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귀 출신 최덜렁 / 동화 / 방정환
by 송화은율방귀 출신 최덜렁
여러 백 년 전 이야기로 퍽 우스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하지요.
그 때 서울 잿골 김 대신 댁 사랑에 최 덜렁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본 이름은 따로 있지만 성질이 수선스러워서 어찌 몹시 덜렁대는지, 모르
는 다른 대신 집에서도 최 덜렁 최 덜렁 하게 되어 그의 얼굴은 몰라도 이
름은 모르는 이가 없을 판이었습니다.
너무 수선스럽게 덜렁대므로 하려던 일은 다 잊어버리고, 당치도 않은 딴
일을 하여 실수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 대신 때때로 능청스런 꾀를 잘 내므
로 늘 덜렁으로 실수된 일도 능청으로 덮어 버렸습니다.
하루는 김 대신의 부탁을 받아 가지고, 안동 서 판서 댁에를 가게 되었는
데 타고난 천성이라, 대문을 바로 보고 들어가지를 않아서 서 판서 옆집 이
대신 댁으로 쑥 들어갔습니다.
꼭 서 판서 댁인 줄만 알고, 덜렁 최 선생이 그 집 하인보고 대감 계시니
한즉, 사랑으로 안내하여, 올려 앉히고, 점잖은 사람이 의관을 정제하고 나
왔습니다.
“나는 잿골 김 대신 댁에서 온 사람이올시다. 주인 대감을 좀 뵈오려
고…….”
“네-이 사람은 이 댁 이 대신 댁에 있는 권영우라는 사람이올시다. 뵈옵
기가 늦었습니다. 대감께서는 지금 잠깐 안에 계십니다. 잠깐만 기다리시지
요.”
덜렁 선생이 이 대신 댁이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것 큰일 났
구나 하고, 그제야 후회하였으나, 별수 없이 큰 변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만 저만한 사람도 아니고, 이 대신을 만나자고 해 놓았으니, 공연히 희롱
한 것처럼 되어 당장에 큰 탈이 내릴 것은 정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냥 뛰어 달아날 수도 없고, 모르고 그랬다 할 수도 없
고, 입맛도 다실 수 없고, 머리도 긁을 수 없고, 앉은 채 앉아서 속으로만
쩔쩔매다가, 엉큼한 꾀를 내어 가지고, 능청스럽게,
“아니 아니 기다리기까지 할 필요는 없는 일입니다. 형장을 보았으니까,
대감께서까지 말씀할 것 없이 형장께 말씀하지요. 좀 염치없는 말씀입니다
만 우리끼리야 말씀 못할 것이 있겠습니까. 실상은 김 대신의 부탁으로 먼
길을 떠나는 길인데, 하도 바쁘니까 요기를 하고 나설 것을 잊어버려 놓아
서, 벌써부터 속이 시장하여서 허허허허……. 그렇다고 지금 도로 재동 꼭
대기로 도로 갈 수는 없고 하여 허허 허허, 전혀 모를 댁도 아니고 하니까
염치 없지만 이 댁에서 요기를 좀 하고 가려고……. 허허 허허, 그래서 허
허 허허.”
밥 한 그릇을 금방 먹고 나와서 당장에 배가 부르건만 하도 급하고, 별 꾀
는 없으니까 얼른 둘러댄다는 꼴이 이 따위로 너털웃음만 섞어 가며 둘러대
었습니다.
“예 예, 그러시겠습니다. 바쁜 때는 아무라도 항용 하기가 쉽습니다. 잠
깐만 기다리십시오. 준비 없는 음식이라도 곧 내오게 하겠습니다. 잠깐 앉
아 계십시오.”
벌써 그 집 사람들은 알아채렸습니다.
얼굴은 모르겠어도, 김 대신 댁 최 덜렁이가 잘못 알고 들어왔다가 남부끄
러우니까, 그렇게 당치도 않게 꾸며대는 것이 분명하다고, 그 집 안사랑,
웃사랑, 아랫사랑에 있는 모든 문객들과 하인배들까지 쑥덕쑥덕 ‘최 덜렁
이라지? 최 덜렁이라지’하고, 모두 한 번씩 가깝게 와서는 그 얼굴을 보
고 보고 하였습니다.
기왕 최 덜렁인 줄 안 바에는 그가 할 말이 없어, 거짓 배가 고픈 체하는
것까지 알았으니, 밥상을 굉장히 차려서 억지라도 많이 먹게 하여, 배가 불
러 못 일어나고 고생하는 꼴을 보자 하고, 크디큰 동이처럼 큰 주발에 밥을
우뚝하게 담고, 대야같이 큰 그릇을 골라서 국을 담고, 여러 가지 반찬을
갖추어 상을 내어 왔습니다.
“시장하시다는데 너무 기다리게 하여 미안합니다. 반찬이 없어서 부끄럽
습니다마는 시장하시다니까 그래도 많이 잡수어 주실 줄 알고 그냥 내왔습
니다.”
