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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해연습29 / 역사의 종말론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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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은 역사의 종말론을 비판한 것입니다. 다음의 유의사항에 따라 요약하시오.


<유의사항>

. 500자 내로 쓸 것.

. 맞춤법 규정과 띄어쓰기 원칙을 지킬 것.

. 논리적 일관성과 통일성을 유지할 것.


역사가 어떤 단계에서 종결될 수밖에 없다는 소위 종말 사상은 유태교에 기원을 두고 있다. 후에 기독교에 와서 더욱 발전하게 된 이 사상의 핵심적 내용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빗나간 사악한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은 반드시 있으며, 이때 선인(善人)과 악인(惡人)은 각각 운명을 달리하며 선인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의 근저에는 도덕적 퇴폐와 범죄 및 여러 가지 죄악 때문에 세상은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렵고, 또 유지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유태교, 기독교의 종말사상은 헤겔과 마르크스의 역사철학에서 변형되어 다시 나타난다. 이들은 최후의 심판에 의한 역사의 종말을 받아들이지는 않지만, 역사가 진화론적으로 발전해서 완성의 종극단계에 도달한다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인간사회의 진화는 한없이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과정에서 추구되는 목적이 실현되었을 때 종말을 맞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유의식의 실현을 역사의 과정으로 본 헤겔은 자유주의 국가에서 역사의 종말을 보았고, 물질적 생산력의 향상과 착취로부터의 인간해방을 역사의 과정으로 본 마르크스에 있어서는 공산주의 사회가 바로 역사의 종착역이었다.

 

여기서 혼란을 피하기 위해 종말이라는 말의 의미를 정확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의 종말은 일체의 변화가 중지된 세상의 소멸을 뜻할 것이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며 세상이 온통 불바다가 되는 것으로 그려놓은 성서의 최후의 심판은 아마 이런 종류의 종말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근대의 역사철학에서 논의된 역사의 종말은 이런 의미의 종말이 아니다. 헤겔이나 마르크스가 이야기한 역사의 종말은, 사람들이 더 이상 이 세상에 살지 않게 된다든가 인간들이 상호 엮어내는 사건들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게 된다든가 하는 의미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중요한 문제들이 모두 해결되었기 때문에 이념이나 제도의 발전이 더 이상 있을 수 없다는 의미에서의 종말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해서 어떠한 형태의 역사철학도 모든 것이 끝장나는 사건의 종말로서의 역사의 종말을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다. 또 유태교나 기독교의 교리를 받아들이는 입장에 선다 해도, 우리 자신이나 우리의 자녀들이 살아 있을 가까운 장래에 역사의 종말이 온다는 주장은 우리가 역사의 과정에서 수없이 보아 왔듯이 전적으로 잘못된 해석에 근거한 것으로 판단된다. 역사의 종말이 온다 하더라도 태양이나 지구의 수명이 다하는 멀고도 먼 미래의 일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토록 먼 미래의 일 때문에 오늘 할 일을 포기하거나 내일의 설계를 소홀히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은 아닐까?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온다 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나무를 심겠다던 철학자 스피노자의 말은 종말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시사해 주는 바가 자못 크다고 하겠다.

 

철학과 현실, 1992년 여름호


1 단계 : 먼저 제목과 주제를 찾아라

설명이나 논증의 글에서는 주제와 제목은 대체로 일치한다. 따라서 좋은 제목을 찾고 만들기 위해서는, 글의 중심적인 내용이면서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참된 의도인 주제 또는 주제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주제문을 파악한 후에 글의 제목은 명사화, 혹은 명사구화하여 정리하면 된다. 좋은 제목이 되려면, 1) 글의 내용과 성격을 암시해야 하고, 2) 가능한 한 간단하게 써야하며, 3) 참신하고 인상적이면서도, 4) 과장적이거나 선동적인 제목은 피해야 한다.

 

글의 주제(주제문)를 찾기 위해서는 각 단락의 소주제를 파악하고 이것을 종합해 보면 된다. 하지만 글 전체의 짜임도 단락의 짜임과 같이 주지단락과 뒷받침단락으로 이루어지므로, 뒷받침단락에서 주제를 찾지 않도록 해야 한다.

 

글의 주제는 대체로 글의 앞이나 뒤에 놓이지만, 위의 예문에서는 자주 반복되는 단어를 확인하여 무엇에 대한 내용인가(가주제)를 파악한 뒤에, 그것이 어떤 측면에 관한 내용인가(참주제)의 순서를 밟아야 한다. 이때에 각 단락의 소주제문을 적절히 연결시켜 주제문을 구성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 볼 수 있다.

