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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분가(萬憤歌)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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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분가(萬憤歌)

 

 

 

 

 

 

 

 

 

 

 

 

 

 

 

 요점 정리

 작자 : 매계(梅溪) 조위(曺偉)

 연대 : 조선 연산군 때

 형식 : 2음보 1구로 계산하여 127구의 유배가사

 성격 : 원망적, 한탄적

 화자의 태도 :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함.

 제재 : 유배 생활

 주제 : 누구에게도 호소할 길 없는 슬픔과 원통함을 선왕(先王:성종)에게 하소연하는 심정을 노래

 표현 : 화자 자신을 굴원에 비유하여 슬픔과 탄식의 어조를 사용하여 억울한 심정을 토로하고 있으며, 자연물에 의탁하여 화자의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

 의의 : 유배 가사의 효시라고 보여 지며, 유배 문학 작품의 기본 구조는 '화자의 억울함 토로 - 청자(임금)에 대한 사랑(충성) 강조 - 자신에 대한 선처 호소'이다.

 

 

 내용 연구

천상 백옥경[옥황상제가 사는 궁궐이지만 여기서는 성종이 있는 궁궐을 뜻함] 십이루[열두 번 째로 높은 누각] 어디멘고

오색운 깊은 곳에 자청전[신선이 사는 집]이 가렸으니

구만 리[유배지에서 바라보는 궁궐을 상징함] 먼 하늘을 꿈이라도 갈동말동

차라리 죽어져서 억만 번[우리 시가에서는 백, 천, 만 등의 숫자를 사용하여 시적 화자의 정서나 상황을 강조하여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구만 리, 백척간, 억만 장'] 변화하여

남산 늦은 봄에 두견의 넋이 되어

이화 가지 위에 밤낮으로 못 울거든

삼청동리[신선이 사는 곳]에 저문 하늘 구름 되어

바람에 흘려 날아 자미궁[본래 북두성의 북쪽에 있는 별로 여기서는 한양의 궁궐을 의미]에 날아올라

옥황 향안[향로나 향합을 올려놓는 상 앞] 전에 지척에 나가 앉아

흥중에 쌓인 말씀[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하고 싶은 심정으로 글을 쓴 동기가 됨] 실컷 사뢰리라

아아, 이내 몸이 천지간에 늦게 나니

황하수 맑다마는 초객[초나라 때 굴원을 가리키는 말로 누명을 쓰고 귀양을 가서 멱라수에 투신 자살함]의 후신인가

상심도 가이없고 가태부[한나라 때 사람으로 이름은 가의, 벼슬에 있을 때 대신들의 시기를 받아 좌천됨]의 넋이런가

한숨은 무슨 일인고 형강은 고향이라[형강은 중국의 강이름으로 여기서는 유배지를 뜻하고 고향이라는 말은 오랫동안 유배 생활을 해왔다는 말임]

십 년을 유락하니[십 년을 유배 생활로 떠돌아다니니] 백구와 벗이 되어 함께 놀자 하였더니 어르는 듯 괴는 듯[아양을 부리는 듯, 사랑하는 듯]

남 없는 님[성종]을 만나 금화성[중국 절강성 금화현을 말함] 백옥당[적송자가 득도한 곳]의 꿈조차 향기롭다

오색실 이음이 짧아 님의 옷을 못하여도

바다 같은 님의 은혜 추호[조금이나마]나 갚으리라

백옥 같은 이내 마음 님 위하여 지키고 있었더니

장안[서울] 어젯밤에 무서리 섞어 치니[조정의 혼란을 말함]
일모수죽[해가 저물 무렵 긴 대나무에 의지함. 당나라 시인 두보의 ‘가인(佳人)’이란 시의 天寒翠袖薄(천한취수박) 하늘은 춥고 푸른 소매는 엷은 데 日暮倚脩竹(일모의수죽) 해저문 저녁 무렵에 긴 대에 의지하여 섰다의 구절에서 나온 말이다.]에 취수[푸른 소매]도 냉박[찬 기운이 돌만큼 엷음]하구나

