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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文學)과 사회(社會)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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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文學)과 사회(社會)

 본문

 문학과 사회는 언뜻 생각하기에도 무척 가까운 관계에 있다. 문학은 사회의 의사 소통 수단인 언어를 사용한다. 또 독자라는 사회를 상대로 한다. 문학가는 사회의 일원임에 틀림없다. 더더구나 문학은 사회상을 반영한다. 문학이 즐겨 말하는 인생이란 결국 사회 생활이 아닌가? 문학에서 다루는 가족 관계 교우 관계, 연애와 결혼, 전쟁, 죽음 등은 모두 사회 생 활의 양상들이다.

문학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일반적인 관념

 

 그런데 문학과 사회와의 관계는 사회학과 사회와의 관계와 다르다. 사회학은 사회를 학문의 대상으로서 다루지만, 문학은 사회를 예술적인 창조의 대상으로서 다룬다. 사회학과 사회의 관계처럼 직접적인 연관성을 지니고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문학을 '사회의 표현'이라고 한다. 그만큼 문학과 사회의 관계가 밀접함을 나타내 주는 말이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본다면, 표현이란 내부로부터 외부로 밀어내는 것을 뜻한다. 사회를 표현한다는 말은 사회의 양상이 일단 문학가의 내부 의식 또는 정신 속으로 들어가 그 실상이 파악되었다가 언어를 매개로 하여 밖으로 나온다는 뜻이 된다.

문학과 사회의 관계

 

 외부 사회의 양상이 작가의 내부로 들어온다는 말은, 작가가 사회의 영향을 받는다는 말도 된다. 대체로 유교사회에 속한 작가는 유교적 사회관을 갖게 된다.

 

 사회가 작가를 완전히 결정한다고 보는 것은, 인간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이러한 절대적 결정론은 사실과 다르므로 배격해야 하겠지만, 사회의 환경, 즉 교육, 즉 교육, 종교, 사회 제도, 심지어는 작가라는 직업, 출판업계의 상황, 생활 근거지 등이 작가의 문제 선택과 그 해석에 큰 영향을 준다는 말이다. 그래서 작가는 사회를 여실히 반영하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사실주의의 극단론에 가면 "작가는 사회를 그대로 비추는 거울어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통속 문학 작가들은 사회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보다도 사회의 일부 계층의 취미가 요구하는 대로 꾸며대는 사람들이다. 대개의 신문 소설들이 다 그렇다.

작가 - 사회적 결정론

 

 그러나 문학과 사회의 관계는 그렇게 명백하게 직접적인 것은 아니다. 작자는 민감하게 선택하고 자각한다. 그는 무색 투명한 유리가 아니고 농도와 도수가 있는 렌즈이다. 작자는 사회의 어느 층에 속하며, 또한 그 층에 속하는 도덕률이나 인습(因習)을 견지하고, 그의 사회적 신분이나 지위로 말미암아 사회 생활에 어떤 특수 분야에 특별한 관심을 두며, 거기에 대한 특별한 해석을 내리기도 한다. 그리고 그가 상대하는 독자의 층이 한정될 수도 있다. 순수 문예 작품은 교육 정도가 낮은 층이나 노년층은 상대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작가는 자기가 상대하는 독자들을 통하여 사회에 영향을 끼친다. 어떤 사회 문제가 대두하였을 때, 그것을 관점과 해결의 방법을 제시할 수 있다. 특출한 눈이다. 아무나 그것을 큰 문제로 중요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정말 문제 의식을 일으키도록 제시하는 것도 작가의 특출한 능력이다.

작가의 대사회적 관점

 

 그러나 문학이 사회의 문제를 강력히 제시하여 그것의 실질적인 해결을 초래하는 예는 별로 많지 않다. 즉 강연이나 웅변, 정치적 선전, 신문이나 방송에 의한 여론 조성에 비하면 문학의 그러한 기능은 무시해도 좋을 정도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단적으로 말해서 문학은 사회 개혁을 위한 선전도구가 아니다. 정치 개혁을 위해서는 소설이나  희곡, 시를 백 편 써 내는 것보다는, 단 한 번의 선거 연설이나 신문 사설로 '비판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다. 잘못하다가는 선전도 안 되고 문학도 안 된다.

