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 밭 갈아 기음 매고
by 송화은율논 밭 갈아 기음 매고
논 밭 갈아 기음 매고 뵈잠방이 다임 쳐 신들메고
낫 갈아 허리에 차고 도끼 버려 두러매고 무림 산중(茂林山中) 들어가서 삭다리 마른 섶을 뷔거니 버히거니 지게에 질머 지팡이 바쳐 놓고 새암을 찾아가서 점심(點心) 도슭 부시고 곰방대를 톡톡 떨어 닢담배 퓌여 물고 코노래 조오다가
석양이 재 넘어갈 제 어깨를 추이르며 긴 소래 저른 소래 하며 어이 갈고 하더라.
논 밭 갈아 김매고 베잠방이 대님 쳐 신들메고(신을 벗어지지 않게 하고)
낫 갈아 허리에 차고 도끼를 버려 들러 메고, 울창한 산 속에 들어가서, 삭정이 마른 섶을 베거니 자르거니 지게에 짊어져 지팡이 받쳐 놓고, 샘을 찾아가서 점심도 다 비우고 곰방대를 툭툭 털어 잎담배 피워 물고 콧노래 졸다가,
석양이 재 넘어갈 때 어깨를 추스르며, 긴 소리 짧은 소리 하며 어이 갈꼬 하더라.
요점 정리
지은이 : 미상
갈래 : 사설시조, 단시조
연대 : 조선 후기
성격 : 한정가(閑情歌), 전원적, 사실적
표현 : 열거법, 서사적 진술
제재 : 농사일
주제 : 자연 속에서 누리는 한가로운 삶, 하루 일을 끝낸 뒤 자연 속에서 누리는 한가로운 삶
특징 :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상을 전개하고 열거법을 통해 일상을 구체적으로 제시함
출전 : 청구영언
내용 연구
논 밭 갈아 기음(김. 논밭에 난 잡풀) 매고 뵈잠방이(베잠방이. 가랑이가 무릎까지 오는 짧은 남자용 홑바지) 다임(대님. 바짓가랑이의 발회목 부분을 매는 끈) 쳐 신들메고(신들메하고. '들메다'는 신이 벗어지지 않도록 발에 잡아 맨다는 뜻이며 그 끈을 '들메' 또는 '들메끈'이라 한다.)
낫 갈아 허리에 차고 도끼 버려(날카롭게 갈아) 두러매고 무림 산중(茂林山中 : 울창한 산 속) 들어가서 삭다리(삭정이. 산 나무에 붙은 죽은 가지) 마른 섶(잎나무, 풋나무, 물거리 따위의 땔나무를 통틀어 이르는 말)을 뷔거니(베거니, 자르거니) 버히거니(베거니) 지게에 질머(짊어) 지팡이 바쳐 놓고[낫 갈아 ~ 바쳐 노코 : 농부의 바쁜 일과를 열거법으로 표현] 새암을 찾아가서 점심(點心) 도슭(도시락) 부시고(다 비우고) 곰방대를 톡톡 떨어 닢담배 퓌여 물고 코노래 조오다가(졸다가)[낫 갈아 허리에 차고 - 코노래 조오다가(중장 전체) : 하층 농민의 생활상을 다양하고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석양이 재 넘어갈 제 어깨를 추이르며(치켜 올려 다루다. 추스르며, 몸을 가누어 움직이다) 긴 소래(긴소리, 장가) 저른 소래 (짧은 소리, 단가)하며 어이 갈고 하더라.[석양이 재 넘어갈 제 - 어이 갈고 하더라. : 석양 무렵 나무를 해 오는 농민들의 한가로운 삶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풍류와 더불어 삶의 여유를 보여 주는 서민의 진솔한 모습이 사실적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이해와 감상
사설 시조는 우아한 기품과 균형을 강조하는 평시조하고는 달리 거칠면서도 활기찬 삶의 역동성을 담고 있다. 사실 시조를 지배하는 원리는 웃음과 비꼼의 미학이라고도 할 수 있다. 현실의 모순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을 통해 중세적 고정 관념을 거리낌없이 비판하나, 그 비판은 웃음이 있는 풍자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고달픈 생활에 대해서도 해학과 골계를 잊지 않는다.
