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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해연습20 / 문답으로 엮은 한국 고대사 산책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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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순장(殉葬)이란 죽은 자를 위하여 산 사람을 함께 무덤에 묻는 장례풍습을 말한다. 살아있는 사람을 일부러 죽이거나, 때로는 산 채로 묻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요즘 같아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잔인한 풍습이 사회적으로 아무런 문제없이 행하여지던 시기가 있었던 것이다.

 

부여에서는 많을 경우 100명 단위로 순장을 행하였고, 한 때 신라에서도 완이 죽으면 남녀 5명씩 순장하였던 적이 있었으며, 가야 무덤에서도 순장의 흔적은 종종 발견된다. 순장의 풍습은 세계 곳곳에서 확인된다. 중국의 은()()나라 때도 순장이 널리 행하여졌고 흉노돌궐위구르, 나아가서는 근동(近東)의 수메르, 이집트에서도 그 증거가 발견되고 있다. 사납고 용맹스러워 주변 종족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스키타이족도 잔인한 방법으로 순장을 시행하였다.

 

순장과 비슷한 것으로 순사(殉死)가 있다. 순장이 사람을 강제로 죽여서 매장하는 것임에 비하여, 순사는 죽은 자를 애도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고구려 동천왕이 죽은 뒤 가까이서 흠모하던 신하들이 따라죽으려 하자 그 아들 중천왕이 이를 말렸다. 그러나 장례식날 무덤에서 기어이 목숨을 끊은 자가 매우 많았다고 한다. 이것이 순사에 해당하는 경우이다.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각지에서 순장이나 순사가 확인된다는 사실은, 이 풍슴이 특정한 국가나 종족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고대사회에서 보편적으로 행해지던 장례풍습이었음을 뜻한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제로 순장당하는 자를 노예, 다른 사람을 강제로 순장시킬 수 있는 사람을 노예소유자로 보기도 한다. 북한 학계에서는 고조선 사회를 순장의 실시가 확인된다고 하여 노예제 사회라 보고 있다. 요동반도에 있는 강상무덤누상무덤와룡천무덤에서 발견된 다수의 순장 인골을 근거로 한 주장이다.

 

순장이 행하여진 배경에는 당시 사람들이 갖고 있던 죽음에 대한 생각, 즉 내세관이 깔려 있다. 고대인들은 사람이 죽은 후에 언젠가는 다시 살아나거나 아니면 저세상에 가서 살아간다고 믿었다. 그리고 생전의 생활을 그대로 누릴 수 있다고 믿었다. 많은 물자와 노동력을 들여서 거대한 무덤을 만든 이유는 죽은 사람이 환생할 때까지 시신을 보호하기 위함이었고, 유명한 이집트의 미이라도 이러한 이유로 만들어졌다.

 

무덤의 구조는 생시의 가옥을 본떠서 만든 경우가 종종 있는데 고구려 무덤 중에는 내부를 마치 가옥처럼 꾸민 것들도 있다. 죽은 사람이 사후에도 풍족하게 살기 위해서는 많은 물자가 필요하다고 여겼다. 막대한 양의 토기와 장신구, 무기 등을 껴묻던 풍슴은 이렇게 생겨났던 것이다. 심지어는 죽은 사람이 살아있을 때 쓰던 물건뿐만 아니라 순수하게 껴묻기 위한 목적으로 많은 물건들을 만들어 한 번도 쓰지 않은 채 그대로 무덤에 넣기도 하였다. 무덤에서 나온 토기 속에는 종종 쌀생선뼈닭뼈고동계란껍질 그리고 돼지뼈 등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죽은 사람의 식량으로 넣은 것이다.

 

무덤의 주인공이 안락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그가 아끼던 것들을 묻어 주어야 할 것이다. 말을 중요하게 여겼던 기마민족은 자신이 타던 말을 순장하는 경우가 많다. 마찬가지 이유에서 총애하던 첩이나 가까이서 시중들던 자들도 순장하였다. 그래야만 불편하지 않은 생활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마부, 호위무사 등도 마찬가지였다. 이렇듯 순장 당하는 사람은 주인에게 완전히 예속되었으며 인격적인 대우를 전혀 받지 못하고 물건처럼 취급받았다. 비록 직접적인 생산에 종사하지 않은 경우라 하더라도 주인의 소유물이었다는 점에서 노예의 처지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순장은 원래 강제로 시행되었을 것이다. 죽기를 바라는 인간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자발적인 순사가 나타났다. 그 이유를 분명히 알 수는 없다. 우선 죽은 자를 흠모하여 그를 따르고자 한 것이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승에서의 관계가 저승에서도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높은 지위나 신분의 주인을 따라 저승으로 가야만 자신의 기득권이 유지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순사하는 자도 주인에게 예속된 정도가 순장 당하는 자나 다를 바 없었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순장은 점차 ()에서 벗어난 행위로 간주되었고, 마침내는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금지하기에 이르렀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음을 반증한다. 물론 국가의 명에 따르지 않고 불법적으로 순장을 행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으 경우는 사람을 직접 순장하는 대신 다른 방도를 찾게 되었다. 여기서 등장한 것이 토용(土俑:흑인형)이다. 중국에서는 흙을 구워 만든 수천명의 호위병과 말마차 등을 묻은 진시황의 무덤이 대표적이지만, 이후에도 오랫동안 도용(陶俑)삼채용(三彩俑) 등을 묻는 풍습이 널리 행하여졌다.

