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토 / 전문 / 이태준
by 송화은율 농토 / 이태준
1
여러 날째 강다지로 춥더니 오늘은 해질 무렵부터 싸락눈이나마 뿌린다.
들여다보는 얼굴까지 뜨겁던 억쇠 어미의 몸도 오늘은 한결 식었다. 숨소리도 편안해졌다. 어쩌면 한고비 넘기었으니 이쯤으로 돌리나 싶어 억쇠 아비는 안경알만한 유리쪽에 붙어 앉아 밖을 내다볼 경황도 생기었다.
광대뼈가 한편이 더 불거지어 이마까지 그편으로 찡기는 것이 제격인 억쇠 아비는 찡긴 이마를 문에 대고 작은 눈을 치떠 내다보나 함박눈은 되지 않고 그저 싸래기로 그것도 시원치 않게 뿌린다. 함박눈으로만 펑펑 쏟아져 준다면 억쇠 어미는 내일 아침쯤 툭툭 털고 일어날 것 같다. 그리고 안에서도 초산(初産)이라고 모두 걱정 중인 새아씨가 힘들이지 않고 순산할 것 같다.
역시 남의 집 하인의 자식이던 팔월이와 성례(成禮)나 째나 귀밑머리만 풀어 올려 데려오던 날이 함박눈이 탐스럽게 쏟아지던 날이었다. 그래 그런지 함박눈이 쏟아지는 것을 보면 늘 기뻤고 무슨 수가 생길 성싶었다. 억쇠 어미도 몸이 불덩이 같던 그제 어제 이틀 동안은 가슴을 쥐어뜯으며 헛소리처럼 눈, 눈 하고 눈을 찾았다. 어느 산꼭대기에라도 눈이 있기만 하다면 억쇠를 시켜 한 함지 담아다 그 물커질 것처럼 골매지 낀 눈에 시원히 보여라도 주고 싶었으나 송악산 위에도 아직 눈은 덮이지 않았다. 냉수나 얼음을 찾지 않고 눈을 찾는 것이 그도 스물열여덟 해 전 그 함박눈 쏟아지던 날을 잊지 않고 속 깊이 품어 온 듯하여 어서 일어나고 함박눈이나 쏟아지면 이런 것도 옛이야기처럼 하리라 마음먹었다.
바깥은 어느새 어두워 싸락눈 뿌리는 소리만 들린다.
"아버지?"
어미의 이불자락 밑에 손을 넣었던 억쇠가 눈이 둥그래졌다. 어미는 손만 아니라 이불 속에 있는 발까지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왜 이렇게 차졌수?"
"차다니?"
아비도 와 만져 보고는 다시 이마가 찌푸려진다.
'이건 또 무슨 증센구?'
그 동안이 잠깐새 같았는데 바깥 날이 꼴깍 저문 것처럼 병인의 손발도 딴판이 되어 있었다.
"여봐? 정신 좀 차리라구?"
몇 번 흔들어 보나 반나마 감긴 눈이나 반나마 벌어진 입도 아무 대꾸가 없이 숨소리만 도로 가빠지며 있었다. 억쇠더러 나가 방도 달굴 겸 물을 데워 오래서 병인의 발을 더운 물에 담가 놓고 주물러 본다. 발은 뒤축이 보름 지난 설떡 갈라지듯 했다. 겨울에는 이렇게 뒤축이 터지어 절름거리고, 여름이면 발가락 새가 짓물러 절름거리던, 평생을 편안한 걸음이 없던 발이었다.
"아비 게 있니?"
문 밖에서 노마님의 목소리가 난다. 억쇠 아비는 후닥닥 일어서기부터 한다. 앉아서 대답이란 평생 해본 적이 없는 버릇이다.
"네."
"문 열지 말구."
그러나 병인의 머리맡에 외풍 풍기는 것쯤 가려 노마님 앞에 방 속에서 말대꾸를 할 수는 없다.
"문 열면 안 된대두. 이 미욱스런 녀석아, 내 그런 꼴 보겠다니?"
하마터면 내어밀 뻔한 문고리를 섬쩍 놓으며 그제야 억쇠 아비는 노마님의 문 열지 말라는 뜻을 알았다. 노마님의 말씀대로 역시 저는 미욱한 놈이었다.
"뭘 좀 입에 퍼넣어 보았니?"
"넣는 대루 토하는걸입쇼."
"몸은 그저 끓구?"
"손발은 써―늘하게 식었사와요."
"써―늘해?"
"네, 그래 물을 덥혀다 발을 좀 씻겨 보드랬습죠."
"엥이 배라먹을년 같으니……."
억쇠 아비는 억쇠 어미가 무슨 트집으로나 앓는 것처럼 노마님의 꾸지람이 지당한 듯, 들렸던 고개가 절로 수그러진다.
"딴 무슨 증센 없구?"
"아까 점심때 못 돼선뎁쇼."
하는데 억쇠 녀석이 아비를 꾹 찌른다. 그러나 아비는 주인 앞에 손톱만한 것이라도 기어서는 못 쓰는 줄 안다.
"아까 뭐란 말이냐?"
"한참 몸이 달었을 땐뎁쇼. 콧구멍으로 회가 한 마리 나왔사와요."
"회충이?"
"크진 않사와요."
"배라먹을년 갖은 부정 다 떠는구나. 엥이…… 그래 그 게구 싸구 했다는 것서껀 어떡했느냐?"
"마냄 말씀대루 그냥 뭉쳐 이 구석에 뒀사와요."
"내가 내다 빨어두 괜찮다구 헐 때까지 방문 밖에 내놔선 안 된다."
"네."
"온 집안이 목욕재계허구 기다려야 헐 경사에 이게 도무지 무슨 부정이란 말이냐!"
"다시 이를 말씀이와요!"
"아무리 병이기루 고렇게 얌체없는 년은……."
억쇠 아비는 이마를 찡기며 손이 절로 뒤통수로 올라갔다.
"게 억쇠 녀석두 있지?"
"있사와요."
"밤에 말이다, 밤으루 무슨 일이 있어두 말이다?"
"네."
"알어들었니? 무슨 변이 생기드라두 말이야?"
"네."
"울음 소리 아예 내선 안 되구."
"……"
"안으로 덥석 뛔들지 말구, 부엌 뒤루 와서 아비가 날 넌즈시 찾어라."
"설마 무슨 일이 있을깝쇼, 횟밴가 본뎁쇼."
"예끼 미욱헌 녀석…… 엥이 방자스러운 년……."
노마님은 혀를 몇 번이나 차면서 안으로 들어가는 모양이었다.
억쇠 아비도 횟배 아닌 것쯤은 모르지 않으나 마님들께서나 나릿님께서 걱정하는 것이면 어찌 되었든 덜어 드리려는 버릇에서였다.
아비는 다시 병인의 발치가래로 왔으나 억쇠는 일어섰던 자리에 그냥 삐죽 서 있었다. 노마님의 말을 듣고 보니 어미의 손발 식는 것이 심상치 않은 것 같았고 죽더라도 울음 소리 한마디 내어서는 안 된다는 말에 한 대 얻어 박힌 것처럼 콧등이 찌르르해진 것이다.
그까짓 어미 한두 번 아니게 남부끄러운 어미였었다. 이름도 사람 같지 않게 팔월에 낳았다고 '팔월이.' 누가 보는 데서나 안에서 '팔월이' 소리만 나면 그것이 어른이 부르든 아이가 부르든 '네에' 소리를 길게 빼면서 신 뒤축도 밟지 못하고 달려 들어가는 꼴. 같이 놀던 아이들이 저게 너희 엄마냐? 물으면 말문이 막히어 동무들이 찾아오는 것도 겁이 나던 어미. 얼른 죽어 없어지든지 제가 어서 커서 어디로고 달아나 버리기를 얼마나 바라 왔던가. 그런 어미 열 번 없어지기로 눈물은커녕 헛소리라도 곡(哭)을 하고 상제 노릇을 하랄까 보아 걱정일 것인데 정작 제 어미 제 계집이 죽더라도 울음 한마디 내어서는 안 된다는 분부엔 어린 속에도 다른 때, 열 번 꾸지람이나 열 번 얻어맞던 것보다 더 야속하게 저리었다.
"저 새낀 앉아 에미 손이나 좀 못 주물러 준담?"
"손발이나 주물른다구 낫는답디까?"
"어떡허냐 그럼."
아비는 그 흔한 약 한 첩 못 써보는 것에나 계집이 죽더라도 곡성 한마디 내어선 안 된다는 분부에 아무런 불평도 노염도 없는 듯하였다.
택호(宅號)만은 그전대로 '윤판서댁'으로 불리어지는 이들의 주인은 조선이 망한 후 세도는 없어지고 씀씀이만 과해 가는 서울 살림에 쪼들리기만 하다가 대감마님 돌아가 삼년상을 치르고는 이 집의 전장(田庄)이 아직 반은 남아 있는 황해도로 낙향한 지 이미 사오 년 된다. 낙향이라야 황해도로는 나릿님(돌아간 윤판서의 아들)만이 소실을 데리고 가서 감농을 하고 있을 뿐 도련님(나릿님의 아들)의 학교 공부를 위해 정작 본살림은 중간 개성에다 차린 것이었다.
이 주인댁 개성살림 덕에 억쇠는 서울서처럼 잔심부름이 고되거나 아주 농토 옆에 있는 것처럼 거친 일에 부대끼지는 않는다. 도련님의 더운 점심 나르느라고 여러 해 학교 마당에 드나들어 어깨너멋글로 언문과 일본 '가나'는 제법이요, 한문 글자도 웬만한 편지 봉투쯤은 뜯어 보게 눈이 트였고 일이라야 앞뒤 뜰안 쓰레질뿐 잔심부름 한 가지도 없는 날도 있다. 도련님은 종일 학교에 가 있고 저희 아비는 추수 때면 한두 달씩 '가재울'이라는 황해도 시골댁에 가 있을 뿐 아니라 다른 때도 노상 개성과 가재울 사이에서 있게 된다. 개성집에는 낮에는 억쇠 하나가 사내일 경우가 많아 주인댁에서는 억쇠를 개나 한 마리 기르는 것처럼 번둥번둥 놀리고 먹이는 것이며 억쇠는 일은 없고 심심해서도 도련님이 보다 버린 것이면 책이든 신문이든 주워다 읽기도 한다. 일년 삼백육십일 하루같이 '배라먹을년', '미욱한 녀석' 소리를 듣다가도 단 한 번을 '그래두 내 밥 먹고 자란 저것들을 믿지, 남을 어떻게 믿고 집안에 두군 부려' 한마디가 당상에서 떨어지면 개처럼 꼬리가 없어 흔들지 못하는 것만 한이 될 뿐, 이 주인댁을 위해서는 뼈라도 갈아 바치고 싶어하는, 제 자신의 벌이라고는 한 토막 없이 자랐고 굳어 버린 팔월이와 억쇠 아비 천돌이었다.
더욱 저희 자식 억쇠가, 시골 웬만한 도련님 자리보다 더 매낀한 손길로 책장이나 넘기며 자라는 것이 누구에게나 입이 마려워 안 꺼내고는 못 배기는 자랑거리요, 한편으로는 그것이 주인댁에 견딜 수 없이 송구스러웠다.
병이란 돌림이란 것이니 사노라면 어찌나 한번 차례에 올 법하고 걸린다고 다 죽는 것도 아니며 또 약을 쓴다 해서 다 사는 것도 아니다. 의원을 부른다, 화제(和劑)를 낸다, 모두가 있는 사람들 치다꺼리지 무슨 소용인가? 약 쓰는 사람들은 더 잘 앓고 더 잘 죽더라, 다 타고난 명수대로 살다 가는 것을 약 못 쓴다고 탓해 무엇 하랴, 다만 억쇠 어미가 하필 방정맞게 주인댁에 산경(産慶)이 있을 무렵에 눕게 된 것만, 암만해도 저희 내외가 주인댁에 정성이 부족한 표만 같아 얼굴을 들 염치가 없다. 산경이라도 이만저만이 아닐 삼대독자 도련님이 작년 가을에 장가드신 그 새아씨의 첫 산경이었다. 태기 있어 그달부터 태점을 치신다, 절에 수명장수를 빈다, 행여 무슨 동티라도 날까 보아 이 댁 식구들은 초상집에나 제삿집 같은 데는 발그림자도 얼씬하지 않은 지 오래다. 이런 서슬에 오늘일까 내일일까 해서 산파와 의사가 조석으로 드나드는 판인데 억쇠 어미가 누운 것이다.
"엥이, 방정맞인 거 어느 때 못 앓어서……."
더운 물을 다시 떠다 아무리 담가 보고 발바닥을 문대 보아도 발은 자꾸만 식어만 간다. 숨도, 인젠 명치끝에서만 발닥거릴 뿐 헤벌룽해진 콧구멍에선 숨기도 제대로 나오지 못한다.
"이거, 일나지 않었나 이거, 정신 좀 못 채려?"
병인은 벌써 귀부터 이 세상 것이 아닌 듯했다.
"제―길헐! 하필 날이나 받었단 말인가!"
억쇠 아비는 죽는 사람 불쌍한 것이나 저 홀아비 될 걱정보다도 주인댁 귀한 며느님 몸 푸시는데 행여 무슨 부정이나 끼쳐 드릴까 보아 그것부터 겁이 난다.
그러나 사십 평생 약이라고는 피마자 기름 아니면 소금물밖에 먹어 보지 못하였고 이번에도 호렴 녹인 물 두어 모금 마셔 본 것만으로 병세 도지는 대로 몸을 맡겨 버린 팔월이는 다만 '돌림'이거니 할 뿐 무슨 병인지 알아볼 필요 없이, 한 마리의 짐승이나 혹은 생사를 초월한 성인(聖人)처럼 묵묵히 죽음에 들고 말았다.
울음 소리 내서는 안 된다는 노마님의 말씀이 천만지당한 줄 알면서도 억쇠 아비는 입이 걷잡을 수 없이 뒤틀렸다. 꺽꺽 두어 마디 치받히는 올각질 같은 것을 억지로 삼키면서,
"이 새끼 잠작구 있어 괘니……."
하고 자식부터 돌려 보았다. 억쇠는 울기는 고사하고 죽은 어미와 이런 꼴의 아비를 발길로 지르기나 할 것처럼 새파랗게 노려보는 눈이었다.
아비는 그저 뒤틀리는 턱주가리까지 눈물이 찔찔 흘렀다. 눈물을 아무리 문대고 들여다보아도 억쇠 어미는 숨이 끊어진 것이 틀리지 않다. 이러고는 앉았을 수는 없다. 감기 든 코처럼 저리고 빽빽한 것을 손바닥으로 으깨 문대기면서 방을 나서는데 대문 밖에서 인력거 오는 소리가 난다. 어제도 안에 다녀간 이 댁 단골 의사 박의사였다. 억쇠 아비는 걸음을 멈추었다. 억쇠 어미 죽은 것을 안에 알리기 전에 박의사가 들어서는 것은 박의사가 억쇠 어미를 살려 놓기 위해 나타난 것 같았다. 얼른 박의사의 앞으로 내달으며 허리를 꾸벅한다. 손만 후들거릴 뿐, 말이 나오지 않는다. 또 입이 뒤틀리며 울음부터 엄살처럼 쏟아진다.
"자네 왜 이러는가?"
"억쇠 어미요니까……."
"참 앓는다구 안에서들 걱정하시드니?"
"그게 그만 죽었사와요……."
"그래? 그거 안됐군!"
"좀 살려 주세요니까……."
"거 안됐네그려!"
"한 번만 봐주세요니까…… 무슨 짓을 해서라도 그 은혜는 갚죠니까……."
"아니 죽었다면서?"
"그래두 한 번만 봐주세요니까……."
"죽은 것도 살리나? 비키게."
하고 박의사는 억쇠네 방문 앞을 성큼성큼 지나 중문간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억쇠 아비는 우두커니 섰다가 비실비실 안채 부엌 뒤로 오고 말았다. 죽은 계집 초혼이나 부른 듯 끼르륵 소리 나는 목을 늘여,
"노마님?"
"노마님?"
불렀다. 노마님은 세 마디 안에,
"알었다."
대답을 했다.
노마님은 죽은 팔월이를 위해서는 선선히 주머니끈을 끌렀다.
"얼른 가 권생원 오시래라. 그리구 그 길루 드퉁전에 가 문을 뚜드려서라두 베 한 필 끊어 갖구 뛰어오너라. 배라먹을년 여태 있다 하필 어느 날 못 뒈져서……."
권생원이란, 이 댁 땅에 도지 없이 삼포(蔘圃)를 내고 이 댁 바깥일은 도맡아 보아주는 체하면서 저는 이 댁에서 이 집을 지을 때도 팔구천 원이나 돈을 대고 매년 변리만 팔구백 원씩 또박또박 따가는 자다. 이 권생원은 십 분 안에 나타났고 다시 삼십 분 안에 들것 든 상두꾼들을 데리고 왔고 그래서 안에서 새아기 울음 소리 떨어지기 전에 팔월이 시체를 담아 내어 이 댁 주인들의 신망을 더 두터이하기에 성공하였다.
수철동 공동묘지는 멀지 않았고 땅도 아직 깊이 얼지는 않았다. 죽어서 드는 집도 살아서 드는 집과 마찬가지였다. 능원(陵園)은 고사하고 평인의 무덤이라도 제격대로 차리자면 칠일장이니 구일장이니도 바쁘다는 것이지만 손익은 상두꾼들이 관도 없는 들것송장 하나쯤 한 짐 장작불이 다 타기 전에 묻어 버리는 것이었다. 하늘도 팔월이에게는 박한 듯 그의 마지막 시선 위에는 함박눈은 아끼었고 싸락눈마저 걷히면서 무심한 별들만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갑자기 묘표(墓標)할 것도 마련하지 못하여 불붙던 장작 한 개비를 박아 표를 하고 들어왔다.
주인댁 솟을대문은 더구나 부정을 꺼리는 때라 굳게 닫혀 있었다. 앞을 섰던 아비는 주춤 물러가고 억쇠가 나서 두어 번 삐걱거려 본다. 아비는 그렇게 하는 것이 잠든 마님들의 어깨나 흔드는 것같이,
"이 새끼야, 가만 못 있어?"
하고 윽박는다. 어미가 살았을 때 같으면 벌써 나와 열어 주었을 것이었다. 가만 있으니 발만 더 시리어 억쇠는 견디다 못해 다시 나서 덜컹덜컹 흔들어 댔다. 그제야 노마님의 기침 돋우는 소리가 나왔다.
"아비냐?"
"네."
"왜 요란스럽게 굴어, 이 미욱헌 놈아?"
"……"
"이것 받어라."
대문을 여는 것이 아니라 문틈으로 지전 한 장을 내어미는 것이었다.
"들어올 생각 말구 이 길루 가재울로 내려가거라."
"새아씨께서 몸 푸셨사와요?"
"부정한 주둥이 다물구 있지 못해?"
"……"
"내려가서 나릿님께 손주님 보셨다구 순산이라구 여쭤라. 그러구 같은 밤이라두 팔월이년은 자정 전에 갔으니까 날짜가 다르구 시신두 자정 안으로 내갔으니 안심허시라구. 그리구 너이 부자는 삼칠일 지나두룩 올러오지 말구 게 있거라."
"네."
"냉큼 정거장으로 나가거라."
"네, 그럼 마님 다녀옵죠."
밤은 길기도 했다. 정거장에 나와서도 차 시간은 멀었는데 춥기만 하다. 속시원히 울 수가 있기는 날이 밝기나 주인댁에 들어가기보다 차라리 나았다. 아비가 끽끽거리고 울음을 터트리는 바람에 억쇠도 어미 묻을 때 보던 샛별들을 쳐다보며 시린 손등으로 눈물을 문대기곤 했다.
2
차 안은 훈훈했다. 몸이 풀리기가 바쁘게 억쇠는 모든 것이 꿈인가 싶고 졸음부터 쏟아진다. 그러나 내릴 정거장이 고대라 한다. 잠을 쫓느라고 두리번거리다가 억쇠는 건너편 자리에 순사가 앉았고 그 옆에는 손목에 맹꽁이 쇠를 차고 팔죽지는 포승줄에 묶인 죄인이 졸고 있는 것을 보았다.
'잡혀가면서도 잠이 오는 걸까?'
처음에는 그런 생각에서 유심히 보았으나 나중에는,
'무슨 죄를 진 사람일까?'
하고 엄마 얼굴과 그 죄인의 얼굴이 한데 뒤섞여 돌아가다가 깜빡 졸아 버리곤 하는 머리를 흔들어 다시금 죄인을 살펴본다.
깎은 지가 오래여 수염은 꺼시시하나 이마가 넓고 귓부리가 두툼해 보이는 것이 도련님이 다니는 송도중학의 어느 선생 비슷한 얼굴이요, 양복도 꾸기기는 하였으나 신사복이다. 아무리 보아도 도적질이나 노름꾼 같지는 않다.
'무얼 허다 잡힌 사람일까?'
억쇠는 짐작이 서지 않는다. 어쩌다 안에서 보고 버리는 신문에서 황군(皇軍)이 태원(太原)을 점령했으니 상해(上海)서 격전중이니 하는 작년(1937)부터의 지나사변(支那事變)에 관한 기사는 전쟁이라는 흥미에서 유심히 읽어 보곤 하였지만, 이삼 년 전부터 흥남(興南) 노조 적색사건(赤色事件)이니, 명천(明川) 농민 반제투쟁이니 작년까지도 꽤 큰 제목으로 나던 원산철도국 노조 적색사건과 공산주의자협의회사건 같은 것은 다른 기사들을 모조리 읽고 난 다음 심심해지면 다시 집어다 읽어 보는 때가 있기는 했으나 머리에 남길 만치 내용에 끌리었거나 흥미를 느낄 수는 없었다. 더구나 최근 이삼 년간에 조선서 일어난 소작쟁의(小作爭議)는 거의 만여 건이나 되어, 신문에 한두 제목씩 나지 않는 날이 별로 없기 때문에 '소작쟁의'라는 것은 천기예보와 마찬가지로 신문에는 으레 나는 것으로 여기었을 뿐, 이것에는 아무 관심이 없어 온 것이라, 이런 도적도 노름꾼도 아닌 것 같은 죄인에서 억쇠는 그들에게 어울릴 다른 죄목을 연상할 수 없었다. 다만 잡혀가면서도 태평스럽게 졸고 있는 것만 이상스러웠다.
'잠이란 저다지 못 견디는 걸까? 사람은 그렇게 잠자코 죽는 걸까?'
억쇠 부자가 이내 토성서 갈아 타고 배천온천서 내리었을 때는 늦은 조반때가 훨씬 지났다. 돈이라고 남은 것은 콩엿 한 반대기를 사니 그만이었다. 이것을 우물거리며 늘어진 이십 리 길을 걷는데 억쇠는 생전 처음인 시골길이 무섭지 않고 재미나기도 했다.
서울서 낳아 열 살까지 동대문 밖 한번 나가 보지 못하고 행랑 뒷 골목에서만 자란 억쇠는, 개성에 와서 비로소 쌀을 나무에서 대지 않는 것을 알았거니와 여기는 개성보다도 맨 논이요 밭들이다. 그리고 서울서는 산 꿩이란 동물원에 가둔 것이나 보았는데 이 밭머리 저 산기슭에서 임자 없이 날아다니는 것이 신기했다. 그러나 길녘과 바로 사람 사는 집 뒤에도 널려 있는 무덤들이 지난 새벽에 엄마를 묻고 오는 억쇠의 눈에는 시골은 온통 이 공동묘지처럼 역시 무서운 편이어서 정이 들 것 같지 않았다.
'저렇게 많은 논과 밭들이 다 임자가 있을까?'
'왜 사람들은 서울 가서 벌어 먹지 이런 쓸쓸한 시굴서 농사나 짓구 사는 걸까?'
억쇠는 정거장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투정이라도 부리고 싶게 산밑으로만 들어가는 것이 서글퍼졌다.
동네에 다다라 보니 서글픈 생각은 한층 더했다. 맨 오막살이뿐이요, 맨 살이 거칠고 헐벗은 사람뿐이다. 오직 한 채 기와집인 주인댁 뜰안에 들어서니 마루 끝에 나서는 나릿님이 역시 비단옷이요, 기름이 번지르르한 하이칼라 머리였다. 절로 허리가 굽실 구부러졌으나 나릿님께서는 배고프겠구나 말 한마디는 고사하고 그 살이 올라 가늘어진 실눈 한번 아는 체 던져 주지 않는다. 며느리가 아들을 순산하였다는 말에는 고의춤에 꽂았던 손을 뽑으며 입이 히죽이 열리었으나,
"그런데 그만 저것 에미가 엊저녁에 죽었사와요."
소리에는 멍―해서 한참 듣기만 하더니,
"망헌년 그게 무슨 요망스런 죽엄이람! 그래 산고 있기 전에 내다 치웠단 말이지?"
하고 역시 그것부터 캐어 물었고 눈초리 새포름한 아씨자리는 유리쪽으로 말끔히 내다볼 뿐, 억쇠 아비가 두 번씩이나 굽신거려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큰댁 며느님의 아들 순산이란 기별도 이 아씨께서는 자기의 어느 멧소(작인에게 빌려 주고 해마다 쌀로 세를 받는 소)가 새끼 낳았다는 기별만 못한 것 같았다.
머슴 있는 방, 웃방이 억쇠 아비가 오면 드는 방이었다. 웃방이라 해도 방은 개성보다 설설 끓었다. 머슴이 조석으로 소 여물을 쑤기 때문에 억쇠는 저희 방 군불 걱정은 없었고 그 대신 저녁마다 안에서 켜는 남포에 기름 넣고 등피 닦는 것이 새 일이 되었다.
이 남포 때문에 억쇠는 생전 처음으로 칭찬도 들어 보았다. 주인 나릿님의 세 번째 소실인 여기 마님은 젊기도 했으려니와 성미가 꽤 까다로워 머슴꾼이나 부엌데기를 시켜 닦은 등피는 한 번도 마음에 든 적이 없는 듯했다.
"난 여기 와서 처음으로 잘 닦은 등피에 불을 켜본다. 속이 다 시원허구나! 너 개성 가지 말구 여기 있으면서 등피나 닦어라."
이 젊은 마님은 차츰 억쇠가 좋아지는 다른 까닭도 있었다. 서울서 자란 하인의 자식이라 말씨가 공손해 시골 아이들보다 부릴 맛이 있는 것이었다. 더구나 억쇠 아비는 '마냄'으로 부르는데 억쇠는 '아씨'로 불러 주는 것이 자기의 젊음을 나릿님한테 일깨워 주는 것 같아 속으로 더 탐탁했다. 그리고 나릿님이나 이 아씨나 다 함께 술 생각이 난다든지 고기 생각이 나더라도 인젠 장날 장꾼 편이나 기다리고 있지 않아도 좋았다. 발이 잰 억쇠는 고기나 생선이나 술심부름을 배천읍에 내보내더라도 아침에 보내면 점심참에는 대어 들어왔고, 점심 먹다 생각나 내어보내면 이날 저녁은 틀림없이 먹고 싶은 것을 차려 먹을 수가 있게 되었다.
잔심부름을 시켜 버릇 하니 억쇠는 나릿님이나 아씨방의 남폿불보다 그들의 식성을 돋우는 데 더 요긴한 존재였고 더구나 무시로 달여가고 있는 보약 풍로도 아씨 자신이 지키고 있지 않아도 약을 넘길 걱정이 없어졌다.
이렇게 아씨는 자기에게 달가우니 광목으로 바지저고리 한 벌을 두툼히 해 입히었고 머슴이나 부엌 사람도 저희들의 일이 덜리니 억쇠에게 고맙게 굴었다.
억쇠 자신도 이런 것말고라도 시골이 차츰 좋아졌다. 처음에는 동네 아이들에게 제가 먼저 쭈삣거리었으나 차츰 눈치를 채고 보니 여기 아이들은 도리어 저한테 쭈삣거리는 것이었다. 개울 밑엣집 점둥이도 저희 댁 땅으로 사는 집 아이였고, 동네 초입인 노마란 아이도 길터까지 저희 댁 땅이었다. 그들은 옷주제도 저만 못했고 저를 뒷집 하인의 자식으로 깔보려기는스레 도리어 저를 저희들의 지주댁 마름이나처럼 위하려 들어, 장날 같은 날 읍에서 억쇠가 사는 것이 많으면 그들은 다투어 서로 들어다 주는 것이었다.
아이들만도 아니었다. 어른들도 차츰 억쇠를 요긴하게 알았다. 경답(서울 사람의 땅)이 후하다는 것도 옛말이요, 타작에 북데기 떨이까지 한몫 끼는 것이나, 장리쌀 이자에 사정 없기나, 모두가 지금 지주들과 다를 것이 없는데다가 서울 양반이랍시고 거드름만 부리어, 번쩍하면 말씨를 빼먹지 못했느니 인사성이 없느니 하고 꾸지람만 내리는 통에 작인들은 나릿님이나 아씨 앞에 나서면 먼저 주눅부터 들어 할말도 제대로 못 하는 수가 많다. 그러나 장리쌀 한 말을 먹으려도 지주댁이요, 장날 권생원을 만날 때까지는 단돈 일 원을 돌릴 데도 이 지주댁밖에 없으니 동리 사람들은 이 나릿님과 아씨의 눈치를 살펴야 할 일이 자연 한두 번 아니다.
나릿님이나 아씨로도 그러했다. 고단하면 점심때까지도 자리 속에 누웠는데 눈치없이 창 밑까지 기어들어와 기웃거리며 찾는 데는 질색이다. 작인들이 입에 서투른 서울 말씨를 지어,
"나릿님 계셔와요?"
"마님 계셔와요?"
하더라도 나릿님이나 아씨께서는 그들에게 대꾸하지 않고 먼소리로 억쇠부터 불러, 억쇠 이외에는 근접을 시키지 않고 억쇠의 전갈을 듣기로 하는 것이다. 이래서 가재울 사람들은 나릿님이나 아씨에게 청들 일이면 먼저 억쇠, 억쇠 하고 억쇠를 찾게 되었다. 억쇠는 가재울에 온 지 며칠 안 되어 얼마 고갯짓을 해도 괜찮을 지체에 올라섰다. 더구나 상전 앞이라면 뼈대 없이 설설 기기만 하여 저까지 절로 그 본을 뜨게 하는 아비와 떨어지는 것으로도 억쇠는 가재울이 개성보다 더 좋아졌다.
3
봄이 되니 시골 사람들은 서울 사람들 몇 배 바빠하는 것 같았다. 억쇠가 알기로는 서울이나 개성서는 겨울 동안 밀린 빨래 때문에나 바빴고 장이나 담고 조기를 들여다 젓이나 담고 굴비나 말리면 고작인데, 시골서는 그 넓은 땅들을 한번 마당 쓸듯 쓸기만 하려도 큰일인 것을 모조리 갈아 헤쳐야 하는 것이요, 돌을 추려 내고 덩어리 흙을 깨야 하는 것이요, 거기다 거름을 져내고 씨를 뿌리고 물길을 에워 내고 개천 옆으로는 둑막이를 하고 그 중에도 못자리 같은 것은 아직 뼈가 저린 물에 들어서서 방바닥 고르듯 공을 들이는 것이다.
들판에서 사내들만 바쁜가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젊은 아낙네들은 밭으로 논으로 더운 점심과 곁두리를 지어 날라야 했고, 등 꼬부라진 할머니들까지 씨앗 바가지를 들고 울 밑과 밭살피로 다니면서 여러 가지 씨를 묻었다.
버들가지를 틀어 헌다하게 피리를 만들어 부는 처녀들도 분꽃씨니 꽈리씨니 조롱박씨니 하면서 울 밑과 장독대로 골독하게 돌아다녔다. 모두들 흙이기만 하면 한뼘 땅도 그냥 두지 않았다. 온 땅에 뿌리고 묻고 하는 씨앗으로 나가는 곡식만 해도 엄청난 것이었다.
'저렇게 아까운 것을 내버리듯 했다가 나지나 않는다면 어떡헐 건가?'
억쇠는 걱정스러워 보였으나 시골 사람들은 사람끼리는 못 믿어도 땅에는 아끼지 않고 묻었다.
억쇠 자신도 이해 봄에는 처음으로 흙에 손을 대어 보게 되었다. 서울 창경원(昌慶苑)에 꽃구경 갔던 주인아씨가 화초 여러 가지를 사온 것이다. 안 뜰안에 둥그렇게 하나, 뒤 뜰안 장독대 곁으로 네모지게 하나, 화단을 묻는 것은 아씨가 총찰하는 대로 억쇠가 사흘이나 걸려 만들었다. 감자처럼 생긴 달리아는 움이 벌써 개구리눈처럼 불거진 것이지만 구근(球根) 아닌 다른 꽃씨들은 베개에서 새어 나온 모밀깍지처럼 아무 무게도 습기도 없는 것들이었다. 이런 것에서 싹이 트고 꽃이 피리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땅은 요술쟁이 같았다. 그런 바람에도 날려 버리던 빈 쭉정이 같던 씨앗들을 벌레처럼 움직여 놓은 것이었다. 묻은 지 열흘이 안 되어 덮인 흙은 금이 나고 무엇이 갸웃 하고 내다보듯 군데군데 떠들렸다. 이 위에 하룻밤 가는비가 뿌리더니 어떤 것은 새 주둥이처럼, 어떤 것은 콩짝처럼 흙을 떨고 올려 솟았다. 꽃을 피울 것이나 열매를 맺을 것이나 싹이란 싹은 밭에서고 논에서고 울 밑에서고 이쁜 주둥이들이 솟아 일제히 소곤거리는 것 같았다. 농군들은 그 투박한 손으로도 이 어린 싹들을 쓰다듬기나 하는 것처럼 아끼고 끔찍이 여겼다. 암탉은 어리 속에서 병아리를 품고 있지만 함부로 나다니며 새싹을 쪼아 버리는 수탉 그놈만 단속을 하면 싹트는 시골은 오직 소곤거림과 귀여움뿐 큰소리 한마디 날 리가 없을 것 같았다.
소곤거림과 귀여움은 흙에서 솟는 푸샛것만도 아니었다. 하루 억쇠는 나릿님의 술안주로 물고기 사냥을 나섰다. 점둥이네 반두를 얻어 가지고 앞개울서부터 돌을 들추며 칙바위골로 올라왔다.
물에는 송홧가루가 미숫가루 뜨듯 했다. 가만히 반두를 대고 돌을 들추면 버들치와 날메리 아니면 가재 한두 마리라도 나온다. 아씨께서 봄 가재는 지지면 자기 낭자에 꽂힌 산호 뒤꽂이처럼 붉은 것이 곱거니와 국물이 달아 입맛이 난다 했다.
한참 돌만 들추고 물 속만 들여다보노라면 아직 발도 시리고 허리도 아프다. 앉기 좋은 바위에서 허리를 펴고 발을 말리노라니,
'시굴은 참 좋구나!'
생각이 절로 솟는다. 진달래는 한물 이울어 물에도 낙화가 떠내려오는데 양지쪽 산기숲의 나무 끝마다에는, 솟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뿌리는 것처럼 반짝이는 속잎들은 어찌 보면 잔잔한 물결도 같다. 새끼 친 멧새들이 쫑쫑거리고 그 연둣빛 파도를 잠겼다 떴다 하며 난다.
동네에서 꽤 멀리 올라왔다. 점둥이 누이 을순이 또래들이 보았으면 눈이 빨개 덤빌, 물 잘 오르고 굵은 버들이 낫이 있다면 단으로라도 베게 있다. 억쇠는 한 가지 꺾어 비틀었다. 소리는 나나 여기 아이들처럼 가락을 넣어 불 수는 없다. 물에 던져 버리고 건너편 산기숲만 바라보노라니 그 연둣빛 파도 밑으로는 사람도 하나 지나간다. 벌써 누구네인지 점심 고리를 이고 밭으로 가는 아낙네였다.
