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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 어네스트 헤밍웨이 / 해설 및 줄거리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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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The Old Man and the Sea:1952) / 어네스트 헤밍웨이

  해설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로 50세에 미국 최고의 문학상인 퓰리처상을 받았다.
이 작품은 영미를 비롯하여 세계 각국의 절찬을 받았고 2년 후인 1954년에는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노인과 바다"는 장편 소설이라고 하기엔 너무 짧아 중편
같은 느낌이 든다.


  이 작품은 형식이라든가 언어의 구사 문체에 있어서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것으로서 원숙기에 이른 작가의 역량이 남김없이 발휘되어 있다.
  푸르고 맑고 광대한 바다를 배경으로 고기잡이 노인의 치열하고 고독한 싸움이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으며 치밀한 묘사와 참신한 내용이 독자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는 걸작이다.

  작가 약전
  헤밍웨이는 1899년 7월 21일 시카고 교외의 오크 파크(Oak Park)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의사였는데 낚시와 사냥을 좋아하였다. 헤밍웨이도
어릴적부터 아버지를 따라 낚시와 사냥을 좋아하였다. 헤밍웨이는 어린 시절
환경의 탓이었는지 나이가 들면서 생명을 거는 위험한 모험을 즐기게 되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성격과는 반대로 온화하였으며 교회의 독창 가수였다.
아버지는 어린 헤밍웨이에게 낚시대와 엽총을 주었고 어머니는 첼로를 주어
아들을 음악가로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헤밍웨이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
  헤밍웨이가 아프리카로 사냥을 갔다가 구사일생으로 생명을 구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18세 때 고등학교를 졸업한 헤밍웨이는 켄자스 주 '스타'지의 기자가 되었는데
다음 해에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의용군에 지원하였으며 후에 이탈리아
북부 전선에 출전하여 이탈리아 정부로부터 무공 훈장을 받았다.


  헤밍웨이는 1923년 24세 되던 해에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그 해
'포이트리'지 1월호에 최초의 작품을 발표하였으며 1925년에는 첫 단편집
"우리들의 시대"를 출간하였다. 그러나 그의 명성을 널리 떨치게 한 성공적인
작품은 1926년 파리에서 발표된 첫 장편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The Sun Also
Rises)"였다.


  헤밍웨이가 이 작품으로 작가적 명성을 떨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신념의 상실과 절망 환멸 속에서 인생의 가치를 잃은 그 당시 청년들의
심리 상태와 현실을 여실히 묘사한 것이고 또 한 가지는 강인한 체력에서 생기는
생명력과 일상성이 파괴된 데서 오는 허무감이 동시에 흐르고 있는 그의 독특한
문장이 독자들의 주목을 끌었던 것이다.


  헤밍웨이의 명성을 확고 부동하게 한 것은 두 번째 장편 소설인
"무기여 잘 있거라(A Farewell to Arms)"였다.


  1940년에는 헤밍웨이 자신의 대표작일 뿐만 아니라 20세기 미국 문학의
대표적인 걸작의 하나로 손꼽히는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가 나왔다. 이 작품은 그 누구도 완전히 고립된 존재일 수 없고 모든
사람은 전체의 일원이며 한 사람의 죽음은 전인류의 손실이라는 내용으로서
인생에 대하여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의미를 보여 준 문학의 새로운 가치를
실현한 작품이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발표하고 난 후 그는 10년 간 침묵을 지키다가
1950년에 "강 건너 숲 속으로"를 발표하였고 1952년에 "노인과 바다(The Old
Man and the Sea)"를 세상에 내 놓았다  헤밍웨이는 62세가 되던 1961년에
의문의 엽총 자살로 세상을 떠났다.

  줄거리
  그는 멕시코 만류에서 조각배를 타고 혼자서 낚시질을 하면서 살고 있는
고독한 노인이었다.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고 허송한 날이 벌써 84일째였다.
이런 운수 나쁜 날이 계속되던 처음 40일 동안은 한 소년이 그를 도와 주어서 덜
외로웠다. 그러나 40일이 지나도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는 것을 보자 소년의
부모는 소년을 다른 배로 옮겨가서 일하게 했다. 소년은 날마다 허탕만 치고 빈
배로 돌아오는 노인을 보기가 딱해서 노인의 배가 뭍에 닿으면 여러 가지 일을
도와 주곤 하였다.


