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화성
by 송화은율저작권 보호를 위해서 일부의 글만 교육용으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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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일수
박화성 문학은 이즈음의 감각적 리얼리즘과는 다른 서술적 리얼리즘이다. 감각적 리얼리즘이 주관적 수사성과 내용이 사상(捨象)되어 버린 기교 일방주의에 빠져 버린 것과는 달리 화성 문학의 서술적 리얼리즘은 있는 그대로의 소박하고 실재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하되 거기서 머무르지 않고 우리 민족의 운명과 직결이 된 정의의 미학이 내용에 가득 차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화성 문학에서 보는 슬픔은 단순한 어느 한 사람만의 슬픔이 아니라 온 겨레의 슬픔이 한데 응어리진 정수로 승화되어 그 슬픔을 딛고 넘어가는 무궁한 지기(至氣)의 힘으로 뻗어 나가고 있다.
또한 화성 문학이 밝히고 헤쳐내는 가난은 단순한 숙명적인 가난이 아니라 우리 겨레가 타의적으로 강요된 가난임을 본질적으로 직시하면서 그 괴로움과 외로움을 공동체적 수난으로 의식하고 이를 함께 타개해 나가기 위해 굳건한 의지의 꽃을 피운다.
화성 문학의 출발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침략에 의해 압박과 설움 속에서 온갖 탄압과 착취를 당했던 우리 민족의 앞장에 서서 온 겨레에게 가난과 슬픔과 괴로움을 이겨내도록 용기를 불어넣어 줌으로써 일제에 저항하자는 데서 이루어졌다.
화성은 1904년 4월 16일 목포에서 태어나 그곳 정명 여학교 고등과와 서울 숙명 여자 고등 보통학교를 마치자 영광 중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독립지사들과 사귀며 저항 의식을 다져나갔다.
1923년 21살 때 첫 작품인 단편 소설 <팔삭동>(자유원예지)을 발표하고 곧장 일본으로 건너가 니흔 여자대학 영문과에 다니면서 집필을 계속하였다. 그리하여 1925년에 겨레들 가운데서도 가장 압박과 설움이 극심했던 여직공들의 참담한 생활을 소재로 한 <추석전야>로 《조선문단》지에서 추천을 받고 본격적인 작품 생활을 시작했다.
이어 1932년에는 여성 작품으로서는 우리 문학사에서 최초의 장편이며 역사 소설인 <백화>를 동아일보에 연재했다. 이 작품은 비단 여성 작가의 장편 역사 소설이며 동시에 신문 연재 소설의 효시였다는 데 의의와 가치가 있을 뿐 아니라 한 여성의 불행을 식민치하의 민족적 시각에서 인식하고 형상화함으로써 역사 의식을 뚜렷이 제시해 줌으로써 본격적인 문학성을 보여주었다는 데 있다.
화성 문학을 해방 전의 제 1 기와 해방 후의 제 2 기로 편의상 나눈다면 제 1 기의 화성 문학은 <하수도공사>(1931)<홍수전후>(1934) <고향 없는사람들>(1935) <한귀(旱鬼)>(1935) <헐어진 청년회관>(1934) 등 1930년대가 가장 활발했던 시기였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한결같이 일제 식민치하에서 가난하고 핍박받고 굶주린 겨레의 참상을 있는 그대로 서술적으로 묘사하면서 겨레에게 스스로 이를 극복해 낼 수 있는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 준 저항 의식이 짙은 작품들이다.
그런데 그 무렵 대부분의 리얼리즘 작품들은 있는 현상을 묘사하는 데 그치거나 도피해 버렸으며 상황적인 진실을 인식하지 못했었다. 일제 식민치하에서 조상 대대로 살아 이어온 내 나라. 내 강토에서 침략자의 탄압과 천재마저 겹친 처참한 환경 속에서 이에 저항하는 힘을 가지고 민족의 정신을 향도했던 전형성을 창조한 데 화성 문학이 지닌 리얼리즘의 참된 가치가 있다.
이처럼 제 1 기의 화성 문학은 일제치하에서 겪어야만 했던 온갖 슬픔과 괴로움 속에서 우리 겨레에게 이를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저항적인 의지의 미학을 창조한 것이다.
