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어두운 포수 / 동화 / 방정환
by 송화은율눈 어두운 砲手[포수]
나무가 무성한 숲 옆에 큰 연못이 있고, 그 연못 옆에 크디큰 절이 있었습
니다.
숲 속에 사는 사슴과 연못 속에 사는 자라와 절 지붕에 사는 올빼미와 셋
이는, 서로 몹시 친하게 정답게 지내는 터이었으므로 매양 셋이는 한데 모
여서 재미있는 일을 서로 이야기하고, 매사를 서로 의논하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이 근처에 사는 포수가 이마적(이즈음) 눈이 어두워서 사냥
을 잘 하지 못하던 터에, 사슴의 발자국을 보고 큰 수나 난 듯이 덫을 놓아
두었습니다.
그런 줄을 알지 못하고 사슴이 자나가다가 보니까, 길 옆에 훌륭한 먹을
것이 놓여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집어먹으려다가 그만 덫에 걸려 버렸습
니다.
“아차차, 큰일 났다. 나 좀 살려 주, 나 좀 살려 주우.”
하고 소리껏 외쳐 날뛰었습니다.
“이 깊은 밤중에 이게 왠 소리일까?”
하고, 자라가 소리나는 곳에를 와 보니까, 친한 친구 사슴이 덫에 걸려 있
지 않습니까? 몹시 놀라서,
“이것 큰일 났군!”
하고, 애를 무한 쓰지마는 어떻게 구원해 내는 수도 없고, 쩔쩔매기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올빼미가 자라를 보고 하는 말이,
“여보게 이러구만 있다가 날이 밝으면 포수가 올 것이니 어릿어릿하기만
하다가는 큰일 나겠네……. 자아, 내가 가서 어떻게든지 포수가 얼른 오지
못하도록만 해놀 터이니, 자네는 그 동안에 자네 날카로운 이빨로 그 덫줄
을 끊어 보게.”
“응 그러게. 그럼 내가 내 힘껏 끊어 볼 터이니, 어쨌든지 포수가 얼른
오니 않도록만 해 주게.”
자라는 죽을 힘을 다 들여 그 끈을 물어 끊으려고 달려들었습니다. 올빼미
는 즉시 포수의 집으로 갔습니다. 가서는 날개로 그 집 문을 푸득푸득 두드
렸습니다.
그 때 마침 포수는 등불까지 켜 놓고 마악 사슴이 잡혔나, 덫을 보러 가려
고 하는 참이었습니다. 그러자 문 밖에서 푸득푸득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
고 ‘무엇일까?’ 하고, 나가서 문 밖으로 고개를 내어밀고 휘휘 둘러보았
습니다. 바깥은 캄캄한 밤중인데다가 눈이 어두워서, 더 캄캄할 뿐이었으
나, 올빼미는 밤중일수록 더 잘 보이므로, 포수가 나오는 것을 보고 후닥닥
뛰어 달려들어서 날개로 얼굴을 쳤습니다.
“이크! 이게 무얼까?”
문을 얼른 닫고 돌아서면서,
“앞에는 무언지 이상한 놈이 있는 모양이니 뒷문으로 나가야겠군.”
하고, 뒷문으로 돌아 나갔습니다.
그러나, 올빼미는 ‘포수가 필시 이번에는 뒷문으로 나오리라.’ 하고, 벌
써 뒷문 밖으로 돌아가 있었습니다. 그런 줄을 모르고 포수가 뒷문으로 나
서니까 이번에도 또 화닥닥 달려들어 얼굴을 쳤습니다. 날개가 눈에 스쳤던
지 아뜩해져서 포수는 그냥 쓰러지면서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렀습니다. 그
통에 올빼미는 급히 날아서 숲으로 돌아와 보니까 자라는 낑낑대면서 죽을
힘을 들여가며 끈을 끊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여보게, 이때껏 못 끊었나?”
“끈이 어떻게 굵은지……. 그래도 간신히 하나는 끊었는데 인제 나머지
하나를 마저 끊는 중일세. 포수는 어찌 되었나? 아직은 오지 않겠지?”
“포수는 염려 없네. 그렇지만 인제 곧 날이 밝게 되었으니까 얼마 안 있
어 올라올 것일세……. 날만 밝으면 내 눈은 영 보이지를 않으니까 꼼짝 못
하게 된다네. 그 끈이 얼른 마저 끊어져야 할텐데…….”
“염려 말게. 내 이가 부러지더라도 끊고야 말 터이니.”
