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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자의 길 / 장준하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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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자의 길

 

이 글은 장준하전집의 제3권으로 장준하 선생(1915-1975)이 쓴 여러가지 원고를 모아놓은 책이다. 먼저 장준하전집은 (돌베개), (지식인과 현실), (민족주의자의 길) 3권으로 되어 있 다. 제1권의 (돌베개)는 장준하선생이 1944년 1월 일본군 학도병으로 징집을 당하여 중국에 끌려가 그 해 7월 일본군을 탈출, 광복군 대위로 임관하는 과정을 거쳐 1945년 11월 김구주 석의 비서로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한 사람으로 귀국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필자의 체험 을 바탕으로 생생하게 기록한 것이다.


이 책의 모든 기록은 일제강점기의 말엽과 광복 전후에 우리 민족이 겪은 현실과 시련의 한 부분을 글로 기록한 민족수난사의 소중한 문헌이다. 그는 일제강점기에도 광복된 이후에 도 우익도 되지 못했고 좌익도 되지 못했다. 오직 민족주의자로 자신의 삶을 살아왔다.

이 전집의 제3권인 (민족주의자의 길)은 이러한 장준하선생의 사상의 편린을 볼 수 있는 좋은 글이다. 여기에 실린 글들은 큰 목차로서 (민족주의자의 길), (머리 숙이라 민권 앞에), (사 상계지 수난사), (브니엘), (나의 사랑하는 생뢍)과 선생의 생존시 각종 좌담의 발언록과, 부 록으로 선생이 타계하고 난 이후의 선생에 대한 추모의 글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서 요약 하는 글은 그 중에서 (민족주의자의 길)편의 한 장인 (민족주의자의 길)로 장준하선생의 민 족주의 사상의 바탕과 뼈대를 잘 이해할 수 있는 글이라 생각하여 정리한 것이다.

[읽어보기]

민족주의자의 길

1.민족주의자가 가야 할 길은 무엇인가? 한 인간이 민족적 양심에 따라 자기의 생애를 살 아가는 길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기의 개인적인 인간적인 삶, 고달픔과 보람을 민족의 그것과 함께 하는 것이리 라.

민족적인 삶이 헐벗고 굶주리고 억압받고 있을때 민족적인 양심에 살려는 사람의 눈물과 노력은 모두 이런 민족적인 간난(艱難)을 극복하려는 데 바쳐진다.

하물며 민족이 민족으로서의 존재조차 없어지려할 어두운 시절에는, 민족이 외세의 침략 에 눌리어 그 마지막 숨통이 끊어지려는 암울한 시절에는, 민족주의자는 자기의 생명조차 민족적인 삶을 되찾는 싸움 속에서 불태우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민족의 생명, 민족의 존재가 이미 없어져버릴 때는 민족의 한 사람인 그의 개인 적이고 인간적인 생명과 존재조차 없어져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민족적인 생명과 존재와는 따로 있는 자기, 민족의 생명이 끊어진 뒤에도 살아있는 자기, 민족이 눌리고 헐벗고 있을 때 그렇지 않은 자기는 이미 자기아닌 자기이며, 그렇기에 자기 의 생명을 실현하는 인간이 아닌 것이다.

그것이 민족적 양심에 살려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자기의 삶을 사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참으로 인간적인 자와 그렇지 않은 자가 살아간 길의 갈림점이었다.

애국자의 길과 매국노의 길, 민족적 사랑의 길과 배신의 길이 갈리는 길목인 것이다.

그렇기에 비민족, 반민족적인 길에 빠져 버리거나 스스로 택하는 자의 모든<개인적인>< 인간적인> 번뇌는 아무리 그것이 절실하고 불가피하고 자기대로 불행하게도 민족적인 삶의 길이 험난했던 민족의 경우에는 살아가는 일조차 이렇게 험난했 다. 말 그대로, 삶은 쉽지만 행동은 힘들었고 그랬기에 구슬처럼 맑게 살아간 젊은 시인조차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윤동주)라고 옥중에서조차 절규하지 않았던가?

우리 민족의 지난 날, 더욱 가까이 최근세는 정말 험난의 연속이었다.

세계의 시궁창이 이리로 흘러들어왔고, 세계의 모순, 세계사의 범죄가 이 땅을 무대로 일 어났다. 산 높고 물 맑은 강토에 살던 착한 우리 백성들은 홍수처럼, 악마의 불길처럼 밀려 드는 이 세계사의 시궁창물에 휩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세계사의 악중의 악인 제국주의가, 악마 중의 악마인 군국주의가 그 가장 표독한 이빨을 우리 민족에게 들이댔던 것이다.

