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 철학 / 가드너(Gardiner)
by 송화은율모자 철학 / 가드너(Gardiner)
일전(日前)에, 나는 모자에 다리미질을 하려고 어느 모자점에 들어간 일이 있다. 그 모자는 비바람에 시달려서 털이 부하게 일었기 때문에, 될 수 있는 대로 새 것처럼 반들거리게 보이도록 하고 싶었던 것이다. 광을 내는 것을 보면서 기다리고 있자니, 모자점 주인(主人)은 자기가 정말로 흥미(興味)를 가진 문제(問題)――모자와 머리의 문제 ―― 에 대하여 이야기를 꺼냈다.
"그렇습니다."
그는 내가 한 어떤 말에 이렇게 대답을 하더니,
"머리의 모양이나 크기에는 놀랄 만한 차이가 있습니다. 선생의 머리는 보통이라 하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나의 보통의 얼굴에 언뜻 그만 실망(失望)의 빛이 어리는 것을 보았는지 이렇게 덧붙였다.
"제 말씀은 다름이 아니라, 선생의 머리는 비정상(非正常)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머리에 따라서는 ――자, 저기 있는 저 모자를 보십시오. 저것은 머리가 매우 우습게 생긴 분의 것입니다. 길고, 좁고, 혹투성이의 ――아주 비정상적인 머리도 있습니다. 그리고, 크기로 말하면 참 놀랄 만큼 차이가 심합니다. 저희는 변호사들과의 거래(去來)가 많습니다만, 그분들의 머리는 참 놀랄 만큼 큽니다. 아마 선생께서도 놀라실 것입니다. 그분들의 머리가 그렇게 커진 것은 아마 생각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요? 저기 저 모자는 ○○씨(유명한 변호사의 이름을 대면서)의 것인데, 엄청나게 큰 머리입니다. 7인치 반, 이것이 그분의 머리 크기입니다. 그리고, 그분들 중에는 7인치 이상 되는 분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는 또 말을 계속했다.
"제가 보기에는요, 머리의 크기는 직업(職業)과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전에 어느 항구 도시(港口都市)에 있었는데요, 그 때 많은 선장(船長)님들의 일을 해 드렸지요. 그분들의 머리는 보통이 아니었어요. 아마 그것은 그분들이 많이 걱정을 해야 하기 때문이겠지요. 조수(潮水)며 바람이며 빙산(氷山)이며, 기타 여러 가지를 걱정하자니……."
나는 필경, 그 모자점 주인(主人)에게 빈약한 인상(印象)을 주었으리라는 사실(事實)을 의식(意識)하면서, 나의 보통의 머리를 떠받들고 모자점을 나왔다. 그 모자점 주인에게는, 내가 경우 6⅞인치 크기의 인간(人間)밖에는 아무것도 아니고, 따라서 대단치 않은 인간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에게, 속에다 보석을 지닌 머리는 반드시 크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지적해 주고 싶었다. 물론, 위인 중에는 머리가 큰 사람이 왕왕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비스마르크의 크기는 7¼인치, 글래드스턴도 그러했으며, 캠벌배너먼도 그러했다. 그러나, 이와 반대(反對)로, 바이런은 머리가 작았고, 뇌가 대단히 작았다. 그런데 괴테는 말하기를, 바이런은 셰익스피어 이래 유럽에서 나온 가장 우수(優秀)한 두뇌의 소유자(所有者)라고 하지 않았던가? 보통의 경우라면 동의(同意)할 수 없지만, 작은 머리를 가진 사람으로서 나는, 이 문제(問題)와 관련하여 괴테의 말을 주저 없이 받아들인다. 홈스의 말과 같이, 중요(重要)한 것은 뇌의 크기가 아니고 그 회전의 빠름이다(지금 생각해 보니, 홈스는 머리가 작았던 모양이다.).
하여간, 나는 그 모자점 주인(主人)에게 말해 주고 싶었다. 내 머리는 비록 작을 망정 내 뇌의 회전 속도는 최상급(最上級)이라고 믿을 수 있는 충분(充分)한 이유(理由)가 있다고.