  "산타이고 할아버지, 다시 할아버지와 함께 일하고 싶어요"
  소년은 조각배를 올려 놓고 언덕으로 올라가면서 노인에게 말했다.
  노인은 이 소년에게 낚시질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소년은 무척 이 노인을
사랑하며 따르고 있었다.
  "아니다. 네가 일을 하고 있는 그 배는 고기가 많이 잡히지 않느냐 너는 그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좋단다"
  노인은 말했다.
  "'테라스'에 가서 제가 한 잔 사드릴께요. 그리고 나서 어구를 집으로 가져
가지요"
  "그래 좋다. 우리 어부끼리 한 잔 마시자"
  노인과 소년은 '테라스'에 가서 자리를 잡았다.
  "할아버지가 처음 저를 바다로 데리고 나가셨을 때 제가 몇 살이었지요?"
  "다섯 살이었지 그 때 내가 어마어마하게 큰 고기를 낚아 올려 그 놈이 배를
산산조각으로 부술 것처럼 푸드득거리는 바람에 네가 하마터면 죽을 뻔 했단다.
기억하고 있니?"
  "기억하고 있다 뿐이겠어요. 그 모든 것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게에요"
  노인은 햇볕에 그을린 인자한 눈으로 다정하게 소년을 바라보았다.
  "네가 만일 내 아들이라면 너를 한 번 더 데리고 나가 어떤 모험이라도 해
보고 싶다마는 네게는 아버지 어머니가 있고 또 너는 지금 고기가 잘 잡히는
좋은 배에서 일하고 있으니..."
  "내일은 어느 바다로 나갈 계획이세요?"
  소년은 얼른 화제를 바꾸었다.
  "먼 바다로 나가서 바람이 바뀌면 돌아오겠어 그래서 내일은 날이 밝기 전에
바다로 나갈 작정이야"
  "이젠 어구를 가지고 돌아가지요"


  소년은 웃었다. 노인과 소년은 배에서 어구를 집어 들었다. 노인은 돛대를
어깨에 메고 소년은 사려 감은 작살을 손에 들었다. 그들은 나란히 도로를
따라서 노인이 사는 오막살이까지 도착했다. 노인이 집이라고 거처하고 있는
오막살이는 이 지방 사람들이 구아노라고 부르는 종려나무로 지은 것이었다.
좁은 방 안에는 침대 하나 의자 하나 식탁 하나가 있을 뿐이었고 숯으로 불을
피워서 실내는 형편 없이 더러웠다.


  "85는 행운의 수란다" 하고 노인은 의자에 앉으면서 먼저 말을 꺼냈다.
  "두고 봐라 내일은 천 파운드도 넘는 큰 놈을 낚아 올 테니"
  "나는 투망을 얻어서 정어리나 잡아 오겠어요. 문턱에서 햇볕이라도 쬐고 앉아
계셔요"
  이렇게 말하고 소년은 밖으로 나갔다.


  소년이 돌아왔을 때 노인은 의자에 앉아서 잠을 자고 있었다. 소년은 낡아
빠진 군대용 담요를 침대에서 벗겨다가 의자 뒤로 둘러 싸 노인의 어깨를 덮어
주었다. 노인의 어깨는 확실히 나이에 비해서는 남달리 튼튼하였고 아직 힘이
넘쳐 있었으며 목덜미도 아직 힘 차 보였다. 고개를 숙이고 자는 것을 보니
주름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러나 머리만은 나이를 속일 수 없을 정도로
백발이 되어 있었다.


  "할아버지 일어나셔요"
  소년은 손을 노인의 한쪽 무릎에 가만히 놓았다.
  "뭘 가져왔니?"
  노인은 눈을 뜨고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저녁밥을 가져왔어요"
  "난 아직 배고프지 않은데"
  "어서 드세요. 먹지 않고 어떻게 고기를 잡겠어요"
  소년이 친절하게 말했다.
  "그러자 그런데 누가 이 밥을 주던?"
  "'테라스' 식당 주인 마틴 씨가 주었어요"
  "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겠구나 큰 고기를 낚으면 배때기의 좋은 살을
선사해야지 벌써 이렇게 얻어먹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지?"
  "예"
  그들은 친할아버지와 손자처럼 다정하게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그들은 야구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노인은 소년에게 훌륭한 야구 선수 디마지오를 고기 낚는데
데리고 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젠 주무세요. 푹 쉬셔야 내일 아침에 힘이 나지 않겠어요. 나는 이 그릇을
'테라스'에 갖다 주고 가겠어요"
  "그럼 가서 자거라 내일 아침 깨우러 가마" 


