 뻗더니 탕 소리와 함께 꿩은 그 순간 물체가 되어 밭둑에 툭 떨어지는 것이었다. 한은 꿩을 주으러 뛰어갔으나 개가 먼저 와 물었다. 한이 달래 보았으나 개는 쏜살같이 저의 주인에게로 달아났다. 주인이 꿩을 받으나 개는 주인의 다리에 제 등허리를 부대끼며 꿍꿍대며 기고 뛰고 하였다. 주인에게 충실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제 공을 되도록 크게 알리려는 공리욕도 개의 강렬한 근성인 듯하였다.
꿩은 죽지 밑에 피가 좀 배어 나왔을 뿐, 그림같이 고요해 있었다. 푸드득푸드득 공간을 파도를 치듯 하며 세차게 날던 것, 어느 불꽃이, 어느 솟는 샘이 그처럼 싱싱한 생명이었으랴만 탕 소리 한번 순간에 이처럼 모든 게 정지해 버린다는 건, 분수없이 허무한 것이었다. 아무튼 사냥 기분은 이 장끼 한 마리에서부터 호화스러워지는 것 같았다.
장산들은 아직도 아득하더니 여기서도 시오 리나 들어가서야 이들의 근거지가 될 동네가 나타났다. 이발소가 있고 여인숙이 있고 주재소까지 있는 꽤 큰 거리였다. 뜨뜻한 갈자리 방에 간소한 여장들을 끄르고 우선 꿩을 뜯고 국수를 누르게 하였다. 한은 시장했기도 했지만 한 산기슭에서 자란 때문일까 꿩과 모밀이 그처럼 제격인 것은 처음 맛보았다.
점심을 치르고 나니 해는 어느덧 산머리에 노루 꼬리만큼밖엔 남지 않았다. 여기서도 오 리는 올라가야 해마다 해보아 몰이에 익숙한 사람들이 있는 산마을이 있고 그 마을 뒷등부터가 곧 노루며 멧도야지며 때로는 곰까지도 나오는 목이 산갈피마다 무수히 있어, 대엿새 동안은 날마다 새 골짜기를 털어 볼 수 있다는 큰 사냥터라는 것이었다.
몰이꾼을 맡기려 늙은 포수만이 이웃마을로 올라가고 한과 윤과 젊은 포수는 거리에 남았다. 꿩은 해가 질 무렵에도 내리는 것이라고 이들은 다시 사냥을 나섰다. 과연 도무는 낮에보다는 꿩을 흔하게 퉁기었다. 총은 한 마리나 혹은 두 마리인 경우에는 으레 하나씩은 떨구었다. 그러나 십여 마리씩 떼로 몰린 데서는 개와 총이 사정(射程) 안에 들어서기 전에 어느 한 놈이고 먼저 날았고, 한 놈만 날면 우르르 따라 날아 버렸다. 어둑스레해서 거리로 들어설 때는 눈발이 부실부실 날리었다. 기름진 까투리며 장끼며 다섯 마리나 차고 들고 신등에 눈을 털며 남폿불 빠안한 촌방에 들어서는 정취엔 한은 도회에 남기고 온 몇 친구가 그리웠다. 발을 씻고 불돌을 제쳐 놓고 싸리나무 불에 말리고 꿩을 볶아 저녁을 먹고, 주인집 젊은이를 불러내어 국수내기 화투를 치고, 자정이나 되어 이가 저린 동치밋국에 꿩과 모밀의 그 깔끄럽고도 미끄러운 밤참을 먹고 밤국수 먹으러 혹은 밤낚시질 다니다가, 혹은 딴동네 처녀에게 반해 다니다가 도깨비한테 홀리던 이야기로 두시가 넘어서야 잠들이 들었다.
눈들이 부성한 이튿날 아침은 술 먹은 뒤처럼 머리가 터분하고 속이 쓰렸다. 한은 그것이 도리어 심리적으로는 구수하였다. 꿩 한 자웅에 사 원이 넘는다는 말을 들으니 더욱 진작 이런 촌에 와 밭날갈이나 장만하고 총 허가나 맡았더면 하는 후회도 났다.
