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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보았습니다- 한용운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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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보았습니다 - 한용운

 

 

당신이 가신 뒤로 나는 당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까닭은 당신을 위하느니보다 나를 위함이 많습니다.

 

나는 갈고 심을 땅이 없으므로 추수(秋收)가 없습니다.

저녁거리가 없어서 조나 감자를 꾸러 이웃집에 갔더니, 주인(主人)거지는 인격(人格)이 없다. 인격이 없는 사람은 생명(生命)이 없다. 너를 도와 주는 것은 죄악(罪惡)이다고 말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돌아 나올 때에, 쏟아지는 눈물 속에서 당신을 보았습니다.

 

나는 집도 없고 다른 까닭을 겸하여 민적(民籍)이 없습니다.

민적 없는 자()는 인권(人權)이 없다. 인권이 없는 너에게 무슨 정조(貞操).”하고 능욕하려는 장군(將軍)이 있었습니다.

그를 항거한 뒤에 남에게 대한 격분이 스스로의 슬픔으로 화()하는 찰나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아아 온갖 윤리(倫理), 도덕(道德), 법률(法律)은 칼과 황금을 제사지내는 연기인 줄을 알았습니다.

영원(永遠)의 사랑을 받을까, 인간 역사(人間歷史)의 첫 페이지에 잉크칠을 할까, 술을 마실까 망설일 때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민적 : 그 나라 국민으로서의 호적

영원의 사랑을 받을까 : 현실에 처절하게 절망하고 죽음의 품에 뛰어들까.

인간 역사(人間歷史)의 첫 페이지에 잉크칠을 할까 : 허위와 불의, 부정으로 전개된 역사를 그 처음부터 부정해 버릴까.

술을 마실까 : 어떤 희망도 찾지 못하고 자포자기하여 현실을 도피할까.

 

<시집 님의 침묵(1926)>


 

작가 : 한용운(1879-1944) 본명 정옥(貞玉). 계명 봉완(奉玩). 아명 유천(裕天). 호는 만해(卍海). 용운(龍雲)은 법호(法號). 충남 홍성 출생. 1926년 시집 님의 침묵을 발간하며 등단. 한말에 의병운동을 했으며, 31 운동 당시 33인 중의 주동자로 피검되어 3년간 투옥. 승려, 급진적 불교개혁론자, 독립 지사.

 

그는 당시의 퇴폐적인 사조에 초연하면서, 단 한 권의 시집으로 우뚝한 시사(詩史)의 봉우리를 점했다. 그는 종교적 민족적 전통시인인 동시에 저항시인으로 평가되며, 그의 시는 깊은 사색과 신비적인 특성을 드러냈다. 특히 동인 활동을 거치지 않고 독자적이고도 전통적인 시의 세계를 이룩했다는 점에서 그의 존재는 특기할 만하다.

 

그의 전작(全作)한용운 전집(신구문화사, 1973)에 수록되어 있다. 장편소설로 흑풍(黑風)(조선일보, 1935), 후회(後悔)(조선중앙일보, 1936) 등이 있고, 이외에도 불교유신론, 불교대전등의 저서가 있다.

 

<핵심 정리>

감상의 초점

식민지 시대의 굴욕적인 삶의 절망을 극복하고 참다운 가치로서의 당신을 노래한 시이다. 이 시를 이해하기 위해 시인의 현실 인식 태도는 어떠하며, ‘당신’()의 상징 의미는 무엇인가, ‘님을 잃은 나의 확장된 의미는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하도록 하자.

성격 : 명상적, 상징적, 산문적

구성 : 1: 절망적 현실 인식

2,3: 당신 존재의 확인 계기

4: 절망 속에서 당신을 봄

제재 : 당신

주제 : 굴욕적인 삶의 절망을 극복하고 진정한 가치를 추구함.

 

<연구 문제>

1. ‘주인장군에 각각 대응하는 시어를 찾아 쓰라.

주인’- 황금, ‘장군’-

 

2. 이 시에서 일제 치하의 우리 민족이 겪는 굴욕적 처지를 상징하는 시어 하나를 찾아 쓰라.

거지

 

3. ‘남에게 대한 격분이 일제에 대한 분노라고 한다면, ‘스스로의 슬픔이 뜻하는 구체적 의미는 무엇이겠는가?

조국(주권)을 상실한 데서 오는 자책감

 

4. (1)부정적 현실 속에서 화자가 겪는 갈등이 잘 드러난 시행을 찾아, (2)그것의 의미와 그가 궁극적으로 선택한 삶의 태도가 어떠했는지 200자 정도로 쓰라.