문득 죽은 엄마 생각이 난다. 엄마며 아버지며 아들이며 흙내 구수한 밭머리에 물러앉아 샘물을 바가지로 떠 나르며 먹는 점심은 천렵처럼 즐거울 것 같았다.
'나도 나대로 살어 보았으면! 점둥이네나 장근이네처럼 남의 땅이라도 얻고, 오막살이라도 우리집에서 내 농사를 짓고 살어 보았으면!'
가만히 바위 밑을 내려다보니 배에 자갯빛이 번쩍 하는 무당치리 한 마리가 늘름 나왔다 들어간다. 혼자서는 반두를 대고 한 손으로 움직일 수 없이 큰 돌이다. 가슴이 뚝딱거리나 어쩌는 수 없어 쿵, 쿵, 돌을 굴려만 보는데, 자지러지게 가락을 넣어 부는 피리 소리가 물레방아 쪽에서 내려온다. 억쇠는 길로 뛰어올라왔다. 무당치리보다 더 새까만 눈을 가진 기집애다. 을순이보다는 크긴 하지만 벌써 내외를 하려는 것처럼 길을 한옆으로 빗대며 달아나려 한다.
"얘?"
억쇠는 길을 막았다.
"너 저기 가 반두 한 번만 잡어 다우?"
얼굴이 빨개지며 말끔히 쳐다만 본다.
"그게 뭐냐?"
억쇠는 그 애가 이고 가는 다래끼 속에 무엇이 들었나 궁금했다.
"이게 무슨 나물이냐?"
"송화두 모르구!"
붉어진 얼굴과는 딴판이게 야무진 목소리다. 입이 동그랗게 열리며 뺨에 볼우물도 동그랗게 패는 아이다. 한 손에는 미나리를 줌이 벌게 뜯어 들었고 한 손에는 그리 굵지 못한 피리채를 꺾어 들었다.
"그까짓 거! 저긴 굵은 게 얼마든지 있는데……."
"굵기만 험 되지 소리가 나는 것두……."
억쇠는 할말이 막혀 길을 비키었으나 소녀는 넌지시 개울 아래를 내려다본다.
"반두 한 번만 잡어 다우?"
"……"
"큰 무당치리 잡어 주께."
소녀는 길 아래위를 둘러본다. 다시 동그란 눈으로 억쇠를 쳐다보더니 머리에서 다래끼를 내려놓는다. 그리고 개울로 내려와 짚세기를 벗고 물에 들어서 준다.
소녀는 반두를 대어 주고 억쇠는 끙끙거리고 돌부리에 손을 넣어 한머리를 번쩍 들었다 놓았다. 벌컥 내밀리는 흙탕물 속에서 들리는 반두 바닥에는 무당치리만 뛰는 것이 아니라 꺽지도 그만한 놈이 하나 뛰었다. 억쇠는 좋아서 반두를 받아 들고 보니 소녀는 물탕이 튄 치맛자락을 쥐어 짜고 있었다.
"많이 젖었니?"
소녀는 대답 대신 얼굴을 저으며 분명히 웃어 주었다. 억쇠가 도리어 우둔이 들려 화끈하는 얼굴을 돌렸다. 그리고 버들가지를 꺾어 그 애 때문에 잡은 고기뿐 아니라 다른 것도 서너 마리 굵은 것으로 골라 끼어 가지고 길로 올라서니 소녀는 벌써 다래끼를 이고 소고삐 서너 기장은 걸어 나갔다.
"얘?"
소녀는 돌아다본다.
"이거 주께."
소녀는 역시 입엔 웃음을 띠고 다래끼를 인 채 동그란 얼굴을 두어 번 저었다.
그래도 억쇠가 달려오니까 소녀도 뛰어 버린다. 멧새와 달리 쫓아가기만 하면 단숨에 붙들 것이나 억쇠는 그 애가 이쁘면 이쁠수록 수줍어졌다.
'저 애가 누굴까?'
소녀는 멀찌감치 가 돌각담 모퉁이에서 돌아다본다. 확실히 생글거리는 그리고 뱅글뱅글 돌아가는 것 같은 동그란 얼굴이다. 땅에서 솟는 꽃순보다도 멧새나 무당치리보다도 더 마음을 끄는 아이다. 이런 소녀는 이내 돌아서 사라지더니, 그 꾀꼬리처럼 자지러지는 가락으로 피리 소리를 보내었다.
봄은 잠깐새 여름이 되었다. 그 푸샛것들은 꽃이 많이 피고 열매도 많이 맺었다. 그 송화 다래끼의 소녀는 그 뒤에 알고 보니 노마 누이 분이었다. 분이서껀 을순이 모두 물방구리 이고 가는 손을 보면 벌써 봉선화물을 들이어 손톱들이 익은 가재 딱지처럼 새빨갛다. 오이밭에서 풋오이를 따고, 감자밭에 들어 두둑한 북을 헤치고 게사니 알만큼씩 안은 감자를 캐는 재미란, 억쇠는 비록 그것들이 한물 지날 때까지는 제 밥상에는 오르지 못한다 하더라도 신기하고 탐스럽고 어디엔지 감사해야 할 일 같았다.
더욱 논들은 물만 맞추어 대어 주고 많아야 세 벌 김이면 모낸 지 불과 달반에 한 벌판 그뜩, 땅은 그만 볏멍석이 되어 버리는 것이었다.
'땅―--- 이래서 땅, 땅 하는 거구나―--- 이래서 저이는 못 먹어도 씨암탉이며 꿀단지며 들고 와서 행여 땅이 떨어질세라, 지줏님 허는구나―--- 아, 인제 마당질이 시작되면 촌에는 먹을 게 얼마나 지천으루 벌어질까―---'
타작날은 어느 집이나 닭을 잡고 절구에 미리 찧은 햅쌀에 밤밥을 하고 지주를 청한다. 그러나 지주댁 나릿님이나 아씨는 그까짓 것쯤 시뜩하게 여기는지 거드름을 부리느라고 그러는지 여간해 가주지 않는다. 이 바람에, 타작 때는 내려와 있는 억쇠 아비가 곧잘 포식을 하는데 올해는 억쇠도 한밥 끼었다.
'세상에 농사처럼 좋은 건 없구나!'
그러나 억쇠는 마당질이 끝나 곡식섬들이 임자를 찾는 자리에 이르러, 전혀 뜻하지 않았던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동네에서 첫 타작, 이 동네에서 제일 바지런하다는 개천 건너 점둥이네 타작마당에서다. 점심을 자시러는 오지 않아도 마당질이 끝날 무렵에는 주인나릿님도 나타났다. 아흔엿 근씩이라고 달아 놓은 볏가마니가 열여덟이나 둥그러졌다. 지주댁 나릿님은 북데기까지 그 자리에서 까불러 내게 하더니, 작년보다 가마 반이 늘었다고 비료 대금은 떨어졌다고 좋아하나, 점둥이네 식구들은 도무지 좋아하는 기색이 없다. 점둥이 아버지는 잠자코 지게를 들고 나오더니 지주댁 머슴과 억쇠 아버지와 함께 한 가마니씩 세 번을 날라 아홉 가마니를 지주댁 뒷광으로 올려 갔다. 남은 아홉 가마니가 점둥이네 차지였다.
그러나 수세(水稅)와 비료 대금이 지주와 반부담이었다. 논은 낮은 것일수록 남의 물로만 꾸리는 것이라 소출은 적고 수세는 비싼 법이다. 세 마지기에 열여덟 가마니 소출인데 수세는 일 할이 넘는 두 가마니가 나간다. 그러므로 점둥이네가 한 가마니를 당하면 여덟 가마니가 남는 것인데 다시 비료 세 포대 값 반부담으로 십칠 원 각수가 있고 거기다 호세까지 물자면 두 가마니 벼는 팔아야 한다. 그러고 나면 점둥이네가 먹을 것은 여섯 가마니뿐이다. 밭농사가 반 양식은 되는 것이니 여섯 가마니라도 굶지는 않는다. 그런데 언제 왔는지, 그 억쇠 어미 죽은 것 비호처럼 담아 내가던 권생원이 와 있다가, 가마니 제일 성한 것으로 골라 물을 가지런히 끌어다 놓고 그 위에 다시 한 가마니를 올려놓더니 그것을 난닥 타고 앉아, 마당질에 지친 허리를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면서 그 앞에 와 무슨 사정을 하는 점둥이 아버지에게 대설대로 삿대질을 하고 있다.
권생원은 그 모지랑 수염이 곤두서고 꼬리 샐룩 처진 눈에 불꽃이 일었다.
"다른 빚두 아니구, 제 부모 상채(喪債)를 탈상하두룩 안 갚는 게 사람이야? 개가 부끄럽지 않어?"
하고 권생원은 소리를 질러도 점둥이 아버지는 말이 막혀 쩔쩔매기만 한다. 삼 년 전에 점둥이 할아버지가 돌아갔을 때 장례비용이 없어 권생원의 돈 삼백 냥(삼십 원)을 쓰고 이백 냥은 그해로 갚고, 그때 시세로 벼 한 가마니 값이 될락말락한 백 냥 하나 떨어진 이 이자에 이자가 붙어 오늘 회계로 벼 세 가마니를 차지해도 권생원 계산으로는 후하게 치는 것이라 한다. 관솔불이 시뻘겋게 비치는 점둥이 아버지의 얼굴은 울상을 한다.
"빚진 죄인이라니 무슨 낯짝으로 권생원 말씀을 노엽다구 하겠사와요? 그저……."
"듣기 싫소. 갓바치 내일 모레 허듯 또 내년?"
"어떡헙니까? 어린 자식들 먹여 주시는 셈치시구 두 가마만이라도 떨궜다 내년 가을에 가마판으로 해드릴게 받으시기요."
하고 사정하는 광경에, 억쇠는 점둥이와 친하다고가 아니라, 봄내 여름내 땀 흘려 일하는 것을 보았고 그래서 벼 열여덟 가마니를 떨어 가지고 권생원까지 제 욕심대로 세 가마니를 차지해 버리면 겨우 먹을 것이라고는 단 세 가마니, 쌀로 한 가마판밖에 안 되는 딱한 사정에 은근히 동정이 될밖에 없어, 권생원이 어떻게 끝장을 내가나 씨름구경이나처럼 마음이 조이는 판인데, 주인댁 부엌데기가 내려와 억쇠를 꾹 질렀다. 아씨가 찾은 것이었다.
"너 점둥이네 마당으로 냉큼 뛔가서 벼 한 가마니 마저 들여오라구 일러라."
"아까 아홉 가마니 들여온 것 말굽쇼?"
"넌 이 녀석 잊어버렸니? 점둥이 에미가 장리쌀 소두 서 말 갖다 처먹은 거 있지 않어?"
"그건 인제 쌀로 쳐서 가져올 것 아닌가요?"
"저런 멍청한 녀석 봐! 권생원도 벼로 빚을 받으라는데 벼 ꅙ 알 남겠다고 쌀로 쪄다 갚길 바래? 다 먹은 담에 쥐뿔로 받어? 나릿님께서 벼로 치면 이자까지 꼭 한 가마니 폭이 된다시니까 네가 점둥이 에미더러 말허구 한 가마니 냉큼 들여와야 헌다."
"그때 이 녀석 네가 말해 준 것 아니냐?"
닭을 잡고 밤밥을 해놓고 청하여도 와 먹지 않는 것이 거드름으로만 아닌 것을 억쇠는 비로소 깨달았다. 억쇠는 어쩔 수 없이 관솔불도 그들그들 꺼져 가는 점둥이네 마당으로 내려왔다. 권생원은 저희 삼포지기 영감을 시켜 기어이 타고 앉았던 세 가마니를 모조리 나르고 있었고 점둥이 어머니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서 애꿎은 젖먹이만 때려 주고 있었다.
진날 마른날 농사 뒤치개를 했고 조석으로 양식 됫박을 드는 아낙네들은 저희 마당 가운데 살찐 도야지처럼 나둥그러지는 곡식섬들을 볼 때 이날처럼 흐뭇하고 즐거운 날은 없어야 한다. 그러나 천륜(天倫) 정해지듯 한 지주에게 반을 주는 것도 대범한 사내들 속과는 달라 품속엣것을 헤집어 꺼내는 것처럼 아프거늘 반 남는 아홉 가마니에서 벌써 여섯 가마니가 날아가게 되니 탕개가 풀리고 나중엔 악이 받칠밖에 없다. 억쇠는 살인이라도 낼 것 같은 점둥이 어머니나 점둥이 아버지에게 말을 붙여 볼 기운이 나지 않는다. 점둥이를 찾았으나 보이지 않는 것은, 보나 안 보나 홧김에 이 억울한 타작마당에서 피해 버린 것이었다.
이렇다고 해서 억쇠는 그냥 섰을 수만은 없다. 쭈볏거리며 점둥이 어머니 앞으로 왔다. 점둥이 어머니는 봉당에 펄석 주저앉아 가슴을 풀어헤치고 젖먹이 입에 젖을 물리고 있었다. 억쇠는 여기서도 펀뜻 죽은 제 어미 생각이 났다. 부엌에서 비치는 관솔불에 점둥이 어머니는 남의 집 종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가슴이 앙상하고 그렇게 얼굴이 겉늙은 주름살에 생기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가까이 오기는 했으나 차마 말이 나오지 않아 머뭇거리는 순간이었다.
"아―니 그건 어디로 가져가나?"
마당에서 날카로운 점둥이 아버지의 목소리가 난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억쇠 저희 아버지였다. 지게를 지고 와 새로 한 가마니를 지고 일어서는 것이었다.
"억쇠가 뭐래지 않습디까?"
"억쇠라니?"
"아, 장리쌀 먹은 거 있다면서요? 쌀루 찧을 것 없이 아주 한 가마니 턱이라구 벼로 들여오래십디다. 먹은 거 갚을 생각은 안 했드랬수?"
억쇠 아비는 낮에 점심을 그렇게 잘 얻어먹은 것은 잊은 사람처럼 점둥이 아버지의 대꾸도 들을 것 없이 지고 일어선 채 껍신껍신 가버리는 것이었다. 어느 댁 분부라고 점둥이 아버지나 어머니는 군소리 한마디 입 밖에 내지 못했다. 억쇠는 아까 권생원이 미웠던 것처럼 주인댁 아씨나 나릿님이 미워졌고 아까 권생원의 볏가마니를 져나르던 삼포지기 영감이 밉살머리스러웠듯이 이제 주인아씨의 이자로 소두 한 말 쌀이 덧묻은 곡식섬을 지고 가는 제 아비의 말조차 인정머리없이 쏘아 던지고 가는 꼴이 몹시 밉살머리스러웠다.
차츰 알고 보니 이런 타작마당의 딱한 사정은 점둥이네만도 아니었다. 그래도 점둥이네는 아주 빈손은 아니나 손포가 적거나 땅이 토품이 낮은 것을 얻었거나 한 사람은 정말 키짝만 들고 물러설 뿐 아니라 세전부터 장리쌀로 목숨을 이어 온 사람들은 빚청장도 못다 하고 물러서는 집이 있다. 더욱 입도차압제(立稻差押制)라는 것이 생겨 벼가 익기도 전에 채권자가 차압해서 경매해 버리니까 볏짚 한 단 구경 못하는 사람도 있다. 개성(開城) 장꾼〔貸金業者〕들의 그 그악스러운 돈놀이나 윤판서댁 장리쌀에 걸리지 않을 만치 겨우 부지하는 살림이란 사십여 호 이 동리에 안과부네 한 집밖에 없다. 무서운 줄 알면서도 권생원의 돈 안 쓸 집이 없고 보릿고개 당해 지주댁 장리쌀을 안 먹고 견디어 낼 질긴 창자를 가진 식구들은 어느 집에도 없다. 농구(農具)와 일먹이때 주초(酒草) 같은 것을 그저 대어 주고 떨어지는 식량을 이자 없이 돌려 준다 하여도, 혼상간(婚喪間) 큰돈 쓸 일은 정해 놓고 빚이 될 수밖에 없는데 이들의 주위에는 가을이면 한 번씩 마당 추수가 있는 것을 저희들의 화수분으로 노리고 핑계만 닿으면 더붙여 먹으려는 돈놀이꾼들과 이자가 오푼변 턱도 더 되는 장리쌀 임자만이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땅이란 농사꾼들이 그렇게 믿고 그렇게 힘들여 가꾸고 그렇게 소중히 아는데, 또 땅도 그런 농사꾼들에게 그들이 힘들이는 만치는 보답이 있는 것인데, 확실히 그런 것인데, 이들이 먹을 것이 그 겨울 안으로 떨어지고 천 한 자 못 끊고 병이 나도 약 한 첩 못 쓰고 권생원의 변돈만 쓰고 돈 변리보다 더 비싼 장리쌀을 또 먹고 그래서 해마다 그 식이 장식인 이건 대체 어찌 된 셈인가?'
억쇠는 땅이란, 땅에다 땀을 흘리는 점둥이네나 장근이네나 노마네에게 좋은 것이 아니라 가만히 앉아서 남이 지어 놓은 농사를 절반씩 들어 가는, 그것도 한두 집에서가 아니라 수십 수백 집에서 걷어다가 저 혼자만 위장병이 생기도록 먹고 저 혼자만 계집도 몇씩 거느리고 그러고도 기생이니 유곽이니 병이 나도록 향락하고 집도 서울집이니 시골집이니 정자니 묘막이니 여러 채씩 두고 혼자 호강하는 지금 이 주인 나릿님 같은, 그런 몇만 명이나 몇십만 명 중에 하나나 될지 말지 한 지주를 위해서만 '좋은 땅'인 것을 이내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나 억쇠는 점둥이나 점둥이 아버지나 어머니처럼 땅이나 법률이 이렇게 꼼짝 못 하게 마련된 것은 사람들이 악하고 사람들이 못난 데서 생긴, 고쳐야 할 탈인 줄은 미처 생각지 못하는 것이요, 또 생각하려 하지도 않는다. 땅과 법률의 이런 마련은 태초 요순 때부터 내려오는 천륜 같은 것이거니, 앞으로 억만 년을 가더라도 변할 것이 아니려니, 오직 복종해야만 살며 복종해야만 사람의 도리려니, 그렇기 때문에 인간엔 자고로 부귀빈천의 등별이 있는 것이며 이승에서 빈천한 자는 어서 죽어서 팔자를 고쳐 타고 나는 수밖에 없거니…… 불평이든 의분이든 이들은 고작 이런 데서 어물거리다가 결을 삼키고 마는 것이 예사였다.
억쇠도 그 이듬해부터는 장근이네나 점둥이네가 봄내 여름내 피땀을 흘리고 가을마당길에 와서는 남 좋은 일만 하고 물러나는 꼴에도 그것을 처음 볼 때처럼 마음에 찔리지는 않았다. 찔리지 않을 뿐더러 나릿님이나 아씨의 권리를 작인들 앞에 대신 써볼 때는 권리를 주는 주인에게는 아첨이 절로 늘었고 그 권리에 복종해야 하는 작인들에게는 모르는 새 거드름이 늘어 점둥이나 장근이네 마당에 가서는,
"별놈의 소리 다 듣겠네! 며칠 안 됐으니 이자를 덜어라? 누가 장리쌀 먹으래서 먹었어?"
하고 아이 어른 가릴 것 없이 곧잘 허튼소리가 나오게끔 되었다. 전에는 점둥이나 노마가 저를 업수이여길까 봐 눈치가 갔으나, 지금은 그와 반대가 되었다. 허구한 날 지주댁 대청 밑에 가서 장리쌀을 주십시오, 멧소를 한 필 사주십시오, 이자를 좀 탕감해 주십시오, 한 섬만이라도 내년 가을로 밀어 주셔야 살겠습니다, 귀밑에 흰털 박힌 것이 새파란 아씨자리한테 죽는 엄살을 써가며 때로는 억쇠의 입까지 빌려 비럭질을 하는, 문서에 오른 종보다 나을 것이 없는 저희들의 신세를 억쇠가 깔보고 너무 휘두를까 보아 점둥이나 노마가 도리어 억쇠의 눈치를 보게 되는 것이며, 남들이 제 눈치를 보는 자리에서 억쇠는 또 저도 모르게 우쭐해졌다. 노마 누이동생 분이를 만나도 이젠 부끄럽지만은 않아 물방구리를 인 그와 마주치면 길을 막아 세워놓고 저부터 한 바가지 떠마실 만큼 속도 제법 시큰둥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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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억쇠의 이 시큰둥은 동네 사람들 눈에 과히 두드러지기 전에 움츠러들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절박해 가는 시국은 점점 변동이 심했다. 올해도 벌써 고노에(近衛)내각이 히라누마(平沼) 내각으로 그것이 다시 아베(阿部) 내각으로 일본의 내각은 연거푸 두 번씩 갈리었다. 전쟁이 벌어지면 쌀값이 오른다고 쌀값만 오르면 은행빚도 권생원네 빚도 문제가 아니라 생각해 온 윤판서댁 나릿님의 예산과는 전혀 딴판으로 내각은 자주 갈리더니 쌀에도 공정가격, 땅에도 공정가격, 시세에 반도 안 되는 법정가격이 생겼고 게다가 이쪽에서 사 써야 할 일용품은 '야미'값이 붙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나릿님의 예산이 틀려 나가기는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개성에다 집을 지을 그전까지는 몇 해째 곡식 시세가 좋았다. 조선쌀은 있는 대로 일본으로 먹히는 것 같았는데 수리조합의 번창으로 조선쌀이 늘기도 했거니와 일본도 해마다 풍년이 들었다. 일본 정부는 조선쌀을 퉁기기 시작했고 조선총독부는 이미 기공했던 수리조합도 사방에서 중지하게 되었다. 일본은 이 무렵에 조선쌀을 똥값으로 살 수 있는 경험을 가지어 일본이 웬만한 흉년쯤으로는 다시 조선쌀값을 올려 주지 않았다. 나릿님은 권생원에게 집 지은 빚의 본전을 꺼나가기는커녕 어떤 해는 이자를 못다 물어 본전에 가산이 되었고 쓰던 솜씨라 그래도 먹을 것은 먹고 입을 것은 입어야 하므로 해마다 돈 천 원씩 빚은 늘기만 했다.
'그래두 어떻게 되겠지?'
전쟁이 나서 다시 산미증산운동(産米增産運動)이 일어나는 것은 이 윤판서댁 나릿님뿐 아니라 경제력의 바탕이 오직 땅뿐이었던 조선의 재산가들은 죄다 칠년대한에 검은 구름을 보는 것 같았다. 그랬는데 쌀에도 땅에도 이내 공정가격이 생겨 버린 것이다.
나릿님은 생각하면 조선 망한 것이 이제 와서 서러워졌다. 백성은 누가 다스리며 누구 손에 어떻게 되든 적어도 그때 시세로 저희 생전 놀고 먹을 만치 땅만 가진다면 나라 망하는 아픔이 장차 저희들 창자 속에까지 맺힐 줄은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대문만 닫고 행세만 안 하면 그만일 뿐 내 땅에서 나는 밥이야 어디 가랴 싶었다. 따져 보면 누가 난봉을 부리었거나 과용을 한 살림도 아니었다. 팥비누면 그만이던 것이 왜 비누를 사 써야 했고, 미투리나 갓신이면 그만이던 것이 구두다 양복이다 해서 벼 한 섬이면 되던 일이 벼 열 섬, 스무 섬이라야 되게 되었고, 자기부터도 공부도 제대로 못 하고 나왔지만 동경 가 있는 삼 년 동안 천안 땅 오백석지기가 달아났다. 일본 자본의 시장으로 생활은 갑자기 새것들과 편리한 것들로 문명이 되는 것 같았으나 나릿님의 생산이란 오직 땅에서 나는 것뿐이요, 그것이 모자라면 그 땅을 파는 것뿐이었다. 전차 한번 타는 것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으나 오직 땅을 팔아 쓰는 사람에게는 종로서 남대문 나가는 데도 밭 한 평이 달아나는 것이었고 서울서 인천을 한번 다녀와도 논 두 평이 달아나는 사정이었다. 전에 큰사랑에 죽실거리던 문객들에 대하면 아무것도 아니나 시골서 일가들이 공진회니 '요사구라'니 하고 올라와 며칠씩 묵는 것도 큰 짐이 되었다. 그렇다고 체면으로 보나 버릇으로 보나 잡혀도 돈이 되고 팔아도 돈이 되는 땅이 있는 날까지는 남한테 궁한 티 보이기는 싫었고 정드는 계집이면 남의 손에 넣기도 싫었다. 나릿님은 이번에도 사실은 권생원에게 돈을 얻으러 개성으로 왔던 것이다. 작은마누라 친정어미의 환갑이 닥쳐온 것으로 체면에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권생원은 그전처럼 넉넉하지 않았다. 억쇠 아비가 두 번이나 부르러 가도 얼른 일어서지 않았다.
"이 녀석아, 내가 시굴서 올라왔다고 그러지 않구?"
"나릿님께서 오셨다구 첨부터 그랬습죠니까."
나릿님은 말이 막히어 목젖만 오르내리는 꼴을 보고는 억쇠 아비가 민망스러워 다시 권생원한테로 갔다. 세 번째에야 권생원은 들고 앉았던 주판을 밀어 놓고 따라나섰다.
"거 권생원 좀 보기 대단 힘드는구려!"
나릿님은 그저 볼이 실룩거리었다.
"언제 오셨나요?"
"좀 올라오슈."
"거 작년에 삼을 캘 것을…… 올엔 삼 시세가 폭락이겠는걸요!"
동문서답으로 주객은 마주앉았다가 주인측이 먼저 히죽이 웃는다. 쓴약을 먹듯 억지로 짓는 웃음이다.
"내 권생원 만나잔 건 뻔―하지 않소?"
"고맙쇠다. 나 요즘 궁헌데 돈 좀 갚아 주시오."
"뭐요? 남 말을 막으러 들어두 분수가 있지! 내가 권생원 모르게 돈 쓸 일은 생겨도 돈 생길 일이 있을 줄 알우? 남의 사정 다 알면서그류?"
하고 나릿님은 또 히죽이 웃는 입에 담배를 문다.
"그리게 내 벌써부터 하는 소리 아닌가요?"
권생원은 조금도 나릿님의 어설픈 웃음을 받지 않는다. 그는 진작부터 한 군데 빚이 오래 끌면 피차에 재미없으니 땅을 팔아서라도 빚을 갚으라는 것이었다.
"아무튼지 이번에 나두 서울 감 무슨 도리를 채려야겠수. 그러니 노자 한 이천 원만 또 좀 주셔야겠수."
"개성서 서울 노자를 이천 원씩이요?"
"좌우간 이천 원은 있어야겠수."
"돈이 수중에 있어야죠."
"괘―니 그러지 말구……."
"야박헌 말 같어두 난 다 겪어 봤으니깐 허는 말이지. 오래 끌면 오래 끌수록 댁에 손해란 걸 내 한두 번만 말했나요?"
"어서 낮차 시간 되는데 긴 말은 우리 이담 헙시다."
"별수없습네다."
"아 정말 이천 원만 써야겠수."
"없는걸요."
"그러지 말우."
"드릴 돈 없어요. 내 언제 농담헙디까?"
"아 권생원이 돈 이천 원 없으며 권생원이 개성바닥서 그만 것 주선 안 된단 말요?"
권생원은 아― 하품만 하고 수염을 내려 쓰다듬을 뿐이다.
"못 하겠으면 그만두."
나릿님은 피우던 담배를 재떨이에 빡빡 비벼 끄고 발끈해 일어선다. 그리고 조끼에서 금시계를 떼면서 억쇠 아비를 불렀다. 억쇠 아비는 나릿님의 금시계를 잡히는 심부름을 두어 번 한 일이 있다.
"사람이 돈을 모아도 으리가 있어야 하는 거야!"
나릿님 입에서는 반말이 나왔다.
"내 댁엣일에 으리부동하게 헌 적 없지요."
"뉘 땅을 공정가격 생긴 틈에 그냥 홀랑 생켜 볼려구? 흥 어림없는 수작을……."
"아―니 내가 땅 내랍디까? 돈 내랬지. 이건 자기네 살림 망허는 걸 누구헌테다 화풀일 허러 드는 거야?"
권생원도 반말이 나온다.
"망해? 그렇게 쉽게? 쥐새끼 같은 놈 어따가 악담을 하는 거야, 이놈아."
노마님이 나타나 더 큰소리는 나지 않고 말았다.
그러나 이날 나릿님의 큰소리와는 딴판으로 나릿님이 가재울서 보이지 않은 지 달포 만에 나릿님네가 망했다는 소문이 났다. 권생원과 일본 사람과 둘이서 나릿님네 가재울 땅을 맡는다는 소문이 났다. 양반도 인젠 소용없어 빚진 죄인이라니 땅 아니라 신주 토막이라도 팔아 갚을 건 갚아야지 장돌뱅이 권아무개라고 잡아다 볼기 칠 재주는 지금 세상엔 없다는 이야기도 흥이 나서 주고 받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무튼 아씨는 친정어미 환갑에 다녀오더니 자기 몫으로 멧소 준 것을 팔았고 장리쌀 준 것도 되는 대로 걷어들여 돈을 만들어 쥐더니 소문 더 흉해지기 전에 떠난다고 가죽가방 서너 개에 제 것 요긴한 것만 챙겨 억쇠를 들려 가지고 도망하듯 개성으로 와버리었다.
개성에 와 며칠 안 있어서다. 하루 저녁은 노마님께서 억쇠 부자를 불렀다. 뜰 아래 선 것을 바로 퇴 위에 올라서라 하고 노마님은 옷고름으로 눈물부터 닦았다.
"내 생전엔 너일 데리구 있잔 노릇이 누가 이렇게 될 줄 알었나!"
노마님이 눈을 섬벅거리는 것을 보기가 바쁘게 억쇠 아비는 대뜸 흐득흐득 느껴 울었다. 억쇠 생각에는 이런 앓던 이 빠지는 노릇은 다시 없을 것 같은데 아비는 어째서 눈물이 쏟아지는지 알 수 없었다.
"이럴 줄 알었드면 땅 넘어가기 전에 단 몇 마지기라도 너의 몫을 남겨 놓았을걸……."
하고 노마님은 목이 메어 다시 말을 멈춘다.
억쇠 아비는 그만 아이처럼 엉―엉 울어 버린다. 억쇠는 저만 눈이 말똥한 것을 쳐들기에 겁이 났다.
"권생원한테 밭이라두 하루갈이 뽑재두 같이 사는 전주가 안 듣는다구 막무가내구나! 이렇게 되구 보니 다 쓸데없드라. 그래 너희 부자 부쳐 먹을 만큼은 다른 작인해를 떼서라도 농토는 주마 했고 그 가재울집 바깥 마당에 깍지방 말이다. 그게 사 간이나 되구 재목이 실허니라. 그것두 이 늙은이 말막음으루 준다고 했으니 그걸 뜯어다 어따 세우고 노상 짓구 살두룩 해라…… 그리구 옜다. 풍년거지 더 설다구, 이런 때 한밑천 든든히 못 집어 주는 게 내 맘두 더 아프다. 겨우 이게 사백 환이다. 삼백 환 만 주면 시굴밭 하루갈이 못 사겠니, 제발 하루갈이만 있어두 너이 식구엔 큰 보탬 될라. 그리구 도깨그릇 솥부둥갱이 너이 쓸 만치는 시굴집 걸 갖다 쓰구 돈 백 환 손에 잡고 있으면 올 농사 밑천은 너끈헐라. 가을엔 수소문해 에펜넬 하나 얻으렴……."
"싫사와요, 마냄 곁을 떠나 어떻게 따루 살어와요! 굶어두 마냄 모시다 죽지 어디루 따루 나가와요! 죽어도 싫사와요……."
하고 억쇠 아비는 또 낄낄 울었다.
그러나 결국 억쇠 부자는 어미는 일생이요 아비도 거의 일생이요 자식은 철나도록 세 식구가 종살이를 한 대가로 돈 사백 환과 문짝도 없는 사 간짜리 깍지방 한 채를 얻어 가지고 처음 제 살림을 차려 보려 가재울로 내려왔다.
억쇠는 이 김에 아비 품에서 돈 백 환이라도 꺼내 가지고 저는 저대로 어디로고 뛰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시국'이니 '대동아'니 하고 아직은 도회지일수록 더 들볶는 것 같아 허턱 어디로 나서기가 무서웠거니와 생각하면 남의 땅으로라도 내 것으로 한번 심어 보고 내 것으로 한번 따고 거두어 보기가 소원이기도 했다. 또 은근히 억쇠는 가재울에 끌리는 구석이 있다. 얼굴 동그란 분이가 얼굴에 볼우물을 파고 발돋움을 해서 늘 부르기나 하는 것처럼 클클해지는 것이었다.
'분이 노마서껀 장근이서껀 점둥이서껀 모두 맘씨는 착헌 애들이지만…….'
억쇠는 주인댁을 기대고 그들에게 얼마 고갯짓하고 지내 온 것이 이제 와 뼈아프게 뉘우쳐진다.
'그때 인심을 사둘걸! 내나 아버지는 첫 농사라 품앗이를 안 해준다면 어떻게 농사를 짓나? 밭 하루갈이! 그것만 제 일 가져도 두세 식구는 굶진 않는다는! 우린 그런 밭 하루갈일 살 수가 있기는 하지만!'
억쇠는 밭이나 하루갈이 좋은 것으로 사고 분이와 정혼이나 할 수 있다면 농사일 아니라 더 험한 노릇이라도 신이 날 것 같았다.
'점둥이네도 노마네도 저이 땅이라곤 송곳 꽂을 것도 없다. 우린 하루갈일 살 수 있는 거다!'
감자 몇 톨을 눈만 따 묻으면 감자가 섬으로 쏟아지는 땅, 옥수수를 닭이 먹이만도 못하게 부룩만 박아도 그것을 여름내 다래끼로 따들이는 땅을 터앝만큼도 아니요, 하루갈이 이천 평이나! 포군포군한 분이의 손이 자기가 심은 옥수수를 찌면. 그 옥수수 같은 잇속을 방긋이 드러내 웃는 얼굴이 억쇠는 곧 웅킬 것처럼 급해지기도 한다.
'분이가 나를 어떻게 생각헐까? 나헌테 건달기나 있는 줄 알지 않었을까? 나는 왜 그렇게 어질어 빠진 시굴 사람들에게 처음처럼 착하게만 굴지 못했을까!'
그러나 정작 시골 사람들은 아무도 억쇠를 못된 녀석이라거나 건방진 자식이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워낙 업수여김과 억울한 일에는 신경이 무디어진 그들인데다가 대갓집에 공을 기대인 억쇠로는 처음부터 심보가 착한 아이라는 소문은 났어도 요녀석 두고 보자 벼르는 소리는 들어 오지 않았다. 분이도 그랬다. 그 송화 따오던 길에서 저로는 처음 얼굴을 붉혀 보고 가슴을 두근거려 본 사내아이다. 저희 오빠나 점둥이보다는 대처에서 자라 그런지 말도 경우 닿게 하고 인물도 눈이 뚱그렇고 턱이 넙적한 것이 사내차게 생겨 모두들 그 아비와는 딴판이라 지껄이는 소리가 듣기 싫지 않았다. 다만 분이 자신이 외할머니에게서 들은 이야기, 아버지의 딱한 사정을 건져 드리기 위해 제 몸을 바다에 빠뜨린 심청이 때문에는 가끔 꿈이 있었어도 아직 억쇠를 위해서 꿈까지는 없다. 또 혼인이란 것은 허챙이든 절름발이든 부모님들이 알아 시킬 것이지 저희끼리 눈이 맞는다든지 울 너머로 속삭이든지 하는 것은 난당들이나 하는 것으로 여기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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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쇠네는 권생원네 땅이 된 방축머리 채마밭에 텃세 백미 대두 한 말씩을 물기로 하고 집터를 얻었다. 너무 길가요 서향이긴 하나 '이 천지에 내 집, 우리 집이란 것도 지어 보는 건가' 하는 감격에 오직 꿈 같을 뿐이었다. 기둥을 세우고 상량이랍시고 들보를 올리던 날, 더욱 부엌에 솥을 걸던 날, 아비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억쇠도 이날처럼 애달프게 어미 생각이 치민 적은 없다.