한편 제 2 기의 <활화산>(1949) <부덕(婦德)>(1955) <고개를 넘으면>(1955) <사랑>(1956) <태양은 날로 새롭다>(1960) <벼랑에 피는 꽃>(1962) <눈보라의 운하>(1964) <거리에는 바람이>(1964) 등 일련의 장.단편은 해방 전의 제 1 기에서 볼 수 있는 식민치하의 저항적인 민족 의지의 미학을 분단치하의 통일 의지의 미학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새로운 해방의 시대를 짊어질 젊은 학도들의 내면 세계를 조명하여 그들의 포부와 이상 추구에 올바른 길을 제시하면서 신구세대간의 생리적 대립이 아닌 전통정신으로 이어지는 동질적인 세계를 추구한 <고개를 넘으면>에서 온갖 구습의 반대를 무릅쓰고 4.19 유복자를 가진 여인과의 사랑을 성취함으로써 4.19 정신의 계승을 창출해 낸 <태양은 날로 새롭다> 등에서 화성 문학의 리얼리즘의 근본 정신이 일관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제 1.2기를 통해 본 화성 문학의 근본 정신은 정의를 위해서는 어떤 난관이라도 딛고 넘어서서 새로운 시대와 세계를 향해서 전진해 나가는 역사 의식과 민족 의식에 투철한 전형적인 인간을 창조하는 데 있다.
여기에 수록된 <바람뉘>(1958년 4월~1959년 3월, 여원)는 제 2 기에 속한 장편 소설이다. 가장 처참한 분단의 비극이었던 6.25를 겪은 세대들이 그 후유증을 강인한 의지로 극복해 내면서 새로운 삶을 지향하는 작품이다.
등장한 인물들은 어느 누구나 6.25에 맺히고 얽힌 사람들이다. 납치 미망인 장운희 여사를 비롯해서 아들이 돌아올 날을 기다리며 사는 그녀의 친정 어머니, 행여나 동생이 이북에 살아 있기만을 바라는 그녀의 시아주버니, 6.25때 아내가 폭사를 당한 그녀의 어릴 때 남자 친구인 황석 등등 모두가 6.25로 인해서 가슴에 깊은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다.
남편이 납치당한 장운희와 아내를 잃은 황석이 어릴 때 맺은 우정을 동란 후의 어려운 세파 속에서도 서로 믿고 아끼며 그들의 우정의 모럴을 지속해 나가는데 하나도 부자연스러운 데가 없다.
그것은 서로 좋아하면서도 남들의 눈 때문에 참거나 위장을 하는 데서 오는 그러한 우정이 아니라 상대편의 현실을 깊이 이해하고 그들의 관계를 슬기로써 승화시켜 나가기 때문에 우정이 진실한 인간성으로서 미화되고 있다.
물론 그들은 연모를 하지만 그것은 성적인 것이 아니라 이해력으로 정화가 된 상태의 관계이기 때문에 순수한 플라토닉 러브이기보다는 정신적인 친구로서 떳떳하게 유지된다.
장운희는 아직 남편의 생사가 미확인된 상태이고 세 아이의 어머니일 뿐 아니라 두 시아주버니의 가족들과 왕래하며 그들의 도움으로 살아가고 있다. 때문에 어릴 때 남자 친구인 황석이 아내를 잃고 두 아이를 기르는 홀아비이지만 그들의 관계는 사회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또 모럴로나 이성적인 사랑을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그것을 무엇보다도 슬기있게 이해하며 우정 관계를 흐트러지게 하지 않으려는 강인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 바로 황석이며 장운희 역시 모든 것을 초월해 버리고 오직 사랑만을 불태우려는 몰지각한 여성도 아니다.
이러한 두 남녀의 관계는 어느 시대나 흔히 있을 수 있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할 지 모르나 실은 그 깊숙한 곳에 흐르는 심리적인 저변에는 6.25의 체험에서 오는 모럴 의식에서 우러난 관계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것은 남편이 납북된 장운희만 해도 남편에 대한 애정과 세 아이에 대한 모성애가 지극하기 때문에 남편이 없는 공백 상태로 인해 성적인 고뇌나 외로움에 사로잡히기보다는 오히려 굳은 의지로 이겨 나갈 수 있는 여자이기 때문이다. 특히 남편만이 아니라 오빠까지도 납북이 되고 홀로 살면서 오직 오빠가 돌아오기만 학수고대하는 친정어머니의 존재가 그녀로 하여금 의지를 강하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장운희는 남편을 쉽게 잊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세 아이에게 쏟는 정이 남편에게 향하는 사랑의 지속성을 더욱 강하게 하고 오빠에 대한 그리움은 남편에 대한 존재를 더욱 강하게 의식하게 했으며 이를 다름 아닌 홀로 사는 친정 어머니의 존재가 강력히 뒷받침해 주고 있다.
이러한 장운희의 정신적인 체험은 곧 6.25에 대한 피동적인 수난의 잔재가 아니라 6.25를 의식하고 6.25 이후에 일어나는 갖가지 현실에 대한 건전한 모럴의 전형성을 창조한다.
더욱이 바람뉘와 같은 세찬 파도를 헤쳐 나갈 수 있는 의지력과 행동력을 지닌 황석의 존재는 그들의 우정 관계를 보다 확고하게 해주고 있다.
