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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목한전(浮穆漢傳)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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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목한전(浮穆漢傳)

우리 나라 말에 승은 중이라 하고 늙은 중은 수좌, 사미승은 상좌, 그리고 화두타를 부목한이라 하고, 또 중으로서 환속한 사람은 중속한이라 한다.

진천 근방의 어느 산에 절 하나가 있었다. 그 절에는 수좌 한 사람과 그 밑에 사미승 곧 상좌가 따랐다.

때때로 수좌는 상좌에게 일렀다.

“술 한 말 담가 다오.”

상좌가 분부대로 술을 담그면 그 술이 다 익을 즈음해서 어디서인지 부목한 한 사람이 찾아온다.

수좌는 상좌에게 술을 짊어지고 따라 오게 한다. 나무 그늘이 드리운 외진 골짜기에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아서는 부목한과 더불어 술도 마시며 이야기도 한다.

그들은 대개 불가와 도가의 현묘한 도리를 이야기하였으므로 사미승인 상좌로서는 아무리 들어도 너무 어려워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한 말 술이 다 바닥이 나면 부목한은 일어나 하직을 하고 어디론지 가 버렸다.

 

술은 몇 달 만에 한 번씩 담그었다. 그리고 술이 거의 익을 때쯤이면 부목한은 꼭 찾아왔다. 어떻게 그 날짜를 그렇게도 잘 맞추어 찾아오는지. 부목한이 오면 꼭 수좌와 술을 마시는데, 상좌가 아무리 귀를 기울여 보아도 헤어질 때에는 한 번도 날짜를 기약하는 일이 없었다. 이렇게 1년이 지났다.

 

어느 날 역시 두 늙은 중은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하다가 하직을 하게 되었다. 그날따라 부목한은 섭섭한 거동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자네, 그날 일을 아는가?” 수좌가 받았다.

“왜 모르겠나.”

“그럼 어떻게 할 건가?”

“순순히 받아들일 뿐인지.”

“피하지 않을 텐가?”

“내 이 산에 들어올 때부터 이미 그렇게 정해지지 않았는가.”

“그럼, 이 세상에서 노는 것도 오늘로서 끝장이로군. 후에 그날에 내 오겠네.”

“그러게.”

이렇게 말하고 서로 마주 본 다음 작별하였다.

 

그 뒤, 부목한이 말하던 그날이 다가왔다.

수좌는 새벽 일찍 일어나서 향탕을 갖추어 목욕을 하고, 가사를 입은 뒤에 가부좌를 하고 앉아서 아미타불을 외기 시작했다. 염불을 하는 소리가 그치지 않고 계속되었다.

해가 저물었다.

앞산에 범이 나와서 소동을 일으켰다.

수좌는 그제서야 염불을 그치고 일어나서 문을 열었다.

그의 옷자락이 채 문지방을 넘기도 전에 무엇인가 달려들어 바람같이 채 가지고 달아났다.

 

여러 중들이 떠들면서 그 뒤를 쫓았다. 숲 속에서 수좌의 시체를 찾았다. 몸에는 이렇다 할 상처가 없었고, 단지 범의 이빨 자국이 나 있을 뿐이었다. 물을 끓여 목구멍에 부어 모았지만 살아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시신을 염하고 버느나무 관을 마련하여 화장할 날을 따져 보았다. 부목한이 떠나면서 처음으로 기약을 한 바로 그날이었다.

화장을 지낼 그날, 아직 장작에 불을 지피기 전에 부목한이 왔다. 한바탕 곡을 하고서는 화장하는 것을 지켜 본 다음 돌아갔다.

사미승인 상좌는 미리 행장을 꾸려 가지고 기다리고 있다가, 부목한이 떠나자 남몰래 그 뒤를 따랐다.

부목한은 따라오지 못하게 꾸짖었다. 상좌는 듣지 않았다. 부목한은 이리저리 산골짜기를 돌아 거칠은 숲속을 누비며 걸어갔다. 가시덤불이건 칼날같이 날카로운 암석이건 타 넘는데 걸음이 바람과 같이 빨랐다. 상좌는 그 뒤를 쫓기에 죽을 힘을 다했다. 엎어지며 자빠지며 달음질치며, 짚신에 피가 흥건히 괴어도 절룩거리며 따라갔다. 하루 낮 하룻밤을 이렇게 따라갔다.

 

그제서야 부목한은 걸음을 멈추었다.

“이리 오너라! 네 무슨 까닭으로 자꾸만 따라오는 것이냐?”

상좌는 헐떡거리며 아뢰었다.

“돌아가신 스승께서는 진정 이인이었사오나 이놈은 알아 뵈옵지 못했읍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지난 일이오니 말하여 무엇하겠습니까. 하오나, 이제 스승을 놓친다면 또 누구를 섬긴단 말입니까. 원컨대 제자로 받아 주십시오.”부목한은 듣고 탄식했다.

“아아! 네 정성이 갸륵하구나. 그러나 네 수명이 그러하니 어찌하겠는가.”

