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천탄에서(寶泉灘卽事)
by 송화은율보천탄에서(寶泉灘卽事)
桃花浪高幾尺許(도화랑고기척허) ,
秢石沒頂不知處(한석몰정불지처)
兩兩帢玆鳥失舊磯(양양로자실구기)
啣魚却入菰蒲去(함어각입고포거)
복사꽃 뜬 냇물 얼마나 불었는고
솟은 바위 아주 묻혀 짐작 어려워.
쌍쌍의 가마우지 옛 터전 잃어,
물고기 입에 문 채 풀섶에 드네.
요점 정리
작자 : 김종직(金宗直)
형식 : 7언 절구
연대 : 성종 때
성격 : 관조적
제재 : 냇물, 가마우지
주제 : 역사의 인고를 안고 사는 곧은 정신
출전 : 점필재집(焰畢齋集)
내용 연구
보천탄 : 냇물의 이름
도화랑고 : 복사꽃이 뜬 냇물의 물결 높이
기척허 : 그 몇 척인가? 즉 (냇물이) 몇 척이나 불었는가?
한석 : 물 속에 솟은 바위
몰정 : 꼭대기에 물이 잠김
부지처 : 있는 것을 알지 못함
양양 : 쌍쌍
노자 : 가마우지과의 새
실구기 : 옛 터전을 잃다. '기'는 깃돌을 말함
함어 : 고기를 입에 물고
각입 : 돌아 들어가다
고포 : 부들과 줄섶
하경산수 - 정선작-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보천탄에서」 2수 중 첫째 수로 7언 절구이다. 기(起)·승(承)에서 비바람에 복사꽃이 떨어지고 냇물이 불어, 솟은 바위가 잠기고 말았다고 하여 냇물이 불었다는 상황의 변화를 부각시켜 놓고, 전구(轉句)에 와서 쌍쌍의 가마우지가 불어오는 냇물 때문에 터전을 잃었다고 했다. 그런데 결구(結句)에서 가마우지가 물고기를 입에 문 채 풀섶에 든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냇물이 불어 옛 터전을 잃었다고 해서 삶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시류(時流)에 따라 살 수도 없는 가마우지의 그러한 모습에서 우리는 역사를 인고(忍苦)하며 살아가는 곧은 정신을 볼 수 있다.
심화 자료
김종직의 시론
경술을 하는 선비는 문장을 못하고 문장을 하는 선비는 경술에 어둡다는 세상 사람들의 말이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로는 그렇지 않다. 문장이라는 것은 경술에서 나오는 것이니, 경술이 곧 문장의 근본이다. 초목에 비유하자면 뿌리 없이 어찌 가지와 잎사귀의 남은 빛이 있고 꽃과 열매의 성함이 있겠는가? 시경, 서경 등의 육예는 모두 경술이며, 시, 서나 육예의 글은 곧 그 문장이다. 진실로 능히 그 문장을 말미암아서 그 이치를 궁구하며 정밀하게 살펴나가고 넉넉히 젖어 들면, 이치와 문장이 나의 가슴에 융합되고 모여든다. 그렇게 되면 그것이 발현되어 언어와 사부를 하는 데서 저절로 공교함을 바라지 않고서도 공교해진다. 예부터 문장으로 시대에 이름이 나서 후세에 전해진 사람은 이와 같았을 따름이다.(출처 : 윤선생상시집)
김종직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性理學者) ·문신으로 본관 선산(善山). 자 계온(季渟)·효관(孝본). 호 점필재(米畢齋). 시호 문충(文忠). 경남 밀양 출생. 1453년(단종1) 진사가 되고 1459년(세조5) 식년문과에 정과로 급제, 이듬해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했으며, 정자(正字)·교리(校理)·감찰(監察)·경상도병마평사(慶尙道兵馬評事)를 지냈다. 성종(成宗) 초에 경연관(經筵官)이 되고, 함양군수 ·참교(參校)·선산부사(善山府使)를 거쳐 응교(應敎)가 되어 다시 경연에 나갔다. 도승지 ·이조참판 ·경연동지사(經筵同知事)·한성부윤 ·공조참판(工曹參判)·형조판서 ·중추부지사(中樞府知事)에까지 이르렀다. 문장과 경술(經術)에 뛰어나 이른바 영남학파(嶺南學派)의 종조(宗祖)가 되었고, 문하생으로는 정여창(鄭汝昌)·김굉필(金宏弼)·김일손(金馹孫)·유호인(兪好仁)·남효온(南孝溫) 등이 있다. 성종의 특별한 총애를 받아 자기의 문인들을 관직에 많이 등용시켰으므로 훈구파(勳舊派)와의 반목과 대립이 심하였다.
그가 죽은 후인 1498년(연산군4) 그가 생전에 지은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사관(史官)인 김일손이 사초(史草)에 적어 넣은 것이 원인이 되어 무오사화(戊午士禍)가 일어났다. 이미 죽은 그는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당하였으며, 그의 문집이 모두 소각되고, 김일손 ·권오복(權五福) 등 많은 제자가 죽음을 당하였다. 중종(中宗)이 즉위하자 그 죄가 풀리고 숙종(肅宗) 때 영의정이 추증되었다. 밀양의 예림서원(禮林書院), 구미의 금오서원(金烏書院), 함양의 백연서원(栢淵書院), 금산(金山)의 경렴서원(景濂書院), 개령(開寧)의 덕림서원(德林書院)에 제향되었다. 문집에 《점필재집(米畢齋集)》, 저서에 《유두유록(流頭遊錄)》 《청구풍아(靑丘風雅)》 《당후일기(堂後日記)》 등이 있고, 편서에 《동문수(東文粹)》 《일선지(一善誌)》 《이준록(彛尊錄)》 등이 있다. (동아대백과사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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