"복두 그렇게 못 타고난 건!"
새로 솥을 건 부뚜막에서 김이 무럭무럭 솟는 것을 보고 아비가 불쑥 해버리는 말에 딴사람들은 그게 무슨 소리인지 몰랐으나 억쇠는 이내 제 어미를 가리키고 하는 말임을 알아들었다.
억쇠는 부엌 뒤에 우물을 팠다. 반길도 들어가기 전에 물이 충충 고여 퍼 쓰기 편한 한다한 박우물이 되었다. 그러나 누구 하나 즐거워하는 사람이 없는 데는 쓸쓸했다. 그리고 억쇠는 목수가 가기 전에 문패도 하나 밀어 달래서 상량문(上樑文)을 써준 최초시한테 가 저희 아버지 문패도 써다 봉당 기둥에나마 붙이었다. 천돌이(千乭伊) 성이 천가였다. 동네 사람들은 차츰 억쇠 아버지를 '천서방'으로 부르게 되었다.
장독대도 천서방은 아무 돌이나 가까운 데서 굴려다 놓으려 했다. 그러나 억쇠는 개울바닥으로 나가 크고 반듯하고 깨끗한 돌로 져다가 공을 들여 쌓았다. 독개그릇도 나릿님댁에서 간장 된장이 들어 있는 채 저희 쓸 만치는 물려받았다. 낫과 지게도 그냥 생겨 억쇠는 몸살이 나도록 서투른 나무도 한동안 때일 것을 해다 가리었다. 우선 양식만은 어쩌는 수 없어 권생원한테서 장리로 입쌀 한 말에 좁쌀 닷 말을 갖다 놓고 팥은 두어 말 샀다. 상전댁에서 먹을 때는 혹시 좁쌀이 많이 섞이면 노염부터 생기곤 하였으나 이제부터는 강조밥을 먹어도 입에 달고 이것이 살로 갈 것 같았다.
촌사람들은 억쇠 생각에 미련해 보이도록 착하였다. 저희 부자가 전날 고갯짓하던 것을 벌써 잊어버렸을 리는 없는데 미워하지 않고 홀아비 살림이라고 고맙게들만 굴었다. 점둥이 어머니는 짠무 김치를 한 방구리 갖다 주었다. 노마네는 호박고자리, 장근이네는 수수비와 싸리비도 두 자루씩이나 매다 주었다. 억쇠는 노마네 호박고자리는 분이가 썰어 말렸을 것만 같아 더 맛이 달거니 했다. 묵이나 두부를 해먹어도 한두 모씩 들고 와서 어떤 아낙네는 무쳐까지 주고 갔다. 이웃정리라는 것을 처음 맛보는 천서방과 억쇠는,
'이래서, 이웃사촌이란 말이 있구나.'
하고 목이 메곤 했다.
'살자! 어서 잘살자! 나쁜 맘만 안 먹음 잘살 수 있을 거다! 어서 우리두 잘살아서 이런 은혜두 갚자!'
어서 돈이 더 부스러지기 전에 밭을 하루갈이라도 장만해야 할 것과 남의 논 얻을 것과 살림할 안사람이 들어서야 할 것들이 남은 문제였다.
밭은 좋은 것 한자리가 진작부터 물론 중에 있기는 하다. 약간 경사는 졌으나 양지쪽이요, 동네 옆이요, 네 귀가 반듯하고 토품도 좋아 밀과 콩을 심어도 잘되고 조를 심어도 열 섬은 바라보는 용길네 하루갈이짜리였다. 땅이 좋기 때문에 처음부터 공정가격에는 어림도 없고 공정가격의 배가 넘게, 삼백팔십 원은 받아야 한다 했다. 억쇠네는 삼백사십 원밖에 돈이 없으니, 그 금사에 청해 보았다. 줄 듯이 생각해보마 하던 용길 아버지는 한참 동안이나 대답을 미루어 오더니 껑청 뛰어 사백 원에도 살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말썽꾸러기 팔근이 녀석이 덤벼든 것이었다.
팔근이는 억쇠도 알기는 한다. 늙은 아버지가 죽을 힘을 들여 농사지어 놓으면 겨울 한철은 들어와 파먹으며 동리에 노름판을 펴놓다가 봄이 되어 농군들의 일손이 바빠지는 듯하면 어느 틈에 살짝 없어지곤 하는 건달꾼인데, 이자가 없어지기 전에 용길네가 용길 어머니의 상채(喪債)와 용길이 혼채(婚債)로 들여온 빚 때문에 밭을 내놓았다는 말이 퍼진 것이다. 힘 안 들이고 돈 생기는 일에는 팔근이처럼 예산이 빠른 사람은 없어 그는 이내 용길 아버지의 입을 막아 놓고 황군수의 아들을 부추긴 것이다.
가재울 윤판서네 전장을 넘겨 맡은 것이 권생원과 일본 사람이란 것은 잘못 전해진 말이었다. 가재울서 십 리는 떨어져 동척(東拓)에서 여러 만 평 신답풀이하는 것은 있으나 윤판서네 땅을 권생원과 아울러 산 사람은 조선 사람이었다. 낯선 사람에게나 처음 드는 여관에서는 아닌게아니라 일본 사람 행세를 하기도 하나 그도 워낙 이 지방 사람으로 재판소 서기로부터 군수까지 올라갔다가 어떤 남의 집 유부녀와 추문이 있어 파면을 당하였고 그전 동료들이 눈감아 주는 것을 기화로 국유림(國有林)의 불하(拂下) 토지 브로커 등에 일약 백만장자가 된 황순환이란 이 근경에 새로 두드러진 유력자였다. 그는 해주 도청에 가면 명함도 내지 않고 토지 사방에 드나든다는 소문도 있다. 그의 아들이 절반은 저희 동네가 된 이 가재울에 양지바르고 배수가 잘되어 과수를 심고 집도 한 채 세울 만한 밭이면 하루갈이에 사백 원이라도 좋다고 불러 놓은 것이었다.
인젠 남과 같이 어엿한 인간으로 땅임자까지 되어 본다는 느긋한 희망과 땅이라도 가재울서는 누구나 다른 데 이틀갈이보다 이 밭 하루갈이를 가져 보고 싶어하는 문전이요, 토품 좋은 용길네 밭을 내 땅으로 다루어 본다는 욕망에서 억쇠네 부자는 바짝 등이 닳았다. 사백 원에라도 우리가 살 터이니 달라 하였다. 촌 아낙네들이 탐을 내는 부잣집 장독대에 놓였던 크고 길 잘 든 옛날 독개그릇들을 간장과 된장이 든 채 팔아 버린다면 사백 원에서 이미 축이 난 돈머리쯤은 채워질 것 같았고 그래서라도 이 밭만 놓치지 않는다면 몇 해를 맨 소금에 조밥만 먹어도 한이 없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팔근이녀석은 제 돈을 쓰는 것은 아니라 다시 이십 원을 얹어 불렀다. 억쇠는 기가 막혔다.
아비와 아들은 남은 돈을 꺼내 놓고 아무리 세어 보고 독개그릇을 나가 암만 따져 보아야 다시 이백 냥이 불을 데가 없다. 잠이 밤늦게 들었으나 억쇠는 한잠도 제대로 못 들어 보고 벌떡 일어나 앉았다.
'좋은 수가 있다!'
아버지까지 깨워 용길네 밭을 사놓고 볼 테니 보라 장담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아직 겨우 동틀머리였다. 그 용길네 밭으로 뛰어왔다. 양지쪽이라 어느 밭보다도 눈이 먼저 녹고 눈이 안 덮이는 해라도 이 밭엣보리는 얼어 죽는 법이 없다. 산 밑으로 높은 데는 자갈이 더러 밟히기는 하나 이 밭이 제 손으로 들어만 오는 날은 돌이라고는 콩쪽만한 것 하나 그냥 두지 않으리라 그것부터 별렀다. 신바닥에 흙 닿는 맛이 시루떡 같은 것도 처음 느껴 보는 땅에의 애정이다. 억쇠는 흙을 한줌 집어 부실러 보고 입에 갖다 대어도 보았다.
'토지 감정허는 기사들은 흙맛두 본다는데 어떤 맛이라야 좋은 건지…….'
억쇠는 용길네 굴뚝에서 아침 연기가 솟는 것을 보고는 단걸음에 뛰어왔다. 용길이 아버지는 일어나기도 전이었다.
"이거 그만 일어나기두 전에 왔네요."
"어서 들어오게. 일어날 때두 된걸."
"밭은 암만 생각해두 우리가 꼭 가져야겠어서 왔어요."
"뭐 돈 가지면 땅 없겠나?"
"그렇기야 헙죠만 어디 밑천이 넉넉한가요? 돈 두구 안 쓰는 장사 있어요? 더 축나기 전에 꼭 붙들어야 되겠어요."
"그래도 시세보다 벌써 이삼백 냥이나 솟은 걸 없는 사람이 비싼 땅 흥정을 해 어쩌나?"
"용길 아버지?"
하고 억쇠는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아무 표정의 대꾸도 없는 늙은 용길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독개그릇까지 판대두 사백 원 될지 말지 헌데요. 남 사백이십 원 낸다는 걸 깎기야 허겠어요. 이십 원만 떨궜다가 가을에 이자두 쳐드릴 테니 곡식으루 받으시구 우리 살림 도와 주시는 일체루 그 밭은 꼭 저일 주세요."
"독개그릇이라니?"
"장독이야 이담엔 못 사나요. 땅부터 사구 봐야죠. 땅이 바루 우리집 옆이구 제일에 맘이 들어 그래요. 이 땅 놓치면 우린 이 동네루 온 게 허사야요. 또 달리 아시다시피 똑 떨어진 하루갈이 만나기가 쉽나요 어디? 돈은 자꾸 부실러질 거구요. 어서 말씀을 끊어 주세야겠어요. 그 은혜 저이가 생전 잊겠어요!"
"거 딱허이그래! 값은 사백 원이라두 잘 받는 금사구 이십 원 떨궜다 가을에 받어두 어련하겠나만 생각해 보게, 우리들이 집터부터두 다 새 지주네 땅 아닌가? 그 사람네가 사려는 줄 몰랐으면이어니와 알구두 다른 데 팔었다간……."
"그 사람네야 밭 하루갈이 못 사 낭패되겠어요? 군수까지 당긴 점잖은 어른네가 우리 같은 사람 살 게 되는 걸 대견해허시지 무슨 혐의들이 있겠어요? 먼저 저이에게 끊어 말씀허셨다면 그만입죠, 안 그래요? 그리구 저인 땅 산다는 게 이게 처음이구 마지막일 거 아니야요? 무슨 수로 땅을 또 사길 바래요!"
억쇠는 남을 설복시켜 보려 이렇게 애타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용길 아버지는 조금도 감동해 주는 얼굴이 아니다.
"아니지, 이 사람 세상일 지금 돼가는 걸 보게나. 자식 기르는 사람이 유력자들헌테 어떻게 눈밖에 나구 사나? 우리만 걱정되는 게 아니라 자네도 그래, 그 밭 임자 노릇을 허단 재미없으리. 군수 다니던 사람이야, 큰 지주야, 이 근경선 유력자 아닌가? 그 사람네가 산다는 게니 자네부터두 고이 물러서게, 신상에 해로우리……."
하고 오히려 파기하기를 권할 뿐 아니라 마침 팔근이가 무슨 냄새를 맡았는지 눈이 울퉁해 들어서는 것이었다. 그리고 억쇠가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더 눈과 입이 뾰족해지며 입에 궐련을 문 채 사뭇 욕을 하듯 지껄였다.
"뭣이? 가을루 가 곡식으루? 그 시들방귀 같은 수작 그만두래라! 과수원헐려구 얼마에든지 살려는 사람과 쥐뿔도 없는 자식이 무슨 배짱으루 맞서는 거야? 황군수네허구 네가 맞서 가지구 이 동네서 견뎌 배겨 볼 테냐? 흥 서울 양반? 그 땅 팔아먹구 거덜나 올라간 윤판서네 세를 믿구? 지금두 양반 세상인 줄 아니? 얼빠진 자식……."
억쇠는 무안만 보고 숫제 단념하는 것이 옳았다.
아무리 수소문을 해보아야 밭 하루갈이 자리는 나는 것이 없었다. 하루갈이 자리 밭이 날 때까지 돈을 남을 주어 늘리고도 싶었으나 돈놀이에 이골이 난 권생원이 육장 옆에 와 있는 때여서 돈 못 얻어 애쓰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윤판서네 집자리는 권생원이 차지하고 내려온 것이다.
이 가재울엔 논보다 밭이 얻어 부치는 데도 더 힘들었다. 권생원은 멀기는 하나 벌촌 사람이 부치던 것을 논은 여섯 마지기를 떼어 주나 밭은 도무지 벼를 수가 없노라 한다. 억쇠네 부자도 밭은 남의 것을 소작하기보다 내 것으로 사기가 소원이었으므로 논만 주는 것도 달게 여기었고 논이 단지 여섯 마지기인 것도 저희 밭 하루갈이를 살 예산으로 적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조석으로 밥 끓여 먹는 것이 큰일이다. 아비더러 어서 과부라도 얻어 와야 한다고 걱정들은 해주면서도 이런 일은 돌아서면 그만인 지나가는 말뿐이요 살림이랍시고 첫날부터 남의 장리쌀인 구차한 홀아비한테 달게 나설 과부짜리란 쉬울 리도 없었고 아들을 장가들이려면 그것은 과부나 데려오는 것과도 달라 정혼을 한댔자 빈손으로는 싸올 도리가 없는 것이다. 아비와 아들이 저희 손으로 조석을 지어 먹고 오 리가 넘는 먼 농틀 농사에 더구나 부엌일, 논일 두 가지가 다 서투른 솜씨라 이웃 사람들 보기에 눈물겨운 바가 한두 가지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은 이를 악물었다.
'이게 살림이다! 이게 남헌테 매인 게 아니라 살림이란 거다. 기를 쓰고 일만 하면 살게 되겠지!'
이 해에는 서양서도 전쟁이 일어나 불란서가 망했느니, 조선서는 조선 사람들도 병정으로 끌어내 갈 시초로 '특별지원병' 제도가 생기었느니 하고 떠들썩했으나 농사연사는 면흉은 되는 해였다. 억쇠네는 엿말지기에서 벼 서른네 가마니를 떨었다. 그 논짜리로는 면흉이 아니라 평년작이 실하다고들 했다. 억쇠네는 반타작으로 열일곱 가마니를 차지했다. 첫 농사에 그만하면 대견할 게라고들 했다. 그러나 천서방이나 억쇠는 역시 타작마당의 비애를 아니 느낄 도리가 없었다. 대강 주먹구구로도 이런 어림이 나서기 때문이다. 수세(水稅)가 평당 사전으로 칠십 원의 반(반은 지주 부담) 삼십육 원과 비료 매포대 사 원으로 삼십 포대 값 일백이십 원의 반 육십 원과 '소견품삯'이라는 것, 논갈이부터 벼 실어들이는 것까지 남의 손을 쓰고 한 마지기 농사에 사람품 둘씩으로 갚는 것인데 권생원네는 농사를 짓지 않으니까 품으로 갚지 않고 돈으로 갚는다. 엿 마지기에 열두품 값 십이 원과 호세 십 원, 동회비 십오 원, 모두 최소로 '일백삼십삼 원'은 나가야 하는데 벼 한 가마니가 십사 원이 채 못 된다. 열 가마니는 나가야 겨우 청장이 될지 말지 한데 그래도 장리쌀 먹은 것과 텃도지가 또 있다. 이것 저것 다 제하면 단 다섯 가마니가 제대로 못 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밭 사려던 돈은 우장 한 벌 변변히 차리지 못하고 약수건이나 하는 굵은 베로 고이적삼 한 벌씩 해입은 것밖엔 생각나는 것이 없는데 백 원 돈이 넘어 부스러졌다. 광목 한 자에 벌써 십오 원이 넘는다. 쌀도 야미값이 생겼다고는 하나 권생원처럼 개성으로, 사리원으로 길이 닿는 사람 말이지 쌀고장 배천읍쯤에선 아직 야미쌀 사려는 사람은 없다.
무엇보다 밭 사지 못한 것이 불안스럽다. 용길네 밭 쪽으로는 머리도 두고 싶지 않다. 송곳턱에 옴팍눈에 어디 복이 붙었는지 모를 황군수의 아들이란 자가 당꼬즈봉을 입고 자전차로 드나들면서 집을 세운다, 과수를 심는다, 펌프우물을 박는다 하고 누구네와보다도 가까운 이웃에서 돈을 물쓰듯 하고 일본말만 하고 정말 팔근이 말마따나 그전 양반들 찜쪄먹게 서슬이 푸르러 덤비는 데는 공연히 고개가 돌려 억쇠는 집터를 여기다 잡은 것이 후회되었다.
전장 때부터는 권생원네도 벌써 지주 노릇을 톡톡히 하려 들었다. 억쇠네는 권생원네가 무 뽑는 날 억쇠만이 가서 거들어 주었지만 안사람 있는 작인들은 그 집 김장이 끝나도록 사흘씩이나 가서 매달렸다. 삼십 리 출포는 으레 작인들이 하는 법이라 해서 권생원네 벼는 어디로 나르는 것이든지 저희들 소작료 분량만치는 삼십 리 길은 갖다 놓으라는 대로 져 나르든 실어 나르든 해야 했다. 권생원은 지주인 것뿐 아니라 채권자이기도 하기 때문에 전날 지주 윤판서댁 나릿님에다 전날 돈놀이 권생원 자신을 합친 세도를 쓰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박하기는 더했다. 겨울에 눈이 오면 그 옆에 작인들이 이 집 바깥 마당과 사랑 뒷간 길은 으레 쓰는 것이지만 눈이 많이 퍼부어 담아 내야 할 때는 안뜰 안 눈만도 수십 들것이 되는 때가 있다. 그전 세상엔 이런 날 아침이나 저녁은 시래깃국에라도 밥 한 끼씩과 엽초 몇 춤씩은 타는 것이요, 정초엔 북어쾌나 하고 담배쌈지 하나씩이라도 돌리는 법이다. 시국핑계로 저 차려야 할 체모는 모른 척하고 이쪽만 부리려 들며 열 가지에 한 가지라도 마치 시행이 더디면 저를 근본이 장돌뱅이라고 얕잡나 해서 더 기승을 부린다.
한번은 권생원네 부엌데기가 내려와 억쇠를 찾았다. 해가 다 진 저녁녘이어서 억쇠는 부엌으로 나무를 끌어들이는데 배천읍으로 편지를 가지고 가라는 것이었다.
"해가 다 졌는데 내왕 사십 리 길을 언제 갔다 오란 말이오?"
"내가 아나베―--- 편지 가지구 가, 그렇게 일르래니께 나야 왔지!"
"저녁 헐 사람 없는 줄두 뻔―히 알면서…… 나 없드라구 가 그류."
하고 억쇠는 배천읍에 비료며 농구(農具) 장사를 크게 하는 일본 사람 이시쓰까에게 갈 것이라는 편지를 집어 내던졌다. 권생원네 부엌데기는 멀숙해 편지를 도로 집어 들고 나가다가 짚을 축여 가지고 들어오는 억쇠 아버지와 마주쳤다. 억쇠 아버지는 역시 권력 있는 사람은 모시어야 할 것으로 안다.
"이리 주기요. 내라두 갔다 오리다. 그리구 요새 젊은애들 함부루 지껄이는 거 가서 그대루 옮기지 말아요."
이래서 억쇠는 할 수 없이 밤에 다녀오기는 했으나 다녀와 저녁을 먹고 나니 늦기도 해서 그냥 자버리고 말았다. 이른 아침에 권생원네 앞에 사는 장근이가 내려와 권생원이 억쇠를 찾는다고 했다. 또 밥솥에 불을 지피다 말고 일어섰다. 권생원은 대청 끝에 뒷짐을 지고 입이 뾰족해 있었다.
"억쇠 너 심부름 좀 시키기 대단 힘드는구나!"
억쇠는 침을 꿀꺽 삼키었다. 못 보는 데서는 욕이라도 하겠는데 목전에선 꼼짝 못 하겠다.
"어제 다녀왔에요."
"다녀왔는지 안 다녀왔는지두 또 사람을 시켜 전갈을 해야 하니? 그런 놈의 심부름이 어디 있단 말이냐? 그래 너이 부자가 심부름 첨 해보니? 내가 니 녀석 심부름 좀 못 시킬 사람이냐?"
하고 권생원은 가래침을 억쇠 섰는 앞에 내려뱉는다. 억쇠는 그 침이 제 얼굴에 튀는 것 같아 잠자코 한 걸음 물러선다.
"남 타적 때면 웃짐(엿이나 소갈비 같은 선사) 싣구 와서 굽신거릴 땅을 잠자쿠 떼서 주니까 권아모개 땅은 땅 같지가 않단 말이냐?"
"어젠 밤중에나 오지 않었어요? 아침엔 내가 밥해 먹자니 이따나……."
역시 억쇠는 말끝이 움츠러든다.
"예끼 녀석! 공을 모르구!"
억쇠는 눈이 뿌옇게 몰리고 내려와 늦은 조반들 맛이 없었다.
'힘은 힘대로 들고 탐탁히 먹을 것도 떨어지지 않는 농사, 그나마 지주는 공치사를 하며 사람을 종 부리듯 하려 드니 이렇게 사는 것도 남의 신세란 말인가?'
이 겨울엔 땅 이작(移作)이 많이 생기었다. 권생원도 황군수도 좀더 저희한테 달가울 사람들로 작인을 갈았고 작인들도 농터가 멀기는 하나 이런 개인 지주들보다 후하다는 바람에 동양척식의 신답풀이들을 맞게 되었다. 수세, 비료대금 전부 회사에서 부담하고 소출을 사륙분(四六分)하여, 육 할을 회사에서 차지한다는 것이다.
개인 지주와는 반타작인 것이나 수세와 비료값을 반부담하고 나면 소작인은 실상 삼 할도 제대로 먹지 못하기 때문에 회사 땅은 육 할을 주더라도 작인들이 일 할은 더 이익일 것이다. 점둥이네도 노마네도 회사 땅으로 돌라붙었다.
억쇠도 어정쩡해 눈만 껌벅이는 아버지를 졸라 회사 땅 이천사백 평을 얻기로 하고 새로 상전 노릇을 하려 덤비는 권생원네 땅은 억쇠가 올라가서 손에 들고 와 던지듯,
"댁엣땅 그만두겠어요."
한마디로 내놓고 내려왔다.
'이렇게 속이 시원헐 수 있나―--- 그러나 회사는 또 어떤 놈인가?'
돈도 이제는 메꿀 수 없이 축이 났거니와 밭도 하루갈이짜리는 그저 나지 않았다. 밭을 사지 않을 바에는 남은 돈으로 아버지든 아들이든 안식구나 한 사람 맞아야겠다는 생각도 났으나 과부짜리는 그저 걸리지 않았고 아들이 남의 집 딸과 어엿하게 통혼을 하자면 돈 백여 원쯤 이제 와서는 광목 반통 값도 못 되는 것이 되고 말았다.
'올에 연사나 좋으면…….'
벌써 이들 부자도 번연히 속는 줄 알면서도 유일한 희망이 '가을'이 되고 말았다. 노마 누이 분이가 어깨가 둥글어 가고 허릿도리가 펑퍼짐해 가는 것이 억쇠는 차라리 불안스러웠다.
6
동척 땅은 신답풀이여서 누구나 한몫 끼기가 쉬웠다. 아들이 졸라 대었고 점둥이네와 노마네가 한데 휩쓸리는 바람에 한물에 대여지기는 했으나, 논들이 십 리나 되게 멀었고 소작계약에 도장을 찍는 데도 여러 군데였다. 농장관리인 가토가 그 면도 자리 새파랗고 테 없는 안경알 속에서 곧 쪼으려는 암탉의 눈으로 서류를 이장 저장 넘기면서 처음 써보는 천서방의 도장을 암팡스럽게 찍어 나가는 것을 볼때 천서방은 공연히 빈손이 떨리었고 노랑수염 권생원쯤은 이 가토에다 대면 숭늉일 것같이도 생각되었다.
"그래두 아는 지주네 땅을 눌러 부칠 걸 그랬나 부다."
"별― 아는 도끼에 발등 찍히기지 그 깍쟁이 같은 녀석한테 또 종노릇을 해요?"
"회사 땅은 나은 줄 아니? 일본 녀석들이 그래 권생원보다 푼푼헐 상싶으냐? 권생원한테 쌀 떨어진 장리나 미리 먹지, 사정을 해두 열번에 한 번은 들어주지, 일인들과야 사정이나 봐달랄 수 있다든? 난 모르겠다……."
아닌게아니라 억쇠도 속으로는 어리둥절한 판인데 일본은 도조(東條) 내각이 되면서 양력 십이월 팔일 미국과 전쟁을 걸었다는 소문이 났다.
'큰일났군.'
상전댁에 일거리가 벌어지면 언제든지 저희들 신상부터 고달프던 경험에서도 천서방이나 억쇠는 누구보다도 먼저 벌어지기만 하는 전쟁에 막연한 불안을 느끼었다. 이들에게 있어 전쟁이란 먼저 웃사람이 자꾸 느는 일이었다. 땅만 내어놓으면 그들의 종노릇을 면할까 하였더니, 권생원은 총력연맹의 이 동네 이사장이 되었고, 미영(美英)과 싸움을 걸어 일약 일본제국의 영웅이 된 도조수상의 성을 따라 도조로 솔선 창씨를 한 황군수는 이곳 거물 면장으로 다시 관계에 등용되어 면민들을 다스리기 시작했다. 채권을 사라, 애국저금을 해라, 가마니를 짜 바쳐라, 국어(일본어)를 배워라, 묵도(默禱)를 해라, '고고쿠 신민노 치카이(황국 신문의 맹세)'를 외워라, 신사(神社) 터를 닦으니 부역을 나오너라, 집집마다 가미다나(神棚)를 모시어라, 이루 정신 차릴 수 없게 들볶았고 권생원도 돌아앉아서는 불평이면서도 누구에게나 우선 명령할 수 있는 것만, 채권자나 지주로만 보다 한층더 으쓱했다.
순사가 그전보다도 더 뻔질나게 들어왔다. 그전에는 투전꾼 팔근이한테 자주 가던 것이 이번에는 최초시의 아들 성필이에게 자주 들르는 것 같았다. 송도중학을 고학으로 애써 마치고도 사상이 나쁘다 해서 남처럼 취직을 못 하고 집에서 아버지의 농사일을 돕고 있는 성필이는 팔근이와는 반대로 팔근이가 나타날 농한기(農閑期)에는 성필이는 곧잘 어디 나가 한두 달씩 있다 오곤 하였다. 그러면 주재소에서 으레 불러 갔고 어떤 때는 읍에 본서로도 끌려가서 한번은 반 년 동안이나 갇혀 있다 나오기도 했다.
이해 농사는 천서방이나 억쇠가 보기에는 작년보다 나아 보였다. 그러나 경험 많은 노마 아버지나 점둥이 아버지는,
"웬걸― 일본이 전쟁은 자꾸 이긴대지만 하는 일은 자꾸 틀리는걸!"
하고 낯을 찡기곤 한다. 천서방이나 억쇠는 신답풀이로 이만하면 잘된 곡식인 것을 가지고 공연히 타박만 하는 것 같고 또 저희들이 봄내 여름내 땀 흘린 결과를 얕잡는 소리만 같아 차라리 듣기 싫었다.
회사에서는 타작하는 방법도 간단하고 공평한 것 같았다. 논 현장에 나와서 벼가 잘된 배미에서 한 평과, 덜된 배미에서 한 평을 작인들이 보는 데서 떨었다. 그 두 평에서 떨어진 벼를 사륙분을 해서 그것을 표준으로 전 평수를 따져 작인들의 육 할 소작료 수량을 정해 버리는 것이었다. 소작료를 육 할로 정한 이상, 이 쓰보가리(平刈法)라는 것은 서로 간편하고 틀릴 것 없는 방법이라 하였다. 그런데 이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억쇠네는 이천사백 평에 소작료가 아흔엿 근(斤)짜리 벼 스물네 가마니가 결정되었다. 이 스물네 가마니가 전체의 육 할이라면 그만치 소작료를 주고도 전체의 사 할인 열여섯 가마니가 억쇠네 것으로 떨어져야 할 것인데 마당질을 해놓고 보니 딴판이다. 소작료를 제하고 떨어지는 것은 단 아홉 가마니밖에 안 되는 것이다. 회사에서 쓰보가리 표준으로 감정한 것은 전체 소출이 마흔 가마니인 것이나 정작 실지로 나온 곡식은 서른다섯 가마니밖에 안 되는 것이니 다섯 가마니가 축이 나는 것이다. 이 다섯 가마니나 부족이 나는 것을 잠자코 소작료를 물라는 대로 문다면 소작료는 육 할이 아니라 칠 할도 넘는 셈이 된다.
"봐라 내 말이 틀리나? 일본놈이 조선 지주보다 뭣 때문에 우리헌테 후할 줄 아니?"
아버지는 당장 오금을 박아, 억쇠는 마당에 벼가마니를 늘어놓은 채 회사로 달려왔다. 사택 마당에 등의자를 내다 놓고 신문을 보던 가토는 개가 짖어 대는 바람에 작인이 찾아온 것을 기웃해 내다본다.
"오늘 우리가 마당질을 했는데요."
"나니?"
억쇠는 서투른 일본말을 섞어 가며 정성껏 설명해 보았다. 조선 나온 지 이십 년이 넘는다는 가토는 억쇠가 조선말로만 하여도 못 알아들을 리 없었다.
"거짓말이 말아."
다 듣고 나서 가토의 말이었다.
"거짓말이 뭡니까? 지금 마당에 그대루 있구 동네 사람들이 다 보았습니다."
"동네 사람야? 요보 백 명이나 말이 해도 우리 신용이 안 해."
"한두 가마니두 아니고 다섯 가마니나 틀리니 어떻게 회사서 정헌 대루야 바칠 수 있습니까?"
"이놈아? 쓰보가리 우리 사람이 혼자 했나? 네 누깔이 한가지 보지 않었니? 너이도 좋다고 말이 하지 않었나? 약속이나 하고 다른 말이 하는 것이 사람이까? 너이가 먼저 가리 해다 먹었으니까 모자라는 것이지. 빠가야로!"
"먼저 먹다니요. 먹었다면 무슨 불평이겠습니까?"
"잔말이 말아. 먼저 먹지 않었으면 절대로 부족이 될 일이가 없다! 다 사람이나 가격이 있는데 너만 무슨 말이 했소까? 가해레."
하고는 집 안으로 들어가 버리니 개는 점점 기승을 부려 짖고 덤비었다.
그런데 모자라는 것은 억쇠네만도 아니었다. 마당질을 해보는 작인마다 도깨비에 홀린 것처럼 멍청해 물러섰다가 벼 가마니를 다시 세어 보곤 하였다. 아무리 세어들 보고 따져 보아야 이상할 만치 억쇠네가 모자란 그 비례로, 육칠십 명 작인에 한 집도 예외 없이 똑같이 모자라는 것이었다.
작인들은 절로 한덩어리가 되어 회사에 진정해 보았으나, 회사측은, 회사 자의로만 한 것이 아니라 양쪽의 합의로 가장 정당한 방법으로 협의 결정한 소작료니까 계약을 무효로 돌릴 수는 없다고 내대었다.
벌촌과 가재울에는 이 쓰보가리식 소작료 이야기로 자자했다.
"떨어 가지구 그 마당에서 갈르는 게 상책이지 새 법식을 내는 것부터 알 증조거든!"
"아무리 새 법식이기로 이쪽에선 눈들 감구 있었나? 한 평을 가지구 했든지 두 평을 가지구 했든지 그걸 표준으루 평수 풀이만 제대루 한다면야 갈 데 없이 맞어떨어질 거지 주느니 느느니 할 나위가 어디 있느냐 말이야?"
"동척이 뭔지들 아슈?"
노마네가 마당질을 한 날 저녁이었다. 이 집도 줄었는가 늘었는가 궁금해서 모였던 사람들이 감정한 것보다 이 집도 네 가마니나 주는 것을 보고 이러니저러니 주고받는 이야기에 여태 듣고만 섰던 최초시의 아들 성필이가 말참례를 한 것이다.
"내가 또 입빠른 소릴 허우만, 쓰보가리라는 게 공정한 것 같어두 작인들만 곯겠습디다. 축이 나면 축이 났지 늘 린 절대루 없겠습디다."
"어째?"
"논에선 벼가 마르기 전 아니오? 벼알마다 부피가 컸을 건데 그걸루 돼보구 정한 것 아니오? 요즘 바짝 말른 건 벼알이 부피가 우선 적어졌으니 말 수가 줄 것이고 또 젖었을 땐 벼알 구실을 헌 반실짜리두 마당질에 와선 풍구질에 날려가 버리지 않소? 어디 부피만 그러우? 무게두 벌써 얼마나 차이가 생길 거요?"
성필이는 이것만 일러주지 않았다. 작인들이 단단히 짜고, 실지 소출된 것을 표준으로 한 육 할만을 소작료로 내게 된 것도 성필이가 뒤에서 훈수한 보람이었다.
그러나 가토란 자는 이상할 만치 순순하더니 겨울을 살짝 지내 놓고 땅이 작도 때가 지나 버린 뒤 벌써 논바닥에 재거름들을 내인 때에야 문제를 세우는 것이었다.
"논바닥에서 서로 제 눈으로 보고 공평하게 작정한 소작료를 제대로 안 바치는 작인은 위약이다. 못다 내인 소작료를 곡식으로든지 돈으로든지 바쳐라. 안 바치는 자는 땅을 뗀다."
지금 와서 땅이 떨어지는 날은 금년 농사는 실농이 된다. 며칠 동안 작인들은 울근불근해 보았으나 별수없었다. 가을에 가선 어찌하든 올농사까지는 이 땅을 물고 느는 수밖에 없었다.
억쇠네도 꼼짝 못 하고 벼 세 가마니 값 사십여 원을 이제는 주머니를 털고도 모자라서 차마 말이 나가지 않는 권생원한테 가 빚을 얻어다 회사에 바치었다.
'땅 없는 놈 설구나!'
소작을 평생 해먹느니 진작 죽어 버리는 게 마땅할 거다!
억쇠는 제 자신이 당하고 보니, 전날 단순히 동정만으로 점둥이 아버지나 점둥이 어머니를 딱해하던 것쯤으로는 아무것도 아닌, 소작인의 억울함과 희망 없는 일생을 비로소 제 혓바닥으로 쓴물을 삼켜 볼 수 있었다.
'도대체 땅이란 어째 임자가 따로 있는 거냐? 사람이 누가 바위멍덜을 절구질하듯 해 밭과 논을 만들었단 말이냐? 이놈들아 하늘은 왜 금을 긋고 세를 못 받어 처먹니?'
억쇠는 저녁마다 이런 울분과, 울분 끝에는 그래도 한줄기 공상을 해보곤 한다.
'이천팔백 원만 있으면.'
이것은 밭 하루갈이에 사백 원, 논 상답으로 평당 일 원 이십 전씩 쳐 이천 평에 이천사백 원 그래서 이천팔백 원인 것이었다.
'이천팔백 원, 이것 없이는 진작 죽는 게 낫다! 이천팔백 원을 버는 수는 없나?'
이 이천팔백 원의 꿈은 억쇠 하나만의 꿈도 아니었다. 억쇠 아버지나 노마 아버지나 점둥이 아버지들은 그저 지주님들의 후덕한 처분이나 바라든지, 죽어서 다시 태어난다면 그때나 한번 제 땅 농사를 지어 보는 팔자이기를 바라는 데 그치는 것이나, 젊은 노마나 점둥이는 하나같이 이 '이천팔백 원'의 꿈이 간곡한 것이었다. 색시 얻는 것이 아무리 깨가 쏟아진들 용길이네처럼 장가들기 때문에 그 알뜰한 땅을 팔게 되어서야 좋을 것이 없었다.