나는 물론 그렇게 말하진 않았다. 다만, 내가 지금 그 일을 다시 생각하는 것은 그 일을 통하여, 사람들은 제각기 자기 특유(特有)의 창구멍으로 인생(人生)을 들여다보는 버릇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든 것은 모자의 크기를 통해서 세상(世上)을 들여다보는 사람의 경우였다. 그는, 조운스가 7인치 반을 쓴다 해서 그를 존경(尊敬)하고, 스미드가 6¾인치밖에 안 된다고 해서 무시(無視)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는 모두 이러한 직업적(職業的)시야(視野)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재단사는 제군(諸君)의 의복(衣服)을 훑어보고서 그 재봉 솜씨와 광택의 정도에 따라 제군을 측정(測定)한다. 그에게 있어서 제군은 다만 옷걸이에 불과(不過)하고, 제군의 가치는 제군이 입고 있는 의복에 정비례(正比例)한다. 제화공은 제군의 신을 보고서 그 신의 질과 손질을 한 상태에 따라 제군의 지식(知識)이나 사회적(社會的), 경제적(經濟的) 정도를 잰다. 만일, 제군(諸君)이 굽이 닳은 신을 신고 있으면, 제군의 모자가 아무리 번들거려도 제군에 대한 그의 평가는 변하지 않는다. 모자는 그의 시야(視野)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것은 그의 평가 기준의 일부(一部)도 되지 않는 것이다.
치과 의사(齒科醫師)도 마찬가지다. 그는 이 세상(世上)의 모든 일을 이로써 판단한다. 제군의 입 속을 잠깐 들여다보기만 하고서도, 제군의 성격(性格)이나 습관이나 건강 상태, 지위(地位), 성질(性質) 등에 대하여 확고 부동(確固不動)한 자신(自信)을 가진다. 그가 신경(神經)을 건드리면 제군은 몸을 움츠린다.
그러면, 그는
'아하, 이 친구, 술과 담배가 차나 커피를 지나치게 하는군.'
하고, 속으로 생각한다. 그가 치열(齒列)이 고르지 못한 것을 보면,
"가엾게도 이 사람은 아무렇게나 자랐구나."
하고 혼자 말한다. 또, 치아가 등한시(等閑視)된 것을 보면,
"칠칠치 못한 친구로군, 쓸데없는 데에 돈을 다 써 버리고 식구(食口)는 돌보지 않은 것이 확실(確實)해."
한다. 그리고 제군(諸君)에 대한 진찰이 끝날 무렵에는 제군의, 이에 나타난 것만으로 해서도 제군의 전기(傳記)를 쓸 수 있을 것같이 생각한다. 그리고 아마 그것은 대부분(大部分)의 전기와 마찬가지로 올바른 것이 될 것이다. 또한 마찬가지로 그릇된 것이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실업가(實業家)는 회계실(會計室)의 열쇠 구멍으로 인생(人生)을 내다본다. 그에게 있어서는 세계(世界)가 하나의 상품 시장(商品市場)이고, 그는 이웃 사람들을 그들의 가게 문 유리의 크기로써 평가한다. 그리고, 금융업자도 마찬가지다. 로드차일드 집안의 한 사람이, 그의 친구 하나가 죽었을 때, 백만의 돈밖에 남기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는,
"저런 저런! 그 친구, 꽤 잘 사는 줄 알았더니……."
하고 말했다는 것이다. 일단 유사시(有事時)를 위해서 겨우 백만밖에 저축(貯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일생(一生)은 실패(失敗)라는 것이다. 대커리는 그의 한 작품(作品)에서, 이런 생각을 아주 잘 나타냈다. 오즈번 영감은 조지에게 "수완이 있고, 부지런히 일하고, 판단이 현명(賢明)하고, 그러면 어떻게 되는지 알겠지? 나와 나의 예금 통장을 보아라. 돌아가신 불쌍한 세들리 할아버지와 그분의 실패를 보아라. 그렇지만, 20년 전에는 그분이 나보다 나았단다. 아마 2만 파운드는 우세(優勢)했겠지."
하고 말했던 것이다.
생각건대, 나도 또한 사물(事物)을 직업적(職業的)인 눈으로 보는 모양이어서, 사람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 그들의 행동을 가지고 하지 않고, 언어(言語)를 사용하는 기교(技巧)를 보고서 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화가(畵家)가 우리집에 오면 벽에 걸린 그림으로 나의 인물(人物)을 평가하고, 마찬가지로, 가구상(家具商)이 오면 의자의 모양이나 양탄자의 질(質)로써 그 위치를 결정(決定)지으며, 미식가(美食家)가 오면 요리(料理)나 술로써 판정(判定)을 내린다. 만일 그에게 샴페인을 내면 우리를 존경(尊敬)하고, 만일 호크를 내면 평범(平凡)한 사람 속에 넣고 만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요컨대, 우리들 모두가 인생(人生)을 걸어가는 데 있어서 각자(各自)의 취미나 직업(職業)이나 편견(偏見)으로 물든 안경을 쓰고 가는 것이고, 이웃 사람들을 우리 자신(自身)의 자로 재고, 자기류(自己流)의 산술(算術)로 그들을 계산(計算)한다 하겠다. 우리는 주관적(主觀的)으로 보지, 객관적(客觀的)으로 보지는 않는 것이다. 곧, 볼 수 있는 것을 보는 것이지, 실제로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사실(事實)이라고 하는 그 다채(多彩)로운 것을 알아 보려고 할 때, 수없이 실패(失敗)를 하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요점 정리
지은이 : 가드너(Gardiner)/ 이창배 옮김
갈래 : 수필
성격 : 사색적, 교훈적, 체험적, 비유적
제재 : 모자, 모자 가게 주인과의 대화
구성 : 3단 구성
기 : 모자점 주인은 모자의 크기로 두뇌의 우수함이 비례한다는 생각을 말하고 나는 동의하기가 어려웠다.
