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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항사(陋巷詞)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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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항사(陋巷詞)

 

 

 

 (서사)

어리석고 세상 물정에 어둡기는로는 이 나보다 다한 사람이 없다.
모든 운수를 하늘에다 맡겨 두고  
누추한 깊은 곳에 초가를 지어 놓고  
고르지 못한 날씨에 썩은 짚이 땔감이 되어
세 홉 밥에 다섯 홉 죽(초라한 음식)을 만드는 데 연기가 많기도 하구나.
덜 데운 숭늉을 고픈 배를 속일 뿐이로다.
살림살이가 이렇게 구차하다고 한들 대장부의 뜻을 바꿀 것인가.
안빈낙도하겠다는 한 가지 생각을 적을망정 품고 있어서
옳은 일을 좇아 살려 하니 날이 갈수록 뜻대로 되지 않는다.
가을이 부족한데 봄이라고 여유가 있겠으며
주머니가 비었는데 술병에 술이 담겨 있으랴.
가난한 인생이 천지간에 나뿐이로다.
 (길흉화복을 하늘에 맡기고 누항에서 안빈 일념으로 살려는 심정-  생애저어)

 

 (본사)

 

배고픔과 추위가 몸을 괴롭힌다 한들 일편단심을 잊을 것인가.
의에 분발하여 내 몸을 잊어서 죽어서야 말겠노라고 마음 먹어
전대와 망태에 한 줌 한 줌 모아 넣고
전란 5년 동안에 죽고 말리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
주검을 밟고 피를 건너 몇백 전쟁을 치루었던가.
(충성심으로 백전고투했던 왜란을 회상함 - 회억병과)

 

 

한 몸이 겨를이 있어서 집안을 돌보겠는가
늙은 종은 하인과 주인의 분수를 잊어버렸는데
나에게 봄이 왔다고 일러 줄 것을 어떻게 기대할 수 있겠는가.
밭 가는 일은 마땅히 종에게 물어야 한다지만 누구에게 물을 것인가.
몸소 농사를 짓는 것이 내 분수에 맞는 줄을 알겠도다.
(전란 후 돌아와 몸소 농사 - 궁경가색)

 

 

들에서 밭 갈던 은나라의 이윤과 진나라의 진승을 천하다고 할 사람이 없지마는
아무리 갈려고 한들 어느 소로 갈겠는가.
가뭄이 몹시 심하여 농사철이 다 늦은 때에
서쪽 두둑 높은 논에 잠깐 갠 지나가는 비에
길 위에 흐르는 물을 반쯤 대어 놓고는
소 한 번 빌려 주마 하고 엉성하게 하는 말(또는 탐탁지 않게 하는 말)을 듣고
친절하다고 여긴 집에
달이 없는 저녁에(달도 없는 황혼에) 허우적허우적(허둥지둥) 달려가서
굳게 닫은 문 밖에 우두커니(멀찍이) 혼자 서서
'에헴.' 하는 인기척을 꽤 오래도록 한 후에
'어, 거기 누구신가?' 묻기에 '염치 없는 저올시다.'
(농사 위해 농우를 빌리러 감 - 궁경심려)

 

 

'초경도 거의 지났는데 그대 무슨 일로 와 계신가?'
'해마다 이러기가 구차한 줄 알지마는
소 없는 가난한 집에서 걱정이 많아 왔소이다.'
'공것이거나 값을 치거나 간에 주었으면 좋겠지만
다만 어젯밤에 건넛집 사는 사람이
목이 붉은 수꿩을 구슬 같은 기름에 구어 내고
갓 익은 좋은 술을 취하도록 권하였는데
이러한 고마움(은혜)을 어떻게 갚지 않겠는가(어찌 아니 갚겠는가)?
내일 소를 빌려 주마 하고 굳게 약속을 하였기에
약속을 어기기가 편하지 못하니 말씀하기가 어렵구료.'
정말로(사실이) 그렇다면 설마 어찌하겠는가
헌 모자를 숙여 쓰고 축 없는 짚신을 신고
맥없이 물러나오니
풍채 적은 내 모습에 개가 짖을 뿐이로구나.
(농우를 빌리러 갔다가 수모만 당함 - 인인수모)

 

 

작고 누추한 집에 들어간들 잠이 와서 누워 있겠는가.
북쪽 창문에 기대 앉아 새벽을 기다리니
무정한 오디새는 나의 한을 돕는구나.
아침이 끝날 때까지 슬퍼하며 먼 들을 바라보니
즐기는 농부들의 노래도 흥없게 들리는구나.
세상 물정을 모르는 한숨은 그칠 줄 모른다.
아까운 저 쟁기는 볏보임도 좋구나.
가시가 엉킨 묵은 밭도 쉽게 갈 수 있으련만
빈 집 벽 한가운데 쓸데없이 걸려 있구나.
봄갈이도 거의 다 지났다. 팽개쳐 던져 버리자.
(돌아와 한탄하며 봄갈이농사 포기 - 종조추창)

 

(결사)

 

