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민족과학의 뿌리를 찾아서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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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과학의 뿌리를 찾아서 / 박성래



저자 朴星來교수는 1939년 충남 공주 출생으로 우리나라 고학사 분야의 몇 안되는 개척자 중의 한분이다. 저자는 여러 저서나 강연을 통해 늘 '민족과학' 을 강조해오면서 우리의 과학기술 유산 과 전통에 대한 무지와 편견을 깨우치고 바로잡는 일에 적극 앞장서왔다.

그가 말하는 민족과학이란 국수주의적이거나 독선적인 것이 결코 아닌, 우리 의 전통과학과 현대과학 사이의 단절을 극복하고 과학을 이땅에 올바로 뿌리내리 기 위한 일체의 노력을 뜻한다.

저서 '민족과학의 뿌리를 찾아서'는 바로 저자의 이러한 노력들을 극명하게 드 러내 보여주는 결정체로서 전편은 민족과학 운동론을, 후편은 재창조해야 할 과학 유산과 선구적 과학자들을 소 개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음 글은 이 책 중 '음력, 양력의 과학적 비교'와 '24절기' 두 장을 축약한 것이다.

[읽어보기]

서양 것이라면 덮어높고 그것이 과학적이려닌 하고 짐작하는 버릇이 우리에겐 있다. 그리고 과학적인 것은 더 우수하고 좋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 거기에다가 우리는 우리의 전통 적인 문화를 무조건 '비과학적'이라고 매도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우리들의 태도야말로 지극히 비과학적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과학기술의 발달이 근대 서양에서 크게 일어나 세계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분명한 사실이 지만, 우리의 문화유산 가운데도 서양의 것보다 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것들일 많이 있으며,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음력이라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우리들은 음력을 비과학적 내지 미신적인 것으로, 양력을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것으로 단정한 다. 그러나 그러한 일반적 생각과 사실은 정반대이다. 서양사람들이 발달시켜 지금 전세계가 사용 하는 양력은 서양의 세속적인 역사로 오염된 불합리한 역법인데 반해 동양인들이 수천년동안 사 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음력은 순전히 과학적인 역법이어서 아무런 모순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여러 해 동안 저자가 음력설을 우리의 설날로 다시 복권시키려고 힘쓴 결과 우리가 설 날을 도로 찾게 된 것은 그저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명절을 되찾자는 감상적인 동기에서만 비롯 된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전통문화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는 편견을 물리치고 오히려 과학적 이고 합리적인 것이 많다는 것을 깨달아 이를 후손에게 계승시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함을 보여주 는 데 더 큰 뜻이 있다는 것이다.

* 양력의 비합리적인 모순

얼핏 보기에 양력은 해마다 같은 날이면 그만큼 덥거나 추워서 계절에 아주 잘 맞는 것으로 생 각하기 쉽다. 이에 비해 음력은 계절과 잘 맞지 않고 대강 한 달쯤은 왔다갔다 하는 것으로 보이 기 때문에 음력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이 양력을 더 과학적 이라고 짐작한다.

하지만 양력의 날짜가 계절과 잘 맞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양력은 달의 운동을 완전히 무시한 채 해의 운동만을 나타내기 위해 만들어진 역법인 까닭이다. 정오에 태양의 그림자가 가장 길 때가 동지이고 가장 짧을 때가 하지, 그리고 하지에서 다음 해의 하지까지 혹은 동지에서 다음 해의 동지까지가 1년이 된다. 태양운동으로 따지는 1년이란 대강 365일 5시간48분46초가 된다.

그런데 다 잘 알고 있는 것처럼 하루의 길이는 24시간이고, 한달의 길이는 달의 운동으로 따지면 29일 반쯤이 된다. 역법(달력)의 발달은 바로 복잡한 한 해, 한 달, 하루 사이의 시간적 차이를 어떻게 조정하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방법이 나오게 된데에 기인하는 것이다. 양력은 한 달의 길이를 달의 공전 주기에 맞춘 역법인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저자는 양력이 음력에 비해 세속적이고 불합리한 역법이라는 자신의 주장의 근거를 다음 네가 지로 제시한다. 첫째로, 영어나 그밖의 서양언어로 표시된 달이름이 실제와 다르다는 점이다. 영어로는 9월부터의 달 이름이 각각 September, October, November, December, 이 달 이름의 어 원을 따져본다면 각기 일곱 번째 달, 여덟 번째 달, 아홉번째 달, 열번째 달이 된다.

원래 로마시대의 연말은 지금의 2월(February)이었는데, 그것이 슬그머니 두달 앞당겨지면서 오늘의 모양이 되고 만 것이다. 그것이 바로 연말에 늘었다 줄었다 해야할 윤년의 하루가 지금도 2월 말에 붙어있는 이유이다.

둘째로, 7월(July)과 8월(August)의 이름이다. 원래 이 이름은 로마의 황제 줄리어스(Julius Caesar)와 아우구스투스(Augustus)를 기념하여 붙인 이름인데, 이달에 그들의 생일이 들어있기 때문에 이왕 기념하는 바에 30일이던 한 달을 연말에서 하루 더 가져와서 31일로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7월과 8월이 연속으로 31일 된 원인이 여기에 있다.

셋째로, 이렇게 달 이름이나 길이를 임의로 정하다 보니 달마다 길이가 불규칙적으로 길어졌다 짧아졌다하여 사람들이 기억하기가 어려워졌고, 또 그 날짜가 자연현상의 특징을 대변하지 못하 고 무의미하다는 점이다. 특히 우리 동양인들의 입장에서는 달 이름에 로마황제의 이름 붙이고 그들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불규칙하게 길어지고 짧아지는 불편을 감수할 이유가 전혀 없다.