서 : 사람들은 자신의 체험에 바탕을 둔 관점에서 인생을 들여다 보는 버릇이 있다.
결 :
주제 : 사물이나 세계를 보는 관점, 사물이나 세계를 바라보는 열린 관점의 중요성, 자기 관점의 한계를 인정하는 열린 사고의 촉구, 편견의 위험성
특징 : 철학적인 주제를 다양한 사례 중심의 표현과 구체적인 경험을 일반화하여 보편적인 주제로 확장해 가는 전개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가벼운 제재를 선택하여 무거운 주제에 쉽게 접근하도록 함.
줄거리 : 일전에 나는 모자에 다림질을 하려고 모자점에 들어간 일이 있다. 거기서 모자점 주인이 모자와 머리의 문제에 대하여 이야기를 꺼낸다. 그러면서 ‘나’의 머리는 보통이라고 한다. 내가 실망의 빛을 보이자 ‘나’의 머리가 비정상이라는 말은 아니고 머리에 따라서는 비정상적인 머리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변호사들의 머리는 참 놀랄 만큼 크다고 하면서 머리의 크기는 직업과 관련이 많다고 한다. 그 주인의 말에 의하면 내 머리가 6과 8분의 7인치니까 그 정도 크기의 인간밖에는 아무것도 아니고, 따라서 대단치 않은 인간이었을 것이다.
나는 속에다 보석을 지닌 머리는 반드시 크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지적해 주고 싶다. 사람들은 제각기 자기 특유의 창구멍으로 인생을 들여다보는 버릇이 있어서 재단사는 의복을 보고, 실업가는 회계실의 열쇠 구멍으로 인생을 내려다 본다. 요컨대 우리들 모두가 인생을 걸어가는 데 각자의 취미나 직업이나 편견으로 물든 안경을 쓰고 가는 것이고, 이웃을 그들의 계산으로 평가한다. 그러므로 사물이나 세계를 객관적으로 보는 관점이 중요한 것이다.
내용 연구
일전(日前 : 며칠 전)에, 나는 모자에 다리미질을 하려고 어느 모자점에 들어간 일이 있다(작가의 체험, 사례를 통한 이야기 도입). 그 모자는 비바람에 시달려서 털이 부하게 일었기 때문에, 될 수 있는 대로 새 것처럼 반들거리게 보이도록 하고 싶었던 것이다. 광을 내는 것을 보면서 기다리고 있자니, 모자점 주인(主人)은 자기가 정말로 흥미(興味)를 가진 문제(問題)――모자와 머리의 문제 ―― 에 대하여 이야기를 꺼냈다.
"그렇습니다."
그는 내가 한 어떤 말에 이렇게 대답을 하더니,
"머리의 모양이나 크기에는 놀랄 만한 차이가 있습니다. 선생의 머리는 보통이라 하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나의 보통의 얼굴에 언뜻 그만 실망(失望)의 빛이 어리는 것을 보았는지 이렇게 덧붙였다.[여기서 '보통'이라는 것은 뛰어난 점이 없이 그저 그런 정도를 뜻한다. 글쓴이는 가게 주인의 말을 그대로 다시 표현하여 그의 실언을 꼬집고 있다.]
"제 말씀은 다름이 아니라, 선생의 머리는 비정상(非正常)이 아니라는 뜻입니다(머리 크기가 작기 때문에). 그러나 머리에 따라서는 ― 자, 저기 있는 저 모자를 보십시오. 저것은 머리가 매우 우습게 생긴 분의 것입니다. 길고, 좁고, 혹투성이의 ― 아주 비정상적인 머리도 있습니다. 그리고, 크기로 말하면 참 놀랄 만큼 차이가 심합니다. 저희는 변호사들과의 거래(去來)가 많습니다만, 그분들의 머리는 참 놀랄 만큼 큽니다. 아마 선생께서도 놀라실 것입니다. 그분들의 머리가 그렇게 커진 것은 아마 생각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요?[모자 가게 주인은 단순한 선후 관계를 인과 관계로 잘못 파악하는 원인 오판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즉 원인과 결과 사이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말이다.] 저기 저 모자는 ○○씨(유명한 변호사의 이름을 대면서)의 것인데, 엄청나게 큰 머리입니다. 7인치 반, 이것이 그분의 머리 크기입니다. 그리고, 그분들 중에는 7인치(inch : 약 2.54cm에 해당) 이상 되는 분이 많습니다."(모자점 주인이 생각하는 변호사들이 머리가 큰 이유)
그리고 그는 또 말을 계속했다.