  소년은 돌아갔다. 노인은 어둠 속에서 바지를 벗고 침대로 기어 들어갔다.
  이튿날 아침 먼 바다로 나가기로 작정한 노인은 흙냄새를 뒤로 하고 이른
새벽의 신선한 바다 냄새가 풍겨오는 먼 바다를 향하여 노를 저었다. 힘이
자라는 한도 내에서 노를 젓는 데는 그다지 힘이 들지 않았다. 해면은 유리같이
잔잔했다. 게다가 노젓는 삼분의 일의 노력은 파도가 덜어 주어서 동녘이 환하게
밝았을 때 노인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먼 바다에 나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노인은 날이 더 밝기 전에 미끼를 물에 띄워 보았다. 그리고 배를 파도의 흐름에
맡겨 두고 있었다.


  해가 뜬 지 이제 두 시간이 지났다. 육지에는 구름이 산처럼 솟아올랐고
해안은 한 줄의 푸른 선으로 보였다.
  노인은 우연히 하늘을 쳐다보다가 갈매기가 공중에서 원을 그리면서 날고 있는
것을 보았다.
  "고기가 있구나" 하고 노인은 소리쳤다. 그 때 노인이 발로 밟고 있는 배
뒤쪽의 낚시줄이 팽팽해지는 것을 느꼈다. 노인은 부지런히 낚시대를 놓았다.
낚시줄을 통하여 조그만 방어가 몸부림치는 감촉이 느껴졌다. 노인은 낚시줄을
힘껏 당겼다. 몸부림치던 방어는 배 안으로 끌러 들어왔다.
  "좋은 미끼가 되겠다. 무게가 십 파운드는 되겠군" 하고 소리쳤다


  이젠 해안선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눈을 덮어 쓰고 있는 듯 희게 보이는 푸른
산봉우리와 또 그 위에 산봉우리 같은 구름이 솟아 있을 뿐이었다.


  햇볕은 벌써 따가웠다. 그의 등은 따가운 햇볕을 받아 주룩주룩 흐르고 있었다.
  배는 파도에 맡기고 한잠 자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노인은 85일이나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한 것을 생각하고 마음을 고쳤다.


  바로 그 때 낚시줄을 조심스럽게 들여다 보던 노인은 녹색으로 칠한 그 막대기
하나가 쑥 기울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래 그래 알았어"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노인은 노를 조용히 놓고 낚시대를 가볍게 쥐어 보았다.
아무런 감촉도 느껴지지 않았다. 노인이 낚시대를 그대로 쥐고 조금 있으려니까
무엇이 낚시줄을 끌어당겼다. 이번에는 퍽 세게 끌어당겼다. 그제서야 노인은
모든 것을 확실히 파악했다. 수백 피트가 되는 물 속에서 거대한 물고기가
낚시에 걸린 정어리를 물어 뜯고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먼 바다에서 잡히는
물고기는 상당히 큰 놈일 거라고 노인은 생각했다.


  '물어라 이 놈아 어서 미끼를 먹어라 육백 피트나 되는 어두운 물 속에서 뭘
그렇게 꾸물대고 있니'
  노인은 손가락으로 낚시대를 쥔 채 조용히 기다렸다. 가벼운 감촉이 느껴졌다.
그러나 다음 순간 고기가 낚시줄을 불끈 잡아 끌고 갔다. 노인은 재빨리
낚시줄을 풀어 주었다. 그리고 준비해 둔 예비 낚시줄에 이었다. 이제 준비는
모두 되었다.


  노인은 양손에 힘을 주어 낚시줄을 힘껏 잡아당겼다. 그러나 헛수고였다.
고기는 유유히 먼 데로 달아나고 있었다. 한 피트도 더 잡아당길 수가 없었다.
모르는 사이에 배는 북서쪽으로 천천히 미끄러져 가고 있었다.


