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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초 청강산에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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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초 청강산에

 

녹초 청강상에 벼슬을 그만 두고 내려와 살고 있지만

때로 고개를 들어 북쪽을 향해 우는 뜻은

석양에 해 넘어갔다(임금께서 승하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임금을 그리워하여 운다.

요점 정리

작자 : 서익(徐益)

갈래 : 평시조

성격 : 유교적, 군신유의(君臣有義)

표현 : 은유법

제재 : 임금(조선 중종)의 승하(昇遐)

주제 : 임금의 승하를 애도함

출전 : 해동가요(海東歌謠)

내용 연구

녹초(綠草) : 푸른 풀. 자연에 묻혀 있는 처지임을 뜻함

綠草(녹초) 晴江上(청강상) : 푸른 풀이 우거진 맑은 강가. 즉 고향의 평화로운 자연(풍경)을 일컫는다.

굴레 : 마소의 고삐를 걸쳐 얽어 매는 줄. 여기서는 '벼슬'을 뜻함

綠草(녹초) 晴江上(청강상)에 굴레 버슨 말이 되어 : 벼슬을 내놓고 고향에 내려가 한가로운 신세가 된 것을 '굴레 벗은 말'로 비유하였다.

夕陽(석양)이 재 넘어 감애 님자 글여 우노라. : 임금님(중종)께서 돌아가셨다 하니 다시 볼 수 없는 임금님을 그리워하며 우는 것이다.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벼슬을 내놓고 고향에 내려가 있을 때 중종(中宗)이 승하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립고 슬픈 심정을 읊은 시조이다.

벼슬을 내 놓고 고향에 돌아와 한가로운 신세가 된 것을 '굴레 버슨 말'로 비유하였다. 때때로 '북향'하며 울었었는데, 이제는 아주 해가 서산 너머로 져버려 슬프다는 뜻이다. 해가 서산 너머로 져버렸다는 것은 '중종(中宗)의 승하'를 의미한다.

이 작품은 군신유의(君臣有義)의 유교 정신을 잘 보여 주는 작품이다.

심화 자료

서익 徐益 [1542~1587]

 

1542(중종 37)∼1587(선조 20).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부여(扶餘). 자는 군수(君受). 호는 만죽(萬竹) 또는 만죽헌(萬竹軒). 아버지는 진사 진남(震男)이며, 어머니는 광주이씨(廣州李氏)로 직제학 약해(若海)의 딸이다.

1554년(명종 9) 13세 때 향시(鄕試)에 장원하고, 1564년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1569년(선조 2)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병조·이조좌랑, 교리, 사인(舍人)을 역임하고, 외직으로 서천군수·안동부사·의주목사 등을 지냈다. 문장과 도덕, 그리고 기절(氣節)이 뛰어나 이이(李珥)·정철(鄭澈)로부터 지우(志友)로 인정받았다.

의주목사로 있을 때에는 정여립(鄭汝立)으로부터 탄핵을 받은 이이와 정철을 변호하는 소를 올렸다가 파직되기도 하였다. 의주에서는 이이의 영향을 받아 육조방략(六條方略)으로써 북방을 선무(宣撫)하였으며, 돌아와서는 12책(策)을 올리기도 하였다.

충청남도 은진(恩津)의 갈산서원(葛山書院)에 배향되었다. 저서로는 ≪만죽헌집 萬竹軒集≫ 1권과 시조 2수가 있다.≪참고문헌≫ 國朝榜目.(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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