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주기봉(明珠奇逢)
by 송화은율명주기봉(明珠奇逢)
작자 · 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24권 24책. 한글 궁체로 된 필사본. 표제는 ‘ 명주긔봉 ’ 이라고 하였으나 내제는 ‘ 명주긔봉 闕 린 瑯 녀별뎐 ’ 이라고 되어 있으며, 이본으로 ‘ 명주기연 ( 明珠奇緣 ) ’ 이 있다. 조선 후기에 창작되었으리라 추측된다.
이 작품은 〈 현씨양웅쌍린기 玄氏兩熊雙麟記 〉 의 속편인데 이것은 다시 〈 명주옥연기합록 明珠玉緣奇合錄 〉 으로 연결이 되어 있다. 〈 명주옥연기합록 〉 은 다시 〈 현씨팔룡기 玄氏八龍記 〉 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니까 이 〈 명주기봉 〉 은 4부작으로 된 연작소설 가운데 두번째에 해당되는 작품이다.
〔내용〕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송나라 인종 때, 비서각 태학사 평제후 오국공 현수문은 슬하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두었고, 그의 아우인 진국공 경문은 7자 2녀를 두었다. 오국공의 장자인 웅린과 진국공의 장자인 천린은 사마양이라는 처사에게 사사하였다.
오국공이 처사에게 청혼을 하였더니 둘째딸 예주를 웅린의 배필로 허락하였다. 얼마 뒤 진국공은 집금오 설계원의 딸을 천린의 배필로 정하였다.
현씨가에는 명주(明珠) 네 개가 있었다. 그 중 두 개는 웅린의 채례(采禮)로 보낸 바 있고, 남은 두 개를 천린의 채례로 보내려 하였다. 그런데 그것이 없어지고 그 자리에 한 봉의 글월이 있었다. “ 천기미묘(天機微妙)하니 알려 말라. 명주 속한 곳이 있느니라. ” 라고 적힌 글이었다.
신년 과장(科場)에 12세 이상은 모두 응과하라는 교지가 내려와 웅린과 천린은 응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의 글은 고하(高下)를 가릴 수가 없어서 황제는 두 사람을 모두 장원으로 뽑았다.
공주가 10세 되던 해 부마 간택의 논의가 있었다. 이때 일광대사라 하는 한 도사가 두 개의 명주와 한 봉의 글을 올리며 그 명주의 주인을 찾아 부마를 삼으라고 하였다.
황제는 수소문 끝에 천린으로 부마를 삼으려 하였다. 천린이 기혼임을 빙자하여 거절하자 상은 천린을 옥에 가두어 두었다가 혼인 전날 풀어서 성혼하게 하였다. 공주는 현숙하였으나 천린은 그녀를 싫어했다.
사처사의 맏딸 영주는 웅린을 보고는 동생 예주를 모함하여 내쫓고 자기가 대신 웅린의 아내가 되었다. 천린이 산둥지방을 순무하고 돌아오다가 병으로 누워 있는 예주소저를 발견하고 그녀를 경사로 데리고 왔다.
예주는 자신의 무죄함이 밝혀졌으나 현씨가에 돌아가지 않다가 시어머니의 간절한 친서를 받고야 마음을 고쳐먹고 그곳에 돌아갔다.
공주가 영주 소저와 설 소저의 죄를 사하여 줄 것을 간청하자 황제는 그 뜻을 따랐다. 이들은 돌아와서도 자신의 허물을 고치려 하지 않았다.
공주가 몇 차례 설 소저를 찾아가 정성껏 회유하자 마침내 그녀는 마음을 고치게 되었다. 한편, 예주 소저도 언니인 영주소저에게 현씨가에 돌아오기를 참된 마음으로 간청하자 그녀도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마음가짐을 고치게 되었다.
오래도록 태평스러운 세월이 흘렀다. 그 무렵 제초지경에 무길이라는 산적이 크게 일어나 변방을 합병하여 제왕이라 일컬었다. 이에 부마가 출정하여 그 산적을 평정하였다.
황제는 그 공을 일컬어 칭찬하고 부마에게 왕의 칭호를 내렸다. 이에 오국공 · 진국공 등 현씨집안 사람들은 상이 너무 지나침을 아뢰고 그 칭호를 거둘 것을 간청하였다. 그러나 황제가 끝내 그 뜻을 굽히지 않자 하는 수 없이 부마는 왕위에 올랐다.
현태사의 부인 장씨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오래지 않아 태사 또한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러나 현씨가의 아들과 사위들은 한결같이 현달하여 공경에 오르게 되었다. 그 뒤 현씨가의 양공(兩公) 슬하의 직계 57명, 외손 15명 등이 모두 금옥같이 자랐다.
(자료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 작품은 다음의 몇 가지 면에서 그 가치가 인정된다. 첫째는 양공에게서 보이는 남성상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남성 주인공들 모두가 어려서 과거에서 장원을 하거나 급제를 한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자기 앞에 닥치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있다. 그 결과 그들은 사회적으로 현달하고 가정적으로 화락하게 지내게 된다. 이러한 것은 당시 사회인들이 한결같이 품고 있었던 그들의 염원이 표출된 것이라 생각된다.
둘째, 월성 공주와 예주 소저로 대표되는 여인상이다. 조선시대, 남편이 아내를 권위적으로 대하고 경멸하고 학대하는 경우에도 공주와 예주 같은 여인이 보여주는 태도는 남다른 데가 있다.
그녀들은 남편의 권위적인 태도나 적국의 시기로운 행위에 조금도 구애되지 않는다. 그들은 받은 그대로, 타고난 그대로의 심성을 가지고 삶을 엮고 있다.
비록 간악한 여인일지라도 그녀를 관용으로 설득하여 마침내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화목하게 지낼 수 있는 공주나, 사회적인 계층이나 신분적인 차등을 초월하여 인간적인 정을 나누며 살고자 하는 예주소저와 같은 여인은 당시 사회인들에게 비춰지는 바람직한 여인상일 것이다.
셋째, 지존(至尊) · 지엄(至嚴)하던 왕권에 대한 의미반경이 넓어지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선조 오백년, 시대마다 왕권의 의미가 달라지고 있기는 하지만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 왕권은 또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된 듯하다.
〈 명주기봉 〉 에서, 왕권은 매우 서민성에 가깝다 하겠다. 부마의 간택에서부터 신하들의 사정(私情)까지, 심지어는 보잘 것 없는 한 여인의 사사로움까지도 왕은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런가 하면 비록 황족이라 하더라도 무고히 백성을 해치면 분노해 마지 않는다.
백성을 위하고 또 그들을 너그럽게 보살피고 있다. 이처럼 자상하고 인자한 왕권을 당시 사회인들은 그들의 지도적 권력으로 파악하였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 작품은 조선 후기에 일고 있던, 그 시대 사람들이 마음속에 그리고 있던 염원세계가 잘 표출되어 반영된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소설사상 매우 의미있는 작품이라고 할만하다. 장서각도서에 있다.
≪ 참고문헌 ≫ 韓國家門小說硏究(李樹鳳, 景仁文化社, 1992), 朝鮮朝連作小說硏究(崔吉容, 亞細亞文化社, 1992), 明珠玉緣奇合錄攷(1)(金鎭世, 冠嶽語文硏究 12, 서울大學校國語國文學科,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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