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간(內簡)
by 송화은율내간(內簡)
삼옹주
丁酉 九月 二十日
그리고 간 후의 안부를 몰라 걱정한다. 어찌들 있느냐?
서울에서는 특별한 기별은 없고, 도둑은 물러갔으므로 기뻐한다. 나도 무사히 있다.
다시금 잘 있거라.
요점 정리
지은이 : 선조
문체 : 서간체, 내간체
주제 : 전쟁 후에 피난처에 있는 딸의 안부를 물음
내용 연구
삼옹주 : 선조의 삼녀(三女), 정숙 옹주
잇는다 : 있느냐?
각별
: 특별한
긔별 : 소식을 전함
도적 : 왜적을 가리킴
깃거
노라 : 기뻐하노라
됴히 : 좋게
정유 : 선조 30년(1497년)
이해와 감상
선조 임금이 정유재란 후에 피난처에서 셋째 딸인 정숙옹주에게 보낸 것으로, 서간문이 갖추어야 하는 형식을 생략하고 딸에 대한 아비로서의 궁금중을 토로함으로써 간결하고 압축적 문체 속에서 선조의 각별한 부정을 엿보게 하는 글로, '안부 몰라
노라', '엇디들 잇는다'라는 구절 등에서는 일반 백성들과 같은 어버이의 자식 사랑을 느낄 수 있다. 그러면서도 편지 중에는 당시의 시사적이고, 정치적인 상황이 '도적은 믈러가니 깃거�노라'라고 하는 말에서 임금다운 풍모도 엿볼 수 있다.
쥬샹이 지통즁
<'신합첩(宸翰帖)'>
주상께서 몹시 애통한 가운데 한 달 남짓 근심으로 지내시고, 자주 병환이 나서 육체를 손상하심이 말할 수 없는데, 출현궁 하시는 일을 하시고 애통을 겸하여 병이 되어 위중할 뿐 아니라, 성궁을 위하옵는 염려가 간절하와 붙들고 못 가시게 하나 이제 즉시 가려 하시니, 지극한 정성을 생각하여 주상께서 거동하시기 전에 성빈(빈소를 만듦)하고 아룁게 하십시오.
요점 정리
지은이 : 혜경궁 홍씨(惠慶宮洪氏)
갈래 : 수필(편지)
문체 : 내간체
주제 : 아들에 대한 걱정과 빈소를 만든 후에 알릴 것을 당부함.
내용 연구
쥬상 : 임금, 여기서는 정조
지통 즁 : 몹시 애통한 가운데
포 : 한 달 남짓
심녀 : 근심
로 : 자주
미령 : 병환, 어른의 몸이 편하지 않음
셩톄 : 임금의 몸
출현궁 : 왕의 관을 분광(墳壙)해서 내는 일
이러 : 되어
위즁 : 병세가 위험할 만큼 매우 중함
셩궁 : 성스러운 관, 여기서는 사도세자의 관
지졍 : 지극한 정성
동가 젼 : 거동하기 전
셩빈 : 빈궁, 즉 빈소를 만듦
이해와 감상
정조 13년(1798)에 사도세자의 무덤을 수원화산으로 옮길 때 혜경궁 홍씨가 영의정 채제공에게 내린 편지로서 정조의 효성이 간절하나 그 슬퍼함이 절통하여 몸을 상하게 할 염려가 있으니 사도 세자의 관을 안치한 후에 알리도록 당부하는 내용으로, 남편의 비극적 죽음을 겪은 후에 아들 정조가 즉위함으로써 남편 사도 세자의 권위가 회복될 수 있는 가능성을 실현하게 되고, 아들의 지극한 태도에 대해 어미로서의 감사와 아들이 된 임금의 처지로서의 강건한 심신을 유지하기 바라는 모성애와 극존칭의 어투와 전아한 문체를 통해 곡진하게 의사를 표현하고 있다.
글월 보고 무
히 이시니
요점 정리
지은이 : 인선왕후
주제 : 멀리 떨어져 사는 딸을 그리워 하는 안타까운 모정
내용 연구
글월(편지) 보고 무사히 있다니 기뻐하며 보는 듯 든든 반가워 다시금 보노라. 이번은 두어 날을 더 묵는 듯. 갑자기 나갈 때 섭섭하여 덧없기는 한가지니 차라리 있음만 못하여 하노라. 후세에나 서로 떠나는 일이 없이 살고자 하노라.
이해와 감상
인선 왕후가 멀리 떨어져 사는 딸 숙휘 공주를 그리워하는 글로, 일반 백성의 부녀자가 아닌 왕후가 쓴 편지라는 사실이 보통의 내간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이 편지를 통해 공주를 그리워하는 모정이 나타나 있다.