누르고 뺏고 마침내 말조차 빼앗고 성조차 갈려고 했다. 까닭없는 싸움터로 내몰아 앞세 워 죽이고 마지막 땀방울까지 빼앗아가고 인류의 족보 위에 한민족의 존재조차 말살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표독한 이빨 앞에서도 끈질긴 항쟁이 있었다. 비록 총칼 든 전투, 이름난 의사.열 사가 아니더라도 들판에서, 공장에서, 낯선 이국땅에서 끊임없이 싸웠다. 이 싸우는 민중에 게는 바로 민족적인 삶이 자기의 개인적인 삶이었고 국토를 빼앗기는 것은 생활의 터전을 빼앗기는 것이었다. 그러기에 광복은 생활의 터전과 자기의 인간적인 삶을 되찾는 길이었다. 이와는 달리 애국이 자기의 삶과 일치하지 않고 지식의 논리가 삶의 터전에 뿌리박지 못 하고 있던 일부 지식인 지도층에서는 민족에 대한 배반이 일어났다.

하지만 고달프고 외로운 듯보였던 항쟁의 길은 온 민중이 함께 있는 길이기에 흔들리지 않았으며, 그렇기에 그 승리의 영광은 더욱 보람찬 것이었다.

2 장구한 싸움 끝에 일제는 패망하고 우리 민족에게는 광복이 왔다.

빼앗던 자가 망하고 억누르던 자가 쫓겨가고 포악한 침략전쟁이 패망하여 우리 민족의 삶 을 다시 찾는 이 해방의 순간보다 더한 감격이 어디 있겠는가?

민족해방의 환희, 그렇게도 그리던 기쁨, 이 기쁨을 기다리고 참고 견딘 어두운 고통, 이 고통스러운 싸움 속에서 그리던 희망, 이 기쁨과 희망을 현실로 실현하려는 설렘, 이 벅찬 설렘을 무엇에다 비길 수 있으랴.

이 벅찬 설렘이 하나하나 실현되고 알차게 영글어 갔다면 이에 비길 행복이 어디 있으랴 만, 세계사의 흐름은 그렇게 쉽사리 우리 민족의 앞길을 밝혀주지는 않았다. 압제자 일본군 국주의를 무장해제하기 위해 남북한에 나누어 진주한 외국군은 군사적 진주와 점령에 그치 지 않고 이것을 정치적 진주와 점령으로 굳혀 갔다. 세계사의 새로운 모순, 동서 냉전체제라 는 새로운 범죄가 우리의 강토, 우리 민족의 생명 위에서 새로운 운며을 장난질했다.

게다가 세계사의 이와 같은 모순이 이 민족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이 새로운 외세 에 의한 민족의 양분이란 것을 분명히 깨닫지 못하고 이를 권력장악의 조건으로 이용한 일 부 신생권력층은 안에서, 밖에서 강요한 양분체제에 순응하였다.

통분스러운 일이지만 이렇게 민족은 양분되었고, 통일을 갈망한 민중의 염원은 현실적인 힘을 얻지 못하고 내외가 상응한 분단체제에 묶여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원통한 냉전체제에 의한 민족의 분단은 기억하기도 참혹한 열전으로 터지고 말았다.

도대체 우리에게 언제 그토록 불구대천의 원수로 갈라진 무슨 주의가 있었고, 그 주의에 따 라 나라와 민족을 두 동강이 내어 살기를 원했던가? 그뿐인가. 주의를 빌미로 그 가장 더러 운 동족 상잔을 우리가 청부맡아 했다니 5천년 민족사 앞에 무슨 낯을 들 수가 있겠는가.

회상하기도 끔찍하고 몸서리친 일이었다.

전쟁에 앞서 평화를 확보한 자보다 이긴 승자는 없다. 하물며 동족과 형제의 싸움에, 평화 보다 더 영광스러운 승리는 없다.

전후의 냉전체제에 의한 남북의 분단은 적어도 두 가지 의미에 있어서 우리 민족에게 자 기부정을 의미하고 있다. 하나는 이 분단에 대응한 국내세력의 움직임이 어떠했던 그 기본 적 계기는 외세에 의한 것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분단된 민족은 역사의 실천단위로서 적어 도 주체적 자기 존재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둘로 나누어진 그 한쪽은 하나의 주체 적 단위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는 강변(强辯)은 분단의 합리화를 위한 강변일 뿐 이다.

모든 통일은 좋은가?

그렇다. 통일 이상의 지상명령은 없다. 통일로 갈라진 민족이 하나가 되는 것이며, 그것이 민족사의 전진이라면 당연히 모든 가치있는 것들은 그 속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공산주의는 물론 민주주의, 평등, 자유, 번영, 복지 이 모든 것에 이르기까지 통일과 대립되는 개념인 동 안은 진정한 실체를 획득할 수 없다. 모든 진리, 모든 도덕, 모든 선이 통일과 대립되는 것 일 때에는 그것이 거짓 명분이지 진실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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