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봄봄 / 김유정/ 재미난 소설 수업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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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봄’(김유정)의 재미난 소설 수업

 

[1교시 : 웃음에 대하여]

 

1. 이 소설을 무심코 읽어가노라면 자주 웃음이 쿡쿡 터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그 웃음이 어째서 생겨나는 것인지 말하여 보자.

적극적인 장인님의 자비심 없는 폭력에 당하기만 하던 가 결연히 일어서서 일시적으로나마 힘으로 장인님을 굴복시키는 장면이다. 이런 장면에서 독자들은 잠시나마 웃음과 함께 고소한 기쁨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이 녀석의 장인님을, 하고 눈에서 불이 퍽 나서 그 아래 밭 있는 넝알로 그대로 떼밀어 굴려버렸다. 조금 있다가 장인님이 씩, , 하고 한 번 해볼려고 기어오르는 걸 얼른 또 떼밀어 굴려버렸다. 기어오르면 굴리고 굴리면 기어오르고 이러길 한 너덧 번을 하며 그럴적마다 부려만 먹구 왜 성례 안 하지유!’ 나는 이렇게 호령했다.

 

다음은 가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자주 해서 웃음을 자아낸다. 우스꽝스러운 것은 우선 성숙하고 의젓하고 점잖은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미숙하고 경솔하고 유치한 것이다. 특히 의젓하게 격식을 갖추고 진지하게 철학적이어야 할 상황에서 갑자기 그런 상황의 기대를 깨뜨리고 경솔하게 파격적으로 장난스러운 유희의 짓거리를 하고 있으면 폭소를 자아내게 된다. 점잖은 것, 진지한 것, 철학적인 것들은 고귀하고 좋은 것이지마는 인간을 긴장시키고 피곤하게 만든다. 거기 반하여 유치한 것, 장난스러운 것, 유희적인 것들은 사람을 편하게 하고 유쾌하게 만든다. 부담 없는 웃음을 제공하여 긴장을 풀게 함으로써 진지한 삶으로 피곤해진 인간 정신에 청량제가 되는 것이 바로 이 우스꽝스러움의 가치라 하겠다.

중요하고 진지한 성례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모판에 볍씨 붓던 일도 버리고 구장님 앞에 담판 나온 사람들(장인과 나)코를 푸는 척하고 날 은근히 골릴랴구 팔굼치로 옆 갈비께를 퍽 치는 것이며 나두 종아리의 파리를 쫓는 척하고 허리를 굽으리며 어깨로 그 궁둥이를 콱 떼밀었다는 등의 참으로 엉뚱한 장난들에 빠져 있는 것을 볼 때 웃음을 참을 수 없다.

 

2. 성례를 못 이루는 이유의 핵심은 무엇인가지 말하여 보자.

장인님이 성례시키지 않으려고 작정하고 있는 그 마음이고,

키가 훤출하게 크지 않도록 마련된 점순이의 선천적 체질이다.

 

3. 성례를 이루기 위한 는 어떠한 행동을 하고 있는지 말하고, 그 행동에 대하여 평가하여 보자.

는 그런 상황의 핵심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한다는 짓이 자를 가지고 키를 재어 본다든지, 물동이를 덜 이도록 물을 길러준다든지, 서낭당에 돌을 올려놓고 비는 따위의 헛된 노릇이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그 맥을 정확히 알지 못해서 돌아가는 상황에 제대로 적응을 못하고 엉뚱한 바보짓을 하게 되면 그 행동은 웃음거리가 되는 것이다. 그럴 때에 상황판단이 제대로 안 되어 우스꽝스런 바보짓을 한 사람이 그 상황 부적응의 실수로 말미암아 치명적인 타격을 입어서는 나오려던 웃음조차 즉시 사라지고 만다. 그 바보스러운 짓이 그에게 치명적인 타격은 아닐 뿐 아니라 곧 바로 새로운 적응을 성취해야 그 바보짓이 웃음을 자아내게 된다. 그런데 에서의 는 자신이 처하고 있는 상황, 자신이 이루려고 애쓰는 점순이와의 성례가 늘 이루어지지 않고 말게 되는 그 상황에 대한 판단이 제대로 안되어 웃음을 자아내는 바보짓을 되풀이하고 있다.

