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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팔이 의사 / 수필 / 전문 / 이희승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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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팔이 의사 / 이희승

 

어느 지방에 돌팔이 의원(미숙한 의사) 한 사람이 있었다. 병을 곧잘 고친다는 소문이 나서, 여기저기 불려 다니기에 매우 바빴다. 그러나, 의사라고는 하지만 본초강목이나 동의보감 같은 의서(醫書)는 아예 이름도 알지 못하고, <方藥合編> 한 권이라도 읽어 본 적은 없다. 어던 병에는 무슨 약이 특효라거나 아무개가 어떠한 증세의 병으로 오래 고생을 하다가, 이러저러한 약을 쓰고 건강을 회복하였다는 등등의 이야기를 듣기만 하면, 듣는 족족 병명 또는 증세와 그 약 이름을, 수첩과 같은 작은 책에 적어 넣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하기를 몇 해를 계속하였든지, 그 수첩은 깨알 같은 글씨로 꽉 차 있었다.

 

이 의원의 의술(醫術)은 이것이 유일한 밑천이었다. 환자를 볼 적마다 이 수첩을 뒤져서, 그런 병에 효험을 보았다는 약으로써 처방을 내려주는 것이었다. 그러면 적중하는 율도 상당히 높아서, 인근 동리에 명의(名醫)라는 소문이 퍼져, 사면에서 찾아오는 사람, 불려가는 사람이 많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바쁜 생활을 하게 되었고, 제법 재미도 톡톡히 보고 있었다.

 

그런데, 한번은 이런 일이 생겼다. 그 사람의 처가로부터 전인이 와서, 그의 장인이 심한 탈항증(脫肛症)으로 누워 있으며, 증세가 매우 위독하다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장인의 병이니까 안 가볼 수는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수첩을 암만 뒤져 보아도, 탈항증에 대한 처방은 좀처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명의의 소문을 들으면서, 장인의 부름에 응하지 않을 수도 없는 처지다. 정히 절박한 궁지에 빠지게 되었다. 생각다 못해, 우선 가보기로 하였다. 마음에 내키지 않는 걸음을 마지못하여 떠났던 것이다.

 

가는 도중에 별안간 방변(放便)의 기미를 느끼게 되어, 길 아래 개울 가에 웅크리고 앉아서, 뒤를 보고 있는데, 때마침 어떤 사람이 다리를 건너가다가, 역시 뒤를 보려고, 다리 가에 웅크리고 앉아서, 개울을 향하여 궁둥이를 돌려대는 것이었다.

 

그런데, 대변 덩어리는 떨어지지 않고, 그 대신 낫자루만한 물건이 서너치나 항문(肛門) 밖으로 빠져나와서 돼지 순대처럼 뒤룽뒤룽 달려 있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한참 동안이나 끙끙거리고 앉았다가, 이것을 다시 항문 속으로 밀어 넣으려고, 애를 무수히 쓰고 있지마는, 그 물건은 좀처럼 밀려 들어가지 않을 뿐 아니라, 아픈 증세가 심하여서, 아이구 아이구 소리를 연발하는 것이었다.

 

이 때 또 난데없이 어떤 장한(壯漢)이 나타나더니, 큰 칼을 들어 그 사람의 목을 뎅겅 잘라 버렸다. 그리고 그의 보따리를 집어서 둘러메고, 어디론지 뺑소니를 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고도 신기한 것은 그 탈항 환자가 목이 잘리는 순간에, 그렇게 길게 늘어져 있던 그의 창자 줄기는 감쪽같이 항문 속으로 쏙 들어가 버리는 것이었다.

 

그 의사는 이 광경을 보고, 손으로 제 무르팍을 탁 치며 탄성을 올렸다.

! 인제 되었다. 되었어!

하면서, 못내 기뻐하였다. 그 길로 근처에 있는 대장간을 찾아가서, 큼직한 칼을 한자루를 사가지고, 저의 처갓집으로 달려갔다. 장인의 병세를 살펴본즉, 영락없이 다리에서 본 탈항환자와 꼭같이 대장이 서너치 빠져 있는데, 아무리 하여도 다시 들어가지를 않는 것이었다.

 

이 의원이란 자는 꼼짝도 못하고 누워있는 저의 장인을 억지로 일으켜서, 동네 어귀에 놓여 있는 조그만 다리까지 끌고 가서, 뒤보는 모양으로 웅크리고 앉게 한 후에, 보따리를 풀어서 칼을 꺼내가지고 그 목을 겨누고 보기좋게 후려쳤다. 그랬더니, 과연 늘어져 있던 그 창자는 항문 속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그러면 그렇지, 이 처방은 과연 신통한 처방이로구나!'

하고, 좋아하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에 뻐드러져 자빠진 저의 장인의 시체를 한참 동안 내려다보더니, 입맞을 쩍쩍 다시면서 하는 말이,

'병은 감쪽같이 고쳐 놓았는데, 사람은 아주 뻐드러져 버렸으니, 이를 어쩌면 좋지?'

