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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비명(墓碑銘) / 김광규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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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비명(墓碑銘) / 김광규

 

 

한 줄의 시는커녕

단 한 권의 소설도 읽은 바 없이

그는 한 평생을 행복하게 살며

많은 돈을 벌었고

높은 자리에 올라

이처럼 훌륭한 비석을 남겼다.

그리고 어느 유명한 문인이

그를 기리는 묘비명을 여기에 썼다.

비록 이 세상이 잿더미가 된다 해도

불의 뜨거움 굳굳이 견디며

이 묘비는 살아남아

 

<후략>

 


요점 정리

 

지은이 : 김광규

성격 : 비판적, 풍자적

구성 :

1~6정신적 가치가 경시되는 현실

7~8물질적 가치에 굴복하는 문인

9~14정신적 가치가 경시되는 현실에 대한 비판

주제 : 세속적인 삶에 대한 비판 / 물질적 가치가 정신적 가치를 지배하는 현실에 대한 비판

특징 : 반어적 표현(훌륭한 비석, 귀중한 사료)을 통한 세태 풍자와 이들을 조롱하고 있으며, 대립적 소재(정신적 가치, , 소설, 시인 물질적 가치, 많은 돈, 높은 자리, , 유명한 문인)를 사용하고 있으며, 시인의 바람직한 역할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내용 연구

 

한 줄의 시()[정신적, 예술적 가치를 상징]는커녕[그것은 고사하고 그만 못한 것도 될 수 없다는 뜻의 보조사]

단 한 권의 소설[정신적 가치를 상징]도 읽은 바 없이

[비판의 대상]는 한평생을 행복하게 살며[정신적 가치보다 물질적 가치를 추구하는 인물]

많은 돈[물질적 가치 / 세속적 가치 / 부귀영화(부와 권력) , 소설과 대비]을 벌었고

높은 자리[물질적 가치(부와 권력)]에 올라

이처럼 훌륭한 비석[세속적 가치 / 반어적 표현]을 남겼다 - 가치 없고 세속적인 인물의 삶

그리고 어느 유명한 문인[풍자의 대상 / 물질적 가치를 숭상하는 인물, 비판의 대상, 부와 권력을 위해 거짓 글을 씀/ 곡학아세(曲學阿世)]

그를 기리는 묘비명을 여기에 썼다[부와 권력에 종속됨] - 무가치한 삶에 동조하는 세태의 풍자 / 물질적 가치에 굴복하는 문인

비록 이 세상이 잿더미[모든 것이 폐허가 된 상태]가 된다 해도

불의 뜨거움 굳굳이 견디며

이 묘비는 살아남아[이면적 의미 - 묘비가 불타 없어지기를 바람]

귀중한[‘귀중한이라고 표현했기 때문에, 이 시의 어조도 반어적이다] 사료(史料)[역사 연구에 필요한 문헌이나 유물, 기록, 조각, 건축 따위]가 될 것이니 - 진실과는 상관없이 이어질 거짓된 역사

역사는 도대체 무엇을 기록하며[정의가 기록되지 않는, 불의한 현실에 대한 역사적 울분과 반성 / 물질적으로 성공한 삶만을 기록하는 현실의 역사에 대한 비판]

시인(詩人)[정신적 가치 추구]은 어디에 무덤[역사에 기억되는 자리]을 남길 것이냐[시인의 역사적 사명에 대한 자문과 정신적 가치가 외면되는 현실 비판으로 원래 시인의 사명이란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인물이어야 된다는 의미 / 현실의 역사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임] - 역사와 시인 자신에 대한 반성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소설로 상징되는 정신적 가치와 묘비로 상징되는 세속적 삶을 반어적으로 대비시켜 참된 삶의 가치를 깨닫게 하는 작품이다. 정신적 가치를 추구해야 할 시인이, 세속적 가치만 추구하다 죽은 사람의 묘비명을 쓴다. 화자는 이렇게 정신적 가치가 경시되는 현실을 비판하고, 물질적 삶에 물든 현대인을 풍자적으로 드러내면서, 독자들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산문적인 평이한 진술을 통해 일깨워주고 있다.


< 감상의 길잡이 >

시는 돈이나 지위와는 거리가 멀기만 한 것인가. 사람들은 시 한 줄이나 소설 한 권을 읽지 않고도 한평생 행복하게 살다 갈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이렇듯 근본적으로 외면되고 있는 시와 현대인들의 관계가 풍자되고 있다. 그러나 이때의 풍자는 공격적인 느낌보다는 서글픈 느낌을 갖게 한다.

 

내면의 심정이나 감상을 표현하는 다른 대부분의 시와 다르게 이 작품은 지적인 느낌을 줄 정도로 감상이 절제되어 있다. 한 사람의 일생이 `그렇게 살다 죽어 비석을 세웠다'하는 정도로 요약되고 있다. 이것은 시인이 삶에 대해 냉철한 이해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이 바라보는 세계는 행복하고 만족스럽기만 한 세계는 아니다. 오히려 권태롭고 갑갑할 정도이며 부정적으로 보이는 일상적인 세계이다. 시나 소설을 모르면서 돈과 지위를 얻어 잘 먹고 잘 산다. 죽은 사람이나 그 사람 묘비명이나 써 주고 있는 시인이나 다 풍자의 대상이 된다. 세계를 잿더미로 만들 불 속에서도 그 훌륭한 묘비는 남을 테지만 시인은 어디에 무덤을 남길 것인가? 그것은 이 시대에 시인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도 같다. 이 시대는 시인이 살기에는 너무 어둡고 역사조차 진실을 기록할 것인가라고 의심되는 시대이다.

 

이 작품은 이러한 부정적인 세계와, 그 속에 살면서 그 세계를 냉정하게 바라보는 태도 사이의 기묘한 마찰에서 효과를 보이고 있다. 이것이 우울한 풍자로 나타난다. 시인은 현대에서 아무런 힘도 갖지 못하다는 것을 풍자하지만, 그 우울의 힘은 삶과 역사와 시인 자신에 대해 반성하게 한다. 그 힘은 깊은 인생론의 지혜와 시대에 대한 냉정한 고찰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그러한 통찰과 반성을 너무 분명하여 산문에 가까운 명쾌한 문장과 간결한 형태 속에 담아 내고 있다. [해설: 조남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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