하고, 이렇게 동무를 위하여 힘과 재주를 다 써 가며 애를 썼습니다. 기어
코 날은 밝았습니다. 벌써 포수가 손에 몽둥이를 들고 올라옵니다.
큰일 났습니다. 끈은 채 끊지도 못하고, 자라는 달아날 재주도 없고 올빼
미는 눈이 보이지를 않고…….
“인제는 큰일 났구나.”
하고, 사슴은 마지막 기운을 다하여 몸부림을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자라가
거의 다 끊어 놓은 것이라 끈이 탁 끊어지자, 옳다구나 하고 사슴은 후닥닥
뛰어 달아났습니다.
‘에그, 저를 어쩌나! 덫에 걸려 있던 사슴을 놓쳐 버리다니!’
하면서, 포수는 사슴 달아나는 것을 보고 분해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대신
날이 밝았으므로, 눈이 보이지를 않아서 달아나지도 못하고, 어릿어릿하는
올빼미와 걸음이 느려서 꾸물꾸물하고 있는 자라를 잡아가지고,
‘에에, 사슴을 놓친 대신, 이놈을 잡아서 덜 섭섭하다.’
하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사슴은 다행히 살아 오기는 왔으나, 자기를 살리려고 애를 쓰던 올빼미와
자라가 포수에게 잡혀 가서 큰 변을 당할 일을 생각하니까, 잠시도 마음이
놓이지를 않아서 위험한 것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다시 포수의 집으로 왔습
니다. 들창 밖에서 가만히 들여다보노라니까 포수는 올빼미와 자라를 새끼
줄로 친친 감아서 들고,
“이렇게 매 두었다가 내일은 잡아먹어야지…….”
하면서 벽을 향하고 일어서서,
‘어디 걸어 놓을 못이 없나?’
하면서 눈이 어두우니까, 손으로 벽을 문대면서 못을 찾습니다.
‘옳지!’
하고, 사슴은 자기의 두 뿔을 들창 안으로 쑥 들이밀었습니다.
‘옳지, 훌륭한 것이 있구먼.’
하고, 눈 어두운 포수는 그것이 사슴의 뿔인 줄 모르로 이쪽 뿔에는 올빼미
를 걸고, 저쪽 뿔에는 자라를 걸어 놓았습니다.
사슴은,
‘인제 되었다’
하고, 두 뿔에 두 동무를 건 채로 그냥 뛰어 달아났습니다. 포수가 깜짝 놀
래어 문 밖으로 뛰어나왔을 때에는 사슴은 벌써 어디까지 뛰어갔는지 알 수
도 없었습니다.
숲 속에 와서 사슴은 두 동무의 묶인 것을 풀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부터는 더욱 더욱 친절히 지내고, 서로 서로 도와갈 일을 약속하고 하나는
숲으로, 하나는 연못으로, 하나는 절 지붕 위로 제각각 쉬러 돌아갔습니다.
〈《어린이》1권 3호, 1923년 4월호, 소파〉
가슴의 번민을 하소연하듯 떨면서 우는 가늘은 그 소리는 막힘없는 월공에
떠서 흘러 이것 저것 모두 잊고 섰는 나로 하여금 다시 가슴을 울리게 하도
다.
가늘게 흐르는 그 소리와 함께 마음은 다시 망향에 떠돌아 차츰차츰 일어
나는 고향 생각에 내 몸은 또다시 한없는 고적에 싸여 누구나 동무를 찾을
듯이 사면을 두루 둘러보아도 저 끝 송림은 여전히 그윽하고 질펀한 들에는
달빛만 흐를 뿐이라 ‘역시 나 홀로 있었다.’ 입 속으로 부르짖을 때 전보
다 심한 고적이 몸을 휘여 싸는데 외로운 적막을 호소하듯 마음 상하는 월
명을 원망하듯 한참이나 서서 눈물에 젖은 눈으로 달을 쳐다보다가 다시 고
개를 숙여 발 밑에 싸늘한 내 영자를 보고, 아아 역시 고독이다……, 생각
할 때에 기다리고 있었던 듯이 갑자기 몸을 찌르는 추위에 전신이 오싹 떨
리고 눈에 고였던 더운 눈물이 넘쳐서 싸늘한 뺨에 흘러 내리도다.
생각하면 내 몸이 원래 이렇게까지 외롭지는 아니하였던 것을…….
