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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것은 낙엽뿐이어야합니다 / 신영복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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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것은 낙엽뿐이어야합니다 - 잉카 최후의 도시 마추픽추 / 신영복

 

당신의 향기가 나의 뿌리를 타고 내가 들고 있는 술잔까지 올라온다.’ 침묵의 도시 마주픽추의 폐허에서 술잔을 들면 바예흐의 시구가 떠오릅니다. 이 곳을 버리고 떠나가지 않을 수 없었던 잉카인의 슬픔이 술잔 속에서 잔잔한 물결을 일으킵니다.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이끄는 황금의 추적자들에게 쫓기고 쫓기던 잉카인들이 마지막으로 은거한 최후의 도시가 이 곳 마추픽추입니다. 나는 관광열차 아우토바곤을 타고 우루밤바 협곡을 통과하면서 다시 한 번 세월의 무상함에 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집요하기 그지없었던 스페인군마저 추격을 단념하지 않을 수 없었던 험처(險處)가 바로 이 곳 우루밤바 협곡입니다. 아스라히 솟아 있는 절벽과 절벽 사이로 소용돌이치는 강물만이 간신히 뚫고 지날 수 있는 곳입니다. 이 협곡의 안쪽 해발 2,400m의 산상에 마추픽추가 있습니다. 이 곳에 도시를 건설한 그들은 그러나 173구의 미라만을 남겨놓고 다시 이 곳을 떠나갔고, 그 후 마추픽추는 망각 속에 묻혀버립니다. 그로부터 400년 후인 1911, 이 곳이 다시 세상에 알려졌을 때는 초목만이 무성한 폐허였습니다.

 

우루밤바 강줄기가 실개천처럼 까마득히 내려다보이는 마추픽추의 폐허에 서면 가족을 땅에 묻고 황급히 이 곳을 떠나간 잉카인의 비장한 최후가 가슴에 젖어옵니다. 그들은 그들의 지혜와 피땀으로 세운 도시를 버리고 다시 어디로 사라져 갔는가. 이 도시의 비밀이 어떻게 그처럼 철저히 지켜질 수 있었는가. 황금을 찾아 잉카 땅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진 익스플로러(Explorer)들까지도 설마 이처럼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도시가 있었으리라고는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하였습니다. 바예흐의 시구에 있는 당신의 향기는 잉카의 후예가 망각의 역사로부터 역사로부터 길어올리는 그 땅과 그 사람들에 대한 절절한 애정입니다. 당신은 사이먼과 가펑클의 철새는 날아가고’(El Condor Pasa)라는 노래를 기억할 것입니다. 마추픽추의 폐허에서 원주민들의 악기로 듣는 이 노래는 참으로 가슴 저미는 아픔으로 다가옵니다. 이 노래는 원래 페루의 작곡가 로블레스(Daniel Alomias Robles)의 기타 곡입니다. 사이먼과 가펑클이 이 곡에 노랫말을 붙여 부른 후 널리 애창된 노래입니다. ‘달팽이보다는 차라리 참새가 되고 싶다.’(I'd rather be a sparrow a snail)는 구절은 이 곳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던 잉카인의 슬픔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반어(反語)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가장 마음에 남는 구절은 마지막 구절입니다. (street)보다는 숲(forest)이 되고 싶다는 구절입니다. 어디론가 떠나는 길보다는 그 자리를 지키는 숲이 되고 싶어하는 것이 마추픽추의 마음이라고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길을 스스로의 품 속에 안고 있는 숲 그리고 발밑에 무한한 땅을 갖고 있는 숲에 대한 그리움을 그들은 남겨놓고 있습니다.

 

나는 이 마추픽추가 숲이 되지 못하고 메마른 폐허로 남아 있는 산정(山頂)이 비극의 어떤 절정 같았습니다. 왜 우리의 역사에는 지혜와 땀이 어린 터전들이 황량한 폐허로 남아야 하는가, 이 곳뿐만 아니라 우리는 도처에 얼마나 많은 폐허를 갖고 있으며 또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폐허를 만들어내야 하는가.

 

잉카의 하늘을 지키던 콘도르마저 사라진 하늘에는 애절한 기타 음률만이 바람이 되어 가슴에 뚫린 공동을 빠져나갑니다. 자유롭게 하늘을 날 수 있는 참새라 하더라도, 더 높은 곳으로 날아간 콘도르라고 하더라도 떠난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이 곳 마추픽추만큼 떠나는 것의 비극성이 사무치게 배어 있는 땅도 없습니다. 떠나는 것은 낙엽뿐이어야 한다는 당신의 시구가 생각납니다. 그렇습니다. 새로운 잎에게 자리를 내주는 낙엽이 아닌 모든 소멸은 슬픔입니다.

 

1911년 이 곳을 발견한 하이럼 빙엄은 이 곳이 잉카 최후의 도시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곳은 최후의 도시로 전승되어 온 비르카밤바가 아니며 이 곳으로부터 다시 어디론가 떠나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비르카밤바는 잉카 최후의 도시로서 황금으로 만든 물건들이 대량으로 묻혀 있을 것으로 추측되는 황금의 도시입니다. 그러나 빙엄 역시 엘도라도를 찾아 헤매던 익스플로러였으며 그가 잉카 어린이의 안내로 이 곳에 도착한 후 실어낸 짐이 무려 나귀로 150마리분이었다고 하였습니다. 그 짐들 속에 금붙이는 단 한 개도 없었다고 그는강변하고 있지만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보아 이 곳이 최후의 잉카 도시인 전설의 비르카밤바였을 가능성을 부인할 수 없다고 합니다. 잉카의 수도 쿠스코가 침략자들의 수중에 떨어지고 울란타이탐보까지 함락되었다는 급보를 받은 이 도시의 사람들이 이 곳에다 잉카의 모든 유산들과 병약한 이들을 땅에다 묻고 황급히 아마존의 밀림 속으로 흩어져 갔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중략>

 

셔틀버스로 마추픽추를 내려올 때의 일이었습니다. 차창 밖에서 몇 명의 어린이들이 손을 흔들며 외치는 소리를 들을 때까지만 해도 버스에 타고 있는 관광객 중에 그 소년을 주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관광지 어린이들의 흔한 인사 정도로 밖에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굽이굽이 사행(蛇行)길을 내려오는 동안 굽이마다 버스를 향하여 굿바이를 외치는 동일한 소년을 목격하게 됩니다. 저 소년이 지름길로 버스를 앞질러 뛰어내려와 굿바이를 외치면서 버스와 함께 이 길을 내려가고 있는 바로 그 소년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부터 버스 속의 관광객들은 술렁이기 시작합니다. 소년이 다시 차창 밖에 나타나 굿바이를 외치면 버스 안의 관광객들은 일제히 오 마이 갓’(Oh my God)을 합창하며 경탄을 금치 못합니다. 이제 한 굽이를 돌 때마다 관광객은 그를 기다렸다가 탄성을 발합니다. 그러기를 일곱 번 정도 반복하게 됩니다. 마지막 굽이에서 뜻밖에도 소년은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미처 뛰어내려오지 못하였나, 하고 걱정하던 사람들이 문득 버스 앞에서 달려가고 있는 그의 뒷모습을 발견하고 다시 한 번 놀라게 됩니다. 버스 앞을 달리며 뒷모습을 잠시 보여주고 난 후 세워주는 버스 위로 올라와서 만장의 박수와 찬사를 받는 것으로 끝납니다.

 

<후략>

 

 

신영복의 <더불어 숲2>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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