  "그 애가 여기 있었다면... 나는 지금 고기에 못 이겨 끌려가고 있다. 이렇게
줄을 풀어 주고 있다가는 줄이 모자라겠어" 하고 노인이 중얼거렸다.
  저 놈이 맥이 풀릴 때도 왰다고 노인은 생각했다. 그러나 고기가 낚시에
걸린지 네 시간이나 되었는데 고기는 여전히 조각배를 끌고 먼 바다로 헤엄쳐
가고 있다.


  하늘에는 별들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노인은 그 별들을 보고 고기가 그 날
밤의 진로를 조금도 바꾸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노인은 잡아둔 방어를 보면서
날이 새면 방어가 상하기 전에 먹고 힘을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밤이 지나고 주위가 조금씩 환해졌다. 배는 쉬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해가 좀 더 높이 솟은 뒤에야 노인은 고기가 조금도 지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노인은 '너는 참 멋진 놈이다. 그러나 나는 해가 지기 전에 너를
죽이고야 말겠다'고 생각했다. 바로 그 때 고기가 줄을 잡아당기면서 물 속으로
미친듯이 내려가는 바람에 노인은 그만 뱃머리에 엎어지고 말았다. 재빨리 줄을
풀어주지 않는다면 노인은 물 속으로 끌려들어갈 뻔하였다. 노인은 오른손으로
조심스럽게 낚싯대를 잡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손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노인은 물에 담갔던 손을
햇볕에 비춰 보았다. 상처가 대단한 것은 아니었으나 중요한 곳이어서
노인에게는 타격이 컸다.
  "자, 이젠 방어를 먹어야지"
  손이 마르자 노인은 말했다. 노인은 한쪽 무릎으로 고기를 누르고 한쪽
손으로 가죽을 벗겼다. 바로 그 때 왼손에 갑자기 경련이 일어났다. 오른손으로
무거운 낚싯대를 죽을 힘을 다해서 꽉 잡았다.
  "손이 왜 저러지, 경련이 날 테면 나 보라지 상관없다" 하고 노인은
중얼거렸다.
  "자! 이젠 먹자" 하고 노인은 방어 한 점을 입에 넣고 꼭꼭 씹어 먹었다. 제법
맛이 좋았다. 노인이 방어 한 마리를 다 먹고 오른손에 느껴지는 고기의 위력을
알아 차린 바로 그 때 낚싯대의 경사가 커지더니 줄이 물 위로 올라 오기
시작했다.
  "저 놈이 이제 올라오는구나. 정신을 바짝 차려야지"
  왼쪽을 향하여 외쳤다. 고기의 양쪽 지느러미에서 물이 양편으로 갈라졌다.
햇볕에 고기 비늘이 반짝거렸다. 주둥이가 야구 방망이 길이 만하고 끝은 칼같이
생겼다. 고기는 거대한 몸집을 물 위에 드러내더니 다시 물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배 길이보다 두 피트나 큰 놈이다"
  노인은 놀라서 중얼거렸다.
  정오가 가까왔을 무렵에야 왼손의 경련이 겨우 풀렸다.
  "네 놈에겐 좋지 못한 소식이다"
  노인은 이렇게 말하면서 배 꽁무니에 짧은 낚싯줄에 다시 미끼를 끼워 두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노인은 이제 지칠대로 지치고 말았다. 밤이 벌써
찾아왔다. 노인은 우연히 어떤 일을 회상하고 힘을 얻었다.


  젊었을 때 노인은 어떤 선술집에서 한 흑인과 팔씨름을 하였다. 그 흑인은
몸이 무지하게 크고 힘도 그 부두에서는 제일 센 녀석이었다. 팔씨름 한판이
하루 낮과 밤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날이 밝아질 무렵 모두들 씨름을 무승부로
결정하자고 주장하고 심판도 그 주장을 받아 들이려고 했을 때 노인은 온 몸의
힘을 다하여 흑인의 팔을 눕히고 말았다. 결국 씨름은 일요일 아침에 시작하여
월요일 아침에 끝난 셈이었다. 얼마 동안은 노인을 보면 모두들 '선수'라고
불렀다. 그 후로도 노인은 몇 번 팔씨름을 했으나 그와는 절대로 하지 않았다.
오른손은 낚시를 위하여 아껴야만 했던 것이다.