"제가 보기에는요, 머리의 크기는 직업(職業)과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전에 어느 항구 도시(港口都市)에 있었는데요, 그 때 많은 선장(船長)님들의 일을 해 드렸지요. 그분들의 머리는 보통이 아니었어요. 아마 그것은 그분들이 많이 걱정을 해야 하기 때문이겠지요. 조수(潮水 : 달의 인력에 의해 일정한 시간을 두고 주기적으로 해면의 높이가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는 현상)며 바람이며 빙산(氷山)이며, 기타 여러 가지를 걱정하자니……."
나는 필경(畢竟 : 마침내), 그 모자점 주인(主人)에게 빈약한 인상(印象)을 주었으리라는 사실(事實)을 의식(意識)하면서, 나의 보통의 머리를 떠받들고 모자점을 나왔다. 그 모자점 주인에게는, 내가 경우 6⅞인치 크기의 인간(人間)밖에는 아무것도 아니고, 따라서 대단치 않은 인간이었을 것이다.[작가는 머리의 크기가 보통이기 때문에 모자 가게 주인은 작가를 특별하게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다.]
나는 그에게, 속에다 보석을 지닌 머리는 반드시 크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지적해 주고 싶었다.[보석을 지닌 머리란 지적 수준이나 사고력이 뛰어난 사람을 가리킨다. 여기서 뜻하는 바는 머리가 커야만 사고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었다.] 물론, 위인 중에는 머리가 큰 사람이 왕왕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비스마르크의 크기는 7¼인치, 글래드스턴도 그러했으며, 캠벌배너먼도 그러했다. 그러나, 이와 반대(反對)로, 바이런은 머리가 작았고, 뇌가 대단히 작았다. 그런데 괴테는 말하기를, 바이런은 셰익스피어 이래 유럽에서 나온 가장 우수(優秀)한 두뇌의 소유자(所有者)라고 하지 않았던가? 보통의 경우라면 동의(同意)할 수 없지만, 작은 머리를 가진 사람으로서(작가 자신의 경우) 나는, 이 문제(問題)와 관련하여 괴테의 말을 주저 없이 받아들인다. 홈스의 말과 같이, 중요(重要)한 것은 뇌의 크기가 아니고 그 회전의 빠름이다(지금 생각해 보니, 홈스는 머리가 작았던 모양이다.).[모자 주인의 말에 대한 나의 반박]
하여간, 나는 그 모자점 주인(主人)에게 말해 주고 싶었다. 내 머리는 비록 작을 망정 내 뇌의 회전 속도는 최상급(最上級)이라고 믿을 수 있는 충분(充分)한 이유(理由)가 있다고.
나는 물론 그렇게 말하진 않았다. 다만, 내가 지금 그 일을 다시 생각하는 것은 그 일을 통하여, 사람들은 제각기 자기 특유(特有)의 창구멍으로 인생(人生)을 들여다보는 버릇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든 것은 모자의 크기를 통해서 세상(世上)을 들여다보는 사람의 경우였다[모자점 주인과의 대화에 대한 작가의 해석이 드러난 부분으로 모자점 주인과의 대화라는 개별적인 체험을 제시한 후, 이 체험에 대한 작가의 해석을 일반화하여 이것을 보편적인 주제로 연결짓고 잇다. 이 작품의 끝부분에서는 우리의 시각이 주관과 편견에 사로잡혀 사물과 대상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있다고 하여 주제를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서술 방법은 흔히 교훈적 수필에서 볼 수 있는 구성이다.]. 그는, 조운스가 7인치 반을 쓴다 해서 그를 존경(尊敬)하고, 스미드가 6¾인치밖에 안 된다고 해서 무시(無視)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는 모두 이러한 직업적(職業的)시야(視野)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이 대목에서 작가는 자신의 구체적인 경험을 일반화하여 이를 보편적 주제로까지 확대하공 있다. 작가는 모자점 주인이 모자의 크기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는 것처럼 재봉사는 옷의 품질에 따라, 제화공은 신발의 질과 상태에 따라 사람을 판단할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데, 이는 곧 사람들이 자신들의 세계 속에서 각각의 편견과 선입견에 사로 잡혀 대상을 객관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재단사는 제군(諸君)의 의복(衣服)을 훑어보고서 그 재봉 솜씨와 광택의 정도에 따라 제군을 측정(測定)한다. 그에게 있어서 제군은 다만 옷걸이에 불과(不過)하고, 제군의 가치는 제군이 입고 있는 의복에 정비례(正比例)한다. 제화공은 제군의 신을 보고서 그 신의 질과 손질을 한 상태에 따라 제군의 지식(知識)이나 사회적(社會的), 경제적(經濟的) 정도를 잰다. 만일, 제군(諸君)이 굽이 닳은 신을 신고 있으면, 제군의 모자가 아무리 번들거려도 제군에 대한 그의 평가는 변하지 않는다. 모자는 그의 시야(視野)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것은 그의 평가 기준의 일부(一部)도 되지 않는 것이다.
