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에게 주는 가훈 / 정약용
by 송화은율두 아들에게 주는 가훈 / 정약용
◇ 친구를 사귈 때 가릴 일
몸을 닦는 일〔修身〕은 효도와 우애로써 근본을 삼아야 한다. 효도와 우애에다 자기의 본분을 다하지 않으면 비록 학식이 고명(高明)하고 문체가 찬란하고 아름답다 하더라도 흙담에다 아름답게 색칠해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자기 몸을 엄정(嚴正)하게 닦아놓았다면 그가 사귀는 벗도 자연히 단정한 사람이어서 같은 기질로 인생의 목표가 비슷하게 되어〔同氣相求〕친구 고르는 일에 특별히 힘쓰지 않아도 된다.
이 늙은 아비가 세상살이를 오래 경험하였고 또 어렵고 험난한 일을 고루 겪어보아서 사람들의 심리를 두루 알게 되었는데, 무릇 천륜(天倫)에 야박한 사람은 가까이해서는 안되고 믿을 수도 없다. 비록 충성스럽고 인정 있고 부지런하고 민첩하여 온 정성을 다하여 나를 섬겨 주더라도 절대로 가까이해서는 안된다. 이들은 끝내는 은혜를 배반하고 의(義)를 잊어먹고 아침에는 따뜻이 대해 주다가도 저녁에는 차갑게 대해 주고 만다.
대개 온 세상에서 깊은 은혜와 두터운 의리는 형제보다 더 두터운 것이 없는데 그들이 부모 형제를 그처럼 가볍게 버리는데 벗들에게 어떠하리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는 이치이다. 너희는 이 점을 반드시 기억해 두도록 하라. 무릇 불효자는 가까이하지 말고 형제끼리 우애가 깊지 못한 사람도 가까이해서는 안된다.
사람을 알아보려면 먼저 가정 생활을 어떻게 하는가를 살펴보면 된다. 만약 옳지 못한 점을 발견할 때는 돌이켜 자기 자신에게 비춰보고, 나도 이러한 잘못이 있지 않나 조심하면서 자신은 그렇게 되지 않도록 단단히 노력해야 한다. 옛날에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와 남거 한공(南居韓公)은 특별히 서로 사이좋은 벗이었는데 두 분 모두 효자이셨다. 또한 옛날 우리 할아버지와 사곡 윤정자공(沙谷尹正字公)께서도 아주 사이좋은 벗이었는데 그분들도 효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들은 생존시에 훌륭한 명성을 잃지 않고 사셨었다. 나에 이르러서는 벗을 고르는 일이 바르지 못하여 화살끝을 갈고 칼날을 벼리며 서로 시기하는 사람들이 모두 내가 옛날 친히 사귀던 사람들이었기에 나는 이 점을 반성하고 있다.
◇ 벼슬살이는 어떻게 할 것인가
벼슬하기 전부터 임금이 나를 알아 주었고 벼슬에 나온 뒤로는 임금께서 나를 더욱 깊이 이해해 주셨다. 임금 곁에서 중요한 정책을 수립할 때도 임금의 뜻과 내 뜻이 함께 부합되었던 게 많았던 것을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 많이 있었다. 그래도 마침내는 나의 계획안과 정책이 역사책에 오르거나 공적이 많은 사람의 사적(史跡)을 새겨놓은 종묘의 솥에도 새겨지지 않았음은 무엇 때문이겠느냐? 옛 성철들이 말한 바 있다. "그 위(位)에 있지 않고서는 그 정사(政事)를 도모하지 않는다" 하였고,『논어(論語)』『주역(周易)』에는 "군자는 생각하는 범위가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라고 하였다. 회고해 보면 그때는 나이가 어리고 식견이 얕아 이런 성철의 뜻을 알지 못했다. 아아! 후회한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임금을 섬기는 방법에는 임금의 존경을 받아야지 임금의 총애를 받는 사람이 되는 게 중요치 않다. 또 임금의 신뢰를 받는 게 중요하지 임금을 기쁘게 해주는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하지 않다. 아침 저녁으로 가까이 접근하여 임금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임금이 존경하는 사람이 아니며, 시나 글을 잘하고 기예를 가진 사람도 임금이 존경한다고 할 수 없다. 글씨를 민첩하게 잘 쓰는 사람도 그렇고, 얼굴빛을 살펴 비위를 잘 맞추는 사람, 벼슬 버리기를 어려워하는 사람, 위의가 장엄하지 못한 사람, 권력자에게 이리저리 붙는 사람들을 임금은 존경하지 않는다.
