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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에 관하여 / 해설 / 키케로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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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케로(Cicero) "노년에 관하여(De Senectute)"

 

인생이란 줄에 묶여 질질 끌려가는 개의 신세와 같다. 우리는 누구나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 게다가 삶은 내 의지로는 어쩔 수 없는 고통과 불행으로 가득 차 있다. '이건 내가 원하던 삶이 아니야.'라고 생각해도 세월은 끊임없이 우리를 죽음으로 끌고 가고 있다.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저항한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우리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종장(終章)으로 본다면, 삶은 결국 노년과 죽음으로 향해가는 비참한 여로(旅路)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삶이 힘들 때면 자연스럽게 이런 물음을 던지게 되는 것이다. "도대체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왜 나는 삶이 허무로 끝날 것을 알면서도 고통을 견디며 살아가야 하는가?"

 

철학은 바로 이런 물음에 대해 답을 준다. 진정 추구할 가치를 드러내주고 우리 삶이 바로 이런 것들에 기여하고 있음을, 그래서 의미 있음을 깨닫게 해 주는 것이다. 키케로의 말처럼 진정한 철학은 "인생의 모든 시기를 근심 없이 보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이 책에서 키케로는 대()카토의 입을 빌어 노년이란 아무 쓸모없이 참고 견뎌야 하는 고통의 기간이 아님을 역설한다. 노년이란 열매가 익어 땅에 떨어지는 것 같이 때가 되면 찾아오는 자연 변화의 일부일 뿐이다. 결코 두렵거나 회피할 것이 아니다.

 

포도주가 오래 되었다고 모두 시어지지는 않듯이, 늙는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비참하고 황량해지지는 않는다. 노년 자체는 잘못되거나 비난할 만한 것이 아니며, 노쇠에 대한 모든 나쁜 편견은 이를 겪는 개인들 개개인의 성품에서 비롯되었을 뿐이다.

 

키케로는 당대 최고의 논쟁가답게 노년에 대한 편견을, '노년이 되면 일을 할 수 없다', '노년이 되면 체력이 떨어진다.', '노년이 되면 쾌락을 즐길 수 없다.', '노년이 되면 죽음이 멀지 않다.'는 네 가지로 나누어 공격한다.

 

첫째, 노년에도 일을 할 수 있다. 육체는 약해지지만 이 때문에 무능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고된 노동으로부터 해방될 뿐이다. 노인은 자신의 경험과 경륜을 살려 가르치고 조언하는 등, 자신의 능력에 어울리는 일을 할 수 있다. 게다가 미숙하고 성급한 젊은이들보다 더 올바르게 국가를 이끌 수도 있다. "대개 위대한 국가들은 젊은이들 때문에 와해되고, 노인들에 의해 회복되었듯이 말이다."

 

둘 째, 노년에 체력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자연에는 각 시기마다의 특징이 있다. 청년기에는 격렬함이, 중년기에는 장중함이, 그리고 노년기에는 원숙함이 그 것이다. 따라서 체력 저하는 자연에 따른 현상으로 슬퍼할 일이 못된다. 오히려 노년기에는 마음과 정신의 연마에 더욱 힘써야 한다. 육체와 달리 정신은 나이가 들어도 갈고 닦을수록 고양되기 때문이다.

 

셋째, 노년에 쾌락을 즐길 수 없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무대에서 먼 자리에서도 연극을 볼 수 있듯, 노년에도 젊을 때처럼 강렬하지는 않지만 쾌락을 느낄 수 있다. 그 뿐 아니라 쾌락으로부터 멀어졌음은 축복이기도 하다. 얼마나 많은 악들이 쾌락을 얻기 위해 저질러지는가? 노년에는 쾌락의 유혹에서부터 멀어졌기에 젊을 때보다 건전한 이성과 판단을 잘 유지할 수 있다. 때문에 노년에 소포클레스(Sophocles)는 성욕을 느끼지 못해서 아쉽냐는 질문에, "무슨 끔직한 말을! 잔인하고 사나운 주인에게서 도망쳐 나온 것처럼 나는 이제 막 그것으로부터 빠져나왔는데!"라고 대답했던 것이다.

게다가, 배움과 학식이 주는 기쁨을 아는 이라면, 한가한 노년만큼 자신의 즐거움에 빠져 지내기 좋은 세월이 없음을 잘 알 것이다.

 

넷째, 노년이 죽음으로부터 멀지 않음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젊은이들이 더 멀리 있지도 않다. 젊었다 해도 오늘 당장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노인의 죽음은 익은 과일이 땅에 떨어지듯 자연스러운 과정이지만, 젊은이의 죽음은 익지 않은 과일을 강제로 따는 것과 같다. 노년의 죽음이 훨씬 더 바람직하다.

 

청년이 되면 유년기 때 즐거웠던 일들이 유치하게 느껴지고, 장년이 되면 청년 시절이 치기와 어리석음으로 다가오듯이, 노년이 되면 인생의 모든 쾌락이 점차 시들해 지고 흥미도 적어진다. 그렇듯 자연스럽게 노년은 자연에 따라 인생을 정리할 시기가 되는 것이다. 결승점에 다다른 사람이 다시 출발점으로 가기를 원치 않듯이, 제대로 생애를 보내는 '오랜 항해 뒤 마침내 항구에 들어서는 것 같은' 노년과 죽음 거부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키케로는 한편으로 '체념' 속에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고 있다. 노년과 죽음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이라면 거역하지 말고 받아드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체념이 곧 '인생포기'는 아니다. 오히려 달관하라는 뜻이다. 어쩔 수 없는 운명은 받아드리되, 자신이 할 수 있는 부분은 최선을 다해 인생을 덕스럽고 가치 있게 변화시키라고 거듭 충고한다.

 

키케로는 공화정 시대 로마의 정치인이었으므로, 그의 말 속에서는 로마의 '국가철학'이었던 스토아(Stoa) 사상이 잘 녹아있다. 스토아 사상은 '참을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해병대 훈련소 격언을 떠올리게 하는 데가 있다. 주어진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드리고 좌절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자세, 남성적이고 선이 굵은 승자의 철학이다.

 

철학은 자신과 확신이 지나쳐 자만에 이른 사람을 반성하게 만든다. 끊임없이 물음을 던짐으로써 자신과 세계가 그만큼 확실하지 않음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철학이 바로 그런 작업의 결과다. 반면, 철학은 고통 속에 절망하며 회의 하는 자에게 거친 삶에 당당히 맞설 수 있는 가치와 의미를 찾아준다. 지금 살펴본 스토아 사상가, 키케로의 사상이 그렇듯 말이다.

 

"진정 나에게 힘을 주는 사상", 곤경에 처하고 세파에 부딪혀 상처받고 약해질수록, 스토아 철학자들의 책이 '땡기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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