이 작품 역시 직업적인 가객들이 격조 높은 가곡을 지키려고 하는 데 빗대어서 지었음인지, 농부의 바쁜 일상사를 진솔하면서도 사실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러한 특징은 자연 및 농촌을 제재로 하여 농민들의 삶을 관념적으로 예찬한 조선 전기 사대부의 시조와 명확히 구별되는 점이다. 논밭 갈아 기음 매고 뵈잠방이 다임 쳐 신들메고 만첩 청산에 들어가 나무를 하다가 석양이 재 넘어갈 때 어깨를 추이르며 긴 소리 져른 소리를 하면서 갈 길을 걱정하는 농민의 모습이 새동감 있게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특히, 농사짓는 생활 속에서도 여유롭게 자연을 즐기는 흥취를 함께 담고 있어서 서민들의 생활과 풍류를 엿볼 수 있다. 이처럼 하층 농민의 생활에서 우러나온 사설이 이렇게까지 생동감 있게 수용된 예는 다시 찾기 어렵다.
우리의 선인들은 시조의 정형성 속에 다양한 삶의 모습을 그려 보였다. 조선 후기를 지나 그 의미는 많이 달라졌지만, 단형의 틀 속에 작자의 다양한 문학 체험을 드러내 보이는 본래의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이렇게 장구한 생명력을 지닐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시조가 현실에 대해 탄력적이었기 때문이다. 시대와 삶의 형태가 변하면서, 시조 자체의 질적 양적 변화가 일어났다. 이러한 시조의 포용성 때문에 다양한 작가군(作家群)이 형성되기도 하였다.
심화 자료
사설시조(辭說時調)
평시조보다 긴 사설을 지닌 시조로 '장시조', '장형시조'라고도 부른다. 본래는 만횡청(蔓橫淸)이라 하여 창법의 명칭으로 쓰이다가 문학양식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정철(鄭澈:1536~93)의 〈장진주사 將進酒辭〉에서 처음 시작되어 조선 중기까지 드문드문 나타나다가 조선 후기에 본격적으로 발달했다. 17세기말부터 19세기말까지 존속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종장은 비교적 평시조의 율격과 비슷하나 초·중장은 평시조의 율격에서 크게 벗어나 길어진 형태이다. 작품에 따라서 중장이 가사(歌辭)처럼 길어진 것도 있다. 논자에 따라서는 중장이 2음보 정도 길어지는 경우를 엇시조라 하여 중형시조와 장형시조를 구분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크게 나누어 평시조와의 대비를 중요하게 여기고, 최근에는 모두 '사설시조'로 통용하고 있다. 발생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조선 후기 사회변동과 음악의 발달에 힘입어 평시조가 변형·파격을 이루었다는 견해가 있으나 경우에 따라 조선 중기부터 민간가요가 시조창에 얹혀 불린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내용은 평시조가 사대부의 사상을 담았던 것과 달리, 익살·풍자와 분방한 체험을 표현한 평민적인 것이 대부분이다. 내용에 따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가장 작품성이 뛰어나며 당대 민중적 삶과 진솔한 정감을 역동적으로 노래한 것으로, 〈바람도 쉬여 넘는 고개……〉·〈서방님 병들여 놓고……〉·〈귓도리 져 귓도리……〉와 같은 작품이 대표적이다. ② 성적 충동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어 당대의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깨트리는 작품들이 있다. 〈반(半)여든에 첫 계집을 하니……〉·〈간밤의 자고 간 그놈 아마도 못 이져라……〉 같은 작품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작품들은 사설시조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서 작품에 대한 평가는 단순하지 않다. 즉 중세적 도덕의 허위성을 폭로하는 긍정적 역할을 한 반면, 때때로 삶의 가치를 성적 쾌락만으로 보는 퇴폐적·허무적 사고를 유포한 부정적인 점도 있다. 그릇된 가치규범의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저항으로서 의의가 있으나 그것이 곧 근대적 삶을 그려낸 것은 아니다. 이밖에도 조선 후기 도시의 발달이나 현세적 삶에 대한 긍정, 사대부적 삶에 대한 동경 등 다양한 내용이 있다.