치과 의사(齒科醫師)도 마찬가지다. 그는 이 세상(世上)의 모든 일을 이로써 판단한다. 제군의 입 속을 잠깐 들여다보기만 하고서도, 제군의 성격(性格)이나 습관이나 건강 상태, 지위(地位), 성질(性質) 등에 대하여 확고 부동(確固不動)한 자신(自信)을 가진다. 그가 신경(神經)을 건드리면 제군은 몸을 움츠린다.
그러면, 그는
'아하, 이 친구, 술과 담배가 차나 커피를 지나치게 하는군.'
하고, 속으로 생각한다. 그가 치열(齒列)이 고르지 못한 것을 보면,
"가엾게도 이 사람은 아무렇게나 자랐구나."
하고 혼자 말한다. 또, 치아가 등한시(等閑視)된 것을 보면,
"칠칠치 못한 친구로군, 쓸데없는 데에 돈을 다 써 버리고 식구(食口)는 돌보지 않은 것이 확실(確實)해."
한다. 그리고 제군(諸君)에 대한 진찰이 끝날 무렵에는 제군의, 이에 나타난 것만으로 해서도 제군의 전기(傳記)를 쓸 수 있을 것같이 생각한다. 그리고 아마 그것은 대부분(大部分)의 전기와 마찬가지로 올바른 것이 될 것이다. 또한 마찬가지로 그릇된 것이 될 것이다.[실제 일치하는 내용도 있겠지만 일치하지 않는 내용도 있다는 뜻으로 편견의 위험성을 지적한 구절이다.]
마찬가지로, 실업가(實業家)는 회계실(會計室)의 열쇠 구멍으로 인생(人生)을 내다본다. 그에게 있어서는 세계(世界)가 하나의 상품 시장(商品市場)이고, 그는 이웃 사람들을 그들의 가게 문 유리의 크기로써 평가한다. 그리고, 금융업자도 마찬가지다. 로드차일드 집안의 한 사람이, 그의 친구 하나가 죽었을 때, 백만의 돈밖에 남기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는,
"저런 저런! 그 친구, 꽤 잘 사는 줄 알았더니……."
하고 말했다는 것이다. 일단 유사시(有事時)를 위해서 겨우 백만밖에 저축(貯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일생(一生)은 실패(失敗)라는 것이다. 대커리는 그의 한 작품(作品)에서[19세기 중반에 발표된 영국 소설가 대커리의 장펴 소설 '허영의 시장, Vanity Fair'을 가리키는 말이다. 19세기 영국 상류 사회의 허영으로 가득 찬 속물 근성을 폭로하고 풍자한 작품이다.], 이런 생각을 아주 잘 나타냈다. 오즈번 영감은 조지에게 "수완이 있고, 부지런히 일하고, 판단이 현명(賢明)하고, 그러면 어떻게 되는지 알겠지? 나와 나의 예금 통장을 보아라. 돌아가신 불쌍한 세들리 할아버지와 그분의 실패를 보아라. 그렇지만, 20년 전에는 그분이 나보다 나았단다. 아마 2만 파운드는 우세(優勢)했겠지."
하고 말했던 것이다.