자연 늦은 조반이 되었다. 눈은 겨우 발자국 나리만치 깔리었고 바람은 잔잔하여 사냥하기에는 받은 날씨라 하였다.
열시나 되어 윗마을에 닿았다. 카랑카랑한 늙은 포수는 몰이꾼을 넷이나 데리고 일곱시서부터 길에 나와 섰노라고 성이 나 있었다.
이내 산으로 들어섰다. 몰이꾼들은 듬성듬성 새를 두어 산기슭, 산 낮은 허리, 중허리, 상허리에 늘어서고 포수들과 윤과 한은 산등을 타고 넘어 두 골짜기 안에 가 목을 잡되, 가장 긴요한 목에 늙은 포수가 앉고 다음 목에 젊은 포수가 앉고, 잘못되어 처지면 이리도 짐승이 빠질는지도 모른다는 목에 윤과 한이 섰기로 하였다. 이들은 만일에 짐승이 오는 눈치면 소리를 질러 다른 목으로 에워만 놓으라는 것이었다.
거의 한 시간이 걸려서야 뚜―뚜― 소리들이 들려 왔다. 아래위로 맞받으면서 가닥나무를 뚜드리면서 산을 싸고 넘어왔다. 산비둘기가 몇 마리 날았을 뿐, 짐승은 나타나지 않았다. 포수들은 이번엔 다음 산의 자차분한 솔밭 속으로 들어서며 자귀를 해나가기 시작하였다. 늙은 포수는 이내 꽤 큰 노루의 발자국을 찾아내었다. 자국난 데 눈을 만져 보더니 이날 아침에 지나간 것이 틀리지 않다 하였다. 한 등성이를 넘었을 때다. 갑자기 도무의 이악스럽게 짖는 소리가 났다. 늙은 포수가 아뿔싸! 하며 혀를 찼다. 개가 너무 멀리 앞질러 가 퉁긴 것이었다. 송아지 같은데 목과 다리만 날씬한 것이 벌써 꺼불거리고 다음 산비탈을 뛰고 있었다. 늙은 포수는 큰 사냥터에 꿩 사냥개를 데리고 왔다고 찡찡거렸다. 개는 임자가 불러도 자꾸만 짐승만 다우쳤다.
"저 노룬 오늘 백 리도 더 갈 거요."
포수들은 그 노루는 단념하고 다른 데 몰이를 붙였다. 또 허탕이었다. 그 다음 산마루에서 불을 해놓고 점심들을 먹을 때다. 한은 배는 아직 든든하나 다리가 아팠다. 담배를 한 대 피워 물고 꽤 높은 고개의 분수령에 앉아 멀리는 첩첩한 산등성이를 내려다보는 맛과 가까이는 아람찬 참나무들의 드센 가지들을 쳐다보는 것만도 통쾌하였다.
몰이꾼들은 베보자기를 끌러 놓고 싯누런 조밥덩이를 김치쪽에 버무려 우적우적 탐스럽게 먹었다. 그 숫된 사나이들과 화톳불에 둘러앉아 인생의 한때를 쉬어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다. 그들의 빈 보자기들이 다시 그들의 꽁무니에 채워지고 곰방대들을 꺼내 물 때다. 포수 하나가 무어라고인지 소리를 꽥 질렀다. 몰이꾼의 하나가 총을 집어들고 만적거린 것이었다.
"그 사람이 총 묘린 몰라서요?"
"알구 모르구."
"그 사람 노룰 다 쐈는걸요."
"노루를 쏘다니?"
하는데, 침이 지르르한 두터운 입술이 빈죽거리며 얼굴이 시뻘개진 당자가 불 앞으로 왔다. 혼솔이 희끗희끗 닳았으나 곤색 양복 조끼를 저고리 위에 입은 것이나 챙이 꺾이었으나 도리우치를 쓴 것이나 지카다비를 신은 것이나 몰이꾼 패에서는 이채였다. 그러면서도 얼굴만은 어느 쪽에서 보든지 두리두리한 것이, 흰자위 많은 눈이 공연히 실룽거리는 것이라든지 기중 어리석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아, 자네가 언제 총을 놔봤나?"