자연을 벗삼아 살겠다는 한 꿈을 꾼 지도 오래더니
먹고 사는 것이 누가 되어 아, 슬프게도 다 잊었도다.
저 냇가를 바라보니 푸른 대나무가 많기도 하구나.
교양 있는 선비들아, 낚싯대 하나 빌려 다오(빌려라).
갈대꽃 깊은 곳에서 밝은 달과 맑은 바람의 벗이 되어
임자 없는 자연 속에서 절로절로(근심 없이) 늙으리라.
무심한 갈매기야, 나더러 오라고 하며 가라고 하랴(나더로 오라고 하며 말라고 하겠느냐)?
다툴 이가 없는 것은 다만 이것뿐인가 생각하노라.
( 자연을 벗삼아 대자연 속에서 절로 늙기를 소망하고, 강호에의 꿈을 되새김. - 첨피기욱)

 

 

 

못생긴 이 몸(보잘것없는 이 몸)이 무슨 소원이 있으리오마는
두세 이랑 되는 밭과 논을 다 묵혀 던져 두고,
있으면 죽이요, 없으면 굶을망정,
남의 집 남의 것은 전혀 부러워하지 않겠노라.
나의 빈천을 싫게 여겨 손을 헤친다고(젓는다고) 물러가며
남의 부귀를 부럽게 여겨 손짓한다고 나아오랴?
인간 세상의 어느 일이 운명 밖에 생겼겠느냐?
가난하면서도 원망하지 않음이 어렵다고 하건마는
내 생활이 이러하되 서러운 뜻은 없노라.
한 대 광주리의 밥을 먹고 한 표주박의 물을 마시는
어려운 생활을 이것도 만족하게 여기노라.
평생의 한 뜻이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는 데는 없노라.
태평스런 세상에 충성과 효도를 일을 삼아,
형제간에 화목하고 벗끼리 신의 있게 사귀는 일을 그르다고
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 밖의 나머지 일이야 태어난 대로 살아가려 하노라.
(빈이무원하고, 단사표음도 족히 여기면서, 사충요, 화형제, 신붕우에 힘씀 - 안빈낙도)

 

 

 

 요점 정리

 작자 : 박인로(朴仁老)

 갈래 : 가사, 은일(隱逸)가사

 연대 : 광해군 3년(1611)

 문체 : 가사체. 운문체

 성격 : 전원적, 사색적, 한정가(閑情歌)

 구성 : 서사, 본사, 결사의 3단으로 4음보의 연속체

 

 서사 - 길흉 화복을 하늘에 맡기고 안빈 일념으로 살려는 심정

 본사 1 - 충성심으로 백전 고투했던 왜란의 회상

 본사 2 - 전란 후 돌아와 몸소 농사를 지음

 본사 3 - 농사를 지으려 하니 농우가 없어, 농우를 빌리러 감

 본사 4 - 농우를 빌리러 갔다가 수모를 당하고 돌아옴

 본사 5 - 집에 돌아와 야박한 세태를 한탄하며 춘경을 포기함

 결사 1 -  자연을 벗삼으면서 절로 늙기를 소망함

 결사 2 - 빈이무원하고 단사 표음을 만족하게 여기면서 충효와 화형제·신붕우에 힘 씀

 

누항(陋巷)

생애저어(길흉화복을 하늘에 맡기고 안빈일념으로 살고 싶음)

도입

농우(農牛)

회억병과(전쟁에 임하여 죽을 고비를 넘겼던 일을 회상)

전개

궁경가색(전란 후 몸소 농사를 짓고자 하나 소가 없어 고심함)

궁경심려(가뭄에 언뜻 내리는 비를 보고 밭을 갈러 소를 빌리러 감)

인인수모(농우를 빌리러 갔다가 수모를 당하고 돌아옴)

강호(江湖)

종조추장(매정한 세태를 한탄하고 밭 갈기를 포기함)

전환

첨피기욱(밝은 달 맑은 바람을 벗 삼아 임자 없는 자연 속에서 절로 늙겠다 다짐)

단사표음(簞食瓢飮)

안빈낙도 (빈이무원하고 충효, 화형제, 신붕우를 중히 여기고 살아가겠다고 다짐).

결말

 

 제재 : 빈이무원(貧而無怨)의 삶

 

 주제 : 누항(陋巷)에 묻혀 빈이무원(貧而無怨)을 추구. 초야에 묻혀 사는 선비들의 고절한 삶과 현실의 부조화, 자연을 즐기는 풍류 생활, 안빈낙도(安貧樂道)의 경지

 

 줄거리 : 첫째 단락에서는 길흉화복을 하늘에 맡기고 누추한 곳에서 가난하게 사는 심정을 읊었다. 둘째 단락에서는 지난날 7년간 왜란에 몸바쳐 싸우던 일을 회상했다. 셋째 단락에서는 몸소 농사짓고자 하나 소가 없어 낙심하며, 넷째 단락에서는 소를 빌리려다가 수모만 당한 참담한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다섯째 단락은 집으로 돌아와 인심을 탓하며 봄갈이를 포기하는 대목이다. 여섯째 단락은 가난한 현실을 외면하고 달과 바람을 벗삼아 자연 속에서 늙기를 바라며, 일곱째 단락에서는 다시 안빈낙도의 뜻을 읊었다.