 

아침 밥상을 들고 온 점순이가 어제 구장한테 갔다가도 성례의 확약을 못 받고만 일을 나무라는 중에 쇰을 잡아채지 그냥 둬, 이 바보야?’라는 말을 뱉고는 들어간 것이다. ‘는 이 말의 속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다. 이 말의 속뜻은 좀 더 철저히 다그쳐서 성례의 확약을 받아내도록 했어야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는 엉뚱하게도 바보야?’라는 그 말에 과도한 반응을 보일 뿐 아니라, 그 말에서 점순이가 장인님을 미워하고 있다고 속단하고 또 그 말대로 수염을 잡아채기를 바란다고 판단하여 그렇게 실천하는 것이다.

 

4. 이 작품에서 웃음이 지니고 있는 의미에 대하여 말하여 보자.

그러나 이러한 웃음은 이야기 전체의 주제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하고 싶은 말을 직설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상황아래에서, 말의 뼈는 속으로 감추고 겉으로는 웃음을 드러내 놓는 우리의 한 전통적 수법이라고 보겠다. 이 수법은 이야기의 주제가 비극적인 파멸일 때 그 슬픔을 제곱으로 상승시키는 효과를 자아내는 것인데 조선시대의 탈춤놀이나 꼭두각시놀이에서 그런 수법의 전형을 풍부히 볼 수 있다.

 

[2교시 : 짜임새에 대하여]

1. 전체적 짜임새가 뒤죽박죽이라는 인상을 받게 되는 이유

이야기하는 사람인 가 앞에서 살핀 바와 같이 상황판단조차 제대로 못하는 숙맥이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회상이다. 지난 삼년 반 이상의 생활을 회상하고 있는데, 회상이란 그 자체가 무질서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회상이란 기억과 연상으로 이루어지는 것인데, 인간의 기억도 언제나 부정확하고 맏을 수 없는 것인데다가 연상작용이란 애초에 논리를 초월하고 자유분방하여 종잡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2. 이 작품의 짜임새에 대하여 말하여 보자.

 

. 이야기의 바탕

1. 점순이의 키가 자라지 않았다는 장인님의 핑계에 나는 어쩔 수가 없었다.

2. 애초에 계약이 잘못된 줄을 모르고 기다려 온 나는 숙맥임을 알았다.

3. 그 사이 나대로는 온갖 애를 다 써보았으나 점순이의 키는 크지 않았다.

 

. 어저께의 싸움

1. 어제 낮에 장인님과 싸웠다.

 

논에서 모를 붓다가 어깃장을 놓고 내가 싸움을 걸었다.

장인님은 손버릇이 나쁘고, 욕쟁이고, 똑 된 마름이다.

작년 이맘때도 이렇게 싸우고, 성례 약속을 받은 바 있으나 가을에 가서는 예의 그 핑계로 나만 속았다.

그 전날 화전밭을 갈적에 점순이가 성례시켜 달라 하라고 부추켰다.

점순이는 이쁜 계집애는 아니나, 내 안해에 꼭 알맞다.

 

구장집에 가서 담판하려 했으나 구장의 만류로 그냥 돌아 왔다.

 

2. 어제 밤에 뭉태네 집에 가 뭉태의 부추김을 받았으나 곧이 듣지 않았다.

 

. 오늘의 싸움

1. 아침상을 들고 온 점순이가 어제 구장집에 갔다가 그냥 온 일을 두고 나를 바보라고 하면서 장인님의 수염을 잡아채라고 했다.

 

2. 아침밥을 먹은 뒤 바깥마당 공석 위에 누어 싸움을 걸었다.

장인님이 지게막대기로 나를 못살게 굴었다.

내가 장인님의 수염을 잡아채고 소리를 질렀다.

장인님이 지게막대기로 나를 내려 갈겼다.

내가 장인님을 넝알로 자꾸 굴러버렸다.

장인님이 나의 바지가랭이를 잡아 쓰러뜨리고 까무라치게 했다.

내가 장인님의 바지가랭이를 잡아 쓰러뜨리고 할아버지!’ 소리가 나오도록 했다.

장인님의 바지가랭이를 잡아 나꿨다가 머리가 터지도록 얻어 맞고 또 위로를 받았다.

장인님이 장모님과 점순이의 합세에 힘입어 지게막대기로 사뭇 나려 조졌으나 나는 점순이의 태도에 얼빠진 등신이 되어 항거를 포기하고 맞기만 했다.