늙은 포수가 물었다.
"왜 난 쏘믄 총알이 안 나간답디까?"
우쭐렁한 대답이었다.
"이런 젠―장 누가 총알이 안 나간댔어! 언제 놔봤느郖지?"
그는 아이처럼 흐하하 웃었다. 그리고 대뜸 신이 났다.
"사람 쏠 뻔하던 얘기 할까유?"
"어디 들어 보세."
"아! 하마틈 맹꽁이쇨 차는걸……."
"요 아래 참나뭇굴서 그랬대지?"
"그럼유! 아, 꿩만 보구 냅다 쏘구 났더니 바루 그쪽에 숯 굽는 패가 둘이나 섰는 걸 금세 보군 깜박 야저먹었지? 가만 보니까 사람이 둘이 다 간 데가 없군요! 맞았음 쓰러졌지 별수 있겠나유? 집으루 삼십육곌 부를랴는데 아, 한 녀석이 도낄 잔뜩 들구 성큼성큼 내려오지 않갔나유? 그땐 다리가 떨려 뛸 수두 없구…… 예끼 정칠 이왕 저눔 도끼에 죽느니 총으루 한 방 먼저 갈겨나 본다구 총을 바짝 쳐들었죠. 저눔이 소릴 지를 것만 같어서 겨냥을 할 수가 있어야쥬. 그냥 어림만 대구 잔뜩 들구서 가까이만 오길 기다렸쥬. 아, 수염이 시커머뭉투룩헌 여간 감때가 아니쥬! 저만큼 오길래 방아쇨 지끈 당겼죠. 아, 귀에선 앵― 소리가 났는데 총이 구르지두 않구 연기두 안 나가구 저눔은 그냥 털레털레 벌써 앞으루 다 왔갔나유! 아, 인전 이눔 도끼에 대가릴 찍히구 마는구나! 허구 앞이 캄캄해지는데 얼른 정신을 채려 보니까 그잔 벌써 쇠고삐 한기장은 지나서 나려가구 있지 않갔나유? 보니까 한 손엔 숫돌을 들구 개울루 도낄 갈러 가는 걸 모루구…… 흐하하……."
한바탕 산마루에 웃음판이 벌어졌다.
"아―니 총은 웬 총인데?"
그의 사촌이 한때 면장으로 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는 아직도 너머 동리에서 볏백이나 거둬들이고 산다는 것이었다.
*
이날은 오후 참에도 결국 탕 소리를 못 내어 보고 내려오고 말았다. 다음날도 노루 한 마리와 도야지 한 마리를 퉁기고도 몰이꾼들이 몰린 덴 너무 몰리고 뜬 데는 너무 떠 어느 한 마리도 총 목에 몰아넣지 못하고 말았다.
사흘째 되는 날은, 윤이 아침결에 나가더니 꿩을 두 마리나 쏘아 와, 한은 기운도 지치고 하여 점심에 국수나 눌러 먹는다는 핑계로 혼자 거리에 떨어지고 말았다.
저녁상이 나오도록 사냥꾼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상을 물리고 거리길에 나서 어정거리는 때였다. 쿵 소리가 시커먼 병풍처럼 둘린 뒷산 어느 갈피에서 울려 나왔다. 연이어 또 한 방 쿵― 울리었다. 한은 궁금했으나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포수들은 그 후 두 시간이나 뒤에 나타났다. 황소만한 멧도야지를 잡았다는 것이다. 참나무를 베어 그 위에 얹어 싣고 끄노라니 제대로 내려올 리가 없었다. 옆으로 굴러 한번 도랑에만 떨구면 여간해 끌어올릴 수가 없었다. 겨우 윗동네 앞까지 와서는 몰이꾼들도 허기가 져 모두 흩어졌다는 것이다. 윤은, 한더러, 오늘 밤 안으로는 피가 식지 않을 것이니 올라가자 하였으나 한은 저녁 먹은 것도 그저 뭉쿨한 채요, 어둡고 춥기도 하였고, 또 꼭 저혈을 먹기 위해 온 소위 피꾼도 아니요, 포수의 말에 의하면 식은 피라도 중탕을 하여 데우면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하므로 이튿날 식전에들 올라가기로 한 것이다.