유란[난꽃의 일종]을 꺾어 쥐고 님 계신 데[한양] 바라보니

약수[약수(弱水) : 중국의 전설에 나오는 강 이름, 신선이 사는 땅에 있다고 하는 강. 그 물에서는 기러기의 털조차 뜰 수가 없을 정도이므로 도저히 건널 수가 없다고 함. '장애물'의 의미] 가로놓인 데 구름길[장애물의 의미]이 험하구나

다 썩은 닭의 얼굴 첫맛도 채 몰라서

초췌한 이 얼굴이 님 그려[그리워] 이리[이렇게] 되었구나

천층랑[천 층이나 되게 높이 솟아 오르는 험한 물결] 한가운데 백 척간[일백 자 정되나 되는 장대]에 올랐더니[백척간두(百尺竿頭) : 백 자나 되는 높은 장대 위에 올라섰다는 뜻으로, 매우 위태롭고 어려운 지경.]

무단한[끝이 없음] 양각풍[회오리 바람, 돌발적으로 일어나 세상을 뒤흔드는 사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 환해 중[관리의 사회, 벼슬아치의 세상]에 내리나니[환해풍파(宦海風波) : 벼슬살이에서 겪는 온갖 풍파]

억만장 못[억만장이나 되는 깊은 호수]에 빠져 하늘 땅을 모르겠도다[구별하지 못하겠다]

노나라 흐린 술에 한단이 무슨 죄며

진인이 취한 잔에 월인이 웃은 탓인가

성문 모진 불에 옥석이 함께 타니

뜰 앞에 심은 난이 반이나 이울었구나

오동 저문 비에 외기러기 울며 갈 때

관산 만릿길이 눈에 암암 밟히는 듯

청련시 고쳐 읊고 팔도한을 스쳐 보니

화산에 우는 새야 이별도 괴로워라

망부 산전에 석양이 거의로다

기다리고 바라다가 안력이 다했던가

낙화 말이 없고 벽창이 어두우니

입 노란 새끼새들 어미도 그리는구나

팔월 추풍이 띠집을 거두니

빈 깃에 싸인 알이 수화를 못 면하도다

생리사별을 한 몸에 혼자 맡아

삼천장 백발이 일야에 길기도 길구나

풍파[무오사화 : 조선 연산군 4년(1498), 유자광(柳子光)을 중심으로 한 훈구파(勳舊派)가 김종직(金宗直) 중심의 사림파(士林派) 문관을 죽이고 귀양 보낸 사화.]에 헌 배 타고 함께 놀던 저 무리들아

강천 지는[하늘이 보이는 강에 지는] 해에 주즙[배와 삿대]이나 무양한가[별 탈이 없음]

밀거니 당기거니 염여퇴[중국 사천성에 있는 물 이름, 물길이 험한 곳]를 겨우 지나

만 리 붕정[붕새가 날아 갈 수 있을 정도로 앞길이 매우 멀고도 멂]을 머얼리[멀리멀리] 견주더니

바람에 다 부치어[다 붙여] 흑룡 강[the Amur River로 만주 북부에 있는 큰 강]에 떨어진 듯

천지 가이없고[끝이 없고] 어안[물고기와 기러기]이 무정하니

옥 같은 면목을 그리다가 말려는지고

매화나 보내고자 역로[역마를 바꿔 타는 곳과 통하는 길]를 바라보니

옥량명월[옥으로 된 대들보에 걸린 밝은 달]을 옛 보던 낯빛인 듯

양춘[햇빛]을 언제 볼까 눈비를 혼자 맞아[온갖 고초를 외롭게 당하고 있어]

