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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석중놀이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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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석중놀이

경기도 개성지방에서 연희되던 무언인형극. 음력 4월 8일에 행해졌던 놀이로 망석(忘釋)중놀이·망석(亡釋)중놀이·만석승무(曼碩僧舞)·만석(萬石)중놀이라고도 한다.

이 놀이는 황진이(黃眞伊)의 미색과 교태에 미혹되어 파계했다는 지족선사(知足禪師)를 조롱하기 위하여 연희했다는 속전이 있으며, 일설에는 지족선사가 불공비용을 만석이나 받아먹어 그 탐심을 욕하기 위해 연희했다고도 한다.

이를 통하여 명칭의 유래와 아울러 불도(佛道)를 망쳤거나 잊은 승려를 우롱하여 이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하여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로 개성지방을 중심으로 행해지는데, 개성사람들에게는 초파일이 특별히 중요시되어 이날부터 겨울옷을 봄옷으로 갈아입고, 일손을 놓고 특별한 음식을 풍성히 장만하여 즐겁게 지낸다.

절에서는 물론 가정집에서도 등을 달고 마을 광장의 공중에 줄을 여러 개 치고 줄에다 많은 등을 단다. 이러한 많은 등 가운데 만석중이라는 인형과 사슴·노루·용·인어 등도 달아서 만석중놀이를 연희한다.

이 놀이에는 대사도 없고, 일정한 순서와 절차도 없다. 다만 절에서는 정해진 연희자가 고정되어 있어 꽹과리·북·장구 등의 타악기 반주에 따라 연희함으로써 불공드리려고 온 사람들의 취흥을 돋우어준다.

여염집에서는 고정된 연희자가 없고, 마을 주민이면 누구나 심심풀이로 인형과 기타 여러 가지 동물을 조정하며 즐긴다.

이 놀이에는 인형·노루·사슴·잉어·용 등이 각각 하나씩 도구로 쓰이며, 공중에 높이 쳐놓은 줄에 매어 다는데, 잉어·등·용·만석중·사슴·노루의 차례로 배열한다. 만석중이라는 인형은 3, 4세 아이 만한 크기인데 머리는 바가지로 되어 있고 몸체와 팔·다리는 나무로 만들어졌다. 머리에는 눈·코·입을 그렸는데 산대의 가면처럼 험상스런 모습이 아니고 〈꼭두각시놀음〉의 인형과 같이 거의 사실적 얼굴이다.

사지는 관절부분을 움직이게 하고, 발끝과 손끝에는 가는 줄을 단다. 그 끈은 만석중인형의 가슴부분에 뚫린 구멍을 통해서 배후로 나가게 되어 있으며, 배후에서 끈을 조정하면 팔은 가슴을 딱딱 치고 발은 이마를 치게 된다.

만석중은 옷을 입히지 않고 몸 전체를 색칠도 하지 않는다. 만석중은 놀음판의 중앙에 고정시켜 이리저리 움직이지 않게 한다. 노루와 사슴은 두꺼운 종이를 오려서 갈색 칠을 하고 사슴에는 흰 점을 찍어놓는다.

사슴과 노루는 상당한 거리에 떨어져 있으나 줄을 당겼다 놓았다 하면, 노루와 사슴은 맞붙어서 싸웠다가 헤어지는 것 같다. 용과 잉어는 종이로 그 실형을 나타나게 만들어 만석중인형의 왼쪽에 매달아 공중에서 부유(浮遊)하게 한다.

용과 잉어 사이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그 사이에 등 하나를 매어 달아 줄을 잡아당겼다 놓았다 함에 따라 등은 용 쪽으로 갔다 인어 쪽으로 갔다 하게끔 해놓는다. 이때 등은 여의주(如意珠)라고 하는데, 용과 잉어는 서로 여의주를 차지하려고 다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홍석모(洪錫謨)의 ≪동국세시기≫ 4월 8일조에는 매·개·호랑이·사슴·노루·꿩·토끼 등을 매달았다고 하였는데, 만석중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으므로 이것이 개성지방의 만석중놀이에 대한 기술의 일부인지는 알 수 없다. 유득공(柳得恭)의 ≪경도잡지 京都雜志≫ 성기조(聲伎條)에는 만석승무(曼碩僧舞)라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이 또한 개성의 만석중놀이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으므로, 이것이 만석중을 가리키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다.

그는 만석중 춤을 산대놀이의 일부같이 기술했는데, 오늘날 산대놀이에는 만석중이나 망석중 춤은 없고 그러한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유득공이 만석중놀이를 보았거나 전언으로 들었거나 한 사실을 잡인 배의 잡희(雜戱)로 여기고 산대놀이 속에다 넣은 것이 아닌가 한다.

≪참고문헌≫ 京都雜志, 東國歲時記, 朝鮮演劇史(金在喆, 學藝社, 1939).(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만석중(曼碩 ――)

음력 4월 8일 개성지방에서 행해지던 전래 무언인형극의 하나.

망석(忘釋)중놀이·만석승무(曼碩僧舞)라고도 한다. 놀이의 발생은 절에서 포교의 수단으로 인형극을 했던 데서 시작되었다고 하나 지금은 사라졌다. 이 놀이는 황진이에게 유혹당해 파계했다는 지족선사(知足禪師)를 조롱하기 위해 행해졌다는 설과, 불공비용을 만석이나 받은 지족선사의 욕심을 욕하기 위해 연희했다고도 전해진다. 소재는 부처님의 공덕을 통해 시방세계(十方世界)로 나아가는 이야기를 다루었다. 석가탄신일에 축하 여흥으로 담 구석에 붕(棚)을 설치하고 연출하던 일종의 무언극이다. 인형의 가슴에는 구멍을 2군데 뚫어 4개의 끈을 통하게 한 다음, 좌우 양손과 양다리 끝에 각 1가닥씩 꿰어서 빠지지 않게 한다. 연희자가 인형 뒤에서 가끔 구멍을 통해 줄을 잡아당기면 그 당기는 줄에 따라 인형의 양쪽 손은 가슴을, 양쪽 다리는 머리를 치게 된다. 이 인형의 얼굴은 바가지로, 몸뚱이·팔·다리는 나무로 만드는데 몸에 장삼을 입히고 머리에 송낙을 씌운다. 만석중 인형을 중심으로 왼쪽에서는 노루와 사슴이 다투는 형상을 하고 있다. 오른쪽에서는 용과 잉어가 여의주를 뜻하는 등(燈)을 토했다 삼켰다 하는 형상을 계속 반복한다. 사슴과 노루는 두꺼운 마분지를 오려서 만드는데, 목·다리·꼬리의 관절은 못이나 바늘 따위로 연결해놓는다. 이것들은 움직일 때마다 못을 중심으로 움직이게 된다. 이 놀음에서 노루와 사슴의 각 부분에 실을 늘여 조종하면, 머리는 내두르고 꼬리는 흔들며 발은 서로 차게 되어 있어 마치 두 짐승이 싸우는 것 같이 보인다. 용과 잉어는 창호지를 오려서 물을 들여 만든 것이다.(출처 : 브리태니카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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