세수들만 하고 해돋이에 윗마을로 올라왔다. 동네 사람들은 벌써 허옇게 나와 둘러싸고 있었다. 그 속에 몰이꾼 하나가 불거져 뛰어오더니,
"뭔지 변이 생겼습니다."
했다.
"무슨?"
"어떤 눔이 밤에 와 밸 온통 갈러 필 죄 쏟아 놓구 열은 떼두 못 가구 터뜨려만 놓구 살두 여러 근이나 떼갔군요!"
가보니 정말 그대로였다. 빛깔이나 털의 거침부터 짐승이라기보다 여러 백 년 된 고목의 한 토막 같은 게 쓰러졌다. 도적은 그 배만 가르지 않고 뒷다리 살을 썩둑썩둑 베어 갔다. 그것을 총질한 늙은 포수는 입술이 파래졌다.
"이건 이 동네 사람 짓이 틀림없죠."
하더니 구장 집을 물었다.
"구장은 찾어 어떻게 허시료?"
"가만들 계슈. 내게 맡기슈."
늙은 포수는 구장을 시켜 동네 젊은 사람들을 모조리 구장네 사랑으로 모이게 하였다. 모두 칠팔 인밖에 안 되는데 그 중에 네 사람은 이들의 몰이꾼들로, 그 도끼 갈러 내려가는 숯쟁이를 총으로 쏘았다는 곤색 양복 조끼짜리도 물론 끼어 있었다. 이 칸 방에 쭈욱 둘러 좌정이 되기를 기다려 늙은 포수는, 한편 어금니는 빠졌으나 말은 야무지게 입을 열었다.
"이게 한 사람의 짓이지 두 사람의 짓두 아닌 걸 가지구 이렇게 동네 여러 분네를 오시란 건 미안헌 줄두 모르지 않쇠다만, 사세부득 이쯤 된 게니 잠깐만 용서들 허슈…… 내 방법이란 한 가지밖엔 없쇠다. 쥐인장 물을 둬 대야만 뜨끈허게 데워 내오슈…… 고기에 탐내 그랬겠수 쓸개에 탐이 났지만 어둬서 쓸개는 터뜨리기만 해놓구 왔던 김이니 고기두 떼간 게지…… 아무튼 그 고길 오늘 아침에 삶어 놓구 뜯어 먹구 왔을 게요. 뱃속을 보선목이니 뒤집어 보잘 순 없는 게구…… 뜨건 물에 손을 당거 봄 고기 주므른 사람 손이면 뜨는 게 있습넨다……."
좌중이 일시에 눈들이 서로 손으로 갔다. 모두 둘씩은 가진 손이었다. 모두 울툭불툭 마디들이 험한 손이었다. 선한 일이고 악한 일이고 시키는 대로 할 뿐인, 죄 없는 손들이었다. 더구나 꾀로 살지 않고 힘으로 살기에, 도회지 사람들의 발보다도 더 험해진 그 순박한 손들에게 이런 야박스런 모욕이란 생후 처음들일 것이었다. 한은 한편이긴 하나 늙은 포수가 오히려 얄미웠다. 이 자리에 한 손도 그 죄의 기름이 뜨는 손은 없기를 바랐다. 그러나 데운 물그릇이 나오기 전에 여러 사람의 시선을 혼자 쪼이는 손이 있었다. 곤색 양복 조끼의 손이었다. 깍지도 껴보고, 무릎 밑에 깔아도 보고, 허리춤을 긁적거려도 보고, 나중엔 완전히 떨리어 곰방대를 내어 담배를 담았다. 눈치빠른 늙은 포수는 얼른 끼고 앉았던 화로를 내밀었다. 담뱃불을 붙이느라고 길게 뺀 고개가 어딘지 어색할 뿐 아니라 불에 갖다 대는 대통이 덜덜 떨리었다. 늙은 포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저 사람이 담밸 붙여, 뭘 붙여?"