 

주제문 : 역사의 종말이라는 먼 미래의 일 때문에 오늘 할 일을 포기하거나 내일의 설계를 소홀히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제목 : ‘역사의 종말에 대한 비판적 이해

 

2 단계 : 전개방식에 유의하면서 각 단락의 소주제문을 찾아라

요약형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글의 단락을 나누어서 각 단락의 요지를 파악하고 글의 전체적 흐름과 관련된 중심 내용을 간추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만 각 단락의 중심 어구를 연결하여 문장으로 나타낼 수 있으니까. 물론 문제의 조건으로 제시된 글자 수나 원고량을 고려하여 적절히 가감하도록 해야 한다. 특히 각 단락의 중심내용(소주제문)을 찾아 각 단락의 관계를 파악하는 사고과정이 요구된다.

 

단락 : 종말사상의 기원과 발전을 유태교기독교에서 찾으면서 종말론의 핵심 내용을 제시<도입단락>

단락 : 헤겔과 마르크스의 역사철학에서의 종말사상을 상술 <전개단락>

단락 : ‘종말의 개념을 정확히 규정하면서 성서에서의 최후의 심판을 예시<부연단락>

단락 : 종교의 종말론과 역사철학의 종말론을 대조

단락 : 종말사상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스피노자의 유명한 말을 인용하면서 진정한 삶의 자세를 강조 <결어 단락>

 

3 단계 : 글의 개요를 짜보라

글 전체의 주제가 파악되고 이에 따라 각 단락이 글 전체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관계가 밝혀지게 되면, 글의 개요를 짤 수 있다. 전체의 주제에 비추어 각 단락의 구실을 파악하고 중심 단락을 기준으로 관련된 단락끼리 묶어 나가면, 글의 구조를 정리할 수 있고 개요표를 작성하거나 내용을 요약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개요를 짜보면,

 

. 서론 : 종말사상의 기원 <>

유대교와 기독교의 최후의 심판

 

. 본론 : 근대 철학에서의 역사의 종말 <㉯~㉱>

1. 헤겔과 마르크스의 역사철학에서의 역사 종말론

1) 헤겔 : 자유의식의 완전한 실현으로서의 자유주의 국가

2) 마르크스 : 물질적 생산력의 발전과 인간해방으로서의 공산주의 사회

2. 종말의 의미 규정과 차이

1) 성서에서의 종말 : 일체의 변화가 중지된 세상의 소멸

2) 역사철학에서의 종말 : 본질적으로 중요한 문제들이 모두 해결되어 더 이상의 발전이 없는 상태

 

. 결론 : 종말론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태도 <>

1. 종말이란 모든 것이 끝장나는 사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2. 역사의 종말 때문에 오늘 할 일을 포기하거나 내일의 설계를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4 단계 : 요약하라

마지막으로 주어진 예문을 요약하는 일은 각 단락의 요지를 파악하여 글의 전체적 흐름과 관련된 중심 내용을 간추리는 것이다. 따라서 요약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항에 유의해야 한다.

 

1) 각 단락의 소주제문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되, 중심 문단의 내용을 부각시키도록 해야 한다.

2) 지시된 분량에 여유가 있을 경우에는, 각 단락의 뒷받침 문장 중 중요한 내용들을 첨가한다.

3) 지시된 분량에 여유가 없을 경우에는, 각 보조 단락의 핵심을 간단히 요약하고 뒷받침 문장의 내용은 제외시키도록 한다.

 

요약해보면,

 

유태교에 기원을 두고 있는 소위 종말사상은 후에 기독교에 와서 더욱 발전했는데, 이 종말 사상의 핵심적 내용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세상에 대해 하나님이 내리는 최후의 심판으로, 그 결과는 세상의 멸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유태교와 기독교의 종말사상은 헤겔과 마르크스의 역사철학에서 변형되어 다시 나타났는데, 그들이 생각했던 역사의 종말은 역사가 진화론적으로 발전해서 종극단계에 도달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근대의 역사철학에서 논의된 역사의 종말은 성서의 최후의 심판과 같은 의미의 종말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중요한 문제들이 모두 해결되었기 때문에 이념이나 제도의 발전이 더 이상 있을 수 없다는 의미에서의 종말이다. 어떠한 형태의 역사철학도 모든 것이 끝장나는 사건의 종말로서의 역사의 종말을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다. 또 유태교나 기독교의 입장에 선다 해도, 우리 자신이나 우리의 자녀들이 살아 있을 가까운 장래에 역사의 종말이 온다는 주장은 역사의 과정에서 수없이 반복된 것이고 전적으로 잘못된 해석에 근거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온다 해도 오늘 한 그루의 나무를 심겠다고 한 스피노자의 말을 되새기며, 역사의 종말론 때문에 오늘 할 일을 포기하거나 내일의 설계를 소홀히 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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