  어두워지려고 할 무렵 낚시에 돌고래가 걸렸다. 노인은 돌고래를 막대기로
마구 후려갈겨 숨이 끊어지는 것을 보고 배 위로 끌어올려 놓은 뒤 먹을 것을
마련한 것에 흡족해 했다.
  해가 지자 9월의 바다는 금방 어두워지고 말았다. 사방은 캄캄했다.
  "저 놈같이 억세고 큰 놈은 보지도 듣지도 못했어. 어떻든 나는 저 놈을 꼭
죽여야 한다"
  노인은 별을 쳐다보면서 중얼거렸다.
  동쪽 하늘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별들은 하나씩 사라지고 바람은 고요히
잠들고 말았다.
  "사나흘 후에는 일기가 나빠지겠구나"
  노인은 중얼거렸다. 그리고 노인은 그 놈이 잠잠할 때 한숨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노인이 깜짝 놀라 눈을 떴을 때 낚시줄이 마구 풀리고 있었다. 양손으로
낚싯대를 잡아 풀리는 것을 막으려고 했지만 낚시줄은 계속해서 풀려나갔다.
왼쪽 손바닥은 상처가 났고 오른쪽 손바닥은 타는 듯이 아팠다. 고기는 몇
번이고 미친 듯이 날뛰었다. 노인은 이제 감각마저 잃은 손바닥이 마구 터지는
대로 맡겨 두었다. 노인은 다만 손가락이 다치지 않도록 주의했다. 이제 낚싯줄도
속도가 차츰 느려져 천천히 풀려갔다. 노인은 오른손을 물에 담근 채로 훤히
밝아지는 동녘을 바라보았다


  노인이 바다로 나오고 세번 째 해가 떴을 때야 고기가 원을 그리면서 빙빙
돌기 시작했다. 있는 대로 줄을 잡아당기면 원은 차츰 작아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그놈에게 맛을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노인은 생각했다. 그러나 두
시간이 지나자 노인의 피로는 골수에까지 파고 들었다. 그리고 고기가 그리는
원도 퍽 작아졌다. 고기가 일곱 바퀴를 천천히 돌고 난 다음에야 노인의 작살이
닿을 만한 거리에 와 있었다. 그러나 노인은 머리가 희미해지고 정신이
아찔해졌다. 정신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고기의 허연 배때기가 보이는
순간이면 현기증이 나곤 하는 것이었다. 노인은 남아 있는 마지막 힘을 다하여
그 옛날의 자랑스러웠던 힘을 되돌려 보려고 하였다. 고기는 천천히 다가왔다.
주둥이가 뱃전에 거의 닿을 만한 거리에 왔을 때 노인은 낚싯줄을 발로 밟고
남아 있는 온 몸의 힘을 모아 작살을 높이 쳐들고 고기 배때기를 푹 내려
찔렀다. 고기는 치명상을 입고 갑자기 물위로 튀어오르며 그 아름다움과 넘치는
힘을 아낌없이 보여 주었다. 노인은 현기증이 나면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눈앞이
흐려져 앞을 내다 볼 수가 없었다. 노인은 작살에 매인 줄을 터질 대로 터진
손으로 풀어 주었다. 고기는 해면에 은빛의 배를 보이면서 자빠져 있었다. 해면은
고기 심장으로터 흘러나오는 피로 온통 피바다가 되고 말았다. 노인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정신을 차려서 낚싯줄을 당겨 보았다. 그러나 고기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노인은 할 수 없이 고기에게로 배를 저어 가 준비한 밧줄로 고기
대가리는 뱃머리에 매달고 꼬리는 배 꽁무니에 달았다. 고기가 너무 커서 노인이
타고 있는 조각배를 큰 바위에 올려다 붙인 것 같았다. 모든 일을 끝낸 노인은
돛대를 세우고 돛을 달았다. 배는 미끄러지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노인과
고기는 순조롭게 나아갔다. 노인은 손을 물에 담그고 정신을 차리려고 애를 썼다.
  상어의 첫 습격을 받은 것은 약 한 시간 후의 일이었다. 노인은 쏜살같이
날아오고 있는 고기를 보고 그것이 상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노인은 작살에다
줄을 매었다. 상어가 배 꽁무니에 임박해 왔을 때 노인은 상어 대가리를 향하여
힘껏 작살 끝으로 내려 찔렀다. 상어의 가죽과 살이 우지직 떨어져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투지 만만한 상어는 여전히 달라 붙었다. 노인은
피투성이가 된 손으로 마구 작살을 내려 찍었다. 상어는 드디어 온 몸을 떨면서
단말마의 신음을 내었다. 그러다 꼬리로 물을 때리고 턱을 움직이면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몸의 사분의 삼은 물 위로 나와 있었다. 그 순간 그것이 작살에 매어진
줄을 흔들어 대는 바람에 노인은 그만 쥐고 있던 줄을 놓치고 말았다.
  노인은 부상을 입고 뱃전에 매달려 있는 고기를 보니 마음이 언짢았다.
지금까지의 일이 모두 꿈이라면 큰 고기도 필요없고 침대에 누워서 신문이나
보는 것이 나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계속 순풍이 불고 있었다. 약 두 시간쯤 지났을까 노인은 뒤따라오던 상어 두
마리가 배 가까이 오는 것을 보았다. 노인은 칼을 노 끝에 붙들어 매고 일어섰다.
두 손의 상처가 너무 아파 노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노인은 노를 꽉 쥐었다. 몹시 아팠다. 상어는 가까이 다가왔다. 다음 순간
상어는 입을 짝 벌리고 큰 고기를 습격해 왔다. 노인은 번개 같은 솜씨로 상어
대가리와 눈을 내려 찔렀다. 큰 고기에 매달려 살을 뜯던 상어는 미끄러지듯이
내려갔다. 배는 계속 흔들리고 있었다. 배 밑에 숨어 있던 또 다른 상어가 큰
고기를 물어뜯고 있었다. 노인은 재빨리 매어진 밧줄을 풀었다. 배가 미끄러져
나가기 시작하자 배 밑에서 상어가 나타났다. 노인은 칼로 재빠르게 내려 찔렀다.
그러나 칼은 머리에 맞지 않고 잔등에 맞았다. 손도 어깨도 말할 수 없이 아팠다.
상어가 큰 고기에 덤벼들자 노인은 대가리를 향해 칼을 다시 내려 찔렀다. 또 한
번 그러나 상어는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이번에는 눈을 찔렀다. 그래도 상어는
꼼짝하지 않았다. 노인은 노를 거꾸로 들고 노 끝으로 상어의 입을 찔렀다.
그제서야 상어는 미끄러져 내려갔다. 노인은 상어에게 욕을 퍼부었다.