 

신라에서도 순장의 풍습이 서서히 사라져가다가 6세기 초 지증왕 때 와서는 국왕의 장례식 때까지 공식적으로 순장을 금지하는 조치를 내렸다. 통일신라 무덤인 경주 황성동용강동 고분에서는 성별나이직책 등의 다양한 여러 개의 토용이 발견되었다. 순장이 토용으로 대체된 모습일 것이다. 고구려의 경우는 무덤 주인공이 살았을 때 모습과 그를 따르던 많은 사람의 모습이 그려진 벽화가 비슷한 기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산 사람을 강제로 죽이거나 아니면 자발적으로 죽도록 유도하는 순장과 순사의 풍습은 사람들 사이의 강한 비배와 예속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게 개인의 인격적 자립도가 대단히 낮은 것도 고대 사회의 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순장이 점차 소멸되는 현상은, 그만큼 사회가 발전하고 인간의 지위가 일반적으로 향상되어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중세사회에 들어오면 극히 예외적인 사례를 제외하고는 순장이 공식적으로 금지되거나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한국역사연구회, 문답으로 엮은 한국 고대사 산책


1. 윗글의 주제가 잘 드러나도록 10자 내외로 제목을 작성하라.

옛 사람이 순장을 한 이유

 

2. 윗글의 주제문을 쓰라.

고대사회의 순장과 순사의 장례풍습은 개인의 인격적 자립도가 대단히 낮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3. 윗글의 개요를 크게 세 단락으로 나누어 상세히 짜보라.

♣ ㉮는 전체의 도입 부분으로 순장의 의미를 밝히고 순장이 행해진 고대 국가들을 예시하고 있다. 는 앞의 내용을 보충, 예시하는 단락으로 순장과 순사라는 장례풍습들을 비교, 대조하고 그것의 역사적 보편성을 몇 가지 논거를 들어 강조한다. 는 순장을 행한 고대인들의 내세관에 관해 상세화하고 있는데, 그들이 내세를 믿는 이유와 무덤의 구조 등이 순장, 순사 제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는 순장의 소멸과정을 상세화하고, 토용, 벽화가 순장을 대신하녀 나온 배경을 유추하고 있다. 는 결론 부분으로 순장과 순사의 풍습을 통해 고대사회의 특징을 서술한다.

 

(개요)

. 순장의 보편성(㉮ ㉯)

1. 순장이란 죽은자를 위하여 산 사람을 함께 묻는 장례풍습이다.

2. 순장제도의 세계사적 보편성 여, 가야, 중국, 수메르, 이집트, 스키타이 등에서 순장이 이루어짐

 

. 순장제도와 고대인의 내세관 (㉰~㉵)

1. 순장과 순사의 차이

2. 고대인의 죽음에 대한 생각 내세관

3. 무덤의 구조

4. 순장의 강제성과 순사의 자발성

 

. 순장제도의 소멸과 고대사회의 특징 (㉶~㉸)

1. 순장의 소멸

국가의 공식적 금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인식 증대

순장제도의 대체방법 : 토용

2. 고대사회의 특징

고대인들 사이의 강한 지배와 예속 관계

고대사회의 특징 : 개인의 인격적 자립도가 대단히 낮았다.

순장의 소멸 요인 : 사회의 발전과 인간의 지위향상

 

4. 윗글을 띄어쓰기를 포함하여 800자 내외로 요약하라.

유의사항 서론, 본론, 결론이 갖추어지도록 할 것

 

순장(殉葬)은 죽은 자를 위하여 산 사람을 함께 묻는 장례풍습으로서, 부여신라, 중국의 은주나라, 흉노돌궐위구르, 수메르, 이집트, 스키타이 등 고대사회 국가에서 주로 행해졌다.

 

사람을 강제로 죽여서 매장하는 순장과는 달리, 죽은 자를 애도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 순사(殉死)도 있었다.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각지에서 순장이나 순사가 확인된다는 사실은, 이 풍습이 특정한 국가나 종족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고대사회에서 보편적으로 행해지던 장례풍습이었음을 보여준다.

 

순장이 행하여진 배경에는 당시 사람들이 갖고 던 죽음에 대한 생각, 즉 내세관(來世觀)이 깔려 있는데, 고대인들은 사람이 죽은 후에 언젠가는 다시 살아나거나 아니면 저세상에 가서 살아 간다고 믿고, 생전의 생활을 그대로 누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무덤의 구조는 생시의 가옥을 본떠서 만든 것이 많았고, 무덤 안에는 죽은 사람이 살았을 때 쓰던 물건뿐만 아니라 막대한 양의 생활 물자들을 넣었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무덤의 주인공이 아끼던 말이나 총애하던 첩, 시종, 마부, 호위무사들도 순장하였다. 강제적인 순장과는 달리 자발적인 순사가 등장한 이유는 죽은 자를 흠모하여 그를 따르고자 한 의도와 또한 높은 지위나 신분의 주인을 따라 저승으로 가야만 자신의 기득이 유지된다는 믿음 문이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순장은 점차 공식적으로 금지되었고, 대부분의 경우 토용이나 벽화가 순장을 대신하였다. 순장과 순사의 고대풍습은 사람들 사이의 강한 지배와 예속이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처럼 개인의 인격적 자립도가 매우 낮았다는 것도 고대사회의 한 특징이다. 고대사회의 특징인 순장이 점차 소멸된 것은, 그만큼 사회가 발전하고 인간의 지위가 일반적으로 향상되어간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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