 

 예전 사람들은 풍자 문학을 쓰는 이유를, '사회의 부조리를 우스꽝스럽게 제시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그런 부조리를 범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풍자 문학으로 말미암아 사회의 부조리가 사라진 일은 없다. 애국시는 애국심을 고취할 수는 있어도 시로서는 엉성하기가 일쑤다. 이러한 사실은 문학의 사회적 효용성의 한계 또는 부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문학의 사회적 효용이 다른 방면에 있다는 것을 뜻한다고 보아야 하겠다.

 

 문학은 사회에 영향을 끼치지만 직접적 행동을 자극하지 않는다. 직접적 행동을 유발하는 것은 선전, 선동, 선정(煽情)이다. 사회적으로 유익한 선전, 선동도 있고 해로운 것도 있다. 아무리 유익해도 문학이 본질적으로 할 일은 아니며, 해로운 것은 물론 피해야 한다. 범죄 소설을 많이 읽고 정말 범죄를 저지르든가, 통속 소설을 읽고 정말 추태를 부린다면, 그것은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문학의 소치이기는 하나 저주할 영향력임에 틀림없다. 이처럼 좋은 의미의 선동이나 나쁜 의미의 선정이나 간에 진정한 문학은 직접 행동과는 관련이 없어야 한다.

진정한 문학은 직접적 행동과 무관함

 

 문학은 주로 독자들의 태도의 정리, 심리 상태의 안정, 통상적으로 가지고 있는 신념을 재확인하거나 의문시하는 데에서 그친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직접 행동의 유발보다 더 본질적이다. 왜냐 하면 문학의 정도는 행동으로 증명되는 것보다 의식 상태로 증명되는 까닭이다. 많은 좋은 문학이 축적되고 그것을 읽는 많은 독자의 의식 상태가 세련된다면, 그 세련된 의식, 즉 문화가 사회 생활의 각부면에 모르는 사이에 침윤(浸潤)될 것이다. 이렇게 근본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진정한 문학의 사회 참여이지, 한때의 고식적(姑息的) 행동으로 불에 타 없어질 선동, 선정의 문학은 문학 자체를 위해 기피해야 옳다. 단, 많은 좋은 문학을 많은 독자가 읽을 수 있는 일반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사회인으로서의 문학인이 다소 책임질 일이다.

문학의 사회 효용적 기능

 

 끝으로 생각할 문제는, 문학 작품 속에 구현된 사회가 실제 사회와 어떤 관계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문학은 사회의 표현이라는 말을, 문학은 사회 생활의 한 단면을 잘라서 제시한 것이어야 한다는 말로 극단적 해석을 한 적도 있다. 사진처럼 문학은 실생활을 그대로 모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학이 실생활의 그대로의 모사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것을 제시하는 아무런 의의가 없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 주는 사진도 구도라는 것이 있고, 또 특별히 의의 있는 순간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 보통이다. 문학은 글이니까 사회의 모습(시각적)은 전혀 이질적인 매개 수단이나 다 옮길 수는 없다. 즉 글로 전달할 내용을 취사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 이로 말미암아 실제 사회의 모습은 굉장히 달라져 버린다. 사진은 의의 깊은 순간을 포착한 것이지만, 문학도 인생의 여러 모습 중에서 작가가 특히 의미 있는 부분을 선택한 것이니까, 작가의 인생관이 오히려 반영되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실사회를 모델로 해서 실사회에 아주 접근하는 것이라 해도, 그것은 허구라는 것이다. 우리는 실제에 가까운 묘사를 박진력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박진력은 박진력에 그치지 실제 자체는 아니다. 허구, 즉 꾸며진 이야기는 작가의 의도에 따라서 실생활과 아주 비슷하게 꾸며질 수도 있고, 아주 다르게 환상적으로 꾸며 질도 있다. 엄격한 의미에 있어서 작가는 시시각각으로 자꾸만 변모하는 사회를 사진사처럼 그 어느 순간에 포착하여 바로 그 장면만을 영구히 보존하려는 것이 아니라, 변하는 사회 생활 속에서 변하지 않은 인간의 본성, 인간의 사실을 붙잡으려는 것이다. 우리가 발자크를 읽고 얻는 것은 19세기 프랑스의 어떤 지방의 사회 생활상이라기보다는, 20세기의 우리 한국인도 충분히 이해할 수도 있고 또 나누어 갖고 있기도 한 인간에 관한 불변하는 진실을 재확인 - 사람은 과연 그런 것이지 하는 수긍 - 하는 것이다.

