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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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坐幽篁裏 (독좌유황리)

彈琴復長嘯 (탄금부장소)

深林人不知 (심림인부지)

明月來相照 (명월래상조)

그윽한 죽림(竹林) 속에

홀로 앉아

거문고 뜯고

다시 휘파람 분다.

깊은 숲 아무도 모르는 곳에

이윽고, 달이

빛을 안고 찾아온다. (밝은 달이 와서 서로를 비추네)

요점 정리

지은이 : 왕유

갈래 : 오언 절구(五言絶句)의 근체시

성격 : 서정적

어조 : 고독하면서 차분하고 평범한 어조

심상 : 서술적, 감각적 심상

제재ː대숲(竹林) 속의 고요함

주제 : 인간과 자연의 조화 (자연에의 동화)

의의 : 참신한 시청각적 이미지에 의한 동양적 정경을 묘사하였다

내용 연구

달이/빛을 안고 찾아온다.: 자연과 서로 친구가 될 만큼 하나가 되었다. 물아일체

죽림-칠현(竹林七賢) : 중국 진(晉)나라 초기에 노자와 장자의 무위 사상을 숭상하여 죽림에 모여 청담으로 세월을 보낸 일곱 명의 선비. 곧 산도(山濤), 왕융(王戎), 유영(劉伶), 완적(阮籍), 완함(阮咸), 혜강( 康), 향수(向秀)이다. = 칠현(七賢)

이해와 감상

원제목은 '죽리관(竹里館)'이다, 시각적 이미지와 청각적 이미지를 활용하여 인간과 자연이 조화되는 상태를 잘 표현하고 있다. 대나무숲에서 일어나는 소리와 거문고 소리, 휘파람 소리는 모두 청각적 이미지로, 각기 자연, 사물, 인간의 소리라는 차이를 지니면서도 서로 어울릴 수 있는 것들이다. 달과 시적 자아가 서로를 비추는 것도 자연과 일체가 된 상태를 나타내 주고 있다. 이 시는 산수 화가와 풍류 시인으로 일가를 이루었던 당 (唐) 나라 왕유의 작품으로, 자연 속에 동화되어 유유자적하게 생활하는 동양적인 삶이 은은한 필체로 묘사되어 있다.

심화 자료

왕유(王維)(699? ∼ 761)

중국 당(唐)나라 시인·화가. 자는 마힐(摩詰). 산시성〔山西省〕 포주(蒲州) 출생. 이백(李白)·두보(杜甫)와 함께 당나라 전성기의 대시인이며, 불교신자였기 때문에 시불(詩佛)이라고 일컬어진다. 자연시(自然詩)의 제1인자이며, 객관적이고 고요한 서경(敍景)뿐만 아니라 송별시·궁정시 분야에서도 뛰어났다.

15세 무렵에 수도 장안(長安)으로 가서 황족 귀현(貴顯)의 저택에 출입, 수려한 용모와 시·음악·미술 등 다방면의 재능으로 현종(玄宗) 초기 사교계의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진사(進士)에 급제 한 뒤 곧 산둥성〔山東省〕 지저우〔濟州〕로 좌천되고부터 40대 초까지 불우하였으며, 한때는 간쑤성〔甘肅省〕 량저우〔凉州〕에 있었다. 천보연간(天寶年間, 742∼755)에 장안으로 돌아와 순조롭게 승진하였으며, 장안 남쪽 교외 망천(輞川)에 별장을 짓고 궁정시인으로 이름을 떨치는 한편, 친구들과 함께 예술과 신앙을 논하며 지냈다. 그때의 작품을 모은 《망천집(輞川集)》은 오언절구 20수, 친구 배적(裵迪)의 작품을 합쳐 40수의 연작으로 서경시의 걸작이다.

벼슬이 상서우승(尙書右丞)에 이르렀을 때 죽었기 때문에 왕우승(王右丞)이라고도 불린다. 《왕우승문집(王右丞文集, 10권)》이 있다. 그의 시를 좋아했던 대종(代宗)이 <천하의 문종(文宗)>이라고 찬양하였듯이 당나라 최고의 시인으로 인정받았다. 그림에도 뛰어났는데, 장안에 있는 자은사(慈恩寺) 등 절의 벽에 백묘화(白描畵)와 금벽청록(金碧靑綠)의 산수화를 그려 절찬을 받았으며, 명(明)나라의 동기창(董其昌)은 《화선실수필(畵禪室隨筆)》의 남북화론(南北畵論)에서 왕유를 북종화의 이사훈(李思訓)과 견주어 남종화(문인화)의 시조이며 수묵산수화의 창시자라고 하였다. 왕유의 그림을 모사(模寫)하였다는 《망천도권(輞川圖卷)》이 많이 있으나, 확실한 유품이 현존하지 않기 때문에 어떠한 양식의 산수화를 그렸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출처 : 동아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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