(1)“영원히 사랑을 받을까당신을 보았습니다

(2)“영원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세상 저편에 존재하리라고 추측되는 초월적 진 리 속으로 은퇴하는 것을 의미하며, “인간 역사의 첫 페이지에 잉크 칠을 한다는 것은 역사를 그 근본에서부터 부정한다는 뜻이고, “술을 마신다는 것은 깨어 있는 의식으로 살기보다는 몽롱한 상태로 현실과 영합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화자는 식민지 현실 속에 매몰되어 버린 이런 세 가지 인간 유형이 보여 주는 비역사적인 태도를 부정하고 독립운동에 몸을 던진다.

 

< 감상의 길잡이 1 >

이 시는 부정적 현실 인식에서 출발한다. 현실의 모습은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의 없음으로 파악되고 있다. ‘땅이 없고’ ‘추수가 없고’ ‘인격이 없고’ ‘생명이 없고’ ‘민적이 없고’ ‘인권이 없다라는 구절에는 당신이 가신 것에서 연유하는 절망적 현실 인식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당신을 잃고 홀로 선 는 거지와 같이 모멸(侮蔑) 당하고, 마침내는 인간의 기본적 권리인 인권과 정조(貞操)까지도 유린당하는 절망적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이러한 순간에 보게 되는 당신’, 그는 구원과 희망의 표상인 동시에 불의와 폭력에 항거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사회의 온갖 규범이 지배자의 권력과 금력을 유지하기 위한 헛된 징표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죽음과 역사의 부정과 자포자기 속에서 갈등할 때 는 또 당신을 보는 것이다.

 

영원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세상 저 너머에 존재하리라고 생각되는 초월적인 진리 속으로 은퇴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인간 역사의 첫 페이지에 잉크 칠을 한다는 것은 역사를 그 근본에서부터 부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술을 마신다는 것은 깨어 있는 의식으로 살기보다는 몽롱한 상태로 현실과 영합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식민지 현실 속에 매몰되어 버린 이런 세 가지 인간 유형이 보여 주는 비역사적인 태도는 만해로서는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끝내 인간 역사의 발전을 믿고 역사 속에 자신의 몸을 던짐으로써 우리의 가슴에 부활하고 있다.

 

< 감상의 길잡이 2 >

이 시의 핵심은 인종(忍從)과 애소(哀訴)로 살아가는 가운데서 극복의 힘을 주는 당신을 발견하고 확인하는 가냘프면서도 끈질긴 한국 여인의 목소리이다. 여기서도 당신은 시인이 추구하는 과 같은 존재이다.

 

당신은 나를 떠났지만, 나는 당신을 잊지 못한다. 왜냐하면, ‘당신은 사람다운 삶을 포기한 채 치욕 속에서 사는 내게 삶의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갈고 심을 땅, ‘, ‘민적도 없다. 이러한 나에게 부자인 주인과 권력자인 장군은 인격적 대우를 거부하고 치욕을 가한다. 나와 주인, 나와 장군의 대립은 못 가진 자와 가진 자, 피지배자와 지배자, 민중과 권력자의 대립으로, 이것은 바로 타락한 인간 세계의 실상을 보여 주는 것이자, 당시 현실과 연관지어 보면 우리 민족과 일제의 대립으로 민족의 삶과 존엄성이 박탈된 식민지 상황을 암시한다. 여기서 만해는 그를 항거31 운동이 실패로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일제에 대한 분노와 증오를 내보이기보다는 우리 스스로가 나라를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自責感)으로써 현실 상황을 스스로의 슬픔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와 같은 타락 사회에서 치욕적인 삶을 살아가는 시적 자아는 윤리와 도덕, 법률은 말만 그럴듯한 것이지, 결국은 권력()과 돈(황금)에 의해 지배되는 허위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고, 세상과 자신의 삶에 대해 깊은 회의와 절망에 빠지게 됨으로써 불안감이 고조된다. 마침내 현실의 역사를 부정하고 피안(彼岸)의 세계(불교적 초월의 세계)로 도피하는 삶과, 인류 역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삶, 그리고 현실에 절망하고 그저 자포자기하는 삶 가운데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갈등을 겪고 있던 중, ‘당신의 존재를 발견하는 극적 전환이 일어난다. 그렇게 함으로써 시적 자아는 아무리 타락한 현실 세계라 할지라도, 참된 삶을 이루기 위한 정당한 모색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며, 또한 그것을 통해 역사가 발전한다는 것을 깨우친다. 그 귀중한 깨우침이 바로 만해로 하여금 조국과 민족을 위해 일생을 바치게 한 밑거름이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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