양복 조끼는 그만 입에서 놓쳐 버린 곰방대를 화로에서 집노라고 쩔쩔매었다. 늙은 포수는 옴팡한 눈으로 그를 할퀴듯 쏘아보았다. 그만 양복 조끼의 얼굴은 화로보다도 더 이글거렸다. 늙은 포수는 문을 열어 젖히며 안으로 소리를 쳤다.
"쥐인장? 물 뎨 내올 것두 없쇠다."
그리고,
"한 사람만 남구 죄 없는 분들은 하나씩 일어나 나가슈."
하였다. 끝내 못 일어서기는커녕, 고개도 못 들고 남아 있는 것이 이 양복 조끼였다. 늙은 포수는 어느새 철썩 그의 귀때기를 갈겼다.
결국 구장이 나와, 자기 동리에서 생긴 불상사를 사과하였고, 이쪽의 처분을 기다리노라 하였다. 늙은 포수에게서는 이내 계산이 나왔다.
"피가 그 돼지헌테서 다섯 사발만 나왔겠소? 소불하 다섯 사발 치구두 오십 원허구, 쓸개가 어제 저 사람 제 입으루두 사십 원짜린 염려없을 게라구 그랬소. 사십 원허구, 뒷다릴 함부루 썰어 놨으니 가죽이 못쓰게 되잖었소? 가죽값 십 원만 허구, 백 원만 물어 노슈. 오늘 이 지경 됐으니 사냥헐 맛 있게 됐소? 오늘 하루두 우린 손해요."
"참, 손해가 많으시군요! 허나 이 사람이야 단돈 십 원을 해낼 주제가 어디 되나요. 요 너머 이 사람 사춘이 한 분 계시니 내 넘어가 의논허구 과히 억울치 않두룩 마련하오리다. 아무튼 주재소에만 알리지 말구 내려가 기다려 주시기요."
늙은 포수는 주재소 말이 저쪽에서 나온 김이라, 오후 세시까지 기다려서 소식이 없을 때는 주재소에 고소를 한다고 하였고,
"저따위 덜된 자석은 몇 해 감악소 밥을 멕여야 사람 구실을 헐 거요."
하고 을러메었다.
아무튼 도야지를 각을 떠 석 점이나 지워 가지고 거리로 내려왔다. 식전에 십 리 길을 걸은 속이라 모두 시장했으나 한 사람도 고기맛이 있을 리 없었다. 뒷일은 늙은 포수에게 맡기고 한과 윤은 젊은 포수를 데리고 꿩사냥을 나갔다가 어스름해서야 돌아와 보니, 일은 더욱 상서롭지 못하게 번져 있었다. 양복 조끼의 사촌형이 돈 삼십 원을 주며, 이 돈만으로는 포수가 들을 리가 없으니 또 주재소에서도 소문으로라도 벌써 모르고 있을 리 없을 것이니, 주재소로 가서 때리는 대로 맞고, 그저 죽을 때라 잘못했노라 하고, 이 돈 삼십 원밖엔 해놓을 수가 없으니, 이 돈으로 무사하게 처분해 달라고 빌라고 일러 보냈는데 돈 삼십 원을 넣은 양복 조끼는 주재소로도 포수에게로도 나타나지 않았다. 밤이 이슥해서는 그가 월정리역에서 어디로 가는 것인지 차표 사는 것을 보았다는 소문까지 퍼지었다.
사냥은 이렇게 마치고 말았다.
*
차가 창동을 지나니 자리가 수선해지는 바람에 한은 깜박 들었던 잠을 깨었다. 집이 있는 서울이 가까워 온다. 그러나 한은 조금도 반갑지 않았다. 그는 생각하였다. 단돈 삼십 원으로도 달아날 수 있는 그 양복 조끼에게는 세상이 얼마나 넓으랴! 싶었다.
출전:춘추13(19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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