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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초(蘭草)- 정지용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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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지용

 

 

난초잎은

차라리 수묵색(水墨色).

 

난초잎에

엷은 안개와 꿈이 오다.

 

난초잎은

한밤에 여는 담은 입술이 있다.

 

난초잎은

별빛에 눈떴다 돌아 눕다.

 

난초잎은

드러난 팔굽이를 어쩌지 못한다.

 

난초잎에

적은 바람이 오다.

 

난초잎은

춥다.

(신생 37, 1932.12)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초기의 모더니즘 계열에서 동양적인 정취를 자아내는 경향으로 옮아가는 단계의 작품으로, 난초라는 동양적인 소재를 취하여 여백(餘白)과 여음(餘音)의 수묵화적 분위기로 그려낸 시인의 솜씨는 가히 시대의 절창(絶唱)이라 할 만하다.

 

시인이 노래하고 있는 난초는 사군자로서보다는 오히려 여성적인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난초잎에는 한밤에 여는 담은 입술이 있으며 팔굽이를 드러낸 난초는 적은 바람에도 추위를 느낀다. 이렇듯 난초잎에 스치는 작은 움직임마저도 놓치지 않고 날카롭게 포착하여, 절제된 시어로 표현해 내는 솜씨와 21연의 간결한 시 형식은 그 뒤의 청록파시인들에게 그대로 계승되어 한국 현대시의 한 계보를 형성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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