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베개 / 전문 / 이광수
by 송화은율돌베개 / 이광수
옛날 한시에 「高枕石頭眠[고침석두면]」이라는 구가 있다. 돌베개를 높이
베고 잔다는 말이다. 세상을 버린 한가한 사람의 모양을 말한 것이다.「脫
巾掛石壁[탈건괘석벽]. 露頂灑松風.[로정쇄송풍] ─ 갓 벗어 바위에 걸고,
맨 머리에 솔 바람을 쏘이다」 함과 같은 맛이다. 옛날뿐 아니라 지금도 산
길을 가노라면, 무거운 짐을 벗어 놓고 돌베개를 베고 자는 사람을 보는 일
이 있다. 대단히 시원해 보인다.
구약성경에는 야곱이 돌베개를 베고 자다가 좋은 꿈을 꾸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야곱은 세상을 버리거나 잊은 사람은 아니요, 한 큰 민족의
조상이 되려는 불붙는 야심을 품은 사람이었다. 그는 유대 민족의 큰 조상
이 되었다.
나는 연전에 처음 이 집을 짓고 왔을 때에 아직 베개도 아니 가져오고 또
목침도 없기로 앞개울에 나가서 돌 하나를 얻어다가 베개를 삼았다. 때는
마침 여름이어서 돌베개를 베고 자는 맛은 참 시원하였다. 그때부터 나는
돌베개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러나 돌베개에는 한 가지 흠이 있으니 그것은
무게가 많은 것이다. 여간 기구로는 도저히 가지고 다닐 수는 없다. 그래서
내가 광릉 봉선사에 유할 때에는 다른 돌베개 하나를 구하였다. 그것은 참
으로 잘생긴 돌이었다. 대리석과 같이 흰 차돌이 여러 만년 동안 물에 갈리
고 씻긴 것이어서 희기 옥과 같았다. 내가 광릉을 떠날 때에는 거기 두고
왔다.
내가 돌베개를 베고 자노라면 외양간에서 소의 숨소리가 들린다. 씨근씨근
푸우푸우하는 소리다. 나는 처음에는 소가 병이 든 것이나 아닌가 하였더니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이십여 일 연하여 논을 가느라고 몸이 고단하여서 특
별히 숨소리가 크고 또 가끔 한숨을 쉬는 것이었다. 못난이니, 자빠뿔이니
갖은 험구를 다 듣던 우리 소는 이번 여름에 십여 집 논을 갈았다. 흉보던
집 논도 우리 소는 노엽게도 생각하지 않고 갈아 주었다. 그리고는 밤에 고
단해서 수없이 한숨을 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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