 

 표현 : 대구법, 설의법, 과장법, 열거법이 사용되었고, 자신의 궁핍한 생활을 사실적이고 구체적으로 형상화했고, 농촌의 일상 생활과 관련된 시어들이 많이 등장하고, 어려운 한자어들이 많이 쓰였고, 고상한 삶의 목표와 현실적인 문제 사이의 갈등이 담겨 있다.(빈궁한 삶 - 현실적 제약 / 시적화자 - 갈등 / 안빈낙도 추구 - 이상적인 삶의 목표)

 

 출전 : 노계집(蘆溪集)

 

 

 

 

내용 연구

 

 

 (서사)

어리석고 세상 물정에 어둡기는로는 이 나보다 더한 사람이 없다.
길흉화복 모든 운수(운명)를 하늘에다 맡겨 두고  
누추한 깊은 곳에 초가를 지어 놓고  
고르지 못한 날씨에 썩은 짚이 땔감이 되어
세 홉 밥에 다섯 홉 죽(초라한 음식)을 만드는 데 연기가 많기도 하구나.
덜(설) 데운 숭늉을 고픈 배를 속일 뿐이로다.
살림살이가 이렇게 구차하다고 한들 대장부의 뜻을 바꿀 것인가.
안빈낙도하겠다는 한 가지 생각을 적을망정 품고 있어서
옳은 일을 좇아 살려 하니 날이 갈수록 뜻대로 되지 않는다.
가을이 부족한데 봄이라고 여유가 있겠으며
주머니가 비었는데 술병에 술이 담겨 있으랴.
가난한 인생이 천지간에 나뿐이로다.
 (길흉화복을 하늘에 맡기고 누항에서 안빈 일념으로 살려는 심정-  생애저어)

 어리고 : 어리석고

 우활(迂闊)

산 : 세상 물정에 어두움

 

 더니 업다 : 위에 더한 사람이 없다

 부쳐 두고 : 맡겨 두고

 누항(陋巷) : 누추한 곳, 춥고 더러운 거리로 화자의 삶의 태도가 안빈낙도에 바탕을 두고 있을 것임

 풍조 우석(風朝雨夕) : 바람 부는 아침과 비 오는 저녁, 곧 변화무쌍한 날

 석은 딥히 셥히 되야 : 썩은 짚이 땔감(섶)이 되어

 셔홉 밥 닷홉 죽(粥) : 세 홉의 밥과 다섯 홉의 죽. 곧 초라한 음식

 숙냉(熟冷) : 숭늉

 

 : 텅 빈 배, 고픈 배

 옴길넌가 : 옮길 것인가

 안빈 일념(安貧一念) : 구차한 삶 속에서도 마음을 편안히 가지겠다는 한 가지 생각

 수의(隨宜) : 옳은 일을 좇음

 날로 조차 저어(齟齬)

다 : 날이 갈수록 어긋나다

 

히 : 가을이

 뷔였거든 : 비었는데

 병(甁)의라 : 술병이라고

 

 

 (본사)

배고픔과 추위가 몸을 괴롭힌다 한들 일편단심을 잊을 것인가.
의에 분발하여 내 몸을 잊어서 죽어서야 말겠노라고 마음 먹어(의에 분발하여 제 몸을 잊고 죽어야만 그만두리라 생각한다.)
전대와 망태에(전쟁할 때 쓰는 무기들을) 한 줌 한 줌 모아 넣고
임진왜란(전란) 5년 동안에 죽고 말리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
주검을 밟고 피를 건너는 혈전을 몇 백이나 치루었던가.
(충성심으로 백전고투했던 왜란을 회상함 - 회억병과)

 

 

한 몸이 겨를이 있어서 집안을 돌보겠는가
늙은 종은 하인과 주인 간의 분수를 잊어버렸는데
하물며 나에게 봄이 왔다고 일러 줄 것을 어떻게 기대할 수 있겠는가.
밭 가는 일은 마땅히 종에게 물어야 한다지만 누구에게 물을 것인가.(하인은 전쟁 중에 도망을 가고 없다)
몸소 농사를 짓는 것이 내 분수에 맞는 줄을 알겠도다.
(전란 후 돌아와 몸소 농사 - 궁경가색)

 기한(飢寒) : 굶주림과 추위

 절신(切身) : 몸에 절실하다

 이질

가 : 잊겠는가

 분의 망신(奮義忘身) :  의에 분발하여 자기 몸을 잊음

 죽어야 말녀 너겨 : 죽어서야 말겠노라고 마음먹어

 우탁(于

) 우랑(于囊) : 전대와 망태

 줌줌이 모와 녀코: 한 줌 한 줌 모아 넣고

 병과(兵戈) : 병정과 창. 곧 전쟁

 감사심(敢死心) : 죽고 말리라는 마음

 이시 섭혈( 履尸涉血) : 주검을 밟고 피를 건너감

 

연고 : 치루었던가

 일노 장수(一奴長鬚) : 긴 수염이 난 종. 늙은 종

 노주분(奴主分) : 하인과 주인의 분수

 이졋거든 : 잊어버렸거든

 고여 춘급(告余春及) : 나에게 봄이 왔다고 일러 줌

 경당 문노(耕當問奴) : 밭 가는 일은 마땅히 종에게 물음

 

려 : 누구더러

 궁경 가색(躬耕稼穡) : 몸소 밭을 갈고 씨를 뿌리어 곡식을 거둠

 분(分) : 분수

 

 