생각건대, 나도 또한 사물(事物)을 직업적(職業的)인 눈으로 보는 모양이어서, 사람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 그들의 행동을 가지고 하지 않고, 언어(言語)를 사용하는 기교(技巧)를 보고서 하는 경향이 있다['나'가 지닌 직업적인 눈]. 그리고, 화가(畵家)가 우리집에 오면 벽에 걸린 그림으로 나의 인물(人物)을 평가하고, 마찬가지로, 가구상(家具商)이 오면 의자의 모양이나 양탄자의 질(質)[가구상이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로써 그 위치를 결정(決定)지으며, 미식가(美食家)가 오면 요리(料理)나 술로써 판정(判定)을 내린다[미식가가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 만일 그에게 샴페인을 내면 우리를 존경(尊敬)하고, 만일 호크를 내면 평범(平凡)한 사람 속에 넣고 만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요컨대, 우리들 모두가 인생(人生)을 걸어가는 데 있어서 각자(各自)의 취미나 직업(職業)이나 편견(偏見)으로 물든 안경을 쓰고 가는 것이고, 이웃 사람들을 우리 자신(自身)의 자로 재고, 자기류(自己流)의 산술(算術)로 그들을 계산(計算)한다 하겠다. 우리는 주관적(主觀的)으로 보지(자신의 가치관), 객관적(客觀的)으로 보지는 않는 것이다. 곧, 볼 수 있는 것을 보는 것이지, 실제로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사실(事實)이라고 하는 그 다채(多彩)로운 것을 알아 보려고 할 때[일부 번역가는 이 부분을 '삼각뿔 모양의 프리즘'으로 번역하고 있다. 그 뜻은 사람은 자신의 기준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바라본다는 깨달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일이다.], 수없이 실패(失敗)를 하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모자 철학의 논리적 구조
구체적 사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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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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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
판단 기준 |
사례의 일반화 |
편견 |
모자 장수 |
모자의 크기 |
사람은 모두 편견을 지니고 살아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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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사 |
재단 솜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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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 수선공 |
구두의 질과 상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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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 의사 |
치아의 상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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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가 |
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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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업자 |
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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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작가) |
언어 사용 기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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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
벽에 걸린 그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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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상 |
의자나 양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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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가 |
요리나 술 |
이해와 감상
사람들은 자신의 직업이나 취미 또는 편견 때문에 객관적인 사실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작자는 이러한 사실을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알기 쉽게 제시한다. 이 글 소재는 어떻게 보면 작자는 이 무거운 소재를 최대한 가벼운 제재를 선택하여 이야기의 접근을 쉽게 하고 있다. 이런 특성이 추상적이고, 사색적인 차원의 이야기를 구체적이고 알기 쉬운 이야기로 풀어내는 것이다. 이 글에서도 작자는 '모자'라는 일상적인 소재에서 출발하여 편견을 버리자는 주제를 이끌어 내고 있다.
이해와 감상1
'모자 철학'은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만의 기준에 의해 다른 사람이나 사물을 평가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는 교훈적인 수필이다. 지은이는 사람들이 자신의 편견이나 자신의 삶, 그리고 직업 등으로 인하여 객관적인 사실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알기 쉽게 제시한다. 이 글은 주제상 무거울 수 있는 내용을 최대한 가벼운 글감을 선택하여 편하게 읽도록 이야기를 이끌어 내고 있어 독자들이 공감을 느낄 수 있다.