작품 속의 사회와 현실 속의 사회

 요점 정리

 작자 : 이상섭(李商燮 ; 1937 ~ )

 갈래 : 이론 비평(원론 비평, 원리 비평)

 출전 : <문학의 이해>(1972)

 성격 : 주관적, 설득적, 원론적

 기타 :문학과 사회의 관계를 세 가지 측면에서 고찰함

 주제 : 문학과 사회의 관련성  

 요지 : 문학은 사회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러나 문학은 직접적인 행동화를 유발하는 것이 아니고, 의식 상태에 침윤되어 문화를 세련화하는 기능을 한다.

 내용 연구

 문학과 사회와의 관계 : 문학과 사회와의 관계는 다음의 세 가지 측면에서 고찰할 수 있다.

 문학의 재료 및 원천으로서의 사회

 문학 작품 속에 들어 있는 사회적 요소

 문학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

 일반적인 의미에서 - 밀어내는 것을 뜻한다 : 이 말의 광의적인 해석은 문학이 어떻게 해서 생겨나게 되었는가라고 하는 '문학의 기원'까지에 이르는 말이나, 여기에서는 인간의 경험이나, 감정, 상상, 소망, 느낌과 꿈 등의 내부의 충동을 외부의 예술적 행위(여기에서는 문학적 행위)로 표현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사회가 작가를 완전히 - 절대적으로 받는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 넓은 의미의 해석은, 19세기 사실주의의 문학관에서 비롯된 '종족, 환경, 시기'가 문학을 결정하는 세 요소라는 견지에서 비롯된 '환경 결정론'이나, 좁은 의미의 해석은 곧, 사회와의 밀접한 관계를 이르는 것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문학이 언어 예술인 만큼 그 언어의 속성이 사회성을 띠고 있기 때문에 작가와 사회는 필연적인 관계를 유지한다는 뜻이다.

 통속 문학 작가들은 - 꾸며대는 사람들이다 : 통속 문학은 순수 문학에 비하여 오락을 본위로 하는 대중 문학을 지칭한다. 널리 대중을 상대로 하여 그들을 위한 작품 제작에 연연하므로 그들이 요구하는 오락이나 취미가 소재, 제재, 또는 주제가 되어 문학 작품의 기본을 이룬다. 따라서 그들은 사회의 통상 윤리나 도덕률 같은 것은 곧잘 잊어버린다. 시대 소설, 추리 소설, 연애 소설, 유머 소설 등이 대부분 이에 속한다

 그는 무색 투명한 유리가 아니고 농도와 도수가 있는 렌즈이다 : 넓은 의미로 보면 문학 비평안이 될 수 있다. 좁은 의미로 보면, 작가의 창작 태도를 지칭하는 뜻이다. 즉 작가가 어떤 자세에서 어떤 안목으로 무엇을 어떻게 표현해 내는가를 결정하는 문학 창작의 태도를 뜻한다.

 순수 문예 작품은 교육 정도가 낮은 층이나 노년층은 상대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 순수 문예 작품은 그 자체에 문학의 계몽성이나 목적 의식 등이 배제되어 있고, 오락성, 선전성 등이 절제되어 있는 것이 보통이다. 때문에 순수 문예 작품이 지향하는 인간성의 옹호에 입각한 자율성이나 예술성, 사실성이나 탐미성의 심미적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지식과 교양을 갖춘 지식층을 독자로 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작가는 자기가 상대하는 독자들을 통하여 사회에 영향을 끼친다 : 독자와 문예 작품과의 관계를 뜻한다. 문학 작품 내의 화자는 그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통해 독자에게 전달한다. 그것은 곧 독자에게 질문하거나 명령 또는 유도하여 어떤 사실을 전달한다. 이에 따라서 독자는 어느 틈에 작가의 작품행위에 따라 행동하거나 지식을 습득하게 된다. 그러한 행위가 사회성을 띠게 될 때, 작가의 작품은 독자에 의해 사회에 영향을 미치게 됨을 의미한다.