마지막으로, 역법이란 해와 달의 자연의 변화로부터 어떤 계기를 잡아 인간의 생활을 다시 시 작한다는 의미에서 어느 특정시각을 새해의 시작으로 정하는 것인데 양력 1월1일은 앞에서 설명 한 것처럼 양력에서 가장 중요한 부활절 계산을 하기 위해 춘분을 고정해노고 그에 따라 만든 날 일따름이다. 당연히 양력 1월1일에는 해와 달의 어느 것도 무슨 새로운 모양으로 보여 주지 않는 다. 그런 뜻에서 양력 1월1일은 새해의 시작으로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런 줄도 모르고 우리들은 얼마전까지 양력 1월1일을 설날(신정)이라고까지 높여 부르면서 3 일간의 공휴일로 만들고 그 대신에 우리의 진짜 설날은 음력(비과학적)이라고 없애버리는 어리석 음을 범했던 것이다.

* 음력의 합리성과 과학성

음력은 앞에서 지적한 양력의 불합리한 점들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그것과는 정반대이다. 양력이 서양의 온갖 문화적 때를 묻혀가지고 있는 것과는 달리 음력은 조금도 그런 때를 갖고 있 지않다. 양력에는 (시간 표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서양의 사람 이름이 달 이름으로 마구 올 라가 있지만 음력은 그렇지가 않다. 차례대로 달 이름을 붙이거나 아니면 '꽃피는 달', '새우는 달' 식으로 자연현상에 맞는 운치높은 이름을 붙였을 뿐이다.

또, 음력에서는 한 달의 날짜수가 29일과 30일로 불규칙적으로 바뀌지만 그 까닭은 순전히 자 연현상(달의 공전)에 달려있는 것이지 어느 사람의 생월이라하여 그 달이 길어지진 않는다. 음력 에서는 달마다 15일 보름(望)이라하여 달이 가장 둥글게 뜬 날로 맞춰 높았다. 그렇게 하면 초하 루(朔)는 저절로 결정이 되고, 그 전달의 크기가 29일이 될지 30일이 될지도 그에 따라 저절로 결 정이 될 뿐이다. 황제의 생월이라고 30일 짜리를 31일로 늘려놓은 서양의 양력과 자연의 리듬에 따라 저절로 한달의 길이가 결정되는 우리의 음력중 어느 쪽이 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지는 따져 볼 것도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음력과 계절이 서로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불편하다고들 말한다. 그저메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을 곁들인다. 춥고 더운 계절의 변화는 태양의 운동으로 좌 우되는데, 원래 음력은 달 모양의 변화에 맞게 만든 것이기 때문에 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그 러나 음력에서는 이런 태양운동(계절)을 24절기로 나타내고 있다.

'입춘, 우수, 경칩, 춘분...'하멸 이어지는 24절기란 바로 태양운동을 24등분하여 붙여놓은 이름이 다. 당연히 24절기는 각각의 계절에 정확히 상응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이것은 음력속에 들어있 는 양력인 셈이다. 우리는 그저 음력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음력 속에는 양력 성분이 24절기로 들 어 있고, 그래서 과학사에서는 동양의 음력을 '태음 태양력이라 부른다. 즉, 달의 운동은 날짜로 나타내며, 태양의 운동은 24절기로 나타냄으로써 해와 달의 운동을 함께 나타낸 훌륭한 역법인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24절기가 그저 음력인 줄로 믿는 수가 많으며 실생활에서도 거의 활 용하지 못하고 있다. 24절기란 음력 속의 양력 성분이고, 따라서 언제나 양력 날짜와 거의 일치하 므로 당연히 농사일이나 계절을 맞추는 데도 양력이나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그냥 양력을 쓰기보 다는 24절기를 외워서 쓰는 편이 더 편리하고 좋은 점이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예를 들어 어린이들에게 봄철 언제쯤에 겨울잠자던 개구리가 튀어나오는지를 묻거나, 가을에 찬 이슬이 내리기 시작할 때가 언제냐고 묻는 경우 제대로 대답할 수 있는 학생은 거의 없을 것 이다. 바로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은 경칩(驚蟄)과 한로(寒露)이다. 경칩은 해마다 양력 3월6일쯤이 고, 한로는 양력 10월8일쯤이다. 경칩이면 개구리가 나오고 한로면 찬 이슬이 내린다고 알아두는 편이 날짜를 외우는 것보다 훨씬 편하다.

달력, 언젠가는 고쳐야

순전히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로만 말한다면 세계 사람들은 지금이라도 차라리 음력을 쓰고 양력을 버리는 것이 옳다. 이미 습관이 되어 바꾸기가 어렵다면 적어도 지금의 양력이 가지고 있 는 잘못된 관행(한달의 길이가 들쭉날쭉하는 일, 새해 첫날이 무의미한 일 등)이라도 고친 다음 양력을 쓰는 것이 옳다. 하여간 우리 모두가 확실하게 알아둘 일은 지금 전세계가 양력을 쓰는 것은 서양 문명이 19세기 이후의 지구를 지배해온 때문이지, 양력 그 자체가 음력보다 좋기 때문 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제 우리 모두는 우리의 옛 전통은 모두 잘못되고 비과학적이라는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새 로운 태도를 가지고 옛것에서 새로운 합리성과 과학성을 되찾는 일에 나서야 한다. 우선 우리는 음력을 아끼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우리의 얼과 혼이 스며있는 음력 명절을 되찾아야 한다. 양력 이 서양 문화의 지꺼기임을 인식하고, 양력이 인류 공동의 요구에 맞게 수정될 때까지라도 우리 의 전통적인 것을 되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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