이 글에서 나온 것처럼 우리는 누구나 개인의 배경 지식에 바탕을 둔 시선과 판단으로 사물과 사람을 평가한다. 그 비근한 예로 장님 코끼리 만지는 식의 판단을 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판단이 한계성을 지닐 수밖에 없고 여기서 글쓴이는 이 세상 어떤 사람이라도 완벽한 잣대를 가지고 사물과 세상을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 글은 편견과 고정 관념을 버리고 서로의 입장과 생각을 존중하는 태도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하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심화 자료
가드너 (Alfred George Gardiner 1865∼1946)
영국 수필가·저널리스트·전기작가. 필명은 < A of P(Alpha of the Plough)>(<북두칠성의 으뜸별>이란 뜻)였다. '노던 데일리 텔레그래프' 신문사 간부와 '런던 데일리 뉴스'의 편집인, 언론인협회장을 역임하였다. 그의 수필은 경묘(輕妙)하면서도 치밀하고 위트에 넘치는 것이 특징으로 평가되고 있다. 작품에 '우산의 도덕(道德)에 관하여', '동승자(同乘者)' 등의 수필이 있다.
인식적·윤리적 측면에서 본 '모자 철학'
이 글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인식적 차원의 깨달음은 자신의 경험과 관념을 상대화하여 세상을 보다 열린 눈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경험은 언제나 한정되어 있을 수밖에 없고, 직업이나 취향, 환경 등에 따라 비슷한 경험을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반복되는 경험은 우리에게 편협한 관념을 주기 쉬운데, 이 글은 우리의 관념이 주관적인 것에 불과하며 이를 상대화하지 않으면 편견에 빠지기 쉽다고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이 윤리적 차원에서 제공하는 감화보다 유연한 태도로 다른 사람을 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자신의 관점만을 고집한다면 다른 사람의 독특한 관점과 항상 충돌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세상과 충돌과 대립으로 가득 차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면, 자신의 관점이 모두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것임에 불과함을 인식하고 타인의 견해도 자신의 것과 동등하게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열린 사회와 그 적들
자연의 조화된 상태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만약 우리가 되돌아간다면, 우리는 길 전체를 다 가야만 한다 - 우리는 금수(禽獸)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가 그렇게 하기는 어려울지 모르지만, 그것은 우리가 정면으로 부딪쳐야 하는 문제인 것이다. 우리가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기를 꿈꾼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해서 행복을 찾고자 한다면, 우리의 십자가를 지는 일 - 인간다움과 이성과 책임의 십자가를 지는 일에 위축되어 버린다면, 용기를 잃어버리고 긴장에 찌들어 버린다면,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단순한 결정을 분명하게 이해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강화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금수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으로 남고자 한다면, 오직 하나의 길, 열린사회로의 길이 있을 뿐이다.(출처 : 칼 포퍼 저 /이한구 역 '열린 사회와 그 적들')
칼 포퍼(Sir Karl Riamund Popper 1902∼1994)
영국 철학자. 오스트리아 빈 출생. 빈대학에서 철학·수학·물리학·심리학을 배웠다. 유대인인 그는 나치스를 피해 뉴질랜드로 망명, 1937∼45년에 캔터베리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쳤으며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뒤 영국으로 이주, 런던대학 강사를 거쳐 49∼69년 동대학 논리학과 과학방법론 교수를 지냈다. 논리실증주의에 대한 비판을 통하여 <비판적 합리주의>를 창시한 그는 과학을 대담한 추측과 이에 대한 반증(反證)을 통하여 발전하는 것으로 보았으며, 과학과 비과학을 가르는 기준으로 반증가능성 원리를 제시하였다. 이에 따라 점성학·형이상학·정신분석학 및 마르크스주의 역사이론 등은 반증이 불가능한 사이비 과학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나치즘이나 마르크스주의 같이 종족·국가·계급 등을 통해 사회를 집합적 전체로 다루는 것은 반드시 개인 자유를 희생시킨다고 보고, <열린 사회>를 건설할 방법으로 <점진적 사회공학>을 제시하였다. 저서에는 과학철학의 고전이 된 《탐구의 논리(1934)》, 사회철학의 명저 《열린 사회와 그 적들(1945)》 《역사주의의 빈곤(1957)》, 그 밖에 《추측과 반박(1963)》 《객관적 지식(1972)》 등이 있다.(출처 : 파스칼세계대백과사전)
사물의 다양성과 열린 사고
이 세상의 삼라만상(森羅萬象)은 어느 한 가지 이유나 목적 때문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라보는 시각이나 처지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리 보일 수 있다. 예를 들면, 맹수에게 잡혀 먹는 초식(草食) 동물이 우리의 눈에는 불쌍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자연계의 법칙으로 바라본다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또, 어느 사회에서 특정의 고기를 먹는 식생활 문화를 보고 야만인이라고 매도하는 태도는 자문화 중심주의로 남의 문화를 평가하려는 잘못된 시각이다. 심지어 변기도 어떤 상황에 있느냐에 따라 소변을 보는 데 사용될 수 있고, 예술 작품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 눈에 익숙한 것이 아니라 쉽게 이해하기 힘든 일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나름대로의 유목적성을 지니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느 한 가지 생각만이 옳다고 고집한다면 우리 사회는 정체되고 말 것이다. 다양한 생각이 다 가치 있는 것으로 인정될 수 있는 사회만이 열린 사회이고, 창조적인 발전의 가능성이 있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교훈과 쾌락
