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에게 왜 존재 양식이 필요한가 - 논제 및 예시답안
by 송화은율논술예상문제 및 예시답안
다음 제시문은 현대인의 삶의 양식을 ‘존재 양식’과 ‘소유 양식’으로 나누어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비교 설명하고 있다. 이 제시문을 읽고, 삶의 ‘존재 양식’이 무엇인지 나름대로 정의한 다음, 일상 생활에서 발견되는 다른 사례를 통해 두 가지 삶의 양식을 비교하면서 현대인에게 왜 존재 양식이 필요한지에 대해 논술해 보시오. (글의 분량은 1500자 안팎)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재산을 획득하고 이익을 추구하는 데 전념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좀처럼 생존의 ‘존재 양식’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유 양식’을 가장 당연한 생존 양식으로, 심지어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생활 양식으로 알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존재 양식의 본질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소유 양식은 돈, 명예, 권력에 대한 탐욕이 삶의 지배적 주제가 된 서구 산업 사회의 특징이다.
‘소유’와 ‘존재’가 일상 생활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에 대한 다음과 같은 간단한 예는 독자들이 이 두 가지 양자 택일적인 생활 양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학습의 예를 들어 보자. 소유 양식에 젖어 있는 학생들은 강의를 듣고 그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귀를 기울일 것이며, 강의 내용을 모두 공책에 적은 후에 그것을 암기하여 시험에 잘하면 합격할 수 있다. 그러나 강의 내용은 그들 자신의 사고 체계의 일부가 되지 못하며 사고를 풍요롭고 폭넓게 하지 못한다. 소유 양식을 갖고 있는 학생들은 단 한 가지 목표를 세우고 있다. 즉 그들이 배운 것을 단단히 기억하거나 또 공책을 조심스럽게 간직함으로써 ‘배운 것’을 고수하는 것이다. 그들은 새로운 것을 생산하거나 창조하지 않는다. 사실 소유를 통해 세계와 관계 맺는 사람에게는 변화하는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쉽게 고정될 수 없는 개념들은 두려운 것일 수밖에 없다.
세계에 대해 존재 양식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학생들에게는 학습 과정은 전적으로 다르다. 그들은 수업에서 다룰 문제를 미리 생각하며 자신의 질문과 문제를 이미 마음 속에 간직한다. 그들은 단순히 말과 개념의 수동적인 저장소가 되는 대신에, 귀 기울여 듣고 능동적으로 받아들이고 반응한다. 그들이 듣는 것은 그들 자신의 사고 과정을 자극한다. 새로운 질문, 새로운 개념, 새로운 전망이 마음 속에 일어난다. 존재 양식을 가진 학생들의 학습 과정은 살아 있는 과정이다. 학생 개개인은 강의를 통하여 영향을 받고 변화하며 강의를 받은 후에는 강의를 받기 전과 달라진다.
학습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차이는 독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일상적 독서 시간은 소비의 양식, 즉 소유 양식으로 읽는 것으로 허송되고 있다. 독자들은 호기심에만 매달려 주인공이 죽었는가 살았는가, 여주인공이 유혹당했는가 저항했는가 등의 플롯에 관심을 기울이며 또 결말을 알고 싶어한다. 결말을 알았을 때 그들은 마치 자신의 경험에서 그 결말을 찾아낸 것처럼 현실적으로 전체 스토리를 ‘소유’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의 지식을 고양(高揚)시키지는 못한다. 즉 그들은 소설 속의 인물을 이해하지 못하며, 따라서 인간성에 대한 통찰력을 심화시키 못할 뿐 아니라 지식조차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철학이나 역사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철학 책이나 역사 책을 읽는 방식은 학교 교육에 의해 형성된다. 학교는 개개의 학생에게 어느 정도의 ‘문화적 재산’을 주는 것을 목표로 삼으며, 학교 교육이 끝날 때 학생들은 적어도 그 최소량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보증받는다. 고등학교에서 대학원까지의 다양한 교육 수준의 차이는 주로 학교에서 획득한 문화적 재산의 양(量)에 있으며, 그 차이는 학생들이 뒤에 사회에 진출하여 소유하기를 기대하는 물질적 재산의 양과 대충 일치하는 것이다. 이른바 우수한 학생이란 다양한 학자들이 제각기 말한 것을 가장 정확하게 되뇌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들은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는 박물관 안내인과 비슷하다. 그들은 철학자에게 질문하고 그들과 말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 그들은 철학자 자신의 모순점과 그가 어떤 문제는 무시하고 있거나 쟁점을 회피하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
존재 양식을 갖고 있는 독자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책조차 전혀 가치가 없거나 극히 제한된 가치밖에 없다는 결론에 자주 도달할 것이다. 또는 그들은 저자 자신이 중요하다고 쓴 모든 사실에 관하여 작가보다 때로는 더 완전하게 그 책을 이해할지도 모른다.