부산에서 황석이 위독할 때 시댁의 눈치를 살피고 간호하러 온 장운희가 서울에서 내려갈 때만 해도 세 아이는 적극 찬동을 했으며, 우연히 알게 된 시아주버니만 해도 완쾌 후 황석과 면담한 다음에는 그들의 우정 관계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것만 보아도 그들의 우정 관계가 그만큼 떳떳하고 건전한 모럴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모럴의 창조는 6.25에 대한 건전한 의식의 소산이며 그 건전한 의식은 분단 상태를 극복해 나갈 수 있는 힘의 초석이기도 하다. 자칫 6.25에 대한 감상적인 피해 의식에 사로잡히기 쉬우며 흔해 빠진 한에 사무쳐 버리기 일쑤인데, 이 작품의 장운희와 황석은 체험으로써 이를 극복하여 더욱 강해진 신념을 가지고 새 생활을 향해 한치도 뒤돌아봄이 없이 꾸준히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신념과 의식의 소유자만이 분단을 극복할 수 있는 전형성을 지닐 수 있고 탈 6.25가 아닌 극 6.25를 창조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 작품의 테마는 이러한 인간의 창조에 있다고 본다.
한편 <햇볕 내리는 뜨락>은 일종의 모럴이 짙은 교훈 소설인 것 같지만 실은 남성에게 희생이 된 한 여성의 건전한 생활을 그린 작품이다.
국민학교에서 중학을 진학한 은초라는 소녀를 통해 상처를 했다고 속여 두 딸까지 낳은 다음 결국은 딸마저 빼앗기고 혼자 유랑을 할 수밖에 없는 여인(남정원)의 얘기를 서술하고 있다.
표면에는 소녀(은초)가 구박을 받아가면서도 이해력 있는 사촌 오빠의 도움으로 일류 여중학교에 합격을 하고 끝내는 어머니까지 찾게 된다는 이른바 소녀의 인정 스토리이지만 그 내면에는 남성 위주의 결혼 제도에 희생이 되어 인생을 망쳐 버린 여인의 비극이 배경이 깔려 있다.
그런데 작가는 이 여인의 비극을 슬픔으로만 끝내 버리지 않고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새로운 여인상을 창조해 내고 있다. 속아서 소실이 되어 버린 여인이 결국에 두 딸을 본댁에 빼앗기고 뜨내기가 된 다음 다방 마담이나 레지로 일한다는 소문이었으나 이 여인은 그로부터 독학을 하여 교원 자격 검정 고시에 합격을 한 다음 시골 벽지의 국민학교로 자원을 해서 건전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리고 아이들이 성장하기를 조용히 지켜보며 여성으로서의 사회 활동을 한다.
흔히 여자는 결혼이 궁극적인 목적이 되어 버리고 더욱이 결혼에 실패한 여자는 재혼이 그녀를 구원하는 가장 이상적인 목표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녀에게 재혼보다는 사회 생활을 통해서 재기하도록 하고 있다.
그녀의 결혼 실패는 단순한 남자의 속임수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속일 수밖에 없고 또 속이고도 넘길 수 있는 남성 위주의 결혼 제도에서 오는 것이다. 이러한 모순된 제도를 두고 재혼을 하여 다시 잘 살 수 있다 하되 그것은 그 여자 한 사람만의 해결은 되지만 전체 여성의 해결은 되지 못한다.
작가는 이 작품의 주인공 은초의 어머니로 하여금 재혼의 길을 택하거나 또는 조용히 앉아서 해결되기만 기다리게 하기보다는 우선 건전한 의식을 갖게 하였고 그래서 국민학교 교사로 만들었고 또한 벽지에서 문화 활동을 함으로써 개인의 해결보다는 사회적인 해결의 방향으로 서게 했던 것이다.
이러한 그녀와 딸 은초가 상봉은 하게 되지만 이미 그 전의 그녀가 아닐 것이다. 딸에 대한 애정도 한결 맑아지고 자신이 생기고 본부인의 눈치만 보아 오던 소극적인 소실이 아니라, 누가 뭐라고 하든 은초의 어머니로서 당당한 사회적 존재가 된 것이다.
이제 그녀는 은초 아버지의 소실도 아니요, 본부인의 눈치를 받아야 하는 시앗도 아니다. 오로지 사회의 한 여성으로서 교육자로서 지방 문화의 활동가로서 은초 자매의 다시없는 어머니인 것이다.
그녀는 은초의 어머니가 되기 위해서 소실을 감수하는 여자가 아니라 사회적인 한 여성으로서 은초 자매의 어머니이다. 남편을 주인으로 모시는 피동적인 아내로서의 어머니가 아니라 독립된 한 여성으로서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본부인이 죽은 다음에 그 집 안방을 차지하려고 기회를 기다리는 그러한 소실은 이미 아니다. 이 작품이 창조해 낸 새로운 인간형은 공부를 잘하는 은초보다는 바로 그의 어머니의 사회적 성격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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