'땅! 밭 이천 평, 논! 이천 평. 사내자식이 그걸 장만할 재주가 없담!'
억쇠는 남의 땅 농사에 절로 마음이 들떴다. 분이는 올봄에는 얼굴이 함박꽃같이 피었다고들 했다.
"이 자식 점둥아?"
"왜?"
하루는 점둥이네 웃방에서다. 화로에 감자를 묻고 그 옆에서 짚세기들을 삼으면서였다.
"우리 돈벌이 한번 나가 볼까?"
"벌이? 어디루?"
그 말에는 억쇠도 대답이 막힌다.
"그 경칠 거 돈벌이 나감 자식 버린다구 늙은이들이 엄살만 않는다믄."
"자식을 버리다니?"
"너 모를라. 요 위 살던 광선이라구 더두 말구 조밭 하루갈이 살 것만 벌어 갖구 온다구 공사판으루 쫓아다니더니 가막소루 가 콩밥만 이탤 먹었단다."
"콩밥은 어쩌다가?"
"돈이 그까짓 공사판으루나 대녀 가지구 벌 게 뭐냐? 돈 보니 욕심은 나구 이 녀석이 노름을 했거던, 노름은 누가 그냥 져주나? 나중엔 노름채두 달리니까 밥장수 주머닐 털었다든가."
"돈을 벌랴면 먼저 궁릴 잘― 해가지구 나서야지, 등에 지게를 지구 나가는 게 불찰이지."
"넌 돈을 잘 버는 개성서 살어 봤으니 좀 좋은 궁릴 해내려무나."
"가만있거라, 그렇지 않어두 경칠놈의 돈, 더두 말구 내 이천팔백 원만 벌 궁릴 연구중이시다!"
"이천팔백 원!"
"그래, 더두 싫다, 이천팔백 원!"
"그거믄 자농헐 건 되지!"
"밭 하루갈이, 논 이천 평, 내 삼 년 안으루 사놀 테니 봐라!"
"뭘루?"
"이천팔백 원으루지!"
마침 화로에서 감자가 피― 소리를 내며 재를 뿜었다.
"이 자식아 감자가 다 웃는다!"
하고 이들은 껄껄대었다.
억쇠나 노마가 돈 이천팔백 원 모을 궁리가 아직 나서기 전에 세상은 점점 소란해 갔다. 개성이나 사리원 한번 가는 것도 여행증명이 있어야 했고 명색이 지원병이나 강제로 지원병 추리는 것이 점점 심해 갔다. 억쇠나 노마나 점둥이는 소학교도 다니지 못한 것이 이런 때는 다행으로 수굿하고 풀 속에나 머리를 박는 것이 수였다.
7
동척에서는 저희가 예산한 대로 작인들이 한 명도 뻗대지 못하고 나머지 소작료를 빚을 얻어서라도 갖다 바치는 바람에 다시 한가지 우리 땅 농사를 지으려거든 여기 도장을 찍어라, 하는 종이쪽을 내어밀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해마다 새로 소작료를 정하기는 서로 귀찮으니 일정한 도지로 정해 버리자는 것이요, 그 도지의 표준수량은, 작년 가을에 그 칠 할이 넘는 억울한 수량 그대로인 것이다. 회사측으로 가토는 이런 비싼 소작료를 이렇게 설복시키려 들었다.
"지금은 신답이니까 구답보다 벼가 적게 난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삼 년만 비료를 넣어 봐라. 그담부터 이 소작료는 오 할도 안 되게 소출이 많어질 것이다. 그것은 우리 거짓말이 아니다. 비료도 나라에서 우리 회사에는 특별히 많이 준다. 장래를 보아서는 너이헌테 얼마나 이익이냐. 사람은 장래를 볼 줄 알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도 한 가지 명령이 또 있었다.
"이제부터는 반도인도 다 같이 황국신민이다. 내지인과 한가지 창씨(創氏)할 수 있게 법률로 허락했다. 이번에 소작계약은 내지인식으로 창씨하고 이름까지 내지인식으로 고친 도장이라야 할 수 있다."
작인들은 갈팡질팡하게 되었다. 한두 사람 아니고 육칠십 명이 갑자기 조선 지주들의 땅으로 돌아 붙을 재주는 없다.
아무리 거름을 실하게 넣는다 하더라도 이삼 년 동안에 구답 소출이 날 리 없는 것이요 생일날 잘 먹자고 미리 굶는 셈으로 장래는 육할 소작질 정도가 되리라 해서 당장 몇 해 동안을 칠 할 오 부나 되는 소작료에 도장을 찍을 용기는 나지 않는다. 더구나 그까짓 계약을 창씨를 해야만 해준다니 더 아니꼽다.
창씨 때문에 시달리는 것은 벌써 몇 달째 된다. 성을 갈라는 것은 아비를 갈라는 욕이나 마찬가지란 말을 했다가 최초시는 주재소에 불려가 이틀 만에 나왔다. 벌써 팔근이는 '가네오카'라, 달운이란 팔근이 짝패는 '미쓰이'라 창씨를 해서 주재소에서 모범청년이란 말을 듣는다.
억쇠는 이 창씨 문제에 처음에는 누구보다도 귀가 솔깃했었다. 죽은 어미가 '팔월이'였던 것, 아비 이름은 '돌이'인 것, 제 이름은 '억쇠'인 것. 누가 보나 이름부터 남의 집 종문서에나 박힐 천티 있는 이름이다. 상전이 망하는 바람에 종살이에서 풀려난 이상, 성부터 이름까지 이 김에 깨끗이 갈아 버리고도 싶었다. 그래 처음에는 누구보다도 먼저 들먹거리었으나 팔근이나 달운이 따위가 앞을 질러 가네오카니 미쓰이니 하고 고갯짓을 하는 것이 아니꼬울 뿐 아니라 최초시가 붙들려 가 욕을 당하고 나오는 것을 보고는 더 반감이 생기었다.
'우린 이래두 조선놈이요 저래두 조선놈이다! 창씨하는 놈들 하나같이 간사한 놈이드라봄 차라리 미욱한 놈 소리 듣다 조선놈째루 죽자.'
억쇠는 저희 아버지더러,
"그래두 최초시나 성필이한테 의논하기 전엔 허란다구 덥석 허지 맙시다."
일러두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아도 면에서 적극적으로 창씨 실시운동을 나오려던 판에 동척 작인들이 창씨 안 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 것을 알고 면소에서는 순사를 데리고 나와 권한다기보다 강제로 시키게 되었다. 윤가는 서울서 윤아무개가 이토로 하였으니 이토요, 이가는 서울서 이아무개가 가야마로 했으니 가야마로, 심가는 본관 청송(靑松)이라 해서 아오마스로 이런 투로 성을 노느매기하듯 하는 판에,
"이전 성두 배급이군."
한마디를 했다가 억쇠는 면서기한테 따귀를 한 대 벌었다. 아들이 따귀 맞는 것을 보고는 천서방은 이내,
"아무걸로라두 나리님네 생각대루 져주세요니까."
해서 성은 야마다, 이름은 아비와 아들이 형제간처럼 후미오와 다케오가 되어 버렸다.
"우린 친척들이 고향에 있으니 뭐라구들 짓는지 알어봐야겠어요."
"우린 여태 호주가 아버지시니까 아버지가 고치기 전엔 내 맘대루 할 수 없어요."
옆에 서너 사람은 핑계가 있었다. 자기가 호주요 의논해 볼 친척도 없어 다만 입맛만 다시다가 집에 와 골을 싸매고 누운 사람은 노마 아버지뿐이었다.
'성을 갈어야 땅을 줄 테라구? 그 푸진년의 땅을! 내 대에 와선 농산 져먹어두 내 조상님엔 사신 다니던 분두 계셔! 누구루 알구 허는 수작이야.'
노마 아버지는 이날 저녁 권생원을 조용히 찾아갔다. 권생원은 노마 아버지가 온 눈치를 이내 알아차렸다.
"어서 덕근이 김서방두 창씨를 허지요. 별수 있는 줄 아우?"
"나 전에 부치던 땅만 못헌 거라두 한자리 주시고?"
"흥, 창씨하기 싫여 동척 땅 놓는 사람두 그저 두지 않겠지만, 그런 사람 땅 주는 지주도 좋지 못헐 거라구 면장님이 다짐을 받다시피 헙디다. 어서 창씨허구 가미다나두 말썽들 부리지 말구 하나씩 사다 시렁에 얹어 두지요. 별수없습니다."
정말 별수없었다. 동척 땅 이외에는 얻을 도리가 없었고 동척 땅 소작을 눌러 하자면 창씨는 물론, 소작료도 저희 정하는 대로 복종하는 수밖에 없었다. 명령에 복종할 뿐이요, 이쪽 의견은 용납될 곳이 없었다. 날이 갈수록 명령할 줄만 아는 웃사람만 늘어 갔다.
용길네 밭자리에 우선 안채만 세우고 들어온 도조면장의 아들 도조도쿠지는 읍에 있는 경방단(警防團)의 부단장, 그의 끄나풀인 가네오카팔근이는 경방단원이 되어 가지고 그전보다 고갯짓이 늘어 가며 이틀이 멀다 하고 읍출입이 잦았다. 일본말은 억쇠만큼도 못 알아듣는 미쓰이달운이까지 저희 동생이 지원병훈련소에 뽑혀 간 것을 자세로 도쿠지패에 얼려 다니며 촌사람들 몰아세우기가 일쑤가 되었다.
하루는 이 미쓰이달운이가 도쿠지의 자전차를 얻어 배우는 모양으로, 도쿠지네 마당에서 올라앉으면 억쇠네 마당까지 후들거리고 내려와서는 자전차를 가누지 못하고 쓰러지곤 한다. 그 바람에 억쇠가 마당 둘레에 모종해 놓은 댑싸리가 함부로 짓밟히고 부러지고 한다.
"그런데 달운인 눈이 없나?"
억쇠는 보다못해 한마디 걸었다.
"느네 댑싸리 좀 밟었구나. 나라에서 댑싸리 심으라든?"
"넌 나라에서 허래는 것만 꼭 허니?"
"그렇다 왜, 우리나 도쿠지상네 마당에 누깔이 있거던 가봐라. 뭘 심었나 건방진 새끼, 다리 뭉두리가 근지러우냐?"
이것은 마당에 나라에서 전쟁 때문에 장려하는 피마자를 심지 않았다는 트집이었다. 억쇠는 꿀꺽 참고 물러났다. 나중에 물으니 그는 방공감시초원(防共監視哨員)이 된 것이다. 억쇠는 '그까짓 댑싸리 몇 대쯤 모른 체할걸!' 하고 후회하였다. 조선에도 기어이 징병제도가 생겨, 벌써 이 동네서도 장근이와 용길이 동생이 징병검사로 끌려간 것이다. 이런 무시무시한 판인데 방공감시초원이란 어떤 것인지는 몰라도 달운이가 요즘 안하무인으로 꺼떡대는 것을 보아 슬그머니 겁이 나기도 한다.
세상일뿐 아니라 하늘일도 해마다 이상했다.
비가 제법 기다리기 전에 내려 주어 품앗이 급하지 않게 모를 내어 놓고 나니 그쳐야만 할 비가 지나치게 퍼부어 가지고 흙탕침수를 대엿새 겪었다. 그런데다가 벼농사로는 제일 아기자기한 이삭 솟을 무렵에 이르러 비가 시작이다. 이틀, 사흘, 밤에 잠들기 전에 나가 보아도 하늘은 별이 나지 않았고 새벽에 눈을 뜨기 전에 베개에서 귀를 드나 빗소리는 마냥 그대로다. 어떤 때는 비가 안 와서 걱정, 어떤 때는 이렇게 지나치게 퍼부어 걱정, 어떤 때는 바람으로, 어떤 때는 냉해로, 충해로, 농사일은 당하고 보니 육신의 노력만이 아니라 반 이상이 마음 고생으로 되는 것이었다. 비는 기어이 장마로 채려 무엇보다 꺼리는 '배동바지수침'이 되고 말았다. 벼이삭이 순째 썩어 버리는 것이다. 반농사는커녕 삼분지 일 소출도 거두지 못하게 되었다. 지주측과 또 말썽이 벌어지게 되었다. 가토 녀석이 제 눈깔로 가끔 나와 벼 된 꼴을 보고도 일단 도지를 정한 이상, 정해진 대로 소작료를 내라는 것이었다. 마당질한 것을 죄다 바쳐도 소작료도 못다 되는 것은 억쇠나 노마네뿐 아니라 거의 전부다. 어떤 사람은 벼를 베다 마당질할 맛이 없어 그냥 논바닥에 내버려두었다가 면에서 호령하는 바람에 마지못해 베어 들였다.
아무튼 집을 팔아 베이기 전에는 소작료대로 복종할 길은 없다.
이번에는 소작료를 못 내겠으면 땅을 내놓아라 그러는 것도 아니었다. 회사로서 나라에 바칠 군량인데 이를 거절하는 자들은 우선 '비국민'이라는 낙인을 찍었다. 그렇지 않아도 만 명 작인들의 경관이 아니라 한두 명 지주들의 병정이던 칼자루들이 비국민으로 몰리는 작인들에게 모른 체할 리가 없어, 주재소에서는 작인들에게 주재소로 모이란 명령이 내렸다.
가을 햇볕이 아직 따가운 신작로 마당에 젊은이 늙은이 육칠십 명이 주재소 문간을 쳐다보고 둘러섰다. 밤낮 웃통을 벗어던지고 지내던 양돼지 같은 소장이 정복을 차리고 나와 먼저 '고고쿠 신민노 치카이'를 시키더니, 술자리에서 지껄이던 것보다는 똑똑한 조선말을 꺼내었다. 관청에서 조선말은 금하는 것이나 저희가 급할 때는 별수없었다.
"이제는 반도 사람이도 내지 사람이나 한가지 대일본제국 군인이 되었다. 일시동인(一視同仁)하시는 천황폐하께옵서의 은덕에 보답할 수 있게 되었다. 얼마나 기쁜 일이냐? 귀축 미영은 무엄하게도 황군이 점령한 가다루가나루에 상륙했다 한다! 우리 황군은 물론 일격에 물리칠 것이다. 이러한 국가가 다난한 때에 있어, 또 그것과 다르다, 인젠 완전한 황국 신민으로 저 하나만 자리 먹겠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대일본제국 신민이 아니다! 나라가 없어 보아라. 너희가 모두 어떻게 될 것인가?"
하고 소장은 발을 굴렀다. 억쇠 생각에는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였다. 이런 나라 때문에, 잘 되기는커녕 못 되기만 하는 저희들이기 때문이었다. 얼굴이 간지러운 염치없는 수작을 용케도 해가 기울도록 떠들어대더니 나중에는,
"이렇게 알아듣도록 말이 해도 듣지 않는 자는 만주로 이민을 시킬 생각도 하고 있고 또 끝까지 반대하기로 선동하는 자는 용서 없이 체포한다."
을러대었다. 그리고 억쇠로서는, 아니 누구나가 다 전혀 생각지 못하였고 생각해 보아도 모를 일이 일어났다. 그것은 벌촌에서 사는 억쇠네와도 한두 번 품앗이가 있은 기무라충신이라는 작인이었다. 얼굴이 지지벌개서 소장이 섰던 주재소 문턱으로 올라서더니,
"여러분?"
하고 그도 제법 연설을 꺼내는 것이었다. 지금은 '비상시국'이니, '같은 국민으로 남은 전지에 나가 목숨을 바치는데'니, 결국 '나는 오늘 여기서 소장님 말씀에 감동해서 소작료를 전부 바치고 보겠다, 여러분도 황국 신민으로서 나라에 대한 충성으로 다시 한번 생각하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바쁘게 뒤에서 누가,
"옳소."
하고 소리를 친다. 돌아다본즉, 회사 땅과는 아무 상관도 없을 뿐 아니라, 제 아비 농사에도 호미 한번 잡는 일이 없는 가네오카팔근이 녀석인 것이 우스웠고, 기무라충신이도 바로 사흘 전에 억쇠만도 아니요 여럿이 듣는 데서, 저희도 소작료만 두 가마판이 모자란다고 말했고 그것이 서로 아는 한바닥 농사에 엄살만도 아니었을 것인데 무얼로 소작료 전부를 낸다는 것인지 이상하였다.
작인들은 덤덤히 입맛만 다시다가 돌아설 수밖에 없는데 신작로를 삼 마장도 못 나와서다. 정순사가 자전차로 따라오더니 김덕근이를 찾았다. 노마 아버지였다.
"제올시다."
정순사는 자전차를 돌려 세우고,
"나잇살이나 처먹은 게……."
하더니 흘긴 눈으로,
"빨리 주재소로 와."
하면서, 무슨 일이냐 물어 볼 새도 없게 날름 달아나 버린다. 모두 눈이 둥그래졌으나 맨 벌촌 사람들뿐이요, 가재울 사람은 이 노마 아버지와 점둥 아버지와 억쇠뿐이었다.
"무슨 일일까요?"
"모르겠는데…… 오래니 가볼밖에."
노마 아버지는 말로는 태연한 체하나 손은 후들후들 떨었다.
"우리 따라가 봅시다."
억쇠가 점둥이 아버지더러 그랬으나 그는 어둡기 전에 가다가 산에 매어 논 소를 끌러야 하고 꼴도 두어 단 베어야 했다. 억쇠만이 노마 아버지를 따라 섰다.
"그런데 왜 오랄까요?"
"내 옆에 팔근이녀석이 섰드리니……."
"그 자식이 섰었기루 괜한 사람을 뭐랬을까요?"
"내란 사람이 안 해두 좋을 소릴 가끔 헌단 말야!"
"무슨 말씀을 하셨게요?"
"아 그년에 고답지두 않은 나라 나라 하기에 글쎄 백성이 살구 나서 나랄 거 아니냐구 하두 비위가 틀리게 혼잣소리처럼 했는데 나중에 그 옳소 허는 소리에 돌려 보니 바로 내 뒤에 팔근이녀석이 섰지 않어! 필시 그걸 그 녀석이 찔른 게로군! 다른 거야 뭬 있을 게 있나……."
"그걸 고자질했음 그누므 새낄 죽여 없애죠."
"경칠 거 그만 말 한마디에 사람 어쩔라구!"
"조선눔끼리 서루 잡는담!"
"그러게 망했지!"
주재소는 노마 아버지가 들어서기 전에 이미 살기 등등해 있는 판이었다. 웃통을 벗어제친 소장은 웬 츠메에리 양복의 청년 하나를 그의 하이칼라 머리를 한 손으로 끄들어 쥐고 절레절레 흔들더니,
"오늘 이 같은 시국에 머리 길러 무슨 일이 있나? 나마이키야로……."
하고 뺨을 철석 갈긴다. 그리고 노마 아버지가 문간에서 어릿거리니까 정순사더러 저것이냐 물었고 그렇다니까 냉큼 들어오라고 소리를 질러 노마 아버지는 진작 들어서니만 못한 것 같았다. 소장은 다시 하이칼라 머리 청년에게 '고고쿠 신민노 치카이'를 읽으라 했다. 청년은 머리를 끄들려 눈물이 글썽해 가지고 입술을 축여 떨리는 발음을 낸다.
"고고쿠 신민노 치카이, 이치, 와타쿠시도모와 다이니혼데이고쿠노 신민데 아리마스. 니, 와타쿠시도모와 고코로오 아와세데 덴노헤이카니 츄기오 쓰쿠시마스. 산, 와타쿠시도모와 닝쿠단렌시데 릿파나 쓰요이 고쿠민토 나리마스(황국 신민의 맹세, 일, 우리들은 대일본제국의 신민입니다. 이, 우리들은 마음을 합하여 천황폐하에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삼, 우리들은 인고 단련하여 훌륭하고 강한 국민이 되겠습니다)."
이렇게 끝까지 틀리지 않고 외운 덕으로 청년은 더 맞지는 않고 머리만 가위로 앞이마를 두어 군데 잘리고 놓여 나왔다. 노마 아버지는 주름살에 땀이 흥건하던 얼굴이 새파랗게 졸아들어 가지고 그 청년이 섰던 자리로 끌려 나섰다.
소장은 말을 눈깔로 뱉는 것처럼 눈을 부릅뜬다.
"오마에모 데이코구노 신밍카(당신도 제국의 신민인가)?"
노마 아버지는 자기더러도 '고고쿠 신민노 치카이'를 읽으라는 줄로 알았다. 이것을 외우지 못하면 담배배급도 고무신배급도 못 탄다 하여 또 무슨 모임에서나 으레 부르는 것이어서 한두 번만 명심한 것이 아니나 도무지 아리송한데다가 우둔이들이었다. 그러나 외우는 시늉만이라도 아니할 수 없다.
"이치…… 와타쿠시도모와 다이일본노 데이쿠노……."
"난다 고노야로(뭐야 이놈)."
하더니 철걱 소리가 났고 잡은 참 세 번에 노마 아버지는 '아이쿠!' 하고 코피를 쏟으며 주저앉았다. 주저앉은 것을 일어서라고 구둣발로 내지른다. 대뜸 급소를 차인 듯 밖에서 듣기에도 소름이 끼치는 외마딧소리가 난다.
"무엇이라고? 나라는 망해도 종 거시다? 내가 먹어야겠다고?"
"아이구 그랬을 리가 있습니까요……."
"거짓말이 마라. 들은 사람이가 있다. 이 나―쁜 놈의 자식아."
또 철걱 소리가 난다.
"아이구……."
"이놈아? 너 같은 비국민은 죽여 종 것이다!"
하더니 경방단원들 연습시키는 목총(木銃)을 집어 온다. 딱 소리가 나는데 분명히 어느 뼈대에서 튀는 소리다. 소장녀석은 시끈거리며 일어선다.
"아이구! 나릿님? 나릿님? 살려 주시기요!"
"무엇이?"
"다신 다신…… 죽을 죄라 한 번만 용서해 주시기요…… 으흐 으흐……."
이 처량하게 떨리는 소리에 억쇠는 가슴이 섬뜩했다.
'별수없구나―--- 우리헌텐 비는 것밖에…….'
억쇠는 가까이 엿듣고 있는 것조차 무서워졌다. 성큼성큼 두어 집 건너로 물러서고 말았다.
주재소 안에 남폿불이 꺼졌을 때에야 노마 아버지는 비척거리며 그 속에서 나왔다. 나가라는 소리가 다시 살라는 소리 같아 허겁지겁 나오기는 했으나 주재소가 아닌 데서는 한 걸음을 제대로 옮겨 딛지 못하였고 맞을 때보다 더 섧게 가슴을 치며 울었다. 얼굴이 뒤웅박이 되고 옆구리는 쓰지 못하거니와 한쪽 정강이뼈가 으스러졌다. 억쇠는 아무 집으로나 뛰어들어가 우선 솜을 얻어 태워다가 노마 아버지의 정강이를 싸매고 시오 리 길을 업고 들어오는 수밖에 없었다.
노마는 이내 옥도정기를 얻으러 나서고 노마 어머니는 물을 떠다 영감의 코피를 닦아 주기에 정신이 없었다. 억쇠는 부엌을 지나 슬그머니 나오려는데 분이가 물사발을 들고 가로막았다. 아닌게아니라 땀만은 매맞은 사람보다 더 쏟은 억쇠는 목이 조이던 김에 사양 않고 덥석 받았다. 꿀물이었다. 단숨에 들이켜고 나니 아버지께도 한 그릇 들여다 놓고 나오는 분이가 이번에는 억쇠가 내어미는 그릇을 받았다. 그리고도 길을 비키지 않더니,
"저기 도랑에 가 땀 좀 씻구 가요."
한다. 분이네 부엌 뒤로는 맑은 도랑물이 흘렀다.
"괜찮어."
"어서요."
하고 어둠 속에서 박꽃 같은 분이가 얼굴을 돌이키지 않는다. 그 얼굴에 무슨 말을 하고 싶은데 답답하기만 해서 억쇠는 잠자코 분이가 시키는 대로 부엌 뒤로 나왔다. 땀난 등허리보다 가슴이 더 뜨겁다. 적삼을 벗어 팽개치고 도랑에 들어섰다. 분이가 쪽박을 들고 따라나왔다. 물을 떠가려나 보다 했는데,
"더 숙여요."
하더니 쪽박으로 푼 물을 제 잔등에다 부어 준다.
저녁이면 밭에서 들어온 저희 오빠를 씻어 주던 솜씨인지는 몰라도 분이는 조금도 서투르지 않다. 물을 두어 번 끼얹더니 그 매끄러운 손바닥으로 뽀득뽀득 밀어 준다. 여름내 탄 등허리는 꺼풀이 자꾸 밀리었다. 억쇠는 분이가 그것을 때인 줄 알까 보아 그것만 걱정되었다.
분이가 내다 주는 낯 수건으로 얼굴까지 닦고 적삼을 입으려고 찾으니 적삼이 간데없다. 분이가 쪼르르 다시 나타났다.
"이걸 입구 가요. 등에 피두 막 묻은걸요."
"빨믄 되지 뭐."
"그리게 두구 가요."
"나는 못 빠나."
"빨래를 다 해요 뭐."
"밥두 허는데."
"아이 망칙해!"
"그럼 헐 사람이 없는 걸 어떡헌담!"
"그리게 내가 빨아 드린대두."
"괜찮대두."
"고집 너머 씀 나뻐!"
하면서 분이는 들고 나온 저희 오빠의 빨아 다린 적삼을 댑싸리 위에 놓고 달아난다.
억쇠는 품은 좀 좁은 듯한 동무의 적삼을 입고 혼자 집으로 돌아올 때 시오 리 길이나 무거운 걸음을 한 다리가 조금도 아프지 않았다. 컴컴한 집 속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아 그냥 큰길로 나와 오래도록 별들을 쳐다보았다. 어머니 묻던 날 밤과는 딴 하늘처럼 억쇠의 눈에 별들도 처음 고와 보였다.
8
억쇠의 눈에도 저녁마다 밤하늘의 별은 고와졌으나 추수한 것 전부를 바치어도 모자라는 소작료 때문에는 눈알이 솟았다.
'봄내 여름내 땀국을 물 먹듯 허구 일헌 게 누군데, 먹진 못해두 소작료는 내라는 거냐? 미리 주재소를 끼는 건 죽어두 짹소리 말란 말이지! 찢어발길놈의 새끼들…….'
억쇠는 같은 농군이긴 하나 공부도 많이 했고 가끔 억울한 사람들을 위해 입바른소리도 해주던 성필이를 넌지시 찾아갔다. 성필이는 자기 일처럼 반가워했을 뿐 아니라 진작부터 동척 작인의 하나로 벌촌서는 말마디나 하고 기운꼴도 쓴다는 택길이와 내통이 있는 것도 알았다.
"인제 택길이가 무슨 말이 있을 테니, 모두들 택길이가 허자는 대로만 해요들."
아닌게아니라 며칠 안 있어 이른 아침인데 벌촌에서 택길이네 이웃에 사는 작인 하나가 헐덕거리고 찾아왔다. 억쇠더러 노마와 점둥이를 불러 오라 하더니 벌촌으로 같이 나가자 했다. 가서 보니 벌촌까지는 아니요 권생원네 삼포 있는 뒷등성이인데 길에서는 사람이라고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으나 올라와 보니 젊은 축들로만 사십여 명 작인이 모여 있었다. 이 속에 성필이가 와 있었고 성필이 옆에는 밀짚모자는 썼으나 농사꾼 같지 않은 낯선 사람도 하나 앉아 있었다. 벌촌 쪽에서도 서너 사람 더 나타난 뒤에 택길이가 일어서니,
"인전 얼른 이리들 모이슈."
했다. 모두 성필이와 그 낯선 사람을 중심으로 둘러앉았다. 아무도 낯선 사람을 인사는 시키지 않는데, 그는 얼굴도 희고 손길도 곱상하나 어딘지 억척배기 택길이만 못하지 않게 묵직해 보이는 얼굴이다. 그는 넓적한 입으로 담배만 빨았고 성필이가 좌우를 둘러보더니 먼저 말을 꺼내었다.
"나는 동척 작인은 아니우만 역시 남의 땅으루 농사 짓는 녀석으루 밤낮 억울헌 꼴 당하고 살기는 마찬가지요. 자, 올가을 일을 여러분 어떻게들 허실려우."
잠깐 서로 두리번거리기만 하다가 택길이가,
"어떡허긴 어떡해요? 모두 꿀 먹은 벙어리지만 속두 그런 줄 아슈? 어느 경칠놈이 농사 죽드룩 져서 회사 좋은 일만 한단 말이오?"
하고 대뜸 눈방울이 두리두리해진다.
"안 그렇구!"
"무슨 요절을 내야 해 이건!"
"상에 붙들려 가기밖에 더허겠수!"
"그런데 충신이자식은 저이두 소작료만두 모자란다구 끓던 자식이 뭘루 낸다는 거야 대체?"
"흥! 그럭험 누군 못 내!"
평소에 말이 적던 춘삼이 김서방이 곰방대를 뽑고 침을 찍 뱉으며 하는 소리였다.
"그럭험 누군 못 내다니?"
"아, 면장님이 모자라는 건 당해 줬답디다."
"뭐?"
모두 눈이 둥그래진다.
"면장이 당해 주다니요?"
여럿이 모인 데서는 처음 말참견을 해보는 억쇠의 목소리였다.
"충신이 색시가 면장님이 저이핸 당해 주기루 했다구 자랑삼아 우리집 사람더러 지껄이드라는데 그래."
"면장님은 무슨 님? 죽일놈들!"
택길이가 주먹을 불끈 내밀었다.
"죽일놈들인 게 보란 말이야! 이를테면 저인 엄살루 죽는 체허구 우리더런 따라서 진짜루 죽으란 속이지?"
아직껏 듣기만 하고 있던 낯선 사람이 피우던 담배를 꺼버리고 좌중을 둘러보았다. 그나 날카로운 눈매다. 앉은 채 별로 서두르지도 않고 여태 하던 이야기나 계속하듯 말을 시작했다.
"여러분이 소작료로 억울한 일 당해 본 건 이번이 처음 아니리다. 이게 앞으로도 한두 번 있구 말 거라면 여러분도 기를 써 싸워 뭘 허겠소? 그렇지만 지주가 따로 있구 작인이 따로 있는 이런 제도가 남어 있는 날까지는 이런 견디랴 견딜 수 없는 이해상반되는 충돌이 자꾸 계속될 거니까, 이걸 고치자는 거구 더구나 이번에 여러분들처럼 지주 편에서 하라는 대로만 하다가는 별수없이 굶게 되니까 헐 수 없이 무슨 도리를 채리자는 것 아니오?"
"그럼은요!"
택길이의 대답이었다.
"원형이정으루 생각해 보슈? 아무리 남의 땅을 부쳐서라도 십 년을 근고닥는 일이라면 그래두 북정밭 한 뙈기라도 늘게 돼야 헐 게 아니오? 세상에 무슨 일 쳐놓구 십 년을 해서 늘진 못허구 고대로만 있는 일이 어디 있단 말이오?"
"어디 고대로만 있으면 좋게."
성필이가 그와 친구간처럼 반말로 받는 대꾸였다.
"허긴 고대로가 아니라 빚만 늘어 가는 거 아니오? 작인들은 빚이 늘었는데 지주들은 그 십 년간에 무에 늘었소? 호강으로 살고도 땅이 늘지 않었소? 종처럼 부리는 작인이 늘지 않었소?"
말뜻은 야무지나 말투가 소탈해서 옆에서 누구나 얼른 말대꾸가 나와진다.
"참 너무두 공평치 못해요니까!"
"아무튼지 여러분들의 금년 추수는 죄다 바쳐두 소작료도 못 된다는 것 아니오?"
"밭농사꺼지 팔어 대면 되죠니까."
"그럼 점둥이넨 밭농사까지 팔어 벼루 해다 바치겠단 말이야?"
"그렇단 말이지 어느 경칠놈이……."
"쉬―"
"문제는 간단헌 거요."
이번엔 성필이가 말을 이었다.
"문젠 간단헌 게, 앉어 빼앗기구 죽느냐 일어나 싸워서 안 뺏기구 사느냐 양단간에 하나뿐인데 여러분 어느 편을 취할 테요?"
"싸우면 안 뺏기구 무사헐까요?"
"비러먹을 소리 마라. 땅 짚구 헴치는 노릇만 할 테냐? 중간에 일 잡치지 말구 겁이 나건 그런 물신선은 미리 빠져요."
벌촌에서 온 경순이란 젊은 작인이다.
"누가 겁이 난대?"
"뭐야 그럼?"
"쉬―"
다시 조용해지기를 기다려 이번엔 낯선 사람이 다시 말을 시작했다.
"권력을 쓰는 놈들과 시비곡직을 가리자면 별수없이 쌈이 되는 거요. 권력과 싸우는 데는 이쪽에선 단결밖에는 수가 없는 거요. 여러분이 한데 뭉쳐 결정헌 대루 끝까지 뻗대구 나가기만 헌다면 결국 수효 많은 편이 이기는 거요. 또 옳고 그른 것이 싸우는데 끝까지 싸우기만 하면 옳은 게 꼭 이기고 마는 법이오. 어느 누가 듣든지 죽도록 농사 진 사람 굶어 죽지 않겠다구 나서는 노릇을 글다군 안 할 거요. 이런 떳떳한 일일 바엔 여러분 맘먹게 달린 것 아니오? 지주 편에서 다신 얕잡어 보지 못하게 지주들의 병정인 관리놈들이 허턱 지주 편만 들구 나서지 못하게, 작인들도 미물이 아니라 사람이란 것 똑같은 사람이란 걸 한번 본뵈기를 보입시다. 여러분을 짓밟는 발은 여러분의 손으로 분질러 놔야지 하늘만 쳐다본다구 되는 게 아니오. 이놈들이 신문에도 내지 못하게 하니까 그렇게 작인들이 들구 일어나 지주들의 악착한 착취를 거절하구 싸워서 이기는 일이 조선에두 자꾸 늘어 가며 있는 거요. 소련을 보시오. 여러분은 모르고 있으리다만 거기서는 땅은 모두 농사 짓는 사람만 갖게 된 거요. 땅을 차지허구 농군들이 지어 논 농사를 들어다가 저이만 호의호식하던 불한당 지주떼들은 거기선 다 없어진 거요. 절로 그렇게 된 줄 아시오? 농군들이 들구 일어난 거요. 거깃농군들이라구 별사람이 아니라 모두 여러분이나 다름없는 농군들이었지만 견디다 못해 단결해 가지구 일어났던 거요. 그게 옳은 일이기 때문에 세계 각국에서 농민들이 일어나며 있구, 그래서 세계 각국에서 농민들의 옳고 떳떳한 요구가 자꾸 실현되고 있는 거요. 생각들 해보슈. 농군은 일은 혼자 허구 굶주리구, 농군은 일은 혼자 허구 헐벗구, 농군은 일은 혼자 허구 병이 나두 못 고치구, 농군은 일은 혼자 허구 자식을 낳두 가르쳐 못 보구, 그게 그래 그대로 나가야 할 세상이란 말이오?"
낯선 사람의 입에서는 단김이 확확 끼치었다. 입술을 축여 가지고 그는 더 조리 있게 더 가슴을 푹푹 찔러 주는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이 세상이 처음부터 한두 사람 때문에 여러 만 명이 억울하게 살아야 하는 마련은 아니었다는 것, 하늘과 바다가 임자 없이 있듯 땅도 임자가 따로 있을 것이 아니라는 것, 땀 흘려 다루는 사람이 임자일 것이지, 어느 한 사람이 차지하고 여러 사람의 힘을 착취하는 죄악의 도구로 이용되고 있는 것은 잘못이란 것, 인간의 역사에 임금과 양반이 생기게 된 원인이며 또 임금과 양반의 지위나 신분으로도 소용이 없게 돈이 제일인 시대에 이르게 된 것, 다시 이 앞으로는 돈이나 땅 임자의 세상으로 굳어 버릴 수도 없이 그 자체가 병이 되어 역사는 어쩔 수 없이 변해 나간다는 것, 그것이 인류가 개인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좋아지는 당연한 발전이라는 것, 그러나 이런 발전이 절로 되기를 바라는 것보다 인간의 다대수요 이런 악제도 때문에 가장 피해자들인 노동자와 농민이 단결해 일어나야 그 발전이 빨리 된다는 것, 그리고 기무라 충신이처럼 밸 빠진 짓 하지 말고 악하고 내 행복을 짓밟는 놈은 털끝만치도 아첨은커녕 도리어 털끝만치도 용서 없이 정정당당하게 미워하고 총과 칼에라도 대항하고 싸워야 우선 그게 사람이요 그게 사람의 사는 거며 이런 사람다운 산 사람이 자꾸 늘어 나가야 악한 놈들이 잡은 권력이나 제도가 빨리 무너져 나갈 것이라 했다.
