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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목취유취경원기(藤穆醉遊聚景園記)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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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목취유취경원기(藤穆醉遊聚景園記)

영가 땅에 등목이라는 노총각이 있었는데, 시재(詩才)가 뛰어났다. 어느 해 7월 보름, 과시(科試)를 보기 위해 임안으로 가서 그곳 산수(山水)를 구경하며 거닐다가 문득 취경원에 이르게 되었다. 이때는 송이 망한 지 이미 40년이나 흘러 취경원은 거의 폐허가 되었다. 등목이 서헌의 난간에 의지하여 쉬고 있자니 난데없는 미인이 시녀와 함께 들어오는데 마치 선녀와 같았다. 생이 숨을 죽이고 그 거동을 살피니, 미인은 '산천의 풍경은 옛날과 다름없되 세월은 무상함'을 슬퍼하면서 시를 읊었다.

옛사람 이미 죽었으니

누구와 함께 풍류를 즐기리오.

생은 처음에 미인의 용모를 보고 연정을 금치 못하더니, 이 시구를 듣고 나서는 더욱 몸이 달아올라 이어서 시에 화답하였다.

미인은 놀라지 않고 조용히, 낭군이 여기 있음을 알고 찾아왔노라고 하였다. 생이 그 성명을 물으니, '송나라 때 궁인(宮人) 방화(芳華)로서 23세에 죽어 취경원 곁에 묻혔더니 오늘 낭군을 만나게 되었다.'고 하면서, 시녀에게 주과(酒果)를 가져오게 하였다. 밝은 달 아래 서로 담소하며 시가로 즐기다가 은하수(銀河水)가 기울어질 무렵 주석(酒席)을 거두고 손을 이끌며 서헌으로 나아가 하룻밤을 지내니 인간사와 다름이 없었다.

이리하여 며칠 밤을 미인과 정을 나누다가 생이 고향으로 돌아가려 할 때, 방화도 또한 따라가기를 원하므로 함께 고향에 돌아와 부부로서 지냈다. 이러저럭 3년이 흘러, 생이 향시(鄕試)에 응하러 가게 되었는데, 방화도 따라가겠다고 하며 "7월 보름날 취경원 서헌에서 만나자"고 하였다. 그 말대로 세 사람이 서헌에 다시 모여 추억을 새로이 하던 중, 방화가 눈물을 흘리며, '이제는 낭군과의 연분이 다했으니 이별할 때가 되었다.'고 하면서, 옥지환을 빼어 생에게 주며 '뒷날 이것을 보고 옛 정을 잊지 말아 달라.'고 하며 떠나갔다. 생이 대성통곡하며 다음날 그녀의 묘를 찾아 글을 지어 조의를 표하였다. 고향에 돌아온 등목은 상배(喪妻의 높임말. 아내의 상고를 당함)한 사람같이 슬퍼하였다. 생은 그 후 종신(終身)토록 장가들지 않고 산중에 들어가 약초를 캐다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해와 감상

명나라 구우가 지은 '전등신화'에 실려 있는 작품으로, 제목은 '등목이 취경원에서 취하여 노닌 기록'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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