하면서 양미간을 찌푸렸다.

이 이야기는 바로 며칠 전에, 어느 친구의 만찬 초대를 받은 자리에서, 전력이 이름 높은 군인이요, 또 일류 정치인이었던 모씨에게서 들은 것이다.

 

이 이야기는 일종의 우스개거리지만, 그 속에는 여러 가지 씹어볼 만한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첫째, 이 세상에는 기업인이고, 정치인이고, 문화인이고 간에, 자기가 걸어가는 길에 전문적인 지식이나 식견을 충분히 가지지 못하고, 이 돌팔이 의사와 같이 만용을 부리는 사람이 많다. 이런 사람들이 저지르는 일의 결과는 너무도 뻔한 것이다. 옆에 서 있는 식자(識者)가 볼 적에는, 참으로 가슴이 선뜩하고, 간이 콩만하여지는 아슬아슬한 노릇이다.

 

둘째로, 우리 나라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은, 그 시야가 너무도 짧아서, 코앞의 것만을 볼 뿐이요, 저 멀리 뒷날에 닥쳐올 결과 같은 것은 조금도 생각지 않는 사람이 많다. 이 의사와 같이 탈항증을 고치려는 데만 열중하여, 그 좁은 국면만을 보았지, 그로 인하여 사람의 목숨이 꺼져 버리라는, 한 자() 뒤에 닥쳐올 결과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한다. 말하자면, 언 발등에 오줌 누는 식이요, 쇠뿔을 고치려다가, 소를 죽이는 짓이라고나 할까.

 

외국에 대하여 수출업을 하는 사람이, 간색(견본)과는 아주 다른 못쓸 물건을 보내서, 다른 사람들의 수출길을 막아 버릴뿐 아니라, 자기가 보낸 물건의 반품이 밀려와서, 낙심천만은 둘째로, 자기의 기업체가 몰락하여 버리는 꼴을 얼마든지 보게 된다. 이것이 얼마나 염치없는 좁은 소견의 일인가. 저도 망하고 나라도 해칠 짓을 어떻게 요다지 대담하게 행하는가 말이다. 이런 일에서 혹 일시 적은 이익을 보는 일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꿈에 꿀맛을 보는 것이요, 멀지 않은 장래의 재앙을 자초하게 되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나 국가에 끼치는 영향은 실로 막대한 바가 있다.

 

위정자나 또는 의정단상에서 어떠한 목전에 당면한 적은 불편불리(不便不利)를 피하려고, 새 법령을 날치기로 제정하거나, 묵은 법령을 후닥닥 뜯어고치는 식의 처사도, 그것이 앞으로 온 국민에게나, 국가 전체에 미치는 해독은 아예 생각도 아니하는 듯한 현상이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세워 면밀한 연구 조사도 없이, 즉흥적으로 생각해 내는 토목공사 같은 것에도 이런 경우가 너무도 많은 것 같다. 그것은 틀림없이 온 국민에게는 큰 병을 주는 결과가 될 것 같다. 그 재원이 어디서 나오느냐 말이다.

외자를 도입하여 착공하는 대규모의 공장이나, 상환의 계획을 치밀하게 세우지 않고 무턱대고 차관을 들이는 뉴스도, 그 때마다 국민의 가슴을 뜨끔뜨끔하게 놀랠 경우가 여간 많지 않은 것이다. 외상이면 소도 잡아 먹는다는 말이 있지만, 그러나, 빚진 죄인이라, 빚진 종이란 속담도 결코 진리성이 없는 말이 아니다. 더구나 외국 빚을, 갚지 않고 그대로 삭여 버리고 말 수 있겠는가. 벌써 몇몇 기업체는 외국 차관을 지불 보증한 정부나 은행에 덩테미를 씌우고, 손을 들게 되었다는 소문도 들려 오고 있지 않은가.

 

셋째로 음미해 봐야 할 일은, 이 돌팔이 의사가 환자의 병을 고치는 목적이, 그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 주고, 건강을 회복시켜 주는데 있다느니보다, 이에 대한 물질적 보수를 생각하는 데 있는 것이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런 물질적 보수보다도,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의 병을 고쳐서, 자기의 명성을 세상에 떨쳐 보자는 데 있다는 점이다.

 

만일 이 의사의 진정한 목적이 세상 사람의 병고(病苦)글 구제하여 주는 데 있었다면, 당연히 정당한 순서나 방법을 밟아서, 의학을 공부한 연후에, 치료 행각에 나섰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실정을 살펴 보면, 자기의 명성, 위세, 권위 등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그것도 실적이 없는 허명을 사기 위하여, 혈안이 되어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이 돌팔이와 마찬가지로 대개 큰 일을 저지르고 마는 것이다. 이런 예는 우리 사회의 어느 구석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일이지만, 특히 정치를 다루는 사람들 중에 대단히 많은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이 모든 사람들을 진정한 의사로 만들 수 있을까,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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