경연에서 온화하게 말을 주고받고, 일을 처리할 때 비밀히 부탁하고 임금이 마음속으로 믿고 의지하여 서신이 자주 오고 가고 하사품이 자주 내려질지라도 그런 것을 총애나 영광으로 믿어서는 절대 안된다. 뭇사람들이 노여워하고 시기하게 되니 결국은 재앙이 따르게 마련이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한 단계의 승진도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겠느냐? 임금도 또한 늘 혐의받는 것을 피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런 신하는 임금이 첩같이 다루고 노예처럼 부려먹으므로 혼자 매우 고달프고 힘들기만 하지 등용되기는 쉽지 않다.
무릇 초야(草野)에서 진출한 선비가 가장 좋은 것이니 그때는 임금이 그 사람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올리는 글은 논(論)이나 책(策)만 올리는데 그 글이 충성스럽고 굳세거나 간절해도 괜찮다. 미사여구의 문장 솜씨로 한 세상에 회자(膾炙)된다 해도 광대가 등장하여 우스갯짓을 연출하는 따위에 지나지 않는다.
◇ 임금의 잘못도 드러내라
미관말직(微官末職)에 있을 때도 신중하고 부지런하게 온 정성을 다해서 맡은 일을 다해야 한다. 언관(言官)의 지위에 있을 때는 아무쪼록 날마다 적절하고 바른 의론을 올려서 위로는 임금의 잘못을 공격하고 아래로는 백성들의 고통상이 알려지게 하여야 하고 더러는 잘못된 짓을 하는 관리들은 물러나게 해야 한다. 모름지기 지극히 공정한 마음으로 언관의 직책을 행사하여 탐욕스럽고 비루하고 음탕하며 사치하는 일에는 당연히 손을 써서 조치하고 자기에게 유리하게만 의리를 인용해서는 안되고 자기 편만 편들고 자기와 다른 편을 공격하는 일을 해서 엉뚱하게 남을 구렁텅이 속에 밀어 넣어서는 안된다. 벼슬에서 해직된 때에는 그날로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며 아무리 절친한 벗들이나 동지들이 머물러 있으라고 간청을 해도 절대로 들어서는 안된다. 집에 있을 때는 오로지 독서하고 예(禮)를 익히며 꽃을 심고 채소를 가꾸고 냇물을 끌어다 연못을 만들고 돌을 모아 동산을 쌓아 선비생활을 즐기는 것이다. 가끔 군(郡)이나 현(縣)을 맡아 외직으로 나갈 때는 자애롭고 어질게 하고 청렴결백하도록 힘써서 아전들이나 백성 모두가 편하도록 해야 한다. 나라가 큰 난리를 당했을 때는 쉽거나 어렵거나 꺼려 말고 죽음을 무릅쓰고 절개를 지키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 사람을 임금이 어찌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미 존경한다면 어찌 신뢰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제(齊)나라 환공(桓公)과 관중(管仲)의 관계와 한(漢)나라 소열황제(昭烈皇帝 : 劉備)와 제갈공명(諸葛孔明)의 관계는 이와 다른 경우로, 그런 경우는 천년의 오랜 세월 동안 두어 사람 있을 수 있는 일인데, 그런 관계를 만나기 쉽겠는가? 공신이나 외척의 자제들은 안으로 임금과 결탁되어 있어 한 집안처럼 양육시키는 듯하지만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피해야 하므로 조용하게 임금을 모실 수 없게 된다. 신하된 사람으로서 불행한 경우인데 누가 공신이나 외척 자제 되기를 바라겠는가?
<1810년 처서날 茶山의 東菴에서 - 原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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