들에서 밭 갈던 은나라의 이윤과 진나라의 진승을 천하다고 할 사람이 없지마는
아무리 갈려고 한들 어느 소로 갈겠는가.
가뭄이 몹시 심하여 농사철이 다 늦은 때에
서쪽 두둑 높은 논에 잠깐 지나가는 비에
길 위에 흐르는 근원 없는 물을 반쯤 대어 놓고는
소 한 번 빌려 주마 하고 엉성하게 하는 말을 듣고
친절하다고 여긴 집에
달도 없는 저녁에 허우적허우적 달려가서
굳게 닫은 문 밖에 우두커니 혼자 서서
'에헴.' 하는 인기척을 꽤 오래도록 한 후에
'어, 거기 누구신가?' 묻기에 '염치 없는 저올시다.'
(농사 위해 농우를 빌리러 감 - 궁경심려)

 

 

'초경도 거의 지났는데 그대 무슨 일로 와 계신가?'
'해마다 이러기가 구차한 줄 알지마는
소 없는 가난한 집에서 걱정이 많아 왔소이다.'
'공것이거나 값을 치거나 간에 주었으면 좋겠지만
다만 어젯밤에 건넛집 사는 사람이
목이 붉은 수꿩을 구슬 같은 기름에 구어 내고
갓 익은 좋은 술을 취하도록 권하였는데
이러한 은혜(고마움)를 어떻게 갚지 않겠는가(어찌 아니 갚겠는가)?
내일 소를 빌려 주마 하고 굳게 약속을 하였기에
약속을 어기기가 편하지 못하니 말씀하기가 어렵구료.'
정말로(사실이) 그렇다면 설마 어찌하겠는가
헌 모자를 숙여 쓰고 축 없는 짚신을 신고
맥없이 물러나오니
풍채 작은 내 모습에 개가 짖을 뿐이로구나.
(농우를 빌리러 갔다가 수모만 당함 - 인인수모)

 신야 경수( 莘野耕

) : 들에서 밭 가는 늙은이. 은나라 탕와의 재상이 된 이윤(伊尹)을 말함

 농상 경옹(瓏上耕翁) : 밭 두둑 위에서 밭 가는 늙은이. 진나라의 진승을 말함

 갈고젼

: 갈고자 한들

 쇼로 갈로손고 : 소로 갈겠는가

 한기태심 : 가뭄이 극심함.

 시절(시절) : 여기서는 농사 짓기에 좋은 시기

 서주(西疇) : 서쪽 두둑

 녈비 : 지나가는 비, 잠깐 오다가 개는 여우비

 도상무원수(道上無源水) : 길 위에 흐르는 근원이 없는 물

 반만

혀 : 반쯤만 대어

  

 젹 듀마 : 소 한 번 주마

 엄섬이 : 엉성히. 탐탁치 않게

 너긴 : 여긴. 생각한

 

 업슨 : 달이 없는

 허위허위 다라가셔 : 허우적허우적 달려가서

 구디 다든 : 굳게 닫은

 어득히 : 우두커니

 아함이 : 인기척.‘에헴’하는 소리

 양구(良久)토록 : 꽤 오래도록

 

옵노라 : 나올시다

 초경(初更) : 저녁 7 - 9시

 거읜

 : 거의 지났는데

 혜염 만하 : 헤아림(걱정)이 많아
 

니나 갑시나 : 공것이나 값을 치거나

 거넨 집 : 건너 집
 수기 치(雉) : 수꿩

 옥지읍(玉脂泣)게 : 구슬 같은 기름이 튀어 오르게

 간 이근 : 갓 익은

 삼해주(三亥酒) : 정월 셋째 해일(亥日)에 빚은 좋은 술
 미편(未便) : 편하지 못함

 사셜 : 말씀

 실위(實爲) : 사실로, 참으로

 혈마 : 설마

 먼덕 : 멍덕. 짚으로 만든 모자

 수기 : 숙여

 설피설피 : 맥없이 어슬렁어슬렁 걷는 모습

 

 

작고 누추한 집에 들어간들 잠이 와서 누워 있겠는가.
북쪽 창문에 기대어 앉아 새벽을 기다리니
무정한 오디새는 이 내 한을 돕는구나(재촉한다).
아침이 끝날 때까지 슬퍼하며 먼 들을 바라보니
즐기는 농부들의 노래도 흥없게 들리는구나.
세상 물정을 모르는 한숨은 그칠 줄 모른다.
아까운 저 쟁기는 볏보임(보습 위에 대는 쇳조각)도 좋구나(날도 잘 서 있어).
가시가 엉킨 묵은 밭도 쉽게 갈 수 있으련만
텅 빈 집 벽 한가운데 쓸데없이 걸려 있구나.
봄갈이도 거의 다 지났다. (벽에 걸린 쟁기를)팽개쳐 던져 버리자.
(돌아와 한탄하며 봄갈이농사 포기 - 종조추창)

 

 

산수 자연 한 (산수 자연을 벗삼아 살겠다는)꿈을 꾼 지도 오래더니,

먹고 살기 누가 되어 어즈버 잊었도다.(먹고 사는 것이 거리낌이 되어 아아! 슬프게도 잊었도다)

저 냇가를 바라보니(물가를 바라보니 '시경'의 '위풍' 중에서'기욱장'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한 것임)푸른 대나무가 많기도 많네.

교양 있는 선비들아, 낚싯대 하나 빌려다오.

갈대꽃 깊은 곳에 대자연의 벗이 되어,

임자 없는 자연 속에 절로절로 늙으리라.

무심한 갈매기야 오라 하며 가라 하랴?