  "죽일 놈 같으니 잘 가거라! 바다 밑까지 가자면 일 마일은 가야 할 게다. 아까
그 놈에게 안부나 전해라"
  배는 순풍을 받아 해안으로 해안으로 달렸다. 고기의 사분의 일은 빼앗기고
말았다고 노인은 생각했다.


  다음에 습격해 온 상어도 아까와 똑같은 종류였다. 노인은 상어가 고기에
달겨드는 것을 그냥 내버려 두었다. 그러다가 상어가 고기를 물어뜯는 순간 노
끝에 붙은 칼로 놈의 대가리를 내려 찔렀다. 상어는 몸을 뺐으나 칼이 대가리에
박혀 칼까지 잃고 말았다.


  다시 상어가 습격해 온 것은 해지기 직전이었다. 노인은 뱃머리로 가서
막대기를 손에 들었다. 상어 두 마리가 나란히 고기를 향하여 돌진해 왔다.
  그 중 한 마리가 커다란 입을 벌리고 고기에게 덤벼든 순간 노인은 막대기를
번쩍 들어 죽을 힘을 다해서 그 놈의 대가리를 내려쳤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콧잔등이를 내려쳤다. 상어는 고기에서 떨어져 나갔고 또 한 마리가 입을 짝
벌리고 달려들었다. 노인은 막대기로 대가리를 힘껏 후려갈겼다. 상어는 고기살을
뜯어서 입에 문 채 뒤로 몸을 뺐다. 상어는 다시 달려들었다. 노인은 막대기를
높이 쳐들었다가 힘껏 내려쳤다. 그러기를 서너 번 한 뒤에야 전투가 끝이 났다.
상어는 물 위에서 원을 그리며 빙빙 돌고 있었다. 노인은 고기를 보는 것조차
싫었다.