이러한 다양한 내용 때문에 지은이도 여러 부류가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① 사설시조의 탈중세적 속성에 주목해 지은이를 사대부와 대립하는 서민으로 추측하는 견해가 있다. ② 사설시조가 평시조와 병행해 발전한 평시조의 부속 장르라고 하여 지은이를 평시조와 마찬가지로 사대부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이 2가지 견해를 모두 받아들이고 다양한 계층의 속성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 지은이를 조선 후기의 여러 계층 가운데 새로이 등장한 중간 계층으로 본다. 여기에는 경아전(京衙前)과 같은 중인들을 중심으로 해 당시 새로이 부상된 여항의 부호들이 포함된다. 이들은 중세기 해체를 배경으로 축적한 부를 통해 당시 여항의 유흥과 예술을 장악하여 주도한 집단으로서, 이들이 사설시조의 전승·향유·창작에 직접·간접으로 참여했다는 점이 여러 측면에서 입증되고 있다. 이는 사설시조의 전승과 창작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김천택·김수장이 바로 경아전 출신이라는 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출처 :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시조의 음악적 성격
노래로 부르는 시조는 영조 때 학자 신광수(申光洙)의 문집인 〈석북집 石北集〉에 처음 언급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조의 악보는 순조 때 학자 서유구(徐有)의 〈유예지 遊藝志〉와 이규경(李圭景)의 〈구라철사금자보 歐邏鐵絲琴字譜〉에 처음 보인다. 이 두 문헌에 전하는 악보는 서울에서 불렸다는 경제시조(京制時調)의 기본형인 평시조의 악보이다. 이는 모두 양금(洋琴)의 악보로, 구라철사금 또는 서금(西琴)이라고도 하는 양금이 시조 반주에 많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시조는 가객들이 가곡과 함께 부르면서 발전했으며, 각 지방에 널리 퍼져 향제시조(鄕制時調)가 나타나고 19세기에 들어서 변주곡이 파생되어 20세기에는 오늘날과 같은 시조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시조는 초장·중장·종장의 3장 구조로 되어 있어 5장으로 구성되는 가곡과는 달리 중여음(中餘音)이나 대여음(大餘音)과 같은 전주곡·간주곡이 없기 때문에 가곡에 비해서 형식미가 떨어진다. 악기의 편성도 일정한 규칙이 없이 무릎장단을 치거나 장구와 선율악기 하나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쉽게 부를 수 있고 특별한 준비 없이도 어느 장소에서나 부를 수 있기 때문에 가곡에 비해 대중적이다. 시조를 노래로 부를 때는 종장 마지막 음보의 '하노라' 등은 생략한다. 시조를 지역에 따라 분류하면 서울은 경제시조, 충청도는 내포제, 경상도는 영제, 전라도는 완제 등으로 구분한다. 악곡형태에 따라서는 평시조·중거시조(中擧時調)·평조시조·두거시조(頭擧時調)·지름시조·사설시조 등으로 나눈다.
시조에 사용되는 장단은 5박장단과 8박장단이 있으며 이 2가지 장단을 혼합하여 사용한다. 경제시조와 향제시조는 기본 장단법이 다르다. 경제는 피리·단소 등의 반주가 초장과 중장 끝에서 노래가 끝난 뒤에도 계속된다. 그러나 향제는 반주 없이 무릎장단 등으로 그냥 부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초장과 중장 끝에서 5박자가 줄어들어 짧아진다. 경제는 초장 : 5 8 8 5 8, 중장 : 5 8 8 5 8, 종장 : 5 8 5 8 이고, 향제는 초장 : 5 8 8 8, 중장 : 5 8 8 8, 종장 : 5 8 8이다.