[문제 분석]
1. 문제의 특징 파악
이번 문제에는 세 가지 요구 사항이 포함되어 있다. 첫째는 삶의 ‘존재 양식’에 대한 정의이고, 둘째는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존재 양식’과 ‘소유 양식’을 비교 설명하는 일이며, 셋째는 현대인의 삶에서 ‘존재 양식’이 갖는 의의를 정당화는 일이다.
이런 일련의 물음에 제대로 답하려면 무엇보다 제시문에서 필자가 말하고 있는 ‘존재 양식’과 ‘소유 양식’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해 낼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제시문의 필자는 그 두 가지 삶의 양식에 대해 명시적으로 정의하고 있지 않다. 다만 ‘학습’과 ‘독서’라는 사례를 통해 그 두 가지 삶의 양식을 대비시키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번 문제에 답하는 데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제시문의 특수한 사례 설명으로부터 ‘존재 양식’ 그 자체에 대한 개념 파악을 얼마나 잘 할 수 있는가에 있다. 요컨대 개별 사례로부터 일반 원리를 이끌어낼 수 있는 추상력 또는 추리력이 이번 논술의 열쇠다.
주의할 점은 ‘존재 양식’을 정의하라고 했다고 해서, 단어 하나 틀리면 안 되는 정답 같은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제시문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했다면 ‘존재 양식’에 대한 정의는 여러 가지로 표현될 수 있다. 오히려 이렇게 정의하는 과정에서 - 제시문 필자의 뜻을 왜곡하는 것이 아니라면 - 학생들은 자신의 창의적 사고력을 십분 발휘할 수도 있다.
2. 제시문 독해로부터 논점 확정하기
그러므로 학생들로서는 우선 제시문에 나와 있는 ‘학습’과 ‘독서’라는 두 가지 사례를 찬찬히 분석하여 거기에 공통적으로 드러나 있는 ‘존재 양식’과 ‘소유 양식’의 특징을 자기 나름대로 뽑아낼 수 있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물론 자의적으로 추측하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글의 요점을 파악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예컨대 ‘존재 양식’을 ‘이타적인 삶의 태도’, ‘소유 양식’을 ‘이기적인 삶의 태도’이라고 섣불리 속단해서는 안 된다. ‘이기적/이타적’이라는 것이 ‘소유 양식/존재 양식’과 무관하지는 않더라도 그 핵심을 포착한 용어는 아니기 때문이다. ‘학습’과 ‘독서’의 사례를 보더라도 그러한 독해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이타적 학습’, ‘이타적 독서’라는 말은 아예 뜻이 통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제시문에 나와 있듯이 삶의 양식과 소유 양식은 모두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와 관계맺는 방식’이다. 이 점을 정확히 포착해야 ‘존재 양식’을 정의할 때도 그렇고 또 새로운 사례를 들어 논의할 때도 참신한 논의를 펼 수 있다.
‘존재 양식’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우선 ‘소유 양식’과 대비시켜 파악할 필요가 있다. 두 가지 사례에 나와 있듯이, ‘소유 양식’에 젖은 사람은 강의 내용이나 책 내용을 마치 창고에 물건 쌓아두듯이 대한다. 다시 말해 강의 내용이나 책 내용에 그 스스로 능동적으로 반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 결과 강의를 듣고 책을 읽고 나서도 자신의 성품이나 사고 방식에 아무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며, 따라서 그 스스로 새로운 것을 생산하거나 창조하는 법도 없다. 이 정도로 제시문의 요점을 파악하고 나면 이제 ‘소유 양식’을 일반화해서 이해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소유 양식’이란 요컨대 ‘자신이 접하는 세계와 적극적으로․생동적으로 교감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죽어 있는 사물로 대함으로써 결국 자기 자신까지도 사물화(事物化)해 버리는 삶의 방식’을 뜻한다. 그렇다면 이제 ‘존재 양식’을 정의하는 일도 해결된 셈이다. 소유 양식을 뒤집어 말하면 그것이 곧 존재 양식이기 때문이다. 이 작업은 여러분 각자에게 맡기겠다. 앞서도 말했지만, 소유 양식이나 존재 양식에 대한 표현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므로 자기 나름대로 정의해 보기 바란다.
3. 사례 들기
제시문의 필자가 말하는 존재 양식과 소유 양식을 제대로 파악하고 나면, 이제 그것을 다른 구체적 사례들에도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점에 관해서는 제시문에 나오는 ‘소유 양식은 돈, 명예, 권력에 대한 탐욕이 삶의 지배적 주제가 된 서구 산업 사회의 특징이다.’라는 대목이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즉 현대 사회의 인간 관계에서 ‘소유 양식’은 아주 일반화되어 있기 때문에 도처에서 그러한 징후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사례가 있을까?