다툴이 없는 것은 다만 이것인가 하노라.(자연 속에서 사는 흥)

 와실(蝸室) : 달팽이집. 자기 집을 겸손히 일컫는 말

 

 : 새벽

 대승(戴勝) : 봄에 밭 갈기를 독촉한다는 오디새

 도우

다 : 조장한다

 종조 추창(終朝

) : 아침이 마칠 때까지 슬퍼함

 소뷔 : ‘쟁기’의 사투리.

 볏보님 : 쟁기의 날이 잘 선 모양

 엉긘 : 엉킨

 슬듸업시 : 쓸데없이, 공연히

 거의거다 : 거의 다 지났다

 후리쳐 더뎌 : 팽개치어 던져

 구복(口腹) : 먹고 사는 것

 위루(爲累) : 누가 됨, 거리낌이 됨

 어지버 : 아, 슬프구나

 이져

다 : 잊었도다

 첨피 기욱(瞻彼淇

) : 저 기수의 물가를 바라봄

 유비 군자(有斐君子) : 교양 있는 선비

 노화(蘆花) : 갈대꽃

 무심(無心) : 아무런 생각이 없음, 아무 걱정이 없음

 다토리 업슬 

 : 다툴 이가 없는 것은

 다문 인가 : 다만 이것뿐인가

 

 

(보잘것없는)못생긴 이 몸이 무슨 소원이 있으리오마는
두세 이랑 되는 밭과 논을 다 묵혀 던져 두고,
있으면 죽이요, 없으면 굶을망정,
남의 집 남의 것은 전혀 부러워하지 않으려고 하노라.
나의 빈천을 싫게 여겨 손을 헤친다고 물러가며
남의 부귀를 부럽게 여겨 손을 친다고 나아오랴?
인간 세상의 어느 일이 운명 밖에 생겼겠느냐?
가난하면서도 원망하지 않음이 어렵다고 하건마는
내 생활이 이러하되 서러운 뜻은 없노라.
한 대 광주리의 밥을 먹고 한 표주박의 물을 마시는
어려운 생활을 이것도 만족하게 여기노라.
평생의 한 뜻이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는 데는 없노라.
태평스런 세상에 충성과 효도를 일을 삼아,
형제간에 화목하고 벗끼리 신의 있게 사귀는 일을 그르다고
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 밖의 나머지 일이야 태어난 대로 살아가려 하노라.
(빈이무원하고, 단사표음도 족히 여기면서, 사충요, 화형제, 신붕우에 힘씀 - 안빈낙도) 

 무상(無狀) : 보잘 것 없는, 못생긴

 지취(志趣) : 뜻과 취향

 이렁 : 이랑, 밭두렁

 무겨 : 묵혀

 슬히 : 싫게

 헤다 : 내젓는다고

 불리 : 부럽게

 손을 치다 : 손짓을 한다고

 명 밧긔 삼겨시리 : 운명 밖에 생겼으리

 단사 표음(簞食瓢飮) : 간소한 음식,  곧 어려운 생활

 온포(溫飽) : 따뜻하게 입고 배불리 먹음

 외다 : 그라다고

 삼긴 

로 : 타고난 대로

 

 더니 업다. : 나보다 더한 사람이 없다

 

이로다 : 빈 배 속일 뿐이로다. 한 끼를 대강 때운다는 말. 작자의 궁핍한 삶이 절실하게 표현된 구절이다.

 隨宜(수의)로 살려 

니 날로조차 齟齬(저어)

다.
  옳은 일과 길을 쫓아서 살려 하나 갈수록 뜻대로 되지 않는구나. 현실과 신념 사이의 괴리에서 오는
  자탄을 노래한 구절이다.

 

히 不足(부족)거든 봄이라 有餘(유여)하며,
  가을에 식량이 부족한데 더구나 봄에 여유가 있겠는가

 兵戈(병과) 五載(오재)예 - 몃 百戰(백전)을 지

연고. :
  전쟁 오 년에 죽음을 감수하면서 시체를 밟고 피를 건너다니며 몇 백 번이나 싸웠던가. 임진왜란에 참전한 일을 노래한 것이다.

 耕當問奴(경당문노)인

 

 :
  밭갈기를 종에게 묻는 것이 당연하나, 종이 없으니 누구에게 물을 것인가.

 아므려 갈고젼 

 쇼로 갈로손고. :
  아무리 갈고자 마음을 먹은들 어느 소로 갈 것인가? 농우(農牛)가 없음을 자탄하는 말이다.

 즐기는 - 줄을 모

다. :
  (걱정거리가 많이) 즐거운 농부들의 노랫소리도 흥없이 들리고, 세상 인심을 모르는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자연을 벗삼아 살겠다는 꿈을 꾼지도 오래더니 먹고 마시는 것이 거리낌이 되어 잊어버렸다는 말,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서 생겨난 말

 平生(평생)

 - 업노왜라. :
  평생 한 가지 뜻은 따뜻이 입고, 배부르게 먹는 것에 있지 않다. 선비로서의 삶을 성실히 살아나가려는 자세를 노래한 것이다.

