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노래 / 동화 / 방정환
by 송화은율눈물의 노래
센 강을 건너가는 나룻배에 조그만 어린 거지 두 사람이 여러 손님 옆 한
구석에 앉아 있습니다.
한 사람은 열 살쯤 된 소년이고, 한 사람은 열한 살 되어 보이는 소녀인데
둘은 서로 모르는 사이였으나 각각 남의 문 앞으로 노래를 부르면서 돈을
구걸하러 다니는 같은 신세였습니다.
그래 오늘도 온종일 돌아다니다가 저녁이 되어 강을 건너 지금 집으로 돌
아가는 것이었습니다.
몹시 피곤하여 푸른 얼굴을 힘없이 늘어뜨리고 있던 소녀는 치마를 들치고
주머니에서 오늘 얻은 돈을 꺼내서 치마 위에 늘어놓더니 그것을 헤이기 시
작하였습니다. 불쌍하디 불쌍한 소녀의 가련한 눈이 이 때에만 잠깐 기쁜
빛이 돌았습니다.
1전, 2전, 3전, 4전 세는 소리를 듣고 옆에 근심스럽게 고개를 숙이고 있
던 소년도 고개를 돌이켜 그것을 부럽게 보았습니다.
“20전, 24전, 25전…… 그리고 이 번쩍번쩍하는 50전짜리 새 은전…… 모
두 75전이다…….”
‘어이휴!’하고 근심만 하는 소년이 그것을 보고 탄식하는 소리를 듣고
소녀는 동전과 은전을 따로 쥐고,
“이 은전은 까만 옷을 입은 점잖은 마님(부인)이 주셨단다. 불쌍하다고
나를 번쩍 들어서 껴안아까지 주시고, 그런데 너는 오늘 얼마나 벌었니?”
“나는 오늘 한 푼도 못 벌었단다.”
소년은 슬픈 소리로 대답하였습니다.
“에그, 그럼 집에 들어가면 두들겨 맞겠구나……. 그래 그렇게 걱정을 하
고 있니?”
“아니, 나는 매는 안 맞는단다. 너는 매를 맞니? 두들겨 맞아?”
“그렇단다. 돈을 많이 벌어 가지 않으면 굵다란 나무때기로 맞는단다.”
“아이고, 그럼 자주 얻어맞겠구나! 나는 우리 어머니하고 같이 있는데 돈
은 못 벌어도 그냥 꾸지람만 하지 때리지는 않는단다. 어머니하고 늘 같이
다녀도 이 바이올린 켜면 어머니가 거기 맞춰서 노래를 부르면 사람들이 돈
을 많이 준단다. 그런데 오늘은 나 혼자 바이올린만 켜니까 돈을 한 푼도
못 벌었단다.”
“그럼, 오늘은 왜 어머니하고 같이 나오지 않았니?”
그 때에 어린 소년은 고개를 푹 숙이는데 그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습
니다.
“우리 어머니는 병이 나서 앓고 계신단다.”
소녀는 아무 말이 없이 한참이나 잠자코 있더니 자기 손에 들고 있던 돈
75전을 소년의 앞에 내어밀었습니다.
“이 돈을 갖다가 병든 어머니께 드려라.”
“아니, 그만두어라. 네가 얻어맞게?”
“아니다, 괜찮다. 가지고 가거라. 나는 날마다 얻어맞으니까 괜찮다…….
너의 어머니의 병을 고쳐야 살지……. 자아 옛다.”
소년의 눈에서도 소녀의 눈에서도 눈물이 펑펑 쏟아졌습니다.
“싫다. 나 때문에 너의 집에 가서 두들겨 맞으면 어떻게 하니……. 그냥
가지고 가거라.”
하고 소년은 그 돈을 영영 받지 않았습니다. 소녀도 하는 수 없이 돈을 도
로 넣고,
“얘, 그럼 여기서 내가 노래를 부를 터이니 네가 바이올린으로 곡조를 맞
춰라. 그럼 이 나룻배에 있는 손님들이 돈을 줄 터이니…….”
“무슨 노래인지 곡조를 아는 것이면 맞추지…….”
소녀는 잠깐 동안 생각하고 나서 아주 아주 슬픈 노래의 이름을 불렀습니
다.
“알겠지? 그 슬픈 곡조를…….”
“응. 그것은 날마다 하는 것이니까.”
“그럼, 일어나서 시작하자!”
불쌍한 어린 소년과 소녀는 일어섰습니다. 소년은 바이올린으로 애처롭고
서러운 소리를 내고, 소녀는 그 소리에 맞춰서 가늘게 떨리는 소리로 서러
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의외로 시작된 구슬픈 노래 소리에 배에 가득했던 손님들은 벌떡벌떡 일어
서서 귀를 기울이고 조용히 듣고 있습니다. 그 때, 문득 소녀가 노래를 멈
추더니 떨리는 소리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여러 어른께서는 지금 저의 두 아이를 불쌍히 여기고 노래를 들어 주십
시오. 잘 할 줄도 모르는 노래입니다마는 지금 부르는 노래는 여기 섰는 이
동무의 어머니를 위하여 부르는 것이올시다. 이 동무는 저와 같은 거지 동
무올시다. 그러나, 어머니께는 효성이 지극한 아이올시다. 그런데 지금 그
어머니는 병이 들어 앓고 계시답니다.”
소녀의 말 소리는 차츰 울음 소리로 변하였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듣고 있던 소년은 참다 못하여 어깨를 흔들면서 흐느껴 울
었습니다.
수그린 얼굴에서 굵다란 눈물이 흘러내려서 바이올린의 위에 뚝뚝 떨어졌
습니다.
소녀는 말을 그치고, 다시 구슬픈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아아!
귀여운 마음! 애처로운 노래! 서러운 노랫소리가 듣는 사람들의 가슴을 울
릴 때 여러 사람들은 그 불쌍한 아이를 부둥켜 안아 주고 싶었습니다.
노래를 마치고, 소녀는 자기 모자를 벗어 들고 돈을 걷어 모으기 시작하였
습니다. 그 때, 맨 먼저 소녀는 자기가 가졌던 50전짜리 은전을 그 모자에
넣었습니다.
손님들은 모두 주머니를 툭툭 털어서 넣어 주었습니다. 배를 젓던 뱃사공
도 여러 손님을 헤치고 나와서 이번 뱃삯 받은 돈을 모두 꺼내 모자에 담아
주었습니다.
돈이 십 원은 넘었을 것입니다.
소녀가 그 모은 돈을 소년에게 주고 나니까, 그 때 생선 장수의 마누라 한
분이 커다란 생선 한 마리를 꺼내 들고 소년에게 갖다 주었습니다.
“자아, 이것을 가지고 가서 어머님께 졸여 드려라. 병든 부인에게는 아주
좋은 보약이 되는 생선이다…….”
〈《어린이》 3권 10호, 1925년 10월호, 잔물〉
출처 : 공유마당
이용조건 : CC BY
블로그의 정보
국어문학창고
송화은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