☞ Ⅰ의 원인이고 의 원인이기 때문에 사건들은 필연적인 인과관계에 의하여 짜여 있음을 알 수 있다.결국은 아침밥을 먹은 뒤 바깥마당 공석 위에서 벌이는 마지막 싸움[, 2]을 행하여 그 앞의 모든 사건들과 싸움은 집중되어 있다.

 

[3교시 : 이야기의 알레고리]

 

알레고리(Allegory) : 다른 사물()에 빗대어 풍자하는 뜻. 인물, 행위, 그리고 때로는 배경이 축자적(逐字的) 즉 일차적 의미층에 있어 논리 정연한 말이 될 뿐만 아니라, 상관관계를 맺고 있는 제2차적 인물, 개념, 사건도 가리키도록 고안된 이야기이다.

 

1. 우리 문학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비극적 플롯을 지닌 작품이다. 그러면서도 독자들에게는 얼핏 그것이 처참한 비극으로 감득되기보다는 오히려 단순한 해학적 풍속도로만 의식되기가 쉽다.

이야기를 하고 있는 ’(비극의 당사자)의 말씨(어투) 때문이다. 어리석고 무식한 농사꾼의 일상적인 말씨가 지극히 자연스런 해학적 분위기를 더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두 장인님은 놓질 않더니 내가 기어히 땅바닥에 쓰러져서 거진 까무러치게 되니까 놓는다. 더럽다 더럽다. 이게 장인님인가, 나는 한참을 못 일어나고 쩔쩔맸다

 

의 상황 부적응 때문에 솟아나는 웃음때문이다. 도대체가 는 자신이 결연히 부딪혀서 싸운 그 싸움 자체와 거기서 맛본 그 처절한 패배와 좌절조차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나타나 있다. 그 비극적 체험에 관한 인식조차에도 부적응 현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도 난 영문을 모른다.’

 

연상에 의한 이차적 회상 때문이다. 특히 결말 부분에 전광석화처럼 끼어들었던 회상은 전체적으로 결말을 제대로 읽어내기 어렵게 하고 있다.

 

2. 싸움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지 말하여 보자.

장인님사이의 계약 : 데릴사위로 일을 해주면 점순이가 자라는 대로 성례를 시켜주마. ‘는 아직도 불신사회에서 단련받은 경험이 없기 때문에 딸이 자라는 대로 성례를 시켜주마는 그 말만으로 만족했었다. 그러나 장인님은 달랐다. ‘읍의 배참봉댁 마름으로이미 양심이나 윤리에 대한 믿음을 팽개친지 오래 되었고 딸(육친의 살붙이)까지도 미끼로 삼아 재물 모으는 일에 눈이 어두워 있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에게 있어서 막연한 약속이란 애초에 어기기 위한 미끼에 불과한 것이다. 사람에게 천연적으로 주어진 양심과 윤리를 버리지 않고 말 한마디라도 그대로 믿는 순진한 와 양심과 윤리를 버리고 제 이익만을 추구하는 영악한 장인님과의 사이에 허술하고 막연한 말만의 약속을 맺었던 것이 이 싸움의 근본 원인이었다.

 

3. ‘장인님을 비교하여 말하여 보자.


장인님
재산 가진 것이 없는 빈털털이 톡톡히 치부를 하고 있는 마름
신분 외톨이로 고향을 떠나 타관살이를 하는 머슴(명색은 데릴사위) 가족을 거느리고 고향에 붙어 토박이로 사는 주인 (명색은 장인)
사람됨 어리숙하여 뭉태도 함부로 훅닥이고 점순이까지도 바보로 취급 온 동리 사람들이 그 욕을 다 먹어가면서도 그래도 굽신굽신할 뿐 아니라 구장까지도 꼼짝 못하는 사람

 

4. ‘장인님에게 있어 의 무기는 무엇인지 말하여 보자.

의 무기 : ‘이라는 계절 - ‘는 장인님에게 있는 이 유일한 약점을 찔러야 승산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해마다 봄이면 싸움을 걸어보는 것이고, 그것이 애초부터 승부가 자명한 이 싸움을 쉬 끝나지 않게 만든 비밀이다.(그래서 제목이 )

 

5. ‘점순이가 이 작품에서 하는 역할에 대하여 말하여 보자.

