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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화(鳳仙花)-김상옥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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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화(鳳仙花)

-김상옥

 

 

비 오자 장독간에 봉선화 반만 벌어

해마다 피는 꽃을 나만 두고 볼 것인가

세세한 사연을 적어 누님께로 보내자

 

<중략>

 

양지에 마주 앉아 실로 찬찬 매어 주던

하얀 손 가락 가락이 연붉은 그 손톱을

지금은 꿈 속에 본 듯 힘줄만이 서노나

 

<초적(草笛), 수향서헌, 1947>


김상옥(1920- )

호는 초정(草汀). 경남 충무 출생. 1940문장지에 봉선화가 추천되고, 1941동아일보낙엽이 당선되어 등단. 전통적 제재를 취한 회고적 작품이 주류를 이루며, 섬세한 언어를 잘 구사하여 아취 있고 향수 어린 독특한 세계를 표현하였다. 시조집인 초적과 시집인 이단의 시, 목석의 노래등이 있다.

 

 

< 감상의 길잡이 >

이 작품에는 두 가지의 그리움이 담겨 있다. 하나는 시집을 가서 멀리 살고 있는 누님을 향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누님과 더불어 손톱에 꽃물을 들이며 천진난만하게 놀던 어린 시절의 평화로움에 대한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봉선화라는 사물을 핵심으로 하여 전개된다. 내용의 초점에 따라 작품의 흐름을 정리하여 보면 첫 수는 봉선화를, 둘째 수는 누님에 대한 그리움을, 셋째 수는 누님과 함께 보낸 어린 시절에의 그리움을 담고 있다.

 

첫 수에서 `'는 장독대에 핀 봉선화를 보고 누님을 생각한다. 그 꽃은 단순한 꽃이 아니라 누님과 `'와의 추억이 얽힌 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는 봉선화에 얽힌 여러 가지 사연을 편지에 적어 누님께 보내고 싶어진다.

 

둘째 수는(아마도 편지를 보낸 뒤) 누님이 편지를 읽으시며 어떤 모습을 하실까를 상상하여 본 대목이다. 누님은 고향집의 모습을 눈 앞에 그려보면서 시집가기 전 어린 동생과 손톱에 봉선화 물을 들이던 시절을 생각하실 것이다. 이렇게 상상해 보는 누님의 마음은 곧, `' 자신의 마음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셋째 수에서 누님과 함께 놀던 그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어렸을 때 누님은 봉선화꽃을 손톱에 물들여 주었고, 그 때 그 연붉은 손톱의 아름다운 빛깔은 지금도 눈에 어린다. 그러나 그 때로부터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은 어떤가? 누님은 시집가서 멀리 있고, `'는 이제 어른이 되었다. 그때의 봉선화 물들인 하얀 손가락은 이제 `힘줄만이 선' , 즉 세상살이에 억세어진 손이 되었다. 그 옛날의 아름다운 기억은 다만 꿈 속의 일처럼 남아 있을 따름이다. 시간의 흐름은 아름답던 어린 시절의 모든 것들을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세계로 가져가 버렸다.

 

평범하다면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경험을 섬세하게 관찰하고 느끼어 노래한 깨끗한 작품이다. 그 속에서는 천진난만한 어린 시절의 삶을 간절한 그리움으로 회상하는 소박한 정취가 살아있다. [해설: 김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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