요사이
요점 정리
연대 : 현종
작자 : 명성왕후(明聖王后)
수신인 : 숙휘공주
주제 : 남편 상을 당한 시누이를 위로함(자상한 여인의 인정미)
내용 연구
요사이 기운이나 무사히 지내옵시는지 알고자 하오며 병환은 비록 가볍지 않다 하오나 젊은 사람이니 자연스럽게 아니 나으랴 바라옵다가 마침내 구하지 못하오니 매우 마음에 걸려 가슴이 아프고 숨이 탁탁 막히는 것 같사오니 이 어찌된 일인고. 아무리 생각하여도 거짓 일 같사옵고 자기(당신)의 마음이나 인평위(숙휘공주의 남편) 마음이나 그토록 남이 간직하지 못한 용한(마음씨가 온순한) 인심을 가지고서 저리 되오니 천도(天道)가 그리도록 무지하실사 원망(怨望)이옵니다. 해는 점점 길고 어이 이러구러 세월을 지내실꼬. 자기 마음을 생각하오면 목이 메옵고 딱하오구려. 자기야 하나님도 그토록 남의 인생을 섧게도 만드셨을까. 평소에 선택함이나 번화한 것을 남의 유(類)에 조화(調和)하오시던 일과 유화(柔和)하오시던 일 가지가지 곰곰 생각하오면 일각(一刻)도 잊은 바가 없어, 이로 인하여 병도 되올까 싶습니다. 어떤 사람은 시동생이라 하고 내려 생각하옵는고. 실로 내 동생인들 마음이 이토록 못 잊히옵고 섧사오면 어이 하오리까. 어려서부터 동갑(숙휘공주와 명성왕후가 동갑임을 말함) 동갑하옵고 각별히 하옵다가 자기가 저리 되오시니 살뜰히 못 잊히옵고 가련하옵시니 차라리 마음이 사나운 사람 같사오면 낫자올 듯 싶으오이다. 상사(喪事)에 의복은 자기를 생각하오면 무엇이 귀하오며 아까운 것이 있사오리까마는 한 가지 것도 정(情)과 같지 아니하오니 더욱 섭섭 슬프오이다. 평소에는 한때 못 보아도 섭섭하여 하옵던데 보올 날이 아득하오니 더욱 그립삽고 슬퍼하오며 이 곳 있사온 때는 매우 가까워 든든하옵더니 저 곳 가오시오니 더욱 마음이 어쩌는 수 없이 슬프오이다. 숙정(淑靜 숙휘공주의 동생)이 이르옵시거늘 듣자오니 진지를 두서 술은 겨우 자신다 하오니 아무리 섧삽셔도 두루 생각하옵소서. 위로 자전(慈殿 즉 효종왕비)께오서 계시고, 아래로 어린 아이들을 생각하옵시지, 그리 한갓 설운 일만 생각하고 헤아림을 아니 하옵시나이까. 자기는 멀리 떨어져 있어 모르옵시거니와 자전께오서 어찌 염려를 하오시는가 여기시나이까. 아무려나 진지나 잘 자옵시고 마음을 위로하여 지내옵심을 수없이 바라옵나이다. 주상(主上)께서는 안질로 회서(回書 답장) 즉시 못 하오시고 가이없이 섭섭하여 하오시나이다. 나도 벌써 글월이나 적을 것이오되 망극 중 보옵시기 폐롭사올까 이제야 적사오니 섭섭하여 하옵나이다.
이해와 감상
현종의 비인 명성왕후가 남편의 상을 당한 시누이 숙휘공주를 위로하는 편지로서, 시누이를 위하는 알뜰한 마음씨가 잘 나타나 있는 작품으로, 지엄한 것으로만 생각하던 궁중 생활에서 한글로서의 소박한 표현에 따뜻한 인정미를 담고 있어 궁중 내간의 한 특징을 파악하게 한다. 시누이를 위로하는 알뜰한 정이 구절마다 넘쳐 있다. 그러면서도 감정에만 치우치지 않고 깍듯한 예의와 품위가 돋보인다.