점순 : 이 싸움의 미끼 - 결정적으로 싸움의 도화선 역할을 담당, ‘가 지난 삼년 칠개월 동안 그 허다한 기만과 좌절을 맛보면서도 이제까지 버텨온 것은 오직 점순이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점순이는 속으로 자기와의 성례를 바라고 있고, 성례를 위하여 자기와 한편이 되어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장인님과 싸워 볼 힘이 솟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 결정적인 순간에 와서 그 믿음이 산산히 깨어져 버렸으니(물론 이것은 상황 판단이 안되는 의 속단이지마는) 만사휴이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래서 결국 이 싸움의 결말도 점순이에 의해서 마무리되고 만 셈이다.

 

6. 구장님과 뭉태에 대하여 말하여 보자.


구장님 뭉태
싸움에 대한 태도 싸움을 말린 사람 싸움을 더 크게 붙이려는 사람
나와 장인님과의 관계 화해를 도모하고 분열을 조장하는 사람
장인과의 관계 장인님에게 땅 두 마지기 얻어 부치고 있음(장인님에게 우호적인 관계) 땅을 얻어 부치다가 떨어진 사람(장인님에게 적대적인 관계)
사회적 신분 새로운 제도의 직위를 지닌 사람 사회적 직위도 없는 가난한 농민
생활 태도 시세에 따라 유쾌하게 살아가는 사람 과거의 뼈대를 정신적 유산으로 여기지만 현실적 수난의 생활을 하는 사람
나에 대한 설득 논리 거짓 논리를 내세워 나를 설복시킴 참된 논리를 내세웠으나 나를 설복시키지 못함

 

7. 구장님과 뭉태가 나에게 세운 논리를 말하여 보자.

구장님

농사가 한창 바쁠 때 일을 안한다든가 집으로 달아난다든가 하면 손해죄루 그것도 징역을 가거든

또 결혼두 그렇지 법률에 성년이란게 있는데 스물 하나가 되야지 결혼을 할 수가 있는걸세

아까 빙장님의 말씀이 올 갈에는 열일을 제치고라두 성례를 시켜주겠다 하시니 좀 고마울겐가

 

뭉태

장인님에게는 아들이 없고 딸만 셋이 있는데, 그는 이 딸을 미끼로 데릴사위를 삼아

첫 딸은 열살 때부터 열 아홉 살까지 열 네 명의 데릴사위를 바꾸면서 공짜일을 시키고 재작년 가을에 시집을 보냈다.

그 뒤로 둘째 딸인 점순이를 미끼로 세 번째 데릴사위를 들였는데 그가 바로 . ‘내담으로 네 번째 놈이 들어올 것을 내가 일도 참 잘하고 그리고 사람이 좀 어수룩하니까 장인님이 잔뜩 붙들고 놓질 않는다.

셋째 딸이 인제 여섯 살, 적어도 열 살은 돼야 데릴사위를 할테므로 그동안 죽도록 부려먹어야 된다. 그러니 인제는 속 좀 채리고 장가를 들여달라고 떼를 쓰고 나자뻐져라

 

* 결국 구장님은 거짓 논리를 동원하여 나를 무마시킴으로써 장인님에게 협력했고, 뭉태는 바른 논리로 나에게 협력하고자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8. 이 작품에서 일어난 싸움의 참모습에 대하여 말하여 보자. (인물 중심으로)

계획적으로 교활하게 수탈하는 장인님과 어리석도록 순박하여 농락당하는 나와, 그 싸움의 핵심과 전말을 환히 알면서도 자신의 이익을 지키지 위하여 거짓 논리로 장인님 편이 되는 구장님과, 자신에게 닥치는 고난을 견디면서 진실을 밝혀내지마는 당사자인 나로부터도 이해받지 못하는 뭉태와, 이 네 사람들이 빚어내는 이틀 동안의 인간 드라마가 이 싸움이야기의 전모다.

 

9. 이 작품의 씌어진 시기가 1930년대 중반이라 할 때, 이 이야기를 하나의 알레고리로 볼 수 있다. 등장 인물의 유형을 말하여 보자.

장인님을 일본 제국주의자들로, 나를 우리 민중으로, 구장님을 친일 앞잡이들로, 뭉태를 독립지사들로 읽혀진다.

 

10. 시대적 한계를 넘어서 인간 사회에 언제나 항존하는 근원적인 인간 유형을 보여주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어떤 형태로든지 늘 속히면서 살아가는 우둔한 선인들이 있고(‘), 어떻게 해서든지 남을 속이면서 현실적인 세력과 재물을 차지하는 영리한 악인들이 있고(‘장인님), 누가 속이고 누가 속히며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훤히 알면서도 세력과 재물 쪽에 동조하여 자신의 안녕을 도모하는 무리가 있고(‘구장님), 돌아가는 세상의 선후를 알고 불의한 현실 세력에 저항함으로써 자신의 삶은 고달프기 마련인 사람들(‘뭉태)

 

[4교시 : 자조적 풍자]

 

1. 이 작품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말하여 보자.