 

 이해와 감상

 

 지은이가 임진왜란이 끝난 뒤 고향에 돌아가 생활하던 중에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이 찾아와 누항(陋巷) 생활의 어려움을 묻자, 자신의 곤궁한 생활상과 안빈낙도하는 심회를 답한 작품이라 전한다.  한음이 노계의 고생스런 생활상을 물었을 때, 가난하지만 원망하지 않으며 안빈낙도하는 심회와 생활상을 읊은 작품으로, 내용은 임진왜란을 겪고 난 뒤 곤궁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가난을 원망하지 않고 도(道)를 즐기는 장부의 뜻은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이웃집에 농우를 얻으려 갔다가 뜻대로 되지 못하고 돌아와 세상 일에 대한 체념적 심회를 읊기도 하고, 속세의 물욕을 떠나 청풍명월과 벗하여 대자연과 더불어 한가롭게 살아 보자는 초월적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이런 작품의 내용은 사대부의 소외되고 어려운 처지를 직시하고 현실 생활의 빈궁함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어, 조선 전기의 가사가 보여 주었던 자연 완상의 세계와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다.


 '누항(陋巷)'이란 '논어'에 나오는 말로, 가난한 삶 가운데도 학문을 닦으며 도를 추구하는 즐거움을 즐기는 공간을 말할 때 자주 사용된다. 이 시는 제목에서부터 가난하나 원망하지 않는 '빈이무원(貧而無怨)'의 경지나 자연을 벗삼아 '안빈낙도(安貧樂道)'함을 알게 해 준다. 바로 이 점에서 이 작품은 당대의 산림에 묻힌 선비들의 고절한 삶과 현실의 부조화를 직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가사에서 등장하지 않았던 일상 생활의 언어를 대폭 받아들여 생동감과 구체성을 획득하는 탁월성을 보였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작품은 자연에 은일하면서도 현실 세계의 어려움을 직시하고 그것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는 차이점을 찾을 수 있다. 즉, 사대부와의 관계에서는 어려운 한문 어구를 상징적으로 쓰면서도 농민에게 끼이지 못하는 형편을 감안,일상 언어를 대폭 사용하여 구체적이고도 절실하게 묘사함으로써 가사 문학에 현실 인식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평가되며, 특히 그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던 일상 생활의 언어를 대폭 등장시켜 생동감과 구체성을 배가한 점이 돋보인다.

 

이해와 감상1

 

 1611년(광해군 3) 박인로(朴仁老)가 지은 가사. 작자의 나이 51세 때 작품으로 ≪노계집 蘆溪集≫에 실려 있다. 이본으로 끝부분이 떨어져 나간 필사본이 전한다. 4음보 혹은 3음보를 1행으로 헤아려 총 77행이다. 작자가 이덕형(李德馨)과 교유할 때 작자의 곤궁한 생활을 묻는 데 대하여 답으로 지은 것이다.


이 작품은 누추한 곳에 초막을 지어 가난한 생활을 할 때, 굶주림과 추위가 닥치고 수모가 심하지만 가난을 원망하지 않겠다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자연을 벗삼아 충성과 효도, 형제간의 화목, 친구간의 신의를 바라면서 안빈낙도의 심경을 노래하였다.


내용에 따라 7단락으로 나누어진다. 첫째 단락에서는 길흉화복을 하늘에 맡기고 누추한 곳에서 가난하게 살려고 하는 심정을 읊었다. 둘째 단락에서는 가난한 생활에 굶주림과 추위가 닥쳤으나, 지난날 몸을 잊고 의를 좇아 7년간의 왜란에서 백전고투하던 일을 회상하였다.


셋째 단락은 몸소 농사를 짓고자 하나 농사일에 쓸 소가 없어 낙심하는 대목이다. 넷째 단락에서는 농우를 빌리러 갔다가 수모만 받고 돌아오는 정경을 그렸다. 다섯째 단락은 집으로 돌아와서 야박한 세상인심을 한탄하며 봄갈이 할 생각을 그만두는 대목이다.


여섯째 단락은 밝은 달 맑은 바람을 벗삼아 임자 없는 자연 속에 절로절로 늙기를 바라는 대목이다. 일곱째 단락은 가난하지만 원망하지 않고, 충효에 힘쓰고 형제들과 화목하며 벗들과 신의 있을 것을 다짐하는 대목이다.


이 작품에는 임진왜란 이후에 작자가 당면한 현실이 잘 나타나 있다. 사대부로서의 지위가 보장되어 있지 않고, 농민으로 살아가는 데 만족할 만한 여건을 갖추지도 못하였으므로, 양쪽에서 소외되어 있는 괴로움을 절실하게 그렸다.


표현면에서 미화된 말을 버리고 실감을 얻는 길을 열어 사대부 가사의 한계를 벗어났다. 그러나 이미 설득력을 잃은 가치관을 여전히 지향하고 있는 점은 그 한계이다.


한편, 사본으로 전하는 작품에는 ≪노계집≫에 실려 있는 작품에 없는 부분이 군데군데 첨가되어 있다. 첨가된 부분은 율격이 나머지 부분과 다르고, 부연하여 설명한 내용이 많다.