(1) 교훈설(敎訓說)
훌륭한 작품은 개인의 체험적 사실에 기반하여 인생의 진리, 당대의 현실을 진실되게 반영하므로 독자는 이 작품의 감상을 통해 삶에 필요한 지식과 깨우침을 얻을 수 있다는 설이다. 공자가 '시경'에 실려 있는 시 3백 편은 모두가 생각이 진실해서 사악한 점이 없다.'고 한 것은 대표적인 교훈설이다. 서양에서도 플라톤의 문학을 진리의 문제와 연결시킴으로써 교훈설의 입장에 섰다고 말할 수 있다. 플라톤의 문학관은 이데아설에 나타나는데, 그는 자연은 이데아를 모방하고 예술은 자연을 모방하기 때문에 예술은 참된 진리인 이데아로부터 두 단계나 떨어진 것이므로 열등한 것이라고 보았다. 시인 추방론은 문학에 대한 이러한 인식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이러한 교훈설을 바탕으로 한 문학적 사상을 교훈주의(敎訓主義, didacticism)라 하고 문학이나 예술은 독자에게 쾌락보다는 교훈을 주려는 의도에서 창작된다고 보는 견해로 철학적·종교적 진리나 도덕적 식견을 주어 독자를 가르칠 의도로 창작된다는 견해는 일찍이 플라톤이 《국가(國家)》에서 <시인추방론(詩人追放論)>을 주장한 것에서 볼 수 있고, 공자(孔子)가 《논어(論語)》에서 <시 300편은 한마디로 말하면 생각에 사특함이 없다(詩三百一言以蔽之曰思無邪)>고 한 말에서도 나타난다. 로마의 호라티우스는 《시법(詩法, Ars Poetica)》에서 <시인의 소원은 가르치는 일, 또는 쾌락을 주는 일, 또는 둘을 겸하는 일>이라고 하여 교훈을 주로 한 공리설(功利說)을 주장하였다. 현대의 사회주의리얼리즘에서는 쾌락주의의 반대인 이 효용설을 마르크스주의에 결부시켜 문학·예술을 공산주의 내지 사회주의 사상을 주입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 당의 한 시녀나 예속물로 전락시키기도 했다. 교훈적인 의도의 교훈극·교훈시 등은 일찍부터 존재했으며, 12세기경 독일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독일의 교훈문학(Lehrdictung)은 W. 포겔바이데가 처세법·풍습을 가르쳐 주기 위해 격언의 형식을 취한 이후 하나의 장르를 이루었고, 13세기에는 많은 작품이 쏟아져 나왔다.(참고 자료 : 파스칼세계대백과사전)
(2) 쾌락설(快樂說)
문학은 자체의 구조를 통해 아름다움을 표현하므로 독자는 그 미를 감상하는 가운데 심리적 쾌감을 느끼게 된다는 설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비극이 '연민과 공포를 통하여 감정의 카타르시스[Catharsis : 淨化, ① 문학에서는 비극(悲劇) 속의 연민과 공포를 통해서 마음이 정화되고 쾌감을 느끼는 일. ② 심리에서는 자기가 직면한 고뇌 따위를 밖으로 표출함으로써 강박 관념을 해소시키는 일]를 행한다.'고 한 것은 문학이 자체의 구조가 지닌 질서를 통해 심리적 쾌감을 준다고 본 점에서 쾌락설의 주장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이러한 쾌락설의 사상적 배경을 쾌락주의라고 하며 쾌락주의(快樂主義, hedonism)는 쾌락이 인간 행위의 동기이자 목적이며 도덕의 기준이라고 하는 윤리학설. 행복을 증진시키는 것은 모두 선(善)이라고 보는 행복주의의 한 형태이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이며 키레네학파 시조인 아리스티포스가 창시하였다고 한다. 그는 주관적·상대적 입장에서 일시적 쾌락만이 선이며 가능한 한 많은 쾌락을 누리는 데 행복이 있다고 하는 감각적·양적 쾌락주의를 내세웠다. 반면 쾌락주의설의 대표자 에피쿠로스는 이러한 쾌락이 결국 몸과 마음의 고통만을 가져다 줄 뿐이라고 보고 지속적·정신적 쾌락만이 최고선이라 하여 쾌락에 질적 구분이 있음을 말하였다. 그는 개인의 내면적 행복이 달성된 이상적 상태를 아타락시아(ataraxia)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마음의 평정>을 뜻하는 말이다. 이와 같은 고대 쾌락주의는 공통적으로 사려(思廬;phronesis)라는 이성적 원칙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쾌락에 대한 주관적 이해에 바탕을 둔 개인적·이기적 경향을 띠고 있었다. 근대에 와서 쾌락주의는 사회적 관점과 결부되어 근대 사회이론의 한 바탕이 되었다. T. 홉스는 쾌락을 추구하는 개인의 이기심이 자연상태라는 기초적 사회형태를 만든다고 보았고, J. 벤담·J.S. 밀은 공리주의(功利主義) 입장에서 사회는 행복을 추구하는 개인의 집합체이므로, 사회 전체의 행복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실현하는 데 있다고 보았다. 특히 벤담은 이를 위하여 쾌락의 양적 차이에 바탕을 둔 쾌락계산을 고안하기도 하였다. 이들 사회이론은 평등한 욕망을 갖는 개인들을 전제로 삼았기 때문에 민주주의 사상과 결합, 철학적 급진파를 형성하기도 하였으나, 뒤에 I. 칸트 등의 엄숙주의 철학으로부터 강력한 비판을 받았다. 김지환 글(참고 자료 : 파스칼세계대백과사전)
(3) 당의정설(糖衣錠說)
문학은 내면적으로 인생의 진실에 대한 깨우침을 담고 있으나 그것을 직접적으로 서술하지 않고 작품의 심미적 구조 속에 담아서 전달하고 있기 때문에 독자는 즐겁게 그 가르침을 수용하게 된다는 설로 로마의 시인 루크레티우스의 저서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De rerum natura)'에서 나온 말. 당의설(糖衣說)로 집약되는 그의 문학관은 고대·중세를 거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의 학설은, 의사가 어린아이에게 쑥탕(湯)을 먹이려 할 때에 그릇의 거죽 전면에 달콤한 꿀물을 칠해서 먹이는 것처럼, 시(詩)도 이 꿀물과 같은 구실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자기가 말하려는 철학의 쓴 약을 꿀물인 시, 다시 말해서 달콤한 운문으로써 독자 앞에 내놓는다는 것이다. 한편 호라티우스(Horace, Horatias)도 그의 문학관을 교훈과 쾌락의 결합이라 해서 당의설을 지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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