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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 백제는 스러졌어도 노래는 남아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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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는 스러졌어도 노래는 남아 ----------- 부여

 

잃어버린 왕국 부여, 부드럽고 풍요하고 원만하고 아름다운 문화를 일구었던 나라, 그러나 강성해지는 고구려에 밀려서 점점 남하하다가 마침내는 나당연합군의 말발굽 아래 스러져 간 나라, 황산벌에서 5천 결사대와 함께 목숨을 바친 계백, 낙화암에서 떨어진 삼천 궁녀, 이런 것들이 우리가 백제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백제 사람들이 600년 넘는 역사 속에, 적어도 가장 찬란했던 123년을 일구어냈던 부여에서 어떤 삶은 살았는지를 알 수 있을 만한 흔적들은 너무도 적다. 천년 사직을 지켜온 도성터며 절터가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경주와는 달리, 전화에 휩쓸리고 사람들은 볼모로 잡혀가고, 남은 이들은 부흥운동을 하다가 스러지고 그리고 불탄 폐허는 더욱 황폐해져 버렸던 부여는 왕도였던 모습을 간직하기는커녕 시내 한가운데에 정림사터 오층석탑만이 홀로 덩그러니 섰을 따름이다. 왕성의 방위시설이었던 부소산성을 걸어보아도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백제 멸망 이후에 이 땅 사람들은 계속 홀대를 받으며 살아왔다. 부여를 비롯한 옛 백제 지역에는 이렇다 할 통일신라 유물이나 유적조차 없으니, 지방적인 문화마저 발현될 수 없을 만큼 억눌렸던 것이다. 고려시대에 와서야 이 땅 사람들이 소박한 형태로나마 조금씩 자신들의 문화를 드러내게 되었다.

 

역사책에도 백제의 모습은 파편으로 남아 있을 따름이니 백제 역사 연구는 줄기를 제대로 잡을 수 없을 만큼 그 진폭이 크다. 시조에 관해서도 비류냐, 온조냐 또는 그의 어머니 소서뇨냐 하는 설까지 있다. 강역에 관해서는 한강 유역을 차지했다가 고구려에 밀려 공주로 남하하고, 더 남녘인 부여로 내려가 마침내 멸망했는 식으로 보는가 하면, 한때는 중국 북경을 아우르는 지역에서부터 양자강 남쪽까지 식민지를 건설하고, 백제의 왕족들은 일본으로 건너가 지배층을 이루었으니 중국, 한국, 일본에 걸친 거해한 제국을 형성했다고 까지 하는 사람도 있다.

 

부여 땅 답사는 바로 이토록 헤아리기 어려운 백제의 모습을 디딤으로써 하나씩 알아 가는 과정이 될 터이다. 육당 최남선이 삼국 고적순례에서 부여를 두고 보드랍고 훈훈하고 정답고 알뜰한 맛은 부여 아닌 다른 옛 도읍에서 도무지 얻어 맛볼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 의미를 말이다.

 

부여는 공주에서 천도한 해인 538년부터 나당연합군의 말발굽 아래 마침내 그 생명을 다하던 660년까지 6123년 동안 백제의 왕도로써 삶을 누렸던 곳이다. 번성기에 사비의 인구는 가구 수가 13만 호에 이르렀다니 3만여 명밖에 안 되는 요즈음과 비할 바가 못된다. 백제가 멸망한 뒤로 8세기 중엽 신라 경덕왕 때는 웅천주의 속군이 될 만큼 철저히 압살되기도 했는데, 신라 말에 견훤이 후백제를 세웠을 때에는 한동안 후백제 영역으로서의 삶도 누렸다.

 

부여에서 가장 발길을 끄는 곳은 정림사터이다. 정림사터 탑이 부여에서는 유일한 지상의 백제건축이라면 능산리 고분군의 무덤들은 그에 상응하는 지하건축물이다. 여기에는 사신도가 그려진 무덤도 있어 6, 7세기 백제인이 불교만이 아니라 도교 사상도 받아들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부소산성은 백제왕실의 이야기를 곳곳에 보듬고 있는 곳이다. 부여의 진산인 부소산의 남쪽 기슭에는 지금은 조각 땅으로 보여지는 왕궁터가 있고, 산성 안에는 해맞이하는 영일루와 달을 보내는 송월루 등의 누각 자리가 있어 백제 사람들의 풍류를 알 만하다. 이 부소산성을 정점으로 해서 부여를 빙 둘러가며 수도 방위의 외곽시설인 나성이 흔적으로 남아 있고, 더 바깥쪽으로는 성흥산성을 비롯한 외곽산성들이 있어 사비의 규모와 당시 수도의 방위체계를 엿볼 수 있다.

시가의 남쪽이었을 군수리에는 이름을 알지 못하는 절터가 지금은 논 가운데 아담하게 자리한다. 그 옆쪽의 동남리에는 무왕의 태생에 얽힌 전설이 서려 있으며, 이궁(離宮)을 짓고 즐겼다는 궁남지가 지금도 버드나무 그림자를 못에 드리우고 있다.

 

그리고 백제 역사 이전부터 지금까지 쉬임 없이 흐르고 있는 백마강이 있다. 부여를 휘감아 싼 백마강가에는 유난히 전설이 서린 곳이 많다. 제대로 기록되지 못산 백제의 역사를 사람들은 그처럼 전설로라도 간직해 내려온 것이다.

금성산 기슭에 자리한 국립부여박물관에 가서야 우리는 비로소 사비시대 백제 유물의 실제와 마주한다. 백제 금동대향로를 비롯한 백제 부처들이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우리를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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