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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요에 나타난 민중 의식 / 본문 일부 및 해설 / 조동일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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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요에 나타난 민중 의식

 

 

민요에는 일하며 사는 즐거움이 두루 나타나 있다. 즐거움은 우선성의 터전이며 대상인 자연에서 생기는 것이다. 양반 시가에서는 자연이란 휴식을 취하는 자가 바라보며 마음의 위안을 얻는 경치이지만, 민요에서의 자연은 생산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에 소중하며, 이 가능성을 노동을 통해 실현할 때 즐거움이 생긴다. 정관적인 휴식의 즐거움이 아니고, 사는 보람으로 가득 찬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즐거움이다. 노동의 즐거움은 공동 노동일 때 더 커진다. 여러 사람이 한 자리에 떠들썩하게 같이 일하고 때로는 농악까지 울리는 '두레'라는 이름의 공동 노동은 노동이면서 축전이다. 이런 느낌은 다음과 같은 노래에서 잘 나타난다.

먼데 사람 듣기 좋게 가차운 사람 보기 좋게

북 장고 장단에 심어나 보세나

그리고 노동의 결과가 생산으로 나타나는 것은 언제나 경험하는 바이지만 늘 새로운 감동을 주기에 이런 감동을 표현하는 노래도 적지 않다. 특히 생산의 과정을 자세히 묘사하는 노래가 세밀한 관찰을 장기로 삼는 부요(婦謠)에 흔한데, 그 좋은 예가 '메밀 노래' 같은 것이다. 이 노래는 심은 메밀이 자라고, 자란 메밀을 거두어 타작하고 찧고, 끝으로 음식을 만드는 데까지의 과정을 세밀하게 보여 준다. '베틀 노래'도 이와 유사한 성격의 것이다.

(중략)

그리고 민요에 나타난 바에 의하면, 민중은 항상 현실주의자이다. 초자연적 세계에 근거를 둔 운명론 같은 것이 민요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민중 생활은 괴롭고, 민요는 괴로움의 노래이다. 땀 흘려 일한 결과가 자기의 것이 아니고 타인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노동은 즐거운 것이면서도 괴로운 것이고, 괴로움은 농민에 대한 지배층의 수탈이 심해질수록 민요에서 더욱 절실하게 표현되었다,

산 같이도 지심 논을 불 같이도 더운 날에

땀을 흘려 열심으로 김을 매는 우리네 농부예이

우리 농부도 누구를 위해서 이꾸 일을 하느냐.

 

아무리 고생한들 가슬한 보람 없네

온손배미 다 거두어도 한 솥이 못차구나.

관청의 세금 독촉 갈수록 심하여서

동네의 구실아치 문앞에 와 고함친다.

이러한 괴로움은 그냥 참고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의 고난을 호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배층에 대한 분노를 나타내며 분노는 흔히 풍자로 표현된다. 풍자는 구비 문학 전체에서 두루 발견되는 것이다. 풍자는 현실의 고난을 극복하고 적대자를 용납하지 않으려는 대결의 정신에서 나온 것이며, 직접적인 대결이 억압되어 있을 때 택하는 기습의 방법이다.

두껍아 두껍아 너 등더리가 왜 그렇노

전라 감사(全羅監司) 살 적에 기생첩(妓生妾)을 많이 해서

창이 올라 그렇다.

감사는 풍자의 대상이고, 두꺼비는 그 수단이다. 점잖고 위엄 있어야 할 감사의 얼굴이 두꺼비 등과 같이 흉물스럽다 하고, 그렇게 된 이유는 기생첩을 많이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감사는 가혹한 농민 수취의 두목이었던 것이 조선 후기의 실정이었다. 정약용은 감사야말로 큰 도적이라고 하고, '큰 도적을 없애지 않으면 백성이 모조리 죽게 된다(大盜不去民盡劉).'고 했다. 기생첩을 많이 했다는 것은 감사가 백성들로부터 거두어들인 재물을 가지고 노는 퇴폐적인 거동을 집약적으로 나타낸다.