생아의 모친과는 사별을 당하고 양아의 모친과는 생별을 당하고……, 아아
나를 그리워하는 어린 누이들을 집에 남겨 두고 현해탄 멀리 건너 도야마하
라 넓은 벌에 외로이 우는 나는 어느 때까지는 홀로 헤맬 몸이냐, 요적한
객창에 궂은비 소리쳐 울고 싸늘한 장지에 밝은 달 비치울 때마다 가난 중
에 돌아가신 어머니, 남아 있는 가련한 누이를 생각하면 손으로 고인 뺨에
추회(追懷)의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 견디지 못하게 가슴이 아프다.
아아, 어머님 잃고, 오라비마저 떨어진 가련한 누이들이 지금 이 밤에 잠
들이나 편히 자는가. 고개를 들어 달을 바라볼 때에 어느덧 고인 눈물이 달
빛을 흐리도다.
눈에 고인 눈물을 손으로 눌러 뺨으로 흘리고 다시 하늘을 쳐다보니 달은
이 몸의 비애를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잠잠하게 빛날 뿐이고 가늘게 우는
만돌린 소리는 무슨 곡인지 그저 가늘게 떨면서 흘리어 애련한 기분으로 들
을 덮는다. 고국에 헤매는 나의 마음은 뒤에 뒤를 이어 생각은 어느덧 안암
동(安岩洞) 밑에서 빈한에 우는 누님께 이르도다.
안암산 화강석(花崗石) 깨뜨려 내는 바위 밑 과목밭 속에 조그만 집, 그
속에서 가난에 부딪치며 눈물과 생활을 해가는 불쌍한 누님, 그가 어머님
돌아가신 후에는 외로이 나 한 몸을 믿고, 나 한 몸을 세상에 단 하나로 알
아, 먼 곳이나마 자주 다녀가고, 자주 오라고 때때로 보고자 고대고대하는
것을 공부니 사무니 하고 바쁜 탓으로 자주 가지 못하여 고대하다 못하여
아마 무정해졌는 게라고 홀로 어머님 생각, 내 생각, 어린 동생 생각을 두
루 하며 울더라는 누님!
아아 그가 나 일본 갔단 말을 듣고 얼마나 울었을까. 일본이 어딘지 알지
도 못하고 험하고 무섭고 하여 영영 보지 못할 길을 간 줄로 알고 불쌍한
우리 누님이 얼마나 뼈에 맺히는 울음을 울었으랴. 출발이 급하기도 하였지
마는 그렇게까지 생각해 주는 누님께 고별도 못하고 와서, 와서도 주소 번
지를 몰라 편지 한 장 못 보내고 있으니 궁금해 하는 마음이 오죽이나 할
까. 아아 물가는 비싸고 시절은 험한데 불쌍한 우리 누님은 지금 어찌나 지
내는지……. 힘없이 감은 눈 속에 빛 검어지는 얼굴 파리하여 시골 촌부터
박힌 누님의 시름없이 눈물 흘리는 양이 애련히 보이는구나…….
어린 누이는 집에서 울고, 출가한 누님은 가난과 설움에서 울고, 이 몸은
도야마하라 들 속에서 울고……. 아 ─ 우리 남매는 그 어느 성신(星辰)이
점지를 하였느냐.
내 땅 내 집에 모여들 지내도 다소의 비애는 따르는 것을 ──, 모친 없는
어린 몸이 이렇게 헤어져 울고, 그리고 우리의 생모이신 어머님은 지금 남
대문 밖 이태원 공동 묘지에 잠드신 지 오래도다.
아아, 부유(蜉蝣)의 일기라는 기막힌 일생에 이별의 눈물이 어찌 이리 많
으냐…….
생별에 울고 사별에 울어 그리 울며 지내고 만날 날 고대하는 동안에 세상
에 마지막 고별할 날이 와…….
아 ─, 무엇을 위하는 이별이며, 무엇하라는 70년 일명(一命)이냐, 오직
오래 푸르기는 산뿐이요, 길이 흐르는 물뿐! 그간에 하잘것없는 인생의 일
세가 이렇듯 덧없구나.
무상한 인생의 일인인 내가 울면 무엇하며 웃으면 무엇하랴 하여 발길을
돌려 만돌린 소리를 뒤로 두고 여관으로 돌아오니, 죽은 듯이 자는 여관에
는 시계가 홀로 반 시를 가리키고, 달은 서쪽으로 조금 기울어지도다.
─경신(庚申) 추석 다음 다음 날 동경(東京)서─
<1921년 1월 1일 ≪개벽(開闢)≫>
출처 : 공유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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