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맞는 폐허에서- 김해강
by 송화은율봄을 맞는 폐허에서- 김해강
<감상의 길잡이>
김해강은 활동 초기, 프로 문학 운동이 왕성할 때에는 동반 작가로서 경향적인 시를 많이 발표하였으나, 1930년대 후반부터는 순수 서정 시인으로서 자연과 인간의 교감을 통한 한국의 전통적 서정 세계를 주로 노래하였다. 이 시는 그의 초기시 세계를 잘 보여 주는 경향적 작품이다.
1~2연은 간밤의 봄비가 그치면서 봄빛이 가득한 세상을 보여 준다. 그러나 봄비는 지리한 밤과 함께 새벽바람에 물러가고 ‘산기슭엔 아즈랑이 떠돌고’ ‘땅 우엔 샘이 돋건만’, ‘발자취 어지러운 옛 뒤안’을 돌아본 시적 자아는 그저 쓸쓸함을 느낄 뿐이다. 이 때, ‘옛 뒤안’은 단순히 집 뒤의 공터라는 의미보다는 그 동안 식민지 시기의 온갖 고난과 역경을 상징하는 것이리라. 3~4연에서 시적 자아의 시야는 집 밖의 세상으로 확대된다. 그 곳은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들이 양지쪽에 쭈그리고 앉아 놀고 있는 한가로운 장소이지만, 회한에 잠겨 ‘한숨지고 섯는 늙은이’의 흰 수염이 바람에 날리는 ‘무너진 성터’로서, 봄을 맞는 폐허의 구체적 공간적 배경이 된다. 그러나 이 때의 ‘무너진 성터’는 폐허의 대유적 표현이며, 이는 곧 나라를 잃은 망국의 국토를 상징한다. 5~6연에서 시적 자아의 현실 인식이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시적 자아는 그대로 폐허에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어서 다시 찾아온 봄에 의탁해 막연하나마 희망을 실어보낸다. 그러나 정면으로 맞서지도 나서지도 못하는 나약한 지식인의 모습은 고작 두근거리는 가슴 속에 눈물을 삼키는 회한으로 표현된다. 그렇지만 그는 ‘새벽바람에 달음질 치는 동무’를 봄으로써 이러한 막연한 희망에서 구체적인 현실적 방법의 모색으로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그 동무는 아마도 남몰래 노동 운동을 하거나 지하 정치 운동을 하는 젊은이리라. 시적 자아는 드디어 ‘철벽을 깨뜨리고 새 빛을 실어오기’를 ‘가슴을 바쳐’ 기원하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의 이 작품은 ‘이 폐허에도 봄은 찾아 왔건만’의 표현에서 보듯 두보(杜甫)의 시 <춘망(春望)>의 모티프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이 시는 전반부의 봄을 맞는 비관적 정조에서 벗어나 주체의 현실적 자각을 획득함으로써, 현실을 뚜렷이 응시할 수 있는 비판적 거리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특히 마지막 연의 ‘그러나 나는’에서 보듯, 시상의 전환과 함께 분명하게 시적 자아의 목소리를 드러내고 있는 점은 이러한 현실 인식을 직접적으로 보여 주는 경향시의 대표적 특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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