시조의 음계는 대부분 계면조가 사용되는데, 조선 후기에는 전통음악의 다른 계면조곡들과 마찬가지로 시조의 계면조도 5음음계에서 3음음계나 4음음계로 변한다. 경제의 평시조와 중허리시조, 향제의 평시조와 사설시조는 황종·중려·임종의 3음음계로 되어 있다. 경제의 지름시조·사설지름시조·휘모리시조·여창지름시조는 황종·중려·임종·무역의 4음음계로 되어 있다. 그밖에 평조의 선법으로 노래하는 우조시조와 우조지름시조는 황종·태주·중려·임종·남려의 5음음계인 우조 또는 평조선법과 3음음계·4음음계가 혼합되어 사용된다. (출처 :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사설시조에 대하여
산문 정신과 서민 의식을 배경으로 탄생한 사설시조는 시조가 지닌 3장체의 형태적 특성을 살리면서 낡은 허울을 깨뜨리는 데 공헌했다. 지난 날의 영탄이나 서경의 경지를 완전히 탈피하여, 폭로적인 묘사와 상징적인 암유(暗喩)로써 그 표현 기교를 바꾸어서 애정, 거래(去來), 수탈, 패륜(悖倫), 육감(肉感) 등 다채로운 주제를 다루면서 지난 시대의 충의에 집착되 주제를 뒤덮었다.
형식면에서는
①사설조로 길어지고,
②가사투, 민요풍이 혼입(混入)하며,
③대화가 많이 쓰이고,
④새로운 종장 문구(文句)를 개척하였다.
내용면에서는
①구체적, 서민적인 소재와 비유가 도입되고,
②강렬한 애정과 육욕(肉慾)이 표현되며,
③어희(語戱), 재담(才談), 욕설이 삽입되고,
④거리낌없는 자기 폭로, 사회 비판 등이 다루어졌다.
사설시조의 작자층
사설시조는 그 형식이나 주제는 물론이고, 작자층에서도 평시조와 구별된다.
평시조의 작자층이 양반 사대부 중심이었던 데 비해, 사설시조는 가객들을 비롯한 중간층 부류의 작자들이 지은 작품이 많으며, 그 내용이나 어법상 서민층에 속하는 사람들에 의해 지어지고 향유된 것으로 보이는 작품도 여러 편 전해지고 있다. 그러므로 사대부들이 주로 즐긴 평시조의 세계에 비하여 시정(市井)의 현실적 삶을 주로 표현했다.
또 골계미와 해학미를 통하여 현실의 모순을 날카롭게 풍자하고 있으며, 시정(市井) 생활의 건강함과 발랄함이 잘 나타나 있다. 그런가 하면, 일부 양반 사대부들 또한 사설시조 창작에 나서서, 현전하는 사설시조 가운데는 작자가 사대부로 명시된 작품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그 밖에 시적 화자가 여성으로 설정된 작품이 꽤 많다는 것도 주목되는 점이다. 그러나 사설시조를 지을 정도의 수준을 보일 수 있는 작자층은 적어도 글을 아는 식자층, 즉 주로 중인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사설시조의 미의식
사설시조는 우아한 기품과 균형을 강조하는 평시조와는 달리 거칠면서도 활기찬 삶의 역동성을 담고 있다.
사설시조를 지배하는 원리는 웃음의 미학이라 할 수 있다. 현실의 모순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 중세적 고정 관념을 거리낌없이 추락시키는 풍자, 고달픈 생활에 대한 해학 등이 그 주요 내용을 이룬다. 아울러, 남녀 간의 애정과 기다림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며, 대개는 직선적인 언어를 통해 강렬하게 표현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특징이다. 종래의 관습화된 미의식을 넘어서서 인간의 세속적 모습과 갈등을 시의 세계 안에 끌어들임으로써 사설시조는 문학의 관심 영역을 넓히는 데에도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런 미의식은 조선 후기의 변모된 세계관과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이뤄진 것으로, 이후 우리 근대 문학의 바탕을 이루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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