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동인지 백조(白潮)
by 송화은율백조(白潮)
: 1922년 1월 창간된 문예동인지로, 현진건, 나도향, 이상화, 박종화, 홍사용, 노자영 등이 동인이다. 주로 홍사용이 자금을 대어 4·6배판 150여 페이지 규모로 1923년 5월까지 통권 3호로 발간되었다. 2호까지는 감상과 치기(稚氣)에 젖은 소녀적 <낭만주의>가 지배적이었으며 3호에서는 이를 극복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 1921년 시(詩)전문지[장미촌]은 [폐허]의 낭만주의를 계승, [백조]에 이어줌
* 홍사용 <나는 왕이로소이다> * 박영희 <꿈의 나라로>
* 박종화 <흑방비곡(黑房悲曲)> * 이상화 <나의 침실로>
* 나도향 <젊은이의 시절>, <여(女) 이발사>
* 현진건 <할머니의 죽음>
백조시대의 회고
[백조]를 중심으로 하여 흐르는 사조는 <浪漫> 그것이 아닐 수 없었다. 첫째로 나이가 모두 갓 스물을 전후한 약관이었다.
이 참담하고 기맥힌 파도속에 자라나서 어언 약관이 되어 스스로 3·1운동에 한 사람의 병졸로 참가했던 이 무리들은 실로 모두 다 한학의 조박이 있었을 뿐 아니라 거세인 풍파는 이들로 하여금 조달하고 성숙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우리들은 <우리는 인위로써 만들어진 강제구속을 깨트리고 자유를 구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이 자유를 발휘하는 것은 곳 美인 것이다>하고 부르짖음은 <시르레르>를 발견하자 하나의 새로운 경이와 동경과 발열에 밤 새지 않을 수 없었다. ··········· 이 땅의 문학의 주조가 낭만과 상징 그리고 <데카단>에 흐르게 된 것은 우리들이 정치적으로 압박을 받게 되는 환경 속에 서 있고 또한 3·1운동을 치른 뒤에 오는 절망이 자연히 이 길로 우리의 젊은 문학도를 끌고 들어가게 만들었으니, 모두 다 <恨이요 哀愁요 自暴自棄요 唯美探究뿐인 것이었다.
백조의 의의
[백조]의 낭만주의는 일종의 청년적인 소박한 기분운동이나 순진한 감상주의와 크게 구별될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백조의 의의
[폐허]에서 [장미촌]으로 이어져 내려온 낭만적 상상력의 흐름을 고양시켰으며, 그런 점에서 우리는 [백조]를 1920년대 낭만주의 문학운동의 본무대로 간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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