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대중 문화와 문화의 다원화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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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문화와 문화의 다원화

 

우리는 흔히 문화를 고급 문화, 저급 문화, 또는 좋은 문화, 나쁜 문화로 구분하고 대중 문화를 일반적으로 저질의 문화 또는 나쁜 문화라고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문화에는 좋은 문화이니 나쁜 문화이니 하는 구분이 있을 수 없고 어느 것이 더 우월한 문화라고 쉽게 단정지을 수도 없다. 어느 시대나 어느 사회에서나 그 사회 구조가 요구하는 다양한 문화가 존재해 왔었고 그것은 그것 나름의 존재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다만 어떤 한 문화가 지배 문화가 되어 특히 우월한 것으로 간주될 때 그러한 지배 문화가 문화를 평가하는 기준을 제공하게 된다. 그런데 현재 우리 사회에서의 지배적 문화는 대중 문화라 할 수 있다. 사회가 산업화될수록 대중 문화는 더욱더 폭넓은 대중을 확보하게 될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를 평가하는 데에 고급 문화라는 또 다른 가치 기준이 제공되고 이를 통해 대중 문화는 저급한 것으로 폄하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 시대 대중 문화가 처한 이중적 상황이다.

 

대중 문화는 특정 계급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문화가 아니라 모든 계급과 신분이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는 문화이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즉, 문화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전통적인 엘리트 계급과 지식인이 아니기 때문에 대중 문화는 천하고 유치하다고 손쉽게 평가할 수는 없다. 또한 대중 문화의 생산과 유통이 현대 산업 사회의 물질적 생산과 결부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문화의 깊이와 진실성을 의심하는 것도 타당한 논법이 아니다.

 

대중 문화의 발전은 매스 미디어의 발전과 더불어 진행되고 있다. 매스 미디어는 그 자체가 문화 전달의 매체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문화의 생산자이기도 하다. 특히 TV로 대표되는 전파 미디어의 등장과 발달은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저변을 확대시킴으로써 문화의 민주화를 이룩하였다고 평가되고 있다. 대중 문화는 역사적 발전의 산물이다. 근대 산업 사회의 발전과 더불어 진척되어 온 정치, 경제적인 차원에서의 민주화가 문화적인 차원에서 그 성과를 확인하는 것이 바로 대중 문화이기도 하다. 현대 산업 사회는 거대하고 엄청난 생산력을 발전시킴으로써 과학과 예술의 놀라운 비약을 가져 오고 개인의 역량을 발전시켜 인간 해방을 향한 중요한 역사적 계기를 마련했다. 또한 모든 국지적 제약을 타파하여 세계 문화를 창조하였으며 극소수의 특권층 문화를 대중의 문화로 전화시켜 문화의 민주화를 가능하게 했다. 우리가 지적할 수 있는 대중 문화의 긍정적 측면은 바로 이 점일 것이다.

 

그러나 대중 문화의 이러한 긍정적 측면에 대한 지적이 대중 문화에 대한 면죄부일 수는 없다. 우리가 '문화의 기회'를 확대했다는 차원에서 대중 문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하더라도 그러한 기회의 확대가 곧 '문화의 질'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현대 산업 사회의 자본의 이윤 추구적 속성이 문화를 밀고 나가는 힘이 되어, 자본주의 대중 문화는 인간의 다른 고귀한 성향들을 희생시키면서 인간의 자유로운 개성을 말살하려는 방향으로 발전해 오고 있는 것이다. 전쟁, 폭력, 살인, 마약, 섹스 등은 현대 산업 사회에서의 대중 문화의 이러한 파괴적, 부정적 측면을 잘 드러내 준다.

 

현대 산업 사회에서의 대중 문화의 이러한 부정적 측면은 그것이 갖는 상품으로서의 성격에서 연유한다. 현대 산업 사회에서의 자본주의적 상품 화폐 관계가 모든 생활 영역에 침투함으로써 문화의 영역에서도 '대중 문화'를 창출하게 된 것이다. 대중 문화는 자본에 의해 생산되고 분배되어 상품 소비자들에게 수용됨으로서 대중의 일상적 삶의 방식과 의식을 지배하게 된다. 생산되는 문화 상품의 내용과 형식은 자본의 이윤 동기에 종속되며 따라서 대량 생산을 위한 표준화, 규격화와 안정적인 시장 확보를 위한 다양한 조치들, 그리고 소비 욕구의 관리를 위한 방법들이 정교하게 문화 생산 과정에 개입하는 것이다.

 

산업 사회에서의 대중 문화의 또 다른 성격은 그것이 지배 체제의 유지를 위한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발휘한다는 점이다. 대중 문화는 대중이 여가 시간을 보내는 주요한 수단이다. 이러한 여가 시간을 위해 대중 문화는 대중에게 위안과 편안한 쾌락을 제공해야 한다. 즉 그것은 노동에의 복귀를 참을 수 없는 것으로 만들지 않고, 노동의 단조로움에 대한 위안을 제공해야 한다. 즉 무비판적 향락과 반성 없는 쾌락을 제공해야 한다. 따라서 대중 문화는 현실을 반영하여 그것의 문제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참을 수 없는 현실을 재조립하여 우리가 견딜 만한 내용과 종류의 현실로 바꾸어 놓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중 문화가 갖는 이러한 지배 이데올로기적 기능은 문화가 강제나 억압과 함께 사회 지배의 유력한 수단의 하나임을 보여 준다.

 

이러한 대중 문화의 질의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대중 문화가 얼마나 문화의 기회를 확대시켰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할 만하다. 표면적으로는 매스 미디어에 의해 생산되고 매스 미디어를 통해 대량으로 보급되고 소비되는 대중 문화가 대중 매체의 대량 보급에 힘입어 문화의 기회를 크게 확대시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문화 기회의 확대란 단순한 문화 전파의 공간적 확대만이 아니라 문화 내용의 선택의 자유가 증대하는 것을 뜻한다면 대중 문화에 의한 문화의 민주화가 곧 참다운 문화의 기회를 확대했다고 보기 어렵다. 진정한 문화의 기회의 확대란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각자 자신의 심미적 취향에 따라 자신의 주체적 문화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지금처럼 대중 문화의 생산자이며 전달자인 매스 미디어 산업이 이윤의 극대화를 위하여 획일화 된 문화만 만들어 판다면 문화의 기회란 확대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점차 축소되어 버리고 말 것이다. 이렇듯 대중 문화가 상업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한에는 대중 문화는 획일화된 소비 상품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대중 문화의 저질성과 획일성을 극복하는 방안은 무엇일까. 그것은 문화의 다원화를 통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문화를 선택하는 자유의 확대를 자본주의 사회의 상업적 이윤 추구에 맡겨 둘 수는 없다. 문화의 다원화를 위해 우리는 어떤 제도적인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실질적인 지방 자치의 실현을 통한 지방 문화의 활성화라든가 환경 단체, 소비자 단체 등 자주적인 사회 결사체가 생겨나 이들에 의한 문화 생산에 의한 문화 생산과 유통이 이루어진다면 대중의 주체적인 참여와 자발적인 선택이 가능한 실질적인 대중 문화의 다원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또한 이러한 문화의 다원화가 사회 구조의 다원화를 촉진하여 결국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서도 기여하리라는 낙관적인 기대를 가질 수도 있다. 막강한 전파력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대중 문화는 그러한 성취를 위한 잠재적 가능성을 이미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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