이 작품을 읽을 때에 경험하게 되는 것은 발견과 깨달음의 기쁨뿐만 아니라, 오히려 라는 한 인간으로부터 받는 연민과 비통의 감정이다. 다시 말하면 이 은 거기 나오는 다섯 사람들의 공동적 삶을 보여 주지마는 보다 궁극적으로는 개인의 삶에 대한 이야기라는 말이다.

 

2. 이 작품의 주인공 인 는 주변의 인물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가 파악하고 있는 다음의 인물들에 대하여 말하여 보자.

뭉태 : 땅을 얻어 부치다가 떨어진 뒤로는 장인님만 보면 공연히 못 먹어서 으릉거린다는 선입견에 사로 잡혀 그의 진심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구장님 : ‘구장님이 날 위해서 조용히 데리고 아래와 같이 일러주었기 때문이라면서 고스란히 받아들인다.

장인님과 점순 : 장인님의 속임수와 핑계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모를 뿐 아니라, 드디어는 점순이의 속셈조차 무엇인지 모른다.

자기 자신 : 더욱 절망적인 것은 그런 주변의 인물들 사이에 놓인 자신의 운명이 얼마나 비극적인가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이래서 나는 애초 계약이 잘못된걸 알았다라든지 숙맥이 그걸 모르고 점순이의 키 자라기만 까맣게 기다리지 않었나하는 독백을 하고 있지마는 사실은 그의 그 값져야 할 청춘이 얼마나 처참하게 속히고 매맞으면서 유린당하였는지에 대하여 충분히 각성하지도 못하고 있다.

 

3. 하지만 주변 인물들은 모두 지나치게 치밀하고 영리하다.

뭉태 : 장인님의 인격과 심리와 계략을 질서정연하게 파악하고 있을 뿐 아니라 나와 장인님 사이의 관계가 미래에 어떻게 진행되고 또 되어야 하는지까지도 정확히 알고 있다.

구장님 : 처음에는 나의 주장에 협력하였지만, 자신의 이기적인 계산이 있어서 태도를 바꾸어 장인님의 협력자로 돌아선 것이다. 다만 구장님에게는 뭉태에게서와 같은 신념이 없다.

점순이와 장인님 : 점순이는 점순이대로, 장인님은 장인님대로 일의 처음과 끝 그리고 선후를 훤히 알고 있으면서 적절히 조절하고 적응한다.

: 충분히 영리한 사람들 속에 뛰어들어서 만 혼자 아무것도 모른 채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는 것이다.

 

4. 이 작품에서 사회에 대응하는 글쓴이의 자세에 대하여 말하여 보자.

거대한 모략적 역사의 소용돌이 안에 살고 있던 김유정이 자신의 한계와 무력함을 절망적으로 깨달으면서 그 역사의 주역들이 이루어 가는 속임수와 모략을 자조에 찬 풍자로 보여 주는 이야기. 이 소설은 1930년대의 한 지식인이 거대한 모략적 현실을 구조적으로 풍자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시대를 초월하여 언제나 반성적인 인간이 현실의 벽에 부딪혀 절망하는 모습으로까지 확대되어 읽혀진다. 더욱 그 풍자가 효과적일 수 있는 것은 장인님의 신분이 마름이라는 점이다. 그 세계를 좌우하고 모략의 주체가 된 세력의 임자가 사실은 남의 힘을 등에 업은 허수아비에 불과하다는 설정은 그 풍자의 효과를 충분히 극대화시키고 있다고 하겠다.

 

5. 이 작품의 가치에 대하여 말하여 보자.

1930년대에 생산된 우리의 단편 소설 가운데서도 손꼽힐만한 작품이라는 것은 분명할 듯하다. 무엇보다도 소설이라는 문학 예술이 자기 존재의 확인과 인간 삶의 파악이라는 것을 그 갈래 특징으로 지닌다고 할 때에, 1930년대까지의 우리 현대 소설 안에서 작가 자신과 자신을 포함한 동시대 사람들의 삶을 이만큼 구조적으로 또 반성적으로 파악해 낸 작품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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