≪참고문헌≫ 蘆溪集, 改稿朴蘆溪硏究(李相寶, 一志社, 1962), 松江·蘆溪·孤山의 詩歌文學(朴晟義, 玄岩社, 1966), 蘆溪詩歌硏究(李相寶, 二友出版社, 1978), 朴仁老論(鄭在鎬, 韓國文學作家論, 螢雪出版社, 1977), 가사의 복고와 혁신(조동일, 한국문학통사 3, 지식산업사, 1984).(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해와 감상2

 

 1611년(광해군 3)에 박인로(朴仁老)가 지은 가사. 《노계집(蘆溪集)》에 실려 있는데, 작가가 이덕형(李德馨)과 교유하면서 작자의 곤궁한 생활을 묻는 것에 대하여 답으로 지은 것이다. 전체적인 내용은 누추한 곳에 초막을 지어 가난한 생활을 할 때, 굶주림과 추위가 닥치고 수모가 심하지만 가난을 원망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자연을 벗삼아 충성과 효도, 형제간의 화목, 친구간의 신의를 바라면서 안빈낙도의 심경을 노래하였다. 이 작품에는 임진왜란 이후의 작가의 현실이 잘 나타나 있는데, 사대부로서의 지위도 보장되어 있지 않고, 농민으로 살아가는 데 만족할 만한 여건도 갖추지 못하여 양쪽에서 소외된 괴로움을 그렸다.(출처 : 파스칼세계대백과사전)

 

 심화 자료

 '노계가사'에 대한 평가

 

 노계 박인로의 가사는 열정과 자구(字句)의 세련미에 있어서 송강 정철에게 일보를 양보한다 하겠거니와, 특히 그 시가의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한자나 고사성어, 전고(典故)가 너무 많이 사용된 단점이 있으나, 수사나 조어(造語)의 묘는 '송강가사'에서 보는 것과 유사한 점이 다분히 보이며, 더욱이 초기의 작품은 풍부한 어휘에 그 필자가 웅렬(雄烈)하여, 무인다운 기상이 가득차 있으며, 신선미와 기백이 잘 드러나 있다. 시가 문학사상 정철, 윤선도와 더불어 조선 시대 3대 시가인으로 꼽힌다.  

 '누항'의 의미

 

 '누항'이란 우선 박인로가 있는 곳을 가리킨다. 이곳은 세속적인 장소이며, 작중 화자가 세상의 생활을 영위하는 곳에서 안빈낙도를 하려 하기 때문에 갈등이 나타나 이중의 어려움을 겪게 되는 곳이다.  '논어'에 나오는 '누항'은 가난한 삶 가운데도 학문을 닦으며 도를 추구하는 즐거움을 즐기는 공간을 말할 때 자주 사용되는 말로 이 가사는 제목에서부터 가난하나 원망하지 않는다는 '빈이무원'의 경지나 자연을 벗삼아 안빈낙도하는 경지를 알게 해 준다. 바로 이 점에서 이 작품은 당대의 산림에 묻혀 사는 선비들의 고절한 삶과 현실의 부조화를 직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 '누항'은 이덕형이 거처하는 '사제'와 여러 모로 비교되는 곳이다. 사제는 "한강 동쪽으로 산수를 찾아가 용진강을 지나 사제 안으로 돌아들면 제일 강산이 임자 없이 버려져 있는 곳"이다. 이에 비해 박인로의 '누항'은 이덕형의 사제와는 달리 세속의 생활을 영위해야 하는 곳이고, 밥을 끓이고 매운 연기를 맡아야 하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안빈낙도하면서 살아야 하므로 노계는 여러 모로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누항'은 바로 진정한 삶의 의미인 '도'를 추구해야하는 이들에게 항상 상존하는 현실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작품 속으로

 

1.  이 작품에서 여유 있는 사대부의 대열에도, 농민의 대열에도 편입되지 못하는 소외감을 드러내고 있는 부분을 찾아보자.

 

2. 삶의 태도와 관련하여 다음 글을 읽고, '누항사'와 비교해 보자.

 

 정원을 날로 거닐며 아취(雅趣)를 이루어가고, 문은 달아 놓았지만 늘 닫혀 있노라. 지팡이에 늙은 몸 의지하여 거닐다가 쉬며 때로 고개 들어 멀리 바라보니, 구름은 무심히 산골짝 굴헝에서 솟아나오고 새는 날다 지치면 다시 돌아올 줄을 아는도다. 일광은 뉘엿뉘엿 장차 저물어 가니 외로운 소나무 어루만지며 주저주저 하는도다. 돌아와야지. 모든 사귐 그쳐 어울리지 않으리라. 세상과 내가 서로 가는 길 다르니 어찌 다시 벼슬길 구하겠는가. 친척들과 정겨운 대화를 기뻐하고 금서(琴書)를 즐기며 시름을 삭이노라. 농부 와서 봄이 왔음을 알리니 이제 서편의 밭에 할 일이 있구나. 수레를 타고 혹은 배를 저어 그윽한 골짜기를 찾아가고 높고 낮은 언덕을 지나가노라. 나무들은 기뻐 우거지려 하고 샘은 졸졸 흘러 물줄기를 이루는도다. 이렇게 만물은 때를 얻어가는데, 내 삶은 끝나가는구나. 끝났구나. 내 몸 이 땅에 머무는 것이 그 얼마일 것인가. 어찌 가고 머무름을 마음에 맡기지 않겠는가. 황황히 무엇을 하고자 하는 것인가. 부귀(富貴)는 내 원하는 바가 아니요, 신선은 기약할 수가 없네. 이 좋은 시절 즐기며 혼자서 가며 혹은 지팡이를 세워 김매고 북돋우노라. 동쪽 언덕에 올라 노래 부르고, 맑은 물에 가서 시를 지으며, 자연의 조화 따라 돌아가려 하니 천명을 즐길 뿐 무엇을 의심할 것인가.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⑴ 두 시인이 농촌에서의 삶에 대해 어떤 태도와 자세를 가지고 있는지 비교해 보자.