모두가 엄숙해졌다. 누구나 허턱 살고 싶어하는 '삶'이란 이렇듯 비장한 결심에서 맨주먹으로 총칼을 향해 나가야 누릴 수 있는 건가! 이것을 비로소 깨닫기 때문에 또 주재소 소장녀석이 용서 없이 체포하겠다던 말이 생각나서 어떤 사람은 얼굴이 해쓱해지고 눈도 어웅해진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한테도 세상을 볼 줄 아는 눈이 이제 비로소 트이는 것 같아 그 순박한 눈에 얼음쪽 같은 총기도 솟는다.
억쇠도 마음속에 큰 파동을 일으켰다.
'세상엔 우리 편을 들어 소귀에 경을 읽어 주는 사람도 있구나.'
억쇠는 낯선 사람은 물론 성필이도 그전 몇 배 더 우러러보였다.
"여러분들?"
하고 낯선 사람은 다시 목을 다듬었다.
"여러분이 맹세하고 단결해 행동만 한다면 여러분은 땅도 안 떨어지고 소작료도 아무리 시국이니 무에니 해도 금년 같은 핸 안 내고도 배기게 되리다. 그건 여러분의 곁에 이 성필 씨 같은 좋은 동무가 있으니까……."
어디선가 버썩 소리가 나는 바람에 말이 끊기었다. 무엇을 보았는지 벌촌 사람 하나가 후닥딱 일어났다. 그가 뛸 때에야 솔포기 밑에서 일어서는, 모자끈을 턱에 건 정순사를 모두들 발견하였다.
"꿈쩍들 말아!"
그러나 꽁무니에서 포승을 뽑으며 올라서는 정순사의 눈초리가 성필이나 낯선 사람만을 노리는 틈을 타 농군들은 쫙 흩어졌다. 성필이도 휙 돌아섰다. 그러나 성필이나 낯선 사람의 등뒤에는 어느 틈에 눈깔 툭 불거진 주재소 소장녀석이 권총을 대고 떡 막고 서 있었다. 어디서 우지끈 소리가 났다. 택길이가 팔따지 같은 참나무를 분질렀으나 꺾어 들기 전에,
"고노야로―"
소리와 함께 소장의 총부리는 택길이를 겨누었다. 정순사는 택길이부터 팔죽지를 꺾어 묶는 바람에 억쇠는 저도 꺾으려고 잡았던 물푸레나무를 놓고 성필이가 눈짓하는 대로 돌아서 뛰고 말았다. 얼마 안 뛰어 노마와 점둥이와 만났다.
"총소린 나지 않았지?"
"못 들었어."
셋이는 숨이 모자랄 때까지 공동묘지 뒷산으로 올라와서야 돌아다보았다. 권생원네 삼포 앞길이 빤―히 내려다보이는 데다. 낯선 사람과 성필이와 택길이 이외에도 서너 사람이나 붙들려 가고 있다. 억쇠는 눈물이 왈칵 솟았다. 엉엉 울어 버리었다.
"우린 뛰길 잘했지!"
겁이 많은 점둥이의 말에 억쇠는 울다 말고 점둥이의 따귀를 갈기었다.
잡혀가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길 위에서 사라진 뒤에야 이들은 칡바윗골로 내려왔다.
"그런데 어떻게 알었을까?"
"어느 놈이 찔렀지!"
"그리게 아무 일도 못 해!"
"그런데 억쇠야, 그게 누구냐?"
"주의자지 뭐."
"주의자! 공산당 말이지?"
하고 억쇠에게 한 대 맞고 시무룩했던 점둥이도 말참례를 하였다.
"그럼!"
"그럼, 저렇게 용헌 사람들이 왜 나쁘다는 거야?"
"이 자식아, 넌 지주면 좋아허겠니?"
"허긴 그놈들은 미워헐 테지."
"성필이가 또 몇 달 징역살일 해야 나오겠구나!"
"우리 성필이네 일 그냥 해주자!"
"그래!"
"징역!"
억쇠는 가슴에 푹 찔린다. 그리고 펀뜻 생각나는 것이 있다. 개성서 어머니를 묻고 처음 가재울로 내려오던 날 새벽, 차 안에서 본, 그 노름꾼도 도적도 아닌 성싶던 죄수와, 개성서 신문에서 허구한 날 보던 소작쟁의와 가끔 큰 글자로 찍혀 나오던 무슨 노조(勞組)의 적색사건(赤色事件)이니 어디 농민들의 반제투쟁(反帝鬪爭)이니 하는 제목들이다. 억쇠는 경찰이 잡는 것이 도적이나 노름꾼만 아니란 것과 이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세상에도 속으로는 목을 내건 사람들의 피투성이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오늘 비로소 알아차리게 되었다.
"저런 사람들은 누가 돈을 줘서 댕기노?"
"이 자식이 또 한 대 맞구 싶은가?"
"이 자식아, 모르니까 묻지 않어?"
억쇠는 기가 막힌 듯 허허 웃어 버리는데, 노마가,
"이 자식아, 넌 돈만 아니?"
하고 점둥이의 안악을 걸었다. 하마터면 넘어질 뻔한 점둥이도 노마의 기운쯤은 무섭지 않다.
"덤벼라, 이 자식아!"
주재소에서 능지가 되게 맞고 나온 아버지 생각에 젊은 놈 모가지 하나쯤 아무것도 아니란 결심으로 진작부터 핏줄이 핑핑해 오금이 근지럽던 노마라 이들은 좁은 산길에서 호랑이 날뛰듯 씨름이 한판 벌어졌다.
9
벌촌과 가재울은 이날 밤에 개들이 자지러지게 짖었다. 주모자 이외에는 불문에 부친다고 현장에서 끌려 간 작인들도 택길이만 내어놓고는 날이 어둡기 전에 놓아 주었으나, 이것은 도리어 한 사람도 놓치지 않고 잡으려는 계책으로였다. 모두 마음놓고 제 집에서 자게 하여 놓고 본서(本署)로부터 고등계 주임 이하 십여 명의 경관과 수십 명의 경방단원을 풀어, 밤이 새기 전에 권생원네 삼포 뒷등에 모였던 작인들은 한 사람 빼지 않고 묶여 갔다.
그러나 성필이와 그 낯선 사람과 택길이 세 사람 이외에는 취조받을 때 따귀깨나 얻어맞고 이삼 일 뒤부터 놓여 나온 사람이 많았다. 가재울서도 점둥이와 노마는 이내 나왔으나 억쇠만은 투쟁의식이 있다 하여 이십구 일 구류(狗留)를 살았다.
이럭저럭 달포가 훨씬 지나 나와 보니 '시국'이라고 불리는 세상은 그새 엄청나게 달라져 있었다. 소작쟁의를 생각만이라도 하던 때는 딴천지였구나 싶도록, 논밭에서 난 곡식은 그만두고 내 몸에 달린 모가지도 내 것이랄 수 없이 백성들의 권리란 극도로 박탈되어 있었다. 소작료건 내 몫엣거건 곡식이란 곡식은 지주와의 문제가 아니라 나라와의 문제로서, 벼만이 아니라 밀이든 좁쌀이든 무슨 잡곡이든 일단 면소에서 칼자루들을 앞세우고 나와 제해처럼 거둬 가는 것이었다. 우선 감자나 고구마를 먹게 하더니 논바닥에 거름이나 하는 콩깻묵을 먹으라고 배급이 나왔다. 짚은 비가 새는 이엉도 못 해 잇는다. 가마니만 짜서 바쳐라, 관솔을 해다 바치어라, 머루덩굴을 걷어다 바치어라, 피마자를, 살구씨를, 참나무 껍질을, 놋그릇을, 소를 개를 잡아 껍질을, 그리고 머리를 마루가리(짧게 깎기)를 해라, 각반을 쳐라, 몸뻬를 입어라, 잠꼬대까지 국어로 안 하면 비국민이다, 너는 지원병이다, 너는 학병이다, 너는 징용이다, 너는 보국대다, 너는 경방단이다, 너는 반공감시초원이다, 이 바람에 안손이 없는 억쇠네는 농사는커녕 나오라는 무슨 회니 무슨 연습이니에 나갈손 손포가 없거니와 몇 가지 세금, 몇 가지 저금, 몇 가지 채권 이것을 감당할 도리가 없고 이것이 밀리면 동네 이사장이나 면장의 미움을 사고 그들의 미움을 사면 보국대니 징용이니 하고 북해도나 남양으로 남보다 먼저 끌려 나간다.
하루는 권생원에게 불려가 채권값 안 낸다고 눈이 뿌옇게 몰리고 온 저녁이다.
경방단원이 된 후로는 노름 대신에 사람 치는 것이 일이 된 가네오카팔근이가 읍에서 나오는 길인 듯 경방단 옷을 입은 채 억쇠네 마당으로 들어섰다.
"오토상 오루카(아버지 있소)?"
이 자는 몇 마디 못 되는 것 가지고 일본말만 쓴다.
"뭐요?"
억쇠는 못 알아듣는 체한다.
"기사마 고쿠고모 스코시 와카랑카(자네 국어도 좀 아는가)?"
그것도 못 알아듣는 체하니까,
"쇼―가나이나(별수없군)."
하더니 조선말을 하는데 그것도 일본식으로 지껄이는 것이었다.
"아버지 없소까?"
이래 가지고 억쇠 부자를 앞에 세우고 저는 문지방에 턱 걸터앉아서 하는 수작이 왜 채권값과 세금을 제때 안 내서 우리 동네 성적을 떨구느냐고 한참 꾸짖었고 무슨 비밀이나 이야기하는 것처럼 좌우를 둘러보더니,
"거짓말이나 허면 죽인다 아라쏘까? 억쇠가 나이 몇 살인지 바로 말이해."
하고 억쇠 부자를 번갈아 뚫어지게 쏘아본다. 아비도 아들도 아무 대답을 못 한다. 억쇠는 징병에 걸릴 나이였다. 그러나 미천한 아비를 가져 삼사 년 뒤에야 출생신고가 되었기 때문에 민적 나이로 모면하는 것을 어떻게인지 이 자들이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우리 사람이 그런 것이 몰라한다. 그렇지만 도쿠지상이나 도쿠지상 아버지가 그런 거시 몰라헐 줄 아나? 나―뿐 자식이!"
하고 억쇠의 배를 발끝으로 쿡 내지른다.
"민적이 자리 못된 것은 참말이 나이대로 말이하라고 면소에서 말이하지 않었나? 왜 가만히 있었나? 이런 것은 덴노―헤이카를 속인 것이 한가지니까 알아있소까? 겜베이다이 잡혀가서 눈이나 묶어 놓고 땅 하는 것이……."
하고 이 자는 유쾌한 듯이 깔깔거리고 혼자 웃다가 담배를 꺼내 물었으나, 억쇠 부자는 등골에 땀이 후질근했다.
"어떡해서든 한동네서 무사허두룩만 해주시기요."
천서방은 허리를 두어 번 굽신거리었다.
"아들이 목숨이 아깝나 이까짓 집이 아깝나?"
"집이라닙쇼?"
이 자는 담배를 꺼버리고 목소리를 낮추었다.
"내 말 들을 테야? 그럼 억쇠는 무사허지."
"어떻겝쇼?"
"도쿠지상이 저기 밭에다 안채는 짓구 바깥챈 못 짓지 않었어?"
"그렇습죠."
"그 댁에서 돈이나 권리가 없어 못 짓는 건 아니지만 이편 정성이지……."
"네?"
"이 집을 헐어다 바깥채를 마저 세우라구 못 그래? 그러구 억쇠는 징병만 아니라 징용꺼지 면하도록 주선해 달라면 도쿠지상 아버지가 누구신데 그래?"
아비와 아들은 말문이 막혀 서로 잠자코 눈만 주고받았다.
"집이 아깝나?"
"……"
"아들보다 집이 아까우면 그만두구 보라구! 억쇠는 소작쟁의로도 전과자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정말 그렇게만 험 무사헐깝쇼?"
"그건 내 장담허지."
"살림이라야 안사람도 없이 물나는 것만 많구 더 살래야 살 수도 없쇠다. 그렇지만 집이라군 생전에 이게……."
하고 천서방은 이내 목소리와 함께 눈이 흐려진다.
"글쎄 생각해 허라구. 내가 억쇠 신상이 좋지 못한 줄 아니까 이웃간에 귀띔을 해주는 거지 내 생기는 게 있어 이러는 줄 알어?"
"아 그럼은요. 저것 하나만 신상에 별일 없다면 오늘 저녁부터 한뎃잠잘가요니까!"
일어나려던 팔근이는 다시 돌아섰다.
"그리구 말야."
"네?"
"독개그릇은 팔려거든 내게다 팔라구."
억쇠 부자는 밤새도록 생각해 보았다. 별수없었다. 남의 집 종살이에서 풀려 밭이나 하루갈이 사고 마누라를 얻든지 며느리를 얻든지 해가지고 이젠 남부럽지 않게 한번 살아 보려고 남은 깍지방으로 지었던 것이라 대궐 맞잡이로 알고 이 집을 세울 때 밤엔 며칠을 잠을 못 자고 기쁘던 노릇이 생각하면 문패를 '야마다 후미오'라 갈아 불러 본 것뿐 머릿속에 남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이 이제 헐어다 바치어야 하는 것이었다.
억쇠네 부자는 묻는 사람에게마다 팔았노라 대답하며 사흘이 걸려 저희 손으로 집을 뜯었다. 아비도 아들도 눈이 헛갈리어 손발이 제대로 놀지 않았다. 몇 번이나 못을 밟고 몇 번이나 떨어지는 서까래에 잔등을 치었다. 지주댁에 가는 타작섬이나처럼 저희 등으로 꾸벅꾸벅 져다가 도쿠지네 마당에 갖다 주었고 솥 두 개와 독개그릇 대여섯 가지는 가네오카네 집으로 져올렸다.
가네오카는 말로는 산다고 했으나 값을 묻는 말은 없었고 도쿠지는 억쇠네가 빚진 것과 채권값 따위 모두 오십오 원 각주를 받았었고 억쇠를 징용을 면한다는 농업요원(農業要員)이란 이름으로 저희 집 머슴에 써주는 것으로 도리어 생색을 내었다. 그리고 억쇠 아버지는 몸담을 곳도 없거니와 이내 보국대(報國隊)라는 강제노동에 걸려 경원선 복선공사장으로 끌려갔다.
10
농업요원이란 논과 밭을 을러서 최소한도 구천 평의 농사를 지으라는 것이었다. 억쇠는 그만해도 몸에 익은 농사일이나 밭일 논일 집안 허드렛일, 미처 손이 돌아가지 않았다.
농사를 처음 시켜 보는 주인 도쿠지는 모범 면장 저희 아버지가 책상 위에서 증산(增産)이니 모범작(模範作)이니 모범부락(模範部落)이니 하고 서두르는 그대로 들어와서 억쇠한테 왜 손이 둘밖에 없느냐는 듯이 서둘렀다.
억쇠는 사실 있는 손 둘도 제대로 놀리고 싶지 않은 일이다.
'남처럼 내 집을 쓰고 남처럼 내 농사를 짓고 분이를 다려다가…….'
이 클클하게 떼쓰고 싶도록 그립던 욕망도 이젠 여지없이 부서지고 만 것이다.
황국신민 된 의무다, 나라일이다, 천황폐하의 일이다 하고 남들에게는 볶아치고 욕질하고 매질을 하면서도 도쿠지나 그런 국민복 입은 면소패, 군청패 들은 그다지 바쁜 일은 없는 듯 사흘이 멀다 하고 그들은 해지기를 기다려 자전차 꽁무니에 갈보와 술병을 달고 들어들 와 밤을 패고 놀았다.
이 자들이 들어오는 날은 가재울은 불한당패 든 것 같았다. 아무 집에나 가 방문을 벌컥 열어 젖힌다.
"웃방으루 뛔 올라간 게 누구야?"
"우리 메눌애깁죠."
"뒷문으로 나간 건?"
"나가긴 누가 나가요니까?"
"가마닌 안 치구 초저녁부터 무슨 잠이야?"
"아무런들 벌써 자기야 허겠어요."
"그럼 불은 왜 안 켜놓는 거야?"
"기름이 없다 보니 아무것두 못 허구 앉었습죠니까."
"핑계 그만둬. 부엌을 뒤져 볼까, 무슨 기름이구 없나?"
"웬 기름이 있어요니까?"
"호주 이름이 누구야? 사내들은 어디 갔어?"
하고 엄포를 해놓고 슬쩍 물러나면 따라왔던 도쿠지나 가네오카는 어느 틈에 이 집 닭장 문을 열고 그중 묵직한 암탉으로 한두 마리 골라 들고 주인 앞으로 오는 것이다.
"면에서들 나와 나라일루 여태 저녁두 못 먹구 다니는 걸 그냥 가게 헐 수 있소?"
"저런 얼마나 시장들 허실까요!"
"우리가 저녁은 허지만 한두 번 아니구 찬을 당헐 수가 있소! 이거 얼마 내리까?"
"원 별말씀을! 동넷손님인걸요."
닭 한 마리쯤 채이는 것 남편이나 아들에 비겨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 자들은 보국대나 징용인원이 모자란다든지 내일처럼 보내야겠는데 한두 명이 도망을 했다든가 하면 아무 동네에나 도라쿠를 갖다 대고 닭이나 개 한 마리 채가듯 이들의 남편이나 아들도 손에 잡히는 대로 채가기 때문에 닭 한두 마리 계란 한두 꾸러미쯤은 아무것도 아닐 뿐 아니라 불을 켤 기름이 있다 하더라도 사내 사람 남아 있는 집에서는 미리 불 없이 앉았다가 이런 손님이 달려들면 뒷문으로 튀는 것이 상책이었다. 이들이 산다는 것은 어떻게 하면 피할까 그것이 전부였다.
도쿠지나 가네오카는 동네에서 먹을 것이 닭이나 계란만도 아니었다. 먹으려 들면 못 먹을 것이 없었다. 동네 어느 집에 제사나 혼사가 있어 부득이 고기나 술을 써야 할 듯하면 가네오카는 앞질러 찾아다니며 축축이었다. 내 담당할 터이니 밀주를 담그라 하고 으레 한 말은 차지했고 내 담당할 터이니 도야지를 잡으라 하고 으레 한두 쟁기는 가져갈 줄 알았다. 이런 공고기맛에 뱃심이 자란 가네오카와 도쿠지는 나중에는 소까지 몰래 잡게 하고 한두 다리 들곤 하였다. 먹는 것만도 아니다.
"면화는 나라에 죄다 바치라는 건데 이게 누구넨데 솜을 틀어."
한마디면 솜반이 들어왔고,
"짜란 가마닌 안 짜구 이게 어느 때라구?"
한마디면 명주와 무명필도 들어왔다. 가네오카네와 도쿠지네는 귀한 것 없고 못 먹는 것이 없었다.
11
보국대도 제 것 있는 사람은 좁쌀만이라도 가지고 와서 함바에 붙이든지 그렇지 않으면 저녁 한 끼만이라도 한데 냄비를 걸고 배부른 저녁을 먹어 보는 것이나 천서방처럼 아무것도 없이 온 사람은 무엇보다 배가 고파 견딜 수가 없었다. 산을 허물어다 복선 철롯길을 돋우는 일인데 같은 흙일이나 농사일보다 생흙 다루는 일은 힘이 갑절 들었고, 그런데다 먹는 것이 부실해서 한평 흙을 뜨기 전에 눈에서 별이 돋곤 했다. 촌집에서 야미떡을 해 파는 것이 있으나 하루 품삯이라는 것이 떡 한 개 값이 모자랐다. 그것도 남처럼 담배를 피지 않는 덕에 사흘에 한 번씩 야미떡 두어 개 사먹는 맛이 오직 사는가 싶은 순간이다가 석 달 기한이 차서 일터에서 물러나는 날 천서방은 갈 데가 막연하였다. 농사는 뒷날 세월 좋아지면 다시 짓기로 하더라도 집이, 그 집이 비록 안손은 있든 없든 내 집이었던 그 집 한 채만이 저희 부자의 유일한 밑천이요 근거일 것을 그 꿈처럼 날려 보낸 허전함이란 천서방은 머리 둘 곳이 없는 이날 그것이 죽은 계집 생각보다도 더 서러웠다.
아무튼 집은 없더라도 아들이 있는 곳이니 천서방은 터덕터덕 가재울로 와보는 수밖에 없었다. 동네에 들어서는 길로 아들보다는 먼저 저희 집 섰던 자리부터 찾았다. 구들바닥까지 파헤쳐진 것을 보면 도쿠지네가 바깥채를 짓느라고 구들장까지 뜯어 간 모양이었다. 아들이 그렇게 공들여 파놓은 박우물에는 나뭇잎만 그뜩 잠겨 있고 장독대에도 쓸모 있는 돌은 죄다 걷어 가고 없었다.
"주릿대 맞을 놈들 너이들만 얼마나 잘사나 보자!"
몇 달 안 보다 만나는 억쇠는 제 아들 같지 않게 틀이 잡힌 실농꾼이었다. 가슴이 함지박 같고 손 매듭이 밤톨만큼씩 여물었다. 이런 범장다리 같은 아들을 앞세우고 제 농사 제 살림을 못 해보는 생각을 하니 또 한번 뼈가 저리다.
일꾼의 밥그릇엔 수수와 콩만 몰아 뜨나 도쿠지네는 그래도 아직 죽은 먹지 않았다. 천서방은 된밥 몇 끼를 먹어 보니 한결 속이 트지근하다. 저희 집 헐어다 바친 것으로 세운 바깥채라 밤에 누우면 잠이 편히 들지 않았으나 아들과 하루라도 더 같이 지내 보고 싶고 된밥도 한 끼라도 더 속에 넣어 두고 싶었다. 멈짓멈짓 닷새가 되던 날이다. 도쿠지는 천서방더러 어쩔 셈이냐 물었다. 묻기라기보다 이쪽에서 대답할 사이도 없이,
"이런 비상시국에 우리집에 노는 사람이 있다구 해보? 내 얼굴에 똥칠을 허는 거구 천서방 자신도 이번엔 보국대가 뭐요? 징용으로 이 년 기한으로 남양 아니면 북해도로 가는 판이니 미리 알어채리란 말이오."
하였다. 신선처럼 이슬과 바람이나 먹기 전에는 천서방은 사람 사는 동네를 떠나 피할 곳은 없었다. 아들의 지게를 하나 얻어 지고 이날로 백천온천으로 나오고 만 것이다.
온천 손님도 끊어진 지 오래여서 지게벌이도 있을 리 없거니와 보국대와 징용군 뽑기에 열이 나 개도 사람으로 뵈는 면소나 군청 노무계(勞務係) 패들 눈에 빈 지게로 어슬렁대는 천서방이 걸리지 않을 리 없었다.
억쇠가 저희 아버지가 백천 정거장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지 한참 뒤 보국대에 갔다 온 벌촌 사람에게서 저희 아버지가 해주 비행장 닦는 데서 일을 하더란 말을 들었다. 다시 달포나 되어서다. 일본 구주(九州) 무슨 제철소엔가 비이십구가 폭격했다는 소문이 나고 징병검사에 을종(乙種)들인 장근이와 용길이 아우가 서울로 입영(入營)하러 떠난 뒤이다. 억쇠에게 저희 아버지의 세 번째 소식은 면소로부터 주인 도쿠지가 가지고 왔다. 죽었다는 것이었다. 일을 하다 죽었으면 나라를 위해 명예요 유족에게 위로금도 나올 것인데 변변치 못하게 무슨 병을 앓았고 병은 나아가 다 썩은 콩 볶은 것을 먹고 죽었기 때문에 '센징와 쇼―가나이네' 소리만 듣게 되었다고 도쿠지는 못마땅해하였다.
"언제래요?"
억쇠는 웬일인지 아버지가 죽었다기보다 누구와 싸움을 하다 졌다는 말에처럼 성부터 버럭 났다.
"벌써 수십 일 됐다니까 누가 알어."
농사일 바쁜 때 그건 가보면 무얼 하느냐고 도쿠지는 짜증을 내었으나 억쇠는 이날로 떠나 해주비행장을 찾아왔다. 열 군데도 더 물어 저희 아버지 밥 먹던 함바를 찾았고, 거기서 더듬어 야마다 후미오가 전염병을 앓았고 병은 나아 비척거리고 두어 번 함바로 와서 밥 누룽갱이를 얻어 들고 가는 것을 보았는데 어디서인지 썩은 콩 볶아 파는 것을 사먹고 죽었다는 것이다.
"어디다 묻었나요?"
"묻긴? 태워 버렸지."
"태우다뇨?"
"전염병이라구 석유 치구 태웠다는데."
억쇠는 이틀을 여기서 묵으며 더 파보아 야마다 후미오의 시체가 그의 것은 신던 지카다비 한짝 남김 없이 한데 태워 버린 것을 알았고 그 태운 자리까지 찾아보고는 그만 걸음을 돌리고 말았다.
억쇠는 신작로에 나와 펄썩 주저앉았다. 하늘은 농군들이 기다리는 지 오랜 비도 좀처럼 내릴 것 같지 않다.
'실컨 가물어라? 망해라 어서! 우리집을 그냥 먹은 건 그만두고라도 내가 고까도 없는 제 집 종살이가 아닌가? 아버지가 일년을 묵기루 놀구 먹을 사람인가? 닷새를 못 가서 내어쫓아? 네놈들이 앓구 나 먹을 게 없어 봐라. 개똥은 안 줘 먹을 테냐? 센징와 쇼―가나이? 고런 놈들 주둥이에 거미줄 안 쓰는 걸 봄 저눔의 하늘이란 것두 멀쩡한 거구!'
억쇠는 오래간만에 그 권생원네 삼포 뒷등에서 잡혀간 성필이와 낯선 사회주의자 생각이 났다. 택길이는 석 달 뒤에 놓여 나왔지만 성필이는 그저 소식이 없다. 그들이 감옥 속에서 고생할 생각을 해보니 그래도 저는 아직 일월을 마음대로 보고 살기가 미안하기도 하다.
'어서 왜놈이 망해라? 왜놈이 망해야 도쿠지 따위는 쥐구멍을 찾구 그 사회주의자나 성필이 같은 사람들이 맘대로 활동을 헐 거구 그래야 한번 세상이 뒤집히는 보람이 있을 거다? 왜놈이 망키루 도조 면장이나 권생원이 그냥 꺼떡댄다면? 그럴 린 없을 거다? 그럴 리 죽어도 없을 거다!'
억쇠는 야속할 것을 더듬자면 도쿠지만이 아니다. 그의 계집년에게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정말 사형장에서 목이나 매달렸던 것을 풀어 놓아 준 것처럼 말끝마다,
"우리 애아버지 아니면 오늘 어떻게 됐을지나 알어?"
소리였고 겨울에 큰 솥에 물이 설설 끓어도,
"무슨 끔직헌 손발이라고 더운 물을 쓰려 들어?"
하고 억쇠 제 손으로 길어다 붓고 제 손으로 해다 때주는 나무에도 더운 물 쓰는 것을 앙탈하였다.
"막 자란 것들은 할 수 없대두. 주는 대루 처먹지 장독대를 늙은 개 부뚜막으루 아나 어디라고 올라가?"
하고 찬이 모자라도 고추장이나 된장 한숟갈 못 떠다 먹게 했다.
'이를 갈자! 미워하자! 그때 그이는 나쁜 놈은 용서 없이 미워하라 했다. 아― 그런 사람들이 세상을 맘대로 꾸미게 된다면? 그렇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억쇠는 손에 잡히는 대로 풀을 한움큼 잡아뜯었다.
'우리 같은 사람두 잘살게 만들 거다! 그인 그때 그랬다. 십 년 근고를 해서 북정밭 한 뙈기 못 장만하는 건 원행이정이 아니라구. 이런 지금 세상은 마련이 잘못된 거라. 마련 잘못된 이놈의 세상은 어서 뒤집혀야 헌다!'
억쇠는 벌떡 일어나 다시 걸었다. 허턱 주먹질을 해본다.
'악한 놈, 내 행복을 짓밟는 놈은 사정없이 미워해야 헌다. 도쿠지란 놈은 악한 놈이다! 내 행복이면 따라다니며 짓밟으려는 놈이다!'
억쇠는 도쿠지를 미워 안 하고 견딜 수 없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닭이나 계란은 제 손모가지로 들고 가는 것이라 말로는 돈을 낸다는 것이나 도쿠지나 가네오카한테서 닭값이나 계란값을 받아 본 집은 별로 없다. 그런데 다만 노마네 한 집만은 닭값도 계란값도 낙장 없이 받을 뿐 아니라 금새도 읍에 시세로 쳐서 사흘을 넘기지 않고 보내는 것을 억쇠도 두어 번 심부름을 했다. 그리고 한 달이나 두 달에 한 번쯤 고무신 배급표가 고작 한 반에 한두 장 폭으로 나와 신 한 켤레에 십여 집이 매달려 제비를 뽑는 것이나 이 도쿠지의 주머니에는 고무신표뿐 아니라 비누표 석유표 설탕표 광목표 따위가 언제든지 득실거리었다. 노마네는 제비도 못 뽑았는데 분이도 분이 어머니도 고무신이 떨어지지 않았다. 동네에 세력 못 쓰는 젊은이치고는 농업요원도 아니면서 절름발이 홍서방을 내어놓고는, 그저 보국대에도 징용에도 뽑혀 가지 않고 견디는 것도 분이 오빠 노마뿐이다. 이것도 도쿠지란 놈이 뒷배를 보아 주는 것이 틀리지 않았다.
'도쿠지란 놈이 분이헌테 꿍심이 있는 게 틀리지 않다! 내 모를 줄 아니?'
억쇠는 속에서 불이 나올 것 같은 입을 악물고 걸었다.
12
'사람두 이 땅 같을 게다! 같은 흙인데 다들 맛부터 좋구 힘 적게 들구 곡식은 쏟아지구!'
그 용길네 밭자리 하루갈이는 제 손으로 다루어 보니 억쇠는 도쿠지한테 채인 것이 다시금 분해진다. 사과나무를 심어 곡식을 간작(間作)을 했고 집터가 백여 평은 차지하여 제대로 심지는 못하였으나 조이삭 하나가 개꼬리만큼씩 숙었다. 억쇠는 이 밭을 밟을 때마다 분이 생각이 따라 솟기도 한다. 같은 사람, 같은 여자에도 분이는 보기도 이쁘거니와 살림도 잘하고 아이내도 잘할 것 같았다.
'못된 것이 임자라도 좋은 땅은 큰 이삭을 맺는다! 못된 것이 꼬이드라도 착하기만 헌 분이는 고분고분 넘어가구 말 거다!'
억쇠는 이런 생각을 하면 가슴 속엣불덩이가 불쑥 치밀어 목구멍을 막는 것 같다.
'하늘이 무심헌 것처럼 땅두 사람두 무심헌 거란 말인가?'
아직 마당질두 끝나기 전인데 도쿠지는 어디서 그 귀한 과수에 주는 비료를 구해 놓았다. 읍에서부터 억쇠가 져 들여왔다. 열매가 아직 달리지 않은 과수는 무슨 과수든 식량증산으로 모조리 뽑으라는 것인데 그것도 면장인 저희 아비 이름으로 남의 것들은 모조리 뽑아 던지면서 저희 것은 간작만으로 그냥 둔다. 아직 어린 나무에 거름이 당치 않았다고들 하나 무엇이든 한번 마음이 내키면 멈출 줄 모르는 성미라 도쿠지는 기어이 억쇠를 시켜 과목들의 둘레를 파게 하고 거름 주는 것을 총찰하던 날이다. 점심 먹고 나와 쉬는 참인데 도쿠지는 억쇠더러 노마를 불러 오라 했다.
노마도 노마 아버지도 없고 분이만이 윗방에서 찢어진 제 고무신 깁던 것을 든 채 문을 열었다. 몸뻬를 입어 분이는 몸이 부푼 것이 두드러진다.
"노마 좀 오래는데."
"도쿠지상이 그래요?"
억쇠는 멍청해 대답을 못 했다. 어떻게 도쿠지가 부르는지 듣기도 전에 아는 것이 이상했다. 생글거리는 분이가 이런 때는 이쁘기만 하지 않다.
"누가 오빨 오래요?"
"도쿠지상인 줄 알면서 뭘 그래?"
"내 나가 찾아 보낼게요."
하고 분이는 붉어지는 얼굴을 돌아서 버렸다. 분이 어머니는 장독대에서 무엇을 하다가 아들을 도쿠지가 찾는다는 바람에 눈이 휘둥그래 나왔다.
"이 사람? 그 어른이 우리 애를 어째 부르실까?"
"몰르죠."
"이거 아들 하나 가진 게 무슨 죽을 죄나 짓구 사는 거 같으니 어떡헌담. 무슨 일이든 자네 말 좀 잘 허게 응?"
"저야 뭘 아나요."
"자식이라군 그거 하난 걸 그걸 내보내군 난 죽지 못 살어요! 못 살아……."
벌써 말끝이 떨리면서 분이 같은 것은 자식으로 치지도 않는 것이었다. 그것이 자식으로 치는 노마를 위해선 분이쯤 아무렇게 굴려도 좋다는 심속 같았다.
어느 명령이라고 지체할 리가 없었다. 분이와 분이 어머니는 집을 비워 던지고 나서 노마를 찾아 보내었다. 도쿠지는 벌써 경방단 부단장의 정복 저고리를 입고 나와 있었다. 이 자가 위신을 보여야 할 자리에선 먼저 이 대단스러운 금줄이 붙은 저고리부터 겉드리고 나서는 것이다.
"노마 니 어딜 자꾸 나돌아다니는 거냐?"
"구장네 숫돌루 낫 좀 갈러 갔드랬어요."
"농업요원두 아니구 이 동네 남어 있는 청년이 너 하나 아니냐? 모두들 넌 왜 안 내보내느냔 소리에 난 귀가 아플 지경이다. 외아들이야 너만 외아들인 줄 아니? 그렇지만 너이 어머니 사정에 여태 내가 생각을 많이 해왔는데 시국이 점점 긴박해진단 말이다."
노마는 손만 비비고 섰다.
"넌 몸에 병이 있다구 해서 내가 여태 아버지헌테 그렇게 말을 해 밀어 왔는데…… 아모튼지 너무 남의 눈에 띄게 나다니진 말어라. 내 말이면 면이나 군에서 저이 맘대룬 못 허는 게니……."
"네, 그저 도쿠지상께서 염려해 주세야죠."
하고 노마는 두어 번 꾸벅거리고 물러갔다.
그 후 며칠 안 있어서다. 도쿠지네는 떡을 했다. 도쿠지 장인의 대상(大祥)이었다. 도쿠지는 바쁜 일이 있어 못 가겠다 했고, 아내와 아이만 배천온천에 가서 차를 타고 가는 연안 처가로 보내는 것이었다. 억쇠더러는 정거장까지 떡그릇을 들어다 주고 저물 터이니 배천읍에서 자고 들어오라 했다.
아닌게아니라 정거장에 와 막차에 떠나는 것을 보고 돌아서니, 밤이 꽤 늦는다.
'나더러 늦을 테니 자고 들어오라고? 흥!'
억쇠는 콧방귀가 나갔다.