민요는 또한 풍자의 노래에 그치지 않고, 민중 봉기와 직결된다. 1894년의 갑오 농민 전쟁 같은 것은 민중이 지금까지 겪어 보지 못한 체험이었고, 그러기에 새로운 민요가 터져 나올 수 있는 원천이었다. 민요를 부르며 행군하고, 민요를 부르며 싸우고, 민요를 부르며 승리를 자랑했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전쟁은 농민의 패배로 돌아갔다. 그러기에 싸움과 승리의 노래는 남아 있지 않고 패배의 비극을 되씹으며 전설의 주인공이 되어 가는 전봉준을 다시 부르는 노래가 오랫동안 불리어졌다.

봉준아 봉준아 전봉준아

양에야 양철을 짊어지고

놀미 갱갱이 패진했네.

'양철'은 서양식 무기를 말하는 것 같다. 서양식 무기를 탈취해 진군하던 전봉준이 놀미(論山)와 갱갱이(江景)에서 패진했다는 말이다. 이 패진은 전봉준만의 것이 아니고 '억만 군사'의 것이라고 이해되어 다음과 같은 노래가 전하기도 한다.

충청도라 하늘이 울어 지도섬에 피묻었네

그 비가 비 아니라 억만 군사 눈물일세.

일제의 침략이 시작되었을 때 민중은 이에 대해 가장 완강한 저항을 했다. 일제는 농민을 위시한 광범위한 민중을 수탈해서 얻는 이익을 노려 침략을 서둘렀고, 일제의 식민지 통치로 인한 고통은 결국 민중의 고통으로 귀착되었다. 그러기에 지식인의 항일은 의식의 각성에 근거를 두지만, 민중의 항일은 생활 자체에서 우러나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후략)

요점 정리

작자 : 조동일(趙東一 ; 1939 ~ )

갈래 : 실제 비평(실천 비평)과 원론 비평을 절충함

성격 : 역사. 사회학적 방법

주제 : 민요에 반영된 민중들의 진솔한 삶의 정서

기타 : 소박한 생활 감정과 민족 정서가 집약된 민요를 외재적 비평 방법으로 평하였다.

내용 연구

 

민요는 일하며 사는 - 대상인 자연에서 생기는 것이다. : 민요는 한 개인의 독특한 시적 감흥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동질적인 집단의 정서적 표현으로, 민중 속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여 민중의 생활 감정을 소박하게 반영시키고 있다. 여기에서의 즐거움은 민요의 기능요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생산적인 일을 하면서 저절로 흥얼거리며 나오는 노래를 부르며 느끼는 즐거움을 말한다.

정관적(靜觀的) : ①사물의 변화 따위를 조용히 지켜보는. ②대상의 안에 있는 본격적인 것을 마음의 눈으로 관찰하는. 여기서는 후자의 ②뜻.

정관적인 휴식의∼적극적인 즐거움이다.: 민요는 그 속성이 조용히 즐기는 노래가 아니라 활동적인 노동에서 비롯되는 즐거움이다.

'두레'라는 이름의 - 축전이다 : '두레'는 농사꾼들이 농번기에 공동으로 협력하기 위하여 이룬 공동 모임인데, 이 때 농사일을 공동으로 하면서 즐겁고 자연스럽게 집단적인 민요가 불려진다.

특히 생산의 과정을 - '메밀 노래' 같은 것이다 : '부요(婦謠)'는 숱한 애환을 노래한 것이다. 부요는 대개 '시집살이 노래', '작업요', '모녀애련요', '꽃노래' 등이 있는데 여기에서는 '작업요'인 '메밀 노래'를 예로 들었다.

그리고 민요에 나타난∼민요에는 보이지 않는다.: 민요의 특성을 표현한 부분으로 민요는 대개 현장성이나 현실성에 그 근거를 두고 직설적이거나 우회적인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 있고, 민중적 정서라고 할 수 있는 진솔성이 강하게 나타난다는 뜻이다.

