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말과 글의 중요성 / 김수업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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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글의 중요성 / 김수업


  언어와 사회․문화의 관계

  사회(社會)란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공동체를 뜻하고, 문화(文化)란 그 공동체의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삶의 자취를 뜻한다. 따라서,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사회가 있으면 반드시 그 사람들의 삶으로 나타나는 문화가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어우러져 사회라는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려면, 말(언어)이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묶어 주는 노릇을 하고, 사람들이 삶의 자취를 문화로 만드는 데에도 그 도구 노릇을 해야 한다. 또한, 말 자체가 문화의 자료가 되어야 한다. 이처럼 사회란 말이 사람들을 묶어 주어서 이루어지고, 문화란 말을 도구 또는 자료로 삼아 만들어지는 까닭에, 말과 사회․문화 사이에는 뗄 수 없는 관계가 성립한다.

 

  그러나 그 관계가 어떠한지는 아직 정확히 모른다. 우선 사회와 문화가 말을 만든다는 주장이 있다. 말을 사회의 문화 현상 가운데 하나로 보는 것이다. 살기 좋은 사회의 훌륭한 문화 안에서는 아름답고 살아 있는 말이 쓰이지만 살기 힘든 사회의 너절한 문화 안에서는 뒤틀리고 메마른 말이 쓰인다고 본다. 그리고 사회와 문화는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없는 자연의 그것이기에 그 산물인 말 또한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말이 사회와 문화를 만든다는 주장도 있다. 말을 사회의 문화 현상으로 보지 않고 사회와 문화를 만들어 내고 틀 지우는 힘으로 보는 것이다. 말이 참되고 올바르고 아름다우면 혼탁하던 사회가 맑고 깨끗하게 정화되면서 훌륭한 문화를 새롭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말을 갈고 닦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말을 가다듬어서 사회와 문화를 바로잡아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 주장은 어느 한 쪽만 온전히 옳다기보다 양쪽 모두 얼마는 옳고 얼마는 그르다고 할 수밖에는 없을 듯하다. 그러나 좋은 사회를 만들고 훌륭한 문화를 가꾸어 온 나라들일수록 그 나라의 말을 갈고 닦으려고 애쓰는 현실을 보면 뒤의 주장을 더 많은 사람들이 옳게 여기고 있다고 해도 좋을 듯하다.

 

  언어와 사회․문화의 진보 속도

  말이 모든 사람들에게 막힘 없이 두루 쓰일 수 있으면 그 공동체는 열려 있어서 누구나 능력을 마음껏 펼치고 서로를 사랑하는 사회가 되어 훌륭한 문화를 이룩할 수 있다. 쉬운 말이 모든 사람들 사이를 거침없이 오갈 수 있으면 지식과 감정과 사상 같은 정보가 자유롭게 드러나 누구나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제 소질과 능력에 맞는 정보를 자유롭게 만나고 활용할 수 있으면 저절로 그 사회․문화는 아름답고 힘차게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말이 어렵고 까다로워 사람들 사이를 제대로 오갈 수 없으면 그 공동체의 정신은 닫힐 수밖에 없다. 말이 까다로워 아무에게나 쉽게 오가지 못하면 힘과 시간과 머리가 있는 소수의 사람들만 제대로 부려 쓰면서 그들끼리 우월감에 빠져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고, 어려운 말을 자유롭게 부려 쓸 수 없는 다수의 사람들은 저들끼리 열등감에 빠져 원망과 체념 가운데서 살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소질과 능력을 펼치지 못하고 밀려나기 때문에 그 문화는 시들고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이런 현상은 사람들이 음성 언어만으로 살던 기나긴 세월 동안 별로 드러나지 않았으나 문자 언어와 더불어 산 역사 안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 사람들이 글자를 만들어 쓴 역사는 겨우 5, 6천 년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동안 사람들의 사회․문화는 문자가 있고 없음과 좋고 나쁨에 따라 엄청나게 달라졌다. 우선 문자가 없는 사회․문화는 음성 언어로 살아 온 상태에 늘 머물러 있었으나, 문자가 있는 사회․문화는 놀랍게 발전하여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갔다. 그래서 사람들은 문자를 먼저 쓰기 시작한 이집트 나일 강 유역, 중동의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강 유역, 인도의 인더스 강 유역, 중국의 황하 유역을 인류 문명이 시작한 곳이라고 말하게 되었다. 문자를 쓰면서 삶의 자취를 쌓은 것이 곧 문화가 비롯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문자를 쓰는 세계 안에서는 또 문자가 얼마나 배우기 쉬우냐에 따라 사회․문화의 진보 속도가 달라졌다. 쉬운 문자로 모든 사람들이 손쉽게 삶을 적어 멀리 보내고 오래 남길 수 있는 사회․문화는 더욱 눈부시게 발전을 거듭했으나, 문자가 어려워서 아무나 배워 쓸 수 없는 사회․문화는 어느 자리에서 진보의 속도가 떨어지고 마침내 그 자리에 멈추어 나아가지 못했다. 이제는 음성 언어와 문자 언어를 새롭게 아우르는 전자 언어1)가 나타났다. 앞으로 인류의 사회․문화는 음성 언어와 문자 언어뿐만 아니라 전자 언어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도 크게 달라질 것이다.

 

  언어와 담화 공동체

  사람에게 말이란 개인적으로는 그 정신 생활의 집이요, 집단적으로는 그 공동 생활의 핏줄이라 할 것이다. 한 개인은 그가 사용하는 말의 세계 안에서 정신 활동을 영위하고 그가 사용하는 말의 수준만큼 인품을 누리게 된다. 그리고 인간의 집단은 말을 통하여 하나가 되고, 힘을 뭉치고, 진보한다. 말로써 생각을 주고받고, 경험을 주고받고, 감정까지 주고받음으로써 사람들은 개인의 벽을 무너뜨려 집단을 이루면서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한다. 공동체라는 이 집단의 동아리도 개인과 마찬가지로 그들이 쓰는 말의 세계 안에서 삶을 누리고 그들이 주고받는 말의 정도와 수준만큼 힘을 발휘하게 된다.

 

  하나의 말을 쓰는 사회 안에는 끼리끼리 서로 남다른 목적을 갖고 독특한 모습의 말을 주고받는 담화 공동체가 수없이 들어 있다. 그 공동체 안에서 주고받는 말은 독특한 문화를 만들고 있어서, 다른 사람이 끼어들면 금방 그 모습을 감추어 버린다. 그만큼 담화 공동체는 다른 담화 공동체와 섞이지 않으려는 배타성(排他性)을 지니고 있다.

 

  담화 공동체는 그 안에 참여하는 개인에 따라 결정되기보다 공동체를 이루는 집단의 문화 풍토(文化風土)에 의해 결정된다. 같은 사람이라도 여러 가지 담화 공동체에 참여하면서 살게 마련이고, 담화 공동체가 바뀌면 그 공동체의 문화에 맞추어 말을 바꾸게 된다. 한 사람의 중학생이 허물없는 몇 사람의 은밀한 벗들로 이루어진 담화 공동체에서 주고받는 말은, 그들의 학급 전체 학생들이 참여하는 담화 공동체에서 주고받는 말과 다르고, 부모와 형제들로 이루어진 가족의 담화 공동체에서 쓰는 말과 또 다르다.

 

  같은 말을 쓰는 사회 안에 이처럼 온갖 담화 공동체가 섞여 있는 까닭에, 국어 생활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담화 공동체의 문화와 그 목적을 올바로 알고 말을 거기에 잘 맞추어 써야 한다. 말이란 이만큼 삶에서 본원적이고 소중한 그 무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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