글월 보고 졈은 날
요점 정리
연대 : 현종 1년(1660)
작자 : 인선 왕후(仁宣王后;1618-1674)
갈래 : 내간
수신인 : 둘째 딸 숙명공주
주제 : 가족이 함께 모여 지내던 옛 일을 생각하면서 느끼는 삶의 비애
출전 : <신한첩(宸翰帖)>
내용 연구
편지 받아 보고 지난 번 저문(어두운) 날에 무사히 나간 안부 알게 되어 기쁘며 다시 만나본 듯 든든하고 몹시 반갑구나. 큰 슬픔에 처해 있어도 모두 모여 앉아 있을 때는 든든하였는데, 마치 나가니 갈수록 섭섭하고 숨이 막히는 것을 막을 수 없구나. 작년 이 때에 모두 모여 즐거이 지내던 일이 그 동안 옛 일이 되어 일마다 갈수록 섧지 않은 것이 없으니 눈물밖에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목숨이 모질어서 이렇게 살아가는 것을 살뜰히 서러워하며 올해에나 어서 죽었으면 하고 바란다.
이해와 감상
조선 시대에 부녀자들을 중심으로 오고 간 한글 편지를 내간(內簡)이라 하는데, 이러한 내간에는 구어체의 표현 속에 부녀자들의 애틋한 심정이 잘 드러나 있다.
인선 왕후의 내간으로 1660년(현종 원년) 효종의 첫 제사를 맞아 둘째 딸인 숙명 공주에게 보낸 편지이다. 인선 왕후의 내간에는 부군인 효종(孝宗)의 첫 제사를 맞이하여,가족이 함께 모여 즐거이 지내던 옛 일을 회상하면서 느낀 삶의 비애가 잘 드러나 있다.
누이님 젼
요점 정리
연대 : 현종 15년(1674)
작자 : 이선(李選;1632-1693)
갈래 : 내간
수신 : 누이
주제 : 누이의 안부를 염려하는 아우의 심정
출전 : 근조 내간선(近朝內簡選)
내용 연구
누님 전
송도까지 편안히 다다르고 병환도 나았다 하니 기쁩니다. 여기 일은 한문 편지에 썼으니 읽으셨습니까? 지금 임시 거처에 있으니 손님들이 들어오고 정신이 없어 잠깐 적었습니다.
이해와 감상
이선이 누이에게 보낸 편지로서,1674(효종 15) 송도에 부임한 매형 김석주(金錫胄)에게 한문 편지와 함께 보낸 것이다. 이선의 내간은 누이의 병환을 염려하는 아우의 간곡한 심정을 간략하게 적고 있는데, 국문 편지가 한문 편지와 함께 동봉되었음을 알 수 있다.
낫것 잡사오시고
요점 정리
작자 : 명온 공주(明溫公主)
연대 : 순조 때
갈래 : 내간
주제 : 자작시(自作詩)의 감상과 비평을 바람, 시의 내용은 사향(思鄕)
내용 연구
명온 공주의 서간에 대한 익종의 답신(答信)
이해와 감상
순조의 맏딸 명온 공주(明溫公主)가 오빠 익종(瀷宗)에게 오언 절구(五言絶句)를 지어 보내면서 비평과 퇴고를 바란 글이다. 명온 공주의 내간은 근엄한 왕가의 체통 속에서도 오누이 사이의 다정한 우애가 엿보인다.
심화 자료
내간(內簡)
조선시대 때 주로 부녀자들 사이에서 주고받은 순한글 편지로 내간(內柬)·내찰(內札)·안편지·언간(諺簡)·언찰(諺札)·유무·글발이라고도 한다. 훈민정음이 창제된 이후 궁중여인들이 한문이 아닌 언문으로 서찰을 쓰기 시작하였는데 점차 일반 서민의 부녀자들에게까지 확산되었다. 당시 부녀자들에게는 한문을 배울 기회가 제한되었을 뿐만 아니라 외부와의 접촉도 어려웠다. 따라서 서찰을 통하여 교신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쓰기 쉬운 언문이 나오면서부터 내간의 일반화가 가속화되었다.
내간은 크게 다섯 가지로 나뉜다.
먼저 문안지(問安紙)가 있다. 이 문안지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초례를 올린 뒤에 신부가 시집 식구들에게 처음으로 문안을 드리는 신부문안지와 그 외 부녀자가 친지들에게 안부를 묻는 일반문안지로 나뉜다. 다른 문안지의 경우는 특정한 형식 없이 자유롭게 씌어지지만 신부문안지는 격식을 갖추고 일정한 문투(文套)에 맞추어서 썼다.
둘째, 사돈지(査頓紙)가 있는데 안사돈끼리 주고받는 편지여서 안사돈지라고도 한다. 두 집안간에 혼례를 올릴 때 신행 가는 인편에 신부 어머니가 신랑 어머니에게 딸을 보내는 심정을 진솔하게 적어서 보낸다. 그러면 신랑 어머니 측에서 감사의 답장을 보냄으로써 두 집안간의 사돈지 내왕이 시작된다.