상좌가 묻자, 부목한은 말했다.

“너의 수명은 앞으로 3년이 남았다. 도술이 그 수명을 건지기 전에 그 공력이 망할 것이니, 이는 괴로운 생활만 더할 뿐 아무런 공이 없다. 내 너를 위해 말하거니와 다시 속세로 내려가거라. 술도 마시고 고기도 먹으면서 사람으로서 좋아하는 일을 모두 하다가 남은 수명을 마칠 일이다. 내 무엇을 아껴 너를 가르치지 않으려 하겠느냐?”

상좌는 섭섭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러나 하늘로부터 받은 목숨을 어찌하랴. 마침내 절을 하고 하직했다.

부목한은 역시 끝내 이름과 사는 곳을 말하지 않고 가 버렸다.

상좌는 환속하여 중속한이 되었다. 늘 시장 바닥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자기의 경험을 이야기하였고 스스로 죽을 날을 말했다.

사람들 가운데에는 혹시 믿지 않은 사람도 있었지만, 그 뒤 그는 정말 예언한 날에 죽었다 한다.

매화외사는 말한다.

“상말에 이르기를, 동네에 명창이 없고, 같은 접에 문장이 없다고 하는데, 이것은 우리 나라 사람들이 스스로 자기를 가볍게 낮추는 버릇 때문이다. 따라서 월나라에 신선이 있고, 촉나라에 부처가 있다고 말하면 믿지만, 만일 신선이나 부처가 우리 나라의 어느 산에 있다고 하면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월나라·촉나라의 산도, 월나라 ·촉나라 사람이 생각하는 우리 나라의 산과 같은 관념임을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이인이라도 초탈하기 전에는, 저 부목한과 같이 속인과 서로 섞여서 노닌다면 비록 얼굴을 마주 대한다 할지라도 알아보지 못한다. 그러는 과객이 어찌 궁무상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나는 진천 근방의 절간에서 있었던 일로 그 실상을 알 수 있다. 또 김삼연이 남궁두를 만났다는 것도 모두 믿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아! 어떻게 하면 이런 사람을 만나 그들을 알 수 있을까?”

요점 정리

연대 : 조선 후기

작자 : 이옥

형식 : 전

주제 : 부목한의 이인적 행위

특징 : 작자 이옥이 밝힌 입전동기는 우리 민족이 민족적 긍지나 주체의식이 결여되어 자기비하적 태도가 심한 것을 비판하기 위함

이해와 감상

조선 후기에 이옥 ( 李鈺 )이 지은 전(傳). 창작연대는 작자의 생애 후반기로 추정된다. 김려(金 錤 )가 찬한 ≪ 담정총서 ≫ 권11 매화외사 ( 梅花外史 )에 수록되어 있다. 〈 부목한전 〉 의 경개는 다음과 같다.

진천(鎭川)의 산중에 위치한 절에 수좌와 상좌가 살고 있었다. 수좌의 명에 따라 상좌가 술을 담가놓으면, 술이 익을 때쯤 어디선가 부목한이 나타나 실컷 마시고 놀다가 갔다. 하루는 부목한이 수좌에게 앞으로 다가올 일을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다. 수좌가 피하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부목한은 아무 날 오겠다고 하고 떠났다. 그날 저녁에 호환(虎患)이 일어나 수좌가 죽었다. 화장을 하려던 날에 부목한이 와서 실컷 울고 떠났다.

상좌가 부목한을 따르겠다고 하였다. 부목한은 그에게 단명하니 인생지락이나 누리다 가라고 했다. 이별 후 상좌는 중속한(重俗漢 : 속인)이 되어 살다가 부목한이 말한 날에 죽었다.

〈 부목한전 〉 은 절에서 땔감을 마련하는 등의 잡일을 거드는 부목한이 미래를 예언하는 비범한 인물임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작자 이옥이 밝힌 입전동기는 우리 민족이 민족적 긍지나 주체의식이 결여되어 자기비하적 태도가 심한 것을 비판하기 위해서였다. 이와 비슷한 입전동기로 창작된 작품으로 〈 신병사전 〉 이 있다. 이옥은 이런 유형의 인물들을 입전하여 서사의 대상을 확대하고 있다. 이런 의식은 이미 그보다 앞선 시대의 허균 ( 許筠 )의 이인전(異人傳)에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보다 후대에는 유본학(柳本學) · 정약용(丁若鏞) 등의 신선(神仙)의 전들에서 볼 수 있다.

〈 부목한전 〉 은 이옥의 초기 경험론에 입각한 합리적 세계 인식 태도와는 다른 새로운 의식의 일면을 보여준다. 이 점은 사대부로서의 현실적 삶의 좌절에서 온 자의식의 분열된 모습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작자는 이런 비현실적인 인물들을 실존적 인물이라고 입증하고 있다. 그러므로 전 양식이 가져야 할 사실기술의 서사문법을 이탈하고 있지는 않다.

≪ 참고문헌 ≫ 李鈺의 文學理論과 作品世界의 硏究(金均泰, 創學社, 1986).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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