  고기의 반 이상이 상어란 놈들에게 물어 뜯겼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해는
이미 지고 있었다.
  "어두워지면 아바나 항구의 등불들이 보일 거다. 이 배가 동쪽으로 너무 멀리
나와 있다면 다른 해안의 등불이라도 보일 테지"
  이젠 해안도 멀지 않았다고 노인은 생각했다. '그러나 밤중에 놈들이 달려들면
어떻게 하지? 무슨 수가 없을까?'
  "싸워야지" 하고 노인은 말했다. 그러나 노인의 몸은 딱딱하게 굳어지고 조금만
움직여도 아파서 못 견딜 지경이었다.
  밤 열한 시쯤 되었을 때 노인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항구의 불빛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을 보았다. 이제 싸움은 끝났다고 노인은 생각했다.
  그러나 싸움은 자정에 다시 한 번 벌어졌다. 이번에는 놈들이 떼를 지어서
습격해 왔다. 노인은 무턱대고 막대기를 내려쳤다. 그러나 막대기도 무엇에 걸려
빼앗기고 말았다. 노인은 다시 노를 들어서 내려치기 시작했다. 상어들은 차례로
고기의 살을 뜯고는 물러났다.


  노인은 숨쉬는 것도 괴로웠다. 노인은 바다 위에 침을 뱉었다. 그리고 말했다.
  "처 먹어라! 더러운 상어놈들 같으니! 그리고 사람을 죽인 꿈이나 꿔라"
  이제서야 노인은 자기가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지쳐 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런 상념도 감정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제는 다만 조각배를 잘 조종해
항구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었다. 자정이 지난 후에도 상어는 뼈만 남은 고기에게
여러 차례 달려들었다. 그러나 노인은 눈도 깜짝이지 않았다. 모든 것에
무관심했다.


  노인이 항구에 당도했을 때는 '테라스'의 등불도 이미 꺼져 있었다. 노인은
바위 아래의 모래밭에 배를 붙이고 돛대를 맨 채 언덕으로 올라갔다. 언덕을 다
올라간 노인은 엎드린 채로 한참 동안이나 누워 있었다. 노인은 간신히 몸을
일으켜 비틀비틀 걷기 시작했다. 오막살이까지 당도하는데 다섯 번이나 쉬어야
했다. 오막살이로 들어간 노인은 물병을 찾아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넘어지듯
침대에 쓰러져 곧 깊이 잠이 들었다.


  그 다음 날 아침 소년은 매일 아침 하던 대로 오막살이로 갔다. 노인은 깊이
잠들어 있었다. 노인의 거치른 숨결과 상처가 심한 두 손을 보고 소년은 울음이
북받쳐 나왔다. 소년은 커피를 가져 오려고 조용히 오막살이를 나왔다.
  어부들이 노인의 배를 둘러싸고 고기의 잔해를 구경하고 있었다. 소년은
그리로 가 볼 생각도 들지 않았다. 소년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소년이
커피를 갖다 놓고 다시 장작을 얻어 가지고 돌아왔을 때야 노인은 무거운 눈을
떴다.


  "일어나지 마시고 이 걸 드세요"
  소년이 말했다. 그리고 노인을 찾기 위해 해안 경비대와 비행기도 나갔었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함께 일하자고 했다.
  "어구는 내가 모두 준비하겠어요. 할아버지는 빨리 몸이 낫도록 하세요"
  그리고 소년은 먹을 것을 가지러 밖으로 나왔다.
  정오가 지나자 관광객 일행이 바다를 보고 있었다. 그 중 한 부인이 파도를
타고 막 흘러 나가고 있는 커다란 꼬리가 붙은 고기의 뼈를 발견했다.
  "저게 뭘까요?"
  급사에게 물었다.
  "티브론입니다. 일종의 상어죠" 하고 웨이터는 서투른 영어로 설명하느라
애썼다.
  "상어라니요. 상어에겐 저렇게 잘 생기고 아름다운 꼬리가 달려 있지 않지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고 함께 온 사나이가 말했다.
  길 저편에서는 노인이 담요를 덮어 쓰고 자고 있었다. 소년은 그 옆에 앉아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죽은 듯이 자고 있는 노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노인은 사자 꿈을 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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