셋째, 하장(賀狀)이 있다. 사돈이나 친지의 가정에 득남이나 혼인, 환갑잔치, 기타 경사가 있을 때 하례드리는 의미로 보내는 것이다.
넷째, 조장(弔狀)과 위장(慰狀)이 있다. 이것은 상례(喪禮)가 있을 때 조문하는 편지로, 시부모나 친정 부모의 경우에는 조장이라 하고 그 외의 경우에는 위장이라 한다.
다섯째, 집안행사 등으로 친척들을 초대하거나 그 외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기 위하여 쓰는 편지가 있다.
당시 사대부 사이에서는 천대받던 언문이 이런 내간들을 통하여 부녀자들 손에서 점점 세련미를 더해 가면서 내간체 문장이 생성되었다. 나아가 규방문학으로 발전하고 수기문학 발생의 모태가 되었다.
인선왕후(1618-1674)
조선 제17대 왕 효종의 비로 본관 덕수(德水). 성 장씨(張氏). 휘호 경렬명헌(敬烈明獻). 유(維)의 딸이다. 1631년(인조9) 봉림대군(鳳林大君)과 가례를 올려 풍안부인(佯安夫人)에 초봉(初封)되고, 병자호란 후 봉림대군과 함께 선양[瀋陽]에서 8년간의 볼모생활을 하고 돌아와 세자빈이 되었다. 1649년 효종이 즉위하자 왕비에 진봉(進封)되었다. 1659년 효종이 죽고 아들 현종이 즉위하자 왕대비로서 효숙(孝肅)의 존호를 받았다. 소생으로는 현종과 6명의 공주를 두었다. 능은 여주(驪州)의 영릉(寧陵)이다.
명성왕후(1642-1683)
조선 현종의 비(妃)로 본관 청풍(淸風). 성 김씨(金氏). 돈령부영사 우명(佑明)의 딸, 숙종의 어머니. 1651년(효종 2) 세자빈(世子嬪)에 책봉되고, 1659년(현종 즉위) 왕비에 진봉(進封)되었다. 지능이 비상하고 성격이 과격하였다. 숙종 즉위 초에는 조정의 정무에까지 관여하여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숙종과 명선(明善)·명혜(明惠)·명안(明安)의 3공주를 낳았다. 능은 양주의 숭릉(崇陵)이다.
익종(1809-1830)
조선 제23대 왕 순조의 세자로 자 덕인(德寅). 호 경헌(敬軒). 휘(諱) 대(立). 시호 효명(孝明). 묘호 문호(文祜). 어머니는 순원왕후(純元王后) 김씨이다. 1812년(순조12) 왕세자에 책봉되었으며, 1819년 조만영(趙萬永)의 딸을 맞아 가례를 올리고 헌종을 낳았다. 1827년 대리청정(代理聽政)을 하여, 현재(賢材)를 등용하고 형옥(刑獄)을 신중하게 하는 등 치적에 힘썼으나 대리청정 4년 만에 죽었다. 익종으로 추존되고, 능은 수릉(綬陵)이다.
이선(李選;1632-1693)
조선조의 문신.호는 지호(芝湖).송시열(宋時烈)에게서 사사(師事)를 받았다. 이조 참판(吏曹參判)을 역임했으며, 숙종(肅宗)의 기사 환국(己巳換局)때 기장(機張)에 유배되어 배소(配所)에서 죽었다. 저서로 <지호집(芝湖集)>이 있다.
신한첩(宸翰帖)
효종의 둘째 공주인 숙명 공주(淑明公主)와 셋째 공주인 숙휘 공주(淑徽公主)가 궁중으로부터 받은 내간을 그 후손들이 모은 것이다.
여성 생활과 한글 사용
훈민정음의 창제 이후에도 대부분의 글을 한문으로 쓰여졌는데, 조선 후기로 접어들면서 한글이 한문과 함께 쓰이고, 한문으로만 표기된 글의 한문본도 나타나게 되었다. 그렇지만 남성들의 문자 생활에서는 여전히 한문이 주가 되고 한글은 보조적인 구실을 했다.
이와는 다르게 여성들은 한글로 일상 생활에 필요한 글을 썼다. 여성의 생활과 한글이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성종비 소혜왕후가 지은 '내훈(內訓)'에서 시작되었다. 그 후, 한글은 여성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지녀, 여성과 관련된 제문, 편지 등은 한글로 쓰이게 되었다. 이로 인해 일기, 궁중 소설, 내방 가사 등이 내간체 문학으로 포괄될 수 있는 작품들이 등장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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