예컨대 친구 교제를 떠올려 보자. 과연 여러분은 어떤 친구들을 어떤 방식으로 만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왜 이 친구를 만나고 또 저 친구에게 끌리는 것일까? 혹 부유한 집 아들이고 그가 입고 있는 옷, 그가 갖고 있는 물건들이 부러워할 만한 것이라서 그런 것은 아닐까? 아니면 그가 공부를 잘 하기 때문에 그와 친구가 되면 적어도 손해볼 일은 없어서는 아닐까? 그렇다면 진정한 친구 교제, 이른바 ‘존재 양식’에 따른 친구 교제란 어떤 것일까? 앞서와 같은 외적이고 물질적인 이해 관계를 떠나 진실로 서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친구, 그래서 기쁨이나 슬픔도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라야 하지 않을까? 현대 사회에서 과연 이런 진정한 친구 교제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이 밖에도 얼마든지 다른 예를 떠올릴 수 있다. 예컨대 자연에 대한 인간의 태도에다가 이 문제를 적용하여 ‘존재 양식’에 따른 자연 이해와 ‘소유 양식’에 따른 자연 이해를 비교 설명해 볼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남녀의 사랑이나 가족 관계에다가 두 가지 삶의 양식을 적용해 볼 수 있다.
[예시 답안 ]
제시문에 지적되어 있는 것처럼, 확실히 우리 현대인은 소유 양식에 너무 길들여져 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이 소유하는가에 의해 마치 우리 삶의 가치가 더 분명히 증명되기라도 하듯이 끊임없이 소유에 집착하고 있다. 우리가 소유하고자 하는 대상은 비단 돈이나 집, 자동차 같은 물질적 재화에 그치지 않는다. 지식이나 정보, 명예, 권력, 나아가 우정이나 사랑도 모두 암암리에 소유의 대상이다. 그러고 보면 현대인에게 삶은 곧 소유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소유 양식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생활 양식은 아니다. 소유 양식은 본질적으로 불평등 또는 지배 관계를 전제하고 있다. 왜냐 하면 소유물은 소유자에 의해 언제든지 소비되고 처분될 수 있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존재 양식은 주변 세계와 생동적으로 교감하고 동화하려는 삶의 태도를 가리킨다. 존재 양식에서는 주변 세계의 모든 것을 나와 동등한 것, 그리고 나의 존재와 적극적으로 어우러지고 합쳐져야 할 것으로 본다. 요컨대 소유 양식이 독점과 배제의 원리 위에 서 있다면, 존재 양식은 함께 나눔과 상호 교류의 원리 위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어떤 생활 양식을 채택하느냐에 따라 삶의 내용과 질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사랑을 예로 들어 보자. 소유 양식 안에서 경험되는 사랑은 필경 대상을 제한하고 감금하고 통제하게 된다. 오늘날 많은 부모들이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자식들에게 온갖 규율과 요구들을 강제하고 있는 것이 그 좋은 예다. 많은 부모들이 자식들의 개성과 능력을 온전히 실현되도록 배려하기보다는 그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자식들을 다그치고 몰아세운다. 이러한 사랑은 자식을 독립된 인격체가 아니라 일종의 소유물로 여기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소유 양식은 비단 부모와 자식의 관계뿐 아니라 남녀간의 사랑, 친구 관계, 교사와 학생의 관계 등 모든 인간 관계를 병들게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환경 위기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인간이 자연을 공존의 대상이 아니라 소유의 대상으로 보기 때문에 빚어진 현상이다.
현대인의 이러한 맹목적인 소유 욕구의 배후에는 자본주의적 이윤 극대화 논리, 그리고 모든 것을 사고 파는 상품화 논리가 바탕에 깔려 있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현대 사회에서는 인간 자신도 이미 상품으로 전락했고, 인간의 모든 능력과 활동은 일정한 값이 매겨져 물건처럼 거래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인이 소유 양식을 지극히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생활 양식으로 여기고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오로지 더 많은 소유와 소비를 향해 치닫는 소유 지상주의 속에서 인간의 참된 본질을 실현하고 진정한 행복을 얻기란 불가능하다. 소유 양식은 어디까지나 공존과 평화가 아닌 지배와 독점의 생활 양식이기 때문이다. 소유 양식에서는 모든 것이 사물화되어 지배-억압의 관계로 빠져들기 마련이다. 지금 인류가 처해 있는 갖가지 파국과 위기도 근본적으로 현대인의 소유 양식에 그 원인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과제가 무엇인지는 자못 분명한 셈이다.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소유 양식에서 과감히 벗어나 존재 양식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블로그의 정보
국어문학창고
송화은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