 풍자 문학을 쓰는 이유를 - 부조리가 사라진 일은 없다 : 풍자 문학을 사회 부조리 척결의 차원에서 쓰는 것은 잘못이라는 말. 즉 문학의 목적을 사회 교화나 부정척결에 두려는 계몽 문학, 목적 문학, 프로레타리아 문학 등은 바람직한 문학이 아니며, 순수 문학만이 바람직한 문학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견지에서 볼 때 채만식의 '논이야기'를 읽을 때 독자는 농지 정책 개혁이나 해방 공간의 정치 개혁, 또는 애국심이 없는 주인공의 인격 개조 등을 염두에 두는 것은 올바른 독서법이 아니다.)

 애국시는 애국심을 - 엉성하기가 일쑤이다 : 애국시의 문학성을 진단하는 말. 애국시는 순수 문학적 견지에서 볼 때 이류라는 말

 문학은 주로 독자들의 - 의문시하는 데에서 그친다 : 문학은 개인의 체험을 상상력으로 표현하여 이를 독자의 상상이나 감정, 의식에 호소하여 독자를 감동시키는 일을 한다. 따라서 문학의 영향이란 작가와 독자 사이에 어떤 공감대 형성이나 깨달음의 제공에 그치는 것이지, 행동을 유발하는 것은 아니다.

 근본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진정한 문학의 사회 참여 : 문학이 사회에 참여하는 근본적이고도 진정한 의미는 바로 독자로 하여금 '개연성 있는 허구'의 새로운 가치 세계를 체험케하여 격조 높은 인간성을 갖게 하는 것이다.

 단, 많은 좋은 문학을 많은 독자가 - 문학인이 다소 책임질 일이다 : 문학이 도덕이나 교훈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거나, 또는 쾌락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두 기능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 현대의 보편적인 생각이다. 따라서 문학인은 문학 작품을 통하여 즐거움과 가르침을 주어야 한다는 전제 아래 좋은 문학 작품을 많이 양산하여 사회에 이바지해야 함을 뜻한다.

 이해와 감상

 이 글은 문학이란 사회의 유추적(類推的) 반영(反映)이라는 입장을 밝힌 원론 비평에 속하는 글이다. 문학이 사회 그 자체만을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本性)을 찾아내는 데 목표를 두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글이다. 또한, 비교, 예시, 반증(反證) 등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선명히 드러냄으로써 명쾌한 느낌을 준다. 문학은 사회 생활 그 자체만을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을 찾아내는 데에 그 목표를 두는 것이다. 또, 문학은 삶을 소재로 삼지만, 그 사회의 언어에 의해 표현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만 다룰 수 있다. 즉 문학은 사회 전체의 반영이라기보다는 선택된 사회 양상을 다시 형상화한 것이다.

 심화 자료

 이상섭(李商燮 ; 1937 ~ )

문학 평론가, 영문학자. 현재 연세대 영문학과 교수. 1972년 <문학과 지성>에 '사실의 준열성'을 발표하며 등단한 이래, 영문학적 지성을 한국 문학의 해석에 연결시키는 작업을 주로 하였으며, 영문학 관계 저서도 많이 있다. 저서로 <문학의 이해>, <문학 연구의 역사적 전개>, <자세히 읽기로서의 비평> 등이 있다.

 순수와 참여 논쟁

'문학 본질과 사명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주제에 대하여 두 가지 시각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인간 정신의 보편적 가치와 순수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시민적 책임과 진실을 현실 세계에 구현하기 위한 참여적 기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는 1960년대에 이 두 시각을 가진 평론가들의 논쟁이 있었다. 이 논쟁은 문제 자체의 대립적 성격으로 인해 서로 팽팽하게 전개되었으나, 결론적인 해결은 예술성과 현실성 가운데 어느 하나를 버리고 다른 하나만을 택해야 한다는 논법은 잘못된 것이라는 시각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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