벽해[푸른 바다] 넓은 가에 넋조차 흩어지니

나의 긴 소매를 누굴 위하여 적시는고

태상 칠위[일곱] 분이 옥진군자[신선] 명이시니

천상 남루에 생적[생황(17개의 가는 대를 바가지로 만든 바탕에 묶어 세우고, 주전자 귀때 비슷한 부리로 붊)과 피리]을 울리시며
지하 북풍의 사명[죽은 목숨]을 벗기실까 죽기도 명이요 살기도 하늘이니[인명은 재천에 달려 있다는 의미]

진채지액[공자가 진과 채나라 땅에서 당한 횡액]을 성인도 못 면하며

유예비죄[죄인과 같이 묶였으나 죄가 없음(화자의 상황)]를 군자인들 어이하리[어찌하리]

오월 비상[오월에 날리는 서리라는 뜻으로 여인이 원한을 품으면 무섭다는 뜻]이 눈물로 어리는 듯

삼 년 대한[삼 년간의 큰 가뭄]도 원기[원한의 기운]로 되었도다

초수남관[죄인, 초나라 사람 종의가 남관(초나라의 관)을 쓰고 갇혔다는 뜻]이 고금에 한둘이며

백발황상[고위직의 늙은 신하]에 서러운 일도 하고[많기도] 많다

건곤[하늘과 땅]이 병이 들어 흔돈이 죽은 후에

하늘이 침음[근심에 잠겨 신음함]할 듯 관색성[천한 사람의 감옥, 관색구성의 준말]이 비취는 듯

고정의국[유배지에서 나라만을 생각하는 정]에 원분[원망스러움과 분통함(화자의 심정)]만 쌓였으니

차라리 할마[한 눈먼 말]같이 눈 감고 지내고저

창창막막[끝이 없고, 쓸쓸하고]하야 못 믿을쏜 조화로다

이러나저러나 하늘을 원망할까

도척[옛날 중국의 큰 도적 이름]도 성히 놀고 백이[중국 은나라 사람으로 백이숙제를 말하는 것으로 절의를 지키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자 수양산에서 굶어 죽음]도 아사[굶어 죽으니]하니

동릉[중국 호남성 악양현에 있는 땅 이름]이 높은 걸까 수양산[중국 산서성 영제현 남쪽에 있는 산 이름]이 낮은 걸까

남화[책 '장자'의 다른 말] 삼십 편에 의론도 많기도 많구나

남가의 지난 꿈[남가일몽 : 꿈과 같이 헛된 한때의 부귀영화. 남가지몽(南柯之夢)]을 생각거든 싫고 미워라

고국 송추[고국에 있는 산소 둘레에 심는 나무의 총칭]를 꿈에 가 만져 보고

선인 구묘[선산, 무덤]를 깬 후에 생각하니

구회간장[겹쳐진 속마음]이 굽이굽이 끊어졌구나

장해음운[병을 발생하게 하는 구름]에 백주[대낮]에 흩어지니

호남 어느 곳이 귀역[몰래 남을 해치는 물건, 음험한 사람]의 연수[사람들이 모여드는 곳]런지

이매망량[온갖 도깨비 / 두억시니]이 실컷 젖은 가에

백옥은 무슨 일로 청승[푸른 색이 도는 파리]의 깃이 되고

북풍에 혼자 서서 가없이[끝없이] 우는 뜻을

하늘 같은 우리 님[성종]이 전혀 아니 살피시니

목란추국[목란과 가을 국화]에 향기로운 탓이런가

첩여[한나라 시대의 벼슬이름이지만 여기서는 한나라 성제 때의 반첩여를 일컬음] 소군이 박명[기구한 운명. 팔자가 사나움]한 몸이런가

군은[임금의 은혜]이 물이 되어 흘러가도 자취 없고

옥안[임의 얼굴]이 꽃이로되 눈물 가려 못 보겠구나

이 몸이 녹아져도[성종에 대한 충성심에서 나오는 애끓는 하소연] 옥황상제 처분[어떠한 기준에 따라 처리함]이요

이 몸이 죽어져도 옥황상제 처분이라

녹아지고 죽어지어 혼백조차 흩어지고

공산 촉루[해골]같이 임자 없이 굴러 다니다가

곤륜산 제일봉에 만장송[제일 큰 소나무]이 되어 있어

바람 비 뿌린 소리 님의 귀에 들리기나[들리게 하거나]