 

 '귀거래사'는 도연명이 관직을 버리고 전원으로 돌아가 자연을 즐기는 정취가 잘 드러난 작품이다. 도연명에게 있어 농촌은 삶의 현장이 아니라 삶의 배경일 뿐이다. 조선 전기 가사에서 볼 수 있는 음풍농월의 대상으로서 농촌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에 반하여 '누항사'의 농촌은 작자의 삶의 현장이다. 사대부의 소외되고 어려운 처지와 현실의 빈궁함 때문에 농촌은 더 이상 거리를 두고 바라보며 즐기는 곳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이루어 가는 곳인 것이다.

 

⑵ 두 작품에서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사용하는 표현 방식상의 차이를 생각해 보자.

 

 '귀거래사'는 자연 풍경에 대한 묘사에 이어 작자의 생각을 표현했다면, '누항사'는 생활 현실의 사실적 묘사에 덧붙여 작자의 생각을 표현했다.(출처 : 우한용 외 5인 공저 '문학지도서')

 

 박인로(朴仁老)

 

1561년(명종 16)1642년(인조 20). 조선 중기의 문인. 임진왜란 때는 무인(武人)으로도 활약하였다.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덕옹(德翁), 호는 노계(蘆溪) 또는 무하옹(無何翁). 경상북도 영천 출생. 아버지는 승의부위 석(碩)이며, 어머니는 참봉 주순신(朱舜臣)의 딸이다.


그의 82세의 생애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보면, 전반생(前半生)이 임진왜란에 종군한 무인으로서의 면모가 두드러졌다고 한다면, 후반생(後半生)은 독서와 수행으로 초연한 선비요, 문인 가객(歌客)으로서의 면모가 지배적이었다.


특히 어려서부터 시재(詩才)가 뛰어나 이미 13세에 대승음 戴勝吟이라는 한시 칠언절구를 지어 보는 이들을 놀라게 하였다고 한다. 31세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동래·울산·경주지방을 비롯해 영양군까지 잇따라 함락되자 분연히 붓을 던지고 의병활동에 가담하였다.


38세 때는 강좌절도사(江左節度使)인 성윤문(成允文)의 막하에 수군(水軍)으로 종군하여 여러 번 공을 세웠다. 1599년(선조 32) 무과에 등과하여 수문장(守門將)·선전관(宣傳官)을 제수받았다.
거제도 말단인 조라포(助羅浦)에 만호(萬戶)로 부임하여 군사력 배양을 꾀하고 선정을 베풀어 선정비(善政碑)가 세워지기도 했다. 그는 무인의 몸으로서도 언제나 낭중(囊中)에는 붓과 먹이 있었고, 사선을 넘나들면서도 시정(詩情)을 잃지 않았다.


그의 후반생은 독서수행의 선비이며 가객으로서의 삶이었다. 곧, 문인으로서 본격적으로 활약한 것은 은거생활에 든 40세 이후로, 성현의 경전 주석 연구에 몰두하였다.


밤중에도 분향축천(焚香祝天)하여 성현의 기상(氣像)을 묵상하기 일쑤였다. 또한, 꿈 속에서 성···효(誠敬忠孝)의 네 글자를 얻어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아 자성(自省)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만년에는 여러 도학자들과 교유하였다. 특히 이덕형(李德馨)과는 의기가 상합하여 수시로 종유하였다. 1601년(선조 34) 이덕형이 도체찰사(都體察使)가 되어 영천에 이르렀을 때, 처음 대면하여 지은 시조가 조홍시가 早紅枾歌이며, 1605년에는 선상탄 船上歎을 지었다.


1611년(광해군 3) 이덕형이 용진강(龍津江) 사제(莎堤)에 은거하고 있을 때 그의 빈객이 되어 가사 사제곡 莎堤曲〉·〈누항사 陋巷詞를 지었다.


1612년 도산서원에 참례하여 이황(李滉)의 유풍을 흠모하였고, 그 밖에도 조지산(曺芝山)·장여헌(張旅軒)·정한강(鄭寒岡)·정임하(鄭林下)·정연길(鄭延吉)·최기남(崔起南) 등과 교유하였다. 1630년(인조 8)에는 노인직으로 용양위부호군(龍衛副護軍)이라는 은전(恩典)을 받았다.


1635년에 가사 영남가 嶺南歌를 지었고, 이듬 해 노계가를 지었다. 그 밖에 가사 입암별곡 立巖別曲 소유정가 小有亭歌가 전하는데, 가사가 9편이고 시조는 68수에 이른다.
말년에는 천석(泉石)을 벗하여 안빈낙도하는 삶을 살다가 1642년에 세상을 떠났다. 영양군 남쪽 대랑산(大朗山)에 안장되었다. 죽은 뒤에 향리의 선비들이 그를 흠모하여 1707년(숙종 33)에 생장지인 도천리에 도계서원(道溪書院)을 세워 춘추제향하고 있다.


그는 비록 후반생부터 문인활동을 했지만, 그의 작품세계는 매우 풍요로워서 정철(鄭澈)에 버금가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들은 3권 2책으로 이루어진 노계집과 필사본 등에 실려 있다. 그 밖에도 많은 시가들이 있었으나 대부분 소실되었다.


비록 시조를 즐겨 지어 완전히 생활화했지만, 국문학사상 의의는 가사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의 문학적 재능도 가사에 더 잘 나타나 있다고 할 수 있다.(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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