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변산 반도가 울고 있다 / 안도현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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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 반도가 울고 있다 / 안도현

 

선생님, 평소에 여행은 많이 하시지요?” 글쓰는 일을 업으로 여기고 살다 보면 이런 질문 앞에 자주 맞닥뜨리게 된다. 그때마다 나는 난처해진다. 내 인생에 여행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의도적인 나들이가 거의 생각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따금 여행과 관련된 체험을 글로 좀 써 달라는 청탁을 받을 때에도 곤혹스러워지기는 마찬가지다.

 

그럴 때면 먹고 살기도 바쁜데 무슨 개뼈다귀 같은 여행타령이냐고 상대방에게 괜히 핀잔을 주고 싶고, 특별하고도 즐거운 여행의 기억 하나 저장해 두지 못하고 사는 나 자신이 안쓰럽게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여행이 취미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을 이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시선으로 쳐다보곤 한다.

 

그렇다고 나만의 여행코스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사는 전주에서 가까운 부안에 변산반도가 있다는 사실 때문에 나는 종종 위안을 받을 때가 많다. 굳이 거창하게 여행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좋다. 김제 만경 너른 들을 건너가, 서해를 오른쪽으로 끼고 변산반도를 한 바퀴 휘 돌아오기만 해도 나는 그저 축복받은 인간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지난 가을에도 나는 몇 차례 변산반도 쪽에 가서 놀다가 왔다. 내소사 아래 민박집의 뜨끈한 구들장 위에 며칠 묵으면서, 절 초입의 전나무 숲길을 아름다운 비구니 스님과 함께 걸었으며, 그 뒷산을 타고 올라가 단풍나무처럼 빨갛게 물이 들고도 싶었다가, 밀물 들어 빛나는 곰소만을 내려다보기도 했다. 곰소 포구에서는 소주 한 잔에다 가을 전어회를 초고추장에 찍어먹었고, 그리고 백합죽도 먹었고, 바지락 칼국수도 먹었다.

 

내가 먹은 전어와 백합과 바지락은 모두 변산 앞바다와 그 개펄에서 생산된 것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생존의 터전이 새만금 사업이라는 개발 우선주의 앞에 위협받고 있는 현장을 바라보면서 나는 참으로 참혹하였다. 개펄을 메우기 위해 몇 해 전만 해도 우뚝 솟아 있던 산이 송두리째 사라져버렸고, 방조제는 변심한 애인같이 끝없이 바다 쪽으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그리하여 공사가 마무리되면 여의도 면적의 140배에 달하는 엄청난 땅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나는 논리와 수치로 새만금 사업을 이해할 능력도 재간도 없다. 하지만 생명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자 하는, 글쓰는 자로서 조개류인 백합과 바지락의 마음을 조금은 안다. 세계 최대의 간척사업 덕분에 머지않아 그들은 몸밖으로 관을 내밀어 바닷물을 쭉쭉 물총처럼 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들이 뒹굴며 살아가던 개펄 위로는 농토뿐만 아니라 거대한 공업단지나 비행장이 들어설 것이기 때문이다.

 

영월 동강에 쉬리가 있다면 부안 변산에는 바지락이 있다. 나는 믿는다. 동강과 쉬리를 살린 사람들은 변산과 바지락도 살릴 줄 알 것이다. 새만금 사업에 대한 정부와 민간공동조사단의 최종 결정이 아직 나지 않은 상태에서 나는 슬픈 바지락의 마음을 생각한다. 바지락을 하찮게 여기고 위험에 빠뜨려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바지락도 울고, 바지락을 먹고 사는 인간도 울고, 변산반도도 울게 된다.

 

안 그래도 조짐이 심상찮다. 변산반도의 끄트머리에 모항이라는 아주 작고 아늑한 포구마을이 있다. 지난 여름에는 난데없이 해일이 이 바닷가 마을을 덮쳤다. 전에는 한번도 없던 일이었다. 변산반도의 산과 바다를 인간들이 함부로 건드리는 데 대하여 성난 신이 이참에 엄중하게 경고를 내린 것인지도 모른다.

 

변산반도를 슬프게 해서는 안 된다. 그 곳의 바지락도 슬프게 해서는 안 된다. 그 쪽으로 향하는 내 가난한 여행길을 슬프게 해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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