덜렁 선생은 가뜩이나 배가 부른 판에 섣불리 거짓말을 해 놓고 걱정하고
앉았다가, 그 무섭게 많이 담은 밥을 보고, 저절로 두 눈이 둥그래졌습니
다. 그러나 자기 입으로 시장하다고 청해 논 것을 안 먹을 수도 없었습니
다. 먼저 국 국물을 몇 번 떠 먹고, 산같이 담긴 밥을 억지로 다섯 숟갈을
떠 먹으니, 숟가락이 저절로 손에서 떨어질 것 같고, 죽여도 못 먹겠습니
다.
그러나,
“어서 잡수시지요, 국이 식었으니까, 다시 떠내 오지요.”
하고, 곧 더운 국을 또 내오고 하면서, 성화 같이 권고하는 통에 죽을 액을
때는 셈잡고 새 국을 또 먹고, 쉬엄쉬엄 밥 한 숟가락에 숨을 한 번씩 쉬면
서 반 그릇이나 먹었습니다. 그래노니 인제는 일어나려도 일어날 수도 없이
되었습니다.
“아이고, 인제는 더 못 먹겠습니다.”
“그러지 마시고 숭늉에 말아서 조금 더 잡수시지요. 시장하신 때야 그것
한 그릇이야 못다 잡숫겠습니까……. 국은 식성에 즐기시지 않는 모양이니,
다른 반찬을 더 내 오지요.”
하고, 그 집 사람들은 억지로 밥을 말아 주면서 일변 국그릇을 들여보내고,
고기를 구운 것을 내왔습니다. 단 한 술도 더 들어갈 곳은 없고, 체면상 말
아논 밥이야 아니 먹을 수도 없고……. 죽기를 결단하고 눈을 흡뜨고, 물에
만 밥을 먹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반쯤 먹었을 때, 벌써 목구멍에까지
가득 차서 자칫하면 도로 기어나올 지경이었습니다.
“아이고! 이제는 죽어도 못 먹겠습니다.”
하는 소리가 체면 불구하고, 저절로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더 권고하지는
아니하나 모든 사람들이 자기 얼굴을 보면서 픽픽 웃습니다.
덜렁 선생이 또 무슨 창피한 짓이 생겼나보다 생각하고, 양치물을 들어 그
물에 자기 얼굴을 비추어 보니까, 딴은 창피한 일이었습니다. 자기 코 위에
하얀 밥풀이 두 개나 붙어 있는 것을 이 때까지 모르고, 점잖을 빼고 있었
으니 누군들 웃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이제 와서 얼른 떼기도 부끄러운 일
이라 배포 유하게 그냥 모른 체하고 앉아서 상를 물려 낸 후에 천천히,
“한 가지 더 청할 것이 있는데……. 종이와 버루를 좀 주셨으면 좋겠습니
다.”
하였습니다.
즉시 내어 온 종이를 받아 펴들고, 붓을 들어 무어라고, 여러 줄 글씨를
쓰더니, 또 한 장으로 그 편지를 두루 싸가지고, 코에 묻었던 밥풀을 떼어
발라서 꼭꼭 봉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여러 사람을 보고 하는 말이,
“아까 여러분이 웃으신 것은, 내 코에 밥풀 붙은 것을 보고 웃으신 모양
이지만 실상은 이 편지 겉봉을 붙이려고, 미리 붙여 두었던 것입니다. 그렇
게 알아 두십시오.”
하도 엄청난 수작에 이 대신 집 문객들은 코가 먹먹하였습니다.
“자아, 후의의 환대를 감사히 받고 갑니다. 여러분, 편안히 계십시오.”
인사를 마치고 간신히 기둥을 붙잡고, 일어나기는 났으나 억지로 힘들여 일
어나는 통에 구린내 나는 소리가 거침없이 뿡-하고 나왔습니다.
편안히 가시라 하면서 따라 일어서던 문객들은 그만 허리가 아프게 우스운
것을 억지로 참노라고, 손으로 틀어막고, 낄낄거리는데 덜렁 선생은 시치미
딱 떼고,
“왜들 웃으십니까? 여러분은 혹시 내가 방귀라도 뀐 줄 알고 그러십니
까?”
하고 나서 발바닥으로 , 마룻바닥을 몹시 문질러 삑삑 소리를 내고,
“이것 보시오. 마룻바닥에서 나는 소리올시다……. 정말 방귀란 것은 이
런 것이랍니다.”
하고, 여러 사람에게로 궁둥이를 삐쭉 내밀고, 아까부터 잔뜩 참고 있던 방
귀를 속이 시원하게 뀌었습니다.
“하하하하, 변변치 않은 것을 알려 드리느라고 실례하였습니다. 편안히
계십시오.”
해 놓고는 어이가 없어, 입만 딱딱 벌리고 섰는 문객들을 돌아보지 않고,
휘적휘적 가 버렸습니다.
그 후 이 대신이 그 말을 듣고, 남자답고 재미있는 사람이라 하여 자기 관
할 아래에 상당히 좋은 벼슬을 시켰습니다.
그래 그 후로 덜렁 선생은 항상 말하기를,
“입신 출세라는 것은 방귀 같다.”
고 하더랍니다.
<《어린이》4권8호, 1926년 9월 1일 ,깔깔 박사>
출처 : 공유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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