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생 / 김광균
by 송화은율데생 / 김광균
1
향료(香料)를 뿌린 듯 곱다란 노을 위에
전신주 하나하나 기울어지고
머언 고가선(高架線)* 위에 밤이 켜진다.
2
구름은
보랏빛 색지(色紙) 위에
마구 칠한 한 다발 장미(薔薇).
<하략>
(조선일보, 1939.7.9)
* 고가선 : 고압 전류를 송전하는 전선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데생’이란 제목이 암시하듯 이미지만으로 노을이 지는 황혼의 풍경을 그린 작품이다. 이러한 회화적 수법과 함께 ‘노을→전신주→고가선→밤’ 또는 ‘구름→목장의 깃발과 능금나무→들길’로 이어지는 시선의 이동을 통해 어둠이 짙어가는 모습을 변화 있게 제시하고 있다.
이 시의 전체적 색채는 분위기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생각하며 심상을 떠올려 보자.
한 폭의 그림을 보듯 영상으로 다가오는 것은 또렷한 시각적 이미지가 많이 쓰였기 때문일 것이다. 시각적 영상과 다른 종류의 감각적 요소가 어우러진 시구를 찾아보고, 내면적 분위기를 드러낸 시어를 찾아보자.
▶ 성격 : 회화적, 서정적
▶ 심상 : 시각적 심상
▶ 시상 전개 : 시선의 이동
▶ 구성 : ① 밤의 어둠이 황혼을 점점 덮어가는 모습(1연)
② 고가선 위에 마지막 노을이 불이 켜지듯 빨갛게 남음(2연)
③ 구름은 빨간 노을에 물들여져 한 다발 장미처럼 보임(3연)
④ 목장의 깃발도 능금나무도 희미한 윤곽으로 남아 사라질 듯이 쓸쓸한 들길(4연)
▶ 제재 : 황혼의 풍경
▶ 주제 : 노을이 지는 황혼의 외로움
<감상의 길잡이1>
‘1’은 저녁 노을이 어둠에 묻히고 하나 둘 별이 나타나는 순간의 모습을 선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제1연은 하늘의 노을이 향료를 뿌린 듯 곱게 배경을 이루고 ‘전신주가 기울어지듯’ 점점 어둠에 묻히고 있는 모습이다.
제2연에서는 황혼이 기울면서 등(燈)이 켜지는 것 혹은 별이 나타나는 것을 ‘밤이 켜진다’고 독특하게 표현하고 있다.
‘2’는 구름과 땅 위의 풍경을 인상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제3연에는 노을과 어둠이 뒤섞여 보랏빛으로 변한 하늘을 배경으로 아직 남아 있는 노을에 반사된 붉은 구름이 ‘한 다발 장미’로 표현되어 있다.
제4연은 가장 가깝고 구체적인 사물이 등장하는 땅 위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목장의 깃발과 능금나무는 차차 희미해져 가냘픈 윤곽으로 남아 곧 어둠에 묻힐 것이다. 특히, 들길을 ‘부울면 꺼질듯이’라고 감각화하여 사라져 가는 애잔한 정경을 그려 내고 있다.
그러나 시인은 풍경을 풍경으로만 제시하는데 그치지 않고 ‘외로운’ 자신의 정서를 ‘들길’에 투영시키고 있다.
<감상의 길잡이2>
1930년대 이미지즘 시의 모델로 평가받고 있는 이 작품은 <데생>이라는 제목이 의미하듯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느낌을 준다. 지성과 이미지를 중시하는 모더니즘의 경향으로 감정은 지성에 의해 극도로 억제되었으며, 객관적인 태도와 회화적 수법에 의해 산뜻한 감각을 효과적으로 표현하였다.
작품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1은 황혼녘의 지평선을 배경으로 한 모습이고, 2는 그 시각에 보는 하늘과 구름과 땅 위의 풍경이다.
‘데셍’을 하고 있는 시인은 먼저 초점을 멀리 두고서 화면을 크게 잡아 노을의 마지막 잔광(殘光)이 사라지기 직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가 그린 그림은 ‘향료를 뿌린 듯’ 곱게 깔린 노을 위로 어둠이 서서히 덮여 오면서 그 아래 세워져 있는 전신주는 어둠 속에 파묻혀 가고, 마침내 멀리 보이는 고가선 위에 별이 하나 둘 떠오르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그 다음에는 화면을 축소하여 하늘과 땅 위의 인상적인 부분들만 묘사하고 있다. 어둠이 구름에 섞인 풍경은 마치 보랏빛 색종이에 한 다발 장미꽃을 그려 놓은 것처럼 붉게 타오른다. 이렇게 해서 그림의 윗 부분을 완성시킨 후, 시선을 가까운 곳으로 이동시켜 지상의 사물을 감각적으로 관찰한 다음, 다시 붓을 들어 아랫 부분의 여백에 어두워 가는 목장과 주위의 능금나무와 깃발을 그리고 있다. 잠시 후, 그 아름다운 사물들이 이내 어둠 속에 묻힐 것이 안타깝고, 황혼녘의 풍경들이 못내 쓸쓸하다고 느끼는 시인은 외로운 감정이 되어 들길을 마저 그려 넣으면서 그림을 완성시킨다. ‘데생’은 형태와 명암을 주로 하여 단색으로 그린 그림을 뜻하지만, 그의 ‘데생’은 저녁 풍경 묘사로만 그친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내면 의식 세계가 투영된 수준 높은 그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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