윤회[중생이 해탈을 얻을 때까지 그의 영혼이 육체와 함께 업(業)에 의하여 다른 생을 받아, 끊임없이 생사를 반복함] 만겁[지극히 오랜 시간]하여 금강산 학이 되어

일만 이천 봉에 마음껏 솟아올라

가을 달 밝은 밤에 두어 소리 슬피 울어

님의 귀에 들리기도[들리게 하는 것도] 옥황상제 처분이겠구나

한이 뿌리 되고 눈물로 가지삼아

님의 집 창 밖에 외나무 매화 되어

설중에[눈속에] 흔자 피어 침변[베갯머리]에 이우는[시드는] 듯

윌중소영[드문드문 비치는 그림자]이 님의 옷에 비취거든

어여쁜 이 얼굴을 너로구나 반기실까

동풍이 유정[인정이나 동정심이 있음]하여 암향[그윽히 풍겨 오는 향기. 어둠 속에 풍기는 향기. 매화의 향기를 일컫는 말]을 불어 올려

고결한 이내 생계 죽림[대나무숲인데 여기서는 속세와 인연을 끊은 곳]에나 부치고저

빈 낚싯대 비껴 들고 빈 배를 혼자 띄워

백구[중국 송과 요의 분계를 이루던 강] 건너 저어 건덕궁에 가고 지고

그래도 한 마음은 위궐[높고 큰 문이라는 뜻으로 대궐 또는 조정을 의미함]에 달려 있어

내 묻은[연기를 쐬어 검어진] 누역[도롱이 : 우장(雨裝)의 하나. 짚이나 띠 따위로 엮어, 흔히 농촌 사람들이 일할 때 어깨에 걸쳐 두름.] 속에 님 향한 꿈을 깨어

일편장안을 일하에 바라보고

외로[그릇, 잘못] 머뭇거리며 옳이 머뭇거리며 이 몸의 탓이런가

이 몸이 전혀 몰라 천도막막[하늘의 이치가 아득하여 알 수 없음]하니

물을 길이 전혀 없다 복희씨 육십사괘[주역(周易) 팔괘를 두 괘씩 겹쳐 얻은 64가지의 괘]

천지 만물 삼긴[생긴] 뜻을 주공[주나라 문왕의 아들]을 꿈에 뵈어

자세히 여쭙고저 하늘이 높고 높아

말없이 높은 뜻을 구름 위에 나는 새야

네 아니 알겠더냐 아아 이내 가슴

산[억울한 심정을 자연물을 통해 형상화함]이 되고 돌이 되어 어디어디 쌓였으며

비가 되고 물이 되어 어디어디 울며 갈까

아무나 이내 뜻 알 이 곧 있으면

백세교유[영원토록 사귀고] 만세상감[영원토록 공감함]하리라.

 

 

 

 

 

 

 

 

 

 

 

 이해와 감상

 