'내 속을 너는 모르나 보다. 그렇다구 나두 네놈 속을 모를 줄 아니?'
자기는커녕 억쇠는 속이 닳아 저녁 요기를 할 여유도 없다. 불이나 끄러 오는 사람처럼 억쇠는 숨이 턱에 닿아 가재울을 향해 뛰었다. 눈을 감고라도 다니던 이 이십 리 길이 발부리에 채는 것도 많고 이처럼 아득해 보이기도 처음이다.
'벌써 자정은 됐을 거다!'
길도 악한 놈의 편이 되어 자꾸 늘어나는 것 같다.
그러나 결국 길은 끝이 있었다. 아직 울타리도 못 한 집이라, 어디로든지 안뜰에 들어서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안방은 불이 꺼져 있다.
'설마?'
억쇠는 숨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면서 모든 것이 자기의 지레짐작이기를 바랐다.
'설마?'
억쇠는 더듬더듬 안방 가까이 왔다. 무슨 소리가 난다. 주춤 멈추었다. 울음 소리 같다. 억쇠는 귀가 놋대야처럼 왕왕거리어 제 가슴 뛰는 소리가 그런지도 모르겠다. 넙적 업디어 마루 밑을 더듬었다. 억쇠는 이내 배암이나 움키었던 것처럼 진저리를 쳤다. 도쿠지의 지카다비보다도 먼저 볼이 줌 안에 드는 여자의 고무신부터 잡혀진 것이요, 그것은 분이가 제 손으로 깁고 있던 실눈이 도툴거리는 분이의 신발이 틀리지 않았다.
"노…… 노래두요!"
틀림없는 분이의 목소리까지 울려 나온다. 반항하는 소리다. 울음으로 반항하다 못해 떠다밀고 뿌리치고 하는 듯, 옷자락 따지는 소리도 난다. 억쇠는 어떻게 쓴 힘인지 힘은 썼는데 말도 안 나가고 바윗덩이가 된 것처럼 제몸을 꼼짝 못 하겠다. 다리만 후들후들 떨린다.
"너 끝내 요렇게…… 노마가 이뻐서 두 번씩 나온 징용장을 내가 응?"
입에 침이 마른 도쿠지 녀석의 목소리다. 그 헐떡거림이 한 번만 갈기어도 나가떨어질 것 같은데서 억쇠는 후들거리기만 하던 발을 떼었다. 마루에 신발째 덥석 올라섰다. 분이의 그만 지쳐 버리고 만 숨소리는 울음도 그치고 모든 것을 운명에 맡겨 버린 것 같다. 억쇠는 입을 악물고 손으로 문고리를 잡았으나 힘도 쓰기 전에 안으로 걸린 문짝은 꺽 맞섰고,
"다래카(누구냐)?"
하는 일본말이 도쿠지가 아니라 주재소장의 목소리처럼 무섭게 쏘아 나온다. 억쇠는 문고리만 놓친 것이 아니라, 문이 열리는 바람에 허겁지겁 물러나 마루 아래로 내려섰다. 내려서고 생각하니 비겁했다. 자전차 전짓불이 총알처럼 내어쏜다.
"저 새끼 봐라! 왜 오늘 밤으로 들어와 가지구……."
도쿠지는 단걸음에 뛰어내려와 철석 갈긴다. 전짓불 때문에 맞았다. 한 대 맞고 나니까 바늘에 꽂혔던 것처럼 빽빽하기만 하던 사지가 제대로 풀리는 것 같다. 억쇠는 전짓불부터 후려갈겼다.
"네깟놈의 신세로 살구픈 나 아니다!"
"나마이기나(건방지긴)……."
"너 같은 개새끼 하나 맘껏 죄키구 병정 나감 그만이다!"
억쇠의 돌뭉치 같은 주먹은 도쿠지의 볼때기로 가슴패기로 달려드는 대로 내질렀다.
"우리가 살려는 밭을 가로챘지 요눔?"
하고 갈겼다.
"우리집을 그냥 먹었지 요눔?"
하고 내질렀다.
"날 삯전두 안 주구 부렸지 요눔?"
하고 짓밟았다. 히끗 분이가 부엌 뒤로 해 뛰는 것이 보인다.
"밤낮 허는 계집질에 동네집 처녀까지 건드려 요눔?"
하고 발길을 안겼다. 도쿠지는 땅바닥에서 썰썰 기다가 다시 일어서는 체하더니 그도 부엌 뒤로 뛰고 말았다.
억쇠는 컴컴한 마당에서 욱신거리는 주먹을 털고 바깥방으로 나왔다. 도쿠지란 놈을 달아날 기운이 남도록 설 때린 것이 분하다.
'병정으루 나감 그만이다! 나가 죽음 그만이다! 이깟놈의 목숨 살어서 뭣 하는 거냐!'
억쇠는 허리띠를 졸랐다. 죽으면 그만일 바엔 무서울 게 없다. 이왕 손찌검을 한 김에 요놈을 찾아 단단히 버릇을 가르치리라 작정을 하고 다시 일어서는데 바로 옆에서,
"야마다상?"
소리가 난다. 분이었다. 억쇠는 죽으러 나갈 판에는 분이도 밉기만 했다. 분이 상판에 침을 배앝으려 했으나 입에 침이 없다.
"앉었으면 어떻게 해요?"
"어떻게 허다니? 웬 걱정이여……."
"도쿠지가 저 가네오카한테루 가나 봐요. 피해요. 어서요, 네?"
분이는 떨었다. 억쇠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더럽다! 웬 챙견이냐?"
"……"
"그놈의 방에 들어간 게 어떤 년의 발목아지냐?"
"……"
"더럽다! 퉤, 퉤, 퉤…… 나 같은 거, 도쿠지네 마당에서 개새끼처럼 물매에 죽는 꼴 네 누깔에 씨원헐 게다!"
"……"
"몇 눔이구 오너라!"
억쇠는 병정을 나가서커녕 분이가 보는 이 마당에서 사내자식답게 기운껏, 원한껏 싸우다 죽고 싶었다. 마당으로 뛰어나왔다. 그때다. 분이의 그림자가 나무토막처럼 쿵 나가 떨어진다.
"……?"
억쇠는 어느 틈에 딴사람처럼 날아와 분이를 일으켰다. 입에 숨기가 없다.
"분이?"
뺨을 대어 본다. 식은 눈물이 처끈거리고 이쪽 뺨을 적신다. 억쇠는 그만 제 눈물주머니도 칼에 쿡 찔리는 것 같다. 눈을 껌벅이어 눈물을 饩구며 허둥허둥 분이를 안은 채 길로 나왔다.
아닌게아니라 맞은편 가네오카네 집 쪽에서 관솔불이 올려 솟으며 몇 녀석의 두런거리는 소리가 난다. 억쇠는 그만 돌아서 큰길 쪽으로 나왔다. 방축 둑으로 들어서 버드나무 밑으로 왔다.
"어떡허나! 분이? 분이?"
분이는 억쇠의 뜨거운 가슴에 안기어 한참이나 사지가 움직여진 때문일까 이내 울음부터 느끼고는 정신을 차리었다.
"놔요."
정신이 들기 바쁘게 분이는 억쇠를 떠다밀었다. 떠다밀수록 억쇠는 힘주어 안았다. 그리고 아이들처럼 소리만 내지 않았을 뿐 둘이는 자꾸 울었다.
"우린 누구두 죄가 없는 거다! 분이 맘을 내가 몰르지 않어! 분이가 아버지나 오빠를 구헐 길이 그 길밖에 없었다면 그걸 맘에 둘 내가 아니야! 나두 사내자식이야!"
억쇠는 도쿠지네 마당 쪽을 돌아다보았다. 도쿠지란 놈은 쩔름거리며 관솔불을 들었고, 팔근이놈과 달운이놈은 말장을 뽑아 들고 어슬렁거리며 저를 찾고 있다.
억쇠는 이를 갈더니 얼른 분이를 내려놓는다. 분이는 그쪽으로 달리려는 억쇠의 다리 하나를 붙들고 늘어진다.
밤이 훨씬 깊어서 이들은 분이네 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날이 새기 전에 억쇠는 분이 어머니가 싸주는 좁쌀 서너 되를 꽁무니에 차고 가재울을 떠났다.
13
'팔·일오'는 바로 이듬해 여름이었다.
곡산(谷山) 땅 깊은 산골 어느 광산에 가 버럭짐을 지고 있던 억쇠는 해방된 것을 이틀 뒤에야 알았고 팔월 이십일에야 그립던 '내 고향'이기보다 '분이의 고향' 가재울로 들어섰다.
'요 도쿠지 따위 독사 새끼들이 어느 구멍에 대가릴 박었을까?'
억쇠는 주먹에 다시금 신바람이 난다. 농사도 어느 해보다 잘돼 보였다. 논마다 벼춤이 줌이 벌 것 같고 밭곡식도 안사람들이 초벌감이나 매었을 것으로 검어툭툭한 속잎들이 제법 실하게 자랐다. 어느 집보다도 분이네 집부터 바라보였다. 태극기가 올려 솟은 지붕에는 박덩굴이 무성하게 덮여 있다. '분이?' 하고 소리부터 지르고 싶다. 그러나 억쇠는 아버지 생각에 흐려지는 눈으로 풀만 우거진 저희 집터에서 몇 걸음 어정거리다가는 바로 도쿠지네 집으로 뛰어들었다.
짐작이 틀리지 않았다. 도쿠지를 미워할 줄 안 것은 자기만이 아니어서 이미 안방 부엌 광 문짝이란 문짝은 모조리 나자빠져 있었고 경대, 양복장 따위가 깨강정이 된 것도 방으로 마루로 너저분히 널려 있었다. 도쿠지란 놈 신세도 저 경대나 양복장처럼 산산조각이 났는지 어서 누구를 만나야 알겠다.
이 집을 나서 첫번 만난 것이 징병으로 만주로 끌려가 관동군에 입영해 있다 온 장근이었다―---서로 손부터 꽉 붙들었다.
"살었구나!"
"너두 잘 있었구나!"
"언제 왔니?"
"어제 왔다! 노마두 어제 왔다!"
"노마두라니?"
"노마두 징용에 걸린 것 몰랐니?"
억쇠는 가슴이 후끈해 올랐다. 그러리라고는 생각했지만, 노마도 기어이 징용에 걸린 것은 분이가 그 뒤에는 도쿠지의 어떤 위협에도 굴치 않았다는 표였다.
"또 그러군?"
"점둥이가 죽었다는구나!"
"뭐?"
"점둥인 해방되기 둬―달 전에 일본 복강서 죽었단 기별이 왔다드라!"
"저런 망헐자식!"
억쇠는 잠깐 점둥이네 집 쪽을 바라보고 입을 비죽거리었다.
"하필 그 자식이!"
장근이도 눈이 젖었다.
"망헐자식! 해방된 것두 못 보구!"
"그래 넌 인전 어떡헐 테냐?"
"인제야 뭘 해먹든 굶기야 허겠니?"
"그럼!"
"헌데 이 도쿠지란 놈 어떻게 됐다든?"
"글쎄 그 자식을 놓쳤다는구나!"
"엥이, 빌어먹을……."
억쇠는 주먹을 떨었다.
"가네오카란 놈은 경을 치구 튀구."
"달운인?"
"그 새낀 멀쩡히 다니든데! 집집마다 다니면서 빌었다드라."
"엥이! 도쿠지놈을 놓치다니!"
"그때 동네에 어디 젊은 녀석들이 있었어야지!"
"참 성필인?"
"왔단다."
"야! 갇혔던 사람들은 더 기쁘겠구나!"
그러나 속으로는 저도 분이를 만날 기쁨이 누구의 기쁨만 못하지 않았다.
"아, 그만 점둥이가!"
하고 동무와 또 한번 손을 굳게 잡았다 놓고 억쇠는 분이네 집으로 달려왔다.
분이는 남달리 마음이 쓰이고 있어 누구보다 재빠르게 억쇠가 저희 집에 들어서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분이는 이젠 오―랜 인습에서까지도 해방이 된 듯, 부모님들 보는 데서 달려나와 억쇠를 어엿하게 맞았고, 어제 저희 오빠가 왔을 때는 울지는 않았는데 오늘은 눈물까지 솟는 것을 감추지 않았다.
"너 내가 살어온 거보다 억쇠 살어온 게 더 좋은 게구나?"
하고 노마가 억쇠와 손목을 놓고서 누이를 놀리었다.
분이 아버지도 어머니도 억쇠를 스스럼없이 내 집 사람으로 맞았고 노마 아버지는 한숨을 쉬며 억쇠 아버지를 생각하는 말씀도 했다.
분이는 은근히 사람 기다린 피곤이 눈가장자리에 남았으나 그것이 생글거리기만 해서 철없이 보이던 때보다 더 믿음직하고 어른 티답기도 했다.
모두들 기뻤다. 점둥이네와 아직 나간 사람들 생사를 모르는 집들 외에는 모두들 지치도록 기뻤다.
"인전 우리도 살었다! 인전 조선 사람도 살었다!"
모두 한두 끼 굶어도 시장하지 않았다. 억쇠는 이날 저녁으로 점둥이네 집에 와 인사를 하고 그 길로 성필이를 찾아왔다.
성필이는 딴사람 같았다. 머리를 빡빡 깎아 그전 모습이 없는데다, 오랜 동안 굶주렸을 것과는 딴판이게 허―얘진 살이 푸둥푸둥했다. 마루에 거적을 깔고 누웠다가 얼른 내려와 그전보다 친하게 악수를 해주는 데는 감격되었지만, 성필이의 살이 가까이 보니 부은 것임을 알 때 억쇠는 눈물이 핑 돌았다.
"그 속에서 얼마나 고생했어요?"
"동무들 걱정해 준 덕으루 잘 있다 나와 이런 기쁨을 보오! 그리구 나 없는 새는 동무들이 우리집 일루 많이들 애썼습디다그려!"
성필이는 '동무'라 부르며 마루 위로 이끌었다.
"그때 그 어른두 나오셨겠죠?"
"그럼! 그 동무는 다른 사건에두 걸려 원산으로 이송되였드랬는데 으레 이번 통에 나왔을 거요."
"우리 따위가 이렇게 좋을 때 그런 분들은 얼마나 기쁘실까요?"
"암! 그런데 동무넨 그간 아버지가 돌아가셨드군! 그리구 그 애를 써 지었던 집이 헐렸습디다그려?"
"말해 뭘 헙니까!"
"내 대강 얘긴 들었소."
억쇠는 가슴이 울컥 치밀어 멍―하니 눈만 껌벅이었다.
"아무튼 동무가 잘 나타났소. 도쿠지네 집과 논밭을 맡어 나갈 사람이 문제라구들 허더니."
"내가 상관해 괜찮을까요?"
"여부 있나! 도쿠지네헌테 피해 안 본 사람이 누가 있겠소만, 동무네처럼 억울헌 꼴 많이 당헌 사람은 없으니까! 집을 빼앗겨, 이태씩 농사를 지어 줘, 농사두 삯전두 없었다며?"
"징용 면허게 해준다구 용돈이나 한푼 줬나요 어디?"
"그놈의 집 떳떳이 차지허우. 누가 반대하겠소? 그리구 그 집 농사두 땅은 인제 나라에서 결정허겠지만 부치는 거야 떨어질 리 없을 게니 부즈런히 거두구 인전 성가를 해 살 채빌 허슈."
"지금부터라두 그 집 농살 거두기만 험 내가 추수해 먹을 수 있을까요?"
"먹지 않구? 동무가 그렇게 자신 없이 굴면 안 되우. 집을 멀쩡허게 뺏기구, 이태씩 종살이를 허구, 어째 그런 놈의 새낄 철저허게 미워 못 허는 거요? 해방된 오늘두 그자들헌테 쭙볏거림 안 되우. 인전 우리들 자신이 싸워 이기며 살어야 허는 거요. 우리 헐 일이 인제 많소!"
억쇠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도쿠지를 미워할 것이 집 빼앗긴 때문이나 삯전 없이 머슴살이를 한 것이나 아버지를 내어쫓은 것이나 그런 것만도 아니다. 부모나 형제를 구하기 위해서는 제 몸 하나쯤 바치어도 좋다는 분이의 천진한 순정을 낚아 제 야욕을 채우려던, 야수 같은 그놈의 심보를 생각하면 그깟놈의 집간이나 농사쯤 차지하는 것으로 풀어 버릴 제 속이 아니다.
억쇠가 도쿠지네 집에서 떠나 버린 뒤, 징용을 면한다는 바람에 도쿠지네 머슴살이 자리를 노소가 다투어 모여들었으나 도쿠지의 계집은 이런 특권 있는 자리에 저희 친정 조카 한 녀석을 데려다 두었고, 그 녀석이 또 수굿하고 일이나 하는 것이 아니라, 도쿠지만 못하지 않게 촌사람들을 휘두르다가 도쿠지가 맞을 매까지 몰아 맞고 뛰어 버린 것이다. 억쇠는 도꾸지네 농사를 거두는 한편, 도쿠지네 집도 무너진 부뚜막과 부서진 문짝들을 노마와 노마 아버지의 손을 빌려 대충 고치고 들게 되었다.
14
이 가재울 구석에도 아침 저녁으로 새 소문이 연달아 들어왔다. 임시정부가 어느 날 들어온다더라, 서울서 벌써 건국이 되었다더라, 나라 이름이 '대한'이라더라, 아니 '조선인민공화국'이라더라, 대통령에 누구, 육군대신에 누구…… 어른 아이 저마다 지껄이었다. 그러나 지껄일 때뿐이었다. 이젠 공출로 빼앗기지 않을 추수라, 농군들은 밭과 논에 예전 공출 없을 때와 같은, 애착이 끓어올랐다. 올해는 밥이라도 한번 실컷 해먹어 보자! 올해는 추수가 일년 계량만 되면 남의 자식(며느리)도 하나 데려오자! 나라 이름이 무엇으로 정해지든 대통령이 누구로 되든, 그런 것이 앞으로 저희들 살림에 미칠 영향을 생각할 줄 모르는 이들은 '나라'라는 것에는 이내 무관심할 수 있었다. 못 불러 보던 '독립 만세'를 목이 터지게 불러 보는 것도 시원은 하나 역시 집에 돌아오면 권생원네와는 달리 배고픈 것이 급하였다. 누구는 주재소장을 두드려 주었다, 누구는 정순사놈을 밟아 주었다, 누구는 가토란 녀석에게 '조선 독립 만만세'를 불리웠다, 이렇게 평생 처음으로 우쭐해서들 덤비는 것이, 이제는 정말 숨을 쉬고 사나보다 싶기도 했다.
평양에는 소련 군대가 들어왔다는 소문이 났다. 며칠 안 있어 서울에는 미국 군대가 들어왔다는 소문도 났다. 그리고 삼십팔도선이 무엇인지 바로 벌촌 앞들이 경계로서 조선의 남북이 금이 그어진다는 소문도 났다.
그러나 농군들은 날만 밝으면 논과 밭에 끌리었고 논과 밭에 들어서면 역시 저희를 살리고 죽이고 할 것은 이 논이요 밭일 것 같았다.
"이 왜놈의 땅과 달어난 친일파놈의 땅은 대체 어찌 될 건구?"
그런 논밭은 그것 부치던 작인들의 차지라는 말이 돌았다.
"아―니 그것도 공평치 못허지! 그럼 달아나지 않을 지주의 땅을 부치던 우리넨?"
"거야 복불복이지 헐 수 있나! 멀쩡한 조선 지주의 땅이야 종전대루 지주네 땅이지 별수 있어!"
"복불복이라!"
"흥 어떤 놈은 공으루 제 땅이 되구, 어떤 놈은 그대루 남의 땅 소작이야?"
새 생활욕과 새 소유욕들은 음험한 공기까지 떠도는 무렵, 하루는 가재울 앞 행길에서 납작한 자동차에 빨간 기를 단 소련 군인 몇 사람이 나타났다. 밭에서 논에서 마당에서 사람들은 길이 메게 모여들었다. 먼저 성필이가 나서며 소련 군인들에게 손을 내어밀었다. 그들은 두툼한 손으로 벙글벙글 웃으며 성필의 손을 마주 잡고 흔들었다. 둥그런 통이 달린 이상한 총을 맸으나 그들은 사귐성 있는 몸짓으로 큰 키를 구부려 둘러선 아이들에게까지 악수를 했다. 계집애들은 부끄러워 달아나는 아이들도 있었다. 논에서 뛰어나와 손에 흙이 묻은 채 억쇠도 그들의 악수를 받았다. 어깨에 금줄이 번쩍이는 장교들이나 이들의 평민적인 태도에 억쇠뿐 아니라 모두가 감격되어서 성필이의 선창으로 진정에 넘치는 '소련 군대 만세!'를 불렀다.
"이분들은 잠깐 조선 농촌 구경을 한다고 읍에서 나왔습니다."
통역이 성필이에게 말했다. 성필이는 이들을 동네 안으로 인도했다. 이들은 농군들의 가정 다섯 집과 권생원네 가정을 보았고 농구(農具) 일습과 농민들이 일하는 것도 보았다. 성필이네 바깥 툇마루에서 동네에서 모여든 꿀물이며 풋밤이며 대추를 먹으면서 지주네 가정에 비기어 소작인들의 생활이 너무나 비참하도록 차이가 있다 하였고, 농사를 짓는 소작인의 실수익이란 사 할이 못 된다는 말을 듣고는 더욱 놀랐다. 그들의 열정적인 이야기를 통역은 이렇게 옮겨 주었다.
"그러나 여러분 기뻐들 하시랍니다. 자본주의 국가의 식민지에서 해방이 된 여러분은 이 앞으로는 그런 억울한 착취를 당하지 않고 사실 거라 합니다. 노동자든 농민이든 자본가나 지주를 위해 살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들의 행복을 위해 살 수 있는 조선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누구보다도 성필이는 열광해서 소련 군인들의 묵직한 손을 다시금 잡으며 감사했다.
이날 저녁 성필이네 마당에는 억쇠를 선두로 여러 청년들과 농군들이 모여들었다.
"아―니 낮에 왔던 소련 군인들이 뭐랬다구요?"
"지주가 소용 없어진다구 했다면서?"
"그래 달아난 지주나 일인의 땅을 작인들이 제 해루 차지허구 부쳐 먹으리까?"
"지주가 소용 없어진다면 조선 지주두 그렇다든가?"
이들의 자기 표준의 구구한 질문에 성필이는 아직 정확하게 분별해 나가며 대답해 줄 자신은 없었다.
"인제 두구 봅시다. 아무튼지 제 손으루 일허는 사람이 가난하구 놀구 앉었는 사람이 잘사는 세상으루 도로 되지는 않으리다!"
"그걸 자네가 어떻게 장담허나? 일본이 졌으면 일본이 쫓겨갔을 뿐이지 땅 임자들이 모주리 조선서 떠나가든 않겠지?"
용길이 아버지가 벌에서 늦게 들어오던 길인데 한몫 끼었다.
"그건 성필 씨를 두구 생각해두 그렇진 않지요."
하고 불쑥 성필이의 대답을 앞질러 억쇠가 나섰다.
"성필 씨가 전에 만날 잡혀다닌 게 일본 사람허구만 아니라 지주들과 쌈허느라구 아니드랬나요? 그러니까 일본 경찰이 없어졌으니 인제 농군들허구 지주허구 쌈해 봐요? 그래 백이나 천 명이 지주 하나 못 해낼라구요?"
"그건 울력다짐을 헐 푼수면야 늙은 나 같은 거 하나기루 지주 하나 못 감당허겠나?"
"그렇지만 이치에 다야 말이지."
"왜 이치에 안 다요? 일 않구 더 잘살구, 일허구 더 못살구 그게 무슨 옳은 이친가요?"
"아, 일 않구 편히 먹는 사람은 그리게 땅 임자 아닌가?"
"땅 임자라뇨? 제, 아비 하래비 악헌 짓한 것, 물려 가진 멀쩡한 물신선들 그렇지 않음 가진 악헌 짓을 해 남의 피땀을 긁어모은 돈으로 산 거지 착헌 재물이 세상에 어디 있어요?"
"누군 글쎄 무슨 짓을 해서든 돈과 땅 사지 말랬나?"
"아 누가 돈 모구 싶지 않어서 못 몬 사람 있답디까? 착헌 사람치구 백에 하나나 돈을 몰 수가 있었나요 어디? 옛날 세상엔 백성들 잡어다 볼길 치구 뺏들은 재물이랍디다. 요마적인 모두 관청놈들 끼구 도조 면장 녀석처럼 협잡을 부렸거나 평생을 구리귀신으루 고리대금을 해서 남 누깔이 뭬지게 구차한 사람들 등을 쳐 먹은 그런 악착한 돈들 아니구 뭔가요? 그러니까 지주나 재산가는 죄다 우리네 구차허구 용해 빠진 사람들관 갈데없는 원수넨다!"
"그렇기두 해?"
"거 억쇠 꽤짜배기구나!"
하고 동무들도 농담으로보다는 더 속으로 감탄했다. 이날 성필이는 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전에두 세계전쟁이 있었지만 그때는 이긴 나라들두 죄다 남의 나랄 먹길 위주루 허는 나라뿐이었거던. 그래 진 나라가 먹구 있던 약소민족이나 나라들을 이긴 놈들이 도로 노나 먹구 말었지만, 그때도 말로는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민족자결이라구 떠들어 그 바람에 조선에두 독립운동이 일어나구 독립운동자들이 파리 강화회의에 조선독립을 시켜 달라구 대표가 가서 진정두 했지만 그때 어디 조선이 독립이 됐소? 그랬지만 이번엔 약한 인종이나 약한 민족이나 약한 나라를 먹기 위주가 아니라 해방시키구 도와 주는 게 위주인 사회주의 국가가 이긴 나라 중에 하나란 말이오. 그 나라가 끼기 때문에 이번엔 진 놈이 먹구 있던 걸 이겼다구 저이가 다시 노나 먹는 게 아니라, 이번엔 우리 조선처럼 모두 해방을 시켜 주는 거란 말이오. 그런 약소민족을 위해, 다시는 종 노릇을 안 허두룩 뒷수습을 해, 다시 말험 사회주의 국가가, 세계에 다시는 먹는 나라와 먹히는 나라가 없이, 서로 평등허게 발전하면서 살두룩 주장하니까 이 앞으로 조선 독립두 그냥 내버려둘 게 아니라 세계에 먹구 먹히는 나라가 없어지듯이, 한 나라 속에서도 먹고 먹히는 백성이 없두룩 그런 평화스런 나라가 되도록 보살펴 줄 거구 또 기왕부터 그런 조선이 되게 헐 양으루 우리 조선 사람 중에서도 목을 내걸구 싸워 온 사람이 얼마든지 있었단 말이오. 여러분두 알지 않소? 전에 동척과 문제 있을 때 저기 권생원네 삼포 뒷등에서 우리헌테 얘기해 주다가 나서껀 잡혀간 이 있지 않었소? 해방만 됐다구 다된 게 아니오. 모르긴 해두 조선 독립을 좋아는 하면서도 역시 조선 안에선 같은 동포끼린 그전에 저만 잘살던 버릇으루 또 한두 녀석이 여러 백천 동포를 부리면서 살어 볼려구 덤빌 거요. 소련 같은 만민평등으루 사는 나라는 조선이 그런 불평등한 나라로 떨어지길 바라지 않을 거구, 또 우리들부터가 다신 한두 녀석에게 종살이가 아니라 누구나 똑같은 권리루 사는, 정말 사람마다가 제 권리와 제 자유로 발전하면서 사는 그런 조선을 세우두룩 힘써야 할 거요. 조선이니 동포니 하지만 우리 삼천만 동포에 어떤 사람이 주인인지 아시오? 우리 같은 구차한 사람이 이천구백만이 넘는단 말이오! 삼천만의 주인은 이천팔구백만이라야 할 것 아니오? 여태까진 거꾸로 백만두 될지 말지 헌 자들이 이천팔구백만을 움켜쥐구 왔단 말이우. 명사니 지사니 하는 자들도 허턱 나라니 동포니 떠들었지만, 동포 속에 십분지 팔구가 되는 노동자와 농민을 염두에 두구 떠든 자는 적었단 말이오. 농민이나 노동자들을 위해 싸워 온 사람들, 즉 삼천만의 거이 전부 동포나 나라의 거이 전부를 위해 싸워 온 사람들은 신문 잡지엔 이름은 그닥 나지 못했어도 유치장이나 감옥엔 밤낮 이름이 적히던, 아까두 얘기했지만 권생원네 삼포 뒷등에 왔던 그런 사람들이었단 말이오! 모르긴 해두, 아니 보나마나요! 이제 조선에 누구누구 하던 두목들은 허턱 그전 식으루 독립이니 동포니 떠들다가두 정작 이해타산에 들어가선 몇 놈 안 되는 재산가나 지주 편을 들구 나설 게 틀리지 않을 거요! 그자들 허자는 대로 맡겨 나가다간 이천팔구백만의 조선 독립이 아니라 단 백만두 못 되는 몇 놈의 조선 독립밖에 안 되구 말 거요! 해방은 됐지만 정말 조선 전체의 독립, 우리 대중들의 독립이 되두룩은 우리 대중 자신들이 나서야 헐 거요! 우리들을 원조허는 선진국이 있구, 우리들을 지도하는 선각자들이 있으니까, 우리는 누가 정말 우리 편인가를 가려 낼 줄 알어야 허고, 우리 자신들이 헐 일을 알어채려서 지금부터 맘 준비를 단단히 허지 않으면 안 될 거요!"
성필이의 말소리는 나중에는 연설처럼 높아져서 사람들도 자꾸 모였고 다른 집 마당에서는 개들도 짖었다.
별이 퍼부은 듯 반짝이는 밤이었다. 억쇠는 분이가 목마를 시켜 주던 날 저녁처럼 별빛 고운 하늘을 즐길 수가 있었다. 억쇠는 제 눈이 자꾸 밝아지는 것 같았다. 권생원네 삼포 뒷등에서 그 사회주의자의 이야기에 비로소 세상을 볼 줄 아는 눈이 트이는 듯한 감격이었듯이, 오늘 성필의 이야기에서 비로소 이 해방과 이 앞으로의 조선을 보아 나갈 눈이 트이는 것 같은 감격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어서 분이와 함께 지껄이고 싶었다.
며칠 안 지나서다. 가재울에 '삼칠타작'이란 말이 들어왔다.
"삼칠이라니?"
농군들은 귀가 얼얼해 무슨 말인지 가려 들을 수가 없었다. 농사 나라 조선 천지에 북조선에서 처음 떨어진 수수께끼 같은 말이다.
"삼칠제라니? 누가 칠분을 먹는단 말이야?"
억쇠는 누구보다도 몸이 달아 성필이에게로 달려왔다. 성필이는 얼굴빛도 이제 제 색이 돌아 읍 출입이 잦을 때였다. 성필이는 억쇠에게 도리어 물었다.
"동무는 그 칠 할을 누가 먹는 게 옳겠소?"
"욕심대루야 작인들이 칠 할을 먹어야 옳지요."
"왜 지주보다 작인이 더 먹어야 옳소?"
너무나 쉬운 질문이어서 억쇠는 씩 웃고 말았다.
"욕심대루라니? 옳은 일인데 그게 왜 욕심이오?"
하고 성필이도 웃었다.
"다대수인 우리가 조선의 주인들이구, 농사를 짓는 우리가 조선 땅의 주인들인 거요. 우리가 생활이 수가 있구 우리 생활이 여유가 있어 자식들을 가르치게 돼야 조선은 문명국이 되는 거요. 가재울서 권생원 한 집만이 자식을 가르쳐 가지군 가재울에 아무 영향두 주지 못허는 거요. 가재울 사십 호가 다 자식을 교육시킬 힘과 병나면 고칠 여유가 생겨야, 또 한 놈은 착취하고 여러 놈은 착취를 당허구 허는 노릇이 없어져야 가재울두 그 담부터 미신과 죄악과 인간 모멸의 구렁에서 벗어나게 될 거요. 농민의 이익을 자꾸 주장합시다. 우리가 남을 착취허는 게 아니라 우리가 남에게 착취 안 당허구 살겠다는 게 도덕으로 봐서 당연헌 거구 생활에 있어 우리헌테 여간만 절실헌 문제요? 우리 이익을 주장헙시다! 이건 우리 이익인 동시에 조선의 이익인 거니까!"
억쇠는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 김에 달아난 녀석의 땅이니 땅이나 생길까 하는 저 하나뿐의 욕심으로만 흥분이 되어 오곤 한 제 자신이 언제든지 농민 전체와 조선 전체의 이익에 열중해 있는 성필이의 말을 들을 때마다 눈이 한 겹씩 더 무지의 안개가 걷히는 기쁨도 기쁨이려니와 한편으로 자기의 무지와 개인 본위의 욕심이 슬며시 부끄럽기도 했다.
"이러구 보니 공부 못 헌 게 참말 한이 돼요!"
"물론 배워야 허우. 그러나 지금 동무 그대로두 얼마든지 훌륭헌 일을 할 순 있단 자신을 가지시오. 세상일이 알기 어려운 게 결코 아니오. 남을 골리고 저만 잘살려는 협잡질에는 복잡한 지식이 필요헌 거요. 그렇지만 떳떳이 옳게만 사는 덴 많은 지식이 필요헌 것두 아니오. 그렇다구 과학지식을 무시허는 건 물론 아니오만, 옳게 살 수 있단 자신만은 가지시오. 그리구 우리 틈 있는 대루 학습에 충실헙시다."
"노마서껀 장근이서껀 성인학교를 하나 지어 볼까 공론을 허는 중이야요."
"그거 좋은 일이오! 내 선생은 얼마든지 끌어 대리다."
억쇠는 새로 생긴 농민조합에도 누구보다도 열성을 내려 했다. 그러나 어떻게 된 셈인지 분회장에 하필 달운이녀석이 나선 것은 불쾌하였다. 장근이도 노마도 못마땅해 울군거리었으나 아무도 차마 말은 내지 못하였다.
아무튼 타작은 삼칠제가 틀리지 않았다. 남조선에서는 마지못해 삼칠제라고 하나 북조선의 삼칠제는 조금이라도 작인에게 더 유리했다.
"조선이 해방이 아니라 조선놈이 모두 미치나 보다!"
권생원의 말이었다. 해방 직후엔 조선 독립이라고 떡을 한 섬이나 치고 동네잔치를 열던 권생원이 삼칠타작이란 말에는 눈이 뒤집혔다. 삼칠타작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죄다 미치지 않는다면 권생원이 미치고야 말 것처럼 덤비었다.
"미친놈들 소리 아닌가 들어 보게. 독립이 됐으면 법두 없나? 독립이 됐으면 태황제 때 법도대루 다스려야 할 것 아닌가? 천지개벽 후 삼칠제 타작이란 어느 임금 때 있었냐 말이다? 이 보두청으루 갈 놈들아! 남 개미 금탑 모듯 헌 재물을 그냥 먹으려 들어? 아 한푼변두 안 되는 땅을 어느 시러베아들놈이 살 거냐 말이다? 농민조합? 흥 그년의 것 메칠이나 가나 보자! 경찰서가 없어졌다구 영영 없어진 줄 아니?"
하고 작인집 마당마다 가 앉아서 으르대었다. 어떤 늙은 작인들은 역시 뛰어나와 권생원의 비위를 맞추었다.
"다시 이를 말씀이와요! 돌 뫄 땅 사자는 건 타작 받어 들이자는 거구 타작은 소불하 금리는 나와야 헐 게지 금리 안 되는 땅을 정말 미쳤다구 사겠어요? 말이 그렇지 지주 삼 할만 주겠단 작인 어디 있을라구요?"
