닳아지는 살들 / 요점정리 / 이호철
by 송화은율작자소개
이호철(李浩哲: 1932- )
함남 원산 출생. 원산고 졸업. <탈향(脫鄕)>(1955년), <나상(裸像)>(1956년)이 <문학예술>지의 추천을 받아 등단. 전후(戰後)문학의 중심 작가 중의 한 사람인 그는 분단에 고착된 아픔을 그렸고 시대적 상황에 철저하게 대응하면서 세계의 끊임없는 변화를 긍정적으로 표현하는 실천적 작가로 알려져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판문점>, <닳아지는 살들>, <소시민>, <물은 흘러서 강>, <남풍 동풍>, <역려(逆旅)>, <카레이우라> 등이 있다.
요점정리
갈래 : 단편소설
배경 : 시간 - 5월 어느 날 저녁
공간 - 어느 실향민 가정의 응접실
시점 : 3인칭 전지적 시점
의의 : 실향민 세대와 젊은 세대의 갈등이 분단의 비극에서 비롯됨을
그려 냄.
주제 : 전후의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한 가족의 권태와 비극.
인물 : 아버지 - 은행에서 퇴직한 70세의 노인. 거의 백치 상태. 북(北)에
두고 온 맏딸을 기다린다.
영희 - 막내딸. 29살의 노처녀. 가족들의 의미 없는 삶에 불만 토로.
성식 - 아내와의 애정이 결핍된 채 이층 방에서 칩거하는 작곡가
지망생.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패 배주의자.
정애 - 성식의 아내. 남편에게 정이 없으며, 시아버지를 모시는
역할밖에 하지 못하는 정적(靜的) 인물.
선재 - 이 집 맏딸의 시사촌(媤四寸) 동생. 영희의 연인.
구성 : 발단 - 20년이나 돌아오지 않는 맏딸을 기다리는 가족.
전개 - ① '꽝당 꽝당' 하고 어디선가 들려 오는 쇠 두드리는 소리.
막내딸 영희와 오빠 성식의 불협화음.
② 언니의 시사촌 동생 선재와 영희의 관계. 아무런 반응이
없는 오빠 성식의 태도.
절정 - 열두 시를 알리는 종 소리와 식모를 가리키며 언니라고
소리치는 영희.
결말 - 계속해서 들려오는 쇠붙이 두드리는 소리.
이해와 감상
1962년 <사상계>에 발표된 단편 소설. 월남할 때 두고 온 맏딸을 매일 기다리는 아버지를 중심으로 하여 실향민의 아픔과 고뇌를 그린 작품이다. 그러나 모두 아무런 행동을 하지 못하고, 그저 기다림과 무기력 속에 침몰해 간다. 이들을 하나로 묶어 주는 것은 어디선가 꽝당 꽝당 울리는 쇳소리뿐이다.
이 작품은 한 가정을 무대로, 20년이나 돌아오지 않는 맏딸을 기다리는 초조한 상황을 소설화하고 있다. 시간적 배경은 5월의 어느 날 저녁에서 열두 시까지의 현재의 상황에 과거를 회상하는 부분이 삽입된 구조이며, 공간적 배경은 현실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점점 폐쇄되어 가는 어느 가정이다.
작가 자신도 밝히고 있듯이, 이 소설은 속편 격인 <무너 앉는 소리>와 함께 안톤 체호프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으로, 꽝당 꽝당 하는 쇠붙이 소리를 배경음으로 하여 분단의 비극이 한 가정에 가져다 준 정신적 고통을 상징적으로 처리하고 있다. 표면적으로 뚜렷한 사건의 전개가 없고, 등장 인물들이 주고받는 대화의 내용 역시 한결같이 단절된 마음의 벽을 느끼게 해 준다. 특히, 등장 인물들간의 심리적 갈등은 긴장감을 고조시키면서 특이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묵중한 침묵과 불길하면서도 음산한 분위기는 이 작품의 곳곳에서 느낄 수 있는 특징이다. '문' 역시 그러한 분위기 형성에 이바지하는 소설적 장치인데, 이는 아마도 그 가족 구성원들의 삶이 거의 폐쇄된 상태에 있음을 의미하는 듯하다. 왜냐 하면, 이층으로 통하는 '문'에서는 침묵 일변도의 오빠 '성식'이만 등장하며, 복도로 통하는 문에서 나타난 사람은 기다림의 대상이 결코 하닌 식모였기 때문이다. 긴장감과 기대감이 일시에 무너지자 막내딸 '영희'는 식모에게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는 "정말 언니가 왔다."고 아버지를 향해 소리친다. 그것은 이 지루하고 무의미한 기다림을 그만 끝내자는 반발의 외침이며, 기다림이 좌절된 아버지에 대한 안타까운 연민의 감정이다.
이 소설의 기본틀을 '기다림→기다림의 좌절→기다림을 재촉하는 쇠붙이 소리'로 본다면, 이 가족은 또다시 끝없는 기다림의 늪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으며 그러한 세월 속에서 가족간의 유대감은 점점 마멸되어 제목 그대로 '살이 닳아지는' 아픔만 남게 될 것이다.
줄거리
5월의 어느 날 저녁, 밤 열두 시에 돌아온다는 맏딸을 언제나처럼 모두가 기다리고 있다. 조용하고 썰렁한 집안에는 은행에서 은퇴한 늙은 주인(아버지), 며느리 정애, 그리고 막내딸 영희가 소파에 앉아 있다.
어디서 꽝당 꽝당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온다. 그 소리는 정애에게 이 집 맏딸의 시사촌 동생인 선재가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을 상기시킨다. 선재는 죽은 영희 어머니가 몹시 아낀 청년이다. 마침 이층에서 내려온 성식은 왜들 그러구 앉아 있느냐고 가시 돋친 말을 한다. 바짝 야윈, 파자마 차림의 오빠를 영희가 비꼰다.
술에 만취된 선재가 들어오자 영희가 그를 부축하고 올라가고 성식도 이층으로 올라간다. 시아버지와 며느리 정애는 까닭 없이 불안해지고 갑자기 조급해지는 것을 느낀다. 영희는 선재가 쓰는 초라한 방에서 선재의 품에 안기어 쇠망치 소리를 혼자 감당하기 힘들고 무섭다고 말한다. 그녀는 오빠의 방을 찾아가서 지금 막 결혼을 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성식이 물끄러미 천장만 쳐다볼 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영희는 쓰디쓴 웃음을 보인다.
점점 열두 시는 가까워지고 늙은 주인은 푸념을 하는 어린애처럼 코의 사마귀를 만지면서 두리번거린다. 그 순간, 시계가 열두 시를 치고, 모두의 시선이 시계와 노인의 얼굴로 향하는데, 복도로 통하는 문이 열리며 기묘한 웃음을 띤 식모가 나타나 변소에 갔었다고 말한다. 영희는 식모를 가리키면서 언니가 정말 왔다고 소리친다. 아버지는 영희의 부축을 받으면서 허공에 대고 허우적거린다.
꽝당 꽝당 하는 쇠붙이 두드리는 소리는 온 밤 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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