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거리의 축하식(祝賀式) / 나혜석
by 송화은율밤거리의 축하식(祝賀式) / 나혜석
─ 외국의 정월 ─
‘프랑스의 정월’이란 제(題)로 써보내라 하셨으나 1년 8개월 동안 구미
만유 중 두 번 정월을 맞이하였으나 한 번은 독일 베를린에서, 한 번은 미
국 뉴욕에서 지냈으므로 불행히 프랑스 정월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구미 각국의 풍속 습관이 대동소이하외다. 조선의 정월이 둘인 것과 같이
구미 각지에는 크리스마스와 정월 두 가지가 있어 대개 크리스마스를 성황
으로 지내고 나중에 정월을 지내게 되므로 어떤 것이 정말 정월인 줄을 모
르게 됩니다.
그리하여 프레젠트는 대개 크리스마스에 하고 맙니다. 프레젠트의 성황은
심하여 전 가족끼리, 친구끼리, 회사끼리, 야단야단입니다. 그리고 보너스
를 타가지고는 부인의 구두, 야회복으로 대부분 허비하고 가족을 위하여 소
비함은 동서양이 일반입니다.
섣달 그믐날은 전 시민이 밤을 새웁니다. 식탁에 음식 술을 베풀어 놓고
가족이 둘러앉아 축배를 나누고 만세를 부르다가 12시가 울리는 동시에 사
방에서 종소리, 교회당 종소리가 울리자 일제히 일어나서 잔을 나누고 춤을
춥니다. 그러자 창문을 열고 이 집에서 저 집으로 건넛집에서 앞 집으로,
색종이를 걸치고 늘입니다. 그리고 신년축하를 합니다. 납(蠟)을 녹여 물
속에 집어넣고 그 굳어나오는 형상을 보아 일년 재수를 봅니다. 그것을 보
고 웃고, 좋아하고, 실심하고, 낙망하고 합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 중앙
시가로 모여듭니다. 거기는 수라장이 되어 비틀거리는 자, 고깔을 쓰고 북
을 치고 껑충껑충 뛰는 자, 이 날은 아무에게라도 키스를 해도 관계없다 하
여 남자가 여자를 쫓아가면 여자는 악을 쓰고 달아납니다. 나는 베를린에서
어느 친구와 같이 구경을 갔다가 내가 농담으로,
“여보 부럽지 않소, 한 번 행해보는 것이 어떻소.”
“글쎄, 장난 좀 해 볼까.”
한 여자를 쫓아가 키스를 했습니다. 나는 멀거니 서서 구경을 하다가 어느
독일 남자에게 붙잡혔습니다. 나 있는 데로 그 사람이 들어오다가 깔깔 웃
으며,
“저것 보게, 나를 놀리더니 자기가 벌을 받는구나.”
하였습니다.
주점에 만원, 카페에 만원, 군악을 뚜드리고, 픽픽 쓰러지고, 껑충껑충 뛰
고, 서로 붙잡고 밀모치고 야단입니다. 길바닥은 종이 부스러기가 발에 툭
툭 채입니다. 이렇게 날이 새도록 돌아갈 줄을 모르게 남녀노소 혼동하여
지냅니다.
정월에는 신년회, 가족회, 친우회 등을 열어 혹 마작, 혹 트럼프, 혹 유흥
으로 날을 보내고 밤을 새우고 웃고 춤추고 합니다. 여행 중 호텔 생활로
말도 변변히 모르고 길도 잘 모르고 놀 곳도 모르고 초대도 별로 받은 데
없고 춥기도 하여 별로 정월이라고 특별한 구경한 것이 없어서 이상 몇 가
지로 썼을 뿐입니다.
『中央[중앙]』(1934. 2)
출처 : 공유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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