그러나 작인은 죄다 이런 사람만은 아니었다. 곡식이나 가축의 공출은커녕 내 몸과 내 자식의 목숨처럼 개처럼 끌려다니던 이 몇 해 동안 농민도 '나'라는 것이나 '내 것'이란 것에 상당히 날카롭게 신경을 써왔다. 만세일계(萬世一系)니 천장지구(天長地久)니 하고 억만년을 저희 세상으로 누릴 것 같던 일본제국의 위신도 일조에 거꾸러지는 것을 내 눈들로 보았다. 군신(君臣)의 의(義)니 주종(主從)의 은(恩)이니 하는 것도 권력을 잡은 한편만의 제 욕심 채우는 속임수였던 것도 어렴풋이는 깨닫는 사람이 늘어 갔다. 그런데다 한편에서 인민위원회와 농민조합과 그 밖에도 가재울에선 성필이 같은 사람이 이들의 귀를 마음대로 두드리게 되었다. 여러 해 묵은 한덩이 귀지처럼 이들의 고막을 굳게 막았던 봉건관념(封建觀念)은 그 언저리가 떨어져 바스락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권생원의 비위를 맞추던 몇 사람의 늙은 작인들까지도 남도 다 정말로 삼 할밖에 내지 않는 마당에 이르러는, 저만 오 할 이상의 소작료를 내놓고 싶지는 않았다. 권생원이 마당전에 와 떠들지 않아 악을 쓴대야 말대꾸를 하려 나서는 작인은 차츰 그림자를 감추고 말았다.
농촌은 오래간만에 풍성한 가을을 맞았다. 참말 오래간만이었다. 삼십육 년 만에 아니 그보다 더 오래간만이었다. 지어 놓은 농사는 지주가 들고 가고 장리쌀 임자가 들고 가고 빚쟁이가 들고 가고 벼슬아치가 들고 가고 남는 것은 정이월 양식도 못 된다는 타작 마당의 전설은 벌써 이들의 몇 대 조상 때부터 콩쥐팥쥐 이야기와 함께 있어 왔으므로 이들은 언제부터인지 알 수조차 없을 만치 오래간만에 풍성한 가을다운 가을을 맞았다. '팔·일오' 그날보다 농사를 지어 생전 처음으로 소출의 칠 할을 차지해 보는 이날 비로소 농군들은 해방의 기쁨을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 온통이 한자리에서 맛보는 것이었다.
15
이들의 예상대로 달아난 지주나 일인의 땅에서 추수하는 농민들은 더 실속이 많았다. 같은 삼 할을 인민위원회에 내기는 하나 지주가 옆에서 간섭하는 것처럼 박하지는 않았다.
억쇠도 그전에 동척 땅에서 당한 억울을 한몫 분풀이한 듯 흐듯한 추수를 해쌓았다
쌀만 있으면 부엌 세간도 옷감도 문제가 아니었다. 집도 도쿠지란 놈이 하지 못했던 울타리까지 아늑하게 둘러쳤다. 가재울만 해도 이 가을에 시집 장가 가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여러 동네가 서로 사위를 맞고 며느리를 맞고 했다. 이집 저집서 끼니 아닌 때도 굴뚝에서들 소담스러운 연기가 올라 솟았다.
억쇠네 굴뚝에서도 한날 끼니 때 아닌 연기가 무럭무럭 올라 솟았다. 다만 이들의 혼인하는 예식만이 다른 집들과 달랐다.
그 동안 억쇠는 성필이와 정말 동무간처럼 또는 오래전부터의 사제간(師弟間)처럼 가까워졌다. 이번 억쇠의 혼인에도 성필이는 자기의 이상적 혼인식을 억쇠에게 실현시키는 것이었다.
"내가 만일 혼인을 허지 않었다면, 꼭 이 식으로 나부터 해보는 것인데!"
성필이는 재래 구식 혼인에는 물론이요, 요즘 사회식이니, 교회식이니 하는 혼인식에도 마땅치가 않아 자기대로 한 가지 혼인식을 생각해 두었던 것이 있다. 그것은 도시에서보다 농촌에서 더 적합한 의식(儀式)이어서 억쇠에게 권하였고 억쇠도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럴듯하여 분이의 동의를 얻고 즐거이 성필이의 새로운 혼례식을 따르기로 한 것이다.
장소는 동네 사람들이 단오 때면 씨름도 하고 복날이면 천렵도 하는 칙바윗골에 있는 정자 같은 반송들이 둘러선 잔디밭에서였다. 시간은 오후 네시, 동무들과 어른들이 둘러앉고 주례 성필이가 깨끗한 조선옷을 입고 상보 덮은 테이블 뒤에 섰다. 테이블에는 다른 것은 없고 산과 들에서 꺾어 모은 들국화를 중심으로 이슬기 있는 청초한 꽃묶음이 하나 놓여 있다.
이윽고 신랑의 들러리인 장근이가 개울에서 올라와 준비가 된 것을 알리었다. 주례는 내빈들에게 곧 신랑이 나타날 터이니 신랑이나 신부가 개울에서 올라서거든 테이블 앞에 이를 때까지 일어들 서라고 이른다.
신랑은 개울에서 이 닦고 머리 감고 세수하여 머리에는 그저 물기가 있어 올라선다. 옥색 두루마기를 입었으나 발이 맨발이다. 뒤에 따르는 두 들러리들도 발목에 대님은 묶었으나, 모두 맨발로 잔디를 파헤치고 만든 보드라운 생흙길을 밟으며 들어섰다. 숫눈처럼 푸군푸군 발에 묻는 흙은 보기만 하는 사람들에게도 싱그러운 흙의 향기를 풍기었다.
테이블 앞에도 한칸 둘레로 잔디가 걷히고 검붉은 생흙바닥이었다. 신랑이 바른편에 서자, 신부가 나타난다.
신부도 새로 머리를 감고 세수를 했다. 얼굴 그대로 분도 연지도 없고 머리는 그전에 함경도나 평안도에서들 얹듯 치렁치렁 땋은 머리를 댕기째 올려 둘레머리로 얹었다. 얄밉도록 부자연한 낭자머리보다 이 둘레머리는 자연스럽고 사슴이 뿔을 이듯 자랑스럽게 머리를 인 신부는 한편에 떨군 붉은 댕기와 함께 멋들어진 맵시였다.
두 들러리도 마찬가지 머리에 마찬가지 맨발들이다. 신부는 분홍 옷, 들러리들은 어느 쪽도 다 흰 옷들이다.
"여러분들 앉으십시오."
처음 보는 광경이라 어른들도 조용하지 못하였다. 주례는 근엄한 표정으로 조용해지기를 기다렸다.
"이제부터 천억쇠 군과 김분이 양의 혼례식을 지내겠습니다. 이 두 분은 서로 사랑한 지 오래고 자기들의 사랑이 진실한 것을 믿기 때문에 오늘 여러분 앞에서 부부의 길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보시는 바와 같이 신랑과 신부는 지금 발에 짚 한 오리 걸치지 않고 맨발 맨살로 새로 파헤친 생흙을 밟고 섰습니다. 이분들은 지금 어떤 자리에서보다 순박하고 진실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차 있을 것입니다. 이들이 서로 사랑을 변치 않을 것과 이들이 부부로의 결합을 영원히 지켜 나갈 것을 여기서 이 순진한 마음으로 여러분 앞에 맹서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진정으로 이들의 결혼을 축복하시며 이 앞으로 이들의 새 가정을 돌봐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신랑으로부터 신부께 꽃을 드리겠습니다."
주례는 테이블에 놓았던 꽃묶음을 들어 신랑에게 준다. 신랑은 두 손으로 받아 한 걸음 나서며 신부에게 바친다. 신부는 소곳이 꽃을 받아 왼편에 안는다.
"신랑과 신부는 신성한 입맞춤으로 이제부터 완전히 부부되었음을 표시하겠습니다."
신랑은 신부를 안고 가벼이 입을 맞추었다.
노인들과 아이들은 웃었다. 그러나 눈에 서투를 뿐 너무나 경건한 분위기에 웃음 소리들이 크지는 못하였다. 주례의 인도로 내빈 전체가 일어서서 신랑신부의 만세를 부르는 것으로 결혼식은 끝이 났다.
신랑신부가 다시 개울로 내려가 신발들을 신고 신부는 화장도 하고 올라와서 술과 국수와 떡으로 해가 저물도록 음식잔치가 벌어졌다. 면 인민위원회 위원장과 벌촌 택길이의 축사도 있고 동무들의 노래와 춤도 있다가 신랑집 지붕 위에도 별이 돋았을 때는 횃불을 쌍으로 잡히고 농악(農樂)이 앞을 서고 신부는 소를 타고 신랑은 말을 타고 동리로 내려왔다.
신랑집 마당에는 밤늦도록 농악이 그치지 않았다.
동리마다 혼인처럼 풍성하고 평화스러운 풍경은 없다. 집집마다 신혼한 내외처럼 다정스럽고 희망에 찬 생활은 없다. 억쇠와 분이도 행복스러웠다. 옆에 듣는 사람이 없건만 둘이는 늘 소곤거려 이야기한다. 크게 지껄이면 누가 와 빼앗아 갈 행복이기나 한 것처럼 조심한다. 암만해도 꿈 같았다.
'우리도 이렇게 살 수 있는 건가? 도쿠지란 놈이 다시 나타나 우릴 이 집에서 내어쫓고 동척이 다시 들어서 육 할 이상이나 되는 소작료를 받고 다시 우리는 권생원한테 가 장리쌀을 줍쇼, 빚을 줍쇼, 그러는 일은 정말 다시는 없을 건가?'
"이거 봐요."
분이로서는 꽤 큰 목소리로 밖에서 들어온다.
"웬 닭이오?"
분이는 뿌―연 암탉 한 마리를 안고 들어왔다.
"알믄 용―치?"
"샀수?"
"당신은 사는 것밖에 몰루?"
"그럼?"
"요거 지난봄에 내가 안긴 첫배라우. 우리 엄마가 우리 씨닭 허라구 주셨어."
"주시면 뭘 해?"
"왜?"
"이웃인데 가지 않구 있나?"
"가두는 것두!"
"가두면 알 안 낳는 것두?"
"그럼 어떡해?"
"할 수 없지 뭐?"
"어쩌믄 그렇게 태평이우?"
"닭쯤 도루 갔기루."
"그럼 당신은 뭐쯤이라야 아깝겠수?"
"김분이쯤은 좀 아깝지!"
"좀만?"
하고 분이는 눈을 흘기며 광으로 들어갔다.
아내는 모이를 가지고 나왔고 신랑은 노끈을 가지고 나왔다. 동여 놓은 닭이 모이 주워 먹는 것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분이는 다시 남편의 어깨 뒤로 와 소곤거리었다.
"그런데……."
"뭐?"
"저어 권생원댁이 장근 어머닐 나와서 막 야단을 쳤다는구랴!"
"왜?"
"밤낮 저희 세상으루만 아는지 저이 김장허기 전에 먼저 김장해 넣다구."
"그래 뭐랬답디까?"
"뭐래긴 부―옇게 몰리기만 했지 뭐! 장근이서껀두 못 듣는 데선 우쭐렁거려두 정작 권생원이나 권생원댁 앞에선 여태두 썰썰 기지 뭐야? 난 사내믄 안 그래!"
"여잔 그리랬나?"
서로 웃었다.
"그까짓 고추 오늘 저녁으루 내 빠놀 테니 당신은 밤새서라두 마늘서껀 까고 우리두 권생원네보다 하루라도 앞서 낼루 해넙시다."
"정말?"
"정말 아니구! 내 멀드라두 권생원네 개울보다 더 위루 날러다 줄 테니 배추두 기중 상탕 상상탕에서 씻어요."
"나두 좋아!"
이들 젊은 내외는 오랫동안 눌리고 짓밟히기만 하여 제대로 뻗을 줄 모르는 저 자신들을 북돋우고 버티고 끌어올리기에 가재울서는 누구보다도 열렬했다.
그러나 억쇠는 가끔 불안이 떠오르곤 한다. 요즘은 더구나 성필이가 없어 속시원히 물어 볼 데도 없다. 성필이는 해주(海州) 도인민위원회로 가더니 거기서 다시 해주보다도 더 멀리 평양 북조선인민위원회에 가 일을 보는 것이다.
'이 집이 정말 우리집이 될 건가?'
'이 땅이 정말 삼칠제로 우리가 눌러 부칠 수 있을 건가?'
가재울서는 십 리만 나가면 벌촌 앞뜰이 바로 삼팔선 경계다. 도쿠지의 아범 황가녀석이 이젠 서울서 쥐구멍에서 나와 가지고 '팔·일오' 전에 황해도 일본말 신문에다 '동조'라는 이름으로 공출에 충실해라, 학병에 솔선해라, 일본이 이겨야만 조선 민족도 산다, 떠들어 대던 본으로 해방 이후 오늘에도 지주들과 재산가들만 모인 정당에 한몫 끼어서 토지정책은 어떠해야 하느니 공산당은 매국노들이니 하는 따위 뻔뻔스럽게 정견발표를 한다는 것이다.
'도루 그자들 세상이 되구 마는 건가? 그럴 수도 있는 건가?'
더구나 삼팔 이남인 개성이 가깝고 그곳다 한끝을 둔 권생원은 뻔쩍하면 개성과 서울을 다녀와서 남조선은 살기 좋더라 했다. 그러면 남조선으로 갈 것이지 왜 여기 있느냐 물으면 여기도 며칠 안 있어 남조선처럼 되고 말 거라 했다. 조선의 수도는 서울이다. 조선의 유명한 정치가들은 서울에 모였다. 암만 여기서 북조선대로 이러쿵저러쿵 해야 나중엔 개 지붕 쳐다보기일 테니 두고 보아라 했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성필이가 하던 '누가 우리 편인가를 알어야 허고, 우리 자신들이 헐 일을 맘속에 준비해야 할 때'란 말이 생각나기는 했으나 이미 행복을 얻어 놓은 저로는 우선 그것만이 물거품이 될까 보아 겁부터 나는 것이다.
억쇠는 불안한 내색을 분이에게 보이고 싶지도 않거니와 이런 불안이 떠오르면 밭이나 논을 다시 한번 둘러보고 싶어서도 밖으로 나온다. 터 앞으로 붙은 밭, 손이 가까워 무엇을 심든지 재미날 것이다. 오이와 고추를 심으면 분이가 밥상을 갖다 놓고도 뛰어나와 오이와 풋고추를 따올 것이요, 옥수수를 심어 잇속이 옥수수 같은 분이가 옥수수를 찧고 섰는 모양은 꼭 한번 보고 싶다.
논도 밭축 밑에 첫배미부터다. 동네 구지렁물은 다 흘러들어가는 밭축이라 이 밭축물은 제물 거름물이다.
'여기도 서울처럼 돼서 도쿠지놈 부자가 뻐젓이 나타나 일제 때 권도 그대로 누깔을 부릅뜨고 집을 내놔라 논밭을 내놔라 한다면?'
억쇠는 눈앞이 캄캄해진다. 그러나 이런 때마다,
'내놓고 물러서야지 별수 있나!'
보다는,
'싸우자! 목을 걸구 싸우자! 우리 뒤엔 얼마든지 큰 힘이 있다! 우리 농군이나 노동자두 잘살 수 있는 조선이 되도록 도와 주는 나라두 있다! 성필 씨 같은 사람두 하나는 아니다! 김일성 장군 이하 북조선인민위원회가 모두 우리 편이다! 아니, 남조선에도 온통 우리 농민들이다. 또 거기 지도자들 중에도 우리 편은 한둘이 아닐 것이다! 싸우자 목을 걸고!'
이렇게 마음먹는 편이 많기는 하나 이미 행복에 겨워 버린 자는 강할 수 있기보다 약할 수 있기가 쉬웠다. 더욱 권생원이 땅을 팔기 시작하는 것이다. 한 마지기도 좋다, 하루갈이도 좋다, 사려는 사람 마음이다, 돈 자라는 대로 뜯어 파는 것이다. 추수가 풍성했고 곡식값이 자꾸 올라 밭 하루갈이나 논 오륙백 평쯤은 우습게들 사는 눈치다. 농민조합에서는 사지 말라고 선전하였다. 땅을 사도 등기가 나지 않는다, 땅을 사지 않아도 농군이면 땅 없이 농사 못 짓게 되지는 않는다, 아무리 외치어도 평생을 땅에 주려 온 농민들은 나중엔 이해상관이 어찌 되든지 우선 한 평의 땅이라도 '내 땅'이란 것에 소원풀이들을 하는 것이었다. 농군들의 농토에 대한 애정은 치정(痴情)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담날 땅을 그냥 얻는다 하드라도 좋고 나쁜 땅에 내 차례에 꼭 좋은 게 올 줄 뭘루 믿느냐? 그까짓 땅값 공연히 주는 셈치드라도 내 맘에 드는 걸 골라 갖는 것만도 어디냐? 땅값이 아니라 골르는 값으로 쳐도 그만이다."
하고 다시 덤비는 사람들도 자꾸 생기는 판인데 하루는 농민조합 분회장인 달운이가 억쇠를 오라 했다.
"내 자네헌테 조용히 귀띔해 줄 일이 있어 오랬지."
"고맙네. 무슨 일인가?"
"나두 농민들에겐 땅 사선 안 된다군 허네만 요즘 돈 애껴선 뭣에 쓰며 또 등기가 안 난다기루 어느 놈이 돈 땅값이라구 영수증 써주군 땅 도루 내라겠나?"
결국 도쿠지네 집과 논밭을 부칠 만치는 살 수 있거든 사라는 수작이다.
"도쿠지가 어디 있는데?"
그것은 가르쳐 주지 않았다. 산다고만 하면 자기가 연락은 해줄 수 있다 하였고 도쿠지쯤 그의 아버지와는 달라 거물친일파(巨物親日派)도 아닌데 도쿠지의 소유물이 몰수될 리도 없는 거며 그렇다면 도쿠지가 다른 사람한테 판다든지 소작권을 준다든지 해서 내일이라도 맡은 사람이 달려들면 무슨 꼴이냐 미리 알아차리라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불안스럽게 지내던 억쇠는 달운이 말에도 일리가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혼인하느라고 겨우 먹을 양식만 남기고 곡식은 최대한도로 팔아 써버린 억쇠는 밭 하루갈이와 논 이삼천 평 값을 만들 길이 없는 것이다. 억쇠는 눈이 불거지지 않을 수 없다. 좌우간 며칠 여유를 달라 하고 달운이와 헤어졌다.
"왜 누구허고 말다툼했수?"
분이는 그만해도 억쇠의 맘속을 엿보는 데 누구보다 빨라졌다.
"아―니."
억쇠는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행여나 귀여운 아내가 자기들의 행복이 이렇듯 위태로움을 눈치챌까 보아 겁이 나는 것이다.
그러나 분이라고 남들이 땅 사고 파는 것을 모를 리 없었고 또 저희들의 행복을 튼튼히 하기 위해 마음을 쓰지 않고 있었을 리 없었다. 서로 기쁘게 하기 위해서는 못 하는 말이 없어도 걱정거리가 될 만한 말은 아직 서로 제 속에만 두는 신정 무렵이었을 뿐이다.
하룻밤은 저만 깨어 있는 줄 알았는데 신랑도 숨소리가 잠든 것 같지 않았다.
"왜 안 자우?"
"당신은?"
"무얼 생각하우?"
"땅이 말이야……."
"땅?"
"응."
"어쩌믄 나두 그 생각 하드랬는데! 어떻게 될까 정말?"
"땅을 사는 게 옳기만 허다면 나도 살 순 있어."
"어떻게?"
"달운이가 나섬 연락이 된다니까."
"그래두 곡식 우리 혼인 땜에 다 쓰군?"
"야미장사두 못 해? 있는 쌀 우선 팔어 땅 약조금 줘놓고 개성으루 열 번만 드나들면서 갈 땐 곡식을 지구 가구 올 땐 병정구두나 실 광목 같은 걸 가지구 옴 열 행보 안에 그만 꺼 맨들 순 있는 거야."
"그런데?"
"그런데 난 달운이 따위나 권생원의 말보다는 농민조합이나 인민위원회를 믿구 싶어!"
"그게 무슨 말이우?"
억쇠는 그전 동척과 소작료 문제 때 본 사회주의자 이야기를 꺼내었다. 일제시대 그렇게 경찰이 그악하던 때에도 목숨을 돌보지 않고 농민들을 위해 일하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 지금은 농민조합만 아니라 인민위원회가 그런 사람들로 조직이 된 것이니 그네들이 농민들에게 해로운 소리를 할 리가 없다는 것, 그러니까 땅을 사지 말라는 것을 사는 것은 의리로 보더라도 잘못이라는 것, 그리고 악하고 제 행복을 짓밟는 자에게는 털끝만치도 아첨은커녕 정정당당하게 미워하고 대항할 줄 아는 것이 우선 사람이란 것, 여기까지 말이 미치어서는 억쇠는 제 이야기에 저 자신부터 감동이 되었다. 벌떡 일어나 앉았다.
"우리는 오륙이 성허다! 팔 걷고 나서면 못살 리 없는 거구 일을 해두 못살게 되는 날은 해방 아니야. 우해방이기루 그런 놈의 세상은 뚜드려 엎어야 한다! 내가 야미꾼 노릇꺼지 해서 도쿠지란 놈한테 땅값 받읍쇼 허구 갖다 바쳐? 내 누깔에 흙이 들어가 봐라!"
"그럼!"
"달운이란 놈부터 나쁜 놈이다! 애초부터 나쁘던 놈이다! 명색이 농민조합 분회장이면서 조합에서 금허는 땅 매매를 허라구? 이만 껀 나로두 판단할 수 있는 거다! 달운인 역시 나쁜 놈이다! 우리 편이 아니다!"
"그래두 여보?"
하고 분이도 일어나 어둠 속에 마주 앉는다.
"그래두 그따위 달운이 같은 것들 괘니 덧내진 말어요."
"왜?"
"난 그때 우리 아버지 매맞구 오신 거 잊혀지지 않습디다! 지금 와선 분회장이구 뭐구 또 꺼떡대는 거 건드렸다 괘니 오너라 가너라 험 난 싫여! 그까짓 땅 뉘해 되든 삼칠제만 그냥 나감 살지 뭐!"
"그까짓 땅이라니? 난 당신 담에는 땅이우!"
"그건 나두! 당신 어떻게 될까 봐 그게 애가 씨니까 그까짓 땅이란 말이지 뭐!"
이래서 이들은 서로 아끼고 의지하는 마음은 굳어 가면서도 역시 땅 때문에는 불안이 가시지 않던 무렵에 '토지개혁법령'이 떨어진 것이다.
16
토지개혁을 실행하기 위해 면 인민위원회로부터 실행위원들이 나와 가재울에도 농민대회를 열기는 법령이 발표된 지 아흐레 만인 삼월 십사일이었다. 이 아흐레 동안 가재울도 벌촌이나 다른 농촌들과 똑같이 기쁨과 원망과 희망과 저주의 별별 억측이 한데 휩쓸려 떠돌았다.
"경자유기전(耕者有其田)이라구 밭갈이하는 사람이 그 밭을 가질 것은 성현두 말하신 바다! 농민이 땅을 짓는 것은 또 농민만 아니라 조선 전체가 잘되는 노릇이다. 농민은 조선 사람의 팔 할이나 되니까 조선의 팔 할이 잘되는 일에 누가 감히 반대하랴? 땅도 제 땅만큼 제 살 다루듯 할 것이니 조선 전답은 모조리 옥토루 변할 것이다. 소출도 얼마나 늘 것이냐? 조선, 즉 우리나라가 잘되는 노릇이다!"
토지개혁 실행위원들의 해설을 듣기 전에 성필이 아버지 최초시 같은 이는 벌써 이만치 토지개혁의 옳은 것을 역설하였고,
"과거 친일파나 악덕지주의 땅이야 빼앗는 걸 누가 무어나? 악덕은커녕 송덕비가 선 지주의 것까지 일률로 몰수라니 이건 알 수 없는 법령인걸? 이런 건 아무래두 기껀 좋은 일을 하면서 일 전체를 그르칠 장본인걸."
하고 토지개혁을 다만 친일파와 악덕지주에게의 보복수단으로만 아는 데 그치는 사람도 많았다. 억쇠네처럼 끝까지 땅을 사지 않은 사람들은 기뻐할 것밖에 없으나 무리에 무리를 해 땅값을 치른 사람들은 뒤통수를 긁을 뿐 아니라 땅을 사지 않고도 땅을 차지할 사람들을 시기하는 마음에서 지주나 다름없이 토지개혁을 빈정거리는 자들도 있었다. 이 동네 저 동네서 벌써 남조선으로 떠나 버린 지주도 한두어 집이다. 이런 지주들은 마치 '팔·일오' 당시에 어떤 왜놈들이,
"오 년 뒤에 다시 보자!"
"십 년 뒤에 다시 보자!"
하며 떠난다듯이,
"땅 빼앗긴다고 설어 말고 땅 얻는다고 좋아 말어라!"
하면서 권토중래(捲土重來)나 있을 듯이 희떱게 떠나는 지주도 있었다. 권생원은 머리를 싸매고 누웠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바로 동민대회가 열리는 날 아침에는 식전부터 나와 돌아다니다가 억쇠네 집에도 석유 한 병을 들고 찾아왔다.
"글쎄 지주는 조선 사람 아닌가? 자네 알다시피 내 친일파 노릇 헌 게 뭔가? 은행에 예금 있는 것 죄다 알구 비행길 헌납해라 기관총을 헌납해라 못살게들 볶으니 마지못해 돈 만 원씩 빼앗겼지 내가 어디 한 번이나 자원했나? 나처럼 돈 애끼는 놈이 어디 있나? 안 그런가?"
역시 억쇠는 이런 사람이 자기 집에 찾아와 준 것이 어쩐지 한편 황송하고 아무래도 맞닥뜨리면 머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아 듣기 좋게,
"그걸 누가 모를라구요?"
해주었다.
"땅이야 내놔라 어쩌라 한다구 어느 구둥이가 금세 부스러지는 건 아니니까 나중 끝날 배야 알 일이지만 집이란 한번 남의 손에 들믄 당장 결딴나는 거구 지금 세월에 적은 살림두 아닌 걸 어떻게 끌구 다니겠나?"
"그렇습죠."
"자네도 인전 성갈 했으니 자식 낳구 살자면 이런 험한 시절일수룩 인심을 얻어 둬야 허는 걸세. 어디 조선이 지금 정부나 선 걸 가지구 이런다든가? 동척이나 도조 면장의 땅을 몰수허는 건 누가 끓다나? 이 권아무개 내 생전 내 힘으로 개미 금탑 모듯 한 재물을 무슨 명색으로 먹자는 거야? 생 도적놈들 같으니! 못 구차한 사람들을 먹여 살려? 아 가난 구제는 나라두 못 한단 옛말두 못 얻어들었어? 시러베 아들놈들! 내 자네허구 속엣말이 그냥 튀어나오네만 한옆에서 몽둥이를 깎구 있는 줄 왜 모르는 거야 흥!"
이런 권생원의 말이 억쇠 내외는 여간 찜찜하지 않았다. 사정이 아니라 은근히 위협이기도 했고 더욱 분이는 물론 억쇠 자신도 오늘 실행위원들에게서 법령해설을 자세히 듣고 실지로 결정되는 것을 보면 알려니와 아직까지 들리는 말만으로는 토지개혁이 아닌게아니라 토지를 받는 사람들로도 안심이 안 될 만치 지나친 데가 있는 것 같아,
"땅 빼앗긴다고 설어 말고 땅 얻는다고 좋아 말어라."
소리가 그대로 맞을 날이 없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을 누를 자신이 없는 것이다.
"이런 때 성필이가 있었으면―---"
"그러게 말유!"
억쇠는 옳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많은 지식이 필요치 않다던 성필의 말이 생각나기는 했으나 아무리 머릿속을 더듬어도 악덕지주가 아닌 사람을 땅만 아니고 집까지 몰수한다는 것은 알 수가 없었다. 오히려 착한 지주를 위해서는 의분이 일어난다.
"권생원 말이 옳지 뭐유?"
권생원이 사라지기가 바쁘게 분이는 토지개혁이란 것에 적이 실망하는 듯 무안 본 얼굴처럼 볼이 발그레해서 동민대회로 나가려는 남편을 막았다.
"그럴 리 없어!"
"근세 법대로 헌다면 안과부네 몇 알 안 되는 논두 몰수라니 과부가 기름장살 해 늘그막에 겨우 먹을 만치 장만한 걸 어째 뺏는다는 거유? 그런 건 잘못이니까 토지개혁이란 게 뒤집힐 것만 같어!"
"나두 그런 게 좀 분명치가 않긴 해……."
"길을 막구 물어도 안과부 같은 집 땅을 뺏는 건 잘못이지 뭐야."
"안과부네 땅까지 법에 걸리는 그 까닭만 알면 토지개혁을 안심허겠수?"
"아니."
"또 무엇?"
"토지개혁이라면서 집들은 왜 뺏는 거야?"
"그러게 말이야……."
"당신도 잘 알아보구 나서요 괜히!"
"지주들 집 뺏는 것꺼정 까닭을 알면 맘을 놓겠수?"
"응."
"나두 지금 그 두 가지 때문에 어정쩡헌 거유. 그렇지만 난 인제 이런 생각두 나."
"무슨?"
"권생원이 이러이런 거 잘못이다 틀렸다 큰소릴 허는데 나나 당신은 말이 막히지만 그래 권생원 말쯤에 인민위원회나 농민조합에서 대답헐 말이 없겠수."
"허긴!"
"우리나 권생원이 잘못된 거라구 밝혀야 하리만치 그렇게 위에서들 몰랐다 거 알구두 무슨 우격다짐처럼 막나갈 린 없는 거요!"
"그렇게 생각험 그렇긴 해두……."
"그러니까 무슨 곡절이 있는 일이야. 내 그걸 알어다 바칠 테니 내 속두 시원허고 당신 속도 묵은 체가 내려가게 해줄 테니 병아리나 괜히 독수리헌테 채키지 말구 집 잘 봐요."
"남을 어린애루 알아!"
억쇠는 아내는 약간 아까워하나 권생원이 놓고 간 석유병을 집어 들었다.
"어떡할려구 그류?"
"더러운 자식―--- 석유 한 병으로 남을 꾀볼려구?"
"도루 갖다 주게?"
"그럼! 그 자식들을 미워해야 할 텐데 만나면 꼼짝못허겠으니 제―길헐…… 권생원자식 개자식! 권생원자식 개새끼 돼지새끼……."
하고 억쇠는 소리를 지르며 뛰어나왔고 분이는 대문을 지치며 깔깔거리고 웃었다.
권생원은 집에 없었다. 안마당까지 들어서니까 눈에 모가 선 권생원 마누라가 내다보았다.
"이거 아까 권생원이 놓구 잊어버리고 오셨나 봐요."
"아 그거 자네네 켜라고 안 그러시던가?"
"우릴 왜요?"
억쇠는 더 대꾸를 하기 싫어 석유병을 마당 가운데 놓고 뛰어나오고 말았다.
농민대회는 장근네 마당에서였다. 억쇠는 그까짓 병아리쯤 내버려 두고 색시도 같이 올라올 걸 싶었다. 남들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안팎이 떨어 나와 있었다.
멍석을 깔고 가운데는 앉았고 가으로는 울타리처럼 물러서기도 했다. 작년 '팔·일오' 때보다도 더 많이 모였다고들 했다. 주인을 따라 모여든 개들도 꼬리를 치고 설치었고 그 바람에 닭들도 놀라 지붕 위로 풍산을 한다. 권생원도 여기 와 있었다. 달운이가 면에서 나온 실행위원 세 사람 축에 끼어 여보란 듯이 담배를 피고 있다. 절름발이 홍서방도 쩔룩거리며 들어섰다.
"홍서방이 오늘두 징용장을 받었나, 신이 났으니?"
하고 놀리는 사람도 있다.
"참깨 들깨 노는 판에 아주까린 못 섞인다든가?"
해서 모두들 웃었다. 일제시대 남은 다 무서워하는 징용장을 절름발이 홍서방만은 자동찰 가져왔느냐, 비행길 가져왔느냐, 날 뭘로 모셔 갈 테냐? 하고 큰소리를 쳤던 것이다.
최초시도 내려온다. 최초시한테는 실행위원들도 성필이 아버지인 것을 아는지 일어나서 인사를 한다. 억쇠도 앞으로 나가 인사를 했다.
"왔는가? 내 그렇지 않아두 좀 만났으면 했드리니."
"저 말씀이세요?"
"아직 아마 더 올 사람이 많으니 그새 나 좀 보세나."
최초시는 억쇠를 데리고 도로 자기네 사랑 툇마루로 올라왔다.
"자네들 학교 질 공론들이 있었나?"
"추수들이나 끝내군 성인학교를 짓는대다가 그런 선생님 노릇 해주실 성필 씨가 떠난 담에 맥들이 풀리구 요즘은 땅들에 눈이 뒤집혀 저부터두 어디 거기 정신을 씁니까!"
"재목을 치목해 뒀던 것두 아니구 새로 세울 생각들은 말게."
"왜요니까?"
"인제 권생원네 집 뭘 허나? 그런 거 학교루 쓰게그려."
"아니, 참 이번 토지개혁에 집이 어찌 걸려듭니까? 그렇지 않어두 성필 씨 있을 때 같음 벌―써 뛔올라와 알아봤을 건데 여간 궁금하지 않습니다."
"나두 첨엔 그게 어정쩡한 일인데, 그런데 내가 요전에 평산 좀 다녀오지 않었나? 거기서 실지루 보기두 했거니와 일전에 성필이게서 편지가 왔네……."
"뭐라구요?"
"지주들의 집을 뺏는 것이 아니라 지주는 살던 동네를 떠나야 한다는 걸세. 그러니까 집이 절루 비는 거지."
"왜 동네꺼지 떠나야 합니까?"
"떠나야만 토지개혁을 허는 보람이 있겠네. 들어 보게. 내 다녀왔다는 평산 친구가 큰 지준 아니나 지준 지주지. 그 사람은 법령 나기두 전일세, 아주 자진해 땅을 작인들한테 노나 주어요. 그래 첨에는 그게 잘허는 일이구 토지개혁두 그런 식으루 나가는 게 옳은 줄 아는 사람두 있었지만 그런 일은 원측이 틀리는 거라구 지금은 문제가 된다네마는 원측에 틀릴 법두 헌 게 지주가 옆에 그저 살구 있으면 땅으로 해 생겼던 폐단이 여간해 안 없어지겠네. 땅을 그저 줬다구 해서 작인들이 참기름이니 찹쌀되니 뻔질나게 들구 오구 인전 돈두 군색할 게라구 일거리가 있기 바쁘게 저이 점심들을 싸가지구 와서 그저 해주구 간다네그려."
"그게 인정 아닙니까? 그게 그런 훌륭헌 사람헌테 마땅히 할 일 아닙니까?"
"아닐세! 그런 생각으룬 미풍양속이지, 그러나 그건 작인들이 그런 지주를 오늘 와선 지주 이상 신분으로 섬기려 드는 걸 그래? 그게 폐단이란 걸세."
남의 집 하인의 자식으로 있어 본 억쇠는 '신분' 소리에 선뜩 찔리는 데가 있다.
"주종(主從)관계를 끊자구 한 노릇이 그게 더 심해지니 되겠나? 그런 걸 미풍양속이라 쳐주던 건 인전 다 지나가 버린 군신도덕(君臣道德)일세그려―--- 무엇보다 인전 작인들이 아니라 남인데 남들의 폐만 끼치게 되니 땅을 내놓는 근본정신에 틀리는 거구 토지개혁은 무슨 시주(施主)가 있어 가지구 자선사업으루 허는 게 아닐세. 이 점이 중요허단 걸세. 알겠나? 누구는 떡 앉어서 은혜를 베풀구 누구는 굽신거리구 모여들어 그 은혜나 받구 그러는 게 아니라 첫째 사람으로 똑같은 평등지위가 되는 걸세! 그러니까 지주로 보드라도 단지 지주란 걸로 세력 부리던 낡은 환경에서 썩 물러나 그 자신도 새 인간으로 해방이 돼야 헐 거구 그러자니 딴 데루 가야지! 그래서 주종관계가 전혀 없어진 자유평등 천지에서 어서 새 미풍양속이 서야 헐 걸세."
억쇠는 걸터앉은 무릎 위에 깍지를 끼고 있었으나 속으로 크게 무릎을 쳤다.