괴로움은 농민에∼절실하게 표현되었다. : 지배 계급에 의한 수탈로 비롯된 울분과 한(恨)을 민중들은 민요로 달래고 삭이고 살아왔다는 뜻이다.

직접적인 대결이 억압되어 - 기습의 방법이다. : 적대자 즉 지배 계층이나 일제 때의 침략자들에게 직접 항거하지 못하는 괴로움을 우회적으로 노래하였다. 이는 정신적인 항거 내지는 울분을 삭이는 데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

1894년 갑오 농민 전쟁 같은 것은 - 터져 나올 수 있는 원천이었다. : 동학농민운동 東學農民運動은 1894년(고종 31) 전라도 고부군에서 시작된 동학계(東學系) 농민의 혁명운동으로 그 규모와 이념적인 면에서 농민봉기로 보지 않고 정치개혁을 외친 하나의 혁명으로 간주하며, 또 농민들이 궐기하여 부정과 외세(外勢)에 항거하였으므로 갑오농민전쟁이라고도 한다. 이 때에 우리 민중들은 예로부터 구전되던 민요와 더불어 새로운 민요, 즉 폭정에 항거하는 저항가 형태의 것을 지어 불렀다.

그러기에 지식인의 항일은 - 않을 수 없는 것이다 : '지식인의 항일은 역사적·사회적으로 규정되는 사상·감정·이론·견해 등의 진위, 장단 등을 반성하고 보완하는 데 그 역할을 하였지만, 민중들의 항일 의식은 의식주(衣食住) 생활을 영위하면서 일제에게 직접적으로 수탈당하는 아픔을 극복하기 위하여 취해진 자세이다. 이 자세는 곧 새로운 민요를 짓고 부르면서 울분을 삭이는 일이었다.

이해와 감상

민중 사이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 단순하고 소박한 생활 감정과 민족 정서가 집약되어 있는 민요를 외재적 비평 방법으로 평한 비평문이다. 저자는 이 비평문에서 역사, 사회학적 비평 방법을 적용하여 민요를 평하고, 민요에 반영되어 있는 민중의 진솔한 삶의 모습과 거기에서 생기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의 다양한 모습을 해석하였다.

다시 말해서 민중들 사이에 저절로 생겨난 단순, 소박한 노래가 바로 민요(民謠)이다. 그들의 생활 감정과 민족 정서가 집약되어 있는 민요를 외재적 비평의 방법으로 논한 글이다. 작자는 이 글에서 역사·사회학적인 비평 방법을 적용하여 민요에 반영되어 있는 민중들의 진솔한 삶과 그로부터 비롯되는 애환(哀歡)을 제시하고 있다. 민중적 정서의 반영체(反影體)로서의 전통적 시가의 의미를 느껴 볼 수 있는 글이다.

심화 자료

조동일(趙東一;1939∼ )

문학 평론가. 국문학자. 서울대 국문학과 졸업. 민속학에 토대를 두고 한국 문학을 연구하는 데 뛰어난 점을 보였으며, 특히 고전 문학 분야 연구에 공이 크다. 문학을 민속학적 입장에서 접근하려는 시도를 보여준 비평학의 공로자이다. 현대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 저서로 <한국 문학 통사>,<신소설의 문학사적 성격>,<한국 문학과 세계 문학>등이 있다.

현대 비평(現代批評)의 양상

현대의 문학 비평은 문학의 이론이나 작품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현대의 전체 상황에 대하여 관심을 표명(表明)하고 있다. 그리하여 문학 작품 그 자체에 대한 평가에 문학적 감수성(感受性)에 의해서 느껴진 문화 비평, 사회 비평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 사회에서 당면하고 있는 불안과 위기 의식을 극복하고 또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창작에 대한 과제를 공동으로 대처하기 위해 현대 비평의 변증법적인 지양(止揚)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것은 20세기적인 정신적(精神的) 빈곤(貧困)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인간형(人間型)을 탐구하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提示)하여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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