 1498년(연산군 4) 매계(梅溪) 조위(曺偉) 지은 가사로 작자가 1498년(연산군4)의 무오사화에서 간신히 죽음을 면하고, 전남 순천(順天)으로 유배되었을 때 지은 것이다. 누구에게도 호소할 길 없는 슬픔과 원통함을 선왕(先王:성종)에게 하소연하는 심정을 읊었는데, 이것은 한국 최초의 유배가사(流配歌辭)이다. 지은이가 간신히 죽음을 면하고 유배된 뒤 귀양살이하는 원통함을, 천상에서 하계로 추방된 처지에서 옥황상제로 비유된 성종에게 하소연한 내용으로 작품의 가의(歌意)가 굴원의 '천문(天問)'과 비슷한 점으로 보아 그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며, 정철의 '사미인곡'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 추측된다. '만분가 한편으로는 임을 잃은 여성을 서정적 자아로 설정하여 충신연군지사(忠臣戀君之辭의 형상을 취하는 한편, '만분가'라는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자신이 유배를 당하게 된 현실에 대한 발분의 정서를 아울러 표출하는 특징을 갖는 유배 가사로 작가가 귀양간 처지를 천상 백옥경에서 하계로 추방된 것에 비유하여 지은 작품이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 당시 지배체제를 살펴보아야 한다. 당시 지배체제의 절대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이는 왕권이였고, 그 왕권에 순응할 때만이 그들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그래서 어떤 유배가사라도 왕권에 도전하는 내용이 아니라 그 왕으로부터의 사랑을 얻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대부분의 유배가사는 왕의 은총을 회복하고자 하는 내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 주목을 해야 한다.

 

 

이해와 감상1

 

조선 연산군 때 조위(曺偉)가 지은 유배가사. 국한문혼용체. 2음보 1구로 계산하여 127구이며, 3·4조와 4·4조가 주조를 이루고 2·3조, 2·4조 등도 더러 있다. 안정복(安鼎福)의 잡동산이 雜同散異 제44책에 수록되어 전한다.


작자가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 때 유배되어 전라도 순천에서 지은 가사이다. 유배가사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내용은 지은이가 사화에 연루되어 간신히 죽음을 면하고 유배된 뒤 귀양살이하는 원통함을, 천상에서 하계로 추방된 처지에서 옥황상제로 비유된 성종에게 하소연하고 있는 것이다.


작품의 가의(歌意)가 굴원(屈原)의 천문 天問과 비슷한 점으로 보아 그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며, 정철(鄭澈)의 사미인곡 思美人曲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雜同散異, 萬憤歌硏究(李家源, 東方學志 6, 연세대학교동방학연구소, 1963).(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심화 자료

 

조위 曺偉 (1454~1503)

 

 본관 창녕(昌寧). 자 태허(太虛). 호 매계(梅溪). 시호 문장(文莊). 1474년(성종 5)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검열(檢閱)이 되고 1476년부터 사가독서한 뒤 1479년 영안도경차관(永安道敬差官)이 되었다. 수차에 걸쳐 시제(詩製)에서 장원하여 명성을 떨쳐, 성종의 총애를 받아 경연에 나갔다. 1485년 함양군수로 나가 선정하여, 표리(表裏) ·녹비[鹿皮] 등을 하사받았다. 그 후 도승지(都承旨) ·호조참판 ·충청도관찰사를 역임하고, 1495년(연산군 1) 대사성(大司成)으로 춘추관지사(春秋館知事)가 되어 《성종실록(成宗實錄)》을 편찬할 때 사관(史官) 김일손(金馹孫)이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사초(史草)에 수록하여 올리자 그대로 편찬케 하였다.

 

 후에 중추부동지사(中樞府同知事)로 부총관(副摠管)을 겸직했고, 1498년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갔다가 오는 도중 무오사화(戊午史禍)가 일어나 의주에서 피체되어 투옥되었으나 이극균(李克均)의 극간으로 의주에 장류(杖流)되어 순천에서 죽었다. 성리학의 대가로서 당시 사림(士林)간에 대학자로 추앙되었고, 김종직과 함께 신진사류의 기수였으며, 글씨도 잘 썼다. 금산(金山)의 경렴서원(景濂書院), 황간(黃澗)의 송계서원(松溪書院)에 제향되었다. 문집에 《매계집(梅溪集)》, 글씨로는 《조계문묘비(曺繼門墓碑)》가 있다.  (자료 출처 : 동아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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