"알겠습니다!"
"그러게 토지개혁은 지주가 인심을 써 전에 자선사업허듯 헐 게 아니라 지주는 땅을 ꂛ기구 꺼떡대던 그전 환경에선 쑥 빠져나가야 되겠네. 그래야 족 잔뜩 노려보는 웃사람이 없어져야 농군들이 그전 소작인으루 가진 비루하던 성질이 없어지구 기를 펴구 정말루 자유스런 인생들루 살게 되겠네!"
"그래서 지주들을 살던 데서 떠나게 허는 걸 암만 생각해두 아는 재간이 있어야지요!"
"성필이가 늘 원측 하더니 평산 그 친구 얘기 듣구 생각해 보니 일이란 딴은 잔사정에 끌릴 게 아니라 원측대로만 나가야 헐 거데! 잔사정에 끌린다는 건 그게 벌써 맘보가 협잡을 부릴 수 있게 틈이 벌어진 증걸세그려! 좀 몰인정헌 것 같어두 일이란 원측대로만 나가야 헐 거데!"
"알겠습니다. 참 속시원한 말씀 들었습니다!"
농민대회 회장에서 박수 소리가 울려 왔다. 이들이 다시 회장에 내려왔을 때는 달운이의 인사말이 끝날 때였다. 이내 실행위원 한 사람이 나서 토지개혁의 취지를 이야기하였다. 억쇠는 최초시의 말에서 토지개혁의 가장 골자를 터득했기 때문에 쉽게 알아들을 수가 있었으나 '역사적 사명'이니 '봉건악습'이니 '인수사업'이니 '경각성'이니 문자만 들려 나오는 말에서 다른 농군들은 약간 어리둥절해졌다. 그러나 하나같이 알려는 열성인데다가 나중에 북조선인민 임시위원회 위원장 김일성 장군의 담화를 해설해 주는 데서는 토지개혁의 정신이 분명히 인식되는 듯 머리를 끄덕이었고 억쇠도 몇 대목은 머릿속에 외어 넣을 수가 있었다.
"조선이 조선 사람 모두가 잘사는 나라가 되자면 동포끼리 제일 큰 착취제도요 노예제도인, 지주 있고 소작인 있는 제도부터 없애야 된다는 것, 민족끼리 누구나 동등한 권리를 갖고 평등하게 발전하는 나라를 세우자는 데 반대하는 민족반역자나 친일파들의 근거가 되는 지주계급을 없애 버리자는 것, 민족의 팔 할이 넘는 농민의 생활을 높여서 그들도 자식을 가르치게 하고 그들도 암흑생활에서 벗어나 문명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것……."
억쇠뿐 아니라 모두들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나중엔 박수가 쏟아졌다. 그리고 다른 실행위원이 나와서는 지주들에게 하는 이야기라고 하는데 작인들이 들어도 토지개혁의 정신을 이해하기에 필요하였다.
"지주 되는 분도 오늘 목전엔 섭섭할는지 몰라도 이 토지개혁의 정신이 어떤 사람만 미워서가 아니라 조선 전체를 잘되게 하기 위해서 하는 국가의 발전사업임을 알고 자진 협력해야 옳은 것입니다. 일제시대엔 돈을 가지고도 해볼 만한 사업은 왜놈들이 독점했기 때문에 조선 사람들은 땅이나 사놓고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지만 해방된 오늘은 그런 궁상을 떨 필요가 없습니다. 돈을 모을 만한 유능한 사람들을 위해서는 땅만 지키고 앉었지 않어도 좋게 모―든 사업장이 텅― 비인 채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오히려 지주들로 그 죄악의 문서, 소작인 명부나 붙들고 앉었는 골방 속에서 해방이 되어 세계를 내다보며 국가적 생산의 사업주로서 활동해 건국에 공헌할 수 있는 훌륭한 기회가 되는 겁니다."
이런 말에는 억쇠도 다시금 감격되었다.
'그런 게다. 지주라 해서, 앞으로는 바르게 살려는 사람도 못살게 헐려는 나라는 아닐 거다!'
법령과 세칙과 임시조치법에 관한 해설까지 끝난 다음, 누구나 어정쩡한 것을 자유로 물어 보라는 순서에 이르렀다. 회장은 더 생기를 띠는 것 같다. 그러나 누가 먼저 무엇을 묻나 서로 두리번거리기만 하는데,
"내 한 가지 묻겠시다."
하고 일어서는 사람은 칠순이나 된 안과부의 시어머니였다.
"내 아들이 손이라군 딸 하나 낳구 죽었시다. 그것 에미가 효부라서 여름엔 농사 짓고 겨울이면 백천읍으루 기름병을 이구 다녀 땅날갈이나 사 늘그막에 들어앉어 삼 모녀가 겨우 입에 풀칠이나 허죠니까 그 땅이 원 어떻게 되리까요?"
"동네 여러분? 저 노인의 말씀이 옳습니까?"
"옳습니다."
여러 사람의 한목 대답이었다.
"법령대로 하면 땅을 남을 주어 시켰으니 물론 몰수입니다."
"그럼 이 늙은것 고부끼리 어떻게 살라나요? 원, 기맥힌 일두 있지. 제 머리루 기름병 이구 다녀 푼푼저축으로 장만헌 많기나 헌 땅인가 작인이라구 모두 한 명 그 사람 여기 왔소다, 들어 보세두 알지만 십 년이 하루지 말다툼 한번 없었쇠다. 지주 구슬 헐 사람이 따루 있습죠!"
모두들 날카로운 시선으로 실행위원을 쏘아본다. 그러나 실행위원보다 군중 속에서도 말이 나왔다.
"지가 바루 저 댁 작인올시다요. 이제 노인께서 말씀두 계셨습지만 여직 한집안처럼 지냈습죠. 더 내라거나 덜 내겠다거나 한 번두 싸운 적 없쇠다요. 다른 땅이면 몰라두 저 댁 땅을 뺏어 날더러 가지램 난 싫쇠다. 그런 남 속아픈 땅 차지허구 내가 잘될 게 뭐의까?"
"바른말이요―---"
"옳소―---"
여러 마디가 나왔다. 실행위원은 굽실굽실한 머리를 쓸어넘기며 히죽이 웃는 것이 쓸 수만 있으면 인심을 쓰고 싶은 얼굴이다.
"이게 그렇습니다. 조선 사람 전체가 다 잘살자는 정신에서 되는 일에 죄 없이 못살게 되는 사람이 있어서야 되겠어요? 저 노인댁 토지를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여러분의 의견을 들어 봅시다."
안과부의 시어머니는 벌써 눈물이 몇 방울 떨어진 눈으로 사방을 둘러보는 것이, 말하는 입보다 더 애원이었다. 이 애원의 눈에는 억쇠도 부딪쳤다.
'잔사정에 끌려선 안 된다! 그건 벌써 협잡과 통허는 거다―--- 목이 부러져두 원측.'
억쇠는 가슴이 찌르르했다. 최초시에게서 이 말을 듣지 않았다면 억쇠는 이런 때 누구보다도 먼저 일어서 안과부네 사정을 옹호했을 것이다. 우― 하고 모두 한편으로 얼굴을 돌리는 바람에 억쇠도 그쪽을 쳐다보았다. 장근이가 일어선 것이었다.
"저 할머니네 땅은 나부터두 그저라두 품을 도와 드릴 게니 자작 짓는 걸로 해서 땅도 안 떼우구 집도 그대루 지니고 우리 동네서 그대루 살게 해주십시오."
"올시다!"
"그래야 쓰지요!"
이런 찬사가 무더기로 일어났다. 억쇠는 다시 얼마 어정쩡해진다. 최초시를 바라보았으나 역시 가타부타 얼굴에도 나타내지 않고 보기만 한다. 실행위원도 머리를 긁적거리더니 멍하니 섰다. 원칙과는 틀려도 잔사정에 끌리어 제 맘대로 정하려는 속인지도 모르겠다.
'나두 남의 사정 딱헌 거 누구만침 동정할 줄 모르진 않는다! 안과부네가 저이 손으루 농살 짓는다면 이 자리에서 도와 준다고 장담하는 사람들만 못지않게 거들어 줄 자신도 있다! 그러나 이게 전 조선의 전 조선 사람들의 딱한 사정을 고치자는 일이니 큰일을 생각 않구 작은 사정에 끌려 원칙을 떠나는 건 잘못되기 쉬운 거다!'
억쇠는 성필이가 멀―리 평양에서 저희 아버지와 자기를 쏘아보며 왜 멍청하니 앉았느냐고 소리를 지르는 것 같다. 최초시는 그저 움직이지 않는다. 억쇠는 일어났다.
"저도 한동네서라구만 아니라 타동 사람으로라도 저 할먼네 댁 같은 사정이라면 붙들어 드리구 싶구 저 할먼네가 땅을 그저 가지구 힘에 부친 농사를 지신다면 나두 남만 결코 못하지 않게 도와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아까 다른 실행위원께서 일러주신 이 토지개혁 정신과 이런 개인사정 보는 것이 상위가 나지 않는지 그걸 알구 싶습니다. 만일 상위가 난다면……."
하는데 누가,
"원만히 돼 넘어가는 걸 자꾸 꼬집어 내 뭘 허나?"
하고 사뭇 말을 막는다. 권생원이었다.
"아니올시다."
억쇠는 앉지 않는다.
"우리가 이 일을 우리 동네 일루만 알어선 안 됩니다."
"그러이―--- 원만히 되려면 아직 더 의논해야 허네."
하고 그제야 최초시도 알은체한다. 최초시가 거드는 바람에야 모두들 억쇠가 하는 말이 중요한 것인 줄 알고 정신들을 차린다.
"저 할먼네를 우리가 동정헌다 칩시다. 이담날 법률이 간섭하드라도 끄떡이 없을 만한 근거를 가지구 동정해야지, 이 자리에선 기껀 생색만 내구 이담 법정에서 인정 안 허는 날은 어떡헐려우? 그때는 도리어 저 댁에 낭패를 만들어 드리는 것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이것은 실행위원 중 한 사람의 대꾸였다.
"그뿐 아닙니다. 이 토지개혁이 우리 조선서 전에두 없었구 이 앞으로도 또 있을 수 없는 굉장한 일입니다. 또 시시비비가 많을 일입니다. 인민위원회에서 훌륭헌 분들이 연구허구 연구해서 결정한 법령입니다. 저 댁 할머니 같은 사정이, 아니 더 딱한 사정도 전 조선에 얼마든지 있을 걸 그분들이 몰랐을 것 같습니까? 죄다 짐작하구 연구해서 결정한 법령인 걸 우린 믿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아직 이런 사정 보는 것에 가부를 말하진 않습니다만 다만 법령대론가 아닌가를 밝히구 결정해야 법령 위반두 아니구 우리가 일으킨 동정심두 동정심대루 산다는 겁니다."
이번에는 '옳소' 소리는 없었다. 그러나 장내가 엄숙해졌고, 최초시가 혼자소리처럼,
"사실이지!"
하면서 테이블에 나선 실행위원을 쏘아보았다. 이번에는 머리를 쓸어 넘기는 실행위원의 얼굴도 얼마 자신을 갖는다.
"물론 이게 결정이 아닙니다. 동네 여러분 의견을 고루 들어 두는 데 불과합니다. 결정은 이제 여러분이 뽑을 다섯 사람 농촌위원들이 법령에 의지해서 할 일입니다. 법령에 위반이냐 아니냐도 그분들이 더 연구해 결정할 것입니다. 물론 법령대로 나갈 것이 원측입니다."
농민들은 잠잠했다. 이 틈을 타 권생원이 일어섰다.
"이 사람두 여쭈오리다. 내 이 근경에선 지주측에 안 든다군 헐 수 없쇠다. 나 지주외다. 땅은 법령이라니 헐 수 없죠니까! 되는 대루 두구 봅죠니까. 그렇드라도 소위 토지개혁이라면 가옥 몰수란 하관사(何關事)지 암만해두 알 수 없쇠다그려? 것두 내가 일인이라든지, 안 헐 말루 발벗구 나섰던 친일파라면 반역자루 몰릴 거지요. 반역자라면 아, 땅뿐이겠소? 이 목이라두 바치리다요! 길을 막구 물어 보구려. 이 권아모개가 친일파랄 사람은 성겨나지두 않었을 게니. 설사 법령에 집꺼지 든다 하드라두 생각해 보십시오? 날 어쩠다구 길루 나앉으라는 거요? 내 땅이 이번에 약간만 분배가 될 거요? 집은 건드리지 못헙넨다!"
하고 동정을 구하기보다 살기등등한 눈으로 어느 놈이 감히 반대만 해보아라 하는 듯이 좌우를 둘러보는 것이다. 이번에는, 아까 억쇠가 말할 때 '그렇습니다' 대꾸하던 그 실행위원이 일어선다.
"이제 말씀허신 분은 아까 이 법령의 정신과 규약 해설을 자세 안 들으신 듯합니다. 토지개혁은 일인이나 친일파의 토지를 몰수할 뿐만 아니라 일반 지주들의 것도 몰수하는 건, 지주와 작인이란 그 관계를 없애자는 거구 그걸 없애자는 건, 소작료를 주고받는 물질적 관계뿐만 아니라 인격적으로 주종관계, 극단으로는 상전과 노예관계, 그걸 없애자는 것입니다. 지주는 오랫동안 상전이나 다름없는 명령만을 해왔고 작인들은 노예에 가까운 복종만 해온 것이 사실입니다. 소작료는 안 바친다 해도 그런 상전이 옆에 있으면, 좋게 말하면 인정상, 나쁘게 말하면 뿌리 깊이 박힌 노예근성 때문에 씻은 듯이 잊어버리고 마음 가볍게 저대로 살기 어려운 거구 또 주인 자신으로 보드라도 차라리 그 옆을 떠나 새 환경으로 나가는 게 새 생활 건설에 적극적일 수가 있고 마음도 편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군으로 가도록 알선하는 거구 자기 농사를 짓겠다면 농토와 집두 준다는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이 실행위원의 설명이 권생원의 귀에는 들어갔을 리 없으나 억쇠나 다른 사람들의 귀에는 다시 한번 들은 보람 있게, 토지개혁의 근본정신이 점점 분명해진다.
권생원은 다시 일어섰다.
"나 유식하지 못해 그런 소리 무슨 소린지 모르겠쇠다! 공연히 딴 데다 없는 집 주선해 주려 애쓰지 말구 내 집 나 살게 두면 그만 아니오? 아무튼지 아까 저 노인의 말씀을 동중 의견에 물어 주셨으니 이 사람 집 문제두 동중 의견에 한번 물어 주시기요."
실행위원은 냉정한 얼굴이다.
"동중에 물을 테니 그럼 당자는 잠깐 이 자리를 나가 주십시오."
권생원은 다시 일어섰으나 나가지 않고 반문한다.
"아까 저 노인두 이 자리에서 내보냈던가요? 이 사람만 어째 나가라나요?"
"저 노인과 당신은 닳습니다."
"닳다니요? 같은 지주두 같구 닳구가 있나요?"
"저 노인은 작인이란 단 한 사람이오. 그러나 당신의 작인이나 채무자나 당신에게 눌려 지내던 사람은 이 마당에 거의 전부요. 당신 목전에서 당신헌테 대한 의견을 마음대로 말헐 자유의사를 못 나타내는 거요. 지주와 작인 관계란 이렇듯 한 사람을 위해 여러 사람이 제 속엣말도 제대로 못 하고 사는 거요. 보슈, 그러니까 토지개혁을 허는 거구 그러니까 토지개혁은 땅만의 문제가 아니라, 농민들의 눌려만 살아온 의기에부터 자유를 주는 인격 개혁인 거요. 당신이 이 자리에서 나가지 않고 있다면 동네 사람들의 자유스러운 의사표시를 볼 수 없을 거니까 우리는 못 물어 보겠소."
"아―니, 어떻게 그다지 남들 속꺼지 잘 들여다보슈? 대관절 난 한 번두 작인들 허구퍼 하는 말 막아 본 적은 없쇠다. 그것부터 동중에 물어 보슈. 내가 한 번이나 작인들 할 말 못 허게 금한 적이 있는가?"
"그따위 물어 볼 필요 없소."
이것은 실행위원의 대답이 아니라 억쇠의 결기 있는 목소리였다. 이 바람에 용길이도 한마디 보태었다.
"그따위를 묻는다 쳐두 당자가 있어선 안 됩니다."
"옳소!"
권생원은 그만 입 속에서 이를 갈듯 한편 볼이 수염과 함께 쌜룩 주름이 잡히더니 자리를 일어섰다. 그리고도 달운이를 비롯해 몇몇 자기에게 만만한 사람들을 두리번거리어 눈을 맞추고야 저희 집으로 올라갔다.
권생원이 사라지자 실행위원은 입을 열었다.
"여러분이 이 앞으로 맘놓고 자유스럽게 살기 위해선 이제 그 권씨가 이 동네에 그저 있는 게 좋겠습니까? 없어지는 게 좋겠습니까?"
"잠깐 여러분……."
하고 여러 사람의 입을 막듯이 가로채고 일어서는 자가 있다. 달운이었다. 이 동네 소위 농민조합 부회장이라, 실행위원들도 무시하지 못하는 눈치다.
"나두 이 동네 사람이구, 나두 저 권생원네 땅 부치던 사람이구, 나두 우리 동네 잘되길 바라니까 하는 말이니 여러분은 참고적으루 들어 두시구 가부를 말씀들 허슈. 사실 권생원넨 이 토지 사가지구 와서 몇 해 되지두 않었거니와 또 한 번두 지주 재세를 한 적도 없구 또 권생원은 아직 개성에 현금이 많습니다. 우리 동네다 학교두 하나 지어 줄 의견입디다. 그러니……."
하는데 억쇠가 더 견디지 못해 불쑥 일어섰다.
"듣기 싫소. 달운이는 농민조합의 분회장이오, 지주조합의 분회장이오?"
모두 낄낄 웃고 손벽까지 쳤다. 억쇠는 말을 계속했다.
"권생원이 어째 이 동네에 몇 해가 안 되는 사람이오? 떠꺼머리 총각 때부터 이 동네서 서푼변 오푼변의 이자를 따갔다는 사람이오!"
"옳소!"
"또 권생원네가 어째 지주 재세가 한 번두 없었단 말이오? 지난 가을에두 저희보다 김장을 먼저 했다구 눈이 뿌옇게 몰린 사람이 저기 앉었소. 지난 겨울까지도 권생원네 뒷간길이나 나뭇가리길부터 쓸기 전에 제 집 마당부터 눈을 친 사람이 몇이나 되오?"
"옳소!"
"우리는 학교를 못 지면 마당에서라두 뱁시다. 해방이 된 오늘에두 그 뱃속에 욕심과 똥만 들어찬 녀석들이 교주니, 설립자니 허구 돈자랑 비석이나 세우는 그따위 더러운 학교엔 다니구 싶지 않소!"
"옳소!"
"또 이 앞으룬 집이 없어 학교 못 헐 리도 절대로 없는 거요."
"그렇지 않구!"
"그따위 구두쇠는 동네서 아주 하직을 시킵시다."
"옳소. 그따위 그저 있게 허구 시집살이 허구픈 사람은 개성으로 따라감 되지 않소?"
장내가 조용해지기를 기다려 실행위원은 다시 나섰다.
"여러분네 의견 잘 알었습니다. 그러나 아까 다른 분두 말씀허셨지만, 안노인댁 땅을 자작농지로 보존시키구 안 시키는 것이나, 이제 권지주네 떠나는 문제나 다 이 자리에서 이대로 결정짓는 건 아닙니다. 여러분의 의견이 잘 드러났으니까 이것을 존중해서 이제 이 마당에서 뽑히는 다섯 사람, 이 동네 농촌위원들이 법령에 좇아 결정할 것입니다. 우리 실행위원들도 여러분의 의견을 알었고 여러분 자신들도 이 동민 전체의 의향을 아셨으니 이제는 농촌위원들이 법령을 지켜 결정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만 아니니까 무엇이나 여러분의 의견을 잘 대표해서 처리할 만한 위원 다섯 사람을 뽑읍시다. 그런데 여러분의 대표구 위원이구 허다니까 그전 일제 때처럼 허턱 유력한 사람을 뽑아선 안 됩니다. 소위 유력자는 서로 안면관계도 있고 저만 이롭자는 엉뚱한 생각을 남모르게 잘 하는 버릇이 있으니까, 첫째 맘보가 공정한 사람이라야 합니다. 남의 집 머슴 살던 사람도 좋습니다. 그런 사람이 누구보다 농간 부릴 줄 모릅니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무식한 사람이라도 말만 바르게 할 사람이라야 됩니다. 사무적으로 일하는 것은 우리가 죄다 해드리니까요. 그런 줄 알구 겉은 어떻게 됐는지, 공평허구 바른말할 사람을 뽑으십시오."
권생원은 거의 두세 집에서 한 사람 폭으로 널리 정했고 여기서 뽑아 놓은 다섯 명 가재울 농촌위원 중에는 달운이는 빠지었어도 억쇠가 들어 있었다.
17
이날 하룻동안 억쇠는 십 년을 산 것 같았다. 그렇게 하루 사이에 엄청나게 자랐고, 하루 사이에 모든 것을 알아낸 것 같았다. 최초시한테와 동회에서 터득한 것, 나중에 면 인민위원회까지 갔던 시위행렬에서 받은 군중이 가진 무한한 힘에의 자신과 감격, 동민들이 뽑아 준 농촌위원으로서 처음 품어 보는 책임의식, 저녁에는 벌촌에 들러 그곳 농촌위원들과 합석하여 실행위원들로부터 다시 한번 들은 토지개혁의 정신과 법령의 해설, 이제는 누구 앞에서나 토지개혁에 관한 문제이면 무슨 대답이든지 막히지 않을 자신이 생기었다. 이 자신은 새 세상 새 조선을 올바로 보아 나갈 자신이기도 했다.
'어서 분이부터 알려 주자! 어서 뛰어가 분이부터 안심을 시키자!'
억쇠는 아침에 나와 아직 집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다. 벌촌 택길이가 저희 집에서 밤참으로 국수를 눌러 돌아오는 길이 더욱 늦었다.
보름 지난 봄저녁 달은 무리를 쓰고 은그릇처럼 부드러운 것이 걸려 있었다. 논이나 밭들도, 저희를 움켜쥐고 착취하는 죄악의 도구로 삼던 지주들로부터 풀려 나와, 제 손으로 갈아 주고 제 손으로 씨 뿌려 주고 제 손으로 어루만져 주는 정말 임자 농민들에게 돌아오는 것을 즐거워 소곤소곤하는 것 같았다.
억쇠는 방축머리에 이르러 걸음을 멈추었다. 방축에도 봄물 부풀어 오른 대로 달빛이 넘실거리었다.
"아!"
억쇠는 가슴이 홧홧 다는 것이 못 먹는 술 몇 잔 들어간 때문만은 아니다. 달빛 넘치는 이 방축머리, 저 실실이 늘어진 버드나무 아래는 분이를 처음 붙안고 같이 울던 자리요 같이 고락을 맹서하던 자리다.
억쇠는 벅찬 가슴속에서 숨을 몰아내고 저희 집 마당을 둘러보았다. 도쿠지란 놈은 관솔불을 들고 팔근이와 달운이란 놈은 몽둥이를 이끌고 저를 찾아 헤매던 광경이 생각난다.
'아직도 너희놈들이 조선 어느 구석에 박혀 있단 말이지? 달운이란 놈은 뻐젓이 이 동네 농민조합 분회장이고! 어림도 없다! 그냥 둘 줄 아니! 만날 이럴 줄 아니? 이놈들아? 몇 대를 내려 너희놈들만 독차지했던 특권도 이제 끝장이 난 줄 알아라!'
억쇠는 집으로 달음질쳐 왔다. 대문은 걸리지 않았으나 안방문은 걸려 있다.
"문 열어."
"……"
"문 열어. 어린애처럼 벌써 잔담?"
"가만……."
"얼른."
"되운."
억쇠는 뺨이 따끈하게 잠에 취한 분이가 귀찮은 듯이 일어나는 귀여운 모양을 눈앞에 그리며 장난삼아 문을 흔들어 댄다.
"되우두그류!"
"꽤두 꿈지럭거리네!"
"문고리가 왜 이렇게 안 벗겨질까."
"히히……."
"어쩌면 잔뜩 잡어다니면서?"
억쇠가 잡아다니던 문고리를 슬그머니 늦추어 주어 겨우 문이 열리었다.
"그새 자구 있담!"
"……"
분이는 들창으로 은은히 우러 드는 달빛 속에서 말뚱히 억쇠의 얼굴을 쳐다본다.
"왜?"
"……"
"오늘 술 한잔 먹었지!"
분이는 그저 대꾸가 없이 자리로 가더니 감감하다.
"저렇게 졸렵담? 아침에 뭐랬드랬지? 집 문제구 땅 문제구 뭐든지 척척 물어 봐 인전……."
그래도 감감하다. 가까이 와보니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누웠다. 억지로 안아 일으키니 달빛에 눈물이 반짝 한다.
"왜?"
"……"
"어디 아퍼? 아프기루 어린앤?"
분이는 그저 대답이 없이 뿌리치더니 다시 이불을 돌돌 말고 발버둥만 친다.
"저건 뭐야?"
억쇠는 등잔에 불을 켰다. 분이는 눈물에 젖은 얼굴을 들어 훅― 하고 불을 꺼버린다.
"이건 또 뭐구?"
분이는 그저 말은 없이 무슨 안타까운 일이 있는 것처럼 발버둥을 친다.
"저리게 어린애라지! 참 병아리나 잃어버리지 않었소?"
"나뻐!"
"무에 나뻐?"
"당신."
하면서 그제야 분이는 얼굴을 닦고 한숨을 호― 쉬며 남편을 쳐다본다. 어스름한 달빛에 떠오르는 분이 얼굴은 언젠가 분이네 집 부엌에서 꿀물 마시던 날 저녁에 보던 그 박꽃 같던 얼굴이다.
"흐!"
"나뻐!"
"무에?"
"문을 왜 그렇게 흔들어 대?"
"걸은 걸, 안 흔들어?"
"날 가슴 아프라구!"
"누가 문 흔들었지, 사람 흔들었나?"
"바보!"
"누가 바보람?"
"나 설어!"
"설다니?"
"그날 밤 저놈의 문 걸렸던 생각 험!"
억쇠는 그제야 선뜩했다. 분이가 도쿠지에게 힐난받던 날 밤 걸려 있던 바로 그 문이요 그 문 밖에 섰던 바로 그 저 자신이었다. 걸린 문 흔드는 소리에 분이는 거의 본능처럼, 덜컹 그 생각이 났고, 그날밤 자기의 그 비참했던 꼴이 다시금 분했다. 팔근이 계집년의 꼬임으로 오빠에게 나온 징용장을 도쿠지에게 제 손으로 갖고 가서 좋도록 해달라고 한마디 부탁만 하면 그만이라기에 복장을 치고 우시는 어머니와 얼굴이 백짓장이 되어 저녁도 못 먹고 물러나는 오빠를 어떻게 해서든 구해 보고 싶은 안타까움에서만 그 길이 그런 모멸과 굴욕의 길인 줄은 미처 뜻하지 못하고 나섰던 것이다.
"당신이 그날 밤 나더러 그랬지? 그놈의 방에 들어선 게 어떤 년의 발모가지냐구?"
"……"
"나 귀에 못이 박혔어!"
"어린애처럼 노염은!"
"누가 노엽데? 내가 그 말 열 번 들어 싸게 헌걸!"
하고 분이는 또 또루루 이불을 말고 발버둥을 쳤다. 도쿠지 같은 것에게 치마 주름만이라도 따트렸던 것이 그게 제 발로 걸어갔던 것이기 때문에 분이는 정조나 잃은 것처럼 남편에게 얼굴이 들리지 않는 무안이었다.
"이것 바?"
"……"
"지금 우리가 그런 따분헌 생각으루 눈물이나 흘리구 앉었을 땐 줄 알우?"
"……"
"여보?"
벌써 방축으로 나가는 도랑이 얼음이 풀리어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 온다. 억쇠는 슬쩍 말문을 돌린다.
"며칠 안 있으면 개구리두 입이 떨어지겠구나―---"
"바보!"
"왜, 또 바보야?"
"난 벌써 개구리 소리 들은걸―---"
"어린애들이 그런 건 먼저 듣는 법이지―---"
"참 저녁 어떡했수?"
"난 먹었수만 당신은?"
"혼자 먹기 싫길래……."
"그래 여태 안 먹었수?"
"집에 가 엄마허구……."
분이는 아직도 친정집을 집이라 했다.
"이게 인전 우리집이래두!"
하고 억쇠는 분이의 한편 귀를 잡아 일으킨다.
"우리 마당에 나가 봅시다. 달이 여간 환―하지 않어!"
"달?"
"또 내 모두 얘기두 해줄게."
"당신이 우리 동네 위원이지?"
"어떻게 알었수?"
"엄마헌테."
분이도 약간 헝큰 머리를 흔들어 버리며 날쌔게 일어섰다. 억쇠가 자기의 묵직한 겨울 외투를 둘러 주는데도 아랫자락을 흡싸며 바깥마당까지 따라나왔다.
달빛은 안개처럼 포근한 것이 끝없는 대지를 고요히 마치 어미닭이 품듯 하고 있었다.
억쇠는 마당과 밭머리를 널다리나처럼 쿵 쿵 굴러 보며 걷는다.
"끄덕없는 인전 우리 땅이다."
"정말?"
"뭐든지 물으래두. 내 척―척 대답허지 않으리!"
억쇠는 분이를 바싹 곁으로 이끌었다.
"집두?"
"암!"
"땅은 얼마나?"
"이 터앝밭부터 우리가 지을 수 있는 만치는."
"아이 좋아!"
"내가 이 밭을 못 사 얼마나 속이 닳었는지 알우?"
"나두 다 들었다누!"
"또 당신 때문엔?"
분이는 고개를 깨웃해 억쇠 팔에 기대인다. 억쇠는 꽉 분이의 어깨를 안는다.
"참!"
"뭐?"
"안과부네 땅은 어떻게 되우?"
"뺏어야지!"
"뭐요?"
"법령대루 해야 허는 거야!"
"아니 안과부네가 무슨 죄가 있는데?"
"들어 볼 테요?"
"그래 안과부네두 집두 내놓구 떠나야 해요?"
"암, 인제 말이요, 이를테면 여기서 배천 나가는 길을 일자로 곧은 길로 고친다 칩시다. 곧게 나가다가 아까운 논이 한두 평 짤려 나간다구. 그래 길을 거기서 굽으려트려야 옳소? 그것과 마찬가진 거요! 또 안과부네 자신도 하루이틀 아니구 동네 사람들 신세만 지구 거지처럼 동정이나 받구 가련허게 살 게 뭐요? 만일 자기네 힘만으로 살 길이 정말 없다면 떳떳이 나라에서 보조를 받어야 할 거요. 나라는 인제 국민들한테 그런 책임을 져야 헐 거요."
"언제나?"
"언제나라니? 농군들은 신산헌 생활을 몇천 년을 참어 왔는데 지주들은 나라가 설고선 못 참어?"
"그래두 안과부넨 가엾지 뭐유! 글쎄 무슨 죄가 있단 말유?"
"그렇게 따지러 들면 정말 죄가 조금도 없는 줄 알우?"
"무슨 죄?"
"아무리 제 힘으루만 몬 돈이라 칩시다. 그걸 그냥 먹든지 그걸 밑천으루 무슨 일이든 제 손을 놀리는 일을 해먹을 것이지 왜 남의 땀만 팔아먹을려구 땅을 샀느냐 말이야? 농사를 제 손으로 짓기 전에 땅을 산다는 건 그게 벌써 어진 맘보는 아닌 거요!"
"……"
"땅 없이 애쓰는 농군의 약점을 노리구 그 사람의 노력을 가만히 앉어서 한몫 먹자는 얄미운 계획이 아니구 무엇이었냐 말이야."
"거야 그때는 세상이 다 그랬으니까……."
"물론 남 다 허니까 무심히 했겠지. 그걸 몰르는 건 아니야, 그렇지만 지금 와 그 집 하나만 어떡허느냐 말이야. 그래 큰길을 억만 년 나갈 큰길을 째나가는 판에 그런 잔사정 하나루 길을 구부러트리란 말이야? 더구나 따지구 봄 역시 남을 착취허구 살던 사람인걸!"
"……"
분이는 그만 무참히 부스러지는 제 조그만 의분심을 더 두둔할 여지가 없어 솔직히 웃어 버리고 만다.
"여보?"
"응?"
"당신이 맘이 착헌 건 알어! 그렇지만 착허기만 헌 건 당신만인 줄 알우? 나비 같은 것두 붕어 같은 것두 착허지 뭐야? 그렇지만 우린 사람 아니냐 말요? 미물 아닌 굳센 의지와 판단력이 있어야 옳게 살어 나가는 거요. 의지허구 판단력허구!"
억쇠는 분이의 어깨를 놓고 그의 손을 꽉 잡는다.
"분이?"
분이는 이슬기 있는 눈을 쳐든다.
"아까 울었지?"
"……"
"다신 울지 않기루?"
분이는 치어든 얼굴을 끄덕인다.
"울 게 아니라 다시는 한 사람도 모욕받지 않구 사는 세상이 되두룩 이를 악물구 팔을 걷구 나서야 헐 때야!"
"……"
"우린 인전 농군만이 아닌 거요!"
"그럼?"
"이 토지개혁은 알구 보면 이 세상을 새로 만드는 거요!"
"세상을 어떻게?"
"왜놈들만 물러갔으면 뭘 하는 거유? 세상이 공평허게 돼야지. 조선놈끼리 또 압제나 허구 또 착취나 허는 세상이면 우리 같은 건 밤낮 마찬가지지 뭐요? 토지개혁은 누구나 먼저 사람으루 똑같은 사람이 되구 누구나 다 잘살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드는 터 닦는 거요 이게!"
"그래두 저희만 잘살던 녀석들이 왜 가만 있겠다나?"
"그리게 우린 농군만이 아니란 거야! 전조선 인구에 댄다면 한 줌도 못 찰 녀석이지만 여태꺼지 세력 부려 온 근거가 있지 않어? 만만히 수그러질 린 없지 않어? 누가 싸울 거냐 말야? 토지 문제에서 생기는 쌈을 우리가 안 나서구 누가 앞줄에 나설 거냐 말야? 소련 군대와 김일성 장군 덕에 먼저 된 여기 토지개혁은 우리가 철벽처럼 지켜야 헐 거구 아직 안 되구 있는 남조선을 위해선 여기처럼 되도록 우리가 밀구 나가야 허는 거요! 저만 잘사는 지주 노릇을 그예 해보려는 녀석들 최후의 한 놈까지 발붙일 한 뙈기 땅이 남어 있지 못헐 때까지……."
"조선 인구에서 백 명이면 여든 명까지가 농군이라며?"
"그럼! 또 조선만 그런 줄 알우? 전인류의 대부분은 농군인 거요! 전세계에서 농군들이 문명이 되지 않군 문명세계란 허튼 소릴 거요! 조선서두 이 가재울과 서울이 문명에 들어 똑같이 차별이 없두룩 돼야 그게 진짜 문명국일 거요! 그러니까 어디서나 제일 뒤떨어진 우리 농민들이 어서 깨닫구 어서 배우구 잘 싸우구 잘 건설하구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요!"
분이는 선뜻 남편의 손을 놓고 한 걸음 물러선다. 억쇠가 좋기만 할 뿐 아니라 이렇듯 든든하고 우뚝 솟아 보여서 바라보기 흐뭇하기는 처음이다.
"아, 어서 조선이 좋은 나라가 됐으면!"
"되구말구! 되구말구!"
달은 가지 않고 섰는 듯 고요한데 어느 동네에서인지는 자지들도 않고 해방된 농군들의 호적 소리며 징 소리며 풍년을 부르는 듯한 농악 소리가 은은히 울려 왔다.
출전:삼성문화사(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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